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Dreamers and Addicts and Lost Souls 
  • 저자: cathedral_carver + 역자: PasserbyNo3
  • 등급: PG (전체연령가)
  • 길이: 단편 (약 4,8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여기 난 총구멍에 대고 말해봐, 난 괜찮다고.[각주:1] 
    - 위 요약문은 데니스 존슨의 멋진 ‘예수의 아들’ 단편선에서 따왔습니다.
    - Sherlockmas 2011년 12월 제출용으로 썼습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archiveofourown.org/works/312071



꿈꾸는 사람


그의 상담사는 모든 게 전쟁 이후부터 시작된 거라 생각했다. 상담사는 틀린 셈이었지만, 그건 존이 그녀에게 전쟁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놈의 악몽이 생생하고도 끔찍한 효과를 가져오긴 했다. 밤이면 밤마다, 음. 어쩌면 영원히.

물론, 예전 악몽에서는 엄청난 포격이나 팔다리가 날아가버린 - 두 팔을 부들부들 떨고, 피를 토하며 손을 꽉 붙들고는 아내/어머니/자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며 애원하는 동료들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지만.

잊지 마, 존. 잊어버리면 안돼, 부탁이야.

그럴게. 잊지 않아.

약속하는 거지?

약속해.

어떨 때는 좋은 꿈이란 걸 기억해내기조차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 무진 - 애를 쓰면 어린 시절, 부엌에서 게슴츠레한 눈망울,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하고 아침밥을 우물거리던 때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출근하시기 전까지 (표정부터 맞장구까지 완벽한) 엄마에게 어젯밤 좋은 꿈 속 즐겁고도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줄줄 읊어대던 그때로.

밤새 동네 과자가게에 갇혀 있던 꿈이나.

자전거 경주를 해서 이기는 - 항상 이기기만 하는 꿈.

자신만의 강아지를 갖게 되는 꿈이라든가.

바지 입는 걸 깜박하고 학교에 갔다거나 하는 꿈들은, 당황스럽고 조금은 악몽같긴 했지만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던 꿈들과는 전혀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였다.

엄마는 늘 귀를 기울여 주셨고, 미소띤 얼굴로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정말 꿈 꾸는 걸 좋아하는구나, 조니.”

그땐, 악몽이라는 건 그의 엄마나 아빠가 돌아가시는 것 정도였다. 존은 그런 것들은 단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엄마도 그가 망설이거나 더듬거리는 걸 보면 캐어묻지 않으셨고, 그는 그런 엄마를 사랑했다.

“해리엇, 너는 어떠니?” 그녀는 대신에 물으시곤 했다. “무슨 꿈 꿨어?”

해리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아무 것도요.” 토스트를 한 입 가득 베어문 채로 우물거리면서 대답하는 거다. “꿈같은 거 안 꿔요.”

존이 씩씩거리며 대꾸하면, “다들 꾼다구.”

해리 역시도 그대로 되쏘아붙이곤 했다. “난 안 꾸거든.”

“누나도 꿈은 꿔. 그냥 기억을 못하는 거지.” 물론 그는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대체 세상 그 누가 기억을 못할 수 있단 말인가?

한번은 해리 침대에서 그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역시 이야기하지 않았던 꿈이지만, 그 느낌만큼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한 목을 휘감던 자신의 차갑고 굳은 손, 자신의 팔을 힘없이 할퀴어대던 그녀의 손가락, 헐떡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애원까지.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존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그런 이후 며칠 내내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녀가 테이블 아래에서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며,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피터 댈러와 한판 싸운 일을 부모님께 이르겠다고 위협할 때조차도.

하지만, 그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았던 꿈은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아, 단연코 최고였다. 마을과 들판과 집들, 친구들 위로 솟구쳐 오르면, 너무나 들떠서 기쁨에 환호성을 질러대고-

물론, 잠결에 이야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 그가 열 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다행스럽게도 좁디좁은(상관 없었다,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이라면) 다락방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낼 때까지 방을 함께 썼던 - 해리가 듣기라도 하면 말이다.

그럴 때면 해리는 어두운 방 안을 가로질러 와서는 (해리는 무엇 하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침대 밑에 괴물이라 해도, 존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노라 맹세를 한다 해도 말이다.) 머리를 - 혹은, 가끔 그녀가 기분 더러울 때면 배 한가운데를 - 세게 갈기며 당장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너 또 꿈 꾸고 있었어.” 그녀가 존의 귀에 대고 씩씩거리며 말하면,

“그래, 그랬지.” 그는 웅얼거리며 대꾸하곤 했다. 정말이지 해리를 확 꼬집어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좋은 꿈이었다구.”

“아~.” 씨익, 미소짓는 해리의 이와 눈망울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 빛났다. “메리언 데번포트? 어제 운동장 너머에서 그앨 바라보는 네 눈빛이 어땠는지 봤지. 다들 봤겠지만.”

“꺼져.” 존은 이불을 끌어올리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누웠다. 젠장, 메리언 꿈이었는데, 이젠 끝나버린데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러다 다음엔 너, 꿈꾸면서 하겠네.[각주:2]” 그녀의 목소리에선 혐오감이 뚝뚝 흘러내렸다. “우웩, 남자놈들이란 정말 쏠린다니까.”

다시 좋은 꿈으로 되돌아가보고자 존은 눈을 꾹 감고, 이불을 두 주먹 가득 움켜쥐고 좋은 생각들만 떠올렸다. 다시 잠들어서 이 모든 것들과 사람들에게서 멀리, 멀리, 멀리 날아가버릴 때까지.

메리언. 그는 거듭 되뇌었다. 메리언, 메리언, 메리언, 메리언.

이제 그는 떠오르고 있었다.

메리언.

마을과 학교와 자신의 집, 그 모든 것들 위로, 높이. 그는 싱긋 미소지었다.

메리언.




중독된 사람


그는, 게임이란 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주아주 일찍부터 배웠다. 그가 원했던 걸 얻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임” 말이다. 원했던 걸 얻는다, 그거지. 그리고 게임이란 건? 그는 게임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었다. 게임이란 건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어 주는 거다. 한판 놀아볼 게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임들 중 하나는 보물 사냥이었다. 보물 사냥을 할 때면, 셜록은 투명인간인 척 했었다. 투명인간이 되면, 그는 집에서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최대한 소리죽여 이방 저방을 들락거리며 이곳 저곳에서 작은 것들을 집어다 주머니에 슬쩍 넣어갔다.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게 아니면 공정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는 훔친(빌린) 물건들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와서 침대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고는, 말끄러미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는, 누군가 없어진 걸 알아차려서 되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다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사과도 해야 했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면 그 물건은 고스란히 그의 것이 되었다. 그게 게임이고, 그런 게 규칙이었다. 게임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임은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다양한 어른들이(엄마, 유모 1과 유모 3, 요리사 카를로타) 수도 없이 그만두라고 하긴(구박하긴)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만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도 시도쯤은 해봤다. 하지만 게임이란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잡힌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한데다 이기는 게 낙이었다. 이걸 그만두면 대체 그는 뭘 하고 놀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화장실에서 엄마의 립스틱을 바르는 광경을 아버지가 목격한 그 날은,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엄마의 립스틱을 발라보고 있었던 건, 엄마의 침대 옆 테이블에서 슬쩍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게임의 일부였고, 그는 투명인간 상태였으니 공정한 거였다), 엄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그건 그의 몫이었다(역시 공정했다). 게다가 진하고 선명한 붉은 색이었기에(루비빛), 피같다고 생각한 셜록은 화장실에서 입술은 물론 주변까지 열심히 문대 바르며, 꽤나 끔찍한/만족스러운/야한 결과에 감탄하고 있던 거다. 아빠가 돌연 문가에 나타나,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공포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는 홱 돌아서서 엄마를 찾아 가버렸다. 아랫층에서 울리는 노기어린 목소리가 셜록에게까지 들려왔다. 끊임없이 계속, 계속.

셜록은 매끈한 은색 물체를 주머니에 넣고는 침대 아래로 숨었다. 고함 소리가 멈추고, 날이 저물 때까지. 마이크로프트가 바닥에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말똥말똥, 다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있잖아, 괜찮아.” 형은 소근소근 말을 건넸다. 셜록이 도리도리 고개를 젓자, 먼지가 풀풀 날아올랐다. 가정부가 또 청소를 게을리했군. 그는 재채기를 했다. 또, 그리고 .

“고마워. 아직은 나가기 싫어.” 셜록은 훌쩍이며 말했다.

“아냐, 아냐.”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저었다. 코끝을 찡그리는 형의 모습에, 셜록은 소리내어 웃고 싶어졌다. 그건 엄마깜짝 놀랐을 때나 짓는 표정이니까. “내 말은, 괜찮다는 거야.” 그는 셜록의 입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각주:3]

셜록은 형을 마주보고는, 입술을 핥아보았다. 밀랍과 코코아 버터, 라놀린, 그리고 합성색소 적색 21호 맛이 났다.

그는 빠르게 몇 번 눈을 깜박였다.

슬프게도, 피 맛은 전혀 나지 않았다.




꿈꾸는 사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꿈도 달라져갔다.

꿈꾸면서 하게 될 거라던 해리의 말은 옳았다. 절대, 결코 입 밖에 내는 일은 없었지만 엄마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의 엄마는 알고 계셨다. 그 다음날 아침, 그 증거를 감추려 존이 필사적으로 애쓴다는 것까지도.

섹스에 대한 꿈은, 메리언 데번포트와 학교 뒤에서, 노라 키스와 체육관에서 하는 거였다. 심지어 아주 짧고도 짧디짧은 기간이었지만, 피아노를 가르치는 제임스 부인과 피아노 위에서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죽는 꿈, 죽음에 대한 꿈들을 꿨다. 날아다니는 총알, 총알 구멍, 피, 살 타는 누린내, 그리고-

날아다니는 꿈은 더이상 꾸지 않게 되었단 걸, 그는 문득 깨달았다. 심지어 언제 꾸지 않게 되었는지조차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제 그는, 날아오르는 대신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려도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끝도 없이 어두운 나락 속으로 추락하는 꿈. 늘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깨어났고, 그는 제 가슴이나 침대 시트, 옆에 누워 잠들게 된 누군가를 꽉 부여잡곤 했다.

“무슨 일이야?” 그러면 그들은 물었다. 가끔은 화를 내거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두려워하면서. 존은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저어보이며 안심시켜주기만 할 뿐. 모두 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리고는 다시 잠들었다.

그랬다, 추락하는 꿈은 끔찍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히진 않는다는 것 하나만큼은 다행이라 여겼다. 바닥에 부딪히는 꿈은, 죽어버린다는 뜻일 테니까.

누구라도 그런 것쯤은 알 테다.




중독된 사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강력하고도 유해한 약은 나중에야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약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넌 이상한 게 아니란다.”[각주:4]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심지어 차가운 물 한 잔과 색색깔의 알약들을 건네주면서도 그랬다. “뛰어난 사람들은 오해를 사게 마련이야.” 

셜록은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삼켰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을, 더 보드라운 그의 고수머리에 얹으며 속삭였다. “몇 년째 고생하고 있구나, 아가.” 그가 들어야 했던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들은, 사실이었다. 

그는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그 덕에 처음부터 엄청난 문제들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역시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문제는 중독성도 있었다. 

어떨 때는 학교에서 벗어나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곤 했다. (너 어디 있었니? 전… 기억 안 나요.) 흐느끼는 엄마와 고래고래 소리질러대는 아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눈빛으로 노려보는 마이크로프트가 있는 집에는 들르지 않고서.

어떨 때는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는 모로 웅크린 채 몇 시간이고 가만히 누워서 그 뛰어난 머리 속에서 현실 세계의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즐거운 세계와 모험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어떨 때는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리곤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건 약을 먹기 전 - 대부분 유모에게, 그리고 엄마에게도 숨길 수 있을 때 -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잊어버린다는게 겁이 났다. 두렵다 못해 밤에 자다 벌떡 깨어나기도 했다. 목이 메이고, 가슴 한가운데 뜨겁고 묵직하고 모난 뭔가가 내리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냐, 여기가 어디지, 하지만-

난 누구지?

난 누구야?

그날 밤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약물 치료/도움 되는 약도 규칙적인/일과처럼 되어버렸다. 그들이, 그를 찾아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의 방 모든 벽을 뒤덮은 - 작고 단정하고 우중충한 회색이던 선들이 점차 커다랗고 읽기도 힘든, 아무렇게나 휘갈겨적은 핏빛으로 빠르게 변해가면서까지 - 쓰고, 쓰고, 또 써내려간 그의 이름을. 그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게 두려웠던 거다.

셜록 홈즈. 셜록 홈즈.

셜록홈즈셜록홈즈셜록홈즈셜록홈즈홈즈ㅕ홈즈ㅕ로ㅅㅡㅎㅈㄹ호ㅡㅁ즈셔럭ㅎ즈
팔이 아파올 때까지 쓰고, 쓰고, 또 쓰고-

펜이 다 닳아버리자 연필로 썼다. 연필이 다 닳아버린 다음에는 립스틱으로 썼다. 립스틱마저 다 닳아 없어졌을 때, 그는 피로 썼다. 그렇게 피마저 말라 버리고-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


“너 정신이라도 나간 거야?”[각주:5] 한번은 범죄 현장에서 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가엾게도, 셜록은 움찔하고 말았다.

아, 당연한 거였나. 셜록은 깨달았다.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고, 그러지도 않을 거긴 했지만. 절대.

결코.

남자 한 명이 실종되었다. 남자는 젊은 아내와 갓 태어난 어린 딸, 그리고 50만 파운드와 함께 사라져 버린 거였다.

범죄 현장. 피. 뼈. 문제의 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를 혐오해마지 않는 샐리조차도. 하지만 존 역시 있었다. 존. 존을 어떻게 설명하지?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는 상자와 서류철 분류 사이에 그를 끼워맞출 수 있긴 한가? 그리고 예의 그 뇌는, 벽에 있었다. 실종된 남자의 뇌. 실종된 남자에만 온통 사로잡혀 있던 셜록은 손가락을 뻗어 회색/흰색 덩어리를 만져보고는, 그 손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는데-

음, 거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 거다.

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했다. 문제란 건 그보다도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무슨 일인가?” 레스트라드가 언성을 높였다. 샐리가, 그리고 앤더슨이 쳐다보았다. 아, 젠장, 젠장, 젠장. 존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뭔가 있다는 걸 알았다. 뭔가가 말이다.

“괴물이 이번엔 뭘 했는데요?” 샐리가 입을 비죽거리며 말을 꺼냈다. 셜록은 그녀를 한방 갈겨주고 싶었다. 아니면 도망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녀를 한방 갈긴 다음에 도망간다든가.

앤더슨이 히죽 웃는다. 멍청하고도 멍청한 인간.

“안 했어요.” 존은 다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 “아무 것도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그리고 다들 그러려 했다. 셜록만 빼고.

“난 모르겠어요.” 존이 알아들으려 앞으로 다가서야만 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난… 미안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붉어진 얼굴, 상냥해진 눈빛. 존은 정말 미안한 기색이었다. “셜록? 내 말 들었어?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고.” 그는 가까이 다가와 웅크려 앉았다. 맛보면 안되는 뇌 옆에 무릎 꿇고 웅크려 앉은 셜록 옆으로.

셜록은 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따뜻한, 플란넬 느낌이 나는 어깨. 셜록은 그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셜록-”

“알아내면, 나한테도 알려 줄래요? 그 질문에 대한 답, 우린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는걸요.”





“난, 진짜로 네가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 해.” 나중에, 존이 말을 꺼냈다. 깨진 유리를 입안 가득 물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건 알아줬음 좋겠다.”

셜록은 팩, 쏘아붙였다. ”아뇨, 당신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아니라니까.”

“왜 아닌데요? 완벽하게 사실인걸.”

“관점의 문제야, 셜록.”

“난 다르잖아요.”

“당연하지. 그래서 널 좋아하는걸.”

셜록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무어라 대꾸는 하지 않았다.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존은 두 손으로 머그를 감싸쥐었다. 늦은 시간. 두 사람 모두 잠들었어야 할 시간이지만, 정리해야 할 게 있었다. 그런게 가능이라도 하다면 말이다. 가끔 셜록은 스스로의 인생이란 게 정리가 될 수 있기나 한가, 생각했다. 가끔은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예전에, 한번은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어.” 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머그에 대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혼잣말인지도. 어쨌든 셜록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점쟁이가, 난 영원히 혼자일 거라더군.”

셜록은 한숨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요?”

존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시선을 들었다. “내 돈, 돌려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





존은, 치료사의 조언에 따라 벌써 몇 달째 꿈 일기를 쓰고 있었다. 새벽 두시, 세시, 혹은 네시쯤 땀에 젖어 부들부들 떨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몸을 뻗어 침대 머리맡 전등을 켜고는 펜을 쥐고 이미지, 색깔, 느낌 등등 떠오르는 건 뭐든지 적어내려갔다.

가끔, 그는 아침에 자신이 써놓은 걸 읽을 수 없기도 했다.

가끔은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뭐 하는 거야?” 모퉁이를 돌아서며 존은 물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게 좋았다.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는 품안 가득 안고 있던 깨끗한 옷가지들을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당신 꿈 일기 읽고 있죠.” 셜록은 눈조차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어, 그래. 왜?”

“꿈이란 건 내밀한 생각과 느낌을 반영하죠, 존. 대낮에는 드러내놓기 두려운, 자신의 이미지들 말예요.”

“그래, 나도 알아. 그래서 거기다 쓰고 있는 거지.”

셜록은 한 페이지 더 넘기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존은 가만히 기다렸다.

“당신, 이틀 전에  꿈을 꿨네요.”

존은 휴, 한숨을 내쉬었다. 셜록은 마침내 일기장을 내려놓고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랬지.”

두 사람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 민망해할 건 없어요.” 셜록은 말했다.

“안 그렇거든.”

“당신이 잠든 사이 머릿속에 내 존재가 들어서는 것쯤이야 완벽하게 정상적인 겁니다. 걱정할 거 없어요.”

“누가 걱정한다 그래?”

“내 말은, 당신은 사실상 다른 누구보다도 나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셜록. 괜찮아.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 우리가 섹스한다거나 뭐 그런 꿈을 꾼 것도 아니고.”

그 한 마디가 두 사람 사이에 툭, 떨어졌다. 이내 정신을 차린 존은,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를 불현듯 깨닫고 그대로 주워담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쯤 안 봐도 뻔했다. 정말이지,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셜록이 크흠, 목을 가다듬었고, 존은 그의 두 뺨도 묘하게 붉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뭐, 그래요. 말했잖아요.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상관없어요.”

“알았어.” 존 역시 동의했다. “나도 이견 없어.”





그리고 또 남자가 실종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남자가 존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겨울날 오후, 셜록은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레스트라드와 팀원들이 온통 피투성이인 길을 샅샅이 뒤지고 있을 무렵, 용의자 나기(Nagy)[각주:6]는 길 건너에 주차해둔 자신의 차 안에 있었다. 셜록은 용의자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고, 나기는 셜록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셜록은 예의 그 무한한 지혜를 발휘해, 문제의 남자와 이야기해보라며 존을 보냈던 거다. 존은 자그마하고 잰체하는 법도 없는, 위협적인 구석이라고는 전무한 -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존은 얼굴을 구기며 한숨 한번 쉬긴 했지만 어쨌든 동의했다. 그런 게 그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코트깃에 턱을 파묻고는, 예의 그 편안한 걸음걸이로 느긋하게 길을 건너갔다.

존은 나기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몸을 숙였다. 악의없는, 대립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찰나의 행동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거여야 마땅했다. 남자에게 말을 걸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 다음(목소리요, 존! 옷차림, 냄새,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도?) 그대로 자리를 뜨는 것.

그렇게 단순한 거였다.

존은 몸을 숙였고, 나기가 팔을 뻗는 순간 도주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남자는 존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문가에 쾅, 세게 한번 부딪혀 존이 의식을 잃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다음, 나기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를 끌어다가 조수석에 앉히는 바람에, 셜록은 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조차 의아해질 지경이었다.

나기는 셜록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씨익, 미소짓더니, 차를 몰고 사라져 버린 거다.

셜록은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무언가를 한방 후려친 것 같기도 했다. 뒤에 있던 벽돌담이라든가, 그런. 그리고는 레스트라드에게 고함을 질러대며 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든 따라오라고, 빨리, 지금, 지금, 지금 당장.

또다른 게임이었지만,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전혀. 존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라 할지라도.





정말이지, 이 상황은 존이 상상했던 죽음의 순간과는 사뭇 달랐다. 차 트렁크에서 지끈지끈 욱신거리는 두통에 욕지기 치미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다니.

그는 가만히 누워 귀를 기울였다. 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더는 앞좌석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 손은 등 뒤로 돌려진 채 묶여 있었다. 욱신거리고 갑갑했다. 아마도 죽게 되겠지.

그는 셜록이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자신의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궁금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셜록이 너무 오래 자책하지 않기를 바랐다.

눈을 감고 셜록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셜록의 목소리를 상상해 보았다. 침착하라고, 집중하라고, 디테일에 주목하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그는, 오늘이 세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란 걸 알았더라면 셜록에게 말해주었을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았다.

1) 난장판이라고는 했지만, 네가 믿게 했던 만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어.
2) 바이올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악기가 됐다.
3) 내가 썼던 것보다도 네 꿈, 더 많이 꿨어.
4) 훨씬 더.
5) 나, 널 사랑하게 되어버린 참이었어. 그 전부터-

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존은 숨을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닫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찰캉, 땅 위에 떨어지는 쇳소리. (열쇠, 열쇠다! 봐, 셜록. 네가 가르쳐준 거라니까.) 문이 쾅, 닫혔다. 운전사(나기?)가 차 뒤쪽으로 걸어오더니 트렁크 위에 두 손을 올렸고, 끙, 힘주어 밀기 시작했다. 차가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매우 느렸지만 종내에는 속도가 붙었다. 작고 희미한 철썩, 소리에 이어 부력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물. 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 속에 있는 거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는 진심으로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두 다리에 온 힘을 실어 트렁크 뚜껑을 발로 차 대기 시작했다.

차가 한번, 두번 둥실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이 새어들어와 존의 몸을 적셨다. 그는 가능한 한 오래 물에서 멀리, 입이 윗쪽을 향할 수 있게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존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한번 더 그 얼굴을 그려보았다: 셜록, 그는 생각했다.

물이 점점 더 높이 차올라왔다.

셜록, 셜록, 셜록, 셜록.

아, 이제 그는 떠오르고 있었다.

셜록.

물과 차와 자신의 육신, 그 모든 것들 위로, 높이. 그는 싱긋 미소지었다.

셜록. 





차 트렁크가 벌컥, 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밝고도 얼음처럼 차가운 달빛이, 새하얗게 질린 셜록의 얼굴이 존의 세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작은 공간에서 재빨리, 거칠게 끄집어내어져 물살을 헤치고 철벅거리며 물가까지 끌려왔다. 그제서야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소리치는 목소리들, 괜찮냐고,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묻는 소리. 아니, 아니다. 다치지 않았다. 그저 욱신거리는 (그리고 무서운, 너무나도 무서운) 것 뿐.

“너, 날 찾았네.” 그는 셜록에게 말을 건넸다. 셜록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당신 뒤쫓아 왔어요.” 셜록은 말했다. 전혀, 평소 그의 목소리같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껍질만 남은 것 같달까. 텅 빈, 아주 작은 자극에도 툭, 깨어져 버릴 것만 같은. “레스트라드… 그 사람이, 우리가요. 차를 쫓아왔어요. 몇 번은 시야에서 놓쳤지만… 어쨌든. 그래요.”

“그렇군.” 존이 고개를 뒤로 젖히자 뭔가 부드러우면서도 축축하고 차가운 무언가에 부딪혔다. 셜록은 그를 빤히 바라보는 걸 도무지 멈출 줄 몰랐지만, 그런 건 괜찮았다. 꽤나 괜찮았다, 그 역시 셜록을 빤히 바라보는 걸 멈출 수 없었으니까. 달과 별, 그 모든 암흑 한가운데 자리한 그를. “이젠 다 왔네.”

그리고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너 손.”

셜록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라구?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존이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긴 하다. 물 속에서 1분 넘게 있진 않았지만, 꽤나 세게 머리를 얻어맞았으니까. 의사가 꼼꼼히 검진했지만, 무사하다며, 하룻밤만 있으면 된다고 했었다. 셜록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불편해 빠진 플라스틱 의자에서 꿈지럭거리다 말고 문득 깨달았다. 그랬다, 손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다.

“뼈가… 부러진 건가. 네 손 말야.”

그랬다. 그랬나? 그렇군. 괜찮다. 뭐가? 정확히 뭐가… 문제인 거지? 셜록은 존이 화내지 않도록 바르게 굴기로 마음먹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가여운… 손.” 존은 붕대감긴 셜록의 손을 슥 어루만지며 말했다/우물거렸다. (왜? 왜? 뭐가? 어째서? 그냥 손이잖아, 나을 텐데. 이 을 어디 쓸 건데? 존이 살아 있잖아, 여기 있는걸, 뼈가 뭐 어때서? 손? 정말?)

“뭘… 한거야?”

“벽을 쳤어요.” 셜록은 말했다. 사실이니까. 존이 알고 싶어하니까. 알려줘서 존이 편히 쉬고 잠도 자서 나아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좋다. 하지만 알려주는 게 존에게 도움이  된다면, 제길. 알려줘서 심지어 존이 더 화난 것 같다.

 어쨌다구?”

셜록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중요하지 않아. 존은 왜 그런데 신경을 쓰는 거지?

“들어봐요.” 셜록은 하얗고 좁기만 한 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누워 있는 존은 새하얗게만 보였다. “내 말 좀 들어보라구요.”

“알았어.”

셜록은 존에게 이마를 거의 맞댈 수 있을 만큼 몸을 더 기울였고, “당신을 찾지 못했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속삭이듯 말했다. “죽어버렸을 거에요. 죽어버리거나, 미쳐버리거나, 어딘가 처박혀 있거나, 정계로 간다거나-”

“하지만, 넌 나 찾았잖아.” 존이 대답했다. 이불 아래에서 꿈지럭거리다, 어깨가 삐끗하자 얼굴을 찡그리는 그다.

그게 그렇게 단순한 건가? 정말? 셜록은 눈을 깜박, 했다.

“그랬잖아, 맞지?”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찾았는걸. 괜찮아.”

“알았어요.” 셜록은 대답했다. 그게 쉬웠으니까. “나도 이견 없어요.”

“좋아.” 존은 미소지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미소였다. 누군가 약을 먹인 모양이다. “나 최고로 좋은 꿈을 꿨어.” 잠들기 직전에 그가 중얼거렸다.

“그랬어요?” 셜록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존의 목덜미, 그 살갗을 어루만졌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응.” 존은 미소지었다. “우리, 날고 있었어.”





존은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나도 불편해서. 게다가 더웠다. 좁디좁은 병원 침대는 당연히 1인용인 게 분명하건만, 지금은 한 명 더 있는데다 심지어 그 한 명 - 환자도 아닌 사람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존은 꿈지럭거리며 오른팔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살짝 땀에 젖은 셜록의 목덜미 아래 단단히 눌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셜록.” 그는 입을 열었다. 젠장,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자신의 뺨에 와닿는 셜록의 입술, 살갗을 스치는 따스한 숨결마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남자가 움직이길 바라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팔에 감각이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겠지. “셜록.”

셜록이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존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팔을 움직여 보았다. 저릿저릿, 찌르르한 느낌. 어깨가 화끈거렸다. 셜록은 베개에 머리를 뉘였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도 존은 자신에게 와닿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상태는 좀 어때요?” 셜록이 소근소근 말을 꺼냈다. 존의 가슴팍에 얹혀진 그의 손, 손가락은 활짝 편 채다.

“쑤셔.”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카락이 존의 귓가를 간질였다. 불쾌하진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존은 이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의아해졌다.

“여기요.” 셜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존의 손을 잡아다 제 심장 바로 위에 얹는다.

“뭐가?” 존은 어리둥절해져서 되물었다.

“내 심장이에요.” 셜록이 말했다. 그리고는, 멍청한 사람에게 타이르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그런다. “내 심장이라구요.”

존은 잠시 손을 그대로 두었고, 끊임없는 쿵쿵, 소리가 살짝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렇네. 네 심장.”

“음, 내 선물이에요. 당신에게 주는.”

“알았어.”

“당신 생일이에요, 그렇죠?”

“아니.” 존은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이 남자, 재생일이라고 한 거였나?[각주:7]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내 선물이라구요-”

“응. 알았어. 그래. 좋아.”

“알았어. 좋아.”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고마워.”

“그래요?”

“그래.” 존은, 셜록의 이마에 키스해줄 수 있을 만큼만 고개를 살짝 돌렸다. “고마워.”

좋아.

그러자 셜록이 무언가 속삭였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눈마저도 감은 채로. 그렇지만 존은 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너 사랑해.”

“그래요.”

존은 싱긋 미소지었다.

“하지만, 난 당신 사랑하고 싶지 않은걸요.” 셜록은 끊길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응.” 존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것도 알아.”





존은 잠에서 깨어나 혼자라는 걸 깨닫고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대 가에 걸터앉아 있는 셜록을 발견했다. 그는 물을 한 잔 들고 있었다.

셜록이 그에게 물을 건넸다. 그의 눈빛은 밝게 빛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보였다.

“무슨 꿈 꿨어요?” 그의 손가락이 이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젯밤에?” 존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미소지었다. 머리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기억 안나. 하지만 네가 나왔던 것 같긴 해.”

“흐음.”

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제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적어놔야겠어요.”

“집에 가면.”

“그래요.” 셜록이 미소짓는다. “잊어버리기 전에.”

두 사람이 서로를 찾아낸 건,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언젠가를 위해 남겨둘 즐거운 이야깃거리일 테지.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해준 건, 정말이지 전설이나 다름없을 거다.





회색빛의 추운 날이었다. 눈도 내리고 있었다. 존은 좀더 따뜻한 코트를 입었더라면 좋았을걸, 생각했다. 아니면 셜록의 목도리를 빌리던가 - 따뜻하니까. 게다가 셜록 냄새도 날 테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푹 쉰데다 살아있는 게 기뻤으니까. 어디 부러진 데도 없고, 꿰맨 데도 없었다. 게다가 시신도 있고, 셜록이 풀어야 할 또다른 사건도 있지 않은가.

셜록은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웅크려 앉아 있었다. 짙은색 머리를 수그린 채 눈으로 샅샅이 훑어보며, 머리로는 쉴새 없이 계산하고, 쿵쿵, 뛰고 있는 심장을 가진 그가. 그 역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걸 느꼈다.

모두가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레스트라드는 추위에 버텨보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너무 다 들리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보았다. 누구 하나 입도 벙긋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존.” 셜록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당신이 필요해요.”



+)
[세 번째 크리스마스] 작가님의 글. 이 분 글은 다 따스해서 좋지만, 특히 이 글을 가장, 너무, 완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오는 셜록다운, 존다운 섬세한 감정 표현도 좋지만, 표현 하나하나가 살아있어서도 좋다.
같은 표현, 달라지는 마음들. ’심장(heart)’이 ’마음’으로, ’그래(yes)’가 ’좋아’로 바뀌어가는 순간들까지도.
소소한 마음들 다 살려서 옮겨보려 했지만 느낌이 잘 전해질지는 걱정이다.
바빠서 허우적대는 와중이지만, 시간이 되는 대로 다른 글도 차근차근 옮길 예정. : ]

소개합니다! 제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 선물을 많이 받아버렸네요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 0redwolf0님께서 [인적 드문 길], 계단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표정까지 섬세하게 그려주셨습니다.
  • 오정이님께서 [크리스마스 저녁]의 사랑스러운 스웨터차림 커플샷을 보내주셨어요.
  • 소천님께서 [절.대.그.이]의 쿨싘한 존 천사님을 날려보내주셨지 뭔가요!



    1. ‘Talk into my bullet hole, tell me I’m fine.’ - 사실 이 문구를 쓰신 데 반해서 읽은 글이었다. :D [본문으로]
    2. ‘you’ll be having wet dreams’ - 꿈꾸는(dream) 걸 넘어서 몽정까지(wet dream) 이어진다는 맥락이라 풀어쓴다. [본문으로]
    3. ‘It’s fine it’s all fine’ - 존이 그에게 해주던 말. [본문으로]
    4. “There’s nothing wrong with you.” - 이렇게 옮기는 건, 각주5에 이어서. [본문으로]
    5. “What the hell is wrong with you?” - 각주4에 이어지는, 셜록이 계속 궁금해했던 질문이라 뉘앙스 살려 옮긴다. [본문으로]
    6. 모 님과는 무관합니다 : ) [본문으로]
    7. ‘Did he say rebirthday?’ - 생일(birthday)에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를 더해서.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