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Five Times Sherlock Had Coffee… and one time he had John instead
  • 저자: verityburns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3세 이상 (PG-13)
  • 길이: 단편 (약 7,100단어)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자신의 블로거이자 친구와 함께 사건차 해외로 나간 셜록은,
      런던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에 쉬이 묻혀졌던 생각들이 점점 더 모른척하기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습니다.
    - 이 글 뒷배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셜록 팬비드에게로 이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존잘 lotrfan2888님께서 흔쾌히 링크 추가를 수락해주셨어요: 셜록은 사랑한단 말 안해 [각주:1] 
      어떤 기분이었든간에, 이걸 볼 때면 말그대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
    - 교정을 맡아주신 조교이자 공범, 멋쟁이 arianedevere님께도 감사를!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verityburns.livejournal.com/16910.html



월요일


“대체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니까 - 난 독일어는 달랑 두 마디밖에 모르는데다, 총이라도 챙겨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너한텐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라구.”

그날의 첫번째 인터뷰를 위해 북적이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셜록은 휴, 한숨을 내쉬었다. 쓸모있다는 기분을 느끼고픈 존의 저 마음은 정말이지, 진짜로… 유감이란 말이지.

“근처 술집 가는 방향을 모르는 게 도움이 될지도요.” 한마디 하고는 흥, 코웃음치는 존에게로 작게 미소지어보였다.

“술집은 신경 꺼 - 내가 정말 바라는 건 제대로 된 차 한잔이라구. 호텔에서 나오는 그 뭣같은 물은[각주:2] 아주 그냥…” 부르르, 몸서리를 치는 존이었다.

“우린 여기 일하러 온겁니다, 존.” 셜록은 나무라듯 한마디 하고는 가던 길을 살짝 틀었다. “그런 사소한 건 사건이랑은 상관 없잖아요.”

존은 체념하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수그린 채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셜록과 부딪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대로 스타벅스를 지나쳐 걸어가버렸을 거다.

“미안.” 존은 자동반응처럼 중얼거렸다. 셜록은 데굴, 눈을 굴렸지만 눈앞의 커다란 건물을 쳐다보느라 존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는 희망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각주:3] 

“아아, 좋아요.” 셜록은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며 허락했다. “하지만 ‘테이크아웃’[각주:4]이에요.”

그는 밖에서 기다리며 존이 자기 마실 차에, 커피까지 한잔 더 사는 모습을 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어떤 케익까지 추가 주문하는게, 나눠먹자고 들 게 분명하다. 그는 피곤해보이는데다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기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죽자사자 마셔대려 들었던 해리 때문에 존 역시 현재진행형 위기 상황에 말려들고 말았었으니까. 석달쯤 지난 지금 그녀는 안정세에 들어선 것 같았지만, 그런 진전은 존의 최근 연애 사업에서 - 이번에는 여자였다 - 무심하다고 차이고 마는 사태를 방지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기도 했다.

“휴식이 필요한 거란다.” 셜록이 망설이며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을 때 허드슨 부인이 했던 말이다. “환경을 완전히 바꿔주는 거지.”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 독일에서의 산업 스파이 사건 의뢰가 들어온 거다.

그는 줄서 있던 여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존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기고는 잽싸게 ‘서둘러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얼마 전 그 멍청한 여자를 이제 막 치워버린 참이었다. 존이 다른 면에서 독일어 실력을 보여주고 있을 시간같은 건 없단 말이다.





화요일


“이거, 네가 좋아할 만한 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음 날 아침 길을 나서며 존이 한마디 했다.

“잠재학습이라도 시도하려는 건가요?” 셜록은 물었다. “걱정 말아요, 당신 차 한잔 살 시간은 있으니까.”

“또 스타벅스 가는 거야?” 기대하듯 들이미는 존이다. “머핀 맛있더라.”

“내가 거의 다 먹어버렸다고 뭐라 그랬잖습니까.”

“그럼 엄청 맛있었던 거겠네.” 대꾸하는 존의 미소는 최근 어느 때보다도 조금 더 환했다.

해리엇 왓슨에겐 과분한 동생이라니까, 셜록은 나란히 걸으며 되새겨 생각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추리긴 했지만. 이젠 마이크로프트에게 맡겨졌더라면 그녀가 어떻게 버텨냈을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그거 재미있는 생각인데그래. 그 둘, 정말이지 서로 잘 어울리는데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와 존은 자유로워… 셜록은 얼굴을 찌푸렸고, 걸음걸이도 살짝 흔들렸다. 마음 속 어딘가, 피붙이 노릇을 하는 존을 떠올리는 건 어쩐지 꺼려졌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존이 들어서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이 문제를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놓기로 했다.

“오늘은 네 몫으로 머핀 하나 사면, 먹을거야?” 그들이 줄 끝에 다다르자 존이 물어왔지만, 금세 자문자답으로 바뀌고 만다. “아니, 당연히 안 먹겠지, 나 무슨 생각한 거니? 그냥 하나만 주세요.” 그는 바리스타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고, 셜록이 유로 얼마를 건네주었다. 젋은 남자는 기분좋게 웃어보였지만, 갑자기 그의 관심이 옮겨가더니 완전 다른 미소가 온 얼굴에 퍼져나갔다. 여자친구님이 오셨군, 추리해내며 셜록은 채근하듯 그의 코앞에 돈을 흔들어 보였다.

“Entschuldigen Sie bitte.(죄송합니다.)” 바리스타는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 그는 다시 예의바르게 웃어보이며 주문을 처리했지만, 흘끔흘끔 뒷쪽을 향하는 시선에 존마저도 눈치를 채고 돌아보기에 이르렀다.

“아, 또 뵙네요!” 존은 소리높여 말을 건넸지만, 셜록은 여자가 인사에 답하기 무섭게 재빨리 그를 구석 빈 테이블로 끌고 갔다. 존이라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도 남을 줄 알았다니까; 어쩌면 독일보다 더 먼 데였어야 했던 걸지도.

“분명 묵을 만한 다른 호텔이 있을 거야.” 존은 스틱으로 머핀을 반동강 내며 한마디 했다. “이놈의 책 전시회가 아무리 크네 어쩌네 해도, 그것 때문에 몽땅 차버렸을 리가 없다구… 어딘가 분명히 빈 방 두개 있는 곳이 있을 거야. 달랑 하나 말고.”

셜록은 성마르게 손을 저어보였다. “난 찾아 돌아다닌다거나, 물건 옮기는 데 시간 낭비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 당신 군대도 다녀왔잖습니까; 방 하나 같이 쓰는 걸 가지고 그렇게 법석떨 것 까진 없잖아요.”

“문제는 방이 아니야, 침대라구.” 존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셜록은 인상을 팍 썼다. 그는 이 친구가 슬픔의 도가니에 빠진다거나 경솔한 관계같은 데 휘말리는 건 바라지 않았기에, 계속 지켜볼 요량으로 일부러 더블룸을 잡았단 말이다. 트윈 베드라는 그의 요구조건을 간과했다는 사실에 일종의 충격을 받기야 했지만, 다른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이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던 거다.

“좋아요. 내가 그렇게나 불쾌하다면 난 의자에서 자도록 하죠.” 그는 팩, 내뱉고는 물러나 앉으며 팔짱을 꼈다. “정말이지, 존. 같이 잘 사람을 고르는데 당신이 그렇게나 까다롭게 굴 줄은 몰랐네요 - 이제껏 봐온 증거들로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는데 말입니다.”

존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문란하진 않거든.” 셜록이 지난 14개월간 그의 모든 성경험을 줄줄 읊어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전혀 같은 게 아니잖아. 이봐, 네가 흥미 없다는 건 알고 있다구, 관계라든가 그런 것들에…”

“명백하잖아요.”

“그렇지.” 존도 수긍했다. “하지만, 정말이야. 실제로 같이 자는 사이가 아닌 사람이랑 잔다는 건 좀 이상하다구.”

셜록은 흥,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편의상 침대를 같이 쓰는 거랑 치정놀음으로 동침하는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겠죠?”

“그래, 알지. 하지만 네 몸이 네 머리랑 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걸.” 그는 갑자기 입을 딱 다물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테이블을 치우며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는 바리스타를 뒤쫓았다.

“무슨 뜻이에요?”

“아무것도 아냐.” 존은 고개를 흔들었다. “잊어버려. 아님 지우든가. 뭐든간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런 건 아무 일도 아닌걸.”

“뭐가 아닌데요?”

존은 눈에 띄게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이봐, 넌 관심 없으니까 상관 안하는거야. 만약 네가 잠결에 조금이라도 더… 다정하게 굴면 어떡할래? 아무 일도 아닌 거잖아. 난 알거든.”

다정하게 군다구요?” 셜록은 자신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묻어나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드르륵, 존이 갑자기 의자를 밀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그는 굳은 말투로 한마디 하고는 화장실 쪽으로 가버렸다.

셜록은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앉아 잠시 그의 말을 되새겨보며, 하던 일을 멈추고 존의 시선을 끌었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바리스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실제 여자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그리 되길 바라는 거야 불보듯 뻔해 보였지만. 셜록은 남자가 좀 서둘러서 여자에게 데이트라도 신청하길 기원했다. 존이 선수치기 전에.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발소리에, 셜록은 뒤를 돌아보았다.

“갈까?”





수요일


“아침마다 내껄 다 뺏어먹지 말고, 그냥 네 몫으로 머핀을 따로 사지 그래?” 존이 그릉, 투덜거렸다.

“당신이 그러길 바랬다면야 초콜릿맛으로 사왔겠죠 - 특별히 블루베리맛으로 사온 거잖아요, 내가 좋아한다는 거 아니까.” 셜록은 스스로에게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여느때같으면 존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먼저 생각해준다는 걸 굳이 말로까지 시인하려 들지는 않았었는데.

존은 그의 표정을 쳐다보고는, “피곤해서 심기가 불편한 거군.” 대꾸했다. “밤새 한잠도 안 자니까 그렇게 되는거야… 사건 때문인 척일랑 할 생각도 마. 관심도 없어보이는데다, 적극적으로 덤비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까. 네가 왜 이 건을 수락했는지부터 모르겠다구.”

“난 자주 밤새거든요.” 셜록은 곧바로 되받아치며, “그리고 가끔은 내가 돈 좀 되는 일을 받아오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건 당신이라구요.” 두 팔을 벌려 보였다. “그러니 이렇게 된 거죠.”

존은 가만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앞으로 몸을 숙이며 테이블에 두 팔을 올렸다. “이봐, 셜록. 난…”

“하지 마요.”

“아니, 할건데.” 존은 고집스레 말을 이었다. “우리가 꽤나 오랫동안 이 문제를 모른척 해왔지만, 더는 잘 안 돌아가는거야. 그렇지? 너 불편하잖아,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구. 때가 된 거라고 봐.”

셜록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두고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끊임없이 떠들고 험담하는 걸 무시하고 지내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고 있었다. 모두들 그와 존이 연애 관계로 접어드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마치 필연적이기라도 한 것처럼.[각주:5] 존마저도 그렇게 말했더라면, 셜록은 어떻게 버텨내야 했을지 알 수 없었다.

“네 형님이야 끼어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렇다 치고, 허드슨 부인은 구제불능 수준으로 로맨틱한 분이시잖아. 게다가 레스트라드가 넌지시 던져대던 말도 점점 은근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 - 원래부터도 섬세한 게 강점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존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네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등을 떠밀고 있는 거야… 그리고 지금 넌, 잠결에 나한테 달라붙기라도 했다가 내가 오해할까봐 두려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는 거고.”

셜록은 ‘달라붙는다’[각주:6]는 말에 코끝을 찡그리며 테이블 너머를 흘끔 바라보았지만, 존은 두 뺨을 붉힌 채로 시선을 들지 않았다.

“내가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 네게도 도움은 안 될 거야.”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른다. “사실… 그래, 사실은 가끔 내가 널 그런 쪽으로도 생각하거든, 어쩔 수 없다구.”

시인하는 이 한 마디에, 셜록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훨씬 전에 추리해낸 거긴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말로 듣는 건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존이 내심 생각하던 ‘그런 쪽’이 정확히 뭔지 궁금해지는 걸 막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하다거나, 네게 강요하겠다는 건 아냐.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니까.” 존은 재빨리 말을 이으며, 고개를 들고 셜록의 시선을 마주했다. “넌 내 친구고, 그거야말로 내겐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거니까. 그 이상의 무언가라고 하면, 넌…” 잠시 말을 끊는 품이, 비유할 말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람보르기니 같은 거랄까!”

눈썹을 치켜올리는 셜록의 모습에, 존은 쓰게 웃었다.

“끝내주는 거야. 동경할 수도, 그래, 그렇지, 가끔 갈망할 수도 있는…” 붉은 기색이 더 짙어진다. “…하지만 내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대상인거야. 아름답지만, 내가 가질 수는 없을 그런 거랄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하지만 셜록, 절대 네가 유혹한 건 아냐. 넌 처음부터 네 입장을 명확하게 해뒀고, 나도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 아니면  느끼는지도 - 잘 알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무시하고 사는 걸로 되돌아가자구… 부탁이니 자기 앞가림부터 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우정을 망치도록 하진 말자. 내가 절대 용서 안할거야.”

셜록은 존의 말에 응당 느껴져야 할 안도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차를 갈망해요?”

“아, 맙소사.” 존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자동차랑 섹스라도 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구.”

“그치만 당신, 나를…” 셜록은 당황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네거 리필 받아올게, 알겠지?” 존이 불쑥 말하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컵을 낚아챘다. 셜록은 여느때같으면 고개도 들기 전에 잘라버렸을 이상한 생각과 상상들이 머릿속 가득 채워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는 안을 휘 둘러보다, 지난 이틀 내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 여자, 갈 데라곤 없는 거였나?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가다가, 그 시선이 곧바로 존에게 향해 있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는 그대로 그쪽에 가서 눈앞을 막아버리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러 보고 다시금 좀더 집중해서 쳐다보고서야, 그녀가 실은 존이 아니라 카운터 뒤에서 바삐 일하고 있는 바리스타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셜록은 안도감을 느끼다 말고, 이내 얼굴을 구기며 젋은 남녀를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자는 분명히 남자에게 끌리고 있었지만 - 남자 역시 그녀에게 끌리는 것처럼 - 사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한숨이 나왔다. 관계라는 건 골칫거리일 뿐이라는 걸,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전혀 바라지도 않았다. 존이 친구로 남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사실은 아주 좋은 소식인 셈이다. 이제 존이 막무가내로 들이대거나, 한순간에 폭발해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자신할 수 있었다. 버럭 “됐다구!” 하면서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쳐세운다거나… 문이라든가… 나무라든가… 아니면 부엌 테이블이라든가… 그런 일도 절대로.[각주:7] 

그런 시나리오들은 걱정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치워버릴 수도 있었다. 존이 그런… 일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 것 따위로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 절대 그러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그냥 지금 이대로 해나가면 되는 거다. 최상의 결과인 셈이다. 셜록은 안심했다. 만족스러웠다. 그는, 굉장히 기뻤다.

분명 그랬다.





목요일


환하고도 쌀쌀한 아침, 이제는 사뭇 익숙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셜록은 옆에서 종종거리며 따라오느라[각주:8] 뺨이 살짝 붉어진 존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행복해 보였고, 근래 어느 때보다도 더 편안해 보였다. 이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사건으로 끌고 나오는 건 최고의 계획이었던 게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는 존의 눈빛이 더 밝게 빛나고 있는데다, 어쩐지 평소보다도 더 파랗고, 더… 

셜록은 곧바로 생각을 추스렸다. 이거, 점점 이상해져가는걸. 스타벅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주문하는 존을 두고 자리를 찾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예의 그 바리스타가 근무중이었고, 그는 지금 막 비워진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궁금해진 셜록은 그를 불러세웠다.

“왜 원하는걸 요구하지 않는거죠?” 그는 독일어로 물었다.

젊은 남자는 움찔, 놀란 기색이었다. “그 여자 말입니다.” 셜록은 재촉하듯 설명했다. “당신 그 여자 좋아하잖아요, 그 여자도 당신 좋아하고. 왜 아무것도 안 하는 겁니까?”

“전… 에…”

셜록은 알고 싶지 않은 거라 단정해버리기로 했다. 언제부터 이런 문제 따위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는 무시하듯 손을 저어보였다.

“신경 꺼요.”

그는 얼굴을 한껏 구긴 채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게는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존이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분의 음료와 - 이번에는 - 두 개의 머핀을 들고 돌아올 때까지 누구 하나 근처에 다가오려 들지 않았다.

“나 배 안 고파요.” 셜록은 불퉁하게 내뱉었다.

“음, 난 고파서.” 존은 커피와 블루베리 머핀을 셜록 앞에 툭, 내려놓고는, 테이블 위 그릇에 자신의 몫으로 초콜릿 머핀을 남겨둔 채로 차를 휘휘 저으며 ‘네가 툴툴거리는 것 따위 면역되었거든’ 이란 표정을 짓고 앉았다. 오늘도 예의 그 보기 싫은 스웨터 차림이군, 짙은 감청색이 정말 잘 어울리… 셜록은 인상을 팍 쓰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지난 밤, 가서 자라며 존을 달래어 보내놓고도 그는 사실 말똥말똥 깨어 있었다. 잠결에 ‘다정하게’ 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는 매트리스 범위 내에서도 존의 온기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비유적으로도 문자 그대로도 바짝 긴장해 있었던 거다. 덕분에 지금 그는 피곤했고, 원래 있던 대로 억눌려 있지만은 않겠다며 끈질기게 구는데다, 지워버리려 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 감정들 때문에 또렷하기 그지없던 생각까지도 모두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였다. 혹시 어디 안 좋은건가?

셜록은 자기 몫의 머핀으로 손을 뻗어 멍하니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몸이 안좋은 것 같다고 말해버리면 존이 진찰이라도 하려 들 텐데, 스스로답지 못한 상황인 지금에는 그게 매우 좋지 못한 생각같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의 이 ‘사건’ 정도로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특히 지난 몇 달간은 존에게 온통 집중해 있었더랬다. 그게 친구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의 자연스러운 행동일 테니까. 비교해볼 만한 다른 친구 관계 같은 게 있을리도 없었다.

“배 안 고픈거야, 응?”

존의 말에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니, 초콜릿 머핀 마지막 한 조각이 입술에 닿을락말락하게 들려 있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조각을 보고, 존을 한번 보았다가 다시 머핀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지손가락 끝에는 어느새 초콜릿 자욱이 남아버렸다.

그는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달디단 머핀을 자신에게서 돌려 존의 입으로 향하며, 존의 입술이 벌어지고 목덜미부터 붉게 물들어오르기 시작할 때까지 그대로 들이밀고 있었다. 보일듯 말듯한 존의 혀끝. 셜록은 손가락에 쥔 단것을 구실삼아 그쪽으로 손을 뻗었고, 막 입안으로 밀어넣을 참이었다… 그의 살갗에 묻은 초콜릿을 핥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하면서… 하지만 그때, 존이 갑자기 자리로 물러나 앉았다.

“네가 다 먹는게 낫겠어. 온통 만지작거렸잖아.”

셜록은 잡고 있던 머핀을 그릇으로 툭, 내려놓으며, 스스로의 가슴이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나 막 100미터를 달려온 것 같은 존의 숨결을 모른척하려 애써보았다.

“다른 거 갖다줄게요.” 불쑥 한마디 던져놓고 가게 절반쯤 가로질러 가서야 “그럴 필요 없어.” 라는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는 말없이 값을 치렀고,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때, 한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전 커피 전문점에서 일해요.”

그는 시선을 들었다. 부러 셜록에게 서빙하려 들지만 않았더라면 - 그런 티는 나지 않았지만 - 이 사람은 역사상 가장 흔해빠진 바리스타이고도 남았을 거다. “명백한 걸 굳이 말로 하는게 날 위한 새로운 서비스입니까. 아니면 전에 내가 물어봤던 것에 대한 한참 늦은 대답인가요?”

젊은 남자는 그날치 기력을 다 써버린 모양인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셜록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당신에겐 과분하다는 거군요.” 셜록은 단언하고는, “아니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든지.” 생각을 되짚어보며 지금은 자리에 없는 여자를 떠올려보았다. “대학교, 대학원생이고.” 그녀의 책들에서 어렵잖게 추리해낼 수 있었다. “인기있고, 친구도 많네요.” 존과 그렇게나 빨리 말을 트는 걸로 볼 때 새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기꺼운 거다. “매력적이기도 하고.” 그의 생각에… 여자로서는 그렇다는 거다. 바리스타를 쳐다보자, 남자는 다시금 어깨만 으쓱하고 만다.

“아름답지만, 가질 수는 없는 건가.” 셜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당신, 두려운 거군요.”

남자는 어깨를 폈다. “해볼게요, 당신이 한다면.” 셜록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한마디 하고는, 대신해줄 다른 바리스타가 오자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무슨 일인데?” 존이 따지듯 물어왔다. “너 말야, 내가 외국어 한마디도 못 한다고 해서 독일어로 무례하게 굴고 다녀도 모를 거라 생각하면 안돼. 쌩 하고 가버리는 거 보면 안다구.”

셜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음료를 두 사람분 다 들고 온 걸 보니 나갈 준비가 된 모양이다 - 아마 셜록을 너무 오래 혼자 내버려뒀다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되어버릴까봐 걱정했던 거겠지.

“별거 아니었어요.” 그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토요일까지 묵기로 되어있기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예상보다 더 큰 난국임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그가 이런 식으로 강제적인 친밀감을 느끼며 사는 데 어울리지 않는 건 분명하다. 생각을 헤집어놓기만 할 뿐이니까.

그는 여전히 괜히 더 피곤해보이고, 두 어깨에 지워진 패배감의 흔적이 엿보이는 존을 바라보았다. 양보하자, 셜록은 결정했다. 하루만 더. 그놈의 더블베드에서 하룻밤만 더. 잠들지 말고, 꾹꾹 눌러놓은 이 이상하기 그지없는 느낌들을 안고서.

딱 하룻밤만 더.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
제목은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우유보다 커피’라는 노래를 생각하며 옮겼다. [▶듣기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가버린지 오래인데도 아니라며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고,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려 해봐도 결국에는 연어마냥 ‘존’으로 돌아오고 마는 생각들이 사랑스럽다. 
아휴, 이런 철부지 셜로기. : ]



  1. ‘Sherlock Won’t Say He’s in Love’ - [헤라클레스]의 ‘I Won’t Say I’m In Love’를 차용한 것. 번역은 더빙판을 따른다. 애니메이션 영상은 여기: http://goo.gl/1X2DU [본문으로]
  2. ‘That swill in the hotel is just…’ - 깐깐하게~ [본문으로]
  3. 가… 강아지다?;; [본문으로]
  4. ‘To Go’ - 적절한 말이 없어 익숙한 표현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
  5. ‘as if it were inevitable’ - INEVITABLE! 당연하잖아? [본문으로]
  6. ‘snuggle’ - 포옥 안기는 느낌이라 좋아하지만, 남자들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서. [본문으로]
  7. …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본문으로]
  8. ‘was almost trotting to keep up’ - 존의 걸음걸음 뒤에 ‘종종’이라는 글자가 따라다니는 것만 같아.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