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희망  | Hope



(셜록 시점)


나는 창밖으로 존이 건물에서 말 그대로 튀어나가다시피 빠져나가 파크로드 쪽으로 후다닥 달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흠, 확실히 계획대로는 되지 않을 모양이군.

나는, 성별 문제에 대한 존의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체적 성관계 분야에 대해서는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게 사실이지만, 당연히, 관련된 사실이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만약 성관계라는 게 쾌감과 희열을 느끼기 위해 신체 일부를 서로 비벼대는 행위를 함의하고 있는 거라면, 대체 왜 성별이 문제가 되는걸까 – 분명 마찰은 마찰이니까, 그 느낌도 같은 게 아닌가? 아마도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게 아닐까… 만약 우리 관계가 내가 바라던 대로 발전한다면, 존이 좀더 윗쪽에 위치하도록 내가 앉아 있을 때 포옹을 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리 하는게 그에겐 좀더 익숙할 테니, 그나마 덜 불편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이 관계가 잘 자리잡을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문제까지 가려면 일단 이 난국에서부터 존이 빠져나오게 하는게 먼저다. 그는 주어진 증거들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게 분명한데다, 보다 고전적인 구애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는 것 같으니 내게 남아있는 행동 방침은 단 하나뿐일 테다.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그런 것 같지만… ‘유지 프로젝트에 지원 필요’… 나는 전송을 눌렀다.





머리를 좀 식히기 위해, 그 다음 30분 동안 나는 허드슨 부인이 어디에 내 해골을 숨겼는지를 추리하기로 했다. 결국 찾아낸 것은, 그녀의 부엌 맨 윗 선반에 한줄로 놓여있어야 할 6개의 찻주전자 중 5개에만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흉물스러운 손뜨개 덮개가 덮여 있었다는 것 뿐.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덮여있지 않은 주전자의 덮개는 해골을 가리는 데 쓰였음이 분명하고, 주전자는 원래부터 다섯개 뿐이었던 거다. 정말이지, 이 부인은 점점 기발해지고 있다니까. 나는 내 해골을 회수하고 넘칠듯한 야채칸에서 꺼낸 커다란 순무로 대체해두었다. 한동안은 이 친구를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두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윗층으로 다시 돌아오며 창밖을 살폈지만, 존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활동의 목적은 존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가 더 이상 여자들을 쫓아다니지 않게 되면, 결혼의 꾀임에 빠져 날 떠날 위험도 줄어들게 될 테니까. 난 그가 나와 함께 머물러 있길 원하고,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의 목적 그 자체인 것이다. 내 성욕 같은 건 무시해도 될 소소한 문제지만, 그를 내 파트너로서 곁에 둘 수만 있다면 기꺼이, 전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사실, 이 분야에 대해 개인적 지식을 얻기에도 꽤나 유용할 것 같다고 내심 합리화하고 있기도 했다.

이 점에 있어 단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실제로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인데, 성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분명한 흥분의 표시는 조작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데다, 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명백하게, 난 존의 욕구를 위해 대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는 이전까지 상대를 여성으로만 제한지어 왔었고, 짐작컨대 삽입당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조심해왔다고는 해도, “당신을 원해요”라는 말을 그가 이해한 바가 내 의도와는 달랐다는 걸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문제가 될까?” 나는 해골에게 물었다. “내가 흥분하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될거야.” 대답은 없었다 – 보통 해골에게 이야기하는 건 이것보다는 더 유용했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했다. “게다가, 존은 매우 사려깊은 사람이라구; 그는 자신의 파트너에게도 육체적인 쪽으로 해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한테는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된단 말이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는 해골에 손상이 있는게 아닌지 확인해봤지만, 정확히 평소 그대로였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일찍부터 걱정하는 걸까?” 나는 물었다. “결국에는 존이 진도를 나가는 데 동의한다 하더라도, 분명 그라면 당장 섹스부터 하려 든다거나, 그러길 기대할 것 같진 않거든.”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분노의 눈빛을 해골에게 쏘아보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지금은 이미 존에게 이야기하는데 익숙해져버린데다, 해골이 그를 대신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싫증내며 소파 위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차라리 순무에게 말을 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대로 누운 채, 이제 쓸모없어진 해골을 다른 데 쓸 수 없을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에, 존이 아랫층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멈춰선 차가 없는 걸 보면, 그는 마이크로프트를 만났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운전기사에게 코너에서 내려달라고 했거나, 잠시 생각할 겸 집까지 걸어오기로 마음먹었던 걸테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날 마주대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거겠지 – 그가 이미 결정을 했지만 불안해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또다시 말다툼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건지, 지금 당장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문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위협한다거나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와 이야기하고 왔어.”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그럼 집까지 걷고 싶었던 거군 - 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완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는 다가와서 소파에 - 내 옆에 앉았고, 난 그걸 가망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망설이며 살며시 미소지어보였다. 
“내 잘난 형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신답니까?”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자네가 날 필요로 한다더군.” 존은 그 특유의 솔직함으로,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서 답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다던데. 자네가 날 얻을 수 없다면, 누구도 원하지 않을 거라면서.” 그는 질문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잠시 멈추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전적으로 정확하게 짚었군요.”

그는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고, “그는, 내가 자넬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나지막히 덧붙였다.

그건 좀 복잡한 문제긴 하지만, 답은 단순했다. “그렇죠.” 나는 그에게 말했고, 그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우리는 맞닿을 듯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잠시 나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부르르 떨더니 조금 물러나 앉았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 셜록.” 그는 말했다.

눈썹을 치켜올리며, “정말인가요?” 그를 주의깊게 살펴보며 물었다.

“음, 실상 거래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그는 말을 이었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회성 제안’이나, ‘양자택일’ 식의 거래야.” 나를 바라보았다. “들어볼 텐가?”

“물론이죠!” 나는 대답했고, 똑바로 몸을 세우고, 그를 완전히 마주볼 수 있도록 돌려 앉았다.

“이 거래에 동의한다면,” 그는 경고하듯 말했다. “규칙을 따라야만 해. 속이거나 취소할 수 없고, 싸우려 들어서도 안돼. 결과를 회피하려 해서도 안되고.”

“좋습니다, 존. 뭔지나 빨리 말해요.” 나는 요구했다. 참는 건 결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니까.

“우선, 자네 마음이 바뀌지 않은건지 확인부터 하고 싶어. 그러니까, 여전히 우리가…” 그는 최대한 덜 당황스러운 표현을 찾으려는 것 같았고, “커플이 되길 바란다는 건지?” 라고 끝맺었다.

“그럼요, 존. 물론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나는 그가 뭐라고 말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그가 내게 완벽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그는 가끔씩 나를 정말로 놀라게 만들곤 하니까.

“좋아.” 그는 심호흡을 했다. “자네에게 키스할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어떻게 될지 겁이라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만약 하고 나서도 괜찮고, 우리 둘 다 만족스러웠다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좋아, 우리가 연애를 해볼 수 있겠지 – 그에 따른 몇가지 추가적인 조건을 걸 생각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최소한 그는 생각 없이 성공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름 고무적이다. 나는 내 맥박이 살짝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마구 뛰고 있는게 확실해보이는 가엾은 존보다는 훨씬 정상에 가까운 수준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그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만약 끔찍하거나, 이상하거나, 그냥 아닌 것 같다면, 우리 둘 모두에게.” 그는 나를 바라보며 강조했다. “그러면 우린 예전처럼 돌아가는걸세. 이 이상했던 일주일의 기억은 잊고,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도, 입 밖에 꺼내지도 않는거야.”

그가 기대하는 결과는 분명했다 - 내가 결과와는 관계 없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아마도 그는 내가 그 경험을 싫어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실패할 경우, 존이 여전히 다른 어딘가에서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을, 우리가 처음 시작한 지점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반면에, 존이 스스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물러서 있는 상태란 것 역시 분명했다 - 내가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 해도, 그저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그가 떠나버리게 될 건 당연했다. “그 거래, 받아들일게요. 단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어떤?” 사랑스럽게도, 그는 애써 사무적으로 말하려는 듯 물어왔다. 

“당신도 최선을 다해야 해요.” 나는 확실히 요구했다. “볼에 살짝 입맞추고서 ‘아, 미안 셜록. 별로네. 약속했던 거 명심해.’ 하면 안돼요. 당신이 최선을 다하는 게임이어야 합니다.” 그는 내 단어 선택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그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당신이 의도적으로 불쾌하게 하려 들면, 거래는 없던 게 되는겁니다. 내가, 당신이 채널을 휙휙 돌리다가도 늘 멈춰서 바라보곤 하는 텔레비전 속 그 여자라고 상상해줘요. 광대뼈가 좀 도드라진 그녀 말예요.”

그는 얼굴을 붉히고는, “왜,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하루를 날려버리지그래!” 지적했다. “거래는 키스 한번이고, 내가 이제껏 만났던 여자들에게 했던 그대로 하겠다고 약속하지. 자넨 날 좀 믿을 필요가 있어.” 그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면, 물론, 전부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있…”

“아니, 안돼요.” 나는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당신을 믿어요, 존. 알고 있잖아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 뿐입니다. 내 남은 인생 모두가 그 짧은 순간에 달려 있으니까요.”

말하고 나자마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최소한의 시간 제한을 둘 수 있을까요?” 간절하게 제안하고는, “부엌에 있는 토마토같이 생긴 걸 맞춰두고, 그게 울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걸로요.” 벌떡 일어나 가져올 태세를 취했다.

“됐어!” 존은 말 그대로 소리치며, 내 팔을 붙잡아 제자리에 멈춰세웠다. “지나친 생각이야, 셜록.” 그는 내게 타이르듯 말했다. “긴장 좀 풀라구.” 그는 내 팔을 토닥이고는 놓아주었다.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불안해보이면 보일수록 그는 차분해졌다. 확실히, 그가 이런 류의 상황에 억지로 떠넘겨지기보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내 생각이 옳았던 셈이다 - 분명, 이렇게 팔을 붙들리는 낭패를 당하고 나서도 또다시 내가 실수할 일은 없을 거다.

“거래 성립인가?” 마침내 그가 물었고, “그리고, 이게 자네가 원하는 게 확실한거지?” 재차 확인까지 했다.

“그래요, 존.” 이번 한번쯤은 좀 되풀이해주는 것도 나름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확답해주었다.
“거래 성립이고, 내가 원한 그대로입니다.”

“준비됐어?” 그는 내게 물었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게 분명했다.

“네.” 나는 그를 향해 살짝 몸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잠깐! 아니…” 좋지 않았다 - 우리 둘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채로 불편하게 몸을 틀고 있는데다, 각도도 이상했다.

내가 그의 앞으로 옮겨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놀란 듯 했다. 나는 그의 허리께를 붙잡고 그의 다리가 내 상체 양 쪽으로 자리잡도록 소파 가장자리까지 끌어당겨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셜록, 이게 무슨…?” 그가 항의하려 들기에, 나는 그가 다시금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느끼도록 무릎을 꿇은채 물러나 앉았다.

“생각해봐요, 존.” 나는 설명했다. “만약 잘 안되면, 이게 내 일생 단 한번뿐인 키스가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진해보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이 날을 되돌아봤을 때 목에 경련이 났었다는 걸 기억해내고 싶진 않다구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는 팔을 내밀어 내 목 뒤를 감싸안고 천천히 그에게로 끌어당겼고, 나는 조심스레 그가 리드할 수 있도록 두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 그는 잠시 멈추었고, 시선으로 내 눈에서 입술까지 스치듯 훑어내리고는 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다른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 입술을 부드럽게 스치는 그의 입술을 느꼈다.

그의 손이 내 목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그러쥐었을 때, 나는 전신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 느낌은 너무나도 이상해서 좋은 건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갑자기 이 거래의 성과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원문: The Road Less Traveled (7/19): Hope 
  • 저자 주석: 훌륭한 br0_harry님이 마지막 장면을 아주 멋지게 그려주셨습니다. → 희망 
  • 역자 주석: 마형님 공조 체제 하의 '유지 프로젝트' 겸 두근두근 그들의 미래를 건 한판 승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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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