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Learn to Wear Each Other Well[각주:1]
  • 저자: sinuous_curve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8세 이상 (R)
  • 길이: 중편 (약 20,000단어)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이 이야기는 친구 lyo의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쓰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커플이 누군지 알아?”
      이 대화로부터 두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된 거죠.
      모든 감사와 푸념들은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그녀에게 돌립니다.
    -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오자를 찾아주고 지독한 미국 영어를 부드럽게 교정해주신
      okubyo_kitsune님게도 깊은 감사를. 아직 실수들이 남아있다면 다 제 탓입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archiveofourown.org/works/170939



레스트라드는 서류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목요일 밤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서류 작업을 그가 마무리하게 된 건 순전히 부르지도 않은 셜록이 나타나서는 신나게 사건을 헤집고 다니더니, 두 손을 휘저어대면서 난데없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끄집어내버린 덕분이다. 뭐,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지를 조급하게 설명해대기 전까지의 이야기긴 했지만. 뭐, 괜찮기도 했다. 레스트라드는 옹고집을 세워 좋은 충고를 무시해 버릴 만큼 자존심 과잉은 절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그가 여느 때보다 헤쳐나가야 할 서류 작업이 갑자기 한짐 더 늘어났다는 뜻일 뿐이다. 그것도 실제로 야드에 있는 누군가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보이게끔 창의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진 걸로다가. 상관들은 여느 사람들 한 다스가 맡아 했음직한 일을 단 한명의 제멋대로 구는 소시오패스가 추리라는 재주로 풀어냈다는 인상을 받는 순간 얼굴을 구기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셜록이 그저 약간의 힌트 정도만 준 것처럼 보이게끔 리포트에서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 쓰는 게 관련자들 모두에게 편한 일이라는 걸, 레스트라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도 다 알게 될 테지만. 결국에는. 아마도.

레스트라드 역시, 몇년 전이었다면 고작 어떤 게 단서이고 어떤 게 잡음인지를 골라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동안 셜록은 조각조각 흩어진 단서들을 단 몇 분만에 종합하고 이해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지금보다 자부심 강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범죄 해결률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경위라는 게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앤더슨이나 끊임없이 셜록을 연행하거나 한대 갈겨주지 못해 안달내는 도노반보다야 덜 중요하기도 하겠고. 그들은 범죄자를 잡아들이고 있고, 그게 핵심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세번이나 사인해넣었지만, 유관 부서의 절차상 책상 위에 쌓인 거대한 무더기 전부에 사인해넣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만큼은 거의 확실했다. 레스트라드가 아무렇게나 이름을 휘갈겨 써내려가는 동안 파일 캐비닛 위에 놓인 시계는 조롱이라도 하듯 째깍거렸다. 그는 시계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래봐야 마음 한 켠으로 밀려드는 20시간만큼의 피로감을 자각하게 만들 뿐일 테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을 놓고 보자면 - 셜록이 일주일에 못해도 두번 이상 암시를 던져대는 내용과는 달리, 그도 사실은 상당한 지능을 갖추고 있는데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 문가에 서 있는 남자가 헛기침을 할 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정말이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레스트라드는 의자에 앉은 채로 움찔했고, 그 바람에 그의 펜은 책상을 가로질러 카펫 위로 떨어져버렸다. 덕분에 서류에는 멋지게 좌악 줄이 그어져버렸고, 그는 짜증이 확 치밀어오르는 걸 느끼며 시선을 들었다. 눈앞에 너무나도 차분하게 서 있는 남자가 어렴풋하게나마 익숙하게 느껴지는데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짜증을 더할 뿐이었다.

“네, 도와드릴 일이라도?” 레스트라드는 질문을 던지며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훌쩍 더 지나 있는 걸 보고는 조금 놀랐다. 두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인데도 쉬러 갈 수 있을 때까지 처리해야 할 서류들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두 명이나 살해한 범인을 잡았다는 애매한 도취감에 취해 있는 와중이라 해도 하루 쉬는 날을 따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남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기에, 레스트라드는 좀더 살펴볼 시간을 벌었다. 큰 키에 평균 체격. 지난 밤부터 하루 종일 내려대는 가랑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장 차림에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조차 없었다. 남자는 지팡이라도 되는 양 한 손에 쥔 우산으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가벼운 관심 외에는 특별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레스트라드는 어쩐지 현미경 아래 놓인 개구리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와드릴 일 있습니까?” 그는 다시 물었다. 사무실 유리벽을 덮은 블라인드의 반쯤 열린 틈 사이로 줄지어선 빈 책상들이 보였다.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독한 시간대라는 걸 생각하면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레스트라드의 경계심을 한단계 올리기엔 충분했다.

“레스트라드 경위?” 대답같은 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남자가 물어왔다.

“책상에 있는 이름이기도 하죠.”

남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지 조금 불쾌했다. 무의식중에 풍겨나오는 저 우월감이라니; 레스트라드는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질문에 대한 답까지도 모조리 다 알고 있다는 것 같지 않은가. “셜록 홈즈 일로 왔습니다.”

그럼 그렇지.

남자가 사라졌다가 셜록 홈즈를 데리고 돌아올 때까지 책상에 머리라도 쿵쿵 찧어버리고픈 강력한 충동을 느끼는 레스트라드였다. 셜록이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에 대해 왓슨 선생에게 이야기한 건 진심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나쁜 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스트라드에겐, 셜록의 골치아픈 면을 다듬겠다고 그에게 정면으로 맞설 생각같은 건 전혀 없었다.

“셜록 홈즈는 공식적으로는 야드의 일원이 아닙니다만.” 레스트라드는 입을 열었다. 워낙 자주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이제는 기계적으로 읊어댈 대사 정도는 외우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항의할 게 있다면 정리해서 주시면 됩니다. 단, 개인적인 문제라면 직접 찾아보셔야 할 겁니다. 공식적인 교류는 없으니까요.”

남자는 한쪽 눈썹을 끌어올렸다. “공식적인 교류가 없다는 건 압니다만, 비공식적으로는 꽤나 오랜 기간 교류가 있었던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요?” 레스트라드는 친절하고 정중한 야드의 대표자 행세 따위는 접기로 했다. 그는 남자가 가버리길 바라는 중이었다. 그래야 남은 일을 끝내고, 일어나서 이 모든 걸 다시 해야 하기 전까지 몇 시간이나마 눈을 붙이러 플랫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봐요, 전 그가 어디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와 직접 해결하시죠.”

“문제는 없습니다.” 남자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난 그저 셜록 홈즈에게 관심있는 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당신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직접 연락하면 탐탁찮게 굴지 않습니까.”

머리를 찧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다시금 솟구쳐올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셜록이 어느 - 레스트라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 정부 기관의 관심이라도 끈 모양이었다. 제멋대로인데다 뭐든 아는 척하는 소시오패스 천재들을 살인 전문 기계로 바꾼다거나 하는 걸까. 레스트라드는 누군가가 셜록을 세뇌시킨다거나 뭔가 시키려 할 것을 상상하니 내심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남자가 원하는 게 뭐고 어디서 왔든간에 셜록에게 여지를 줄 정도로 어리석은 건 확실하니, 죽거나 아니면 어딘가 구덩이에 파묻혀버리고 마는 게 딱 맞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레스트라드였다.

“원하시는 건 뭐든 물어보십쇼.” 레스트라드는 대답하며 부러 서류들을 정리하는 척 해보였다. “하지만 전 시간도 얼마 없고, 그 비밀스러운 일에는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남자는 갑자기 움직여 본래 키대로 몸을 세웠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잠시 내 차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미소짓는 그의 얼굴에 즐거워하는 기색이 스쳐갔다. “이렇게 활짝 개방되어 있는 공간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려는 생각은 없으니 말입니다.”

순간, 레스트라드는 셜록이 조직 범죄같은 것에 연루되는 바람에 자신이 납치되기 일보 직전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은 절대 알 수 없는 인간이니까.[각주:2] 

하지만 남자는 이제껏 레스트라드가 봐왔던 조직 단원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흠집 하나 찾을 수 없는 쓰리피스 정장에 우산을 든 그는, 오히려 정치인이나 은행가, 정부 관료를 뒤섞어놓은 것 같은 인상이었으니 말이다. 레스트라드는 다시 한번 시계를 쳐다보고, 어느새 거의 세시가 다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산더미같은 서류들을 바라보며 전혀 쓸데라고는 없을 세벌짜리 서식 위로 엄지손가락을 톡톡, 두들겨대다 말고, 자신은 흥분 가득한 삶에 이끌렸기에 경찰 일에 몸담게 되었다는 걸 떠올렸다.

“알겠다고 대답하면, 전 죽게 되는 겁니까?” 레스트라드는 물었다.

남자는 다시금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럴리가요.”

레스트라드는 일어서며 책상 앞에서 몇 시간씩 웅크려 있던 등을 쭉 폈다. “그러죠, 그럼.”





야드 밖에서는 리무진[각주:3] 한 대가 대기중이었고, 뒷좌석에는 예쁘장한 여자가 앉아 핸드폰을 열심히 두들겨대고 있었다. 여자는 즐거움과 미안함, 무감각함 사이 어딘가쯤의 미소를 지으며 레스트라드를 흘끔 쳐다보더니, 이내 남자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남자는 반대쪽에 앉아 두 다리 사이로 우산을 짚었다. 레스트라드는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인간들은 다른 건 전혀 없이 눈썹만을 사용하는 식으로 의사소통같은 걸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둘 다 입 한번 벙긋하지 않았는데도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드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레스트라드는 입을 열었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그저 이 대화를, 잘 제어된 환경에서 하는 게 좋았던 것 뿐이죠.”

“그렇군요.” 레스트라드는 짙은색 정장에 스타킹, 말쑥한 구두 차림인 여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뭐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겨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레스트라드는 이 여자나 여자의 고용주 둘 다 속눈썹만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 당신이 이름을 알려주진 않을 테죠?”

남자는 다시금 미소지었고,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도 그랬다. 레스트라드는 묻기도 전부터 대답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는 여자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고, 식사 자리에서 혼자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셜록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겁니까?” 레스트라드의 말에 남자는 관심을 보였다.

“그렇죠.” 남자는 어깨를 살짝 펴고 앉았다. “당신은 지난 3년간 대부분을 셜록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둘 다, 절차로 따지자면 그게 꽤나 변칙적이란 것도 알고 있는데, 왜죠?”

“그게 왜 변칙적이냐는 겁니까, 아니면 왜 셜록과 일을 하냐는 겁니까?” 레스트라드는 따지고 들었다. 아까 자존심 운운하며 생각했던 거야 어찌 되었든간에, 이 사태를 쉽게 넘길 수는 없었다. 정말 살해당하기라도 할 거라면, 죽기 직전까지 떠벌거리다 가는 바보로 기억될 생각은 없었으니까.

“후자입니다.”

레스트라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신도 전혀 알 수 없는 문제인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는 대답했다. “그리고 끈질기기도 하죠. 처음에는 그게 더 컸다고 봅니다. 그가 돕게 두든지, 그게 아니면 경찰 조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체포해야 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가 항상 옳았기도 해서, 체포하기엔 조금 그렇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왓슨 선생은?”

레스트라드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셜록과 존에 대해서는 낯선 사람에게 뭐라 떠들어댈 만한 입장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 낯선 사람이 리무진을 타고, 어쩌면 정부의 허가까지 받고 왔다고 해도 말이다. “그 사람이 어쨌단 말입니까?”

남자는 우산 손잡이를 엄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다시금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려는지 얼마간 여자 쪽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가 셜록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좋은데요.” 레스트라드는 조금 급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아직은 셜록과 일하는게 마냥 만족스럽지만도 않고 그 인간이라면 늘 우린 모조리 바보라고 생각할 테지만, 존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셜록에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상기시켜주니까요.”

코트 소매를 만지작거리거나 다리를 떨지 않으려 조금은 애를 써야 했다. 레스트라드는 지금 자신이 말하고 있는 모든 내용이 어느 어두컴컴한 정부 건물에서 녹음되고 있으리라는,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영 소름끼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셜록이 어떤 일에 연루되어버린 건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셜록과 꽤나 잘 지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셜록의 도움을 받지 않을 생각같은 건 없는 거겠죠?”

“없습니다만?” 레스트라드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봐요, 당신이 대답하지 않으리란 건 알지만 어쨌든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왜 셜록에게 관심을 가지는 겁니까? 내가 확인했던 바로는 그 인간, 가문의 재산으로 먹고 살면서 우리와 일하는 걸텐데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죠. 어느날엔가는 그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경찰 일보다 더 좋은 데 쓸지 모른다는 기대 정도는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그가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레스트라드는 조금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아주 살짝이지만.

“그렇죠, 흠. 그런 걸 보면 도무지 철이 들지 않는다 싶군요.”

레스트라드는 자신의 일에 대해 빈정거리는 말에, 곧바로 당신 좀 닥치시지, 부터 튀어나오려던 걸 꾹 눌러 참아냈다. 어린아이들 절반이 커서 야드에서 일하고 싶어한다고 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죄다 애들 장난만은 아니란 말이지, 고맙게도 하셔라. 그들 전부 셜록 홈즈처럼 사회적 능력 제로에 어마어마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레스트라드는 모두들 각자의 최선을 다해 바르게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넘기기로 하고, 그는 이 남자를 더 세밀하게 뜯어보았다. 레스트라드가 셜록은 아니기에 신발끈에서 남자의 인생을 읽어내거나 줄이 나간 스타킹에서 사인을 설명해낼 수야 없겠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실력은 있지 않겠는가.

“당신, 그가 커가는 걸 알았다구요?” 레스트라드는 물었다. “뭐, 친척이라도 됩니까?”

그는, 남자가 저 작은 시도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 같다는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요. 난 그애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입니다.”

이 정보를 이해하자마자, 레스트라드는 소리내어 웃지 않기 위해 모든 자제력을 동원해야만 했다. 그럼 그렇지, 어련하시겠어. 셜록이라면 당연히 숨겨두었던 형 정도야 있고도 남겠지. 그것도 보통 사람은 질질 짜게 만들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고위급으로다가. 적어도 이 정도면, 이 남자 - 마이크로프트가 체포될거란 일말의 걱정도 없이 야드로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설명쯤은 되겠다.

“당신네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뭔가 특별하겠군요.” 레스트라드는 헛기침으로 얼버무리며 말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고 있다는 듯 코끝을 찡그렸다. 셜록과 같은 유전자에서 나왔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 그러고도 남겠지만. “그건 그렇고,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왜 궁금하죠? 그리고 알 수 없는 차와 이 상황은 다 뭡니까?”

“난 그저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야기하려고 사람을 납치할 정도라니, 굉장하게 사시는 분이십니다.”

마이크로프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당신은 자진해서 왔잖습니까, 경위.”





리무진은 플랫 바로 앞에서 레스트라드를 내려주었고, 그는 차에서 내리면서 자신이 어디 사는지 어떻게 알았느냐고는 묻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서 있는게 얼마나 불안하든지간에, 아무리 잘 돌려 말해봐야 어리석은 질문일 뿐일 테니까.

마이크로프트는 차창을 내리고 말했다. “시간 내주셔서 고맙군요, 경위.” 마치 자기 형제가 어떻게 사는지 엿보겠다고 한밤중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을 납치하는 것쯤은 무엇 하나 이상할 것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시겠지. 어쩌면 마이크로프트 홈즈에겐 그런 걸지도.

“괜찮습니다.” 레스트라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는 도로변을 빠져나가 저쪽 모서리로 돌아 빠져나갔다. 레스트라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보도에 서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문득 시계를 내려다보고는 어느덧 새벽 다섯시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 말인즉슨, 네 시간 안에 야드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뜻이겠다.

그는 플랫으로 향하는 계단을 두 단씩 성큼성큼 올라가서는[각주:4]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이 밤 내내 빌어먹을 셜록 홈즈와 엮이는 위험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의 인생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그 후 2주간, 이상하게도 레스트라드는 그 후 2주간 책상에 쌓여가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건들에 맞닥뜨리며 마이크로프트 홈즈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있다시피 했다. 이중 살인부터 시작해서 연쇄 폭행 사건, 거기다 일곱 살박이 여자아이 하나가 하교길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라져버리는 사건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셜록의 형에 대해 생각하기는커녕, 자기 이름까지 까먹어버릴 지경이었던 탓이다. 

이중 살인 사건은 야드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내는 데 성공했다. 도노반이 이웃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거기에 매달리고 또 매달린 끝에, 모든 걸 한데 맞춰낸 공이 컸다. 그녀는 직접 체포까지 해냈고, 모든 게 잘 마무리되었다.

여자아이 사건은 해외 체류중이던 아이 아버지에게 납치당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 관련자 모두가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버렸다. 곧바로 외교적 분쟁 건으로 비화되면서부터는 그들이 손쓸 수 있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던 탓이다. 게다가, 여자아이를 찾아내긴 했지만 곧바로 아이 어머니에게 데려다주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아이는 발갛게 부은 눈을 하고서는 레스트라드의 사무실에 앉아, 손수건을 두 손에 꼭 틀어쥐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고마워하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게 고마워하다니. 레스트라드는 도와준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기분인데 말이다.

폭행 사건으로 말하자면, 어느날 오후 전부 알아냈다는 의미의 미소를 띠고 사무실로 들이닥친 셜록으로 끝났다고 해야겠다. 그 모습에, 레스트라드는 불현듯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선명하게 떠올리고는 미소짓지 않기 위해 볼 안쪽을 깨물었다. 셜록이, 형이 자신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 어떻게 반응할지 정도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재단사의 조수입니다.” 셜록은 두 손을 한데 모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어깨 옆에서 뒷짐지고 서 있던 왓슨 선생은, 멍한 상태에 지쳐 보이기까지 했다. 셜록이 잘 수 없다면 베이커가 221B에 있는 그 누구도 잘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는 레스트라드였다.

“어떤 재단사의 조수를 말하는 건가?” 레스트라드는 물었다.

셜록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데굴, 굴렸다. “첫번째 폭행 사건이 있었던 건너편 가게의 재단사 조수 말입니다. 첫번째가 유일하게 중요한 거였어요. 그 젊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었던 겁니다. 나머지는 첫번째를 어떻게든 덮어보려는 어설픈 시도일 뿐이었죠.”

레스트라드는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파일 더미를 뒤적여, 문제의 재단사 조수가 했던 진술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랫쪽에 남아 있는 도노반의 서명을 보고, 레스트라드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종이들 아래에 밀어넣어 두기로 했다. 결국 도노반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 최소한 - 셜록의 목 정도는 조르려 들고 말 거다. 저 인간은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싸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레스트라드가 그녀를 체포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의 말로는, 폭행 발생 시점에는 가게에 있지도 않았다던데.” 레스트라드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정말로 셜록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경험상 그래봐야 헛수고이기도 했고. 하지만 여전히 셜록이 그 증거를 보여줄 필요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확인되지 않은 거잖습니까.” 하품이 나오려는 입을 가리며 왓슨 선생이 한마디 덧붙인다.

“뭐, 그렇지. 하지만 그거야 자네들 의견이고.” 레스트라드는 진술서를 닫았다. “납득시켜 보라구.”

셜록이 다섯 피해자의 옷가지 중 세 벌에서 발견된 붉은 실이나 누더기로 속을 채운 눈속임용 정장, 재단사의 구두 사이즈같은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아 그를 이해하게 만드는 데는 2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앤더슨을 찾아내서, 내내 레몬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인 그에게 법의학적 확인을 받아내기까지는 15분 더 걸렸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재단사의 조수를 체포했고, 저녁 시간 무렵에는 그에게 자백까지 받아냈다.

“수고했네.” 레스트라드는, 벌써 왓슨 선생을 옆에 끼고 문 쪽으로 향하는 셜록에게로 한마디 던졌다.

정말이지 형이랑 비슷하다니까, 내심 생각하는 레스트라드였다.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레스트라드의 사무실 문가에 들어선 두번째도 목요일이었고, 전처럼 늦은 시간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레스트라드가 야드에 남은 게 우연이었다는 것 정도랄까. 책상 위에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처럼 높직하게 쌓여 있는 진행중인 사건 파일들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꽤나 길었던가 봅니다, 그렇죠?”

레스트라드는 움찔 놀라 깨어났고, 그 바람에 한 무더기의 파일을 깔끔하게 바닥에 낱낱이 흩어버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려는 하품 사이로 구시렁거리며, 그는 의자에서 몸을 세워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막 한시가 지난 시점이었고, 야드의 모든 인간들은 그의 사무실을 지나치면서도 깨워줄 생각같은 건 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조금은, 그렇네요.” 그는 눈을 부비며 수긍했다.

자신의 책상 맞은편에 둔 의자 뒤에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서 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아마도 조금보다는 더 놀랐을 거다. 그가 입고 있는 정장과 타이는 달랐지만, 우산은 그대로였다. 레스트라드는 피곤한 머리로나마 셜록의 면상에 제대로 한 방 날려줘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눈을 벅벅 문지르면서 팔꿈치를 짚고 기대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마이크로프트는 의자 등받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미소지었다. “내 동생 녀석을 지켜봐주는 정도랄까요.”

“알았습니다. 잠시만요.”

레스트라드가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체계적인 사람이었더라면 일을 다 마치고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서류들 전부 다 원래 있던 서류철에 꽂아두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엄청나게 난처한 상황을 겪지 않을 정도까지만 체계적인 데다, 원래 있으려던 것보다도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서류들을 책상 위에 어수선하게 모아 쌓아두고는 다시 날려 떨어지지 않도록 위에다 스테이플러를 올려두기로 했다. 그리고는 마이크로프트의 시선을 느끼며, 일어서서 코트를 걸쳐입었다.

“배우는 게 빠르시군요.” 마이크로프트의 말은, 조금은 칭찬같기도 하고 조금은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셜록도 딱 그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지적하지 않고서는 그냥 칭찬할 줄도 모르니 말이다.

밖에는 그때와 같은 리무진이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문을 열었을 때,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던 예쁘장한 비서는 없었다. 레스트라드는 마이크로프트가 이 대화를 엿들을 관객이 적길 바랬거나,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먹었기에 목격자가 적길 바랬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간에 막판에는 레스트라드가 눈을 감게 되긴 할 테니 별로 상관이야 없겠지만.[각주:5]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만,” 거리로 나서서 조용히 걷다 말고, 레스트라드는 말을 꺼냈다. “이거, 정기적인 게 되는 겁니까? 제 일기장에 셜록 형님과의 대화 일정을 잡아두기라도 해야 하는 건지?”

마이크로프트는 체신 없어 보이는 코웃음처럼 들리고도 남을 법한 소리를 냈다. “셜록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놀라울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게다가 예의 그 드라마틱한 천성 덕분에 그애에겐 내가 최강의 적수 중 하나라더군요. 난 그저 그애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뿐인데 말입니다.”

“왜 당신이 적인데요?” 레스트라드는 정말로 궁금해져서 묻고 말았다.

그는 셜록을 좋아하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간의 최소 3/4 정도는 그 역시도 - 여느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 셜록을 정말 좋아하진 않았다. 그리고 레스트라드는, 왓슨 선생이 셜록의 화학 실험물 중 하나를 차에 쏟아부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 인간을 참아낼 수 있는지가 항상 의아했더랬다. 하지만, 레스트라드는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나름대로는 완전히 비인간적이라고는 해도, 보통은 그런 게 중요하긴 하다는 생각도 함께. 

마이크로프트는 - 딱히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게 - 한 손을 들어올렸다. “셜록은 항상, 극적인 걸 유독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악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했구요.”

“그건 대답이 안 되겠는데요.” 레스트라드는 자리에 몸을 파묻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마 제가 알고 싶을 만한 건 아닐 테니까요, 그렇죠? 어쨌든 이번엔, 지난번에 제가 안 했던 것 중 무슨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레스트라드는 현미경 아래 놓인 - 갑자기 좀더 흥미로워진 벌레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존엔 발견되지 않았던 돌연변이종 정도랄까. 여전히 그가 벌레라는 건 변함없다는 사실이 유감이긴 하지만, 적어도 흥미로워보이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당신 생각을.” 그는 대답하며, 차 안의 적막한 공기를 가르듯 손을 저어보였다.

레스트라드는, 마이크로프트가 정말 셜록이 드라마틱한 동생이라 생각한다면 일단 그에게도 자기 반성부터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자신의 생각부터 말로 꺼내볼까 하는 충동을 씹어삼켰다. “지난번과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잘난 셜록 홈즈고,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와 밀접하게 협업하고 있잖습니까.” 마이크로프트는 말을 이었다. “그건 아마 왓슨 선생이라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당신이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겠지요. 당신이 어째서 셜록처럼… 까다로운 사람을 감내하려 드는지에 대해, 나는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스트라드는 가죽 시트에서 매무새를 고쳐앉았다. 문제는, 셜록이 고마워하는 척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있을 권리가 있다며 그렇게나 의기양양하게 구는데도 어째서 야드에 발을 들여놓게 내버려두고 있는 건지를 그조차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겠다. 한두번 정도는 설록에게 야드에서 공식 직책을 어렵잖게 따낼 수 있을 거라 제안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가망 없다고 생각하고 접어두었던 레스트라드였다. 그게 차라리 쉬우니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는 대략 얼버무려 넘기기로 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셜록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 자존심을 걱정하기보다는 나쁜 놈들을 잡아넣는 게 좋구요.”

“당신 자존심까지도?” 마이크로프트가 물어왔다.

“그럼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날 아침, 레스트라드는 호출받아 나간 시체 유기 장소에서 CSI 기술팀이 사체 일부라도 건져 보려고 배설물을 뒤적이는 동안, 철제 쓰레기통들 옆에 서서 하품을 해대고 있는 중이었다. 끔찍하긴 했지만 동시에 조금 흥미롭기도 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허벅지인지 무릎인지, 아니면 위장 일부분인지를 내기하듯 나직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보는 이웃집 노부인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레스트라드는 건성으로나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기로 했다. 

도노반은 사체를 추려 담아서 끌고 가는 내내 흘끔거리며 그를 곁눈질했다. 겁나 사랑스러운 다크서클이 눈밑에 깔려 있다는 건[각주:6] 그도 알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에 대한 생각들에 휩싸여, 잠들 수 있을만큼 생각을 멈추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던 탓이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차가 그를 플랫에 내려주었을 때쯤에는 이미 새벽 무렵이라, 하늘 저편부터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 노부인 집 현관 앞에 서서, 진술을 받으려 노크하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도노반이 물어왔다. “괜찮으세요, 경위님?” 

레스트라드는 또다시 터져나오는 하품을 손등으로 억눌렀다. 목격자들과 이야기할 때 이러면 안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면 그들이 이런 과정 자체를 지루해한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 어젯밤에 늦게 잤거든.”

도노반은 의아한 듯 팔짱을 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레스트라드는 항상 그녀와 - 모 자문탐정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든간에 - 그녀가 가진 끈기와 역량을 예뻐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저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거겠다. 어째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레스트라드는 셜록의 형을 한밤중에 만나고 있다고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경위님.”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늦게 주무시면, 경위님 덕에 우리들마저도 안 좋아보일 거에요.”

다행스럽게도, 레스트라드가 저 질문에 응수할 만한 대답을 생각해낼 틈도 없이 마침 그 순간에 이웃집 주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어제 오후 무렵에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니던 엄청 수상쩍은 불량 청소년 한 쌍을 보았다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더니, 그 와중에도 쓰레기통에서 추려낸 사체의 상태가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곁들여 주기까지 했다. 





레스트라드가 셜록 홈즈를 알고 지낸 3년간, 그는 레스트라드가 잘해봐야 무능한 멍청이인데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를 경위로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엾은 런던 시민들에게 위험까지 될 거라는 식으로 넌지시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레스트라드도 기분이 조금 상해서, 셜록만큼 똑똑하다는 걸 증명하겠답시고 서툰데다 의미조차 없는 시도까지 해보는 삽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쯤 전부터는 신경을 끊기로 했고, 레스트라드는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홈즈는 아닐지 모르나, 저 지성의 대가가 저렇게나 괴팍해지는 거라면야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고 생각을 고쳐먹기도 했고.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두번째 심야 사무실 방문으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 날, 레스트라드는 차 한잔과 노트북을 챙겨 소파에 앉아 일종의 시간 외 형사 노릇을 해보기로 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검색하자 셜록에 관련된 참조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만, 같은 성이기에 조회된 것 뿐 그들이 형제라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언급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전부 다 그가 교통 문제와 관련된 말단 공무원이라는 인상을 풍겨내고 있었다. 

레스트라드가 그런 걸 믿을 리 없었다. 최근에 확인한 것만 보더라도, 말단의 교통 공직에서 부르면 재깍 달려오는 리무진이나 밤새 일하는 비서를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라도, 이제껏 마이크로프트 홈즈처럼 중요한 인물이라는 기운이 물씬 풍기는 사람을 단 한번도 만나본 적 없기도 했다. 말하는 투나 걸음걸이, 옷차림,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의 사무실로 불쑥 찾아와서는 자신이 요청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차에 탈 거라 생각하는 것도 그랬다.

“당신 비밀로 해두시지, 그럼.” 남은 차를 들이키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레스트라드는 애꿎은 노트북에게 내뱉듯 한마디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사무실로 찾아온 어느 수요일, 레스트라드는 문가에 서 있는 그를 보고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책상 위에 널려 있는 파일을 슥 훑어보고, 그게 그날 처리해야 할 마지막 하나였음을 알아차리고는 내심 자신의 타이밍 감각에 흡족스러워지기도 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레스트라드는 자신이 사인해야 할 마지막 두 곳을 찾으려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입을 열었다. 깔끔하게 끝난 범죄였던 만큼, 가해자에게 수갑을 채워 감방으로 처넣기까지 범죄가 발생한 시점부터 20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사건 역시 재빨리 마무리되어준 셈이다. 상당히 유쾌한 하루 일과의 마무리인데다,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시점이기도 했다.

“그럼요.” 마이크로프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레스트라드는 마지막 서류에 멋들어지게 이름을 써넣고, 완료된 파일을 아침에 기록실로 실어갈 서류함의 제 위치에 꽂아두었다. 그는 잔뜩 굽어져 있던 등과 어깨를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걸치며 책상을 돌아 나섰다. “가실까요?” 마이크로프트에게 한마디 건네자, 이번만큼은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보고서가 아닌 - 그와 함께 웃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서늘하고 습한 밤거리로 나섰을 때, 그는 야드 앞에 조심스럽게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이 온데간데 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금 당황했다. 레스트라드는 한기를 막아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요?”

“희한하게도, 내겐 교통 수단이 몇 가지 있어서요.” 마이크로프트는 대답과 동시에, 안개 덕에 표면에 이슬이 맺혀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는 - 무척이나 비싸보이는 클래식 자동차를 가리켜보였다. 그 길고 우아한 곡선을 바라보며, 레스트라드는 토요일 오후에 할머니와 함께 보던 옛날 흑백 영화를 떠올렸다. “내 운전 능력에 의구심이라도 갖고 계신 게 아니라면 말이지만요.”

마이크로프트라면 뭐든 할 수 있을 능력이 있을 거라는데, 레스트라드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었다.

호화롭게 꾸며진 내부를 보며 귀족이라든가 제임스 본드부터 생각나는 레스트라드였다; 짙은 색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덮여 있는데다, 계기판에는 우주선보다도 많은 버튼들이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마이크로프트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고, 엔진에서 울려퍼지는 깊고도 나직한 부웅, 소리에 - 차에 대해서라면 휘발유를 채워넣고 굴러가게 하는 것 외에는 전혀 모르는 - 레스트라드조차도 그 명백한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마이크로프트는 유연하게 차도로 진입했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스트라드에게 바깥 세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것들에서 조금 비껴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레스트라드의 플랫 전체보다도 더 비쌀 법한 차를 타고 런던을 유영하고 있는 그와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남자에게로 늦은 밤, 온 세상이 좁혀져 버린 것만 같았다. 무모한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가 십대였다면 좋아했을지 모르겠지만, 어른인 지금은 이상하게 여겨질 법한 일.

금단의 과실이랄까, 그런 것인 셈이다. “조수나 운전사도 그렇고, 이게 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헛기침으로 숨기며 물어보기로 했다. 언제라도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바라보고는, 자신의 동생이 상대하게 된 한낱 경위일 뿐 - 사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셜록이 공적인 일은 아니니까요.” 마이크로프트가 대답했다. “이런 대화들은 내 개인 시간에 하는 게 신중할 것 같더군요. 상급자들이 질문하기 시작하면 매우 성가시니 말입니다.”

셜록이 실제로도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천재들에게 적용되는 정부 차원에서의 실험적인 프로그램 따위에 연루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저 두뇌를 헤집어대서, 지금도 마지못해 같이 일하고 있는 한낱 허드레꾼들을 더더욱 못견뎌하게 만들어줄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프트의 개인 시간에 그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까지는 아직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레스트라드는 그들의 입장이 조금 비슷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더 유용하고도 사적인 정보를 가진 사람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존 왓슨부터 시작해서, 따지고 본다면 그들의 집주인이나, 셜록이 런던 곳곳에 심어둔 정보원같은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만의 작은 개인 정보부대 말이다.

“이번 주에는 당신 동생 몇 번 못 봤습니다.”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레스트라드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별 생각 없이 대꾸했다.

레스트라드는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을 보고 있지도 않고, 그런 움직임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는 운전하고 있는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핸들에 - 레스트라드가 운전 연수를 받을 때 배웠던 그 위치에 정확하게 - 올린 손과 고급스러운 좌석에 기대어 곧게 뻗은 등, 도로를 향한 두 눈을. 마이크로프트가 전형적으로 매력적인 남자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레스트라드가 만나봤던 몇몇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강렬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같은 건 아니었다. 

능력이 있는 느낌. 사리에 밝다거나, 어쩌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주목하게 만드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살짝 부족했다. 

셜록과 오래 알고 지낸 탓일지도 모르지만, 레스트라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순간 정도는 구별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야드를 나섰을 때부터 모든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마이크로프트의 태도에서 그런 걸 읽어냈다. 그저 감일 뿐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그저 느낌에 가까웠지만, 레스트라드는 불현듯 이게 그저 셜록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는 담배 한 대가 간절해졌다. “그럼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마이크로프트는 신호등에서 차를 세우고는 레스트라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닫혀 있던 표정이, 세심하고도 사려깊은 표정으로 바뀐다. “누구도 내 동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위. 나 역시도 동생이 싫었던 순간이 많았지요. 동생이 호감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게 딱히 중요하진 않아요. 성격상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줄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그랬다면 신경을 쓰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두 명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 명은 그의 플랫메이트, 어떻게 되어갈지는 두고 봐야겠죠.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당신입니다.”

레스트라드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요?”

“그래서 당신이 특별한 겁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나도 관심이 있구요.” 

그 정보에 답해줄 말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레스트라드는 타고 가는 내내 그저 침묵만을 지켰다. 그렇게 플랫 앞에 도착했을 때에서야 그는 나직하게나마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했다. “그럼, 다음에.”








+)
왜 이런 차분한 글이냐면, 마형님 운전하는 모습이 좋아서 게이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 두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감각은 물론 여유까지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고,
치열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천천히, 꾸준하게 이어지는 인연 - 정말 어른의 관계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서로를 알아간다는 원제에 내 느낌을 더해 이렇게 옮겨본다. : ]



  1. Snow Patrol의 [Shut Your Eyes] 가사. 노래는 여기. http://goo.gl/1RYQS [본문으로]
  2. ‘You never really can tell with Sherlock.’ - 정확하게 알고 계시군요, 경위님. [본문으로]
  3. ‘Town Car’ - 드라마에서 나오던 그 차. 리무진이 좀더 익숙한 표현이라 이렇게 옮긴다. [본문으로]
  4. ‘He walks up the two flights’ - 원작도 BBC 셜록에서도 이렇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깨알같은 디테일. [본문으로]
  5. ‘So long as it ends with Lestrade getting to close his eyes at the end of it all, he doesn't much care.’ - 왠지 병신같지만 멋있…;;; [본문으로]
  6. ‘he's got great lovely dark circles under his eyes’ - BAMF다운 경위님의 이런 말투가 좋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