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Secret Valentine
  • 저자: imperfectcadenza + 역자: PasserbyNo3 
  • 등급: 9세 이상 (K+)
  • 길이: 단편 (약 2,5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발렌타인데이, 셜록은 생각보다 자신이 사랑이란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습니다. 
     - 뻔뻔하리만치 달달(fluffy)해요; 이 글을 읽어주는 친절한 독자를 위한 저의 발렌타인데이 선물입니다. 즐감!
  • 역자 주석: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 http://www.fanfiction.net/s/6736586/1/



그리웠던 2월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차갑지만 환하고, 빗속에서 흐릿하게 보여도 모든 것이 대체할 수 없을 만큼 명확했다. 나무들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존과 살면서 맞는 첫 번째 2월, 모두가 다 똑같이 느끼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존에게 2월은 따뜻하고 포근한, 낙낙한 니트 스웨터와 코코아 같은 계절이다. 그리고 2월엔…

발렌타인 데이가 있다.

“카운터에 있는 가엾은 남자에게까지 줄 생각이에요, 아니면 그냥 가판대를 몽땅 쓸어온 건가요?”
나는 주방 탁자를 지나며 말을 걸었다.

존은 흘깃 쳐다보고는 잡고 있던 카드를 찡그리며 바라보았다. 그는 탁자를 아예 작업대로 만들 셈인지, 최소한 백 장은 되어보이는 하트모양의 카드들을 어지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이미 각양각색의 친구들 50여명에게 써주고 있는데다, 심지어 모리어티에게까지 한 장 쓰려는 걸 막아야 할 정도였다.

“어떻게 발렌타인 데이같은걸 싫어할 수 있는거지?” 코트를 거는 동안 그가 물어왔다.

난 소리내어 웃었다. “별거 아녜요. 1년 중에 최악인 날인걸요. 사람들이 지독하게 감상에 빠져버리니까요."

“그게 뭐가 문제야!” 그는 대답했다. “아, 이런. 잉크가 온통 튀어버렸네.”

나는 거실로 돌아오면서, 새빨간 잉크가 점점이 뿌려진 스웨터를 입은 채 탁자 옆에 서 있는 그를 보고 킥킥 웃었다. 마치 피살자처럼 보여서.

“이런건 어때요?” 그에게 마른 수건을 던져주며 다시 말을 꺼냈다.
“발렌타인 데이엔, 우리가 서로 헤어지지 않길 기원하면서 가슴을 푹 찔러주는거죠.”

“시끄러, 셜록.”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 수건이 날아가 덮였다.





“앤더슨에겐 뭐라고 써야 하지?” 존이 물었다.

나는 길게 하품하는 척 했다. 어느새 12시 8분, 사실상 발렌타인 데이군. 잘까 했지만 그는 라디오를 꺼주지 않았다. 라디오 프로에선 지금 Love Is All Around 따위를 줄창 틀어대고 있어서, 난 스피커를 쏴버리지 않도록 엄청나게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너 도노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지? 더러운 자식. 잘 어울리네!'라고 쓰면 되겠네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펠트 펜으로 내 머리를 쿡 찔렀다. 

그의 위로 몸을 숙여 카드를 소리내어 읽고는, “’당신은 정말 다정해요!’라뇨?” 버럭 소리쳤다. “그럴리가, 절대 아니라구요!”

“이런걸 보고 시적 허용이라고 하는거야, 셜록,” 존은 세심하게 카드를 접어 봉투에 넣으며 대꾸했고, “얼른 가서 자.”

나는 불평했다. “그럼 저 빌어먹을 라디오 좀 꺼줘요!” 





기운내요, 잠꾸러기 지이이인-[각주:1] 

탕-

“…셜록, 라디오 어떻게 된거야?”

“존, 지금은 새벽 4시라구요.”

“…하지만 몽키스(The Monkees)잖아! …넌 확실히, 카드 못 받을 줄 알아.” 

“난 이제 자러갈게요.”





말할 필요도 없이, 난 해가 떠오를 때까지 말똥말똥 깨어있었다. 존은 카드를 보내줘야 할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웅얼거리면서도 몇 시간 전에 자러 갔지만, 난 원래 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니까. 난 베개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알람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입었다.

창 밖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 익숙한 은빛 빗줄기와 검은 나뭇가지들이 보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춥거나 삭막하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따뜻하고 포근할 테고, 난 그러려니, 버텨내게 되겠지.

존이 파자마 차림으로 주방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길래, 나는 그에게 “잘 잤어요?”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 시선을 피하더니, 시리얼 그릇을 놓쳐 콘플레이크를 발치에 온통 쏟아버리고야 말았다.

뭔가 숨기고 있군. 난 추론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이정도로 정신이 없는 걸 보면 꽤나 중요한 게 분명해. 세상에, 내가 자러간 다음에 대체 뭘 한거지, 누굴 죽이기라도 한건가?

거의 그에게 물어볼 뻔 했지만, 그는 나갈 준비를 하러 가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타일러 사건을 처리하러 스코틀랜드 야드에 들를 시간이 되었다. 부디, 과학적 관찰과 논리, 추론으로 가득한 차분한 날이 되길.

그때 하트모양 카드와 봉투들로 가득차 넘칠 듯 거대해진 쇼핑백을 끌고나오는 그를 보며, 나는 그 감상벽이란 게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환경미화부서같은게 있다면, 몰리에게만큼은 절대로 맡기지 않을 것이다.

연구실이 온통 분홍색에 빨간색 플래카드들로 뒤덮여있는 것은 물론, 배경음악으로는 All You Need Is Love가 스피커에서 쾅쾅 울려대는데다 주위 모든 것에서 장미향같은게 풍겨나고 있었다.

“모두들, 카드 교환하자구!” 레스트라드가 한마디 하자, 그나마 차분했던 연구실은 단숨에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동료들이 행복에 겨운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작업대로 카드를 던져넣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을 때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책상에 앉았고, 잠시 후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두들 서로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 있었고, 내 앞에는 한 뭉치의 카드들이 놓여있었다. 난 그것들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흐음… ‘남자친구나 만드시지, 원숭이같은 놈’ - 분명 도노반이겠군, ‘네놈은 맘에 안들어. 약이나 엄청 해대고 말야.’ - 고맙군그래, 앤더슨. ‘전세계 최고의 자문 탐정님께, 쪽쪽쪽쪽’, 당신 글씨군요, 몰리. 영광입니다만…” 밝은 색깔을 흘끗 쳐다보고는 그 카드 하나를 집어들었다. “’자넨 괴물-같이 굉장한 친구일세’? 레스트라드, 전혀 안 웃깁니다.” 그리고는 나를 흘겨보는 그에게 카드를 던져버렸다.

“’당신은 연구실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앞으로도 변함없길’,” 몰리는 미소지었다. “아, 존, 고마워요,” 그녀는 존이 준 카드를 내려놓으며 그에게로 다가가 볼에 입을 맞추었다. 존 왓슨에게 키스하다니. 다들 보는데서.

난 그녀에게 미소짓는 그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그녀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조하게 내 쪽을 잠깐 쳐다보았다.

존이랑 몰리가?

솔직히 말하자면, 앤더슨이 벌떡 일어나 나를 껴안았다 하더라도 이만큼 놀라진 않았을거다.





내가 그 카드를 발견한 건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책상 위에 놓여진 그것은, 하루 종일 봤던 것 중에 가장 평범한 카드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읽었다.

바보녀석. 사랑해.[각주:2]

뒤집어서, 누가 썼는지 알려줄 만한 단서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서명이나 특징, 아무것도 없었다. 하얀색 무지 카드 한가운데, 조지아 폰트로 쓰여진 일곱 글자뿐.

이거야말로 해결해야 할 또다른 사건이자 풀어야 할 퍼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난 나도 모르는 새 미소짓고 있었다.

하지만 저 마지막 세 글자.

난 그런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일단 누구든 배제해버리기 위해 앤더슨에게 가장 먼저 물어봤다. 그는 호모자식, 달랑 한 마디 던지고는 로봇 유니콘 어택(Robot Unicorn Attack)을 계속했다. 도노반도 똑같이 답했지만, 한가지 다른 건 오메글(Omegle)에서 스물 세살 아가씨인 척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멋지기도 하셔라. 존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내겐 카드를 안 주겠다고 했으니 그를 믿기로 했다.

스코틀랜드 야드 전체를 돌면서 물어보고 다니는 데만 30분이나 걸렸고, 그 다음 30분 동안 답을 알아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아냈다; 몰리에게 그 카드를 썼는지 물어봤을 때, 그녀는 정직하게 아니라고 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의 시선에서는 호기심이나 혼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쓰진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썼는지는 알고 있는거다.

그녀가 이야기해줄 것 같았다면, 아마 난 기꺼이 물어봤을 거다.





점심시간 무렵, 난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분명 답은 있을 거라구!” 나는 카드를 손 안에서 앞뒤로 튕겨대며 말했다. 내 동료님들께서 꽤나 신나하시겠군. “생각해, 셜록, 생각하라구. 바보녀석, 사랑해. 이 방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카드를 쓴게 분명한데, 왜 아무도 안했다는 거지!”

앤더슨이 킬킬거렸다.

몰리가 헛기침을 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저, 셜록, 그러니까, 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거짓말했을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는 것 같은데요.”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내 뒤를 가리켰다.

나는 불만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존이 벽 쪽에 기대서서 커피를 타고 있다. 그는 항상 내게 커피를 타다 주곤 한다. 항상 장을 봐오고, 내 사건이라면 새벽 세시에도 따라와서 밤을 새워가며 나를 도와주고, 늘 바보라면서도-

잠깐만.

나는 카드를 다시 한번 읽었다.

바보녀석, 사랑해.

나는 존을 돌아보았다.
내 커피잔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반쯤은 멍한, 반쯤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이럴수가.








+) 
나름 발렌타인데이 기념 번역글이랄까.
셜록과 존의 발렌타인데이를 상상하는 글들이 많던데
셜록 시점의 글로, 그중에서도 제일 달달하고 유쾌한 녀석으로 골라봤다.

※ 
Secret Valentine이란 건 보내는 사람 이름 없이 보내는 발렌타인데이 카드를 일컫는다고. 
마니또 놀이처럼 익명으로 하는거지. 몰래 고백할 수 있는 타이밍으로도 쓸 수 있다나 어쨌다나.




  1. The Monkees가 부른 [Daydream Believer]의 후렴구. 노래는 여기. http://youtu.be/UQNqk54HPdE [본문으로]
  2. "You're an idiot, and I love you." 고민 끝에 일곱 단어를 일곱 글자의 고백으로 옮겨본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