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최후의 결전  | Showdown  



셜록은 뒤에서 헉헉거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10분쯤 지났을까, 길이 넓어져 빈터가 나왔을 때쯤 젊은 남자가 불러세운다. “기다려요!” 남자는 다시금 심하게 헐떡이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셜록은 그대로 멈춰 돌아서서는, 남자가 반팔 티셔츠 위에 덧입고 있던 얇은 풀오버를 벗고 헉헉거리며 다시 앞으로 몸을 숙이는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남자의 꽤나 긴 금발머리가 눈가에서 찰랑거렸다.

“연기는 그만두시지.” 셜록이 입을 열었다. “총도 필요 없을걸.”

젊은 남자는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몸을 폈다. 숨소리가 가라앉고 살짝 맹해보이던 표정마저 얼굴에서 사라지자, 열 살은 더 들어보이면서 동시에 훨씬 흥미로워보였다.

“아, 꽤 쓸만한데.” 남자가 말했다. 진솔함 따위는 사라지고, 무덤덤하고 침착해진 목소리였다. “그분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

셜록은 경멸하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여기가 예상했던 지점인가, 아니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건가?”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보스는 시간에 매우 깐깐하시지.” 말했다. “조금 천천히 걷든지, 아니면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면 돼.”

셜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따라온 길은 잘 다듬어져있지도 않았고, 들판을 가로질러 구불구불하게,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장소처럼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나 있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머리 위의 새소리와 나뭇가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뿐, 자동차나 기타등등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방해할 사람도 없다는 뜻이겠다.

셜록은, 몇 발짝 떨어져 가슴께로 팔짱을 낀 채 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는 존보다 키가 컸다; 뭐,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긴 하지만.[각주:1] 썩 탄탄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이두박근에 교도소에서 새겼음직한 문신 끝부분이 드러나 보였고, 왼팔에는 칼날 흉터들이 있었다. 종아리에 매어두었을 게 분명한 총이 없다 하더라도 몸싸움에 능할 것은 확실했다.

“단순한 하수인은 아니군.” 셜록은 추리해낸 바를 소리내어 말했다. “직업 범죄자인가. 복역도 했었지만, 형기를 채우진 않았어. 그 총을 잘 다루긴 하지만 칼도 쓰는군. 가족은 없어. 항상 졸개 노릇을 한 건 아니고, 하지만…”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 기울였다.

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난 그분의 의사 선생인 셈이지.”[각주:2] 한마디 하더니, “가자구.” 곧바로 몸을 숙여 총을 꺼내더니 길 쪽으로 흔들어보인다.

셜록은 눈을 데굴, 굴리며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리고는 돌아서서 원래대로의 빠른 발걸음으로, 덤불들 사이를 부스럭거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더 지나자 나무들이 성글어지더니, 갑자기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셜록이 들어선 부지에는 커다란 - 존이라면 맨션이라고 했을 - 집 한 채가 있었다.

등에 총이 와닿았을 때에서야 셜록은 자신이 멈춰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움직여, 으리으리한 입구 계단에 발을 디뎠다. 멈춰서라는 기색은 없었기에, 셜록은 문을 활짝 열고는 넓고 천장 높은 입구로 들어섰다. 공간 양쪽으로는 이층 계단이 둥글게 둘러싸고 올라가 윗층 발코니로 향해 있었다. 

“멈춰.” 남자가 지시했다. 또각거리는 발굽 소리, 옆에서 여자가 걸어오는 모양이다. “확인해봐, 헬렌.”

셜록은 다가서는 여자를 관찰했다. 170cm, 68kg정도에 잘 빗어넘겨 올린 검은 머리, 탄탄한 몸에 힘도 세겠군. 확실히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다.

“또 뵙네요, 홈즈씨.” 여자는 나직하게 한마디 하고는 그의 온 몸을 샅샅이 훑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주머니를 확인하고 무기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그러더니 전자 스캔장치를 꺼내어 한번 더 훑는다. 존에게 그 ‘배트 시그널’을 가지고 있게 하길 잘했어, 셜록은 생각했다. 그가 사용하려 했을 때쯤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 땅콩은 줄이는 게 좋겠군.” 그는 충고해주었다. 여자가 물러서자, 클리니크 해피의 독특한 향기도 멀어져갔다. 리젠트 파크에서 그의 벤치에 앉았던 바로 그 여자였던 거다.

여자는 씩, 웃더니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천생연분이군요. 그렇지 않아요, 셉(Seb)?” 서류가방을 든 오른손으로 손짓해보이며 말했다. “이상 없어요. 보스는 사무실에 계십니다.”

다시금 총으로 등을 쿡 찔러왔고, 셜록은 계단으로 향했다. 위로 올라가자 발코니가 저쪽 끝으로 이어진 계단을 통해 집을 가로질러 난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양쪽 옆에는 닫힌 문이 있었고, 왼쪽 아래는 반쯤 막혀 있었다. 여기가 종착점인 거다.

그들이 들어섰을 때 모리어티는 문 오른쪽에, 팔짱을 낀 채로 책상에 기대서 있었다. 최신 유행 스타일의 정장을 차려입은 채로. 또 웨스트우드겠군. 셜록은 그의 앞에 있던 곧은 수직 등판 의자에 앉혀졌다. 셉이라 불린 남자는 셜록의 팔을 등 뒤로 해서 가는 밧줄 같은 느낌의 줄로 손목을 한데 묶었다. 셜록은 바로 묶인 걸 시험해보았지만,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는 셉이라는 남자가 모리어티에게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존을 마지막으로 포옹한 부분을 언급했을 때 눈매가 가늘어지는 걸 눈치챘다. 셜록은 그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그 말이 실제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각주:3]

마침내 셉이라는 남자가 가로질러와서는 문 반대편 벽에 기대어 섰고, 모리어티가 셜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이야기에 함께 해주다니, 친절하셔라.” 공손하게 환영하는 말투였다.

셜록은 빤히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5분 줄게, 할 말 있으면 하시지.”

모리어티는 씨익 웃었지만, 수영장에서는 없던 서슬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의기양양하다기보다, 화가 난 것 같달까. 그는 천천히 셜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날 봐도 반갑지 않은 모양이지?” 그가 말했다. “아니면, 네 주머니에 브라우닝이 없기 때문일까?” 셜록의 오른쪽으로 빙그르 돌아 시야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네 애완동물에게 주고 왔군, 안그래?” 이제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어깨 위에 올라오는 두 손과, 귓가에서 울리는 쇳소리. “그에겐 도움이 안 될 텐데.”

모리어티는 물러나면서도 빙글 돌아 다시금 책상 앞에 섰다. “함정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여길 찾아오다니, 용감한걸.” 그는 말하며, “네 작은 친구는 안전을 위해 되돌려보내놓고 말야. 구역질이라도 날 만큼 고결하게 굴어보시겠다 이건가.” 셜록을 주시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질 뻔 했다구.” 덧붙이며 씩 웃는 모습에,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우리가… 끄집어내서 태워버릴 수 있을 테지만 말야.”

셜록은 불안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리어티는 위험하리만치 불안정해 보였고, 덕분에 예상보다도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린 아주 잘 맞는다고 했었잖아.” 이제는 저 불안해보이는 미소를 띤 채로 말을 이어갔다.

“아니, 네가 한 건 아니지.” 셜록은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 “네가 샘텍스를 칭칭 감아뒀던 무고한 사람이 말해준 거니까.”

“신경쓰는 척 하면 곤란해!” 모리어티가 다시 앞으로 다가오더니, 몸을 숙여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너도 그런 인간들이 중요하다고는 믿지도 않잖아, 나처럼.”

“존은 신경쓰거든.” 셜록은 대답했다. 어쩌면 어리석은 짓이었을지도. “존에게는 사람들이 중요해. 그리고 내겐, 그가 중요하고.”

모리어티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갑자기 팔을 들어 있는 힘껏 셜록의 따귀를 때린다. “존이라구!” 으득, 그 이름을 내뱉으면서. 

“네 그 소중한 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를 알려주지.” 그는 휙 돌아서서, 다시금 책상으로 가서 기대섰다.

“착한 남동생마냥 누나 전화를 받는답시고 호텔로 돌아갔겠지.” 모리어티는 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실상 지금쯤이면 거의 도착했겠는걸… 거기까지 갈 수나 있다면 말이지.”

표정을 없애기는 쉽지 않았지만, 셜록은 최선을 다했다. “존은 보통 목적지까지 잘 가거든.” 

그 말에, 모리어티는 씩 웃었다; 느릿한, 하지만 위험한 미소. “그래서 네 명을 마중 보내뒀어.” 그는 대답하며, “자알 무장시켜서, 불시에 말이지. 존 정도면 그들을 고생시킬 것 같진 않아.” 셜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에 띄는 반응이 없는지 관찰하는 거다.

“뭐, 네가 마지막 순간에 그를 혼자 돌려보내준 덕분에 낚기 수월했다구.” 저 말에, 셜록은 움찔거리는 걸 감출 수 없었다.

“걱정하진 않아도 돼,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모리어티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가짜 위로를 건네온다. “녀석들이 데려와주기로 했거든. 우리가 있는 여기로… 결국은 말야.”

셜록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모리어티는 존에게 화라도 난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존이 자신을 대신해서 관찰해준 것 때문이라면 모를까, 심지어 그건 더 이상 문제될 거리도 아니지 않은가.

“수영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것 같진 않던데.” 추리해보려 애쓰며, 그는 캐물어보기로 했다.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모리어티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 곧바로 눈에 띄게 자제해냈다. “명백하게도, 사랑스러운 조니보이는 널 숭배했지, 그거야 당연해.”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재에겐 관객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나, 셉?”

셉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셜록은 그 모습을 보며, 아까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는 모리어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남자, 자기가 네 의사 선생이라던걸.”

셉이 벽에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서자, 모리어티는 미소를 지으며 뒤로 기대섰다. “네놈의 의사 선생이 네게 해줘야 할 역할을, 난 잘 하고 있거든.” 남자는 말했다. “전엔 그랬겠지, 주제를 잊고 손조차 대선 안될 것을 넘보기 전까지 말야.” 한마디 한마디가 아프게 와서 박힌다.

남자는 두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서더니, 셜록을 노려보았다. “이 사람이,” 모리어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천재가… 네놈을 위해 노력했다구.” 하지만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퍼즐들과, 그 수많은 돈을 늘어놔 주셨잖아. 단지 네 관심을 끌고, 널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네놈도 좋아했지. 부인할 수는 없을걸. 우리도 다 알지. 넌, 그 모든 걸 즐겼어.”

그는 몸을 숙여 셜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남자의 눈빛에서, 진정한 수하로서의 열의가 느껴졌다. “네게 뭐든 다 해주셨다구… 너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단 한 사람인데… 네가 등을 돌렸지. 그 잘나신 네 의사 선생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가 저주였다. 남자는 셜록이 앉아 있는 의자 다리를 걷어차 밀어내며 말했다. “저 분은, 네게 과분해.”

“그정도면 됐어, 셉.” 모리어티가 한마디 하더니, 셜록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감동적일 만큼 충직하지 않나.” 

셜록은 이들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에 집어 말해보기로 했다. “네가 이야기하려던 동기가 뭐든간에, 날 죽이려는 거랑은 관계가 없어 보이는걸.”

모리어티는 흥, 코웃음치더니 “따분하게 굴지 말자구.” 말했다. “그렇게 뻔한 짓은 안할 거라 그랬잖아.” 그는 몸을 올려 책상에 걸터앉아서는 앞뒤로 다리를 흔들어대며, “어쩌면 어느 날엔가,” 덧붙였다. “우리 둘 다 그렇게 되긴 할거야. 하지만 우리 둘 다 이렇게 즐거울 때는 안돼.” 그가 다시 미소지었지만, 제정신인 표정은 아니었다. “놀아볼 게임이 있는 동안에는 안되지.”

“아니, 아냐.” 그는 말을 이었다. “난 네게 제안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어. 나와 함께 하자고, 적어도 한동안만이라도… 심지어 널 위한 합당한 이유까지도 준비해뒀었다구 - 네 애완동물을 놓아주겠다고, 네가 기꺼이 와준다면야. 네가 필요했다면 쓸 수 있을 변명거리로 말이지.”

그는 다리를 흔드는 걸 갑자기 멈추었다. “그랬더니 넌, 가버린데다 거길 완전히 날려버리기까지 했어!” 매섭게 쏘아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어.” 불평하듯 말했고, “난, 우리가 같은 눈높이를 가졌다고도 생각했지… 우리가 만났던 것도, 네가 먼저 제안했었으니까.” 목소리에서는 분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만큼이나 너도, 나한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구.” 그는 질문이라도 하듯 두 손을 들어보였다. “대체 넌 무슨 일이 생기길 기대했던 건데?”

“게다가 우리 목숨을 모조리 위협하면서까지 말야.” 셜록이 대답하지 않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대단하신 자기 희생이로군 - 그닥 소시오패스답진 않은 행동인걸.”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셜록을 응시했다. “왜인지를 알아내는 데 조금 걸리긴 했지.”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난 알았다구.”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넌 그놈을 위해서 했던거지. 그놈 때문이었어. 그놈이라면 그랬을 테고, 넌 그놈을 또 실망시키기 싫었던 거야.” 말투에서는 경멸이 뚝뚝 흘러넘쳤다.

“우린 이 세상을 놀라게 할 수도 있었어, 너와 나라면.” 모리어티는 책상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서는 다시 앞으로 다가섰다. “현 세대에서의 가장 위대한 둘이니까. 우린… 눈부시게 빛날 수도 있었다구.”

한 발짝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셜록의 목을 감싸쥐더니 조르며 뒤로 젖히기 시작했다. “넌, 놈이 널 약하게 만들도록 방치했어.” 씩씩거리는 그의 숨결이, 셜록의 얼굴 바로 앞까지 와닿았다. “놈이 널 인간으로 만들었어, 신경쓰기 시작했다구… 그놈 때문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셜록은 쿨럭거리기 시작했다. 모리어티는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역겹다는 듯 손을 다시 거두었다. “그놈이, 내게서 널 빼앗아갔어.”

모리어티가 물러서는 동안 셜록은 헐떡이며 숨을 쉬려 애썼다. 저항하거나 반격하지 않기란 무척 어려웠지만, 셉은 무기를 가진 데다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버텨냈다. “그리고 이젠, 너와 네 그 빌어먹을 형이란 작자가,” 모리어티는 이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는 족족 끼어들어서 공급망을 끊고 자금줄을 죄어오는데다, 중요한 사람들마저 빼가니… 내 조직이 엉망이 되었다구.” 그는 다시 돌아섰다.

“아, 당연히 난 새로 시작할거야.” 그는 다짐하듯 말하며, “쓸만한 지지자 몇몇들과 말이지.” 셉에게 미소지어보였다. 셜록은 눈가 너머로 남자가 우쭐해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딘가 다른 곳이 되겠지, 어쨌든 재건할 생각이야.” 그의 얼굴이 굳어졌고, “하지만 가기 전에, 난 네 소중한 존이 불타는 꼴을 봐야겠어…” 눈빛은 증오로 형형하게 빛났다. “네가 나랑 게임을 하지 않겠다면, 누구와도 하면 안되니까.”

셜록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악몽에서의 장면들을 억지로 돌이켜보고는, “같이 가주지, 존을 내버려둔다면.” 그에게 제안했다. “그에게 아무 일도 없는 한, 너랑 같이 일하는 걸로.”

모리어티는 한번 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웁스!” 신이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었는걸.”

두려움이 온 얼굴에 드러나보였을 테지만, 셜록은 감추려고도 들지 않으며 따져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놈들이 여기로 데려올 거라 했잖아. 내가 너랑 같이 가겠다구. 그러니까 그를 풀어줘.”

“아, 데려올 거긴 하지.” 모리어티가 대답했다.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직 살아있긴 할거야. 그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화해라도 청하는 듯한 말투였다.

“손이야, 너도 알겠지만.” 방 저편에서 들려오는 셉의 목소리에, 셜록은 움찔했다. 모리어티에게만 집중해 있던 탓이다. “손대선 안될 것을 만졌어. 과했지.”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짐은 불태우는 거면 되지만; 내가 손을 달라고 했어.”

셜록은 고개를 흔들어, 눈 뒷편에 떠오르려는 장면들을 떨쳐내려 애썼다.

“아냐, 안돼. 이건 말이 안된다구.” 그는 부인했다. “수영장에서, 넌 날 쐈어. 앞뒤가 맞지 않잖아. 사실일 리 없어. 모두 다. 거짓말하는 거야.”

모리어티는 정신이 나간 듯한 미소를 띤 채, “아, 그건 내가 한게 아닌데.” 설명했다. “건물이 폭발해버리는 순간이라면, 잘 숙련된 스나이퍼라도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거라구. 뭐,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겠지만.” 그는 덧붙였다. “네 형이 처리했겠지, 내가 하기도 전에. 그 남자, 귀엽게도 가차없더라구, 뭐, 무시무시하게 따분하긴 하지만 말야.”

셜록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는 핑핑 돌아가고 있었지만, 방금 들었던 말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은 억누르려 애썼다. 순간 한 발의 총성이 건물 안에 울려퍼졌다.

셉이 재빨리 무기를 꺼내들고 바라보자, 모리어티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자가 밖으로 뛰어나가자, 뒤에는 껄끄러운 침묵이 흘렀다. 모리어티가 책상 서랍을 열어 자신의 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셜록의 뒤로 다가가 서서는, 머리칼을 움켜잡아 고개를 뒤로 제꼈다.

“어떻게 널 찾아낸거지?” 그는 셜록의 목 뒷덜미에 총구를 들이밀며 따져물었다. “헬렌이 네겐 이상 없다고 했었는데, 그 여자가 주의깊게 보지 않았었나?” 셜록의 머리를 움켜잡은 손을 풀더니, 어깨까지 미끄러지듯 쓸어내렸다. “어쩌면 내가 직접, 제대로 확인해야 했을까?” 이어 가슴을 어루만지며 도발적으로 물어온다.

셜록은, 존의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이 셔츠 윗 단추를 풀어낸다는 데 소름이 끼치는 걸 억누르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럼, 게이인 척만은 아니었군?” 그는 차분하게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며 말했다.

“난 적응력이 아주 좋거든.” 모리어티는 두번째 단추를 풀고,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으며 대답했다. “우린 꽤나 오랫동안 즐길 수도 있었다구, 너와 나 둘이서.” 그는 앞으로 기대어 셜록의 귓가에 속삭이고는, 귓불을 세게 깨물었다.

그의 손길은 셜록의 목을 감싸고 어루만졌다. 고개는 젖혀두고, 등줄기에 총구를 대어 누르면서.

“우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구.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행동에만 빠져있지 않아도 돼. 나머지 쓰레기들처럼.” 그의 손길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가 그 맛을 알게 된 모양이더군.” 셜록의 목덜미를 따라 핥아올렸고, 이번에는 셜록도 떨림을 숨기지 못하고 움찔, 물러났다.

그의 입이 귀로 다시 옮겨갔고, “내겐 최우선 관심사는 아니긴 하지만,” 모리어티는 속삭이며 손가락으로는 셜록의 유두를 만지며 비틀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해. 네가 먹히고 싶어한다면 말이지.” 

셜록은 자신이 토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졌다. 해야 할 것만 생각하려 애썼지만, 존이 아닌 손길이 그의 몸에 머무는 순간 그의 두뇌조차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안돼’라는 거대한 외침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귓가가 윙윙 울려댔기에, 모리어티가 재빨리 몸을 펴 일어났을 때 두번째 총성이 울렸다는 걸 깨닫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셜록은 메스꺼움을 애써 누르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리어티는 곧바로 그를 의자에서 거칠게 잡아끌더니, 한 손으로는 묶인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등 뒤에 겨눈 총구에 힘을 주었다. 

복도로 내팽개쳐지듯 밀어내어지며, 벽에 등을 댄 채 현관 쪽으로 향하는 모리어티를 따라 끌려갔다. 모리어티는 어깨 너머로 셉을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셉!” 다시 한번 불렀다; 이젠 거의 발코니까지 나와 있었고, 모리어티는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셜록을 앞세워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놀라우리만치 강한 힘이었다.

건물 뒷편에서부터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발소리에, 모리어티는 휙 돌아섰다. 그때, 복도 맞은편 끝에서 존이 나타났다. 총을 들고 그들을 마주한 채. 한쪽 뺨에 피가 묻어 있었지만, 다른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셜록은 지금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모리어티는 존이 총을 쏘지 못하도록 돌아선 채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총부리를 셜록의 턱 옆으로 누르며 윗쪽을 겨누며 말했다. “내려놔.”

존은 그들에게로 다가서고 있다가 바로 멈춰섰다. 아직도 10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셜록은 머릿속을 휘도는 선택지들을 알았다. 셜록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그렇게 크지 않았었기를 바래보았다. 그랬다면 등 뒤에 웅크려 숨는 왜소한 겁쟁이 녀석을 완전히 가리진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존은 천천히 총을 내려서는, 몸을 숙여 앞의 카펫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셜록의 날카로운 눈은, 그 동작을 이용해 몰래 허리에 차고 있던 비상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 모리어티의 존재가 확인되는 그 순간에만 사용하기로 했었던 그것 말이다.

손을 들어보이며 몸을 일으키는 존을 바라보면서, 셜록은 자신을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으로 온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하며, 다친 데는 없는지 살폈다.  하지만, 서로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모리어티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안돼… 이건 잘못됐어!”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 외침으로 바뀌었고, 셜록은 총구가 목덜미를 눌러오는 걸 느끼며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거지?” 모리어티는 존에게 따져물었다. “셉은 네놈이 자길 믿었다고 확신했어. 셉이 그딴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 넌 여기 있어선 안됐다구.”

“아, 그놈을 믿긴 했지.” 존은 평소와 다름 없는 말투로 대답했고, 셜록은 그런 그를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마이크로프트의 구원 병력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가능한 오랫동안 모리어티의 정신을 흐트러놓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꽤나 쓸만했었어, 네놈의 수하 - ‘셉’, 맞지?” 존은 말을 이었다. 셜록은 과거형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기만을 바라마지않았다. “제대로 속았었거든. 호텔로 잽싸게 튀어가는 헛걸음을 하게 꾸며두다니. 우리가 어디 있는지 해리가 알 리 없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을 정도니까.”

모리어티가 분노로 긴장하며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손목을 세게 붙들자, 셜록은 고통스러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셉에 대한 언급에 반응하거나 그가 없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모든 관심은 존에게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셜록은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던 거지.” 존이 덧붙였다.

“포옹이었나.” 모리어티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게 눈속임이었군.” 그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는 듯 하더니, “어쩌면 내가 걱정했던 만큼 지독하게 감상적으로 돌변한 건 아니었던가봐.” 즐거워하기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로 셜록을 향해 말했다. “아직 가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셜록은 존을 끌어안던 그 짧은 순간, 귓가에 서둘러 속삭여주었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함정이야, 따라와줘.’ 해줄 수 있던 말은 그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었다; 본능적으로는 존을 안전하게 되돌려보내고 자신의 목숨만 걸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약속했었으니까.

그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눈에 선명히 보이는 위협들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준 단 하나의 힘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했더라면, 그래서 존이 고문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면 스스로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시간을 벌어주는 건 오직 모리어티를 파괴해버리겠다는 욕구 뿐이었을 거다. 

모리어티는 고개를 흔들며, “그 결정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아.” 불평하듯 말했다. “모조리 잘못됐다구.”

이때 존이 끼어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셜록의 선택을 어느정도 예측해낼 수 있다는 것 쯤은 우리도 알아냈거든.” 

“그래서 난 결정을 존에게 맡긴거야.” 

“규칙 제 1번… 비밀은 없는거지.” 셜록이 덧붙인 말을 존이 끝맺었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미소지었다.

모리어티는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더니, 셜록의 손목을 놓고 머리칼을 휘어잡아 서로 마주보지 못하게 고개를 강제로 돌리며 존에게 쏘아붙였다. “셜록에게서 눈 떼.”

셜록은, 모리어티가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이야기하게 만들 거리가 없을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리젠트 파크에는 왜 왔던 거지?” 그는 물었다; 당시 내렸던 결론이 명백하게 틀렸던 탓에, 순수하게 흥미가 있어서기도 했다. 

모리어티는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양쪽으로 까닥거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조금 나섰다. 존이 더 이상 무기가 없기도 했고, 셜록이 자신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거다.

“당연히 널 다시 게임으로 끌어들이려던 거지.” 그가 대답했다. “네가 혼자 슬퍼하면서 그냥 주저앉아 있게 둘 수는 없더라구. 슬슬 따분해지기도 했고.”

그의 말투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네가 실제로 어떻게 시간을 때우고 있는지 내가 알았더라면,” 존을 노려보았고, “이번 만남은 꽤나 달라졌을 거야.” 그 끝없는 증오로 가득한 눈빛에 존도 조금은 움찔하는 것 같았다.

“넌, 내 완벽한 상대야.” 모리어티는 셜록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네 그 ‘고기능’이라는 허세나 최근의 이… 정신 사나운 것들 아래 깊숙한 곳은, 나랑 꼭 닮은 꼴이거든.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건 딱 하나뿐이고, 곧 그나마도 없어질 거야.”

그는 다시 존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네놈은, 셜록을 약하게 만들 뿐이었어.” 그는 경멸조로 말했다. “투명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걸, 네놈이 그 역겨운 보통에다 시시한 감정이라는 것들로 망쳐버린 거야; 너 같은 놈들보다 훨씬 우월해야 할 위대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짓이라구.”

모리어티는 서서히 미쳐가는 것 같았다. 총을 쥔 손마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네놈은 그저 성공했다고만 생각했겠지. 셜록은 네놈이 ‘옳은 일’이라 부르는 걸 할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옳은 이유’로 하진 않을걸. 셜록이 범죄를 해결하는 건, 도전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야. 살인범을 잡는 것도 지루하기 때문이고. 이젠 네놈이 끌어들인 대로, 네까짓걸 위해서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른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걸. 셜록은 영웅이 아냐.”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던 손이 목덜미까지 내려가자, 셜록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차분하게 모리어티를 마주보며 말했다. “이미 그런 이야기는 했어.”

“네놈은 아무것도 아냐.” 모리어티가 쏘아붙였다. “그에겐 필요하지도 않고, 없는 게 나을 약점이야. 셜록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친히 보여주지.”

모리어티는 셜록의 묶인 손목을 다시 붙잡으며 몸을 기대왔다. “네게 선택권을 주지, 친애하는 셜록.” 그가 제안했다. “만약 존이나, 이 가족, 이 마을, 아니면 이 도시를… 네가 구할 수 있다면 말야. 피할 수도 없고, 진짜로 결정하는 거라면, 자긴 뭘 고르겠어?” 몸을 세워 총구를 들이밀고 있던 바로 위, 셜록의 턱선을 따라 키스했다.

셜록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셜록의 단추가 풀려있는 걸 발견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솔직해야 해.” 모리어티가 덧붙인다. “그렇지 않으면 저놈의 다른 쪽 어깨에 구멍을 내줄 거니까.”

셜록은, 자신을 바라보는 존을 무력하게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총구가 목덜미를 쿡쿡 찔러왔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노력할게.” 그는, 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노력해볼 거야. 난 괴물이 아니니까.” 모리어티는 그 말에 으르렁거리다시피 했다. 

“하지만, 난 널 선택할거야.” 존의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셜록은 시선을 떨구었다. “네가 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걸 안다 해도, 난 널 선택할거야. 내겐 세상 누구도 아닌, 너만이 진짜니까.”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존이 입을 열었다. “이걸로 나한테 충격이라도 주려는 거였나?” 모리어티에게 묻는다. “솔직히, 이건 셜록이 날 필요로 한다는 증거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셜록은 존이 입을 다물기만을 바랐다. 등 뒤에서 모리어티의 분노가 용광로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게 느껴지는데다, 존은 그 자신을 향한 증오와 질투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가까이 와 봐.” 모리어티는 존에게 지시했고, 총을 뒤에 둔 채로 걸어오는 걸 지켜보았다. “거기 서.” 여전히 5m는 떨어진 거리였다.

“네놈이 불타는 꼴을 보고 싶어, 존 왓슨.” 적의가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그걸,” 총으로 셜록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셜록도 같이 봤으면 좋겠군.”

존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게 아닐까, 셜록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걸로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만큼 탁월한 군인이라서 그럴지도.

“자아, 다 함께 마당으로 나가보실까.” 모리어티는 말을 이었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러 말이지.” 존은 냉담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생각해, 자기?” 모리어티는 셜록의 귓가를 깨물며 속삭였다. “저 남자가 널 구하는데 뭘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두고 볼까?” 

“네놈이 존보다 오래 살아남겠다는 꿈이라도 꾼다면, 스스로의 지적 수준을 극도로 잘못 평가하는 거라구.” 그는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존에게 일종의 ‘영웅놀음은 금지’라 경고하려 애썼다.

모리어티는 들은척 만척 무시해버리고는, “우선, 놀랄거리를 더 가지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보자구.” 말을 이었다. “무기는 내놓으시지, 조니보이. 한바퀴 돌아보라구.”

존은 천천히 두 팔을 들고, 지시대로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았다. 하지만 모리어티는 쯧쯧, 소리내어 혀를 차더니 “뭔가 있지, 안그래?”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보여주기 싫은 뭔가 말야.”

“셔츠 펼쳐봐.” 그의 요구에, 존은 내켜하지 않는 기색이 완연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셔츠 단추를 풀고는 양 옆으로 펼쳐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셜록은 잠시 그날 아침에 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샤워하고 나온 셜록 덕에 젖어있던 옷을 벗겨내던 순간을. 맙소사, 그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던가? 아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팔로 가리려 하는 존을 보고, 셜록은 기침을 하며 모리어티의 발을 밟았다. 덕분에 총으로 목덜미를 아프게 얻어맞긴 했지만 별반 소용은 없었다.

“뭐.야. 그거?”

“박쥐용이야.” 셜록이 대신 대답했다.[각주:4] 

알람을 울렸다는 걸, 그래서 더 이상 위협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모리어티는 격분의 함성을 내질렀다. 이 순간부터, 셜록의 인식에서는 모든 것들이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소리가 늘어지고, 움직이는 것도 평소보다 세 배는 느리게만 보였다.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총이 사라졌고, 모리어티가 팔을 뻗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명백했다.

존이 긴장하는 게 셜록의 눈에 들어왔다. 여차하면 어느 쪽으로든 움직일 태세였지만, 갈 곳은 없었다.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고, 양 옆의 문들은 닫혀 있는데다 잠겨 있을 확률조차 높았다. 그야말로 가망이 없는 상태다.

수많은 가능성들이 셜록의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모리어티가 팔을 움직이던 마지막 순간에 남아있던 단 하나의 생각은 존의 이름이었다. 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부터 이미 다리에 힘을 모으고 있다가, 총구가 존을 향했을 때 그는 온 힘을 다해 모리어티를 뒤로 밀쳐냈다. 모리어티가 비틀거리며 발코니 난간에 등을 부딪히면서, 총알은 천장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한데 뒤엉킨 두 사람의 무게로 난간이 부서지던 순간까지도, 모리어티는 셜록의 묶인 손목을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셜록!” 총성에 이어, 나무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 남자가 뒤로 떨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존은 소리쳤다. 

존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걸 느끼며 앞으로 빠르게 뛰어나갔다. 곧바로 발코니를 지나쳐 계단을 황급히 내려가며 옆을 바라보았을 때, 아랫층 나무바닥에 가만히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한쪽 다리가 꺾인 채 바로 누워 있는 모리어티와,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엎드려 있는 셜록을.

존은 빠르게 지나쳐가며 모리어티의 손 근처에 있던 총을 닿지 않을 거리까지 차버리고는, 셜록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돌아눕히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손가락으로 맥박을 찾아 더듬었지만, 짚을 곳을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손에 감각이 없었다.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쉬자,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다시 한번 시도했다. 뛰고 있었다. 강하게, 끊임없이. 어느새 셜록이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렸고, 그의 첫 마디는 존의 이름이었다.

“움직이지 마.” 존은 몸을 숙여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눈가에 키스하며, 타이르듯 말했다. “내 말 알겠어, 내 사랑? 아직 움직이려 들지 마, 응?” 셜록의 손목을 파고든 밧줄로 관심을 돌려, 묶인 걸 가능한 한 빠르게 풀어내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시야 한쪽으로는 모리어티를 주시했지만, 저 사이코패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의식을 잃었거나 죽은 모양이다. 부디 후자이기를.

존은 고개를 숙여, 이제 눈을 뜨고 살짝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셜록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프거나 감각이 안 느껴지는 데 있어?” 물어보면서, 손가락으로 셜록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목덜미까지 내려가며 다친 곳이 있는지를 살폈다. 셜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존은 계속 등과 팔, 다리 모두를 확인했지만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의미는 없겠지만.

그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모리어티에게로 눈을 돌렸을 때에서야, 셜록의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괜찮아?” 셜록은 갓 풀려난 팔을 뻗으며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았다.

존은 노련한 시선으로 그를 훑었다; 척추 손상은 없는 게 명백하다. 이젠 눈빛도 또렷한 걸 보면 두뇌 기능도 정상인 듯 하고… 모리어티 위로 떨어진 게 분명하다. 그가 떨어졌을 때 완충 작용을 해준 덕분에 그저 숨차고 약간 멍한 상태 정도인 거겠지. 신이시여, 우리가 정말 해낸 겁니까? 존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안도감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그는 한 팔로 몸을 버티며 옆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맨날 내 대사를 채간다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셜록의 품에 안기는 바람에, 그의 목소리는 파묻히고 말았다. 둘은 서로를 꼬옥 감싸안았다. 옷가지를, 머리카락을, 손끝에 닿는 모든 걸 꽉 그러쥐면서. 그리고는 잠시 물러나 서로의 얼굴에 손을 얹고 분주히 살폈다. 셜록이 모리어티의 수하 중 하나가 한대 쳐서 상처가 생긴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지만, 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셜록을 구석구석 살피며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눈에 담았다.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깜박여 떨궈냈고… 그때, 모리어티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존의 몸이 긴장하는 걸 느끼고는 셜록이 재빨리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총은?” 존에게 나직하게 묻는다. 존은 그들의 왼쪽 - 화분 아래로 굴러가 있는 무기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대략 5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니, 뼈가 부러진 사람이 그들보다 먼저 잡을 수 있을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셜록은 존의 뒤로 미끄러지듯 돌아가서는 모리어티를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존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며 당겨 안고는 다른 손을 가슴, 심장 바로 위에 얹었다.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겠어.” 또렷한 그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펴졌다. “네놈이 존을 납치해가지 않았더라면, 난 이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영영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광기어린 검은 눈동자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셜록은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듯 끌어안은 팔에 잠깐 힘을 주었다가, 조금 휘청거리며 그대로 일어섰다. 

그는 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그걸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나 모리어티 옆에 서서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고맙다고 해서 널 살려둘 수는 없지.” 셜록은 팔을 들어, 모리어티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셜록, 안돼!” 존이 소리치자, 그대로 멈추며 존이 있는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지만 모리어티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이 방법 뿐이야, 존.”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구.” 존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셜록은 그를 흘끔 쳐다보고는 “이놈을 보라구, 존.”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이놈은 미쳤지만, 더할 나위 없이 영리해. 어떤 감옥으로도 이놈을 영원히 잡아두진 못할 거라구. 심지어 그렇다 하더라도 이놈의 조직이 너무 넓게 퍼져있어. 우린 계속 조심해야만 할거야. 이놈이 딱 하루만 운이 좋더라도, 난 널 잃어버리고 말지 몰라.”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하자, 그는 입을 꾹 다물고는 팔을 뻗었다. “이 방법 뿐이라구.”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아냐, 그렇지 않아.” 존이 일어서며 끼어들었지만, 다가서지는 않았다. 셜록은 지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존은 이성이 어느 만큼이나 제어하고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유들유들한 목소리에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존은 셜록에게 말을 거는 모리어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날 죽여야 할걸. 안그러면 내가 존을 없애버릴 테니까.”

두 남자는 서로를 뚫어지게 응시했고, 존은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날 쏴.” 모리어티는 말을 이었다. “냉정하게, 네 발 밑에 무력하게 뻗어버리도록 말야. 나라면 그랬을걸. 내가 되어보라구, 적어도 이번만큼은.”

“셜록, 안돼.” 존은 다시금 채근했다. “넌 살인자가 아냐, 그러지 마.” 셜록은 혼란과 좌절이 한데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존, 난 이놈을 살려둘 수가 없어. 너도 알잖아? 왜 이러는 거야?” 흔들리는 목소리에, 모리어티는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넌 할 수 있어.” 모리어티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날 죽일 수 있다니까. 우린 똑같거든.” 산산조각난 다리의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존은 척추 부상 때문에 마비가 온 건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닥쳐!” 셜록은 한 발을 들어 모리어티의 목을 짓눌러 숨통을 막으며 말했다.

“존?” 셜록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제발, 이놈은 절대 포기 안할거라구.”

모리어티가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들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네 말에 반대하려는 게 아냐, 셜록.” 마침내 존이 입을 열었고, “이놈은 죽어야 마땅해.” 총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가 할게.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셜록은 빤히 바라보기만 했고, 존은 저 두뇌가 잠시간의 감정적 혼란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맞물려 돌아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내 그가 손을 내렸고, 존의 제안을 고려하는 듯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모리어티를 바라보며, 말은 할 수 없지만 숨 정도는 쉴 수 있을 만큼 누르던 힘을 덜었다. 

그는 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내가 하면, 내게서 떠나버릴거야?” 

존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난 절대로 널 떠나지 않아.”

셜록은 다시 한번 발밑에 깔려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날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그 하나뿐이야.” 그리고는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19/20): Showdown 
  • 저자 주석: 이번 편 끝부분이 절단신공이라고 맹비난하시기 전에 - 그런거 없어요. 정말입니다.
      이 챕터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해결해줄 거고 - 다음 편(정말, 절대로 마지막 챕터)에서
      남은 이야기 겸 에필로그 부분이 추가될 예정이니까요. 
  • 역자 주석: 결말이 다가온 덕인지, 긴장감 있는 장면과 감동 터지는 대사들로 가득한 편.
      위기의 순간에서도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 확신을 가지고 있는게 참 좋다. 나까지도 든든해지는 느낌.
      그나저나~ 다음 편에 아웃테이크 한편이면 끝이다. 조금 더 힘내야지 : ] 


  • ◀ 18. 알고 싶어 | Wanting to Know (B)  [ 목록 ]   20. 그 후, 그들은 | Ever After ▶ 



    1. 지못미 존… [본문으로]
    2. “You could say I'm his Doctor,” - 셜록과 존의 관계를 빗대어 한 말. [본문으로]
    3. ‘he hoped to God that the words would not prove prescient’ - 마지막으로(last) 포옹했다는 말에 대한 것. [본문으로]
    4. “It's for bats.” - …우리 셜로기는 영재랍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