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드티 차림의 남자 | The Hooded Man



“존! 정신 차려, 존…”

’나 좀 냅둬’[각주:1] 일으켜 앉혀지는 걸 느끼며 존이 처음 한 생각이었다. 누군가 그를 깨우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에서부터 큼지막한 손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명치까지 부드럽게 내리누르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온통 둘러싼 셜록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

숨 한번 쉬는 것조차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통증은 지독했고, 존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는 몸에 한참을 기대어 있었다. 차츰 기운이 돌아와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바로 맞은편 - 얼굴을 처박고 바닥에 누워 있는 시신에 눈길이 갔다. 치명적인 뭔가의 자루 부분이 목 뒷덜미에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경찰용 무기는 아닌 것 같은데.’

표정에 드러난 것보다도 속으로는 더 크게 놀란[각주:2] 존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흘끔 쳐다보았다. 눈을 다시금 감았다. 그리고 떠본다. 감아보고. 떠보고.

“내가 죽은 건가?” 목소리가 갈라지다 못해 쉰 소리만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증거로 보자면 아닌 것 같네.”

“꿈이군.” 존은 다시금 두 눈을 감았다.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가 몸을 앞으로 굽히자, 뒤에 있던 남자가 빙글 돌아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양 어깨를 붙든다.

“충격이란 건 알아, 존. 하지만 우린 가야 해.”

존은 한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재빨리 잡아주었다. 하지만 존은 끌려가지 않고 반대로 끌어당겨, 남자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존은 천천히 다른 손을 들어 자신을 구해준 이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저런 광대뼈라니,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셜록…”

존은 희미한 불빛 아래 보이는 모든 디테일을 두 눈으로 좇으면서도, 셜록의 후드를 그러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전혀 믿을 수 없는 만큼이나, 그래야 할 것 같았던 거다.

셜록이 다른 한 팔로 그를 감쌌다. 존은 아주 잠깐 긴 손가락이 그의 자켓을 꽉 그러쥐는 걸 느꼈지만, 이내 풀어졌다.

“그래, 나도 자넬 만나서 기뻐, 하지만 정말 지금 가야 한다구, 존.”

존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존?” 셜록은 어색하게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존, 진짜야. 지금 당장 여길 떠야 해.” 빠져나가려 했다. “존!”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존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믿을 수 없어 휘둥그레진 눈, 목쉰 소리로 그는 물었다.

“진짜 너야?”

셜록은 그를 향해 씩, 웃으며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진짜 나야, 깃 세울 코트는 없어도 말이지[각주:3].”

존은 소리내어 웃을 뻔 했지만, 흐느낌으로 바뀌어버릴까 두려워 눌러 참았다. “믿을 수 없어… 그렇게 추락했는데도 살아남다니!” 간신히 말을 뱉어낸 그는,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걸 머리로도 받아들이고자 셜록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보며 흉터가 있는지 살폈다.

셜록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난…” 찡그리고 만다.

“서두르자.” 그는 존이 놓아주자마자 일어서서 존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걸을 수 있겠어?”

존은 눈으로 셜록의 추레한 후드티와 빛바랜 청바지를 훑으며 기억 속 친구의 이미지와 맞춰보려 애썼다.

‘셜록이 살아있어.’ 그 사실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목적 의식이 되돌아오자마자 그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칠 만큼 지쳐 있던 근육에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당연히 걸을 수 있지.”





“잘나신 마이크로프트 형님께서 꾸미신 거겠지.” 한 시간 후, 존은 거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너 죽은 척 한 거 말야. 그런 족속들이 하고도 남을 법한 짓이잖아.”

“말하지 마.”

존은 셜록이 타온 차를 힘겹게 한 모금 더 넘기고는, 부엌 테이블 너머로 씨익 웃어보였다. “뭐, 형님 감싸고 도는 거야? 다 나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다시금 셜록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은 거 맞아? 멀쩡해 보이잖아. 다리를 저는 것도 아니고, 관절도 괜찮아 보이고… 하지만 그날 추락… 널 봤었는데…” 그는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셜록의 팔을 붙잡았다. “나, 널 봤었다구… 그때 난…” 그의 손가락이 셜록의 손목으로 향했고, 꾸준히 뛰는 맥박을 헤아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맥박은 조금 빠르긴 했지만, 확실하게 뛰고 있었다… 존은 애써 놓아주며, 사과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안.”

“목 좀 쉬어둬야 해.”

“반년 내내 스스로 되새겼어, 그냥 견뎌내야 하는 거라고.” 존은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네 누명은 벗겼거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어 - 모리어티가 꾸며낸 이야기는 허점 투성이인데다, 뭐라 변명도 하지 않았으니까 - 실은,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말야.” 그는 앞으로 몸을 숙여 셜록을 똑바로 쳐다보며, 해야 할 말을 다… 할 때까지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네가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솔직히, 그럴 필요까진 없었잖아 - 그런 게 답일 리 없는걸. 셜록, 네겐 친구들이 있다구 - 어떤 상황에서라도 네 편이 되어줄 사람들 말야. 네가 그럴 필요는 전혀…”

“존, 부탁이니까 말은 그만 해.”

존은 허공으로 두 손을 들어보였다. “그래, 그럼 네가 말을 하면 되겠네. 명백하게도 누군가 널 되살려 준 거겠지만, 그런 다음엔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모든 시간 내내 어디에서 요양하고 있던 거야? 그리고 어떻게…” 결국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자, 그는 차를 집어들며 대답을 반드시 얻어내야겠다는 뜻으로 손을 저어 보였다.

“나 샤워해야겠어.”

존은 항의하듯 끙, 소리를 냈다.

“난… 음, 우리가 집에 도착한 다음에 받았던 문자 말야.”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소식이었어. 위험한 상황은 이제 다 끝났다고 봐. 내가 머물 수 있다는 거지… 네가 그러길 바란다면 말야.”

존은 완전히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졌다. 말을 꺼내려 했지만, 셜록이 한 손을 들어 제지한다.

“더는 말하면 안돼. 나 샤워할 거야. 그리고 나서… 설명해 줄게. 그 다음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

조금 혼란스러워진 존은 얼굴을 찡그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셜록을 바라보며 뒤따라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뭐, 그건 이상하잖아.’

그는, 플랫에서 나는 다른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플랫, 나머지  사람. 그리고 조금은 바보같은 기분에 스스로의 팔을 꼬집어보고는, ’앗’ 하며 슬쩍 미소지었다.

그런 스스로가 어이없어 눈을 데굴, 굴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한 손에는 차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을 어루만져보았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셜록이 억지로 먹이다시피 한 진통제 덕분에 이젠 보이는 멍자국만큼 심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음, 약 때문인지 행복한 기분 때문인지, 어느 쪽이든간에. 아마 두 가지 다겠지. 머릿속에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수천개의 물음들이 앞다투어 떠올랐지만, 무엇 하나 오래 가진 않았다. 그는 셜록이 스나이퍼의 목에서 빼내온 - 이제는 부엌 테이블에 놓여 있는 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계속 눈에 들어오는, 현실이라는 증거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 소리에 좀더 마음 놓인 그는, 거실을 가로질러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모든 게 드라마틱하게 뒤바뀌어버린 폐가, 그 방이 어디 있는지 멍하니 헤아려 보면서. 그때 거리에서 움직임 하나가 눈에 띄었고, 시선을 내리자 철책 건너편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빌리가 보였다. 존이 알아보고 손을 흔들자 마른 얼굴에서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빌리는 끄덕, 고갯짓으로 답하고는 돌아서 가려 했지만, 좀더 일찍 그를 떠올리지 못한 게 불현듯 미안해지는 존이었다 - 저 가엾은 녀석은 저기 얼마나 서 있었던 걸까? 그는 ‘잠깐!’ 하듯 한 손을 들어보이고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문 쪽으로 향했고 - 잠시 멈춰 셜록의 기척이 들리는지 확인한 후 -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너흰 대체 왜 초인종 한번 안 누르는 거야?” 따지듯 물었지만, 얼굴 가득한 미소가 톡 쏘는 말투를 녹여주었다.

빌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괜찮으세요, 왓슨 선생님? 목소리가 엉망이잖아요!”

존은 걱정을 떨쳐주었다. “괜찮아, 빌리. 사실 괜찮은 거 이상이거든.” 그는 미소를 자제할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건물 옥상에서 - 꺽꺽거리는 소리로라도 - 외치고 싶었지만, 기다렸다가 우선 셜록과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테다. “그럼, 무사히 도망친거지?”

눈만 깜박이는 빌리를 보며, 존은 그제서야 자신이 완전 정신나간 것처럼 보이리란 걸 자각했다. 얻어터져서 퍼렇게 멍들어서는 실실 웃는 걸 멈추지도 못하는 남자라니.

“위긴스 씨에게 연락했어요.” 잠시 후, 젊은 남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선생님이 한 시간 기다렸다가 경찰에게 가라고 하신 건 알지만, 전 그럴 수가… 그 남자 덩치도 너무 컸고… 선생님을 두고 가는 게 아니었어요. 지금 선생님 보면… 음…” 그는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한걸음 다가가 빌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자넨 전적으로 옳은 일을 한 걸세.” 그러나 시인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줘야 할지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저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바람에, 빌리는 좀더 불안해보이는 눈치였다.

존은 표정을 가다듬으려 해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소리내어 웃는 그에게서 행복한 기운이 몽글몽글 새어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하나 남은 잼쿠키를 먹어버렸다고 실토하고 지금 당장 튀어도 될걸!” 

빌리의 온 몸에서 긴장이 풀리더니, 씨익 웃어보였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긴스 씨가 전화를 끊어 버려서… 10분만에 그 사람 친구가 하수구에서 도망치는 쥐새끼마냥[각주:4] 엄청 빨리 가버리던걸요!”

몬티 파이튼 이야기에 존은 쿡쿡, 웃었다. 할로윈 때 빌리가 몇몇 동네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맞아서, 존이 치료차 플랫에 데려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DVD 수집 목록을 보면서부터 이 청년, 존을 웃게 한답시고 가끔 파이튼을 들먹이는 거다. 지금까지는 몇 번 성공하지 못했지만.

“저기, 나 들어가 봐야겠어, 알았지? 오늘 밤에 묵을 데는 있어?” 존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지만, 빌리가 잽싸게 뒤로 물러나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괜찮아요, 왓슨 선생님.” 그는 말했다. “저희에게 해주신 것들도 많은데, 이제 와서 선생님 돈 뜯으려는게 아니에요.”

존은 더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조심해, 알았지? 곧 보자구.” 그는 문 안쪽으로 반쯤 들어서다 말고 번뜩, 무언가 생각해냈다. “빌리!” 

청년은 종종걸음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 사람 친구’?” 그는 물었다. “‘그 사람 친구’가 자넬 지나쳐 갔다고 했지?”

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친구였다는 건가?”

“음… 위긴스씨요.” ‘당연하잖아요’라는 말투였다.

“노숙자 모임 사람이야?”

빌리는 또 고개를 끄덕였고, 존은 얼굴을 찌푸렸다. “자넨 6월 말부터 런던에 있었지, 맞아?”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셜… 자넬 스쳐간 남자가 위긴스 친구라는 걸 안 거야?” 

빌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음, 어쩌면 ‘친구’란 게 잘못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같이 다니는 걸 봤는걸요.” 나름대로 설명해 나갔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요. 아주 친하다구요, 두 사람.”

존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마나 됐는데?”

“음… 거의 제가 여기 있던 기간 정도요.” 빌리는 대답하고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인상을 썼다. “7월일거에요, 분명. 필 생일이었는데, 위긴스 씨가 담배 두 갑을 선물했었거든요. 그때 시기(Siggy)에게서 받아오는 걸 봤어요.”

“시기?”

빌리는 살짝 당황한 것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 머릿속에서 그렇게 불러요 - 담배 때문에요. 그 사람에겐 항상 있거든요. 한번은 위긴스 씨한테 그 사람에 대해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귀싸대기 한대 맞았어요. 제 앞가림이나 잘 하라면서요.”

존은 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위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시기란 남자가 7월부터 있었다는 거지? 그 사람이… 잘은 모르겠지만… 목발이나 뭐 그런 거 짚고 있지도 않았고?”

빌리는 어깨만 으쓱해보일 뿐이었다. “멀쩡해 보이던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혼자 다녔어요. 위긴스 씨 말고는 누구랑도 말 섞지도 않고, 가끔씩 나타나곤 했어요. 어떨 땐 대판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 같진 않았구요.”

“그래… 그렇군…”

“괜찮은 거 맞아요, 왓슨 선생님? 제가 뭐라도…?”

존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 괜찮아, 빌리. 가봐.”

샤워 커튼을 확 열어젖히는 순간까지, 그는 어떤 것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셜록은, 존의 표정을 읽어내자마자 저항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주먹이라도 날아오면 그대로 맞아줘야겠지.

그는 갑자기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샴푸를 -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였다. 병은 그가 남겨둔 게 아니었지만 - 헹궈내던 머리에서부터 조심스레 팔을 내렸다.

“돌아서 봐.” 존이 한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보였고, 존이 증거라고는 찾지 못할 걸 잘 알면서도 셜록은 그가 가리키는 대로 천천히 360도 돌았다.

“자국 하나 없군.” 존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눈에 띄는 건 없다고 해야 할까. 반년 정도 된, 높은 건물에서 추락해서 생겼을 법한 건 분명히 없고.”

셜록은 자신이 했던… 걸 존이 알 수 있도록 여유를 주기로 하고,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교묘한 속임수였어.”[각주:5]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하려 입을 열었지만 상황을 더 안좋게 만들까 두려워 다시 다물었다.

“그렇군.” 존은 커튼을 원래대로 닫고는 나가버렸다.

셜록은 두 눈을 꾹 감으며, 0.5초만 더 일찍 감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을, 자신 때문에 어린 그 표정을 보기 바로 전에.





10여 분쯤 지나, 셜록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옷을 차려입고 거실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나약해보이게끔 가운만 걸칠까도 생각해봤지만, 존이라면 그런 의도적인 술수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그는 후회나 유감을 표현하는 차림으로 적절해보이는, 까만 정장에 짙은 회색 셔츠를 골랐다.

존은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셜록은 맞은편에 앉으며 이 서먹한 분위기를 어떻게 깰 수 있을지 고심했다.

“모리어티는 죽었어.” 첫 마디였지만,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뭐? 언제?”

“6개월 전에. 바츠 옥상에서 스스로 머리를 쐈어. 네가 도착하기 얼마 전이었지.”

“나 그놈 찾고 있었어.”

“알아.”

“그럼 시체는 어떻게 된 거야? 서류상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누구 하나 모르고…” 존은 말하다 말고 멈추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이크로프트였나.”

“마이크로프트였지.” 셜록은 시인했다.

“그러니까 ‘이야기하지 않는’ 건 전부 - 꽤나 갑작스러운 것 같긴 했지만 - 그저…”

“표면적인 거였어. 그래.” 셜록은 작게나마 미소지어보이려 했다. “꽤나 유쾌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지.”

존은 웃지 않았고, “난 형님 때문에 네가 죽었다고 비난했었는데. 그…  장례식에서 한대 칠 뻔 했어.” 한숨지었다. “지금은 그랬어야 했겠다 싶네.”

“왜 안 때렸는데?”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존은 시선을 피했다. 다시 생각에 빠져드는 것 같았지만, 그 생각들이란 건 슬픈 것임이 분명했다.

셜록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좋든 싫든 해야 할 때다. 존이 이해하게 할 수 없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재판이 끝나고 모리어티가 여기 왔을 때, 어떻게 날 - ‘태워버릴’ 생각이냐고 물어봤었어.” 존은 듣고 있었지만, 제대로 집중한 것 같진 않았다.

“놈은 그게 ‘마지막 문제’라고 하더군. 답은 이미 내게 알려줬다면서…” 머릿속에서 노래부르는 듯한 모리어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제대로 듣긴 했나?’ “그 여자애가 비명을 지른 다음부터 그물처럼 날 죄어오기 시작했지. 난 레스트라드에게 말했어, 모리어티는 날 조금씩, 천천히 부숴버리고 싶어한다고 - 놈은 날 전문적으로 파괴하려 드는 거라 추측했거든. 그리고 타버린 진저브레드맨이 배달되어 온 건, 확증이나 다름없었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존의 시선 … 셜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놈은 내 명성을 떨어뜨리는 게 ‘마지막 문제’는 아니라고, 택시에서 일찌감치 못박아뒀었어.” 셜록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제 목소리에 묻어나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듣긴 했지만, 제대로 듣진 않았던 거야!”

존은 고개를 돌렸고, 셜록은 의자에서 일어나 존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존! 듣고 있는 거야? 너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는 거잖아!”

“필요 없어.” 존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해했으니까. 넌 죽은 걸로 위장하기로 했던 거야. 많은 사람들이 알면 안되는 거고 - 난 그 안에 들지 못했어. 그게 핵심인 거잖아, 그렇지?”

“틀려.”

“넌 날 믿지 않았어.”

“완전히 틀렸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존! 내 말 좀 들어줘… 널 위해서 그런 거라니까!”

적어도 그 한 마디는 전해졌던가보다. 존이 눈을 가늘게 찡그렸고, 셜록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네가… 날 위해서 그랬다고?” 존이 저렇게 억제된 목소리에, 그렇게나 많은 분노를 실어낼 수 있는지 셜록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 생각이란 걸 조금이라도 해보…?” 존은 말을 끊었다.

“난…” 셜록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기에, “우리가 알고 지낸 건 고작 18개월이었는데다, 난 6개월 동안 사라졌었어.” 짚어가며 이야기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힘들 거란 거 알았어.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같이 살았던 시간의 1/3 정도를 넌 지금 혼자서도 살아왔잖아… 난, 네가 아직도 그럴 거라고는…”

“개자식!” 존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고,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내기도 전에 셜록은 본능적으로 뒤로 움찔, 물러섰다. 그는 그대로 멈춰, 두 손을 내리고 방어를 풀었다.

존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너, 내가 칠 거라 생각한 거지.”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널 치게  거였군.”

셜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네 기분이 나아진다면.”

존은 웃음처럼 들릴 법한 쉰 소리를 뱉으며, 히스테리 서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자리에 앉더니 고개를 푹, 떨구고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넌 내 삶이었어, 셜록… 내  말야.” 그는 시선을 들었다. “내게 여자친구나… 나만의 공간… 아니면 널 따라다니는 거 말고 일이란 게 있었다면야 모르겠지만. 한 달에 며칠 의사 노릇 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더라구. 네가…” 말을 잠시 끊으며 그는 시선을 돌렸다. “네가 ‘죽었을’ 때.” - 그러면서 손을 들어 그 말 사이 따옴표를 찍는 시늉을 해 보였다 - “음…” 그는 어렵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너만 그런 건 아니었어.”

셜록은 그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난 죽지 않았는걸. 그건 좋은 소식 아냐?”

존은 눈을 감았다. “이런 이야기, 의미 없어… 넌 절대 이해 못할 테니까.” 그는 다시 일어섰다. “나 잠깐…”

“…바람 쐬어야겠다고.” 셜록이 대신 말을 맺었고, 잿빛 피로 가득한 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너 이런 상태로 나가면 안돼 - 넌 여기 있어, 내가 나갈게.”

“싫어.”

“몇 시간이면…”

“싫다구!” 존은 셜록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셜록은 그 말대로 했다.

“그대로 있어.”

그는, 그 말대로도 했다.





셜록은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인 것 같았기에 그는 존이 쾅, 닫고 나가버렸던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뭐… 계단의 절반쯤이라고 해야겠지만.

“한심하지, 응?” 존은 셜록이 긴 다리를 어색하게 구부리며 옆에 앉자 흥, 코웃음을 쳤다. “사실은 어디 더 가지도 못했으니 말야.”

셜록은 곁눈질로 그를 슬쩍 훔쳐보았다. 온통 붉은데다 얼룩진 그의 얼굴, 숨기려 들지도 않았다.

“세 명이었어.” 셜록은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내겐 ‘세상 단 세 명뿐인 친구들’이었지 - 모리어티 말대로라면.” 존은 이제 체념하고 이야기를 듣기로 한 듯 했다. 일시적인 거라 해도, 전의란 걸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갚.을.게’[각주:6]라고, 놈이 세 번 보냈었어… 너도 봤던 그 사과랑; 스코틀랜드 야드 맞은편 창문에 페인트로 휘갈겨 쓴 글자들; 그리고 베이커가쪽 모퉁이에 갓 그려둔 그래피티까지.” 셜록은 살짝 몸을 틀어 존 쪽으로 몸을 돌려보았다. “세 개의 ‘갚.을.게’, 세 발의 총알, 세 명의 저격수. 그리고 목표도 세 명… 내가…”

존이 천천히 그를 마주보았다. 크게 뜬 눈, 살펴보는 시선. 마침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그러겠다는 거였군.”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집중하느라 찡그리면서 괴로움이 일부 덜어진 존의 얼굴을, 셜록은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럼, 사과는… 그건 여기였잖아, 우리 플랫. 그건 나였어?”

존이 자신을 계속 쳐다봐주길,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셜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들은… 스코틀랜드 야드에 있던 건, 레스트라드인가?” 셜록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허드슨 부인이겠군, 당연히.”

“당연하지.” 셜록은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집주인 이상이지, 훨씬 더.”

아주 잠깐이었지만, 존의 얼굴에 기쁜 빛이 스쳐갔다. “그분이라면 네게 의미있을 줄 알았어! 그분이 총에 맞았다고 생각했을 때, 연구실에서 네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너무 이상했거든. 네가 신경쓰지 않는 게 아니었어, 그저… .” 생각이 결론에 이르자마자 그의 낯빛이 다시 어두워졌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렇지. 날 치워버려야 했던 거였어.”

“존…” 셜록은 팔을 들었지만, 신체적으로라도 위로해주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을 밀쳐내어서라도 존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레 한 손을 친구의 어깨에 얹어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둘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셜록은 이유 없이 기뻐졌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모리어티가 네 심장을 끄집어내서 태워버리려 했다는 거겠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존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 놈이 네게 답을 이미 알려줬다던 말은 그런 뜻이었나?”

“그런 것 같아.” 셜록은 시인했다. 셜록 자신은 이해하기까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존이 결론에 이르는 속도는 놀라웠다. “그게 놈이 만들어둔 ‘마지막 문제’였던 거야. 내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 놈은 내가 사람들을 구하려 희생하게 만들어서, 소시오패스라는 내 자아를 부숴버리고 싶었던 거지. 그 사람들을 내가… 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잖아.”

존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넌 이 모든 것들을 언제 알아낸 거야? 너라면 명백히 미리 준비해놨을 거 아냐.”

셜록은 시선을 피했다. 그 정도면 지금 당장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정보이니… 나머지를 이야기해주기 전에 존에게도 잠시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 “스나이퍼 때문에 걱정되진 않아?”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야 하나? 위험한 상황은 끝났다며.” 존은 고개를 저었다. “너라면 확신을 갖기 전에는 돌아왔을 거란 생각도 안 들어 - 물론 네가 그깟 세 명 찾는데 6개월이나 끌었다는 게 놀랍긴 하지만. 전같으면 아침에 사건 하나 풀고 점심때만 되어도 안절부절 못했잖아.”

셜록은 발끈, 성질을 냈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거든. 모리어티의 네트워크는 방대했다구; 난…” 하지만 위태위태하게 이야기가 새는 걸 느끼고는 바로 말을 끊었다.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모런이 마지막이었어 - 어젯밤에 널 습격한 사람 말야.”

“그렇군.”

“모리어티의 오른팔[각주:7]이었거든.” 

“그래.”

“몇 달을 뒤쫓았다구.”

“어… 잘했어.”

“놈은 내 최우선 목표물이었어. 그때부터… 오랫동안.”

“그래서 - 네가 잡았잖아. 축하해.” 

“놈의 임무는, 내가 자살하지 않으면 널 쏘는 거였어. 네겐 내내 위험한 존재였던 거지. 나도 그놈만큼은 찾을 수도, 뒤쫓을 수도 없었어. 진실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구.”

“셜록… 지금 내가 뭐라 하길 바라는 건지 모르겠어.” 존은 계단 위에 축 늘어져 있다시피 한 상태였고, 어깨에 올린 손에 체중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나 피곤해. 목도 아프고. 굳이 덧붙이자면, 온 몸이 쑤신다구. 넌 벌써 내 세계를 한판 뒤집어 엎었잖아, 그리고 네가 말 안한 게 많다는 거 알아. 절대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도 많겠고.”

그는 몸을 숙이며 무릎에 팔을 괴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기본적인 것들만 생각하려구. 네가 살아 있고, 그건 꽤나 좋은 일이잖아. 나한테 어떤 의미일지는 차치하고라도… 네가 있으면 이 세상이 더 근사해지거든. 널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내겐 늘 그랬어, 지금 와서 바꿀 생각도 없고.”

그가 고개를 돌릴 때, 얼굴에는 지쳐보이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 그로기 상태인가봐. 지금부터는 나한테서 신경 끄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뭐라 지껄일지 알 수 없으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음같아선 네가 사라져버릴 수 없게끔 손가락에 강력접착제 발라서 손목이라도 붙들어두고 있었음 싶지만… 좀 자야겠어.”

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고,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몇 계단 내려섰다. 잠깐 망설이다가 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존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 아직 물어볼 거 있어, 그러기엔 너무 피곤하긴 해도 말야.”

셜록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기 있을 거야. 대답해줄게.”

존은, 그의 손을 잡았다.



  • 원문: Given In Evidence - 2. The Hooded Man 
  • 역자 주석: 하루만에 천국부터 지옥까지 넘나드는 존.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늘 그랬다’는 고백에 마음 한 구석이 쩍- 갈라지는 느낌이라 서글펐다.
      그나저나, 담배(cigar)와 시거슨(Sigerson) 모두를 노린 ‘Siggy’란 이름, 센스있는데 옮길 방법이 없어서 아쉽네. : ] 


  • 1. 노숙자의 집 | The Homeless House  [ 목록 ]  3. 마지막에서야 | The Last To Know ▶



    1. ‘Give me a sodding break’ - 그야말로 존답다 -_-;; [본문으로]
    2. ‘His mental eyebrows rising higher that the physical ones could manage’ - 의미에 맞추어 옮긴다. [본문으로]
    3. ‘without a coat collar to turn up’ - S2-2, 멋진(cool) 척 한다며 존이 타박할 때의 대사로 되받은 것. [본문으로]
    4. ‘like a rat out of an aqueduct’ - 몬티 파이튼 시리즈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에서 나오는 대사. [본문으로]
    5. “Just a magic trick.” - S2-3 셜록의 말 그대로 대꾸한 것. 더빙판의 번역을 따른다. [본문으로]
    6. ‘I.O.U’ - 더빙판의 번역을 따른다. [본문으로]
    7. ‘Moriarty's second in command’ - 2인자라는 말 그대로의 표현보다 좀더 짝짝꿍 맞는 느낌이었으면 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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