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알고 싶어  | Wanting To Know (B)  



“그래서, 너랑 안시아는 어떻게 된 거야?” 윗쪽 선반에 가방을 올리며 존이 물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들 주변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퍼스트 클래스 여행의 좋은 점이겠군, 그는 생각했다.

“뭐라구?” 셜록은 시치미를 뗐지만 존을 속이려는 기색은 없었다. 어느새 노트북까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분주하게 타이핑하는 중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은 아닐 테다.

“너랑 안시아 말야.” 존은 반대쪽 자리에 앉으며, 끈기있게 되풀이해 말해주었다. “그 아가씨, 플랫폼에서 나랑 있을 때는 꽤나 기분 좋게 수다를 떨던걸. 네가 일년치 니코틴 패치를 사러 갔던 동안 말이지.” 그는 영 탐탁찮은 듯 봉투를 응시했다. “그런데 네가 나타나자마자, 완전 사무적인데다 ‘왓슨 선생님’으로 바뀌더니 블랙베리에서 눈을 들지 않더라구. 무슨 상황이야?”

셜록은 금방이라도 무시해버릴 것 같은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 하더니 묻는다. “말해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셜록은 손짓으로 둘 사이를 가리키며 다시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줘야 하는게 연애할 때의 규칙 같은 거냐구?”

존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셜록, 아냐!”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아도 돼. 그저 이해가 안 갔던 것 뿐인걸, 그게 다야.” 순간 ‘더미에게 물어봐!’[각주:1] 시리즈 중에 연애 관련 테마를 다룬 게 있는지, 그리고 이런 류의 질문들이 인생에 정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지 의아해지는 존이었다. 

하지만 셜록은 당혹스럽다는 듯 멀뚱 바라보고만 있었기에, 그는 애써 설명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좋아. 내가 알아야만 문제라면, 나한테 말해야지; 그런 게 아니면, 나한테 말해주면 정말 좋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냐. 그정도면 어때?”

알아야만 한다는 걸 정의해봐.”

존은 데굴, 눈을 굴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셜록.” 그는 예를 들어보기로 했다. “확신이 안 서면, 반대로 상상해보는 거지. 내가 그럴 때, 네가 알고 싶을지를 생각해보면 되잖아.”

“나라면, 네가 그럴 때 언제나 알고 싶을걸.”

존은 그저 휴, 한숨만 나왔다. “알았어, 좋지 않은 예시였네.” 조금 더 생각하고 다시 시도했다. “좋아, 나나 우리 관계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거나 줄 수 있을 만한 문제라면, 내게 말해줘. 그런 게 아니면 네 맘대로 하고.” 살짝 미안한 듯 미소지었다. “네게도 사적인 영역이 있어야 할 거라 생각해 - 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게 없다는 건 전적으로 네 잘못만은 아니기도 하고.” 

셜록은 싱긋 웃더니 다시금 노트북으로 주의를 돌렸다. 10분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안시아가 마이크로프트 밑에서 일하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되었을 때, 형이 내 사건 쪽을 지원하라고 보냈었어.” 그는 눈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를 타닥거리고 있었다. 

“왕족 중 누군가가 이튼 스퀘어(Eaton Square) 사유물에 대한 절도 혐의에 휘말렸거든. 가능한 한 조용하게, 빨리 정리되길 바랬지.” 셜록이 말을 이었다. “경찰은 안되고.” 

“벨그레이비어 스캔들!”[각주:2] 존의 외침에, 이번에는 셜록이 눈을 도르르 굴렸다.
 
“그래.” 존을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대꾸한다. “고맙네. 그때 네가 나랑 있었더라면, 블로그 포스트에 딱 그런 어이없는 제목을 붙이고도 남았겠지. 게다가 이 사건 내용 모두 특급 비밀이 아닌 양 온 천지에 알려져버렸겠고.”

“그래서, 안시아는 어떻게 된 건데?” 그 정도의 모욕적인 언사는 오랜 경험으로 편안하게 무시하고 넘겨버리는 존이다. 

셜록은 불편한 표정을 짓더니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다시 돌린다. “그래, 그거.”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전엔 그 여자를 알지도 못했는데, 그 여잔 꽤나, 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꽤나 애를 먹는 것 같았다. “꽤나 내 환심을 사려 들었어.”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네가 알아차렸다니, 놀라운데.”

셜록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구.” 잠시 올려다보더니 재빨리 시선을 되돌린다. “난, 마이크로프트가 그 여자에게 시킨 거라 생각했었어. 그래서 형에게 내 감정을 확실히 해뒀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건가?” 존은 어림짐작으로 말해보았다.

“네 말대로야.”

“그럼 네가 마이크로프트에게 불쾌하다고 털어놨을 때?” 존은 다시금 부추겨보았다.

“그래, 안시아도 거기 있었어.” 셜록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좀 안좋았지.”

존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야말로 제대로 차여버린 안시아가 셜록에게 한 소리 했을 거야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그가 존과 사귀기 시작했으니 머리 끝까지 화가 났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미소지으며, 등 뒤로는 해골바가지를 숨긴 채 스스로의 명예를 지켜보겠다며 비호감 실험물들을 꺼내드는 셜록과, 블랙베리를 꼭 쥐고 부엌 테이블을 빙글빙글 돌며 뒤쫓는 그녀를 그려보았다.

셜록은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한 것 같았지만, 존은 여전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늘 너한테 수작을 걸었을 거야.” 그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아무리 네가 거의 다 놓쳐버린다 하더라도, 너라면 어느 정도는 알아차렸을 테고 - 예를 들면 가엾은 몰리처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에도 그 아가씨,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립스틱 바르며 수선을 떨었었잖아. 왜 그랬는지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걸.” 

셜록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지루하다는 거다.

“그러니, 안시아가 뭔가 정말 엄청난 걸 했다거나,” 존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일곱 베일의 춤[각주:3]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달랑 셜록의 목도리만으로 말이다.[각주:4] “네가 당황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걸 텐데…”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네 추리가 틀렸던 거군.” 그대로 말해주었다. “그래서 네가 이 이야길 해주려 들지 않았던 거야.”

셜록은 뒤로 기대어 앉아 팔짱을 끼고는, 비꼬듯 한마디 한다. “그래, 그렇게 고소해하는 재미를 너와도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쁜걸.”

존은 화제를 바꾸기로 마음먹고 주머니에 있던 자그마한 장비를 꺼냈다. “받아, 배트 시그널[각주:5]이야.” 가볍게 말하며 건네주자, 유심히 뜯어보는 셜록이다.

“전파 송출기로군.” 그가 말했다. “꽤나 강력하고, 범위도 넓지만 용도는 제한적인데. 비상벨인가.” 셜록은,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존을 마주보았다. “이게 박쥐에게 영향을 주는거야?”[각주:6] 

존은 휴, 한숨을 내쉬고 “박쥐는 잊어버려.” 설명해주었다. “내가 배트로 머리라도 맞았나, 너한테 대중문화를 들어서 이야기하려 하다니. 정신나갔군.[각주:7] 그건 마이크로프트가 준 거야. 우리에겐 무장 경호원이 안 붙지만 - 천만다행이지 - 어쨌든 대기하고 있겠다더군. 그거 누르면 달려올 거야. 아님 날아오든가 - 뭐 그런 식이겠지.” 

셜록은 되돌려주며, “네가 가지고 있어.” 한마디 한다. “우리에게 뭔가 일이 생기면, 덤비는 놈들은 날 먼저 찾으려 들 거야. 그 틈을 타서 네가 그 부대를 부를 수 있을거고.”

존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날 속이면 안돼.”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서로 떨어지게 되면, 너보다 내가 먼저 구출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잖아.” 

“그럼, 우리가 반드시 함께 있으면 되잖아.” 셜록은 대답했다. 존의 말에 확신을 주는 것도, 부인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대답이었다. “아, 지루하다.” 그리고는 윙크를 날리더니, 테이블 아래에서 다리를 쭉 뻗으며 존의 다리 옆으로 착 붙어왔다. 





처음 찾아간 곳은 완벽한 실패였다. 잠깐 셜록의 눈에 띄었던 것들도 금세 쓸모없다는 게 드러나버렸다. 전혀 들뜨지 않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에 호텔방으로 되돌아가서는 좌절감을 매우 효율적으로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존은 - 셜록이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일 없도록 불을 켜고 문은 조금 열어둔 채 - 욕실에 갔다 돌아와서는 완전히 지친 상태였기에 기분 좋게 곯아떨어졌다. 

셜록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우리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셔.”

존은 조용히, 옆으로 돌아누워 셜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의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괴상하다는 뜻이 아냐.” 그는 덧붙였다. “뭐, 당신이 늘 그러시긴 했었지만.” 그리고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존은 거기 있다고, 듣고 있노라고 알려주듯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매달 뵈러 가지만, 날 거의 알아보진 못하시더군.” 다시, 침묵. “뮤지컬을 좋아하시지.”

“메리 포핀스.”[각주:8] 존이 부드럽게 말하자, 셜록이 작게 미소짓는 게 느껴졌다. 

“그걸 가장 좋아하시거든.” 그가 대답했다. “그걸 보면 마이크로프트가 생각나시는 거겠지.”

존은 끈질기게도 물어뜯고 뜯기는 저 형제들을 생각하며 빙글 웃었다. 의학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속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든간에, 그에게는 셜록이 제일 중요한 관심사인 게 명백했으니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얼마가 지나 존이 바로 누워 팔을 들어주자, 셜록이 옆으로 돌아누워 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안겨왔다.

“어머니가 그리워.” 그가 말했다.





이틀 후, 그들은 컴브리아(Cumbria)에 도착했다. 존은 그들이 묵을 작은 호텔 로비에 선 채 불쾌한 듯 핸드폰을 노려보고 섰다.

“신호 안 떠요?” 매니저이면서 바텐더까지 겸임하고 있는 소유주가 물어왔다. 품안 가득 리넨을 끌어안고 있는 걸 보아하니, 세탁물 쪽까지도 관여하고 있는 듯 했다. “도시 쪽 네트워크를 쓰는 모양이죠? 여기에선 아무 소용 없을거에요.”

“농담이 아니로군.” 존은 나직하게 뇌까리며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던져두었다. 이번 건 구식 방법으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소유주/매니저/바텐더/세탁사가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꽤나 동떨어져 있조, 뭐랄까, 정말 외딴 곳이에요. 이번 건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몇 년은 비어 있었어요.” 그는 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돈을 내는 손님이라면 어느정도 괴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눈치다. “운전하기 싫으시면 여기 뒷길을 따라가세요. 저기 여울 건너 쭉 가서 언덕 위에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고, 금방 눈에 띌 겁니다. 라이헨바흐 하우스는 꽤나 크고, 외관도 멋드러지거든요. 하지만 안쪽은 추레할 게 뻔해요.” 

존은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셜록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지 궁금해하며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다가서는 순간 휙 열리는 문에, 답을 알아버리긴 했지만. 셜록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안으로 잡아당겼고, 재빨리 문을 닫고 그를 밀어붙였다.

“셜록! 너…” 존이 하려던 말은 갑자기 입 안 가득 밀고 들어온 셜록의 혀로 인해 뚝 끊어져버렸다. 그의 몸은 단 3초만에 시속 100km를 주파할 기세로 타올랐지만,[각주:9] 어떻게 해서인지 셜록을 살짝 밀어내고 위아래로 훑어볼 정도의 정신은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고 문을 열면 안돼.” 셜록이 두 손을 꽉 붙들어 고정시켜둔 채로 지퍼로 손을 뻗자, 존은 생각다 못해 말을 꺼냈다. “너 다 벗고 있잖아!” 존은 지적하듯 말하며, “온통 젖어있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셜록 덕분에 자신의 셔츠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이내 아래를 향하던 시선이 흐트러졌다. “게다가, 아, 이럴 수가… 완전 제대로 섰잖아.” 그는 숨가쁘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려 셜록을 문에 기대게 한 채로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바뀐 거야?” 다시 온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서야, 존은 셜록의 품에 안겨서 물었다.

“난 바뀌지 않았다구!” 셜록은 재빨리, 방어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난 나 그대로야.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무례하고 위협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걸.”

존은 부드럽게 소리내어 웃고는, 셜록의 표정을 보려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무래도 민감한 구석을 찌르긴 했던가보다. “그러니까, 나랑 말야.” 명확하게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시력이 되돌아온 며칠 동안 나한테서 거리를 뒀었잖아 - 어쨌든, 괜찮긴 하지만 말야.” 재빨리 덧붙였다. “네 우선순위가 뭔지 이해해.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기도 하고. 불평하려는 거 아냐.”

셜록은 미소지으며 그를 꼬옥 감싸안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 더 심각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너와 같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존.” 조금 아래로 내려와, 침대에 누운채 마주보는 자세가 되었다. “우리가 안전한 생활을 하려 들진 않으니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우리 둘 다 안전한 사람은 아닌 셈이지.”

존의 얼굴로 손을 올리더니, “내가 갑자기 섹스에 목이라도 매는 것처럼 보일 거란 거 알아. 하지만 그런게 아냐…” 셜록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항상 이렇진 않을거야,” 그가 말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섹스가 아니니까. - 결국은 너야. 그게 네게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고, 우리가 가장 단단하게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인 것 뿐이지.” 셜록의 시선이 존의 온 얼굴을 훑었다.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겨넣기라도 하려는 듯이. “널 사랑해, 존.” 

“셜록, 걱정되잖아.” 존은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알고 있는거야?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해? 말 좀 해봐.”

셜록은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아니야.” 대답해주었다. “아냐, 존. 이유 같은 건 없어. 네겐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 약속할게.” 그리고는 기대어 키스해주었다. “어쩌면 샤워하고 나왔더니 네가 사라져버리고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존은 발끈하며 말했다. “빌어먹을 내 핸드폰 때문이야. 세 가지나 되는 네트워크 사업자들 모두 다 지방은 소홀히 하는 모양이더군. 신호가 전혀 안 잡혀서, 밖에서 해보려고 나갔었어.”

셜록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침대에서 나와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창가에 서서는 이쪽저쪽으로 돌려보더니 대뜸 불평부터 한다. “런던에선 이런 문제 없었잖아.”

존은, 그에게로 베개를 집어 던지며 대꾸했다. “제발, 옷이라도 좀 걸치라구. 양들 놀래겠어.”[각주:10] 





20분 후, 그들은 언덕 쪽으로 출발했다; 손은 잡지 않았지만, 어깨가 자주 맞닿을 만큼 가까이 서서 함께 걸었다.

30분 정도 걸어가서 평지를 가로지를 때쯤, 존을 부르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왓슨 선생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그들 뒤에서 들려왔다. 둘은 그 자리에 멈춰 돌아서서 젊은 남자가 뛰어올라오는 걸 바라보았다. 열심히 뛰어왔는지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데다, 다시 말을 하려 헉헉거리고 있었다.

“왓슨 선생님,” 그는 자신이 찾던 사람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 곧바로 존을 향해 말했다. “당신 누님이,” 말을 꺼냈지만, “죄송해요.” 몸을 굽혀 무릎에 손을 짚은 채로 숨부터 골랐다. 존은, 이 젊은 남자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고 선 셜록을 흘끔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채 쉰 살이 되기도 전에 단명하게 만들어줄 흡연 습관까지 추리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그는 되물었다. 이번엔 해리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모르겠어요.” 여전히 숨찬 대답이 돌아왔다. “전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두분이 떠나자마자 전화가 왔어요. 핸드폰이 꺼져 있다던데요?” 존은 다시금 네트워크 사업자를 저주했다. “긴급하다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전화번호를 남겼어요.” 남자는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다. 흡연자답게 건강이 안좋아 보였다. 좋게 봐줘서 쉰 살이겠는걸. 

존은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어, 그저 셜록을 바라보았다. 

“바보같이 굴지 마, 존.” 그가 말했다. “당연히 가봐야지.”

“나랑 같이 돌아가자.” 존은 제안해보기로 했다. “나중에 같이 가도 되잖아.”

셜록은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비죽이더니, “벌써 절반 이상 왔는걸.” 대꾸한다. “올라가서 일단 한번 둘러보고 있을게. 너 없이 혼자서는 안 들어가고. 그정도면 어때?” 

존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호텔로 되돌아가 해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봐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커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 때문에 짜증은 나지만, 어쨌든 자신의 누나가 아닌가.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니 그저 모른 척 넘길 수만은 없었다. 결국 남자가 운동도 할 겸 자신이 셜록과 동행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다. 맞는 말이긴 하니, 존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럼, 넌 그냥 둘러보기만 하고 내려오는 거야. 해리 문제는 전화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나중에 같이 가는거다?”

“그래, 존.” 셜록은 조급한 듯 덧붙였다. “서두르라구, 시간 없잖아.”

존은 뭔가 닿거나 위로해줄 만한 것 없이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셜록을 난처하게 하긴 싫었기에 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10여 미터쯤 내려갔을까, 뒤에서 들려오는 빠른 발소리에 그는 뒤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 셜록이 두 팔로 그를 꼬옥 감싸안았고 둘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안길 때만큼이나 갑자기 풀려난 존은, 그대로 서서 셜록이 돌아가는 걸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훨씬 행복한 기분으로 언덕을 내려갔다. 들판 끝에 이르러 디딤계단을 올라서며 뒤돌아봤을 때 셜록은 반대편 숲 속으로 막 사라지고 있었고, 젋은 남자가 그의 뒤를 따랐다.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18/20): Wanting To Know 
  • 역자 주석: 셜록이 성장했다는 걸, 예전과는 정말 다르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든든하고 따뜻한 존이 있기에 이만큼이나 온전하게 채워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니까.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인연, 사랑스러운 남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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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 Dummies’ - 너무도 유명한, 각종 분야의 입문서적 모듬. 번역은 영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한국 정식 라이선스판을 따른다. http://goo.gl/YTWRz [본문으로]
    2. ‘A scandal in Belgravia’ - S2 에피 제목 후보이기도. Belgravia는 런던의 고급 주택가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 한 곳. http://goo.gl/1EFZo [본문으로]
    3. ‘The Dance of the Seven Veils’ - 살로메의 춤. 참고영상은 멋진 리타 헤이워드 버전으로. http://goo.gl/waHJl [본문으로]
    4. …야, 야;;; [본문으로]
    5. ‘bat-signal’ - 이걸 하늘에 비추면 박쥐 형상이 나타나고 배트맨이… http://goo.gl/nfZyo [본문으로]
    6. “Does it affect bats?” - 배트 시그널(bat-signal)이라는 말에, 진짜 ‘박쥐’를 떠올리는 천진난만한 셜로기. [본문으로]
    7. ‘I must be bats to reference popular culture with you’ - 여기서의 be bats는 정신나갔다는 의미의 표현. 각주5, 6에 이은 말장난이라, 뉘앙스를 살려 이렇게 옮긴다. [본문으로]
    8. 셜록이 이 영화를 잊지 않고 있던 이유. 16편 참조. [본문으로]
    9. ‘His body going from 0-60 in around three seconds flat’ - 좋은 차는 시속 60마일까지 올리는 시간을 본다고. [본문으로]
    10. ‘before you frighten the sheep’ - 양 굴러가유~ …아참, 이건 드래곤 셜록이 아니었지! :P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