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저녁 | You Can Imagine the Christmas Dinners (4/8)





그는 셜록과 홈즈 부인이 사라진 쪽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다가, 윗층으로 가는 첫번째 계단을 딛고서야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 저쪽 끝방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존은, 셜록의 목소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수많은 걸 보여주는 눈이 흥미를 끌었어요. 어머니도 그 사람 얼굴에서 생각이란 생각은 모조리 읽어내실 수 있겠죠. 당연히 싫증이 나야 마땅한데, 아, 지긋지긋하고, 따분하고, 따분하잖아.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어머니. 왜 그런거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 처음 봤을 땐 평범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존은 두 사람이 그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기만을 바라며 벽에 착 붙어섰다. 셜록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마디 한마디가 모욕적이긴 했지만, 거기엔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셜록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중얼거림과, 불현듯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간질간질한 온기에 온 신경이 쏠렸던 거다.

“-좋은 사람이거든요,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충정이 깊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면에는 대조적으로 어두운 면도 가지고 있죠. 위험과, 파괴를 향한 갈망. 그래서 그 사람이 내게 끌리는 거겠죠, 당연해요,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난 누구보다도 환하게 불타오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런 거라면, 불꽃이 나방의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뭐죠? 그저 따뜻한 거, 앞을 비춰주는 건가요? 아니면 소비하고, 탐하고, 망쳐버리고 마는 면일까요? 나 때문에 그 사람이 망가지게 둘 순 없어요, 그냥, 그럴 수 없다구요.”

“어쩌면 넌 스스로의 힘을 너무 과신하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셜록.” 애러실리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그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누가 그러든? 반대일 경우는 성립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겠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람이, 날 망가뜨린다구요?” 셜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불가능해요.”

“그러면, 이런 대안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지금, 넌 예전처럼 혼자이던 때로 되돌아갈 수 있겠니?”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발소리와 함께, 베게라도 툭툭 치는 듯한 토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순 없어요.” 셜록이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되지 않아요. 날 망가뜨리기엔 그 사람, 너무나도 좋은 사람인걸요. 그럴 거라고도 생각 안 해요.”

“음,” 애러실리아의 대답. 조금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사랑에 빠지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니까, 셜록.”

“난 아니거든요.”

얼마간 침묵이 흘렀고, 두 사람이 이불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데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도저히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의 본심을 듣는다는 건 너무나도 유혹적인 기회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그 사람 허락하신 거라 생각했는데요.” 셜록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렇지.” 그녀의 대답에 이어, 셜록에게 키스해주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뺨에? 이마일까?[각주:1]
“난 그저, 네가 푹 빠져버리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확신부터 가지길 바라는 것 뿐이란다.”

셜록은 혼란스러운 듯 끄응, 소리만 낼 뿐이었다.

“지금은, 그러기엔 좀 늦은 것 같은데요, 어머니. 꽤… 오래 전에 빠져버렸는걸요.”

“아아, 그랬지.” 그녀가 되물었다. “이제 사귄지 몇 달이나 지난거지?”

“아, 기억 안 나요.”

보다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한 데 실망하는 존이었다; 이 가상의 관계가 정확히 얼마나 된 건지 궁금해 죽겠었던 참인데.

“자, 마무리는 네가 해주렴, 셜록. 난 가서 마이크로프트가 홀리를 침대까지 데려다주는 걸 도와줘야겠구나. 존을 올려보내도록 할게.”

문이 열리고 애러실리아가 나오는 순간, 존은 벽에 붙은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숨을 데도, 갈 데도 없으니, 현장에서 대놓고 딱 걸려버린 당혹스러움에 움츠러들며 그림자 안쪽으로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잠깐 이야기할까요, 존.” 그녀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한마디 건네왔다. 멈추지도 않고, 알고 있었다거나 놀란 기색 따위 하나 없이 지나쳐가면서. 두려운 마음이 커져가는 걸 느끼며, 존은 그녀를 따라 복도 몇 개를 지나 화려하게 꾸며진 방 - 그녀의 침실일 거라 생각했다 - 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휙, 돌아서서 등 뒤로 문을 닫으며 그를 마주보았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애러실리아. 죄송해요, 전-”

“아, 그런 소리 말아요.” 그녀는 존의 말을 딱 잘랐다. “누구라도 그랬을걸요. 나였다면 두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알아야 할 건, 당신이 내 아들과 사귀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에요.”

존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당신에게 확신이 없다면, 더 이상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요. 저애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존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당신은 알고 있다는 거죠?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 당연히 두 사람이 커플이 아니란 것쯤은 알죠.” 그녀는 성마르게 손을 저어보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기 직전이잖아요. 그게 기본 계획이기도 했으니, 당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거에요.” 

“하지만… 마이크로프트 말로는 당신이…” 존은 완전히 어리벙벙해지는 걸 느꼈지만, 오늘 오후에 처음 겪는 일도 아니긴 했다.

“아,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와 나 둘 다, 당신에 대해 이야기한 걸 믿는다고 생각하더군요. 마이크로프트는 저 혼자 그앨 믿는다고 생각하고. 두 녀석 다 잘못 생각한 거죠, 늘 그렇듯이.[각주:2]

“하지만 어떻게…?”

“셜록을 주시하고 있는 건 마이크로프트뿐만이 아니거든요, 존. 나도 그 아일 걱정하고 있답니다.”

존은 믿기지 않아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마이크로프트가 우리가 커플 아니란 걸 안다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는 거죠?” 그는 물었다. “왜 알고 계신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건가요?”

“내 아이들에 대해 당신이 잘 모르는 게 한 가지 있거든요. 그애들은, 날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려 들 거란 사실이죠, 항상 티를 내진 않지만요.” 애러실리아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셜록이 이런 거짓말을 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당신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을 떠올리며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마이크로프트나 내게 이야기할 때마다 만끽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두번째는, 그러면 내가 자랑스러워할 거라 믿었던 거겠구요. 그애에겐 사실을 알고 있단 건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앨 자랑스러워한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존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물었다.

“그럼, 셜록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나요?”

“사실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고 있죠.” 그녀는 그게 말이나 되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앤 보통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애가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애착과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었죠. 하지만 왓슨 선생님, 당신이 나타나서 바꿔버린 거에요.”

그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하지 않았던 건,”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앤 내가 셜록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그리고 셜록이 내가 자랑스러워한다는 데 기뻐한다는 걸 안다는 것 자체를 기뻐하기 때문이죠… 그애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럼 마이크로프트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 그애에게도 감시를 붙여 뒀으니까요.[각주:3] 당연히 그앤 알 리 없으니, 이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존은 몰려드는 피로감에 눈을 부비며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불현듯 서로의 모든 행적을 감시하고, 줄창 서로를 앞서지 못해 안달이 난 - 이 말도 안되는, 100% 사기뿐인 수상한 가족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되어버린 탓이다.

“그러니까 계속 이대로 하시겠다는 거네요.” 목소리에 묻어나는 신랄한 말투는 감출 수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물고 물린 거짓말 투성이에 실은 누구 하나 믿고 있지도 않은, 이 소설 같은 상황을 말이죠.”

“그럴 리가요.” 애러실리아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 소설이 사실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여러모로 훨씬 더 수월하고 좋아질 거라 판단한 거에요.”

존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마주보았다. 아랫층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완전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계산적인 철회색빛 눈동자, 어느 모로 보나 셜록 홈즈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아들과 닮았다면 - 누가 봐도 확연할 자신의 행동에서의 ‘천재성’을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란 사실을 잘 아는 존이기에, 그는 다음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당신과 셜록의 감시 영상 말인데요, 마이크로프트와 난 같은 걸 보긴 했지만 서로 조금 다른 결론을 내렸어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 물론 정확하게 - 두 사람이 실제로는 사귀는 게 아니라는 걸 추리해냈죠. 나 역시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요.”

“그런데요?”

“내 아들들 만나봤잖아요, 존. 둘 다 감정보다는 사실이나 수치로 이야기하는 데 능숙하다는 걸,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걸요. 운좋게도 난…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할 줄 안다고 해두죠. 그래서 난, 두 사람이 스스로의 감정을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각자가 깨닫게 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지었구요.”

그녀를 바라보며, 존은 자신이 애러실리아 홈즈라는 사람을 완전히 얕잡아보는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셜록은 논리 하나는 끝내주는 훌륭한 탐정이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의 감정이란 것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무시무시하겠지, 딱 지금처럼. 그는 생각했다.

“존,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식구들이 가진 재능은 조금씩 다르게 드러나보일거에요. 셜록이 사실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마이크로프트는 사실을 조종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난… 음, 사람을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네요.[각주:4]”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멍해져서 고개만 저을 뿐,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존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앉더니, 아까 아랫층에서 만났던 그 여인의 모습 그대로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기분이 어때요?”

“전…” 그는 적절한 말을 떠올려보려 했다. “조종당한 기분이네요.”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다리를 놓아주는… 거라 생각해주면 좋겠네요. 내가 큐피드인 셈 치자구요.”

존은 흥, 코웃음으로 대꾸했다.

“아 네, 그러죠. 제대로 의뭉스럽고 사악한 큐피드로요.”

애러실리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러면… 하지만… 셜록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건가요?” 존은 어쩐지 필사적으로 묻고 말았다. 무슨 이유에서건간에, 셜록마저 이 계략에 동참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셜록은, 당신에게 진심 그 자체였다고 확신해요. 당신이 우리의 이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당연하죠.” 존은 재빨리 대꾸했다.

“하지만 당신을 여기 데려온 원래 목적으로 되돌아가보자면 – 정말 확신하나요, 존?”

“이거 혹시 ‘그애 마음 아프게 하면 넌 죽을 줄 알아’ 류의 대화인 건가요?” 존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애러실리아는 아무 대꾸도 없었고, 가늘게 뜬 눈으로 차분하게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 그는 대답했다. “음,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그래요, 확신합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 제가 확신이란 걸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겠네요.”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곧바로 문을 열었다. 존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가 봐요, 얼른.” 그녀는 말했다. “당신, 방문해야 할 방이 있을걸요.”[각주:5] 

존은 쿡쿡, 웃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돌아보고는, 

“이 일로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아직 결정은 못 했어요.”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음, 고마워요. 적어도 스웨터만큼은요.”

그녀는 미소로 답했다.

“당신 정말이지 특이한 사람이에요, 존 왓슨 씨.”

그 말과 함께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몇 번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존은 왔던 길을 따라 복도를 거슬러 되돌아갔다.








+)
두둥~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홈즈 가의 크리스마스 저녁!
아들들이 아무리 날고 뛰어 봐야 결국에는 어머님 손바닥 안이더라, 라는 평범한 진리가
홈즈 가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편이다.
마이크로프트나 셜록같은 인재(人材? 人災?)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건 아닐 테니까 : ]



  1. ‘cheek? Forehead?’ - …그게 왜 궁금할까? *-_-* [본문으로]
  2. ‘Both of them are mistaken about me, as usual.’ - 네, 어머니가 짱이십니다… [본문으로]
  3. ‘Oh, I keep surveillance on him, too.’ -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본문으로]
  4. ‘Sherlock is an observer of facts. Mycroft is a manipulator of facts. And I… well, I am a manipulator of people’ – 뛰는 셜록 위에 나는 마이크로프트, 그러나 최종보스는 엄마. -_-)b [본문으로]
  5. “I believe you have a Holmes to go to.” – Home과 Holmes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말장난. 가야 할 집(Home)과 봐야 할 사람(Holmes)을 섞어낸 표현이라 발음과 공간, 의미를 고려해서 나름 의역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