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긴장  | Tension  



셜록은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꿈 속에서도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혼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마이크로프트, 허드슨 부인, 레스트라드, 심지어 엄마까지(누가 그분을 내보내준거지?) 있었지만, 그는 혼자였다. 일하는 중이었다. 사건이 있었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대답은 해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화들짝 깨어나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 남아있는 감각들을 주위 상황에 집중해본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져 있는 테이크아웃 중국요리 냄새 - 거실이다. 손 아래 느껴지는 익숙한 질감 - 소파. 낮게 울려오는 자동차 소리들 - 밤 시간인가; 아니, 정정하자… 모퉁이를 돌아오는 우유 배달차(milk float)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 이른 아침이겠군. 귀를 기울이며, 건너 자리로 손을 뻗어 확인해본다… 존이 없다.

안시아가 저 파일을 주고 간 지도 벌써 3일 밤 하고도 꼬박 이틀이 지났다. 첫째 날 밤에는 존이 큰 소리로 보고서들을 읽어주고 모든 서류들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꼬박 새웠다. 그대로 다음 날까지도 거의 하루 종일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는 목소리가 쉴 때까지 읽어주다가, 말하는 데 거의 집중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소파에 불편하게 구겨져 밤새 잠들어버렸다. 그동안 셜록은 머릿속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보며 연결고리들을 찾아보고 개연성을 찾으려 애쓰다가, 가끔은 존을 깨워 사실인지 확인하거나 증언을 다시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둘째 날 - 그러니까 어제, 이른 아침부터 존은 모든 사진들을 살펴보며 사람들과 장면, 스케치와 그 모든 것들을 묘사해주느라 바빴다. 그런 다음에서야 마침내 자러 가겠다고 선언하고는, 파일과는 관계 없는 긴급 상황일 경우가 아니면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평소 스타일대로였다면 셜록은 자야 할 필요성을 무시하고 넘겼겠지만, 그의 몸이 배신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사실상 시각적으로 집중할 수 없으니, 집중한 상태로 깨어 있기도 어려웠던 거다. 어쩌면 아직 회복기라서 평소보다 더 많이 잘 필요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침대로 가야겠다는 강력한 충동을 확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평소같았으면 사건에 매달려 있을땐 소파에서의 쪽잠 정도로도 만족스러웠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물론, 존이 억지로 먹게 했던 음식 탓이기도 했다. 셜록의 48시간 단식 상태를 깨부수기 전까지 존은 사진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겠노라고 단호하게 거절해버렸으니까. 말다툼도 해보고, 삐져도 보고, 지독한 말을 퍼부어보기도 했지만 무엇 하나 소용 없었다; 존이 저렇게나 놀라우리만치 고집불통일 수 있다니. 그 파일을 볼 권한이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면, 셜록은 이렇게 항복할 일 없이 기꺼이 그들부터 불러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안시아밖에 없는데, 그건 그냥… 싫었다.

제대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대뜸 일어서기부터 하며, 존이 이제 윗층으로 돌아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셜록이었다. 그의 증상도 - 실명을 제외하고 - 나아지고 있는데다, 특히 저녁 때에는 말다툼하다 모욕적인 말들도 튀어나왔으니까… 우선은 가까우니까 내 방을 먼저 확인해보는 게 낫겠지, 셜록은 마음먹었다. 어쨌든 잠옷으로 갈아입어야 하기도 하니까.[각주:1] 

존은 거기 있었다. 방이 텅 비어 있을 때보다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는데다, 문가에 들어서자마자 존의 포근한 ‘집’ 내음을 구별해낼 수 있었다. 침대로 다가가자 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조심스레 가장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보았다.

존은 셜록 쪽을 등지고 왼쪽으로 누워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나머지 침대 절반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채로, 평소 셜록이 누워있을 위치에 손바닥을 얹어두고 있었다. 그는 깊게 잠들어, 셜록이 손으로 그의 자세를 모두 파악했을 때조차도 깨지 않았다. 하지만 셜록은 손을 멈추지 않고 그의 팔을, 어깨를 쓰다듬고는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각주:2] 

지난 의자에서의 오후 - 존의 다짐이 극적으로 산산조각나버린 그 순간 이후, 둘 사이의 관계는 육체적인 면에서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 그 파일에 덤벼들자마자, 셜록은 사건에 홀딱 빠져서는 존이 전해주는 모든 정보들을 흡수하며 머릿속에서 사실들을 관계지어 보았다. 마음의 눈으로 잘 맞춰내기만 하면 숨겨진 연결고리들이 드러날 거라 자신하며 복잡하게 상호 참조된 데이터베이스를 뒤집어 보고 돌려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집중력을 이 문제에 쏟아부으려 그토록 애써보았음에도, 두뇌 다른 부분에서는 항상 존과 함께한 시간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직도 비밀로 남아있는 그 키스, 마사지, 함께 잠에서 깨어나던 순간, 택시에서 그가 잡아주던 손(존이 자주 손을 잡아주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달랐던 걸까?), 의자에서의 그 시간… 존의 반응, 순수한 그 힘.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셜록은 존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 늘 입던 티셔츠를 입지 않았기를 무심결에 바라면서 -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이쪽 분야를 존과 함께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공언했었던 셜록이었지만, 그 정도까지 스스로의 자제력을 포기한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지니 말이다.

이 문제 때문에 사건에서 주의가 흐트러져버리는 스스로의 지적 능력이 분하기도 했다. 이제껏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건이 전부였다. 항상. 먹고 자는 등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 재미 없는데다 끊임도 없는 삶의 지루함 같은 건 사건을 맡기만 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특히 이번 같은 사건이면 더더욱 그랬다. 그의 모든 주목을 기울여야 할 - 환하게 반짝이는, 흥미로운 사건.

예전부터 존은 항상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번 역시 그랬음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은 그가 없다면 셜록은 무력할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가끔 존이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셜록은 숨가쁘게 헐떡이는 - 정말 다른 목소리를 듣곤 했다. 가끔 셜록이 그의 손을 잡을 때, 다른 무언가를 그러쥐던 걸 기억해내곤 했다. 가끔은 그저, 존에게 온 몸을 맡기고 무언가… 요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실제로도 정보들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로막고 있어서, 저 보고서의 모든 부분들을 반복해달라고 부탁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셜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 파일을 혼자 살펴볼 수도 없다는 좌절감과 더불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흐름이 존의 읽는 속도로 제한된다는 상황 때문에, 존이 먹을 걸 강요하려 들 때쯤에는 셜록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었다. 해서, 이어진 말다툼은 셜록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고, 어느 정도는 셜록이 울화를 터뜨릴 최적의 기회가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실상 그건 말다툼도 아니었다. 존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양보하지 않은 것 뿐, 셜록이 혼자 버럭거리며 날뛰다가 시간이 지나도 존이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점점 더 모질게 굴기 시작했던 거다. 이제 존의 감정이 공공연히 드러난 상태라 셜록이 그를 마음대로 하기 편해졌을 거라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제대로 오산이었던 셈이다.

셜록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형편없이 굴었다는 걸, 스스로의 좌절감 때문에 존에게 분풀이했다는 걸 -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만큼은 절대 그래선 안되는데. 부끄럽게도, 그는 오후 내내 쌀쌀맞게 삐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은 이겼다고 고소해하지도 않고, 별다른 언급도 없이 식사가 끝나자 다시금 사진들을 살펴봐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셜록의 요구사항들이 마침내 잦아들 때까지 - 그가 원하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그리고 나서야 자러 간 거였다. 셜록은 시험삼아 이불 안쪽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잠옷은 없다. 존은 티셔츠와 속옷만 남기고 옷을 벗고는 지쳐서 곯아떨어진 게 분명했다.

셜록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또다른 낯선 감각이자,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전에는 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째서 이 모든 감정들을 가지게 된 걸까? 머리 부상의 부작용인가? 존과 이어진 이 느낌, 이 유대감 때문에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다니.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냥 의존성일지도 모른다. 어느만큼이 실제일까? 시력이 돌아오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어느만큼이 사라지게 될까?

신체적인 면은 존과 함께 탐구하고 싶었고, 가끔씩은 그것만 하고 싶기조차 했다. 그리고 모든 정보들을 두뇌 속에 차곡차곡 담아둔 지금, 그들에겐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존이 택시에서 말했던 게 맞는지, 셜록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 앉아 계속 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어루만지고만 있다는 걸, 셜록은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각주:3] 일어서서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더 피곤했던 게 분명하다. 잠옷따위 신경쓰지 않은 채, 속옷만 남기고 훌훌 벗어버리고는 침대로 올라갔다. 존의 손을 들어, 품 안으로 파고들며 자신의 가슴에 가만히 얹었다. 그렇게 잠시 후, 셜록은 잠들었다.





존은 옆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에 잠에서 깨어나며,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아침이었다. 햇살이 묵직한 커튼 주위로 새어들어와,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셜록을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실루엣으로 그려냈다; 허리께에 얹혀진 존의 손 아래 닿는 살결은 따뜻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존은 몇 번 눈을 깜박여 졸음을 쫓았다. 셜록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분명히 떨고 있는거다… 우는 걸까? 그가 우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그저 원하는 결과가 나오자마자 재빨리 사라져버릴 거짓 눈물 정도였고, 현실에서 그가 그 정도로 무너져내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셜록이 스스로 그런 척 하는 만큼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라면 눈물처럼 인간적인 발산 수단을 선택하기보다는 벽에 총구멍을 낼 거였기 때문이다. 그럼, 아파하고 있는 걸까?

그의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은 없었다. 셜록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바로 누이려 당겨보았지만, 그는 한층 더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이젠 신음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존은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맞은편으로 옮겨갔다. 여느 때처럼 셜록은 침대 거의 한가운데 누워 있어 올라갈 자리가 넉넉했기에, 이젠 존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셜록은 울고 있진 않았지만, 괴로워하는 건 분명했다. 눈꺼풀이 떨리는 걸 보니 렘 수면 상태(REM sleep)다; 그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였다.

존은 좀더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셜록의 얼굴을 감싸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라고 말해주었다. 몇 번쯤 반복했을까, 셜록이 그 말을 들었는지 갑자기 눈을 뜨고는 존을 다급하게 붙든다.

“그냥 꿈이야, 넌 괜찮아. 괜찮다구.” 존은 달래듯 나직하게 말했다.

“존?” 이름을 부르는 셜록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존, 내가…” 말을 끊더니, 깨어났을 때의 웅크린 자세에서 두 다리를 펴고 몸을 돌려, 존을 밀어 바로 뉘이고는 온 몸으로 그를 덮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올리더니,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존의 이마를 엄지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문질러댔다.

“셜록, 무슨 일이야?” 존은 위에서 맴돌고 있는 고통에 찬 표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냥 꿈이라니까. 모든 게 멀쩡해. 너도 괜찮고.” 셜록이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치기 전에도 자주 있었던 일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갑자기 셜록이 온 몸을 기대오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바람에 존은 숨을 멈춰야만 했다. 셜록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그리고… 존은 무언가 축축한 걸 느꼈다. 또한번 눈물이 아닐까 의아해졌지만, 이내 목덜미에 와닿은 입의 느낌이란 걸 알아차렸다. 가능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의 존재감을 확인이라도 하듯, 셜록은 혀를 대어 그의 살갗을 맛보고 있는 거였다.

존은 팔을 들어 드러나 있는 너른 등을 위아래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너른데다 벗은 등이겠지, 내심 정정하며 한 손을 내려 이불 아래를 확인해 보았다… 허리끈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 와닿는 셜록의 한쪽 허벅지를 보면 분명히 입지 않은 상태고, 그렇다면 저 허리끈은 속옷 하나뿐인 게 뻔하다.

존은 셜록에게 화가 난 채로 자러 갔었다. 폭발해버린 그의 좌절감을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존 역시 상처받고 속상한 기분이었던 거다. 혼수상태 이후부터는 여러모로, 전 세계를 둘이서 상대하는 것만 같았는데… 의견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간의 유대감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셜록이 그 유대감에 저항하고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데다, 신체적인 제약이 성공에 방해가 될 때면 좌절하기 시작하는 것 같은 거다.

하지만 지금, 품에 안겨 떨고 있는 이 남자에게는 분명 그가 필요했기에, 아무리 화가 나고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존은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무릎을 굽혀 발로 침대를 딛고는, 마주본 상태로 서로를 돌아눕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셜록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나한테 이야기하고 싶어?”

셜록은 다시금 손을 들어 존의 이마를 문질렀다. “우리, 그 수영장에 있었어.” 거칠게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네가 설명해준 그대로였지. 그래서 그 장면을 내가 기억해낸 건지, 그저 상상한 건지 모르겠어.”

“알았어. 음, 그럼 내가 말해주지 않은 걸 설명해보면 어떨까.” 존이 제안했다. “칸막이에 걸려있던 커튼 색깔은 뭐였어? 그건 보고서에 없었던 것 같은데.” 

“응, 없었지.” 셜록은 대답했다. “푸른색과 붉은색, 하나씩 번갈아서.”

“맞아. 그럼, 이젠 모두 다 기억나는 거야? 모리어티는 어때? 그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 지금까지는 ‘IT부서의 짐’ 정도로만 생각했었잖아. 그리고 난, 그놈이 어땠는지 제대로 묘사해낼 만한 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거든. 얼마나… 불안정한 놈인지 말야.”

“난 모르겠어, 존.” 셜록이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이건 일부분만 진짜 기억인 것 같아. 적어도 배경 정도는. 그리고 맞아, 모리어티가 있었지. 잠깐 봤었어; 어두운 색 정장 - 웨스트우드? 하얀 셔츠, 은색 타이핀, 하지만…” 말을 멈추더니, 손을 내려 존의 몸을 감싸안으며 앞으로 기울여 이마를 맞대왔다.

“뭔데?” 존은 물었다. “괜찮아?” 모리어티가 했던 말들을 모두 알려주지 않고, 그때 바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이야기해주었었다. “보고서에 없던 걸 기억해낸 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맞아.” 셜록은 존의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꽉 움켜쥐며 대답했다. “우리 둘 다 총에 맞았어.”

존은 물러나 그를 바라보았지만,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우리 둘 다 총에 맞았다구?” 멍하니 따라하고는, “죽었어?” 덧붙였다. 하지만 셜록이 움찔거리며 존의 이마로 다시 손을 올리는 순간, 그러지 말걸, 생각했다. 이제 알아차린 거다.[각주:4] “내가 머리에 총을 맞았단 거지?” 그의 물음에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눈앞에서?” 한번 더 끄덕여 보인다. “그럼 넌?”

“가슴에.” 셜록이 대답했다. “가슴에 맞았어. 그리고 깨어난 거지.”

“그렇군.” 천천히 대답하는 존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셜록의 맨 가슴으로 향했다. 사실 전에는 만져보지 못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른팔이 서로의 몸 사이에 끼여 있어서 손바닥이 그 위에 얹혀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음, 그건 일부만 기억이고 나머지는 상상이야. 말하면서도, 그는 손 아래 느껴지는 온기에 신경쓰지 않으려 애써보았다. 대체 이 빌어먹을 남자는 잠옷을 왜 안 입는거지?[각주:5] 

존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건간에 이런 상황에 흥분해버리는 건 부적절한 거였다. 셜록은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위로와 이해지, 사그라들 줄 모르고 꼿꼿이 선 그것에 배를 쿡쿡 찔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각주:6] 

게다가 어제 셜록의 행동들과 모진 말들을 겪고 난 후라, 존은 더더욱 그가 여전히 자신의 ‘ON’ 버튼이라는 걸[각주:7] 알고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진 않았던 거다; 셜록이 바지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존이 뭘 가지고 싸우고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게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되면, 그땐 정말이지 제대로 무릎 꿇는 꼴이 될 거다. 그것도 좋은 일도 아닌 걸로 말이다.[각주:8] 

셜록은 침대에서 조금 움직여 오른손을 존의 목덜미에 얹고는,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따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게 키스하고 싶어, 존.” 

순간 존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셜록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 싶어, 하지만 그러진 않을거야. 네가 옳았으니까… 난 확신이 안 서.” 마른 침을 삼키며,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움직임을 셜록이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네겐 솔직하고 싶어.” 셜록은 말을 이었다. “넌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적어도 네게만큼은 그래야지.” 잠시 말을 멈추는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해, 어제 일. 내가 했던 말들 말야.” 정말 후회하는 표정이잖아, 존은 깨달았다. 익숙한 표정도 아니었을 뿐더러 - 울상이 되다 만 것 같은데다, 뭘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정말로 날 조정하려 든건 아니었으니. 그건 부당했지.” 셜록은 시인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난 그저 좌절하고 화났던 것 뿐이었어. 그 분풀이를 네게 해버린거지. 네가 날 떠나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그는 얼굴을 살풋 찡그리더니, “나 변한 게 분명해.” 단언하듯 한 마디 했다. “예전의 나같았으면 뭐든간에 그런 걸 이용했을 거야 - 몰리가 나한테 홀딱 반했다는 사실을, 안치소에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데 자주 이용했었지. 그리고 나선 그녀를 무시해버리고 말야.” 다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사실, 나 아직도 그럴 것 같다.” 덧붙인다. “흥미로운데.”

그는 고개를 저었고, 존은 눈앞에서 셜록이 스스로를 추리해내려 애쓰는 장면을 넋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넌 달라.” 그에게 말을 해오는 셜록은, “널 아프게 하면, 내가 아파.” 이걸 깨닫고는 스스로도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미안해.” 한번 더 강조해서 말해준다. “다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게. 나, 네게 마음이 있으니까.” 존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믿어도 될지는 확신이 안 서.”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왔고, 존의 턱선을 따라 입술을 스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정말,” 이어지는 키스. 사이사이에 그의 말들이 들려왔다. “정말, 네게 제대로 키스하고 싶은데도,” 그리고는 계속 이어서 키스할 수 있도록 존의 고개를 돌린다. “네 부탁을 존중할 거야. 기다릴게, 내가 확신이 설 때까지.”

존은 거의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셜록이 부탁하다시피 물어본 질문도,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모두들 알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두뇌까지 다다르는 피가 부족한 건지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그는 간신히 한마디 했다. 그 대답이 본질적인 부분은 덮어두면서도, 셜록을 대하는 기본 자세와도 거의 비슷했을 테니까.

“일어나고 싶어?” 셜록의 물음에, 간신히 한데 모아보려 했던 존의 몇가닥 지력마저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그저 난 생각하고 싶은 것 뿐인데, 혹시 네가 조금 더 잘 수 있을 것 같으면 - 난 여기서 이렇게 생각하는 게 썩 마음에 드는데, 너랑 말야.”

존은 므흣한 의미들만 한가득 떠오르려 드는 와중에도 정신을 붙들고 가다듬으려 애쓰며, 떨리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니까, 껴안고 있고 싶다는 거지?”

“그래도 될까?” 셜록이 되묻더니, “지금은 여기, 모든 자료들이 들어 있거든.”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네 덕분이지.” 덧붙이고는 존의 머리 옆에 다시금 입맞춘다. “잠깐 스며들게 둬야 해서.”

존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되새겨보았다. 몇 시간이라도 거의 다 벗다시피한 셜록의 품에 안겨 있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난 며칠간 접촉이 거의 없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의 흥분한 그것이 사그라들 리 없다는 것도 꽤나 확실했다. 일단은 어색할 뿐더러, 궁극적으로는 끔찍하게 불편해질 텐데 말이다.

“그거 좋겠는데.” 그는 대답했다. “씻고 오게 잠깐만 놔 줘, 샤워 빨리 끝내고 10분 안에 올게.”

셜록은 의심스러운 눈치로 지적했다. “넌 보통 15분쯤 걸리던데.”

존은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 이번만큼은 셜록의 눈이 그의 시선까지 좇을 수 없음에 감사했다. “10분이면 될 것 같아.” 그는 말했다. “어쩌면 그보다 덜 걸릴지도.”





레스트라드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존은 푹 잠들어버렸다 깨어난 자신에게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깨어났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의 다 벗다시피한 상태에서 꼭 껴안고 있는 3시간을 잠으로 날려보냈다는 게 열받는 거였다.[각주:9] 지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축적된 피로감이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의 발목을 덜컥 잡아버린 셈이다.

하지만 셜록은 전화를 받고 기뻤는지, 존에게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서 찻물을 올리라고 채근하는 게 아닌가. “기분 전환이 우리에겐 도움이 될 거야, 존.” 그래놓고는 우긴다. “너도 잠깐 플랫 밖에 나갈 필요가 있잖아.”

존은 쿵쿵 부엌으로 나가서는, 혼잣말로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차와 토스트 몇 조각을 준비하다 끝내는 셜록이 일어나서 옷을 입는 소리까지 들어버렸다. 곧 부엌에 나타난 셜록은, 언제나처럼 티끌 하나 없이 말쑥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거지? 분하지만 존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을 볼 수 없는데도, 셜록은 존이 제일 잘 차려입었을 때보다도 더 단정하고 말쑥했다. 목 언저리를 열어젖힌 셔츠, 다시금 보란 듯 드러난 저 쇄골, 저 긴 목덜미; 이 남자, 하다못해 타이 하나도 없는 건가? 나가기 전에 한번 더 샤워할 시간이 있을지 의아해지는 존이었다.

“됐어, 존?” 셜록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로웠지만, 얼굴은 예의바르게 묻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존이 강요한 것도 아닌데 불평 한 마디 없이 알아서 토스트를 받아먹는다.

레스트라드는 삭막한 사무실 - 범죄 현장에서 그들을 만난 게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 보모 건에 대해서는 좀더 일찍 연락했었으면 좋았을걸.” 그는 둘을 샅샅이 훑어보며 말했다. “그랬으면 꽤나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내가 그땐 몰랐거든. 네가 여전히…”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우린 미처 생각하지…” 

“생각해본 적이나 있구요?” 셜록이 팩 쏘아붙이더니 급하게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존은 앞으로 끌려가며 사과하듯 웃어보였다.

“미안해요.” 그는 어깨 너머로 말했다. “침대 구석에서 불편하게 자서 컨디션이 별로인가봐요.”[각주:10] 

“난 가운데서 잤거든, 평소대로 말야.”[각주:11] 셜록이 한참 바쁜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면서도 목소리를 전혀 낮추지 않은 채 툭 내뱉는다. “구석에서 잔 건 너잖아.”[각주:12] 

그들 주위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다들 하나같이 놀라움에 눈썹들을 치켜올리며 ‘저 인간이 정말 그런 말을 했단 말야?’ 눈빛을 교환해대느라 바빴다. 존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드러내놓고 연애할 수 있다면 존이야 좋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의해본 적도 없는데다 셜록이 그 파문을 생각이나 해봤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시신은, 존?” 셜록은 자신이 방금 일으킨 스캔들 사태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채근할 뿐이다. 레스트라드가 앞으로 나서더니, 존에게 당황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그날 일찍 발견된 신원 미상의 시신 문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역할이 끝나고 - 묘사 업무가 완료된 후, 존은 한발짝 물러서서 레스트라드와 샐리에게 이야기하는 셜록을 바라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모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당신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앤더슨이다. 방금 현장에 도착해서는, 셜록이 다시 한번 자신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는 데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존은 긴장했다. 셜록이 한 말에 대해서 누구 하나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았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전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똥개에서 안내견으로[각주:13] 말야. 맞나?” 재수없는 앤더슨 자식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 방금 전 소문은 듣지 못한 채 그냥 평소대로 불쾌하게 굴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그때 셜록이 고개를 돌렸다. 찾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존!”

앤더슨은 킬킬거리며 “들었지, 저 인간 말하는 게 꼭 따라와! 하고 명령하는 식이잖아.” 말했다. “’개’라는 말이 딱인 것 같네.”

“꺼지라구, 앤더슨.” 존은 대답을 툭 내뱉으며 셜록을 잡아주려 앞으로 움직였다. 다가서는 셜록의 눈이 가늘어지는 걸 보니, 관심이 뒤쪽으로 가 있는 게 분명하다. 

“입 다물지, 앤더슨. 멍청하게 들리잖아.” 큰 소리로 말하며, 셜록은 존에게로 다가서며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건 그렇고, 도노반 경사를 보아하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역겨운 데오도런트로 바꿨다는 데 고마워해야 할 것 같더군.” 그러더니 앤더슨 바로 앞에 멈춰서서 비난하듯 숨을 들이마신다.

“아, 내가 실수했군.” 셜록은 고개를 저어보이며 말하더니, “샐리의 남자 취향이 발전했다는 데 축하 인사라도 해줘야겠는걸; 하지만 정말이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샐리에게로 돌아섰다. “앞으로도 심야 사건 미팅을 그렇게나 많이 처리할 거라면, 본인 세면도구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걸 고려해보라구.”

거기부터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기에, 셜록이 자신의 추리를 주르륵 풀어놓자마자 데리고 가버릴 수 있다는 게 존은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은 불편한 기운이 감돌았고, 셜록은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도 내밀지 않았다.

저건 셜록의 ‘생각하는 표정’이 아니로군, 존은 생각했다. 오히려 정말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 가까웠다; 아주 살짝 찌르기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폭발할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 채 단단히 굳어있는 거였다. 

어제의 그 말다툼 이후, 존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 플랫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거실 문을 닫았다. 안으로 몇 발짝 내디뎠을 때, 셜록이 돌아서서 그를 마주보았다.

“저기,” 그가 말했다. “네 현재 상황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는 건 알아. 어렵다는 것도 알고.” 그 말에 셜록의 표정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지만,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돼.” 존은 말을 이어갔다. “어제 넌 충분히 모질게 굴었잖아. 그래, 네가 사과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왜 그런지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잖아. 그러더니 앤더슨에게는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뭐라 하고 - 그건 괜찮아. 그닥 상관없기도 하고. 하지만 가엾은 샐리에겐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그는 이 친구를 찬찬히 뜯어보며, 성마름에 더해 점점 더 짜증까지 늘어나게 만든 실마리라도 있는지 찾아보았다. “문제가 뭔데?”

셜록의 텅 빈 무표정 너머로 좌절감이 엿보였다. 존은 긴장으로 이를 악문 턱,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그의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확실한 건 그러한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거다. 그가 갑자기 존의 코앞까지 한발짝 다가서더니, “너라구!” 소리치고는 휭하니 돌아서서 반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존은 배를 한 방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에 주춤 물러섰다. 이 끔찍한 감각에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셜록이 다시금 그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뻗어서는 어깨를 부여잡더니, 벽으로 그를 밀쳤다.

“네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 잔뜩 긴장한 목소리다. “전념할 수가 없어. 집중할 수가 없다구. 막았는데도 네가 뚫고 들어와. 계속 기억하게 되는걸…” 팔을 홱 떨치더니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너 때문에 미치겠어!” 그리고는 다시금 돌아서버린다.

존은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정말 나아졌다. 사실은, 꽤나 오래 전에 그랬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뭘 원하는데, 셜록?” 앞에 서 있는 뻣뻣하게 굳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셜록의 호기심이 욕망으로 바뀌기라도 한 거라면, 존으로서는 그걸 뿌리칠 리가 없다.

셜록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인했다. “모르겠어, 존.” 한번 발끈하고 났더니 조금 차분해진 것 같았다. “지금 내 두뇌가 무슨 소용이지? 뭔가 원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뭔지도 모르잖아.” 그는 돌아서서 소파 팔걸이에 털썩 걸터앉았다.

“음, 내 진단이 필요하다면.” 존이 입을 열자, 셜록이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이 있길 바라는 게 분명했다. “넌 지금 전형적인 사정 대기 상태라 괴로운 거라고 봐.”

셜록의 멍한 표정을 바라보며,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욕구 불만이라구.” 풀어서 설명해 주며, 몇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마사지 받으면서 흥분했었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흐릿해쳐버린 지난 며칠을 되짚어 생각해보았다. “4일 전이네.” 계산해내고는, “그 다음에 샤워했었잖아. 그럼 자위 정도는 했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셜록의 입이 떡 벌어지더니, 뺨에 희미한 홍조가 감돌았다. “난 안 그랬… 그러니까… 그러긴 했지만… 하지만 난 거의…” 존은 홍조가 점점 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매혹적이었다. “안했어.” 결국 셜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존은 눈썹이 머리선까지 닿을만큼 크게 놀랐지만,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그렇군. 알았어. 좋아.” 마치 저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상한 것’ 목록 10위 안에 들고도 남겠다는 생각따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때 택시 타고 오면서 꽤나 강렬했을 텐데. 당연히 그 다음에도 - 그날 저녁때 나 손으로 해줬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때 네 반응에는 신경쓰지 못했었어. 하지만, 네 위에 기대누웠었고, 그때 너도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흥분했었다고 확신하는데; 맞아?”

셜록은 이 대화만 아니라면 기꺼이 다른 무엇이라도 하려 들 기색이었지만, 이내 어깨를 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 그때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 거지? 네가 그…”

“안했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곧바로 가로막는다.

“음, 바로 그거네.” 존은 어쩐지 당연한 걸 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셜록은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주로 당황스러운 쪽이긴 했지만, 어쨌든 멍하기도 했다.

존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다 자란 성인 남자가 이렇게 무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태양계 건을 기억해내고는 눈을 데굴, 굴리고 말았다.

“넌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웠으면서도, 풀어주진 않은 거지.” 설명해주고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우린 지난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 오늘 아침에 껴안고 잔 거 빼면; 난 지금쯤이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셜록은 흥, 코웃음을 쳤다. “뭐가 되었든간에, 점점 심해진다구. 넌 오늘 아침 내내 잤잖아; 난 점점 더 너 말고는 다른 모든 것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만 하는걸. 이젠 내가 뭐든 하려면, 네 냄새라도 맡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라…” 그는 허공에 팔을 휘휘 저어대며 말을 멈추었지만, 그 말만으로도 존의 모든 관심이 셜록의 그곳으로 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앉아 있어서 상태를 구별해내긴 불가능했다.

존이 팔 닿을 거리까지 다가서자,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부여잡고 끌어당기더니, 셜록은 존의 가슴에 이마를 기대왔다. “뭐든 해줘, 존.” 애원과 명령의 중간쯤 되는 말투였다.

Artwork by 하이지달

 
존은 두 손으로 셜록의 얼굴을 감싸 들어올리고는 서로의 몸이 꼭 붙을 만큼 더 가까이 다가서며, 긴 팔이 그의 허리를 휘감아 꼭 끌어안는 걸 느꼈다. 맙소사, 서로의 몸이 맞닿는 순간 그는 생각했다. 셜록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던 거다.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나올 걸 알았지만, 어쨌든 존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최소한 네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건 명백한거군.” 그는 잠시 숨을 돌리며, 셜록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몸을 뒤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허리께가 서로 눌리는 바람에 둘 모두 신음을 흘려내고 말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뿐인 것 같네. 네가 알아서 할 건지.” 제발, 안돼! 존은 가능한 한 시끄럽게 생각하려 애썼다. “아님 손으로 해주는 게 좋을지?” 이거, 셜록처럼 이쪽 방면에 낯선 사람들도 알아들을 만큼 노골적일까? 분명히 해두는 게 좋겠지, 존은 다짐하며 “아니면, 그…” 덧붙였다. “입으로?”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12/20): Tension 
  • 역자 주석: 비유가 많아 옮기기 어려운 편. 착실히(많이?) 주석도 달긴 했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덧글 달아주시길.
      그건 그렇고, 이 시커먼(?) 존을 어쩌면 좋아;; 이런 앙큼쟁이같으니라구! 몰라 몰라 꺄악 XD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 ] 
  • 그림: 하이지달님께서 애타는 셜록과 존을 그려주셨습니다. 감동이에요! (다른 각도에서 본 장면은 소개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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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화나지. 화도 안내면 내가 화낼거임. -_- [본문으로]
    10. “Think he got up on the wrong side of the bed this morning.” - 관용구. 잘못 자고 일어나서 아침부터 왠지 기분이 영 아닌 느낌? 표현을 살짝 바꾸어 옮긴 이유는 아래 주석에 이어서. [본문으로]
    11. “I was in the middle, as usual.” - 관용적 표현으로 한 이야기를 진담으로 받아치는 셜로기;; [본문으로]
    12. “It was you who was on the wrong side.” - 주10의 관용구 그대로를 진담으로 받아치면서 존이 ‘(같은 침대인데) (평소와는) 다른 쪽에서 잤다’는 의미심장한 뉘앙스까지 풍겨주고 만 것. 확인사살까지 해주는 무심한 셜로기;;; 해서, ‘같은 침대’라는 느낌을 살리면서 ‘일어났을 때 별로인’ 상태를 표현하려 살짝 바꿔 쓴 것. [본문으로]
    13. ‘From dogsbody to guide-dog’ - dogsbody는 잡무나 도맡아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인데, dog을 살려서 쓴 거라 그쪽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