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시, 집으로  | Home Again 



“한 계단만 더.” 존이 나직하게 말했다. “거기야, 그렇지.”

“내 플랫에 계단이 몇 개 있는지 정도는 나도 안다구!” 셜록은 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존이 이끄는 손을 밀쳐내면서, 짜증스러운 듯 쏘아붙였다.

이제는 짜증내는게 기본인 것 같군그래, 존은 생각했다. 당연히 이해는 가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존은 정말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여전히 셜록을 되찾았다는 안도감과 행복으로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원래 그 성격과 지성과 본질적인 성격까지도 모두 셜록인 그대로… 그러니, 짜증 정도는 받아줄 수 있지, 매일매일이라도 기쁘게 그래줄 거다.

셜록이 돌아다니며 쿠당탕거리는 소리에, 존은 서둘러 그를 쫓았다; 3주 전에 처음 깨어난 이후부터는 절대 몇 발짝 이상은 떨어지지 않을 셈이었다.

실어증(aphasia)으로 염려는 했었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셜록이 처음 의식을 되찾았을 때에는, 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분명히 구분해낼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는 말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하는 말들은 알아듣지 못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쉬 진정하지 못했었다. 존이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힘을 얻긴 했지만;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그때 이후로, 셜록은 항상 존의 손을 꼭 잡아왔다.

오후 들어서 셜록이 단어와 문장을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하자, 주위 모두는 크게 안도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그는 거의 평소와 가까운 수준으로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로도 문제는 재발하지 않았다.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니까, 존은 생각했다. 확실히 운이 좋았던 셈이다. 훨씬 더 나빴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셜록은 예의 그 드라마틱한 자세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팔다리는 거대한 소금쟁이[각주:1]마냥 쫙 벌린 채로 말이다.

“나 미쳐버리겠다구!” 그가 다시 바로 앉더니 손바닥 두덩으로 눈을 꾸욱 누르며 말한다.

존은 셜록 앞 커피 테이블에 걸터앉아 부드럽게 그의 손을 떼어내 꼬옥 그러쥐었다. 전같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그런 눈빛으로 셜록의 눈을 마주보면서.

“난 뭘 하면 되지, 존?” 셜록이 따지듯 물었다. 잡힌 손을 빼내려 하진 않았지만, 대신에 고개를 숙여 존의 가슴에 이마를 맞대왔다.

개인 공간이라든가 신체적 경계 같은 건 이미 거의 무시하다시피 해온 셜록이었지만, 이제 존에 대해서만큼은 그나마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이게 뇌손상 때문에 억제력이 약해지게 된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지금 처한 상황 때문에 의존도가 높아진 건지 아직 존은 알 수 없었다.

원인이야 뭐가 되었든간에, 셜록은 이제 거의 존을 자신의 연장선상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의료진들이 손이라도 댈라치면 자존심에 금이라도 간다는 듯 벌컥 화를 내며 물러나는 반면, 존의 치료라면 그게 어떤 방법이든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탓이다.

존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자라고 있는 셜록의 머리칼은, 옆머리나 정수리 쪽은 늘 그랬듯 부스스했지만 뒤통수 쪽은 꽤나 짧았다. 수술 때문에 깎아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덜 티나게끔 - 마이크로프트가 부추긴게 분명했다 - 지난주 퇴원하기 전에 제대로 자르긴 했었지만 말이다. 존은, 그 고수머리가 그리워졌다.

존은 셜록의 머리 뒤에 머물러 있던 손을 조심스럽게 거두고는, “살아있다는 걸 기뻐하게 될 거야.” 그에게 말했다. “네가 여기 있다는게, 여전히 그대로라는게 난 기쁜걸.”

셜록은 나직하게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잡힌 손을 빼내어 얼굴을 감싸고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 “하지만 난 내가 아닌걸, 안그래?” 그가 따지듯 묻는다. “난 뭐겠어, 일 아니면?”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일 말야, 존. 나한테 중요한 건 일이라구 - 그게 없으면 나머지 내 두뇌마저 썩어버릴거야! 내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내가 여기 있는 의미가 뭐겠어? 그럴 바엔 내가-“

“입 다물어!” 존이 명령조로 소리쳤다; 셜록이 놀라 움찔할 만큼 큰 소리로. 하지만, 존에게도 한계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말이라면 끝까지 꺼낼 생각따위 하지도 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버가 너무 지나쳐[각주:2], 셜록.” 항상 참아내고 받쳐주기만 하던 그였지만, 이것만큼은 들어 넘기지 않을 셈이었다 - 화를 내야 마땅한 일이자, 그것도 제대로 화를 내야 할 문제였다. “딱 1분만이라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생각 좀 해보지 않겠어?”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도 말야.”

그는 냉정을 되찾으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무의식적으로 돌아섰다. 더이상은 그의 표정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나 장님이야, 존.” 등 뒤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구인데다 쓸모도 없지. 너한테 매달려 있고; 병신이나 다름없어.”

존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금 커피 테이블로 돌아와 앉아 셜록의 두 손을 다시 꼭 잡았다. “넌 불구가 아냐.”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도 아니었다. 셜록이 기억하는데 지장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믿지 않는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네 눈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그건 그냥…” 그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지극히 정상이라구. 시신경도 그렇고.”

그는 셜록의 머리 옆으로 한 손을 뻗었다. “총알은 두개골 뒤쪽을 건드렸으니, 시각 피질이 있는 후두엽 쪽에 문제가 생긴 거겠지.”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셜록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손을 떼어냈다. 셜록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긴 했지만.

“피질맹(Cortical Blindness)이라 해도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거든.” 셜록이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존은 대꾸하며 이제 어깨로 손을 옮겼다. “네 눈은 여전히 온전해.” 그는 다시금 그 두 눈을 응시했다. 정말 가까이, 이전까지 봐왔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지금 당장은 받아들인 정보가 두뇌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 뿐이지. 당연히 시력도 돌아올 거고.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라도 말야.”

“돌아올 수도 있는 거겠지,” 셜록이 그 전문의의 말을 인용해서 정정해준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라는 게 무슨 소용인데? 내 추리는 전적으로 내 관찰에 달려 있는 거라구. 나뭇잎 피해다니는 정도에 한정된 능력따위, 내 일에 퍽이나 도움이 되시겠군그래.” 

“뭐든지 지금 당장이나 곧바로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존은 피곤했기에, 결국 말이 되어 나왔다. “머리에 총을 맞은 지 고작 한 달밖에 안됐잖아! 네가 곧바로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걸.”

“머리에 빗겨서 맞았지, 네 덕분에.” 대답이라고는 이거다. 수영장에서의 대치 사건에 대해서는 셜록은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었었다. 이번이 그나마 그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게 된 거긴 했지만, 지금 존은 그걸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셜록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너 피곤하구나, 잘 시간인가?”

존은 자신이 하품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소파 팔걸이에서 몸을 옮겨 제대로 앉았다. 존은 셜록에게 말하는 시계를 사주고 싶었지만,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맹인용 물건’이라며 질색을 했다. 게다가 그의 TBI(외상성 뇌손상)과 연관된 거라면 더더욱 심했다. 존은 이 일을 마이크로프트에게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책임도 그가 지는 게 좋겠지.

어쨌든 -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식은 갖추고 있는 - 존이 생각하기에 셜록의 회복 속도는 정말이지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그의 성격이나 명민함도 거의 온전해 보였고 - 약간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긴 했지만 그건 뇌손상 자체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시력 상실로 인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을 테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비록 아직도 건망성 실어증(anomia)으로 자주 괴로워하는 탓에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원하는 단어를 찾지 못한다는 건, 특히 셜록 같은 달변가라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겠지, 존은 생각했다. 보통은 그런 ‘아, 생각날 듯 말 듯 말이 안나오네’[각주:3]같은 느낌에 이미 익숙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류의 건망성 실어증을 겪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만, 셜록에게라면 분명 낯설고 달갑잖은 현상일 게 뻔하다.

하지만, 그를 혼자 둬선 안되는 건 보속증(perseveration) 때문이다. 가끔 셜록은 그저 막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야기할 때 특정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할 만큼 하고서도 끊임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15분도 넘게 이를 닦아버려서 잇몸에서 피가 나는 셜록을 발견한 순간, 존은 그 즉시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 그와 함께 있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너 나랑 같이 자는게 좋겠어.” 셜록의 단호한 발언에, 존은 충격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외상성 뇌손상의 수많은 부작용들 중 하나겠지만, 그런 게 셜록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그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걸 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면 뭘 해야 할까?

“올라가서 네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꿰뚫고 지나가버린 혼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리 없는 셜록이 말을 이었다. “내가 토스트를 구우려다 불을 낸다든지, 뭐 기타등등 네가 걱정하는 사태가 일어날까봐 이제껏 소파에서 잔 것도 알지.”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방에서 자는게 좋겠어. 침대도 나눠 쓰기에도 충분히 큰데다, 최소한 너도 조금은 쉴 수 있겠지. 지금 너한테는 확실히 휴식이 필요해.”

셜록이 말하려는게 뭔지 이해하면서, 존의 심장 박동은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가 소파에서 자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는, 호기심에 넌지시 물었다 - 셜록이 답답해하기를 바라진 않았기에, 그간은 신중하려 애써왔기도 했다.

“뻔하잖아!” 셜록이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세번째 계단이 삐걱거리는데, 아침에 두번씩 들린다구. 네가 내려올 때면 한번이어야 하는데 - 첫번째는 여기 아래에서 밤을 보내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소리겠지.”

그는 의자에 기대앉으며 턱 아래 손가락을 맞대었다. 그 익숙한 자세에, 존은 마음이 아릿해졌다. “소파에서 평소보다 네 체취가 더 강하게 나. 특히 문에 가까운 끝 부분에서. 네가 머리를 두는 데겠지. 내가 한밤중에 깨어나기라도 하면 내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존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나갔다.

“네가 날 끌어줄 때, 등이 뻣뻣하게 굳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는걸 느낄 수 있거든. 그런건 보통 네가 어딘가 불편한 데에서 잠들어버렸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니, 네가 지난 일주일 동안 침대에서 잤더라면 지금쯤은 수그러들었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에 당황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셜록의 얼굴은 이상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자각하는 것쯤은 그가 어려워하던 게 아니었던 탓이다.

“난 널 알잖아, 존.” 그가 말했다. “네가 날 걱정하고, 내 안전에 대해서도 염려한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 이런 지식을 기반으로 본다면, 나한테서 관심을 끊고 윗층으로 올라가 안락한 침대에서 쉰다는 건 너라면 합당하지 않은 일일테지.”

존은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어내고는, “그거,” 한 마디 덧붙였다. “굉장한데!”[각주:4]

익숙한 대사에, 셜록은 입 끝을 비죽 끌어올렸다. “굉장한 게 아냐, 존.” 그는 딱 잘라 부인했다. “그리고 전혀, 절대로 대단하지도 않고.”[각주:5] 그런 자신이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널 볼 수만 있었더라도, 단박에 그 모든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거라구.”

존은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그래, 하지만 그 전에 수백번도 넘게 들어왔던 그 방식 그대로 그냥 추리를 해낸 거잖아. 이번에는 다른 감각들로 해냈다는 것만 달랐지; 계단 소리나 소파에서 나는 냄새 같은 - 그건 그렇고, 고맙군그래. 그렇게 냄새나면 씻도록 하지 - 내가 오면서부터 알게 된거랑 원래 네가 알고 있었던 것들이랑 해서 말야.”

존은 앉은 채로 몸을 틀어 셜록의 팔에 손을 올렸다. “좋아, 내가 어디서 자는건지는 생사가 걸린 문제도 아니고 어쩌면 사소한 예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래서 내가, 넌 여전히 그대로라고 말하는 거야.” 그는 설명했다. “네 두뇌는 여전히 대단해… 모르겠어? 제발, 넌 식물인간일 수도 있었다구!” 그는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 움찔했다; 정신 상태가 지속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버리는 비극을 묘사하는 데 직업상 그닥 적절한 방식은 아니었으니까.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것 같은 셜록이었기에, 존은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알았어, 만약 네 지성이 약간 줄어들었다면 어땠을까? 더이상 천재가 아니게 된다면? 네가 우리같은 사람들, 수많은 무리들 사이의 또다른 바보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구 -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를 시력을 잃는 것보다 그게 더 나쁘지 않았겠어?”

“진심으로 IQ 몇 점이 완전히 앞을 못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가?” 셜록의 말투는 신랄했지만, 존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부분에겐 아니겠지만, 너에게라면, 셜록?” 존은 어리석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라구. 내게는 솔직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야.” 그는 따지듯 물었다. “아까, 넌 날 안다며. 뭐, 너만큼의 지적 능력은 없긴 해도, 나 역시 널 알거든.”

셜록은 완강하게 침묵을 지켰다. “난 널 잘 알아, 셜록. 널 안다구. 난 아무런 할 일도 없이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서 일주일을 보냈었어.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 걱정할 뿐인 일주일이었지. 다른 좋은 방법을 아는게 과연 누군지 보자구…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게 뭔지 알아?”

“내가 깨어나지 않는 거였겠지.” 셜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진부해!” 받아치면서도 존은 확실히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다시 해보시지.”

셜록은 슬슬 짜증스러워하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풀죽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짜증스러워하는 것 정도는 존이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여전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으면서, 셜록은 팩 쏘아붙였다. “내가 달라지는 거. 내가 아니게 되는 거. 내 성격이나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만큼의 뇌손상. 기억상실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내가 널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존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생각하는 건 그런 거야?” 그리고는 조용히 묻는다. 셜록조차도 놓칠 리 없을 만큼 실망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넌 일주일 내내 혼수상태였어. 우린 네가 언제 깨어날지, 깨어날 수나 있을지, 어떻게 될지도 전혀 몰랐지. 그런데도 넌 정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날 기억해낼 수 있을지 같은 거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목소리를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쓰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이제 가서 샤워해야겠어. 네가 괜찮다면. 잠깐 정도는 여기 있어도 괜찮지?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지만, 셜록이 불쑥 팔을 뻗어 소매를 움켜쥐었다.

“존,” 그가 말했다. “존,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고의가 아니었어, 난 그저…” 한숨을 내쉰다. “내 좌절감 때문에 네게 화풀이를 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앉아봐.”그는 존의 팔을 붙잡고 소파로 다시 끌어왔다.

“우리가 이 문제로 이야기해보지 않았단 거 알아.” 셜록은 말을 이어갔다. “모리어티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그 한 주에 대해서도. 병원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다, 적응할 것들도 많았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거나 볼 수 없다는 거, 말하는 데도 문제가 있고, 막힌 채로 있는 것도 그렇고. 모두 다 좌절스럽고, 어렵고, 또…”

“무섭지.” 부드럽게, 존이 덧붙인다. “나도 알아, 괜찮아. 내가 널 너무 몰아붙였던가보다. 미안해.” 존은 자리를 뜰 수 있도록, 셜록부터 진정시키려 애썼다;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해봤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한 달간의 모든 감정들이 바르르 일어났다. 그동안 눌러왔던 모든 것들이 셜록이 생각 없이 대꾸한 한 마디에, 체념한 듯 표면으로 올라왔고, 터져나오는 걸 막을 방법도 이젠 없었다.

병원에서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너무 멍해서였겠지.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 동안, 그는 셜록의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혼수상태인 환자들이 얼마나 알아차릴지, 들을 수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존은 셜록의 유일한 감각적 자극이 자신의 울음소리가 되는 건 원치 않았다.

셜록이 깨어나면서부터는, 눈물을 흘릴 시간따위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존은 너무나도 행복했고, 다른 모든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묻어두었던 두려움들이 다시 떠오르는 지금, 그가 준비되었든 되지 않았든간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존은, 샤워를 해야만 했다. 그것도 빨리.

그는 다시 일어나려 했다. “괜찮아, 셜록.” 꽤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겠지, 그는 생각했다. “괜찮다면, 내일 이야기하자구. 나는 잠깐 가서…”

“존,” 셜록은 소매를 잡은 손을 계속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다른 팔까지 들어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돌려세우고는 그대로 붙들었다. “뭐야, 뭐가 문제인데? 너 목소리가 이상하잖아.”

“나 좀 놔줘, 셜록.” 그는 할 수 있는 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갔다올게. 빨리 샤워하고 올게, 알았지? 그리고 나서 이야기하자, 네가 하고 싶다면 말야.”





셜록은 포기하지 않았다. 존은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했다. 일어서려 애쓰며, 이젠 소매에셔 셜록의 손가락을 비틀어 떼어내려고까지 한다. 뭔가 정말 잘못된 거다.

존은 항상 거기 있어주었다. 그의 옆에서, 딱 그의 손에 닿는 만큼의 자리를 끊임없이 지켜왔다. 어둠 속에서 처음 눈을 떴던 그 순간 이후로, 계속.

지금 존이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애쓰는 게, 셜록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힘을 주어 움켜잡으며, 존의 어깨로 손을 올렸다. “뭐가 문제인지 말해줘.” 그리고는 재촉하듯 물었다. “내가 한 말 때문이야? 난 그런 생각 한게 아냐- 나 벌써 사과했다구. 그리고 내가 사과따위 안 한다는 건 우리 둘 다 잘 알잖아.” 그는 분위기를 가볍게 해보려 애썼다.

존의 숨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고, 여전히 빠져나가려고만 했다. 수만 있었다면! 존의 얼굴을 한 번 볼 수만 있었다면,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을 텐데. 존이 불안해하는 게 분명했다. 이건 정말이지 감당하기 어렵군… 셜록은 어깨를 좀더 힘주어 잡고 그를 흔들어댔다. “말해보라구!”

목메이는 듯한 탄식 소리가 들려오더니, 존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빠져나가는 대신에 그는 온 몸으로 기대오며 두 팔로 셜록의 목을 감싸며 꼭 끌어안았다.

셜록은 존의 몸이 떨리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쇄골 근처가 축축해졌다… 존이 울고 있어, 깨닫자마자 그는 크게 동요해버리고 말았다.


Artwork by K 
  
존. 언제나 긍정적이던, 끊임없이 셜록을 격려해주던, 얼마나 그가 운이 좋았는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말해주던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 존. 병원에서 깨어난 후 거의 모든 순간마다 그를 위해 거기 있어주던, 끊임없는 수치스러운 상황들에서 구해내 주던, 이제는 거의 그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변함없이, 포근하게, 든든하게 그냥 거기 있어주던, 그 존이었다.

바로 그 존이, 가슴 가득히 차오른 간절한 흐느낌을 못이겨 셜록을 끌어안고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는 거다.

셜록은 팔을 들어 존의 등에 얹고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토닥여주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그가 한 말이 이 정도로 서운할 리는 없지 않나? 무심하긴 했지, 그래. 스스로 시인하긴 했지만, 존이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리는 건…

생각해! 그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존은 네 머리가 여전히 대단하다 했으니까, 그걸 써보란 말야. 깨어난 후 처음으로, 셜록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거나 좌절감, 두려움 외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존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던 거다.

총을 맞던 그 때, 존은 어땠었을까? 마이크로프트가 읽어준 보고서만으로는 존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느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런게 - 어떻게 느꼈는지가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해낼 수 있었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수영장으로 출발하던 이후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총을 맞은 게 존이었다면, 셜록은 비교적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존이 일주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깨어날지, 깨어난다 해도 어떨지 모르는 상태로 존의 침대맡에서 일주일을 보냈다면?

그라면 그러기나 했을까? 존이 그랬던 것처럼, 존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을까? 어떻게 될지도 보장이 없는 채로 일주일을 몽땅 버리면서. 이레 동안의 낮과 밤을 그 불편한 의자에서, 잘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잘못되어버릴 수 있을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그저 생각만 하면서…

그래, 그랬겠지. 셜록은 깨닫고는 조금 놀랐다. 그 침대에 누워있던 게 존이었다면, 그랬다면 셜록은 그 의자에 앉아있었을 거다. 흥미로운 일이다.

셜록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이 흐느끼고 있는 존을 감싸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러안고는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게 달래줄 방법이기만을 바라면서.

그렇다면, 존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뭐였지? 마이크로프트의 보고서를 보면, 셜록이 도망칠 기회를 만들려고 존이 스스로를 희생하려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게 이기적인 건 아닐 게 분명하다. 그는 존의 말을 되새기며 그를 가까이 끌어안고는, 눈먼 소시오패스가 할 수 있는 위로라면 무엇이든 해보려 애썼다.

몇 분이 지났을까, 존은 진정하기 시작했고, 셜록은 그의 셔츠 칼라 근처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숨죽인 소리인데, 그가… 사과하고 있는 건가?

그는 존의 어깨로 손을 올려서 그를 살짝 밀어 앉혔다. 그리고는 테이블로 손을 뻗어 티슈 상자를 찾아 여기저기를 더듬거렸다.

“고마워.” 존이 나직하게 말하고는 몇 장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추스리더니, 다시금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해. 그러려던 게 아닌데… 지금은 멀쩡해. 그저 스트레스 때문일거야. 이젠 괜찮아. 미안.”

“입 다물어, 존.” 셜록이 단호하게 한 마디 했다. 그가 볼 수 있기만을 얼마나 바랬는지.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도 약한 모습 보였다며 사과하려 드는 이 이상한 생명체를 볼 수 있기만을.

“네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내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거였어. 가정은 했었지만, 내게 주어졌던 이 시나리오였겠지. 앞을 못 보는 거나, 다른 요소들은 상관 없고.”

그는 손을 뻗어, 표정을 확인하려 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넌 내가 흔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두려웠던 거지. 특별했다는 걸 기억하면서도 말야. 그거야말로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을 단 한 가지일 거란 사실을 이해할 만큼 넌 날 잘 아니까. 명확하게 기억하면서도 더이상 그만큼 이뤄낼 수는 없게 되는 거. 진부해지는 거지.”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존은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의 대답이었다.

암흑 속에서도, 셜록은 그가 미소짓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2/20): Home Again
  • 저자 주석: Passerbyno3의 친구, K님께서 그려주신 그림 → 다시, 집으로 
  • 역자 주석: 존, 존, 존. 다정하고 소중하고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존.
     이 셜록이 어서 자기 마음을 제대로 깨달아야 할 텐데. 그래야 우리 존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텐데.
     셜록이라면 분명, 알아주겠지. 셜록은 존이 인정한 사람이니까. 존에게 필요한 단 한 사람이니까. : ] 
  • 그림: K님께서 선물해주신 그림! 마음으로만 그려보던 장면을 만나게 되어 기뻐요 ㅠㅠ (원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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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ane fly’ - 각다귀라는데, 전혀 알 만하지 않은지라… 가늘고 긴 다리라는 면에서 제일 익숙한 녀석으로 골라봤다. (4/20 수정: 각다귀가 뭔지는 찾아봤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다른 용어로 대체했습니다.) [본문으로]
    2. “You are such a fucking drama queen, Sherlock.” - 여기서 S1-3의 ‘All right, girls!’라던 존이 떠올랐다. [본문으로]
    3. ‘Oh, it’s on the tip of my tongue’ - 알 것 같긴 한데 적절한 말이 생각 안날 때. [본문으로]
    4. "That," + "was amazing!" - 셜록만을 향한, 존의 전매특허. [본문으로]
    5. “it most certainly wasn't extraordinary.” - 셜록 외에 저 말이 어울리는 사람, 있을리가 없잖아.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