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저녁 | You Can Imagine the Christmas Dinners (3/8)





애러실리아가 돌아서서 트리 아래 놓여있던 작은 선물 더미를 들고 왔다. 순간 존은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셜록 선물은 - 문가에 있는 쇼핑백 안에 있는거 말이다 -  가져왔지만, 다른 사람들 선물도 챙겨왔어야 했던 거였나?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는데; 사실 애러실리아는 본 적도 없는데다 홀리의 진짜 이름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마이크로프트를 친구라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 그보다는 가끔 납치해가는 사람에 가까우리라. 이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선물을 사줄 만한 친분 관계라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의 인생에서 요즘 정상적이지 않은 게 수없이 많긴 하다.

홀리는 마이크로프트가 준 작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풀어보는 중이었다.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표정은, 존이 늘 봐왔던 침착한 직장 여성과는 전혀 달랐다.

“최신 모델이지.” 마이크로프트의 나직한 한 마디에, 홀리는 탄성을 올리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주문 제작했어. 딱 하나뿐인 거지, 당신에겐, 꽤나… 유용할 거라 생각해. 어떤 차든 시동을 걸 수 있고, 전기 장치라면 10미터 반경 내에서 제어할 수도 있어. 켜져 있는 폰이라면 위치 추적도 할 수 있지 - 다른 사람 것도. 음, 차라리 무서운 기능들이라 해야 하려나.”

홀리는 새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흐응,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 외에 추가할 게 필요하다면 알려만 줘, 그러면 Q에게 바로 처리하게 할 테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덧붙이는 말에, 존은 픽, 코웃음을 쳤다.

“Q? 진짜요?”

“쿠엔틴 블리클리. 우리 기술팀 사람입니다. 난 그를 Q라고 부르고, 그는 날 M이라고 부르죠… 우린 이런 작은 농담을 퍽 좋아해서요.” 마이크로프트가 쿡쿡,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존은 씨익 미소지었다. 오늘 밤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농담이란 게 뭔지 알기나 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가 꽤나 괜찮은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임스 본드?”[각주:1] 셜록이 느릿느릿 끼어들었다. “존이 억지로 다 보게 하더라구. 인기에 목맨 이야기던걸, 대체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줬는지 모르겠다니까.” 

존은 데굴, 눈을 굴렸다.

“뭐, 우린 늘 네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니까.”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시신에서 손톱 자라는 걸 잰다든가, 멜론에다 여러 가지 독극물을 주사해넣는다든가 하는 거지. 제레미 카일 쇼를 몇 개씩 본다든가.[각주:2] - 여러 가지 중에서 그게 제일 최악이라구.”

셜록은 비웃었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번 판은 자신의 승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는 존이었다.

애러실리아는 무릎에 올려둔 포장지 사이에서 온통 복잡하게 수놓아진 실크 스카프를 집어들었다. 저것 역시 마이크로프트일 테다. 그녀는 흐뭇하게 펼쳐서는 자신의 목에 휘감았다. 아마 내가 가진 그 무엇보다도 비싼 거겠지, 존은 내심 생각했다.

“아, 얘야. 근사하구나.” 그녀는 말했다. “네 패션 감각은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니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말을 받았다. “돌아가면 베이커가에 새 옷이 있을 게다, 셜록.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야[각주:3] 네 봄 코트는 조금 덜 화려한 스타일이 어떨까 싶긴 했다만, 네가 휘날리고 다니며 드라마틱해 보이길 좋아해 마지않는걸 알잖겠니.”

셜록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생활 방식과 말도 안되게 잘 빠진 디자이너제 옷차림의 간극이 완벽하게 꼭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고맙다고 해야지, 얘야.” 애러실리아가 재촉했다.

“-ㅏ워.”[각주:4] 셜록은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올해에는 누군가에게 선물해줬니?” 가볍게 물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존.” 그는 여전히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고, 존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크리스마스 기간만큼은 플랫에서 실험같은 건 절대 안 하기로 약속했어요. 물론 221C까지는 지켜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아래선 폭발하는 소리가 조금 덜 들려오긴 하거든요.”

“아냐, 너 줄… 다른 것도 있어.” 그 말과 함께, 셜록은 조금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의자들 중 하나의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어놨던 코트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더니 존의 손에 턱, 쥐어준다. 그것은 신문지 조각으로 둘둘 싸여 있었다.

“포장지 멋지구나.”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럽게 한마디 하자,

“신문지는 물건을 싸기에 완벽하게 적합한 소재거든.” 셜록이 팩, 쏘아붙였다.

존은 조심스레 포장을 열어보았다. 셜록이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는 건 아마,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손조차 대기 싫을 만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뭘 생각해야 할지도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니까. 어쩌면 누군가의 귓불일지도.

까만 표지에 J.H.W라는 이니셜이 박힌, 주문 제작한 몰스킨 노트였다. 존은 글씨를 엄지손가락으로 어루만져보았다.

“마음에 들어?” 기다렸다는 듯 묻는 셜록. 존은 그의 눈빛에 잠깐 스친 불안함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렸을지 알 수 없었다.

“완전 좋은걸, 셜록.” 그는 활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사건 메모할 때 써.” 셜록은 설명했다. “그리고 네가 쓰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다. 이젠 그 끔찍한 블로그에는 더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구. 이 세계도 무사할 거야.”

존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지만 그러면 아무도 못 읽잖아. 그러니까 블로그를 쓰는 거지, 셜록.”

“난 읽을 수 있는걸.” 작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존은 의아한 듯 바라보긴 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너 줄 거 있어.” 그는 벌떡 일어나 방 저편에 있던 쇼핑백을 가져왔다. “별로, 난… 너 줄 거 고르기가 꽤나 어렵더라구.”

“선물에 대해서라면 아무 조건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셜록은 존이 건네는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래, 딱 그렇지. 그래서 너 줄 거 고르기가 어려운 거거든.”

셜록은 재빨리 포장지를 뜯어버렸고, 우주의 별자리에 대한 커다란 책을 발견하고는 눈을 데굴, 굴렸다.

“안에 별자리표도 들어있어.” 존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덧붙였다.[각주:5] 

“어째서 나한테 별자리표가 필요한 건데.” 분했는지, 셜록이 한마디 했다.

“중요하거든. 아, 사실 팝업 그림도 있을거야. 너한테 좀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어쨌든, 너도 별 감상할 줄은 안다며.”

“감상할 줄은 알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구.” 셜록이 대꾸했다. 전에 이런 대화를 했던 때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그 지난번에도. 그 지지난번에도.

“음,” 존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때로는 우리가 감상하는 것들이 중요해지기도 하거든.”

셜록은 놀라 눈을 들더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존은 불편하게 고쳐앉긴 했지만 눈 하나 깜박 않고 그대로 마주보았다. 셜록의 머릿속 기어가 돌아가는 모습이라도 보일 지경이었다.

“알았어, 그런 것 같네.” 셜록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갑자기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예의 그 - 존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 이상하고도 무심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눈으로 페이지를 샅샅이 훑어내렸다.

“크리스마스를 구실삼아 셜록에게도 상식이란 걸 조금이나마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미에게 물어봐, 정치][각주:6]라도 한 권 사줬을 텐데요.” 마이크로프트가 은근슬쩍 한마디 건넸다.

“정말 사려깊군요, 존.” 애러실리아가 다정하게 한마디 했다. 셜록이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만회하려 하는 게 명백해 보였다. 이미 꽤나 익숙해져버린 존이야 딱히 신경쓰지 않았지만. 애러실리아와 홀리는 칠리 초콜릿을 두고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애러실리아가 홀리에게 준 선물로, 둘은 지금 당장 열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 슬슬 가봐야겠어요.” 셜록이 불쑥, 책을 덮으며 소리내어 말했다.

“아, 아니. 안되지. 얘야. 너희 오늘 밤은 여기서 묵는거란다. 그리고 셜록, 나한테 뜨개질 배우라고 해놓고 내 노력의 산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 안되잖겠니.”

셜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트리 아래 놓인 두리뭉실한 꾸러미를 끄집어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들릴듯 말듯 대답했다.

“아. 어머니 설마.” 

존은, 애러실리아가 모두에게 꾸러미를 들이미는 순간 마이크로프트 역시 퍽 당황한 듯한 표정이라는 걸 눈치채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영 난처해졌다; 엄마 홈즈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아보고, 와인이나 뭐 그런 거라도 보내드려야겠는걸, 그는 생각했다. 이왕이면 독이 들지 않은 걸로.[각주:7] 

“내 아들들에게 주는 스웨터란다, 내가 짠 스웨터!” 그들이 각자의 선물을 풀어보는 순간, 그녀는 유쾌한 탄성을 올렸다. 존은 자신이 방금 꺼낸 회색에 푸른색 섞인 모직물 덩어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모양은 제멋대로에 헐렁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스웨터이긴 했다. 심지어 케이블 뜨기를 시도해본 것 같아보이기도 했고. 

“이건 …굉장하네요.” 그는 머리 위로 덮어쓰듯 입으며 말했다. “잘 맞는 스웨터, 정말 좋아합니다.” 너무 크긴 했지만, 존은 항상 그거야말로 제대로 된 겨울용 스웨터의 상징이라 생각해왔다. 그는 애러실리아에게 환하게 웃어보였고, 그녀는 자신이 애써 만든 작품을 알아봐주었다는 데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의 오른쪽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연보라색?!”

셜록은 앞면에 붉은색으로 ‘S’가 커다랗게 박혀 있는 탁한 자줏빛 스웨터를 들고 서 있었다.

“넌 연보라색이 잘 어울린단다, 얘야. 한번 입어 보렴, 잘 맞나 보자꾸나.”

“그래, 입어봐, 셜록.” 갈색 ‘M’이 박힌 오렌지색 스웨터를 입느라 살짝 잦아든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거든다. 그가 머리를 빼내는 데 성공했을 때, 존은 눈앞에 선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모습에 키득거리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정부의 최고 책사님[각주:8]께서(그게 공식적인 호칭일 리야 없겠지만, 그는 내심 생각했다), 화사한 오렌지색 부숭부숭한 스웨터를 입고 있는 모습이라니.

자신 몫의 스웨터를 입은 채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셜록의 모습 역시 전혀 도움은 안 되었다; 거의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인데다, 입느라 온통 헝클어진 머리카락까지. 딱 심통난 꼬마아이같아 보이는 거다. 존은 지금 이 순간 레스트라드와 팀원들이 저 위대하신 셜록 홈즈님의 모습을 본다면 뭐라 할지 상상해보자, 가슴 속에서부터 웃음이 막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Artwork by 오정이

소리내어 웃는 것만큼은 잘 참아내고 있던 그였지만, 이미 어쩔 줄 몰라하며 숨죽여 웃어대느라 얼굴에 눈물까지 흘러내리고 있는 홀리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더는 참을 수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애러실리아와 마이크로프트 역시 합류해 버렸다. 모두들 옆구리가 아프도록 웃어댔다. 셜록마저도 예의 그 낮은 웃음소리로 - 늘 얼굴 반쪽에서 나오는 소리에 나머지 반쪽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 합류할 때까지.

마침내 다들 키득거리는 걸 멈추고 - 물론 애러실리아가 스웨터 차림인 채로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며 포즈를 취하게 하고 난 다음이긴 하지만 -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어쩌죠.” 존은 홈즈 부인에게 미안해하며 말을 꺼냈다.

“아, 정말 괜찮아요. 게다가 난, 셜록이 이제 자신을 챙겨줄 사람을 찾았다는 게 기쁘기만 한걸요. 선물은 그것만으로도 올해 내내 충분하고도 남는답니다.” 그녀는 생글, 미소지었다. 셜록은 뾰로통 입을 비죽거리며 스웨터 안쪽으로 다리를 모아, 무릎을 세워 앉았다.[각주:9] 

“음,” 존은 대답했다. “셜록도 저를 아껴주는걸요,”

“그런가요?” 마이크로프트가 묻더니, 손가락을 한데 모으며 - 바로 그 동생을 연상시키는 그 자세로 -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흥미롭군요… 계속해 봐요.”

“으음. 에, 저에게 차도 한번 타 줬어요.”

마이크로프트는 흥,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제가 소파에서 잠이라도 들면, 보통은 셜록이 코트를 덮어주곤 하죠.” 존은 생각하면서 그대로 소리내어 말했다. “제가 의학 학술지를 탐독할 때면 조용한 분위기를 바란다는 걸 그는 늘 알아요. 어떻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악몽에 시달릴 때도 알아차리고는, 진정할 수 있게 바이올린을 켜주곤 해요.” 

셜록은 곧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치챘을 줄은 몰랐는걸.”

존은, 셜록이 자신을 위해주는 수백가지의 사소한 방법들을 떠올려보느라 여념이 없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명백하게 보여주었다니. 그는 가슴 속에서 퍼져나가는 묘한 온기를 느꼈다.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면, 제가 면이랑 밥을 반반으로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요. 냉장고에 신체 일부분을 둘 때에는 음식과는 다른 칸에 넣는 걸 배우기도 했죠, 엄청난 발전이에요. 그리고 명백하게도, 가끔 제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요.”

사실은 가끔 이상이겠지만, 그는 생각했다. 전에는 - 온통 회색 가득한, 평범해 빠진 예전 그의 일상에서는 필요하지도 않았던 거다. 존은 이 이상한, 청회색 눈동자에 정교하게 각진 광대뼈를 가진 - 그저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드라마같은 일이 끊이지 않는 이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걸, 좀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사실은, 여러 면에서 절 구해주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나직하게 덧붙였다.

셜록은 그를 홱, 돌아보았고, 존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는 눈이 미세하게 커지는 걸 보니 그의 말 너머에 숨겨진 의미들까지도 모두 읽어낸 게 분명했다. 이번만큼은 그도 재빠르게 응수해오지 않았다. 존은, 어떻게 다음을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팔을 뻗어 셜록의 손을 잡았다. 천번쯤은 해봤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을 얽자, 수줍은 미소가 답으로 돌아왔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요오오오오오!” 홀리가 그들 쪽으로 새된 소리를 질러댔다. 조금 과하게 마신 셰리주의 영향인 게 분명했다. 존은 그녀를 흘겨보려 했지만, 얼굴 가득한 미소까지는 지워낼 수 없었다.

“전 홀리를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엄마.” 마이크로프트가 걱정스러운 듯 자신의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취해서 트위터를 하려 들 텐데, 그러다 어떤 국가 기밀이 새어나갈지 모르잖아요.”

홀리는 그를 향해 혀를 쏙 내밀어보였다.

“아, 말도 안 되지, 마이크로프트.” 애러실리아가 소리높여 대꾸했다. “여기에도 홀리가 자고 갈 만한, 완벽하게 괜찮은 침대 있잖니. 파란 방에서 묵으면 되겠네; 숙취로 깨어날 때면 그 방이 제일 진정효과가 좋은 것 같더구나. 그리고 너도, 제멋대로 크기만 한 이 집에 날 남겨두고 런던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안되는 거잖니. 오늘 저녁, 크리스마스엔 안돼!”

휴, 한숨을 내쉬는 마이크로프트였다.

“가끔은 제가 가장이라도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도 있을 거지, 셜록?” 어머니가 그에게 묻는다. “너랑 존 방도 비워놨으니까, 잠깐 같이 가서 이불 펴는 것만 좀 도와주면…”

존은 훅,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홈즈 부인이라면 자신과 셜록을 각방에 둘 생각같은 건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갑작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존이 괜찮다면…” 대답하면서 셜록은 머뭇머뭇 그를 쳐다본다. 존은 자신의 눈동자에 비칠 충격과 공포를 숨기려 애쓰며 (그닥 잘 되진 않았겠지만) 천천히 주억거렸다.

“네, 그거… 그러죠.”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피란 피는 모조리 얼굴로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대부분이라고 해두자. 그릉, 낮은 신음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지만 그 이유가 절망인지 갈망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셜록과 함께라면 그 두 가지의 경계선을 구별하긴 어렵게 마련이니까.

“잘 됐네요. 그거 정말 좋겠는걸요, 어머니.” 셜록이 조금은 사악하게 씨익,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존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표정이다. 런던의 거리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한주 내내 쫓던 범죄자에게 접근해가던 그때와도 같은; 이런 사실을 깨달아봐야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러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셜록 역시 따라 일어나 나갔다. 여전히 터무니없는 스웨터 차림으로,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 온 세상이 마냥 신기한 꼬마아이처럼. 사실 그렇기도 하지, 존은 생각했다. 그는 두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 곧 저 인간과 한 침대를 쓰게 될 예정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생각을 떠올려 보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의 플랫메이트. 동료. 가장 친한 친구. 뭐라 부르든간에, 셜록과 말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느릿한 박수 소리에 돌아보자, 마이크로프트가 가볍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브라보, 존. 아, 정말 멋지군요.” 그는 말했다. “하마터면 믿을 뻔 했습니다. 엄마는 속아넘어가신 게 분명하군요. 당신, 정말 저애와 한 침대를 쓸 겁니까? 극도로 감명받았다고밖에는 할 수 없겠는걸요.”

존의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마이크로프트, 무슨…?”

마이크로프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손을 저어보였다.

“아, 당신 정말로 내가 두 사람이 커플이라 생각한다고 믿진 않았겠죠? 나에게도 신뢰란 걸 좀 보여줘봐요. 지난 9개월간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눈치챘어야 마땅하겠죠. 오늘 밤에는 셜록을 위해 따라 주다니, 친절하십니다.” 

존은 멍해지는 기분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도움이라도 구해보려 홀리 쪽으로 눈을 돌려봤지만, 운나쁘게도 그녀는 쿠션에 침까지 흘려가며 제대로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 당신은 우리가 커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는 이제 완전히 혼란스러워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데굴, 눈을 굴렸다.

“당연히 아니죠, 존.”

존은 소리를 질러야 할지 소리내어 웃어버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두들 둘이 사귀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 오후 내내 셜록과 사귀는 척을 했는데, 실제로는 생각이란 걸 해본 사람도 얼마 없었던 모양이다 - 홀리와 마이크로프트는 빼고. 그는 애러실리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 아니면 그녀 역시도 거들어주고 있었던 것 뿐일지 의아해졌다. 모두들 그냥 거들어주고 있던 건가? 셜록은 어땠지? 자신은?!

“하지만 당신, 그애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마이크로프트는 말을 이었다. “그애에게도 같이 놀아줄 친구 몇 명쯤은 있는 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그애가 우리에게 드디어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말할 때 어찌나 자랑스러워보이던지요. 당신이 그애에게 이타심이라도 가르쳐준 것처럼 들려서 꽤나 흥미로웠죠.”

존은 여전히 물고기마냥 뻐끔거리고만 있을 뿐, 뭐라 말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섰다.

“죄송, 죄송해요.” 마침내 더듬거렸지만 말하는 데 성공했다. “제가 지금 막 소설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버려서 말이죠.”

마이크로프트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애가 골라준 선물, 꽤나 흥미롭더군요. 확실히 보여주고 있더군요.” 

“어떤 면에서요?” 존은 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뭔가 추리해내는 거야 홈즈 가 사람들이 하면 되니까.

“소유욕 강한 거죠.” 마이크로프트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왔다. “셜록은 제 장난감을 절대 나누는 법이 없었거든요.”

“무슨 뜻입니까?”

“그앤 이미 당신의 시간과 관심 모두를 독점하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그애가 뭐라도 하는 순간부터는 블로그에 더이상 쓸 수 없게 될 걸요. 당신의 생각들 모두 그애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거죠. 그애 혼자만을 위한.”

존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셜록만이 읽을 수 있다는 걸 안다면 뭘 쓰게 될지 상상해보았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각주:10] 
“어쩌면 그중 몇 가지 정도는 그래야 할 것 같군요.” 마침내 꺼낸 대답. 마이크로프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존이 다음 말을 잇길 기다리기라도 하는 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마이크로프트.”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서 제 남자친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안녕히 주무시길.”

벙벙해진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존은 복도로 느긋하게 걸어나갔다.








+)
S2-1 덕분에 주초를 날리고 4일 내내 철야를 뛰었는데, 이번 주엔 또 어떻게 버티나…
그나저나, 대문짝만하게 이니셜 박힌 스웨터 입은 셜로기랑 마형님, 상상만 해도 귀엽다!
존에 빙의해서 낄낄-, 은근은근 므흣한 셜로기의 시선에 꺄아- 하고 음흉(?)한 마형님에게 오오- 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주말 저녁을 충전하고, 힘내서 또 한 주를 살아내야지 : ]
  • 그림: 오정이님께서 귀염둥이 스웨터뭉치(?)들의 커플샷을 그려주셨어요! :D



    1. M은 007의 상관, Q는 비밀무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의 암호명. 딱 어울린다 : ) [본문으로]
    2. 셜로기 취향이었니? -_-?;;; 자세한 내용은 여기. http://goo.gl/YeQDE [본문으로]
    3. ‘in the name of practicality’ - 3편의 우산 토론 참고. 실용적인게 좋다던 셜록이니까 :P [본문으로]
    4. “’nks,” - Thanks라는 짧은 한마디마저 우물우물. 이런 초딩! [본문으로]
    5. [지긋지긋한 일상 탈출법] 2편 참고. 잠들기 전에도 깨어나서도 셜록 생각만 하는 존♡ [본문으로]
    6. ‘Politics for Dummies’ -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사준 사람이 중요한거죠! [본문으로]
    7. 1편, 애들러가의 선물 이야기 참조. :P [본문으로]
    8. ‘Governmental Manipulator Extraordinaire’ - 호칭 느낌 살려서 옮겨본다. [본문으로]
    9. 스웨터로 온 몸을 감싼 뾰로통 셜로기, 상상만 해도 귀엽다 >_< [본문으로]
    10. …저기, 당신 뭘 쓸 생각인건데!;;;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