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안  | Proposition
 
 
 
(셜록 시점)


“이거 놔요!” 나는 좌절감에 몸부림치며 따지듯 외쳤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오늘 밤의 결말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쯤이면 존은 우리의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고, 아마도 (육체적인) 진도의 세부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 품위없는 모양새로 등 뒤로 팔을 꺾인 채 테이블 위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게 아니라 말이다 – 당혹스럽게도, 각종 무술을 연마한 나로서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5분 전, 조리대 앞에서 존을 끌어안았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딱 원하는 그대로였다. 내가 천천히 그에게로 고개를 숙였을 때, 얼어붙은 듯 나를 올려다보던 그는 멍한데다 반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었다.

그리고는 내 입술이 그의 입술을 스치던 마지막 순간, 그는 갑작스레 자신이 군인이라는 걸 기억해낸 듯했다. 3초 후, 그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나를 제압해버렸고, 나는 고개를 처박힌채 씩씩거리고 있게 된 것이다.

“일으켜줘요, 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뭐냐구? 내가 뭐하는 거냐구?” 존의 손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다. “내가 뭘 안할 건지부터 말해줄게.” 그는 강하게, 고집부리듯 말했다. “난 빌어먹을 미친놈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고, 부엌 테이블을 돌면서 내 플랫메이트를 쫓아다니려는 것도 아냐.” 내 팔목을 쥔 손에 잠시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내 성격을 몽땅 바꿀 생각도 없고, 무슨 일인지 다들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것도 아닐세.” 그는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고, “그리고 난, 확실히, 이제껏 단 한번도, 물론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셜록,” 앞으로 살짝 기대면서 말했다. “난 게이가 아니라구.”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날 풀어주며 물러섰다.
하지만, 여전히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에 뒤돌아 그를 마주보았을 때, 그는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손목을 문지르며 나무라듯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건가요?”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우리 사이에 폭력을 쓰지 않으면 합리적으로 논의를 할 수 없는 겁니까?”

“폭력이라구!” 그는 외쳤다. 모든 걸 몇번씩 되풀이하려 드는 이 새로운 방침은, 전에도 늘 말했지만 정말이지 따분하기 짝이 없다. “폭력이란 말이지!” 이제 되풀이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커지는군그래. “이런건 정당방위라고 하는걸세!”

“정당방위?” 맙소사. 이젠 나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건가. “왜 나한테서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거죠? 내가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란 건 이제 당신도 분명히 알고 있지 않나요, 존?” 난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움찔하며 물러서는 그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 내가 공격이라도 할 거라 생각한건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조금 긴장이 풀린 듯 했다. “앉아봐!” 그는 거실 쪽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그는 확실히 아직 초조해하고 있었기에, 일단은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가 옆에 앉을 만큼의 공간을 남겨둔 채로.

그는 눈을 굴리더니 반대쪽 의자로 가서 앉았고, 무릎에 팔을 괴고 앞으로 기대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알았으니까, 셜록.” 그는 말문을 열었다. “내 결론이 그렇게나 완전히, 제대로 틀렸다면, 자네가 내게 알려주는게 어떨까?” 그는 질문하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냐면, 솔직히 말해, 나는 무슨일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자네가 날 심장마비에 걸리게 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확인하는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말일세.” 그는 기대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의자 뒤로 기대며 앉았다.

좋아. 모든걸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존이 내 파트너로서 가장 탁월한(실제로는 단 한명뿐인) 후보니까, 이번 한번쯤은 내가 참을성 있게 버텨야겠지.

“우선, 존.” 나는 시작했고, “사과부터 해야겠네요.” 그는 차갑게 미소지었다.
“이번만큼은 당신 스스로 올바른 해결책을 이끌어낼 거라고 가정했던 건 제 오산이었습니다.” 그나마의 미소도 싹 가셔버렸다.

“그러니,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도록 할게요,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거란 가정 하에?”
존은 이를 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난 당신이 필요해요, 존.”
이 정도면 원래 의도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좋아.” 그는 ‘계속해’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왜 내가 필요한데?”

“모두 다요!” 나는 강조하듯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당신은 내 일을 도와주고, 내 실험들도 참아주고, 우유도 사다주고,”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아마도 마지막건 빨리 넘겨버리는 게 좋겠다. “당신은 항상 날 웃거나 놀라게 합니다. 다른 누구도 못했던 건데 말이죠.” 미리 준비해둘 틈조차 없었는데도 이 목록들이 술술 나오는데 스스로도 살짝 놀랐다. “다들 섬뜩하다고들 할 때, 당신은 훌륭하다고 말해줘요. 사람들이 괴물이라 부르면, 당신이 막아주죠. 당신은 날 한 인간으로서 대해줘요.”

그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셜록, 지금 자네가 말하는 건 좋은 친구야. 내가 딱 그렇지.”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뭐가 바뀌었길래 갑자기 우리가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난 잘 모르겠네.”

난 살짝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존.” 그에게 말하며,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난,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데이트하는 게 싫습니다. 난 당신이 나랑 있을 때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게 싫구요.” 잠시 멈추고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는 듯 보였지만, 어쨌든 계속 이어갔고, “난 당신 전부를 원해요.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나와 있기를, 당신이 내 옆에만 있기를 원해요. 난 당신이…” 잠시 멈추었다. “난, 그저 당신을 원해요.”

“날 원한다구?” 나는 끄덕였다. “자네가 날 원한다는 건가?” 왠지 되풀이인지 뭔지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어쨌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다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 섹스, 같은것도?” 존의 얼굴은 온통 새빨갛게 붉어졌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확실하게 진상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뭐,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쪽으로는 경험이 없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맞아요, 그런 뜻입니다.” 내 설명이 나름 이해할 만했다는 데 만족하면서 물러나 앉았다. 존은 여전히 뭔가 어리벙벙한 표정이었기에, “문제라도?”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종류의 몇 단어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확실하진 않았다. 몇 분쯤 후에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셜록. 문제있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매우 엄청난 문제가 있지, 심지어 내가 30분 전에 이야기한게 아니라 해도 명백하다고 생각했던 건데 말야.” 그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역시 마주보았다. “난 게이가 아니라구, 셜록!”

“그래서요?” 나는 되물었다. “나도 아닌데.”

그는 멀뚱멀뚱 날 바라보더니, “뭐? 하지만 방금 자네가…” 이젠 아예 더듬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나는 그에게 분명히 해두고자 입을 열었다.
“게이, 또는 동성애자는 같은 성별인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확인차 눈썹을 치켜올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니까,”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니란 거죠, 이제껏 한번도 다른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 적이 없으니까요. 즉, 난 확실히 그 분류에 맞지 않습니다. – 난 오직 당신만 원하는 겁니다.”

“하지만 나 남자야, 셜록.” 그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덧붙였다.

“그게 어째서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존이고, 난 셜록이잖아요.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나는 적절한 말을 찾으려 애썼다. “맞지 않는 것들일 뿐이라구요.”

그는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일어섰다. “오늘밤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는 불쑥 말을 꺼냈지만, “미안하네, 셜록. 자네에게도 쉽지 않았을 거란 건 알아, 하지만 난 그저…” 그의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난 자러 가야겠네. 아침에 보자구.”

나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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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