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데이트날 밤 | Date Night



지난 일주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이한 기간 중 하나였다.
알콜중독에 레즈비언인데다 오버의 극한을 보여주는 누나와 성장기를 보냈던 나조차도 충분히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가 레스트라드와 동료들 앞에서 셜록을 비호해준 그날 이후로, 그의 행동은 점점 더 이상해졌다. 마치 머릿속에 있는 스위치가 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갑자기 그의 좋은 친구이자 동료에서 셜록 전용 담요(security blanket)같은 걸로 바뀌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나를 만지지 않고서는 채 한두시간을 버티지 못했으며, 외출하기 전에 내 목에 자신의 스카프를 둘러 준다거나, 심지어 내가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불평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유해한 실험들 중 하나를 포기하기까지 하는 등 나름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있었다.

한번도 사적인 공간이나 사생활을 존중해준 적 없었던 셜록이긴 했지만, 이제는 아예 내 어깨 너머로 신문을 읽거나, 소파에서 내게 기대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있으려 들었다. 그리고 만지지 않을 때면 그는 그저 빤히 쳐다보거나, 마치 내가 아직 풀어내지 못한 엄청 흥미로운 퍼즐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곤 했다. 내가 그를 감싸줬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제대로 움직이게 한 것이 분명했다 - 그의 엄청난 머릿속 어딘가에서 내가 재분류되었지만,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이 보였달까.

그에게 이 부적절한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도 고민해봤지만, 이 어색한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마자 가볍게 단념했다. 대신, 나는 내 성별에 맞게 행동하면서 그 문제가 사라져버릴 때까지 무시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내 충정 때문에 빚어진 – 어떤 정신적인 문제든간에 그가 해결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테고, 이런 - 함께 샤워하자는 식의 - 불편한 암시들로부터도 벗어나게 될 테니까.





레스토랑에서 셜록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졌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모든 생각들이 한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린 온통 커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셜록이 거리에서 뭔가를 지켜보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 창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손님이나 직원들 중 누구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실제로 그는 내내 나에게서 시선을 거의 떼지 않았고, 심지어 음식을 주문할 때조차도 거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진짜로 밥도 먹었다(사건이 없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어야 했다). 지난 일주일간 - 만진다거나, 사적인 공간에 끼어들거나, 배려하는 - 그의 행동들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스노우 글로브(snow globe) 안에서처럼 한데 뒤섞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꽃들이 내려앉았을 때, 그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거 데이트야?” 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음, 우리 단 둘이서,” 지적하고는, “같이 나와 있긴 합니다만.” 이제까지 내가 봐왔던 것 중 가장 서글픈 표정으로 덧붙였다.
“당신은 즐겁지 않은 건가요?”

그는 정말 물기어린 듯 반짝이는 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는 정말 크게 충격받은 것처럼 보여서, 나는 마치 그가 아끼는 강아지를 치어버린데다, 심지어 후진해서 한번 더 들이받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도 내가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기에, 또 반복했다. 아마도 몇번쯤 더. 마침내, 나는 한심하게나마 간신히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넨 일과 결혼했다고 했잖나!”

“그땐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습니까, 존.” 그는 중얼거렸고, 이날 오후중에 아마도 처음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당신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될거란 걸, 그때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내가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거라고?  아아, 신이시여! 저는 로맨틱한 레스토랑 한가운데 조용한 테이블에 앉은 채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집에 가도 될까?” 대체 어떻게 이걸 처리해야 할지 의아해하며, 반쯤 포기한 상태로 물었다.

“물론이죠!” 그는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계산서를 흔들었다.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 나는 조금 더 불안해져버렸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너무나도 불편했다. 십대 중반이던 시절, 거실에 들어섰을 때 내가 몇주간 홀딱 반해있던 그녀가 온통 상기된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누나가 테이블 밑에 있었고, 컨택트렌즈같은 걸 찾으러 내려가 있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심지어 그때보다 이렇게 걷는 게 더 불편한 상황이란 말이다.

레스토랑을 나섰을 때, 굳이 내 등에 손을 얹으려 드는 셜록을 피하려 걸음을 재촉하면서, 나는 그가 내 손을 잡거나, 비슷한 급으로 부적절한 뭔가를 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잽싸게 장갑을 끼고는 주머니 깊숙히 양손을 찔러넣으며 빠른 속도로 앞서나가려 했지만, 그는 그 긴 다리로 나를 몇 걸음만에 따라잡아버렸다.

그는 내 방어적인 태도에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내 팔 사이에 자신의 팔을 끼워넣고는 단호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기만을 기원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상황이, 밤늦게까지 흥청망청 놀아댄 다음 내 무의식이 멋대로 만들어낸 기묘한 대체현실같은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고 남몰래 스스로를 꼬집으면서. 하지만 그런 행운 따위는 없었다 - 실제로 나는, 나의 정신나간 천재 - 평생 처음으로 감정이란 걸 발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 - 플랫메이트에게 맹렬한 속도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플랫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내가 영국사람이라는 걸 기억해 내고는 주전자로 직행했다. 잠시 멈춰서서 지금 내게 제일 확실하게 필요한 강력한 뭔가가 없을지 고민했지만, 최근 셜록의 이상 행동에 대처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싱크대로 가면서, 셜록이 늘 그렇듯 드라마틱하게 코트를 휘날리듯 벗어서 걸어두고는, 돌아서서, 말 그대로, 사냥감을 찾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주전자를 다시 꽂으러 테이블을 빙 돌아갔지만 그는 여전히 따라왔고, 나는 깨끗한 컵을 찾기라도 하는 양 다시 돌아갔다. 분명 상황은 말도 안 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한바퀴 더 돈 후에야 씩씩거리며 그만두고는, 부엌 반대편에 기댄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차?” 나는 할 수 있는 한 평소와 가까운, 누구도 속이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래야 하면요.”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최소한 움직이지 않는 단단한 장애물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들을 한데 모아보려고 애쓰며, 그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 내 잔을 들고 조리대에 기대섰다. 

“셜록,” 말을 꺼내고 나니, 전혀 도움 안되게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나는 다시 시도했다. “그러니까, 지난주 일은 나도 알겠어. 그 ‘자네 편이 되어준’ 것 때문에 자네가…” 잠시 멈추고, 완전히 정신 나간 상태를 부드럽게 표현할 말을 생각하려 애쓰며 말을 가다듬었다. “영향을 받은 것 같네만.”

그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이어갔다. “확실히 자네에겐 친구라 할 만한 사람들이 많진 않았을 테고, 내 생각엔, 아마도, 지금 인식한 거겠지만, 실제로, 자네를 기꺼이 옹호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광기? 착란? 정신병?  “혼란스럽겠지.”

지금 그가 확실히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인 걸 보니, 아마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자네가 우정이라든가 충정같은 감정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른 뭔가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거야. 그러니까, 애정이란 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거라서, 경험이 많지 않으면 약간 뒤섞이거나,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걸세.”

나는 버벅거리는 걸 멈췄지만, 그의 표정은 이해한다는 듯이 밝아졌다 - 나 성공했어!
“뭔가 다른 걸 하기 전에, 내가 한 말을 잠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나? 그리고, 다시 전처럼 돌아가는거지. 어때?” 

그는 분명 내게 활짝 웃어주었기에,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조금 마음을 놓았다.
최악의 상황이 끝났기를, 그래서 우리가 이 상황을 넘겨버리고는 절대, 다시는, 말도 꺼낼 일 없기만을 바라면서.

“굉장한데요, 존.”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역할이 바뀐 것 같아 이상하긴 했지만. “조리정연한데다, 논리적인 추리였습니다.
 당신이 진정한 친구라는 걸 다시금 확실히 보여주면서, 내가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말이죠.”

나는 차를 다 마시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개숫물과 함께 오늘 오후의 긴장감까지도 헹궈버리고픈 심정으로 머그를 씻으러 싱크대로 향했다.

“단 한가지, 당신이 간과한게 있어요, 존.”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고, 나는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 그는 조리대 쪽으로 나를 밀어내며 다시금 사냥감을 찾는 눈빛으로  다가왔고, 이번에는 피할 곳이 없었다.


Artwork by 0redwolf0

“당신의 추리는,” 그는 내가 옆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오른팔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조리있긴 하지만,” 말을 이으며 왼쪽 팔로는 나를 제자리에 고정시켰고, “늘 그렇듯이,” 앞으로 기대오며 최면이라도 걸 듯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완전히,” 그의 시선은 내 입술로 내려왔고, “그리고 제대로,” 그의 입술이 한치 앞까지 다가왔고, 내 얼굴을 감도는 그의 숨결마저 느낄 수 있었다. “틀렸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그나마의 거리마저 좁히며 다가왔다.



  • 원문: The Road Less Traveled (4/19): Date Night 
  • 역자 주석: 셜록과 존의 밀당! 2편에서의 그 미묘한 긴장감과도 닮았다고 생각해요~ : ] 
  • 그림1: SkyWing님께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지막 장면을 그려주셨습니다! 대사와 눈빛, 꼭 보세요~ 두근두근 XD
  • 그림2: 0redwolf0님께서 마지막 장면, 당황하는 존을 선물해주셨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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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