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벤치의 남자  | The Man On The Bench  



존이 커피를 사러 간 후, 셜록은 태양 쪽으로 고개를 들어 피부에 와닿는 햇살의 따뜻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감각이나 다름없었다. 여느때라면 주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저 관찰하는 데에만 더 흥미를 가졌을 테니까.

뒷굽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다가와서 그가 앉아 있는 벤치 맞은 편에 앉았다. 포장지가 열리는 바스락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갑자기 마른 땅콩 냄새가 그의 코끝으로 훅 풍겨오더니, 여자가 시끄럽게 아드득 아드득거리기 시작했다.

셜록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보폭과 앉았을 때 벤치에 전해지던 충격을 기반으로 얼굴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방향을 렌즈 너머로 쏘아보았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좀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그녀가 일어서는지 벤치가 삐걱거렸다. 길을 따라 멀어지는 그녀의 굽소리를 들으며, 그는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2분쯤 지났을까,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또다른 침입자가 그녀가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남자다. 평균 키와 체구, 끽끽소리로 듣건대 갓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이 사람에게서는 멘솔 담배 냄새가 강하게 나는걸, 셜록은 가볍게 공기를 들여마시고는 아래 숨겨진 싸구려 비누 냄새까지 맡아냈다. 이 공원에는 다른 벤치라곤 없나? 다들 꼭 그의 벤치에 와서 앉아야만 하는 건가?

존에게 이 문제를 글로 써보라고 해야겠군, 셜록은 다짐했다. 확실히 리젠트 파크에는 앉을 자리 추가가 시급하다. 그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가슴에 고개를 푹 파묻으며, 남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날씨 좋은 날에 벤치를 독차지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던가보다.

그때, 다리 쪽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그리 돌렸다. ‘어이!’, ‘조심해!’같은 외마디 외침소리들이 들려오는 걸 보면, 누군가 그들 사이로 밀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어쩌면 현장에서 걸린 소매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셜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들이 이쪽으로 오게 될지, 온다면 때맞춰서 발을 뻗어 넘어뜨릴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는, 존이 어디 있는지 의아해졌다;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범죄자가 도망가게 내버려둔다는 건 그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는 바로 앉으며, 내심 벤치의 침입자가 일어나고 있는 걸 알아차리면서도 다리 쪽으로 관심을 집중했다.

“셜록!” 존의 목소리다. 이제는 길을 따라 달려오는 발소리도 들려왔지만, 한 쌍 뿐인 걸 보면 존이 누군가를 뒤쫓고 있는 건 아닌 거다. 그냥 달리는 정도가 아니라 전력으로 뛰어오는 건데 - 왜 뛰어오고 있는 거지?

일어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가까이에서 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셜록, 앉아 있어!”

금새 존이 나타나, 그의 앞에서 급하게 멈춰서서는 어깨를 단단히 움켜쥐고 제자리에 멈춰세웠다. 존이 말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 게 분명했다 - 전화를 하는 거군.

“요크 브릿지 서쪽, 보트 타는 곳의 남쪽으로 갔습니다, 서둘러요!”

커피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다. 셜록은 손을 뻗어보았다 - 존의 바지는 무릎 바로 위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천은 아직 뜨거웠다.

“당신네 사람들은 대체 어디들 있는겁니까?” 그는 이렇게까지 화난 존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뇨, 난 그를 두고 가지 않을겁니다. 기다려봐요.”

존의 손이 그의 팔꿈치로 와닿았다. “일어나, 셜록!” 요청이 아니었다; 그 손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옆으로 붙잡고는, 벤치 끝으로 돌려세웠다. “뒤로,” 존은 그가 물 쪽에서 멀어지도록 밀고 돌려세우며 지시했다. 이제 존은 그를 앞쪽으로 밀쳐내고 있었다. 셜록이 아는 대로라면, 공원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심어져 있는 나무들 쪽이다.

“존, 무슨-”

“지금 당장, 셜록, 그냥 가!”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존이 평소처럼 이끌어주지 않는데다, 그저 뒤에서 밀어대고만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휘청거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존-”

“날 믿어, 셜록. 부탁이야. 계속 가. 거의 다 왔어.”

존이 날 막아주려는 거로군, 셜록은 깨달았다. 존은 지금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움직이고 있어서, 보통때처럼 옆에서 함께 가지 않는 거였다. 셜록은 그대로 멈춰섰다.

“무슨 일인지 말해.” 얼굴을 마주볼 수 있도록 휙 돌아서며 따져물었다. 다음 순간, 존이 앞으로 달려들다시피 부딪혀오는 바람에 그는 균형을 잃고 몇 걸음 물러섰다. 그의 등이 나무에 쿵, 부딪혔지만, 존이 그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 보호해주었다. 셜록은 그걸 깨닫자마자 그의 손가락에 실린 무게를 덜어주려 재빨리 앞으로 몸을 숙이긴 했지만, 분명 아팠을 거다.

존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쪽으로 기대서도록 그를 당겨 나무 주위로 돌려세웠다.

“그 남자가 널 건드렸어?”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셜록, 벤치에 있던 남자 말야, 그 남자가 너에게 손이라도 댔어? 너한테 다가갔어? 뭔가 한거야?”

존의 손이 그의 온 몸을 더듬었다. 선글라스를 벗기고는 그의 머리칼을 쓸고, 목 주변을 확인한 후 얼굴부터 가슴까지 훑어내렸다.

“셜록, 말해봐. 뭔가 느껴진 거 있어? 벌레에 물렸다던가, 스프레이나, 뭐 그런거.”

존의 당혹스러움에서,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전해져왔다.

“모리어티였군.” 깨닫고는 존의 손을 뿌리쳤다. “벤치의 그 남자가 모리어티였던 거야. 존, 네가 잡을 수도 있었잖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어, 셜록. 우리를 감시하던 팀이 실종되었다구 - 내가 쫓아갔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을거야.”

핸드폰이 울리자, 존은 돌아섰다. 왼손으로는 셜록을 나무에 고정시켜 붙든 채로. “네?”

쏘아붙이는 걸 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마이크로프트나 그의 수하 중 하나겠군, 셜록은 중얼거렸다. 그가 들은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존이 그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도 더 있는 거겠지.

존은 다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아들었습니까? 좋아요, 플랫은 아직 문제 없습니까? 확인해주시죠. 네, 지금 돌아갈 겁니다.” 그는 잠시 듣고만 있었다. “그들은 괜찮나요?” 잠시 조용하다가, 존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가벼워진 목소리다. “10분요.”

그는 핸드폰을 탁 닫았다. “내가 온 다음부터는 네가 이미 알아냈을 거고, 그 이상은 나도 몰라.” 그는 말했다. “비밀은 아니었어. 그저 예방책이었달까. 그리고 넌 최근 한달 동안 충분히 걱정도 많이 했었고.”

“그럼 스나이퍼는?” 셜록은 다그쳐 물었다.

존은 순간 멈칫했지만, 바로 대답했다. “스나이퍼는 없었어. 우린 괜찮아.”

셜록은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넌 있다고, 아니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잖아.” 그가 지적했다. “수영장에서의 일, 마이크로프트가 이야기해줬었어. 넌 또 스나이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야. 넌 탁월한 사수이기도 하니, 스나이퍼가 있다면 어디에 있을지도 계산해 냈겠지. 그리고는 내 쪽으로 향할 진로를 막아섰던 거야 - 그래서 모리어티를 뒤쫓아가지 않았던 거지. 함정 따위를 걱정한 게 아니라.”

존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셜록은 그가 움찔거리는 것마저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존이 물었다. “갈 준비 됐어?”

“존-” 셜록은 말하려 했지만, 곧바로 제지당했다.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네가 원한다면.” 존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가야 해 - 널 샤워시키고 싶거든, 만약을 위해서.”

마지막 말에, 셜록은 도발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려 보였다.[각주:1] 

“아, 제발!” 존이 소리쳤다. “너 이걸로 날 고문하려는 거지?” 

셜록은 히죽거리면서, 별다른 말 없이 그의 팔을 잡았다.





한 시간 후, 존은 거실로 돌아와 차를 홀짝이며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사라졌던 감시팀은 다행스럽게도 그저 의식만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모리어티는 지원이 도착할 때쯤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그들은 그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그가 입었던 긴 코트만을 찾아냈을 뿐이다; 남자는 사라져버렸다.

셜록은 모리어티가 자신에게 손도 대지 않고 벤치 끝에 앉아 있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존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샤워는 해야 한다고 우겼다. 존은, 모리어티가 그렇게까지 접근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다니. 어쨌든 오늘은 존이 그를 거의 잡을 수도 있었을 거다 - 그가 왜 그냥 달려든 걸까?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머금으며 생각에 잠긴 채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뒷쪽에서 소리가 들려와 존은 뒤를 돌아보았고, 풉- 내뿜으며 콜록거리고야 말았다. 차는 사방으로 튀었고, 그의 스웨터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셜록이 문가에 서 있었다. 수건 하나만 걸친 채로 말이다.

가는 허리 아랫쪽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작은 수건, 존은 주목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존이 자신의 감정들을 잘 접어두고 다시금 ‘의사 모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희망은 이제 제대로, 보기좋게 산산조각나 버린 셈이다.

“셜록!” 존은 팩 쏘아붙이며, 돌아서서 창문 쪽을 향하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놈의 다리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맙소사, 날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그의 시선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눈에 담으며, 앞에 서 있는 길고 호리호리한 몸을 샅샅이 훑었다.[각주:2] 물론 셜록이 반쯤 벗은 건 전에도 본 적이 있었고 심지어 병원에서는 씻는 걸 도와준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셜록이 그의 감정을 알고 있는데다 수건 하나만 걸친 채로 앞에 서 있는 거였다. 그것도 작은 수건을. 대체 이 남자가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걸까?

“네 생각엔 이게 웃겨?” 그는 따지듯 물었다.

셜록은 놀란 것 같았다. “아냐, 존.” 그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 존은 멍하니 따라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게 보상이라도 되는 건가? 있지도 않은 스나이퍼를 막아줘서 ‘고맙소’ 하고 공짜 쇼라도 해주려는 거야?”

셜록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 상한거군.”

불현듯 기운이 쭉 빠지는 걸 느끼며,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나무에 부딪혔던 손이 쑤시는데다, 다리는 커피에 데여 따끔거렸다. 그는 모리어티가 셜록에게 그렇게나 가까이 접근하는 걸 보면서도 무엇 하나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는 -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 중 하나를 겪었는데다, 위험이 지나가고 아드레날린도 사그라들어버린 지금은 몸에서 진이 다 빠져나가 욱신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머그를 내려놓고는, 무겁게 주저앉으며 고개를 수그려 두 손으로 눈가를 부볐다.

“이제 네가 샤워할 차례야.” 존이 생각했던 것보다 셜록의 목소리가 훨씬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들고는 움찔 놀랐다. 이 남자는 정말 고양이처럼 움직이는 건지, 어느새 존의 의자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가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자, 수건이 뇌쇄적으로 벌어졌다.

“너, 바지에 커피를 쏟았잖아.” 그가 킁킁거리며 앞으로 기대왔다. “스웨터에는 차로군. 손 좀 줘봐.”

존은 무의식적으로 그 말에 따랐다. 그의 머릿속 반쯤은 지금 셜록이 뭘 하려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반은 안도감같은 무언가에 휩싸인 채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셜록의 손가락은, 살갗이 벗겨진 곳이나 부어오른 마디가 어디인지를 느끼려는 듯 존의 다친 손마디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거 치료해야 하지 않아?” 그가 물었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다.

존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고는, “아냐, 괜찮을 거야. 부러진 데도 없고.” 말했다. “나중에 소독약 바를게.”

“다리는 어때? 데인 거야? 커피를 흘린거야, 아니면 엎은 거야?”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봐, 진짜야.” 그 순간에 대해서 더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존은 잘라 대답했다.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가서 샤워해, 찬물로. 그동안 옷 입고 있을게.” 그가 권했다. “그리고 다시 이리 와. 네 다리랑 손 처치해야지.”

말을 이으면서도, 손가락으로는 계속 존의 손마디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배달음식 주문하고 그 터무니 없는 토크쇼 중에 하나를 보자구. 그럼 네가 그런 엉터리에 자진해서 참여하려 드는 이상한 인간들의 예를 설명해줄 수도 있을 테니까.”

셜록은 존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어때, 괜찮겠어?”

존은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며, 하루의 스트레스 중 일부분도 함께 날려보냈다. “그거 좋겠는데.”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5/20): The Man On The Bench 
  • 역자 주석: 많은 이가 궁금해하던 단축번호 2번은 마형님. 누나인 해리따윈 아오안 파문… 은 농담이고.
      셜록을 위해서라면 자기 다리나 손도, 누나도 스스로의 안전도 신경쓰지 않는 일편단심 존이 멋지다.
      아참, 그 공짜 쇼 티켓은 어디 배부 안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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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셜록은 앙큼쟁이야…♪ [본문으로]
    2. 조니도 앙큼쟁이야…♪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