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렇게까지 해야 해?  | Should It Be This Hard?  



셜록은 침대에 누워,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버린 최근 계획에 대해 심사숙고해보기로 했다.

저 존이 이렇게나 터무니없는 황소고집일 줄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존은 문자 달랑 하나만으로도 런던 반대편에서 달려와 주었다. 그를 돌봐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업도 여자친구도 다 포기해버렸다. 벌써 수차례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주고, 그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남자란 말이다.

존은 그를 원하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존이, 이젠 단호하게 그를 ‘이용하는’ 게 싫다고 거절하는 거다.

셜록은 돌아누우며 베개를 내리쳤다. 침대 맞은편에서는 부드럽게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쿠션장성’[각주:1] 맞은 편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경험이 전혀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셜록은 자신에게 ‘욕정을 느낀다’고 스스로 공언한 사람을 유혹하는 것쯤이야 지금 이 사태보다는 훨씬 덜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가장 짜증나는 건,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자신,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자존심 때문에 그를 향한 존의 욕구에 강하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전같으면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갑자기 - 준거 기준이 없어서 딱 매력적이라고 표현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 조사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이기도 했다.

또한, 셜록으로 하여금 더 바라게 만드는 - 좌절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낸 사건 역시 이제껏 없었다는 것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그런건 짜증날 정도로 인간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는 다시금 베개를 퍽, 내리쳤다. 이건 다 일주일 전에 소파에서 보낸 그날 밤, 그 일 때문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존과 육체적인 관계로 발전한다는 걸 어쩌면 견딜 만할지도 모르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게 존이 원하는 거라면, 시도해볼 생각도 있었다. 같이 잔다는 것의 부수적 효과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데다, 그 정도면 성가신 ‘새 의사’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을 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억 - 그 중에서도 특히 한 부분이 그 밤 이후로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시간을 허비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가지고 있던 지식의 공백이 뭔지, 단순히 그간 보내왔던 시간 문제가 맞는 건지도 궁금해졌다…





그날 밤, 당연하게도 셜록은 자신의 침대로 돌아갈 생각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존이 잠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고된 하루를 보낸 터라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셜록은 텔레비전을 끄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소파 쪽으로 향했다. 존은 항상 가구들이 제자리에 있게끔 세심하게 신경써 주었고, 덕분에 플랫은 당연하게도 전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셜록은 그 난장판 사이를 - 옮겨놓거나 하지만 않으면 - 돌아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그는 몸을 낮춰 자리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조심스레 손을 뻗어 존의 자세를 확인했다. 존은 한 팔을 옆에 두고 바로 누워 있었고, 다른 팔은 머리에 올려두어 소파 끝으로 손이 비어져 나와 달랑거리고 있었다. 

물론 셜록은 그간 존이 훈련같은 걸 받아왔기에 놀라운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서 그걸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정말 존이 얼마나 능숙하고 미더운지를 절감했었다.

존도 이제는 마음을 놓았는지, 아니면 - 어쩌면 꿈에서도 그날 벌어진 일을 겪어서 - 여전히 긴장한 그대로인지 궁금해하며, 셜록은 조용히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그는 존이 여전히 악몽을 꾼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겉보기엔 솔직하고 친근한 존이었지만, 그는 여러모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자존심이 세서라기보다는, 말수가 적고 자립적이라 하는 게 보다 정확할 거다. 심지어 ‘비밀’이 밝혀지고 셜록이 그의 마음까지 알게 된 지금조차도 숨막히게 굴지 않는 것은 물론, 온 사방에 감정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일도 없었다. 셜록은 그런게 좋았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존은 평온해 보였기에 셜록은 잘 준비를 하러 갔다. 이젠 어둠 속에서 하는 것도 익숙해진데다, 그가 필요한 모든 것들은 정확히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 역시 존이 해둔 거군.

소파로 돌아왔을 때, 그는 존이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 - 딱 필요하던 거였다. 그는 조심스레 그 뒷자리의 작은 틈새로 몸을 밀어넣어 보았다. 꼭 끼긴 했지만, 그가 조금 꿈틀거리자 존이 잠결에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짐작컨대, 이미 잠자리를 나눠 써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덕에, 셜록은 온 몸으로 눕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오른팔이야 자유로운데다 존의 옆구리에 얹으면 되니 아무 문제 없었지만, 왼팔이 자신의 몸 아래 불편하게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팔꿈치를 굽혀 머리를 올려 괴고는 이 문제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문득, 성인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건 이번이 아마도 처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존의 몸이 자신에게 맞닿아 있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가슴부터 발 끝까지 - 실은 존의 발이 그의 발등에 얹혀 있는 상태라, 서로가 새 자세에 적응하는 동안 존의 발가락이 부드럽게 오므려지는 것까지도 느껴졌다. 셜록은 자리 뒤에서 담요를 끄집어내 다리를 덮었다; 존이 추워서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건 싫었으니까.

지금까지 일주일 내내 같이 자자고 우겨왔음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여전히 누군가가 평소 엄격하게 지켜왔던 자신만의 공간을 넘어서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오게 되면 폐소공포증을 느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존과의 이 경험에는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금 기뻐졌다.

실제로, 존을 감싸안고 있는게 놀라울 만큼 기분이 좋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셜록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다음부터, 실명으로 생긴 명백한 의존성이 아니더라도 둘의 관계에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엔 항상 무언가 유대감 같은 게 있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존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두드러졌지만, 지금은 훨씬 더 강력했다. 더이상 존이 완전히 분리된, 독립된 존재가 아닌 것 같을 정도였다. 어쩌면 머리 부상 때문에 그런 걸지도. 셜록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독하리만치 공상에 빠져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는 현재 문제로 관심을 다시 돌려보았다. 슬슬 피곤해지고 있는데다, 이 왼팔 문제 해결이 절실했다. 오른손으로 자세를 다시금 점검해보고는, 그의 팔이 딱 들어맞을 자리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존의 목 바로 아래 말이다. 살짝 몸을 세워 앉으며 소파 가장자리를 짚은 오른손에 무게를 싣고, 천천히 그곳으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진행 상황은 순조로웠고, 그는 거의 팔꿈치까지 밀어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존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셜록은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지금 존이 잠에서 깨어 셜록이 그에게 기대어 있는 걸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행복하지 않을 거다. 그것도 전혀 행복하지 않겠지. 존은 살짝 돌아누웠고, 이제는 나란히 누워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셜록에게 기대다시피 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잠해졌다.

셜록은 잠시 기다렸다가 조금 더 안쪽으로 팔을 밀어넣었다 - 조금만 더, 그러면 편하게 누울 수 있을 거다. 거의 다 되었는데… 존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미 멈추기엔 너무 늦었기에, 셜록은 계속 움직이기로 했다. 그때, 그는 목 뒤에 손이 와닿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망설이거나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는 손. 그대로 꼭 그러쥐고는 정확하게, 능숙하게 그의 머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는 손이다. 그리고, 셜록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존이, 그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잠에서 깬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키스하고 있는 거였다. 살짝 벌어진 채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 셜록은 자신과는 확연히 다른 - ‘존 맛’[각주:2]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을 무언가와 한데 섞인 치약 맛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버티고 있는 오른팔에서 힘을 빼고 존에게 기대어 누워 버리고 싶었지만, 너무도 이상하고 위험한 충동인 것만 같아 견디기로 했다.

존의 몸은 나긋하게 풀어져 있었고, 오른팔은 옆에 늘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깨어나지 않은 건 분명한데, 그는 여전히 셜록의 머리를 그러쥔 채 키스하는 거다. 서로의 입이 부드럽게 맞닿아 있었고, 그의 혀 끝이 셜록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스쳐갔다. 셜록이 살포시 맞대어 누르며 자신의 입술을 조금 벌리자, 아… 그 느낌은… 정말,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다시 잠이 들려는지, 서서히 존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자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금 존의 입을 탐했고, 내려앉는 존의 입술을 따라가 두 번 더 도둑키스를 해내고야 말았다. 존은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입술에 “셜록,”이라 속삭이더니, 다시 옆으로 돌아누워서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셜록은 그의 뒤에 천천히 누웠다. 이제 존의 목 아래 제대로 끼워넣은 왼팔을 굽혀서는, 그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가 알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한결같은 심장, 그 규칙적인 박동 소리에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며 - 마침내 셜록은 잠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셜록은 존에게 그 키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지 말지를 갈등하며 황금 같은 시간을 써버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또다시 짜증이 나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존에게 있었던 그대로 이야기하고 좋았었다고, 더 탐구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셜록이 단순히 연민에다 신세진 기분까지 더해 제안하는 게 아니라고 - 저 요지부동인 존을 설득하는 데 분명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거다.

한편으로는, 셜록은 그게 존에게는 ‘큰일’일까 두렵기도 했다. 셜록의 첫키스를 얻었는데도 자신이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그는 속상해할지도 모른다. 셜록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닐까?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사람들은 그런 이상한 것들을 걱정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셜록은 어쩐지 중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감각이었다. 당연히 셜록이 완전히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기에, 그도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이나 허드슨 부인 정도일까,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까지 - 이젠 거의 그를 기억조차 못하신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행동마저 기꺼이 조율해줄 수 있을만한 사람은 그들 외엔 더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다시 바로누우며, 더 중요한 문제들로 단호하게 생각을 돌려보기로 했다. 적어도 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이라도 말이다.





셜록은 벌써 깨어있었다; 존은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방어벽 너머에서 뿜어져나오는 생각의 물결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아침, 셜록.” 그는 늘 그랬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셜록은 쿠션들을 헤집으며 온 사방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높게 던지는 걸 보니, 아마 옷장 위로 몇 개 정도 올려버리면 존은 손이 닿지 않을 테니 다시 가져올 수도 없으리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쿠션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둘은 서로를 향해 돌아누워 마주보았다. 존이 셜록의 뺨에 손을 얹자, 셜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떴다.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거다.

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있었다. 존은, 또다른 암흑의 날을 맞게 된다는 걸 받아들이는 셜록을 - 그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빛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국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바로 누웠고, 존은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펴고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럼, 오늘의 수업 계획은 뭐지?” 그는 체념한 듯한 말투로 물었다.

뒤에서 셜록이 킥킥, 웃는다. “사과 하나 있어?’





처음 그에게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존은 불안해하며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지난번에 그가 그런 시도를 해봤을 때 셜록의 냉정하리만치 가차없던 대답을 기억해내고는, ‘중요한 건 거의 다 놓쳐버렸지만’[각주:3]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느냐고 따져물었었다. 

셜록은 그냥 웃을 뿐이었다. “아니, 아냐, 존. 오해라구.” 그가 말했다. “나만큼 능숙해지길 기대하는 게 아냐. 모리어티도 추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게 확실한걸.” 덧붙이는 셜록의 말은 조금 무정하긴 했지만, 존은 바보취급 당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미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넌 눈이 있잖아, 볼 수도 있고, 안그래?” 셜록은 계속 이어갔다. “정확하게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얻어낸 정보를 넘겨줘. 추리는 나한테 맡기면 돼.”

존은 여전히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꽤 많이. 셜록이 요구하는 수준의 디테일을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둘이 존 혼자만의 관찰력에만 의지해서 모리어티에게 맞서는 게 크게 걱정되기도 했다. 존이 스스로의 기술에 자신있는 상황에서는 필요할 때 이끌어가는 거야 아무 문제 없었지만, 추리에 관한 면에서 셜록이 그에게 의지한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건 그들의 방식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저만큼이나 활기넘치고 흥미로워하는 - 원래 모습을 되찾은 셜록을 보고 있자니, 존은 도저히 거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부터 셜록의 무관심 - 그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전체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걱정스러웠었다. 만약 모리어티의 등장이 타성에 젖은 그를 뒤흔들어 놓은 거라면, 나름 좋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저 사이코패스를 다시 마주칠 때까지 - 이왕이면 존이 총을 가지고 있을 때 - 좋을 수만 있다면, 총을 겨눌 때 바람의 방향 정도는 관찰할 필요가 있겠지.

셜록이 세운 계획의 부작용 하나는, 같이 자는 문제가 해결되어버린 거였다. 그가 ‘뭐가 되었든 생각은 해보겠다’고 약속했을 때만 해도, 뭘 해야 할지 확신은 없는 상태였다; 그때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라고는 알람을 일찍 맞춰둬야겠다는 허무한 아이디어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셜록이 다시 모리어티에게 맞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 심지어 좀 먼 훗날의 일이라고는 해도 - 존은 그가 시야 밖으로 나가는 걸 거의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갑자기 소파가 셜록의 방에서 터무니없이 멀게만 느껴졌기에, 바로 그날 밤 존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를 따라 자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따라갈 존이 아니었다. 달랑 하룻밤 소파에서 같이 끼어 잤다는 사실이 셜록이 껴안고 자는 걸 좋아한다는 확증은 아니겠지만, 다시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는 위험을 각오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침대 위에 쿠션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자, 셜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플랫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쿠션들을 모아온 건 물론이고, 존은 허드슨 부인의 거실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싹 쓸어왔다. 그 결과 꽤나 인상적인 분량을 모을 수 있었고, 이제 침대는 빽빽하게 한 줄로 늘어선 쿠션들로 반반씩 나뉘게 되었다.

그 첫날 밤, 둘은 나란히, 바로 누워 있었다.

“존?” 묻고 싶은게 있는 듯한 말투로 부르며, 셜록은 오른쪽으로 - 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어째서 내 침대가 침구 상점이 되어버린 거지?”

“내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렇지?” 칠흑같이 어두워서 뭐 하나 보일 리 없는데도, 여전히 천장만 똑바로 올려다보며 존은 대꾸했다.

“응, 확실해.” 곧바로 대답하는 셜록이다.

“그럼 쿠션들도 있어야 해. 이 침대에서, 너랑 같이 잠들거나 - 자려고 애쓰는 동안만큼은 쿠션도 그대로 있는거야. 움직이거나 치워버리거나, 옮기거나, 하여간 기타등등 쿠션을 건드리는 건 금지야. 알겠어?”

“하지만 왜 그러는건데, 존?”

“왜냐구?” 존은 슬슬 셜록이 전혀 공감 못하는 게 싫어지려 했기에, “왜냐고 묻는거야?”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우리가, 너에 대한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너도 거기 있었다고 꽤나 확신하는데. 내가 잠결에 널 추행이라도 하면 어쩔건데?”

셜록은 묘한 소리를 흘려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지 않고서도, 존은 그가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웃음이 나오겠지.” 그는 불퉁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한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내가 네 다리에 부벼대고 있는 걸 마주하게 되면 더는 안 웃길걸.”

침대 저편 셜록이 있는 쪽에서 들려오는 놀란 듯한 헛숨 소리에, 존은 조금 위안을 느꼈다. 저 정도면 입을 다물고도 남겠지.

“존?”

그는 알았어야 했다. 물어볼 게 있는 한, 셜록은 결코 입을 다물고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이번엔 뭔데?”

“내가 신경쓰지 않는다면 어때?”

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끔, 셜록을 상대하는 건 꼬마애를 대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신경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냐.” 대답하면서, 공감하길 기다리는 건 전적으로 무의미했다는 걸 깨닫고 마는 존이었다.

“셜록, 부탁이니 그냥 자. 나 여기 있잖아. 아침까지 여기 있을거야. 안그래도 어려운데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말아줘, 제발.”

잠시 아무 말도 없었고, 존은 잠시나마 셜록이 그의 말에 실제로 귀를 기울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어렵게 하지 않아도 되는거면 어떤데?”

불빛이 없다는 게 셜록에게는 관계 없을 걸 잘 알면서도, 존은 어둠 속에서 이야기하는 게 좀더 편했다.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하기에 더 친밀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널 원하니까, 그리고 넌 날 원하지 않으니까 어려운 거야.” 그는 대답했다.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라는 거지.” 뒤이어 덧붙였다. “사적인 게 아니란 거 알아. 네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부탁인데, 나한테는 이게 충분히 힘들거든. 다신 수건만 걸치고 돌아다니지 마, 셜록. 그런거 재미 없어. 괴롭기만 할 뿐이라구.”

1~2분쯤 지났을까, 셜록이 조용히 묻는다.

“하지만, 내가 널 원한다면 어떡할 건데?” 

“유감스럽게도 버스는 이미 떠난 것 같은데.[각주:4]” 존은 슬픈 말투로 대답했다. “제발, 셜록. 나,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난 더이상…”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 여기 있잖아. 너랑 있을거야. 왜냐면 난… 아니, 네가 날 필요로 하니까. 그리고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고. 하지만 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부탁이니까 그냥 자.”

존은 등을 돌려 누웠다. 대화는 여기까지다.





그날 밤 이후로도 셜록은 자신이 관계에 열려 있다는 점을 존에게 납득시키려 몇 번 더 시도해보긴 했지만, 존은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만큼은 셜록이 입장을 완벽하게 확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그가 느낄지도 모를 고마움이나 의지하려는 마음을 이용하려 들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의 ‘가르침’이 그나마 집중할 만한 거리가 되어주어 다행이었다.

셜록은 그에게 기억력 게임부터 시켜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하는 내내 추리하는 게 항상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존이 관찰한 것들을 전해주려면 오랫동안 정보를 간직하고 있어야 했기에, 그의 시각적 기억력을 극대화해야 했다. 존은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보던 ‘제너레이션 게임’(The Generation Game)이 떠올랐다. 그는 셜록에게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인형보다는 훨씬 더 좋은 걸 타낼 수 있을 거라[각주:5] 확신했다.

다음으로는 오래된 사건 파일들을 들춰보았다. 존은 범죄 현장 사진들을 충분히 묘사해주려 애썼다. 그의 설명을 듣고 셜록이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알아내어, 존에게 그때 추리에서 중요했던 디테일을 찾아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이 방법은 셜록이 놀랍도록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흥미로운 사건에서는 잘 먹혔다. 하지만 당시에 셜록이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 그래서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사건이라면 형편없이 실패하고야 말았다.

오늘의 할 일은, 일종의 현장학습 같았다. 그날은 런던 주변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묘사하는 연습을 했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존은 생각했다. 지나치게 오래 방안에만 처박혀 있는 게 싫었던 탓이다.

그들은 무언의 동의 하에 공원을 외면하고는 마을로 향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고, 종종 커피를 사거나 사람들을 보러 멈춰서기도 했다. 놀랍고도 한편으로는 만족스럽게도, 존은 사진에서보다 실제로 사람들을 볼 때 훨씬 더 탁월하게, 선천적인 관찰력을 발휘해냈다. 그가 의사로 수련하면서 -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보는 셜록이었다.

셜록은 자주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직업이 뭔지, 휴일은 어디에서 보내는지 물어보러 존을 보내곤 했다. 그들이 팀으로서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그날 하루 동안 확실히 많이 발전했다. 몇몇 추리들은 완전히 빗나가긴 했지만, 평소보다 셜록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짐작컨대, 모든 실수들이 그의 파트너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문득, 존은 그들이 정말 커플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서로의 귓가에 소근대고, 종종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고는 소리내어 웃기도 하는데다 셜록은 그의 팔짱을 끼고, 그는 셜록을 이끌어주면서 거닐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은 그 느낌이 좋았다. 사람들이, 그들을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떨쳐버리고는, 이 따뜻한 느낌을 그저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그는, 금방 자신의 세상에서 중심이 되어버린 이 남자와 함께 나와 있으니까.

결국,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 내내 셜록은 조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누군가 피부가 그을려 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줘.” 그는 지시했다. “어떻게 탄 건지 알아내려면, 언제나 손목이랑 목선을 봐야 해 - 일과 관련된 거라면 선탠 자국[각주:6]이 있을 거야. 일부러 태웠을 땐 그런게 없지.”

그들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들러 음식을 사들고 베이커가로 돌아왔고, 셜록은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

“관찰한다는 건 그냥 뭘 봤는지와는 달라 - 네가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추측하는 게 아니거든… ‘존스 양이 머리를 감았다’고 말하는 거랑, ‘존스 양이 방에서 나와 머리에 수건을 두른채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알겠어, 존?”

“우리 플랫은 알겠네.” 존이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저녁인 것도 알겠고.” 그는 현관문을 열고는, 셜록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에서 셜록을 뒤따라 가는 건, 그만의 은밀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이었다. 날이 풀려 가끔 셜록이 코트를 먼저 벗을 때면 가장 좋았다. 오늘은, 그 모든 노력 덕분에 체온이 충분히 올라갔던게 분명하다. 존은 부엌으로 들어가며 미소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셜록은 의자에 앉아 존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주에 했던 생각 없는 말들은, 그냥 말 그대로 생각이 없었던 것 뿐이라고. 즉, 생각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가 고려하던 의견이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각주:7] 게다가, 설령 일주일 전에는 진심으로 말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확실히 그런 생각이 아니기도 하다.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는 거 아니었나? 아니면 그건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그는 오늘 존의 진도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가 해내야 할 목표들이 몇가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존은 이정도면 충분할 거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갈 때 그에게 말을 거는 건 의미없는 일이다. 예전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땐 존이 자신에게 말하는 거라 받아들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셜록은, 존의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북돋워줄 수 있도록[각주:8] 신중하게 코트부터 벗었다.

존이 이것저것 치우는 중인지,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는 정리하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몇 마디를 남기고는 셜록을 지나 침실로 향했다. 셜록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쿠션 방어벽을 다시금 설치할 셈인 거다. 불현듯 그를 멈춰야 할 것만 같아, 셜록은 고개를 돌렸다. “존!”

그의 목소리에 담긴 뭔가가 관심을 끌었는지, 존은 즉시 멈춰서더니 셜록 쪽으로 돌아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슨 일이야?” 걱정어린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셜록은 왼팔로 존의 허리를 감싸 끌어당겨 안으며 그의 배에 머리를 기댔다.

존은 놀라 외마디 탄성을 흘려내고는 셜록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부드럽게 밀어내려 애썼다. 

“셜록, 우리 이걸로 이야기도 했었잖아.” 그는 지난 한 주 동안의 대화들을 상기시켜주려는 것 같았다. “부적절한 옷을 골라 입는다거나,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를 닦겠다고 마음먹는다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와락 끌어안는 건 하지 않기로.”

셜록은 그냥 그를 더 꼭 끌어안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존에게 전하는 게 너무나도 중요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존, 나한테 남아있는 감각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

존은 조금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지난 한 주 내내 계속 반복했던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안도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셜록의 품에서 꿈틀거리더니, 의자 옆에 걸터앉아 한 팔을 뒤로 짚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가 대답한다. “라이스푸딩 얹은 토스트를 세상 누가 잊어버릴 수 있겠어?”[각주:9] 

“음, 그 중 하나에 네 도움이 필요해.” 셜록은 말을 이으며, 자신의 실패작이라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너도 알다시피, 내 후각은 탁월해. 미각이나 청각에도 아무 문제 없고.” 셜록은 기대어 있던 존의 몸이 갑자기 긴장으로 굳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나, 아직 한번도 다른 사람이 내게 손대게 해본 적 없어, 존.” 그가 말했다. “나도 촉각으로는 다른 사람을 분석해보지 않았었고.”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가 신체적으로 접촉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거든.”

침묵이 흘렀다. 셜록은 그가 볼 수 있기만을 천번도 넘게 바라고 또 바랐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존의 표정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가 궁금했던 모든 걸 알아내고도 남았을 텐데. “존?” 그는 대답을 기다리며 물었다.

존은 헛기침을 했다. “셜록, 지금 네가 한 말은…” 그는 할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그에게는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도 무리인게 명백했다.

“내 말은, 내가 육체적인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거야.” 셜록은 또박또박 말해주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그래, 음. 네가 그런 분야에는 흥미 없었다는 건 알겠어, 명백하게.” 존이 대답했다. “네가 그렇다고 확실하게 못박아주기도 했었고.” 완전히 충격받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실험해보긴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 같은 사람이 모르는 분야가 있는데도 달갑게 넘길 수 있었다는 건 상상도 안돼. 그리고, 해보지도 않고 안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아는거야?”

의자 뒤를 짚고 있던 그의 손이 미끄러져 내려와, 셜록의 어깨에 올려졌다.

“어쩌면 대학 시절이었을지도?” 넌지시 물어보는 품이, 인간이 성적인 호기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30대까지 버틸 수 있다는 걸 실제로 믿어야 할지 어떨지 확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셜록은 바르르 떨었다. “너, 세바스찬 봤잖아.” 그리고 한마디 했다. “나머지들도 딱 그렇게 별로였다구. 그 인간들도 날 못 견뎌했겠지만, 나도 그런 인간들이랑 엮일 생각따위 전혀 없었고.”

그는 의자에서 약간 몸을 틀어, 존을 감싸안은 손을 풀어 허리께에 얹고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는 눈이긴 하지만, 셜록은 존이 자신의 눈에 매력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존, 최근까지 난, 그 누구와도 육체적으로 가까워질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 그 말에, 존의 온 몸이 가볍게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징조다.

“지난 주에 내가 말했던 건, 정확하진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진실이기도 해.” 셜록은 말을 이었다. 그의 손은 이제 존의 허리께를 그러쥐고 있었다.

“우리에겐 유대감이 있고, 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걸 몇 달쯤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 모든 일들이 생기기 전부터도 말야.” 그는 머리 근처로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저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뿐이었어. 늘 사건 같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었지.”

그리고는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런 때가 있었어. 안그래? 우리가 마주보거나 하는 순간들. 그때마다 뭔가가 있었는데… 난, 그게 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뿐이야.”

처음에는 존도 아무 말 없었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셜록의 목을 감싸며, “난, 그런 때가 있었지.” 나직하고, 조금은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셜록은 처음으로, 존이 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보았다.

“이제 우리만의 시간이야, 존.”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사건도, 방해하는 것들도 없어. 우리 둘 뿐인거야.” 최면이라도 거는 듯한,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해서, 셜록은 손을 들어 그의 심장 위에 얹어보았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러면,” 마침내 존이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에서는 완전히 진정되지는 않은 기색이 완연했다. “해 보자는 거지? 확실한 거야?”

셜록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의자에서 몸을 내밀며 기대하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때, 가슴에 와닿는 존의 손이 그를 멈춰세웠다.

“아, 안돼.” 그가 말했다. “네게 키스하진 않을거야.”

셜록은 놀라움에 - 스스로에게 좀더 솔직해지자면, 실망스러워하며 - 눈썹을 치켜올렸다. 보통 이런 것들은 키스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었나?

“키스는 너무, 친밀하잖아.” 존이 말했다. “정말 내가 키스해주길 원한다고, 네가 스스로 확신하기 전까지는 하지 않을 거야.”

그는 일어서서 셜록의 손을 잡았다. “넌 항상 신체적인 접촉을 피해왔다고 했었지.” 그리고는 셜록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럼, 좀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존은, 셜록을 당겨 일으켜 세워주고는 “어떻게 만져주는 걸 좋아하는지 알아보는거야.” 침실로 향하며 말했다. “마사지 어때?”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7/20): Should It Be This Hard? 
  • 저자 주석: tigerkatz님께서 그려주신 그림 → 쿠션장성 
  • 역자 주석: [지난 편]에서 셜록이 아리송하게 대꾸하던 이유.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열심히 들이대 보는 중이랄까.
      제 마음도 몰라서 일드립에 연습쉴드 치는 셜록이나, 의사드립에 쿠션쉴드 치면서 이용안함 ㄴㄴ 수라상을 물리는 존이나 
      고만고만하게 답답하고 어이없지만, 그래서 귀여운 것 아니겠는가. : ] 


  •  ◀ 6. 각자의 이유 | Motivations  [ 목록 ]   8. 접촉 실험 | An Experiment in Touch ▶ 



    1. ‘Great Wall of Cushions’ - 만리장성(Great Wall of China)의 황소고집 존 버전? XD [본문으로]
    2. ‘John flavour’ -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특허출원 및 상품화가 절실합니다. (단호) [본문으로]
    3. ‘you missed almost everything of importance’ - S1-3에서의 운동화 테스트(?) 이야기. [본문으로]
    4. “I’m afraid that ship has sailed.” - 가긴 어딜 가! 멈춰! 돌아와! [본문으로]
    5. ‘The Generation Game’에서 꼭 주는 유명한 상품 중 하나가 큼지막한 인형(cuddly toy)이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6. ‘tan line’ - S1-1에서, 셜록은 존의 손목을 보고 이야기했었다. [본문으로]
    7. ‘thoughtless’, ‘without thought’ - 생각 없이 한 말을 단어 그대로 풀어 설명하려는 셜로기다운 생각. [본문으로]
    8. 어디가 바른 방향인 걸까? -_-? [본문으로]
    9. 3편, 감각 훈련용 저녁 실험에서의 유일한 실패작.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