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관심은 고맙지만  | Flattered by Your Interest  



“셜록, 정말 미안해.” 존이 가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계속 그랬던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줘… 그러니까, 난 한번도… 내 말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꺼내보았다.

“그러니까, 맹세할게, 병원에서… 그 이후로는 널 이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 없었어. 널 돌봐주는 동안, 나 한번도 그렇게… 절대로… 약속해…”

그가 돌아서자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테이블에서 가볍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그가 기대선 모양이다. 뒤이어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셜록은, 자신이 몸으로 누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한발짝 물러섰다. 인정해야 할 터였다. 지금은 방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실은 꽤나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하지만, 존은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다. 셜록이 그를 몰아세웠던 걸 생각해 보면, 부당한 일이긴 했다. 그는 손을 뻗었고, 존의 어깨에 닿을 때까지 앞으로 다가섰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화난 것도, 속상한 것도 아냐. 네가 걱정하고 있는 그런 거 아냐.”

셜록의 손이 닿자 움찔하는 존의 모습에, 그는 손을 떨구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걸.”

존은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거의 웃음소리같기도 했지만, 유머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아니, 네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 역시 동의했다. “내가 헤어났을 거라 생각했었어?”

“헤어나다니?” 조금은 혼란스러운 듯, 셜록이 물었다.

“뭐, 완전히 충격적인 건 아닐 거 아냐, 정말로.” 여전히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존이 지적했다. “내가 너한테 끌린다는 거, 넌 알고 있었을 게 명백했으니까. 아니라면 내게 다가오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안젤로네에서의 그날 말야.”

셜록은 그날 오후를 되새겨보았다. “그건 단순히 오해였을 수도 있었는걸; 어쨌든간에 널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었고.”

존은 흥,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리고 넌 벌써 내 거의 모든 걸 다 말해줘버렸었지. 네가 이야기하지 않으려던 단 한 가지 화제는 내 성적 성향이었고 - 사실 나중에서야 생각했던 거지만, 나름 적확한 생략이었지.”

“어쩌면 내가 그저 확실히 해두려던 거였을지도 모르잖아.” 셜록은 제안하듯 말을 꺼내보았다. “우리 상황을 둘 다 확실히 알게 하려고.”

“아, 네가 그거 하난 확실히 했었지, 그래.” 존은 동의했다. “네 말을 그대로 읊어줄 수도 있어. 그놈의 대화, 난 머릿속에서 수백번 되새겨봤었으니까.” 그리고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네가 일과 결혼했다고 말해준 다음, 그리고 나랑 엮이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주기 바로 전에 네가 그랬거든. 정확히 이렇게 말했었지: 네 관심은 고맙지만…[각주:1] 

존이 일어나 돌아서자 테이블이 다시금 삐걱거렸고,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만약 네가 몰랐더라면 왜 그렇게 말했겠어?” 위대하신 셜록 홈즈님께서 실수라도 했다고 둘러댈 셈인 거야? 나에 대한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추리해낸 너에게도, 내가 바이고 너한테 매력을 느낀다는 것만큼은 명확하지 않았던 건가?”

다시금 삐걱거리는 소리; 이제 그가 다시금 테이블에 기대선 게 분명하다. 팔짱끼고 발목을 엇갈린 채 다리를 꼬아 서서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을 그의 모습이, 셜록에게는 눈에 선했다.

“말 좀 해보라구, 셜록.” 존이 부추겼다. “너라면 완전 스트레이트인데다 관심 없는 남자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말해주는데 금쪽 같은 시간을 낭비하진 않았을 거 아냐 – 이유가 뭐였는데?”

셜록은 그가 왜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존에게 지나치게 퉁명스럽게 굴어왔던 걸 돌이켜 보면, 그냥 옳은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아무 말도 안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존이 그에게 대쉬라도 했었을까?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래, 알았어.” 그는 시인하기로 했다. “네게 ‘다가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 하지만 잘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었잖아. 그리고 새라도 있었고.”

존은, 한숨을 쉬고는 “가여운 새라.” 말했다. “널 잊으려고 그녀를 만난 거였거든.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납치된다거나, 미적거리다가 차여버린 것 뿐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 같은건 그녀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진 않아.”

“차였다니?” 셜록이 멍하니 따라 말했다.

“너, 한달동안 깨어 있었잖아.” 존이 지적했다. “그동안 내가 몇 번이나 데이트를 갔어?”

셜록은 그가 눈을 도륵,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다시피했지.” 그러다 불현듯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일은 어쩌고?” 이 문제를 이제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존, 너 병원도 안 나갔었잖아!”

이번에는 존도 픽, 웃었다. “네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 그리고는 말했다. “그만뒀어. 뭐, 굳이 말하자면 일주일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연락을 받지 않는 식으로긴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는데, 결과는 다를 바가 없으니까.” 잠시 멈추고는 덧붙인다. “자, 좀 앉는 게 어때? 이건 5분 이야기하고 말 꺼리도 아닌데다, 무엇보다 새 의사를 구하는 문제를 상의해봐야 하니까.”

“새 의사같은거 필요 없어.” 셜록은 재빨리 대답했다. “네가 내 의사인걸.”

존의 말에, 한기가 그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그는 허드슨 부인의 말을 들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정보란 건 항상 유용하지만, 그 대가가 존이라면 그는 차라리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존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그의 팔을 잡고 의자에 앉혔고, 그는 마지못해 구겨져 앉았다. 이제 존이 떠나버린다면, 그는 뭘 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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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지만, 지극히 이상한 기분은 여전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만큼 셜록이 그 즉시 경악하거나 역겨워하지는 않았던 덕분에, 셜록이 그에게서 물러나던 순간 처음 느꼈던 당혹감은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아직 믿어지지 않았다. 이 모든 시간들 - 그동안 서로 알고 지내왔던 거의 모든 시간들 내내 한눈에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서 이 비밀을 지켜오느라 그토록 애썼던 걸 생각하면, 셜록이 보지 못하게 되고서야 진실을 발견해냈다는 건 그야말로 아이러니인 셈이다.

존은 의자에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몸을 굽혀 셜록을 바라다보았다. 저 머릿속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셜록, 내가 더이상 네 의사노릇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의사로서 널 볼 수가 없어, 내가 널 그렇게 보고 있는 한은…” [각주:2] 헛숨을 들이키며, 존은 잠시 멈추었다.

“뭐?” 셜록은 되물었다.

존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정말이지 이상하다니까.” 차근차근 설명했다. “난 보통 네가 방 안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데다, 최근 몇 주동안 전혀 그런 생각은 하려 들지도 않았었어.”

“생각하는 걸 어떻게 멈추는거야?” 궁금하다는 듯 묻는 셜록이다. 벽에 난 총구멍들로 미루어 보건대, 이거야말로 그가 무진 애쓰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 나도 몰라.” 존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다른 데 집중하거나. 100까지 세볼 수도 있겠지. 축구에 대해 생각한다든가, 프랑스어로 100까지 세보는 것도 괜찮겠네.” 그는 가볍게 웃었다. “있잖아 - 바보라는 것도 좋은 점이 있다니까. 걱정할 생각도 하나뿐이거든; 너처럼 한번에 대여섯가지씩 생각 안해.”

그는 시선을 떨구었다. “가끔은 잘 안되기도 해. 그럴 때면 난 자리를 떠서 도망쳐야 했었지. 네게 말했었던-“

“’바람 좀 쐬어야겠어[각주:3] 라고.” 셜록이 알아차렸는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그 모든 순간들은… 난 나한테 화난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에, 존이 코웃음치며 동조했다. “보통 그렇기도 했지. 하지만 감정이 격해졌을 때 네 주변에 있는다는 건, 내겐 너무 위험했으니까 - 방심할 수도 있는데다, 넌 항상 너무 많은 걸 봐 버리니까.” 그는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어쨌든, 가끔은 널 흔들어대고 싶을 만큼 너무 화가 날 때도 있으니, 그런 건 확실히 위험한 거지.”

“위험하다면, 어떻게?” 셜록이 물어왔다.

존이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세상에, 셜록. 넌 일을 너무 어렵게 만든다니까! 위험하지, 왜냐면 분노에다 가까운 신체적 접촉이 더해지면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강렬한 감정이라는 건 항상 딱딱 잘 맞게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니까 위험한 거라구 - 화났을 때 섹스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어, 진짜로?”

셜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넌 화나면 나랑 섹스하고 싶어져?” 반신반의하며 묻는다.

“아냐!” 존은 팩 대꾸해버렸지만, 정직해지고 싶은 마음에 이내 말을 멈췄다. “가끔은 그래.” 한층 조용한 목소리로 시인했다. “아, 나도 모르겠어.” 그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다리를 쭉 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볐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네가 나한테 새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길래, 난 이미 있다고 지적하던 중이었어.” 그에게 상기시켜주는 셜록의 목소리에서는 못마땅한 듯한데다 방어적인 기색이 묻어났다.

존은 다시 자세를 고쳐앉았다. “난 이젠 널 돌봐줄 수가 없다구, 셜록.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하잖아? 널 전문적으로 돌봐줘야 할 사람이 사실은 네게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까지 네가 걱정하고 있을 순 없는 거라구.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그건…” 셜록은 반론하려다 멈칫하더니, 입술을 악물었다. “병원에서 이후로는 날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그럼, 예전에 나한테 끌렸다고 해봐야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덧붙였다. “이젠 모든게 달라졌는걸.”

“뭐라구?” 존은 멍해져버렸다. “너 무슨 생각을… 아냐!” 셜록이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존은 고개를 저었다. “다친 것 때문에 너에 대한 내 마음도 바뀌었을 거라 지레짐작하는 거지?” 셜록에게 그는,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 얄팍한 사람이었던 건가?

“난 짐작 따위 하지 않아.” 셜록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명백한걸.”

“그래, 넌 그렇겠지. 그리고 아냐, 안그렇거든.” 존이 한 마디 한다. “난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했지, 하기 싫다고 말하진 않았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기라도 한거야?”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셜록이 무릎을 끌어올리고 팔로 감싸안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고집스레 턱을 수그렸다. “이젠 모든게 달라졌어.” 그는 다시금 말했다. 아까 존의 반응이 사적인 감정은 전혀 담기지 않은, 그저 신체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 같았다.

존은, 이 자존심 드센 남자가 누구 하나 자신을 원하지 않을 거라 확실하게 단정지어버리는 걸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좀전같은 상황 직후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엇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셜록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 정도가 위협적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셜록, 내가 아는 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어. 이러지 않으려고 내가 이제껏 쌓아왔던 벽들 모두를, 네가 방금 무너뜨려버렸다는 것만 빼면.” 자신도 모르는 새, 존의 손은 달래듯 위아래로 쓰다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깨어났을 때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상관이 있는지도 난 모르겠어. 내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거든.”

셜록은 고개를 숙이더니 더 깊숙이 -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약해져 있었다. “난 장님이라구, 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더이상 자신은 남자도, 사람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다.

존은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셜록의 얼굴을 감싸,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들어올렸다. “하지만 난 아냐.” 그는 대답했다. “그리고 난, 너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는걸.” [각주:4] 

말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셜록의 얼굴을 훑었고, 그 방어적이고 꽉 닫힌 표정에서 희미한 반짝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평소 그의 자신감과 예의 그 오만함으로, 셜록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셜록은 자기가 뭔가 원할 때가 아니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다, 스스로를 평가할 때에도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지성이나 능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것들이 줄어들게 된 지금, 그는 자신의 가치마저도 그것처럼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존은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기에, 직접적이고 솔직한 남자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조금 전까지의 충동은 지나치게 제멋대로인데다 부담스러웠기에 참아왔었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열정도 없었다. 다른 어떤 일도 없을 거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일 뿐.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셜록이 그가 다가서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를 제지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앞을 보지 못한다고는 해도, 셜록의 눈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존이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그는 움찔거리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만큼 가까워지고 그의 의도마저도 충분히 명확해졌을 때, 존은 멈추고는 물었다. “해도 될까?”

셜록은 미소지었다. “이거, 나랑 같이 잘거라는 건가?”





밖은 쌀쌀했다.

셜록은 왼손으로 코트 깃을 조금 더 가까이 여며 목 뒤를 감쌌다. 머리를 자른 후부터는 벗은 듯, 드러난 듯 느낌이 이상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가 지난번에 들렀을 때 주고 간 어이없는 선글라스를 끼는 것도 싫고, 말하는 시계나 기타등등 짜증나는 잡동사니들 모두 싫었기에, 셜록은 이제껏 그런 건 생각조차 하려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글라스 정도는 마지못해 끼고 다니긴 했다 - 사람들은 항상 그의 시선을 당황스러워했는데다, 초점까지 맞지 않으니 한층 더 불안해하는 모양이었다. 존이 맑고 햇살 좋은 날이라 했으니, 적어도 선글라스가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보이진 않겠지.

이상하군, 셜록은 생각했다; 예전에 그는 절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가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는 단연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눈치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 최강 바보조차도 그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 그를 나약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 생각에, 본의아니게 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존은 팔을 굽혀, 안심시키듯 힘을 실어준다. 셜록은 그가 그러고 있다는 걸 알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는 이런 행동들이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거다. 존이 지금까지 내내 그에게 끌리고 있었는데다, 그럼에도 숨겨왔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존이 그런 속임수를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기에, 셜록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는 게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리젠트 파크(Regent’s Park) 쪽으로 향하며 셜록은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존이 셜록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우정에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극복하려 애쓰는 동안 스스로의 감정을 그렇게나 많이 숨기지도 못했었다.

새라는 그저 눈속임만은 아니었던 거다. 존은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셜록은 존이 항상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몇 주간, 그 이전부터도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특히, 수린(Soo Lin)이 죽던 그날 밤같은 순간 말이다. 남자로서, 또한 군인으로서 존의 타고난 본능대로라면 그는 그대로 머물러서 암살자의 목표물인 그녀를 지켰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대신에, 그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셜록을 뒤쫓았다. 어째서 이런 걸 더 일찍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존이 원할 것 같은 관계라. 셜록은 그런 류에는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엮이고 싶어 안달하는 지저분한 습관이라면 질색하는 그의 까다로운 성격상, 그렇게나 개인적인데다 난잡하게 다른 인간과 엮이고 싶다는 의향따위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거다. 항상, 지독하게 비위생적인데다 - 그는 관심도 없는 -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그런건 불필요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빌어먹을!’이라 중얼거리면서 존이 갑자기 그를 끌고 나왔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가 궁금하긴 했다; 존이 정말로 그에게 키스했다면 어땠을까. 벌떡 일어서서 ‘바람 좀 쐬어야겠다’며 산책하러 가자고 하는 대신에 말이다.

주변 소음들이 바뀌고 있는 걸 보니, 이젠 공원에 도착한 게 분명하다. 차 소리는 적어지고, 사람들 소리, 수다떠는 소리가 늘어났다. 런던 사람들이나 여행자들이나 똑같이 드물게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러 나온 모양이다. 누군가 셜록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기에, 그는 존에게로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존을 만지는 건 다른 사람들을 만지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 존은 달랐다. 존을 만질 때면 신체적 접촉으로 전해지던 불쾌한 느낌이 없었다; 다른 누군가의 피부가 그에게 와닿을 때의 구역질이라도 날 것 같은 그 느낌 말이다. 그는 언제나 존을 만지고 있는데다, 존이 그를 만지는 것도 싫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늘 혐오스럽게 생각했던 활동들도, 존이라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건 아닐까? 정말이지, 그는 더이상 혼자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셜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위 세상을 할 수 있는 한 받아들였다. 존이 너무 조용한데, 그는 생각했다. 아까 일어난 일로 걱정하고 그 여파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셜록은 입을 열었다. “우리 그거…” 짜증스럽게도,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눈치챘는지, 존은 팔을 굽혀 셜록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 단어랑 관계된 걸 말해봐, 셜록.” 그는 셜록을 이끌어갔다. 그들이 건망성 실어증에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여전히 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셜록은 순순히 따라했다. 이 기법 이름은 돌려 말하기(Circumlocution)다; 심지어 저런 단어도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는데… “뜨겁고, 달콤해. 까만 색, 컵 안에 들어있고, -“

“커피?” 존이 넘겨짚었다.

“커피, 고마워. 이 근처에 가게가 있어. 냄새도 맡을 수 있는걸.”

존이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난 아무 냄새도 안나는데.”

“틀려.” 셜록이 단언한다. “평균적인 인간의 코는 1만가지의 다른 냄새를 구별해낼 수 있다구. 너도 수백가지를 맡을 수 있어; 그중에서 커피가 뭔지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것 뿐이지.”

그는 걸음을 멈추고, 빙 돌아 존과 마주섰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그는 지적했다. “넌 눈으로 보면 되니까.”





존은 그를 올려다보고는, 목이 메어오는 걸 느꼈다. 셜록의 슬픔어린 목소리에서, 필연적이면서도 가슴 터질 것 같은 아픔이 묻어있는 체념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는 한 손을 내밀다가 이내 떨구었다; 셜록은 그의 연민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는 물가 반대편에 있는 노점을 발견했지만, 저쪽은 그늘져 있는데다 날씨도 쌀쌀한 편이었다. 지금 있는 곳 근처에 벤치가 있었기에 셜록을 그 앞에 데려다 주고는, 커피를 사서 금방 돌아오겠노라 약속하며 햇살 쪽으로 앉혀두었다.

그는 다리로 걸어가며, 또 건너가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셜록은 햇빛 쪽으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존은 갑자기 그가 태닝하면 어떨까 궁금해졌지만,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생각이 점점 위험한 쪽으로 흘러가려 하기에, 지난 몇 주동안 열심히 연습해왔던 대로 재빨리 생각하던 뱡항을 바꿔버렸다.

셜록에 대한 감정을 생각하면 그의 건강 관리를 결코 자신이 맡아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 뿐이다. 셜록은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사적이었고, 병원에서 그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거였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게 밝혀졌다는 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스스로의 생각을 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었는데다, 지금은 처음의 충격도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셜록이 더 강해지고, 날카로워지고, 덜 무력해질수록, 존은 그를 환자로서 대하기가 어려워지기만 했다. 어찌되었든간에, 뭐든 금방 이야기했어야 할 거였다. 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알 수 없긴 했지만, 

그는 노점으로 가서 주문을 하고는, 커피가 나오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는 새 의사 문제를 고집해야 했었다. 이제 셜록이 벽을 무너뜨려버린 만큼, 그가 완전히 복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친구로 - 플랫메이트로, 동료로서 계속 남을 거라면; 그렇다면 존이 한걸음 물러나야 할 거다.

셜록이 관계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건 언제나, 더할 나위 없이 명확했었다. 그는 그런 쪽으로는 엮이지 않았고, 존도 그걸 잘 알았다. 존은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고,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셜록이 예의 그 잠자는 문제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게 기쁘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존이 소파에서 자는 것을 희한하게 반대하는데다, 이에 대해서라면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심지어 오늘 - 존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난 다음에도, 그는 여전히 침대를 같이 쓰길 바랐다. 정말이지, 일반적인 두살짜리 꼬마보다도 적절한 행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남자라니까, 커피값을 치르며 존은 생각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충분히 긴 하루였는데도, 나아질 기미라고는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존은 두 손에 커피를 한 잔씩 든 채로 돌아섰고, 시선은 자동으로 물 건너편의 셜록을 좇았다. 그는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은 채 그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가슴에 턱이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존은 그의 이마에 드리워진 고수머리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것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를 사방으로 훑어보다가, 존은 눈을 크게 뜨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갑작스레 감각을 잃어버린 손에서 커피가 툭 떨어졌고, 아주 잠시였지만 꼼짝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군사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이 돌아오자마자 그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총을 잡으려 헛손질하다가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에 전화기를 잡아들었다. 다리 쪽으로 난 길로 달려가며,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단축번호 2번을 누르고는 전화기를 귀에 댔다.

“리젠트 파크, 요크 브릿지로, 당장!”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놀라 넋을 잃고 쳐다보기만 하는 여행객들과 가족들을 비집고 달려나가면서도, 목표에서는 절대 시선을 떼지 않았다.

벤치 맞은편에 앉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셜록을 향해 역겨운 관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모리어티였다.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4/20): Flattered By Your Interest 
  • 역자 주석: 셜록이 조금씩, 조금씩 존이 다르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당연하잖아, 존인데!
      숟가락도 못 얹는 존이라서 뭐 딱히 잘한 것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특별하니까.  : ] 
  • 그림: DRDR님께서 선물해주신 그림!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섬세한 존+셜록을 만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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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ile I’m flattered by your interest…’ – 어딜 시크한 척이니, 셜로기… [본문으로]
    2. “I can't care for you medically, when I care for you…” - 담담하지만 절절한, care for you의 중의적 표현. 조금이나마 느낌을 살려보려 같은 단어를 썼다. [본문으로]
    3. ’Need some air’ [본문으로]
    4. “And you take my breath away.” - 존도, 나도, 모두 다. | 그냥 반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시각을 ‘잃은’ 셜록의 좌절감에 대응하는 말이라 생각했기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옮긴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