3. 현미경 아래에는  | Under the Microscope  



아침이었다. 셜록은 지역 재활용센터 트럭이 요크셔 테라스(York Terrace) 코너를 돌면서 나는 덜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밖이 아직 어둡다는 뜻이고, 그의 눈꺼풀 너머로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또한,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증거도 되지 않겠지.

그는 얼마간 기다리다가, 눈을 뜨지 않은 상태에서 암흑의 강도에 변화가 있는지 알아내려 애썼다. 피질맹이라는 건 예측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의 시력이 언제쯤, 어느 정도나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매일 아침마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물음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거다. 

플랫이 조용한 걸 보면, 존은 아직 잠들어 있는게 분명하다. 저쪽 바깥 소파에 있을 테지. 셜록이 ‘군인 모드’라고 생각하던 대로, 그를 필요로 할 때를 대비해서 한쪽 귀를 열어둔 채 잠든 채로 - 셜록이 부를 때면 얼마나 빨리 나타나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머무르지는 않고, 늘 가능한 서둘러 거실로 돌아가곤 했다.

실용적이지 않아서도 짜증나긴 했지만, 존이 설명조차 하려 들지 않아 한층 더 짜증스러웠다. 그는 그저 자신이 셜록의 방에서 밤을 보내는게 ‘부적절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말해온지도 벌써 일주일째, 셜록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셜록은 지금 당장이라도 존을 바로 옆에 두길 바란다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였지만, 현재 상태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밤 소파에서 자게 두는 건 존의 등에도 좋을 게 없을 뿐더러, 나머지도 점점 더 불만족스러워지는 중이라, 가끔씩은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감각을 공유하는 건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셜록은 존이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구는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존이 여기 있기만 하다면, 눈을 뜨는 게 훨씬 쉬워질 텐데.

혹시 존은 셜록의 방이 불쾌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침대인가? 매우 빠른 속도로 썩어버린 쥐 실험 건이 있긴 했었지만, 그 이후로 매트리스를 뒤집어 두었더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 가지고도 야단스럽게 굴 수도 있긴 하니…

이걸로 다음 공격 계획을 잡아볼까, 셜록은 결심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각주:1] 어쩌겠는가 - 존의 침대에서 둘이 같이 잘 수도 있겠지.

그는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셜록은 무릎을 모으고 가운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채 의자에 앉아 갖가지 상념에 빠졌다. 적어도 머리 부상 때문에 평소보다 더 잠이 많아진 상태니, 시력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은 지루한 시간들은 좀 줄어들 거다. 그러면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

존이 부엌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필요해서 하는 건 아닐 거다. 지금쯤 그의 모든 실험거리들이 사라져버린지 오래일 게 뻔하니까. 그때 무언가 기억났다. “존,” 그는 존을 불렀다. “머리는 어떻게 됐어?”

“아, 몰리가 다시 가져갔어.” 주전자 소리 너머로 살짝 소리치듯 존이 대꾸했다. “보아하니 허드슨 부인은 얼굴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싫어하시는 것 같아.”

“허드슨 부인이?”

셜록은 물을 따르고, 냉장고 문이 쾅 닫히고, 스푼을 휘젓는 소리가 들리는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곧 존이 다가와, 무릎을 감싸고 있던 셜록의 손을 한쪽 풀어내서는 찻잔을 쥐어 주었다.

“그래.” 존이 반대쪽, 그의 의자로 가서 앉자 그의 목소리도 따라 가버린다. “병원에도 오셨었는데, 그 사람들이 널 못 만나게 하더라구.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분은 널 꽤나 좋아하시거든. 알잖아. 부인도 속상하셨을 거야. 네가 그렇게-“

“망가졌다는 거?” 셜록이 끼어들었다.

“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거라고 말할 참이었거든.” 존이 대꾸했다. “어쨌든, 마이크로프트가 너랑 있어줘서 부인이랑 커피 한 잔 했어. 그때 일주일 못 갈 것들은 다 냉동실로 치워달라고 부탁드렸지.”

“머리에 대해서 경고하는 건 잊어버렸던 거야?”

“난 그때 다른 머리 걱정을 하던 중이었거든.”[각주:2] 존이 비난하듯 한 마디 했다. “그러니 네가 하던게 뭐든간에 꽁꽁 얼려두면 허사가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몇가지 정도는 녹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나 즐겨하던 거라면 나한테 뭘 해야 할지 알려주면 되잖아.”

셜록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세워 바로앉아 두 손으로 머그를 붙들고 한 모금 마셨다. 존과 허드슨 부인 둘 다 그의 실험에 대해서만큼은 누차 불평해 왔었기에, 저 두 사람이 그의 일과 관련된 것들까지 무사히 지켜주려 했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의외였다. 특히, 그가 깨어날지 아닐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물론, 모든 걸 얼려버리는 건 그다지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것들 거의 다 망가져버렸겠는걸.” 일단은 지적부터 하고. “하지만, 우리가 한번 볼 수 있을지도…” 스스로 멈추며 고쳐 말했다. “내 말은, 네가 볼 수 있을 거란 거지, 그 손가락들 정도는?”

“마가린 통에 있는거?” 셜록이 고개를 끄덕이자, 존이 일어섰는지 의자가 삐걱거렸다. “지금 꺼내볼게. 내가 준비해놓는 동안 옷 갈아입고 찾으러 와.” 셜록은 끙,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존은 항상 그에게 옷을 입히려 든다 - 대체 왜 그러는 거지? [각주:3]

30분쯤 지났을 때, 존은 부엌 테이블에서 옆에 ‘바츠 소유’라 새겨진 현미경을 허리 숙여 들여다보고 있었고, 셜록은 그에게로 다가섰다. 보아하니, 존에게 머리를 가까이 들이밀면 필요한 데이터들이 그 사이로 가로질러 전해지기라도 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꽝꽝 얼어있어.” 존이 말했다. “그리고 안돼, 난 이걸 절대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을 거니까.” [각주:4] 

그는 몸을 곧추세웠다. “새로운 규칙: 전자레인지에 신체 일부를 넣어두는 거 금지야. 네가 맨날 너무 세게 돌려서 터져버리는데다, 제대로 치우지도 않잖아. 난 절대로, 다시는, 내 스프그릇 바닥에서 발톱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구.”

셜록이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노력이라도 좀 해봐, 존. 네가 너무 부드럽게 하는 거라구.” 그는 슬라이드에 놓아둔,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쿡 찔러보더니 메스로 손을 뻗었다. “내가 해볼게.”

존은 재빨리 그의 팔을 밀어냈다. “안돼, 셜록. 정신차려.” 그리고는 칼날을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이건 말 그대로 돌처럼 딱딱하다구, 이럴 땐 그냥 기다려야 하는 거야.”

“유후~” 열린 문가에서 소심한 똑똑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니, 얘들아?”

셜록은 투덜대며 돌아서서는, 허드슨 부인이 들어서자 자기 의자로 가서 털푸덕 주저앉았다.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느릿하게 움직이는데다 왼쪽 벽과 넓게 거리를 두고 있는 듯 하다 - 그럼, 장본 물건들을 들고 오시는 건가.

그녀가 존의 의자 뒤를 지나가자 비닐봉지가 스치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오른손에도 봉지가 들려 있는 셈이니, 꽤나 많이 사오신 거겠군.

“잘 잤니, 셜록. 좋은 아침, 왓슨 선생.” 부엌으로 가시더니 테이블에 봉지들을 내려놓으며 그녀가 말했다. 셜록은, 그녀가 봉지에서 꺼내드는 내용물을 추측하면서 신이 났다. 그는 꽤나 잘 하기도 했다. 존이 식사를 준비할 때면 재료들을 찾아달라고 했었던 덕분이다.

“고마워요, 허드슨 부인.” 존의 목소리가 싱크대 근처에서 들려왔다. “정말 친절하세요. 물이 막 끓었는데, 차 한잔 드시겠어요?”

그리고 또 시작이로군, 셜록은 생각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아. 그래도 괜찮다면, 고맙구나.” 시끄러운 주전자 소리에 이어,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

8, 7… “잠시 앉으시는게 어때요, 허드슨 부인?” 쿠션이 사락 부풀어오르는 소리. “여기요, 제 의자에 앉으세요.”

6, 5… “그래, 어떻게들 지내니, 얘들아?” 뭐 필요한 건 없고?”[각주:5] 차를 건네준다. “아, 고맙수, 의사 양반.”

4, 3… 존의 컵이 싱크대에 놓인다. “뭐, 말씀을 듣고 보니 이야기할 거리는 좀 있겠지만, 30분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겠는데요.”

2, 1… “아, 지금 잠깐 나갔다 오려고? 나가 있는 동안 내가 셜록이랑 잠시 이야기하고 있으마.”

그리고… 발사.[각주:6]  존은 오래 걸리지 않을거라 약속하면서 그의 어깨에 잠깐 손을 얹는다. 그리고는 대리 베이비시터와 셜록을 남겨두고 나가버리는 거다.

그는 설득력 없어보일 게 분명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허드슨 부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뀐거 있니, 얘야?” 꽤나 들뜬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묻는다.

“여전히 눈먼 상태죠, 부인이 묻는게 그런 거라면 말입니다.” 셜록은 불쑥 대답했다. 그러고는 금방 후회해버렸다 - 그의 실험들을 보존해주려 했던 데 고마움을 표시할 생각이었다. 존이 외출할 수 있게끔 특별히 올라와서 그와 함께 있어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정말 고맙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친절하다고는 생각했었기도 했다.

허드슨 부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너랑 왓슨 선생은 어떻게 지내니?” 그녀가 묻는다. “지금 네 말투는 꽤나… 친근하게 들리던데.”

지금까지는 완전 뻔하군, 셜록은 생각했다. “우린 친구 맞으니까요. 허드슨 부인.”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훑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네게 반해 있잖니, 알면서.” 그녀는 결국 말해버리고 만다. “물론 늘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명백한걸.”

“지금은 더, 명백하다구요?” 셜록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셜록이 아는 한은, 병원에서부터 이어져온 존의 행동들은 완벽하게 전문가다웠다. 지난 주의 작은 실수만 빼면 말이다.

“네가 보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지금은 덜 조심스러워하거든.” 그녀가 대답했지만, “미안하다, 얘야.” 조금 직설적이었다고 느꼈던지, 이내 한 마디 덧붙인다.

셜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어 보였다. “미안할 게 뭐 있나요? 부인 말씀이 정확하죠. 계속해요.” 허드슨 부인이 생각하는 게 자신과 어떻게 다른지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이야기를 종용했다. 보통은 다른 사람들의 관찰 결과 따위 관심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는 허드슨 부인이 보고 있는 걸 알고 싶었다.

“아, 나야 모르지.”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할 말은 아닐 것 같은데.”

셜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이지, 허드슨 부인은 그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 사람들은 직접적인 질문에는 대답하기 꺼려한다는 등등의 규칙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존은 지금 날 그저 환자로만 보고 있어요.” 먼저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는 의사잖습니까; 지금처럼 나약한 내 상태를 감안하면, 그가 날 더 걱정하게 되는 것쯤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흐응.” 반대편 의자에서 희미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널 봐주는 것처럼 모든 환자들을 보다가는, 지금쯤 존은 초주검이 되어버렸을 걸. 정말이야.”

흥미롭군.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는데. “존이 날 어떻게 보고 있는데요?”

허드슨 부인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가 그애의 세상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기분 좋게 현금인출기로 향하며, 존은 전주보다 나아진 셜록의 차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체적으로 보면, 셜록은 꾸준히 나아지고 있었다. 양치 사건 이후로는 보속증 증상도 더는 나타나지 않아 크게 안심이 되는데다, 그의 지성이나 지능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존은 슬슬 그의 태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첫 주, 셜록은 좌절과 분노,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했었다;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젠가 시력이 돌아올 테니 그저 기다리고 있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것 같았다 - 마치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정상으로 돌아가, 이 모든 부분들을 그의 인생에서 싹 지워버리고는 없었던 일인 양 그렇게 가버릴 것처럼 말이다.

그는 불확실한 상태나 다름없지, 존은 생각했다. 그의 시력만 빨리 돌아온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몇 개월이 걸릴 수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왠지, 존은 그를 지금처럼 그의 삶에 엮어두고 싶었다. 

저녁 실험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셜록은 단 한 번도 장을 보러 가거나 뭔가 요리를 하려 드는 법이 없었기에, 부엌 벽장에 뭐가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존은 그에게 그 내용물을 알아내는 과제를 내주어 보았다. 어이없는 목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남겨진 네 가지 감각들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과제였다. 존은 셜록이 그 감각들을 활용하는 연습을 해두고, 당분간은 거기에 의지하길 바랐다. 

처음에는 셜록도 내키지 않아했었지만, 그가 찾아오는 재료들로 - 그게 필요한 재료가 맞든 아니든간에 - 요리를 해주겠다고 존이 단언한 이후부터는 좀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오후 내내 흔들고, 찔러보고, 냄새맡아보고 맛보면서 어마어마한 난장판을 만들어놓곤 했다. 

당연히 그는 훌륭하게 해냈고, 끼니도 거의 예정대로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경험했던 토스트치고는 꽤나 미묘한 디저트만 빼면 말이다 - 캔을 흔들어보는 것만으로 베이크드 빈스와 라이스 푸딩을 구분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던 거였다. [각주:7] 

현금인출기에서 우체국으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25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221B로 향하는 존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와 허드슨 부인이 가끔 이렇게 위장하곤 하는 것마저도 셜록이라면 알아차렸을 게 뻔했지만, 어쨌든 계속 하고는 있었다. 그들의 속까지도 빤히 꿰뚫어보고 있을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려 애쓴다는 게 정말 터무니없는 거기도 하겠지만, 그들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는 거다. 

존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에도 목소리가 들려왔었지만, 재빨리 조용해지더니 허드슨 부인이 허둥지둥 플랫을 나섰다. 그녀는 스쳐 지나가며 미소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긴 했지만, 그의 눈을 마주보지는 않았다. 존은 잠시 멈춰서서 그녀가 아래로 총총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상하게 초조해지는 걸 느끼며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섰다. 무언가 있는 거다. 

셜록은 창가에 서 있었다. 하지만 존이 들어서자 그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들의 시선이 한데 얽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존의 온 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시선이 이어졌다는 건 단지 그의 상상일 뿐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허를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렸다. 

셜록이 한 손을 내밀자, 존은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거라 여기고는 무의식적으로 다가서서 그 손을 잡았다. 하지만 셜록은 곧바로 다른 한 손을 들어 존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었다.

“왜 나와 함께 있는 거지, 존?” 그가 물었다.

반사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의 얼굴에도 선명히 드러나버렸을 거였다. 

미소지으며 나머지 손을 올리는 셜록의 모습에서, 존은 곧바로 벽에 한가득 그려진 그래피티를 발견했던 기찻길에서의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도 딱 지금처럼 셜록은 그의 얼굴을 감싸쥐었더랬다. 그리고는 이미 셜록의 손이 닿을 때부터 아찔했던 그를, 진짜 어지러워질 때까지 빙글빙글 돌려댔었다. 사라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그 밤 말이다. 

“뭐 하는 거야, 셜록?”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지난 몇 주간 의사-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그간의 모든 노력들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다시금 출발선상으로 되돌려진 것만 같았다. 

“난 답을 기다리고 있지, 존.” 그의 대답이다.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네 답을 보고 싶은거기도 하고.” 그는 요점을 설명하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굽혔다. “상관 없지, 안그래?” 

이건 분명 위험한 상황이다. 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는 중이다. “지금쯤 저 손가락들, 쓸만할 정도로 부드러워졌을 것 같은데.” 기대감을 안고 말해보았다. “바로 실험에 착수하는게 좋을 것 같아. 너무…” 말하는 내내 그의 얼굴을 옮겨다니는 셜록의 손, 신경이 쓰인다. “물컹물컹해져버리기 전에.” 잠시 멈췄던 걸 내심 자책하며 말을 끝맺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락 사이에서 알아차리는 것보다, 셜록이라면 그 잠시 동안에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건 의학 용어인가요, 의사 선생님?”[각주:8] 셜록이 조금 더 다가서며 물었다.

존은 당황하며 그만큼 물러섰다. 딱 지난주 같은 느낌인데,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생각했다. 이거, 이제부터 셜록이 구사할 새로운 전술이라도 되는걸까? 더 이상 멀리에서는 관찰할 수 없으니,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때까지 먹잇감에게 스스로를 딱 붙여보기라도 할 셈인가? 

“실험은 괜찮을 거야, 허드슨 부인이 가자마자 샐러드 칸에서 손가락들 치워놨잖아. 마가린통이 달칵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데다, 그 칸은 네가 닫을 때마다 삐걱거리더군. 몇 달쯤 전에 내가 그 칸 고무밴드를 뭐 묶는데 써버렸거든.” 

이제 셜록은 앞으로 기대오고 있었고, 긴 손가락으로는 존의 얼굴을 더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내게 연민이라도 느끼는 건가, 존?” 그가 물어왔다. 

존은 충격으로 숨을 들이마시고는, “네게 연민을 느껴?” 되풀이했다. “내가, 네게 연민을 느낀다구? 왜 그런걸 묻는건데?”

“뭐, 네가 내 첫번째 질문에 대답을 안 했으니 의견을 내 보는 거지.” 셜록이 대답했다. “다지선다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존은 점점 더 집중하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셜록이 그를 테이블로 밀어붙이고는 그에게로 기대오고 있었는데다, 그들의 얼굴은 거의 맞닿을 지경이었다… 그러기도 쉽겠는데… 안돼! 환자라고 생각해, 그는 환자잖아. 존은 스스로에게 타일러도 봤지만, 셜록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었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Survivor’s guilt)일지도.”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총을 맞고 넌 맞지 않아서 나한테 책임감을 느낄 테니까.”

존은 숨이 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그런 생각따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셜록이 다치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실제 총을 쏜 스나이퍼를 잡아들이긴 했지만, 존은 실제로 이 일을 벌인 장본인인 모리어티만을 노리고 있기도 했다. 그 혐오스러운 이름이 뇌리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존의 얼굴이 굳어졌고, 당연하게도 셜록은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모리어티를 뒤쫓아가진 마, 존.” 그가 부추겼다. 존은, 어쩐지 셜록의 손가락이 머릿속 생각을 빨아들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떼어내려 애써봤지만, 셜록은 손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치고 들어가야 할 때로군, 존은 결심했다. “어쩌면 나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는 맞서 대꾸했다. “어쩌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너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마음 속으로 내가 더 빨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 걸까? 널 더 빨리 돌려세웠다거나, 내가 총을 맞았더라면?”

셜록은 마지막 말에 긴장했지만, 금방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아냐, 존.” 그가 말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럴지도.” 존은 얼어붙었다. 의도와 상관 없이 나와 버린 말들이 말풍선이 되어 입술 끝에 매달려 있는 것마냥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시 되삼킬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의 의지를 대부분 담아낸 채로 이미 나와버리고 말았으니 어쩌겠는가.

더 이상 말실수를 뱉어내지 않게끔 꽉 다문 존의 입술을 어루만지는 셜록의 손끝에서, 그의 좌절감이 뚜렷하게 전해져 왔다. 그 순간만큼은 시력이 되돌아오기만을 간절하게 갈망하고 있다는 게 분명했다.

“왜 나와 함께 있는 거야, 존?” 그는 다시 물어왔다. “왜 날 참고 받아주는 건데? 특히나 지금처럼, 네가 감탄해 마지않던 것들도 더는 할 수 없는데 말야. 단지 내가 널 필요로 하기 때문인가? 그거야말로 나한테는 연민처럼 들리는데.”

그의 말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보다도, 그 말이 흘러나오는 입에 존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어 있었던 탓이다. 존의 허벅지가 테이블 가장자리를 누르고 있는데도 셜록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자세가 부적절하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존은 셜록의 길고 마른, 단단한 몸이 자신과 맞닿아 있는 모든 부분을 의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들조차 모조리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그는 셜록을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리기 시작해서, 지난 달 내내 - 셜록이 그의 환자가 되어버린 그 모든 시간 동안 엄격하게 보강하고 지켜왔던 자신만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셜록의 엄지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간 입술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으려 힘겹게 버텼다. 순수한 셜록 - 그만의 독특한 향기까지 느낄 수 있는데다, 존의 머릿속마저 그 향기로 채워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얼굴을 더듬고 있는 셜록의 팔을 떼어내려 움직였지만, 그의 마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셜록의 표정을 허기진 듯 탐했다. 아직도 이마를 덮을 만큼 긴 어두운 색 머리칼을, 창백한 피부를, 도톰한 입술을,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최면이라도 걸린 듯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크고 살짝 치켜올라간 두 눈을. 존은 외모만으로 반할 만큼 얄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셜록의 외모가 보는 즉시 그의 관심을 사로잡아 버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진정으로 독특하니까.

지금 그들의 얼굴은 너무도 가까워서 존은 셜록의 두 눈에 점점이 담겨 있는 여러 색깔들마저도 구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색깔들 덕에, 그의 두 눈은 가끔은 푸른빛이지만 가끔은 회색빛, 어떨 땐 심지어 초록색으로도 -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보이곤 했다. 그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존은 이미 대답할 수 있는 시점을 지난지 오래였다. 셜록이 다시 말하기 시작하자,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최면이라도 걸 듯이 깊고 어두운 강물처럼 흘러 존을 휩쓸고 지나갔다. 

존의 벽은 스러져가고 있었다. 셜록이 다가오지 말라고, ‘자신은 일과 결혼했다’[각주:9]고 말했던 이후부터 억누르고 또 숨겨두었던 그 모든 것이 넘쳐 흘렀다. 게다가,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 남자 - 그의 환자에게 부적절한 생각조차도 품어서는 안된다고 지난 한 달 내내 더욱 굳게 다져왔던 결심 때문에 한층 더 거세지기만 했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은 여전히 알 수 없고 상관도 없었다. 존의 시선은 셜록의 입에만 붙박혀 있었고, 그의 머릿속은 억누르기 위해 그렇게나 노력했던 그 모든 환상들로 가득 차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새 몸을 뻗으려던 걸 깨닫고는 급하게 스스로를 멈춰세웠다. 존은 키스하게 될 걸 보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할 사람에게 강요하려 들 만큼 무신경하진 않았기에 스스로를 단호하게 제지했던 거다. 하지만, 그렇게나 강력한 의지로도 셜록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데 신체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게임이 끝나고 셜록이 진실을 알게 되는 건,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란 걸…

이어지던 말들이 갑자기 멈추더니, 셜록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만큼은 아니겠지, 존의 머릿속에서 조금 날카롭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래,” 셜록이 말했다. 반 옥타브는 내려간 듯 낮은 목소리였다. “그럼, 연민은 아닌거군?”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3/20): Under the Microscope 
  • 역자 주석: (큐트하신 더블피님 말마따나) 허드슨 부인의 주책 아닌 주책 덕에 한걸음 더, 서로에게로.
      감정치답게 진도는 여전히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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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