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How to Tame Your Dragon
  • 저자: Mad_Maudlin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8세 이상 (R)
  • 길이: 중편 (약 12,800단어)
  • 경고: 마법이 지배하는 AU입니다.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마법사 셜록이 애완용 드래곤을 잡으려 스스로를 미끼로 삼습니다.
      알고 보니 이 드래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지요.  
    - 요청글 보고 썼습니다만, 저 말고도 다른 글들이 올라와서 천만다행이에요.
      제 머릿속 하드에서 이 파일은 모종의 이유로다가 “스톡홀름 증후군”[각주:1]으로 분류되어 있거든요.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archiveofourown.org/works/236453



적절한 드래곤을 찾아내기까지, 셜록은 6주 내내 산에서 묵었다. 문헌에야 어려울 거라 씌어 있었지만, 그가 추정해본 바로는 그 문헌의 3/4은 신화였고 1/4은 터무니없을 만큼 과장된 내용이었기에 셜록은 거기에 자신이 세운 이론이 과하게 영향받지 않게 하려 애썼다. 그는 수목 한계선 위의 험준한 바위는 물론 깊숙한 협곡 모두를 몇 시간여에 걸쳐 살피며, 증거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 발자국과 발톱 자국들, 주먹만한 크기의 단단한 유독물질 덩어리들, 나무 사이에 끼어있거나 바위 아래 떨어져 있는 금속성 비늘들까지도. 무엇보다 그는, 마이크로프트의 비난과는 정반대로 -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이게 쉬운 일일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마침내 그가 - 작은 망원경으로 멀리에서 관찰한 거긴 하지만 - 드래곤을 발견했을 때에는, 중요한 신체 구조가 남겨진 기록들과도 잘 들어맞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는 데 흡족해졌다. 선대 장로들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드래곤은 녹슨 구리같은 회녹색이었다. 셜록은 꼬리의 막과 날개막의 혈관, 날개 관절에 달린 박차 형상의 손가락은 물론, 두개골 위를 가로지르는 골질의 판까지 - 야생 인류가 저걸로 방패를 만든 이래, 인갑이라 불리는 그거다 - 모두 눈여겨보았고, 드래곤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 재빨리 스케치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처음 본 이후로는 - 물론 여전히 드물긴 했지만 - 좀더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저들의 둥지 비슷한 걸 우연히 발견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사실, 그랬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사실 그들이 전설 속의 거대한 짐승은 아니었지만, 가장 작은 성체라 해도 보통 말만한 크기인데다 독사처럼 빨랐다. 차라리 괜찮은 사냥터나 햇볕을 쬐는 장소를 찾아내는 편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계획을 짜기에도 좋을 테다. 그러면 3~4일에 한번쯤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겠지. 

물론, 그것들 대부분은 그가 하려는 일에는 아무 쓸모없는 거겠지만.

암컷들은 곧바로 배제해버렸다; 너무 크고 지나치게 공격적인데다, 상대는 물론,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보다 거슬리는 모든 것들에 주저없이 불길을 뿜어대는 탓이다. 그 녀석들 중 한 마리에 안장을 앉는 정도까지 훈련시킬 수도 없겠지만, 거기까지 성공한대도 편히 타고앉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운나쁘게 새끼를 갖고 싶어하는 녀석을 고를 위험까지 감내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 한 마리 정도는 그의 집안에도 유용한 부가 구성이겠지만, 한 무더기씩 되면 성가신 데다 위험하기도 할 테니까. 제어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서 유체로 몇 마리 기르는 것도 고려는 해 봤지만, 탈 만한 크기로 자라는데 얼마나 걸릴지나 성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수컷들도 성체는 서 있을 때의 크기가 제각각이니 말이다.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산비탈 윗부분에는 일종의 군집같은 형태로 서식하는 수컷들이 있었다. 드래곤들도 일부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셜록은 그들의 규모를 알아내기 위해 대기와 어둠의 엄호를 받으며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드래곤들은 보통 한번에 세 마리 이상의 그룹으로는 뭉쳐 있지 않았고, 가장 큰 두세 마리는 시도때도 없이 티격태격하곤 했다. 다른 녀석에게 달려들거나, 산양처럼 머리로 들이받으면서 - 녀석들은 머리 옆에 감기듯 휘어진 뿔보다도 정수리의 인갑으로 직접 맞부딪치곤 했다. 다른 수컷들은 늙거나 작은 녀석들로, 집단에 매우 순종적이었다; 셜록은 그런 수컷들 중 한 마리가, 보다 공격적인 수컷이 인갑 뒷쪽 바로 아래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데도 납작 엎드려 누워만 있는 걸 몇 번 목격했고, 이로 인해 선명하게 남겨지는 자국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저런 순종적인 드래곤이 - 비겁할 정도로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전제만 있다면 - 최선의 선택이 아닐지를 꽤나 오랫동안 고심해 보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드래곤을 타고 왕국을 날아다닌다는 것의 매력, 그 일부분은 우선 선별적으로 공격성을 보이도록 훈련시키는 능력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명령해도 물지 않는 녀석에겐 관심도 없었는데다, 만약 예민하거나 겁많은 녀석이라면 드래곤을 잡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조차 싫을 거였다.

눈발이 날리던 날, 셜록은 용기내어 어두운 동굴 깊숙이 살금살금 숨어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한 무더기의 알을 발견했다; 여덟 개. 원석처럼 면이 있는데다 손을 대 보니 뜨거웠다. 만약 셜록이 갓 부화한 새끼에서부터 드래곤을 길러냈다면, 원하는 어떤 생물로든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야생에서 잡은 새들이 얌전하고 순종적인데 반해, 알에서부터 길러낸 독수리들은 잘 날지 못하고 조련사에게 공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또한, 갓 부화한 드래곤이 탈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쯤에는 그가 이 생각 자체에 질렸거나 중도에 먹이값으로 파산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는 - 무리에 6개월 미만인 성체 드래곤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 갓 부화한 새끼를 다루는 방법이나 육식 식단 이상의 특별한 요구사항까지 예측할 만큼 드래곤의 생애 주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안되겠어. 그는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그의 무게를 지탱할 만큼은 크게 자란 드래곤이 필요했다. 생각없이 공격적이지도, 줏대없이 나약하지도 않은 녀석 말이다.

일단 색깔부터 골라야 하지 않겠니. 마이크로프트의 대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계획 모두가 터무니없이 헛된 거라 생각했었고, 그게 어찌되었든간에 여왕이 이 산에서 드래곤을 말살해버릴 계획이라고도 충고했었다. 그건, 셜록이 매일같이 추워지기만 하는 초겨울부터 여기 와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드래곤을 찾으려 기다리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바닥에 남겨진 새로운 드래곤의 흔적을 발견했다. 딱 흥미로울 만큼 큰데다, 갓 남겨진 거였다. 셜록은 대기와 어둠을 소환하여 몸을 숨긴 채, 사슴과 산양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 살얼음 뒤덮인 웅덩이 중 하나까지 아래로 흔적을 따라내려갔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고요했지만, 앞에서 날개의 형태가 눈에 띄는 순간 그는 위에서부터 관찰하기 위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보았다.

이 드래곤은 수컷 치고는 작은 편이었지만, 근육이 멋지게 잡힌데다 성체 크기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잘 광택낸 놋쇠처럼 금빛 도는 갈색의 매력적인 가죽에, 유일한 흠이라고는 왼쪽 앞다리 위, 날갯죽지 근처의 도드라진 엷은 흉터 뿐이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장애가 있다면 셜록에겐 탈것으로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드래곤은 저 정도의 크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상대와 싸우고도 살아남은 게 확실했다. 산비탈 위 군집의 지배적인 수컷들과 상대하기에 녀석이 너무 작은 건 분명했지만, 그놈들에게 항복하지는 않았던 거다; 숨길 수 없을 목덜미의 흔적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강하지만 침착한 거다. 독자적이고.

“네놈, 멋지군. 안그래?” 이 드래곤이 얼음 한가운데 열기어린 구멍에서 한바퀴 돌아나오는 걸 바라보며 셜록은 중얼거렸다. 녀석은 때때로 거센 숨결을 내뿜어 구멍을 조금 더 크게 녹이곤 했지만, 불을 붙이진 않았다.

“넌 내꺼다.”





일단 그의 드래곤을 고른 다음부터는, 사로잡는 일은 어이없으리만치 간단했다. 셜록은 녀석의 은신처까지 뒤를 밟았다 - 안에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뒤죽박죽인 바위 무더기로, 사실은 그가 잡아주는 게 녀석을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녀석이 잠이 들 때를 기다려, 나무와 돌 위에 룬을 그려 대기 속에 잠과 고요를 새겨넣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구속구를 가지러 야영지에 다녀오는 것도 잠깐이면 충분했다.

셜록이 줄을 던졌을 때에서야 드래곤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태였다. 가죽줄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 드래곤의 다리를 휘감아 얽고, 날개를 펼친 채 꼼짝 못하게 고정해두고는 턱을 칭칭 휘감아 입을 다물렸다. 녀석이 귀청이 터져라 날카로운 끼익, 비명을 질러대며 맹렬하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셜록은 제 스스로 다치는게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을 뻗어서는, 주문을 외워 녀석의 몸뚱이를 땅에서부터 30cm 정도 띄워올렸다.

“버둥거리지 않는 게 좋을거야.” 그는 할 수 있는 한 바짝 다가서서 말해주었다. 드래곤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 말고는 뒤집힌 채로 그를 응시했다. 가늘게 뜬 금빛 눈으로 노려보면서. “구속구가 알아서 조여들도록 해두었으니, 혼자서는 풀 수도 없을테니까. 그리고 난, 네가 스스로 상처내진 않았음 좋겠기도 하고. 절름발이면 아무짝에 쓸모없거든.”

녀석은 마치 이해하기라도 했다는 듯 그릉거리더니, 불길을 뿜어내려 입가를 끌어올렸다 - 하지만 그마저도 셜록이 예상하고 있었던 거라, 녀석의 시도는 유독액 연무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패배를 시인하듯 드래곤은 잠잠해졌다.

셜록은 씨익, 미소지었다. “잘했어. 우리, 꽤나 유명해질 것 같은걸.”





그는 돌아오는 여정까지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사나운 드래곤을 육로로 운반한다는 건 의미없이 귀찮은 일인데다가, 쓸데없는 관심까지 끌기 좋을 사건임은 말할 것도 없으니까(여왕이 몰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신 셜록은, 몇 주 전에 미리 베이커가에 그려두었던 것과 같은 형태로 눈 위에 원을 그려, 그림자 사이로 그의 드래곤과 함께 몸을 숨겼다. (음, 그가 숨었다는 거다; 드래곤은 사실상 떠밀려간 셈이니까.)

집은 허드슨 부인이 고즈넉히 잘 봐주고 있었기에, 셜록은 지하실에 철창을 설치해두었었다. 팔뚝만한 두께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박아 적절한 크기의 튼튼한 감옥을 만들어두었던 거다. 그는 마법을 써 안으로 들어서고는, 일단 그의 드래곤부터 바닥에 내려놓았다. 

당연하게도 허드슨 부인이 예고 없이 돌아왔다며 호들갑을 떨었기에, 그녀부터 쫓아버리고는 작업실에서 마지막 필요한 소품을 가져왔다. 바깥 면에 청동제 D자형 고리가 여러 개 달린, 넓은 폭에 묵직한 가죽 목걸이였다. 안쪽 면에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진하게 룬을 새겨넣었다; 결속, 구속, 통제의 룬들이었다.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봉받이[각주:2]가 매를 길들일 때에는 자신의 손에 굴복할 때까지 굶기고 고문하다시피 다룬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셜록에겐 그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지루해보이기만 했다. 드래곤이 자신에게 굴복하도록 훈련시키긴 해야겠지만, 이 목걸이가 있으면 모든 과정들이 상당히 줄어들 거다.

셜록은 목걸이를 어깨에 걸터메고 지하실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창살 너머로 펼처진 광경을 보자마자, 그는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한 남자가, 가죽줄에 매인 채 모로 누워 있었다. 홀딱 벗고 있는 그의 살갗은 온통 금빛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두 다리를 칭칭 휘감은 줄은, 등에서부터 십자로 맞물려 두 팔을 굽힌 채로 앞에 결박해두고 있었다. 남자는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왼쪽 어깻죽지를 가로지르는 굵은 흉터를 제외하면 탄탄하고 건장한 체구였다. 다시금 창살 안으로 들어섰을 때, 셜록은 탁한 금발 앞머리 아래에서 그를 노려보는 익숙한 금빛 눈동자를 발견했다.

한여름에 날아다니는 탈것을 소유한다는 생각 따위는, 이 새로운 발견 앞에 무릎굽혀 앉는 순간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놀랍군.” 셜록은 남자의 - 드래곤의 - 입에 물린 줄 가장자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 넌 정말 놀라워.”





목걸이를 다시 만드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변명이라도 하자면, 셜록이 여기에 몰두해 있지만은 않았다는 거겠다. 그가 연구했던 그 어떤 드래곤 설화에도 드래곤이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같은 건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하물며 인간으로 변화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으니, 저 모든 저자들은 바보라는 원래 주장에 한층 더 힘이 실리는 걸 느끼는 셜록이었다.

그의 드래곤은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에서 줄을 풀어주었을 때엔 그를 물어뜯으려 덤볐고, 근처에 다가갈 때면 종종 힘없이 발로 차대기도 했다. 다시 모습을 바꿀 수도 없었다. 셜록은 줄이 조여들도록 걸어두었을 뿐, 늘어나는 건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드래곤이 질식하거나 피가 돌지 않을 정도까지 조여들게 만들지 않도록, 하루에 몇 번씩이나 지하실에 드나들며 확인해야만 할 정도였다. 이건, 셜록에겐 인간 형태의 녀석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넓은 어깨, 큰 손, 곧고 튼튼한 다리와 길게 뻗은 코. 손끝에 닿는 살갗은 놀라우리만치 부드러웠고, 실제 인간보다는 훨씬 따뜻했다; 머리와 다리 사이를 제외하면 털도 거의 없었다. 통상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단단하고 균형잡힌 모습. 무엇보다 지금 그는, 온전히 셜록의 수중에 맡겨져 있었다.

드래곤은 알몸이라는 걸 특별히 꺼려하는 것 같지 않았고, 심지어 얼마 후에는 줄의 속박에 항복하고 얌전히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셜록의 손가락이 살짝 벗어나 부드러운 살갗과 그 아래, 가볍게 잡힌 근육들을 어루만지고 탐색하려 들 때면 - 뭐, 거의 대부분 발로 차이거나 줄이 더욱 조여들 때까지 몸부림쳐대긴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다. 항상 곧바로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셜록은 연구로, 새 목걸이로 되돌아갔고, 인간의 모습을 한 드래곤과는 뭘 할지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거다. 그러니 일이 매우 느지막하게 진행되는 것도 그닥 놀라운 건 아니었던 셈이다.





새 목걸이는 그저 크기만 자그마할 뿐, 근본적으로는 이전 것과 동일했다. 셜록이 목걸이를 드래곤의 목에 거는 순간, 양 끝이 녹아 한데 뭉치며 이음매 없는 가죽 목걸이가 되었다. 그가 줄을 풀어주는 주문을 외우자마자, 드래곤은 재빨리 움직이더니 두 손을 주먹으로 말아쥔 채 그를 마주보고 섰다. “덤벼봐, 그럼.” 셜록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해보라구, 목걸이가 잘 드나 봐야지.”

드래곤은 움직이지 않았다. 실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맞겠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하는 기색은 역력했지만, 목걸이 안쪽에 복종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녀석은 그에게 으르렁거렸고, 셜록은 의기양양하게 씩, 웃어보였다.

그는 드래곤에게 곧바로 먹을 것부터 가져다 주었다 - 매여 있는 동안에는 입가에 손도 댈 수 없었기에, 드래곤은 그릇에 담긴 와인과 수프로만 목을 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빵과 구운 닭, 날것 그대로의 쇠고기를 내밀었을 때, 녀석이 제일 먼저 핏기어린 고깃덩이부터 집어든 건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굷주려 있었을 게 분명함에도 조심스럽게 쟁반에 손을 뻗어 조금씩 뜯어먹고, 조각 하나하나를 킁킁거리며 짐작도 할 수 없을 이유로 몇 개를 버리는 녀석을, 셜록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녀석은 등을 곧게 세우고 어깨를 펴며 다시 일어섰다.

“넌, 퍼즐같아.” 셜록은 그의 드래곤을 차근차근 뜯어보며 말했다. 줄에 약간 쓸렸는지 살갗에는 붉은 자욱이 몇 개 남아 있었지만, 아파보이진 않았다. 셜록이 그 자욱을 만져보려 손을 뻗자, 드래곤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목걸이 때문에 셜록에게 덤벼들지는 못했지만, 그의 손에 닿지 않게 물러서는 것까지 가로막진 못했다.

그것쯤은 셜록이 제지할 수도 있었다 - 만족할 때까지 살펴보는 내내 가만히 있도록 멈춰세울 수도 있었다 -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탐구해볼 시간은 나중에도 많이 있을 테니까. “따라와.” 그는 의지를 실어 말했다. “네 방을 보여줄게.”





“네 그 소소한 탐험에서는, 드래곤 한 마리라도 찾았니?” 찻잔 너머로 마이크로프트가 모르는 척 물어왔다.

“훨씬 더 흥미로운 걸 찾아냈지.” 셜록은 대꾸했다. 진짜로도 그랬으니까. 그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왕님께서는 산에서 드래곤들을 몰아낼 준비를 시작하셨어.” 무거운 침묵에 이어,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원정은 봄이다.”

“흐음. 그거 매우 흥미롭겠는걸, 내가 관심이라도 생긴다면 말이지만.” 

셜록이 관심을 가진 유일한 드래곤은, 마이크로프트가 쫓겨나듯 가버리자마자 반나체에 맨발로 지붕 위로 올라가 걸터앉았다. 그에게 바지를 입히는 것조차도 목걸이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일이었다. 셜록 개인적으로는 벗고 있다 해도 개의치 않았지만,[각주:3] 허드슨 부인은 참아주려 하지 않았다 - 젊은이답게 몸매가 탄탄하긴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니. 그녀의 주장은 그랬다. 드래곤은 셜록이 마련해준 방에는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가만 있지 못하고 집 안팎을 살금살금 쏘다니다 발견되기 일쑤였다. 녀석이 실제로 언제, 어디에서 자는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셜록은 최소한 그가 가진 비밀 중 한 가지는 알고 있었고, 지금이 말을 꺼낼 적기라 판단했다. 그는 지붕 위, 그의 드래곤 옆에 앉아 질문을 툭, 던졌다. “왜 말을 안하는 거지?”

드래곤은, 협박할 때면 늘 그랬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셜록을 공격할 수는 없었지만, 셜록이 실제로 손을 대려 하지 않는 한 도망치려 들지도 않았다. 허드슨 부인이 안아주거나 토닥여주려 들 때도 같은 반응이었지만, 그녀는 마음 상하지 않고 넘겨주었다 - 셜록이, 저 드래곤은 길거리에서 발견한 바보라고 설명해주었기 때문이겠지. 셜록은 다시 말을 이어가며 드래곤의 반응을 살폈다. “난 널 쭉 관찰해왔어. 네가 내 말을 모두 다 이해하는 건 명백해, 의도적으로 거의 다 무시해버리긴 하지만. 허드슨 부인과의 상호작용을 보면 더더욱 확실하지. 게다가, 내 서재에 손댄 흔적이 있어. 허드슨 부인은 내 허락 없이는 청소도 하지 않으니, 가능한 범인이라고는 너 하나뿐이야. 고로 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거지, 이를 통해 언어도 구사할 수 있으리라 가정할 수 있고. 이 형상으로는 말하는 데 눈에 띌만한 생리적 장애도 없어. 그러니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거지: 뭔가 정신적인 장애같은게 있다거나, 아니면 정반대겠군.”

저 말에 웃는 걸 보니, 드래곤에게도 그 정도의 배짱은 있는 모양이었다.

셜록은 앞으로 몸을 숙였다. “내가 원한다면, 강요할 수도 있다는 건 알겠지.”

“알아.”

계속 으르렁거리느라 살짝 거칠어지긴 했지만, 기분 좋은 테너 톤의 목소리에 셜록은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름도 있나? 아니면 내가 하나 지어줘야 할까?” 

“존이라고 불러.” 그의 질문에, 드래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셜록은 일단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해봐, 존. 네 종족 모두가 이런 식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나? 아니면 너만 그런 거야?”

존은 도시를 휩쓰는 겨울바람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구릿빛 맨어깨를 으쓱 치켜올려 보였다. “우린 다들 할 수 있어. 대부분 안하는 것 뿐이지. 알다시피 너희 무리들은 그 금속 쪼가리를 껴입지 않으면 딱히 쓸모가 없잖아.”

셜록은, 그 금속 쪼가리를 껴입은 쓸모없는 인간들 무리가 곧 그들 종족을 몰살시키려 들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의학이나 치유마법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할 말은 없어?”

“질문이 아니었잖아. 그러니 없지.”

아, 이거 재미있는걸. 셜록이 팔을 뻗어 흉터진 어깨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자, 존은 움찔 소스라쳤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도끼.”

“흐음. 거의 2미터 정도의 장신에, 능숙한 사람이 두 손으로 휘두른 거군. 네 왼쪽 날개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겠는걸. 놈이 제대로 쳤다면 네 앞다리를 꺾어버렸겠지만, 네가 달려들어서 끝까지 휘두르기엔 너무 가까워져버린 거야.”

존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

셜록은 일어서서 망토를 여몄다. “서재는 물론 써도 좋아. 하지만 비밀 서류들 모서리를 접어두는 짓은 그만두라구. 그리고, 말을 걸면 너도 대답 정도는 해주길 기대하겠어.”

“네, 주인님.” 존은 무시하는 말투로 대꾸했지만, 셜록은 그 목소리가 아무래도 좋기만 했다.








+)
[존의 드래곤 - 셜록 길들이기]에 이은, 드래곤 존을 소개합니다! >_<;;
설정부터가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금빛 눈 번쩍이는 드래곤 존이라니. 보는 순간 번역해야 해! 라고 생각했;;
여기에서도 여전히 셜록은 제멋대로인 개초딩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존이 멋져서 좋다 : ]



  1. ‘stockholm syndrome’ - 인질이 가해자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유명한 표현. http://goo.gl/vIY6J [본문으로]
  2. ‘falconer’ - 매를 부리는 사람. 우리말로 옮겨본다. [본문으로]
  3. 나… 나도?;;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