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셜록의 드래곤 - 존 길들이기 | How to Tame Your Dragon (1/4)





처음에는 존이 반항조로 제멋대로 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짜증스럽고 거슬리기만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셜록은 저 드래곤 녀석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목걸이에 새겨진 룬이 그를 얽어두고 있는데도, 몇 번인가는 저택 부지에서 벗어나려고도 했었다. 그는 셜록이 한마디 한마디에 대답을 종용할 때까지는 묻는 말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다가, 가끔은 허드슨 부인을 도와 집안일을 한다며 셜록의 눈에 띄지 않게 몇 시간이고 숨어있기도 했다. 심지어는 며칠씩.

당연하겠지만, 셜록이 순식간에 찾아내지 못한다거나, 그가 끝까지 명령을 듣지 않고 버티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엔 일종의 원칙이 있었다.

레스트라드가 찾아왔던 그때가 티핑 포인트였다. 그날만큼은 조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을 셜록에게 의뢰하러 왔기 때문이다. 반쯤 뜯어먹힌 창부의 시신이 운하에서 발견되었다고. 존이 장작을 한아름 부둥켜안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 그는 이제 막 그녀의 다리에 남겨진 문신을 묘사한 부분을 읽어내리던 참이었다.

레스트라드는 반라에 가죽 목걸이를 걸친 남자의 등장에 눈을 깜박였다. 이미 난폭한 골칫덩이 한 놈을 길들여낸 데다 교양으로 무장한 그였기에, 일단은 인사부터 건넸다. “어, 안녕하신가.”

존은 그저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다 이내 셜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셜록은 휴, 한숨을 내쉬었다. “레스트라드, 이쪽은 내 하인 존입니다. 전혀 문명화되어 있지 않은 녀석이라 눈만 마주쳐도 물어버릴 걸요. 존, 가봐.”

하지만 그 정도의 관심으로는 존을 문 밖으로 내보내기엔 부족했다 - 정말이지, 그냥 슬쩍 찔러보는 것 정도로는 안되는건가. 셜록이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건 꽤나 까다로운 마법사가 소환한 괴물이라는 징후를 다섯 가지나 집어내는 와중에도, 레스트라드는 문가에서 어물쩍거리며 지켜보고 서 있는 존에게 점점 더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셜록은 일단 레스트라드를 내보내고 괴물을 없앨 겸 자정쯤에 불러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느라 거실 문가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았다.

레스트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만나서 반가-” 이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놀란 듯 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셜록이 돌아섰을 때, 레스트라드는 손을 가슴께로 모아 쥐고는 놀란 얼굴로 서 있었고, 존은 벽에 등을 댄 채 그에게 대놓고 으릉거리고 있었던 거다. “저 남자가 나한테 주먹질을 했단 말일세!” 레스트라드가 팩, 쏘아붙였다.

“대단히 흥미롭군.” 셜록은 말했다. “당신 뭘 한 겁니까?”

“내가- 뭐라구?” 레스트라드는 눈을 깜박, 하더니 조심스레 존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으릉거리던 건 그만두었지만, 대신에 신중하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둘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휴, 또 한숨이 나오는 셜록이다. “존, 방으로 가 있어.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딱딱한 말투에 의지를 실어서 한마디 날려주자, 존은 작게 크릉, 하면서도 얌전히 방으로 사라졌다. 셜록은 레스트라드가 손을 보여줄 때까지 팔을 끌어당겨 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상처라고는 존의 뭉툭한 인간 손톱에 살짝 할퀸 자국 뿐이었다. “다시 묻습니다. 어떻게 도발한 겁니까?”

“악수를 하려던 것 뿐일세.” 레스트라드가 분노에 차 대꾸했다. “그게 도발이라면, 네놈이 저 종자놈에 미치기라도 한 거겠지.” 

“그를 만졌습니까?” 셜록은 다시금 물었다. 당연히 존이 그를 해치려 들 수도 없었을 거다. 게다가 허드슨 부인에게는 위협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 이건 새로운 데이터인 셈이다.

“근처에도 못 갔거든.” 레스트라드가 툴툴거렸다.

“흥미롭군요.”

레스트라드를 쫓아내다시피 돌려보냈을 때쯤에는 어느새 해질 무렵이 다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저 창부 잡아먹는 괴물을 상대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도 않았기에, 셜록은 대신 존의 침실로 찾아갔다. 텅 비어 한기가 도는 그곳에, 존은 보란듯 당당한 자세로 침대 발치에 자리잡고 서 있었다. “레스트라드를 왜 때린거야?”

“날 위협했어.” 존은 딱딱하게 대꾸했다.

아하. “그런 거 아니었어. 인사처럼, 손을 펴고 다가서려던 거라구. 사람들은 그래.”

“넌 안 그러잖아.” 존이 그런다. “레스트라드에게나 허드슨 부인에게도 그렇고, 맨날 버럭거리는 그 사람에게도 안 그러면서.”

아. 이거 훌륭하군. 살인사건보다 훨씬 나은데. 존은 - 잘못 생각했다고는 해도 - 분석하고, 분류하고 있었던 거다. “마이크로프트는 내 형이야. 난 그 인간 경멸하거든.” 셜록은 설명해주기로 했다. “레스트라드는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고, 내 하급자야. 뭐, 그는 모르겠지만.[각주:1] 허드슨 부인은 여성인데다 내 고용인이기도 하고. 그러니 인사로 악수는 적절하지 않은 거지. 레스트라드에게 넌, 낯선 사람이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해주려 애쓰는 스타일인 만큼, 악수를 청하는 건 일종의 우호적인 인사인 셈이야. 근본적으로는 서로가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기도 하지.” 

존의 코끝이 움찔했다. “난 사람이 아니고, 무기 같은 것도 필요 없어.” 

“넌 내 소유이니, 내 손님에게 무례하게 굴게 두진 않을거야.” 셜록은 구석에서 말채찍을 끄집어내며, 힘을 실어 말했다. “꿇어.”

이번에는 목걸이에 저항하지 않으며, 존은 두 팔로 매트리스를 짚고 침대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셜록은 채찍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입을 열었다. “당연히, 목걸이에 걸린 보호주문은 수정할 거야. 이후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미 한 짓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야겠지. 다섯 대. 세도록 해.” 

존은 결심이라도 한 듯 그 말대로 따랐다. 셜록이 내리칠 때마다 피가 배어나왔지만, 존은 꿋꿋이 견뎌냈다. 셜록이 채찍을 가져오던 것처럼 수건과 물그릇을 가져와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을 때까지는, 사실상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옳겠다. 

“이정도 얕은 상처는 흉지진 않을 거야.” 셜록은 가는 핏자욱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하지만 내꺼니까 신경쓰는 거지.”[각주:2]

존은 긴장한 듯,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그대로 굳었다. 무겁고 불규칙한 숨소리뿐. “하지마.” 불쑥 던지는 말에, 셜록은 잠시 멈칫했다. 

잠시 후 물었다. “뭘 하지 말라는 거지?”

“건드리지 말라구.” 묘하게 숨가쁜 목소리로 되받아치는 존이다.

흥미롭군. “네가 명령을 할 입장은 아니지.” 셜록은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는, 하던 대로 계속했다. “자, 가만히 있으라구.”
 
상처를 닦아내고 연고를 발라주는 건 금방이었지만, 셜록이 일어서자 존은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때려도 가만히 있었는데, 치료해주는 손길에 평정을 잃다니? 공격적인 행동엔 맞서 덤벼들면서, 애정어린 기색에는 도망치는 건가? 셜록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는데도, 존은 침대 시트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작업실에 있을 거야.” 셜록은 알려주기라도 하듯 말했다. “해뜰녘까진 들어올 생각 마. 그러다간 끝내주게 끔찍한 녀석에게 먹혀버릴지도 모르니까.”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대로 내버려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셜록이었다.





그날의 징계 이후 며칠간 존은 샐쭉 토라져 있던 데다, 셜록이 너무 가까이 다가설 때면 흠칫 놀라곤 했다; 등은 금방 깨끗이 나았지만, 불안해하는 건 여전했다. 셜록이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퍼즐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 상태가 거의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던 거다.

사실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 왕족 암살 사건이야말로 다른 것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으니까.
 
독 따위에 당하기에는 셜록은 너무도 노련한 마법사였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왕을 노렸던 약물을 가로챘었다. 손바닥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는 순간, 유성 독극물이 혈관으로 퍼져나가는 것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하게 의지로 막아두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기에, 그는 그때까지 피로 물든 손으로 취관[각주:3]을 꽉 붙들고 있던 왕살 미수범에게 씨익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렉슨 경은 남자에게 곧바로 족쇄를 채워버렸다. 셜록이 암호를 해석해낸 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물론,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 머리끝부터 피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만 빼면 말이다. 셜록은 그제서야 화살에 주술이 걸려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냈다. “아, 젠장.” 그의 한 마디에, 떠밀려 나가던 공주가 신경질적으로 킥킥거렸다.

그렉슨이 셜록의 팔을 붙들며 물어왔다. “무슨 일인가, 친구? 아파 보이는데.” 

“예리한 관찰이군그래.” 셜록은 팩, 쏘아붙였지만 감정어린 대꾸는 아니었다; 재빨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기를 제거해줄 하급 물의 정령을 소환해보려 했지만, 손끝에 실낱 같은 힘만 느껴질 뿐 모이지가 않았다. “내 작업실로 가야겠어. 당장.” 

그렉슨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완연했다. “스탬포드는 왕실의 전속 의사야, 내 생각엔 그도 기꺼이-” 

“집으로.” 셜록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럴듯한 존 흉내다. “지금 당장.” 

마차가 베이커 가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셜록은 혼자 설 수도 없을 상태였다. 그렉슨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도와주며 허드슨 부인을 불렀지만, 반라의 존이 먼저 나와 빤히 바라보고 섰다. “바보짓 하지마.” 셜록은 그에게 한마디 해주려 했지만, 웅얼거릴 뿐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조차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작업실. 도와줘.”

말할 때 의지를 담지 않았는데도 존은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키 차이에도 아랑곳없이, 의자에서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 허드슨 부인과 그렉슨이 뭐라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셜록은 모든 관심을 스스로에게 집중하여, 안전해질 때까지 호흡과 맥박을 고르려 애썼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갔다. 이 집에 이렇게나 계단이 많았던가? 셜록은 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온기와 – 하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인간같지는 않은 - 묘하게 알싸한 향기를 들이마셨다. 이번만큼은 존도 한 마디 투정 없이 따라주고 있는데, 왜 그런 걸까? 지금 셜록이 쥔 퍼즐 조각은 어떤 거지? 계속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벽 하나 가득 빼곡하게 비밀안전이 새겨진 작업실에 들어서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자신이 걸어두었던 마법의 울림들이 기분을 좋게 해주는 데다, 주술을 푸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주술을 푸는 동안 실제 독이 올라오는 것까지는 셜록도 어쩔 수가 없었다. 독은 손쓸 수도 없이 혈액 속으로 퍼져나가, 근육을 경직시키고 두뇌까지 막아버리고 만다. 없애보려 애쓰느라, 셜록은 존이 자신을 낡은 가죽소파에 뉘여주는 것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앞에 선 채 걱정스레 뚫어져라 바라보고 선 존 뿐이었다. “이러면,” 셜록은 간신히 목쉰 소리를 토해냈다. “넌 자유가 되겠는걸.” 

아무 대답도 없는 존을 두고, 셜록은 까무룩,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그 후로도 한동안 - 몇 시간 몇 날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의식이 들었다가도, 아주아주 작은 데이터들만 남겨두고 다시 사라져버리길 반복했다; 초가 타는 냄새, 물 따르는 소리, 멀리에서 들려오는 존의 목소리. 고통 - 하지만 아픈 것 정도는 예상했었다 - 그리고 살갗에 와닿는 불안정한 손가락의 느낌.

셜록이 제대로 의식을 찾았을 때, 작업실 창 밖은 햇빛으로 환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가죽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존은, 그의 발치에서 소파에 상체를 기댄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푹 잠들어 있었다. 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존이 화들짝 깨어나 바로 앉아서는 셜록이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안녕.” 셜록은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 동안 의식이 없었지?” 

“며칠.” 존은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 죽어가고 있었어.” 

존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확신, 흥미로웠다. 셜록은 화살이 박혔던 왼손 손바닥을 내려다보고는, 붕대로 감싸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아래 절개된 상처도 아물기 시작한 모양이다. “독은 누가 빼낸거지?” 그는 물었다. 

“누굴 것 같은데?” 존은 화난 말투로 되물었다. “허드슨 부인이나 그 사람은 냄새조차 못 맡는다구.” 

셜록은 한동안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병색으로 흐려진 두뇌로나마 조각들을 한데 맞춰보려 애썼다. “읽는 법은 어디에서 배웠어?”

존은 시선을 돌려버렸지만, 셜록에게도 답을 이끌어낼 만한 힘 정도는 아직 남아 있었다. “마을에서.” 그는 쏘아붙였다. “성 바르톨로뮤.” 

그렇다면 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다는 건데, 오래는 아니었다 - 읽는 법을 배울 만큼은 되었지만, 인간의 모습까지 수용할 만큼 오래는 아니었겠지. 그리고는 서재에 처박혀 있던 몇 주 동안에 셜록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독을 빼내고 상처를 매어줄 수 있을 정도까지 익혔던 거다. “넌, 진정 놀랍군.” 꾸밈없는 셜록의 말에, 존은 얼굴을 확 붉히더니 후다닥 자리를 떴다.[각주:4] 

그는 대야와 수건을 들고, 팔에는 바구니 하나를 달랑달랑 달고 돌아왔다. “너 냄새나.” 셜록에게 한 마디 하고는 수건을 내밀었다. 바구니에는 빵과 꿀, 그리고 셜록에게 제일 먼저 도움이 되어준 스프가 담긴 병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존은, 셜록이 씻겠다며 담요를 걷자마자 다시 방에서 나가버렸다. 

허드슨 부인은, 당연하게도 셜록이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고는 마냥 행복해했다(홀딱 벗은 모습에는 안 그런 것 같았지만, 뭐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줬었으니까). 하지만, 셜록이 침실로 돌아가는 걸 도와주는 존은 뭔가 달랐다. 셜록의 가운을 만지작거리는 거나, 셜록이 부축받으면서 그의 목에 팔을 두를 때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거다. 그리고 그게, 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것 같았다. 셜록은 머릿속에서 이 생각을 접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순간 답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마치 여신이 강림했다거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물론 확인차 실험이야 필요하겠지만, 정말이지 눈물날 만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생각 한 번이면 존을 침대 근처까지 불러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존이 경계하지 않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에, 아니나 다를까, 존의 말대로 마이크로프트가 나타났다. “형님 왔다[각주:5] - 지금이든 나중이든, 쫓아내 버렸으면 좋겠어?” 

셜록은 저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라니, 무슨 말이야?” 

“항상 여기 오는 사람 말야.” 존은 대답했다. “마이크로프트, 네가 싫어한다던.” 

“아.” 이제까지 존의 언어 구사력은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었는데. 셜록은 헷갈리던 부분이 어딘지를 알아냈다. “마이크로프트는  형이야, 존. 보통의 형이 아니고.” 
 
존은, 차이를 알 수 없다는 듯 이상하게 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호기심이 생긴 셜록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존, 드래곤은 무리에서 부화하는 게 아닌가?” 

“당연하지.” 질문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존은 이상하게 대꾸했다. 

“그럼, 같은 무리에서 나온 드래곤들은 서로 뭐라고 부르지?”[각주:6] 

“…다른 드래곤들?” 

매혹적이다. 또다른 퍼즐 조각 하나. “마이크로프트 들여보내줘, 바로 다시 돌려보낼 테니 준비해두고.” 

마이크로프트는 여왕이 전하는 끝없는 수다 – 감사 인사와, 작위를 전해왔다. 셜록에게. 따분하다니까 - 하지만, 그는 곧 의미 있는 화제로 말을 돌렸다. “저기 네 ‘사람’은 꽤나 매혹적이구나, 그렇지 않니?”

“눈치채셨군.” 셜록은 대답했다; 목걸이에 겹겹이 새겨진 주술이나 그 중요성을, 마이크로프트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긴 했었으니까. 

마이크로프트는 찻잔을 옆으로 내려놓고 손가락을 한데 모았다. “정말이지, 셜록. 드래곤을 미동[각주:7]으로 둔다는 건, 타고 노는 것보다도 더 대담한 짓일 게다.” 

셜록은 흥, 코웃음치긴 했지만 한구석 의아해지기도 했다. 대체 무슨 근거로 벌써 그를 범했을 거라 결론지은 거지? “그럼 미동이란 것에 대해서는 뭘 좀 아시나, 마이크로프트?” 그는 소리내어 물었다. 

“교회에서 못마땅해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 수간보다야 덜할 것 같지만 말이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대로 되받아쳤다.

“그럼 살인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뭐라고들 하려나?” 셜록은 물었다. “아니면 산 언저리를 쓸어버린다는 여왕의 계획을 용납이라도 한 건가?” 

마이크로프트는 가볍게 웃었다. “공교롭게도, 이미 내가 여왕님께 일종의… 사절같은 걸 보내두시라고 말씀드려두었지 뭐겠니. 유혈사태에 이르기 전에, 그 생물들을 설득해 보기는 해야지.” 

“그들이 알아볼만한 수준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해 주지.” 셜록은, 꽤나 진심으로 대답했다. 

“정말 진심으로 생각해보렴, 셜록.” 마이크로프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 존재는, 사람이 아냐. 너도 인정해야 할 게다.” 

“존은 인간에 가까워,” 셜록은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일단 기력을 되찾고 나자, 셜록은 더 이상 미뤄둘 이유가 없어졌다. 그는 허드슨 부인에게 심부름을 시켜 밖으로 내보낸 뒤, 집 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존을 찾아냈다. 

서재였다. 그럼 그렇지; 다른 어디보다도 거기에서 제일 오래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그는 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괴어둔 채 한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 훑고 있었다. 가끔 입술을 달싹거리기도 했지만, 소리내어 읽진 않았다. 셜록은, 존이 눈치채기까지 15분 넘게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뭐 필요한 거 있었나?”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셜록은 대답하고도 그대로 서서, 자신의 대답을 되새겨 생각해보는 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책을 옆으로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어깨와 등을 곧게 펴고 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처음으로, 자동반응처럼 반항조로 턱을 치켜들지는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셜록의 한 수를. 

셜록은 서재로 들어서서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드래곤은 특별히 사회적인 생물은 아니지, 그렇지 않나?” 

“우린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육식동물이야, 그러니, 퍽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 존은, 셜록을 주의깊게 응시하며 대답했다. 

“넌 곧바로 둥지를 떠났군.” 셜록은 담담하게 말하며, 꼼짝 않고 서 있는 존의 뒤를 빙 돌아 걸었다. “친족으로서의 유대관계도 없어. 부모로나 자식으로나. 수컷들이 공동의 보호 목적으로 집단을 이루기는 하지만, 넌 사냥감을 나누는 데 우위를 점할 생각으로 싸우는 데만 열심이었군. 재미로 교미하지 않고, 교미한 다음에도 배우자로 삼진 않아.” 

존의 어깨가 아주 살짝, 움찔거리더니, “하려는 말이 뭐야?”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셜록은 존이 가만히 있도록 했다. 그리고는 존의 등줄기를 따라 손마디로 부드럽게 쓸어올리자, 손길을 따라 소름이 자르르 돋아났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존은 흣, 짧은 숨소리를 뱉어냈다. “드래곤이 서로에게 손을 대는 건, 고통을 줄 때 뿐이지.” 셜록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넌 지금, 드래곤의 모습이 아냐. 인간의 육체라는 건 이런 쾌락도 줄 수 있거든 – 그리고 넌, 그 정도로는 겁내지도 않겠지?”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적어도 말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셜록의 손끝이 옆구리를 스치는 순간, 존의 온 몸이 작게 떨렸다. 그는 뒤에서부터 존을 끌어안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두가 단단해질 때까지 손가락으로 지분거렸다. “뭘 원해, 존?” 셜록은 물었다. 

“그- 그만해.” 존은 힘없이 대꾸하면서도, 도망치려고는 하지 않았다 – 셜록이 그러게 둘 리도 없겠지만. “제발.”
 
“따분하게 굴지 말라구.” 셜록은 한 손을 존의 바지 앞섶으로 내려, 부풀어오르는 그곳을 감싸쥐었다. 존은 짧은 비명을 흘리며, 이 감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그대로 선 채 꿈틀거렸다. 셜록이 엄지손가락으로 거친 모직 천 위로 끝부분을 문질러대자, 존의 허벅지가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네겐 이런게 낯설겠지, 두려워하거나 멈추길 바라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네가 더 두려워하는 건, 이게 얼마나 느낌이 좋은지, 얼마나 지독하게 원하는지일걸.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넌 모습을 바꾼 후부터, 내가 만지도록 두면서도 금방 도망쳐버리곤 했어. 하지만 그건 나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야, 안그래? 자책하고 있던 거지, 지나치게 인간다워지는 것 때문에.” 

“두려워할 거 없어, 존. 이런 걸 원해도 돼. 느껴도 된다구.”[각주:8] 

존은 이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셜록이 바지 위로 어루만지는 내내 고개를 젖혀 셜록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허리를 움직이진 않았지만, 이제 그는 입을 벌린 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떠 셜록을 마주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는 금빛을 찾기 어려울 만큼 동공이 한껏 벌어진 채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셜록은 그의 목덜미로 다른 손을 올려, 목걸이의 D자형 고리 하나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존은 그릉거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사정해 버리고 말았다. 

“멋져.” 셜록은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어깨, 흉터에 코끝을 파묻으며 말했다. 

존은 꿀꺽, 어렵게 마른 침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제발,” 하지만 다음 말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내키진 않았지만, 셜록은 그에게서 한발짝 물러서서 여지를 주기로 했다. 신체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존은 자기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나는 이런…” 

“원한다면, 이제 움직여도 돼.” 셜록은 억지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런 반응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언제나 가능성은 있기 마련이니까. 대비해두기도 했다) “하지만, 자위는 금지야.” 

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가쁘게 되물었다. “자ㅇ- ?” 

아. 야생 드래곤이 하지 않는 게 또 있었던가보군. 셜록은 존을 자리에 묶어두고 있던 마지막 힘을 풀어주었다.
“해보면 뭔지 알 거야.” 

이 말에, 존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부리나케 도망쳤을 뿐. 








+)
으아니 이런 사악한 셜로기를 봤나. 완소드래곤 존을 때리고 놀려;;먹다니, 이녀석.
이런 드래곤 존 나 주면 참 잘 키울 수 있는데. 자신있는데! 흑흑.
하지만 난 안되겠지. 안될거야. :'(



  1. ‘not that he notices’ – 자… 잠깐. 누구 맘대로;;; [본문으로]
  2. “but I do attempt to care of my things.” – 부럽구나… [본문으로]
  3. ‘blowgun’ - 불어서 화살을 쏘는 무기. 이렇게 생긴것. http://goo.gl/yArBj [본문으로]
  4. 으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본문으로]
  5. ‘The brother is here.’ - the의 의미를 살리되 낯선 표현이었음 하는 생각에, ‘형님’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6. “And what do dragons from the same clutch call each other?” - 각주5에 이어서. 드래곤 존은 동복형제라는 개념이 없어서 the brother(‘형님’)로 말했던 것. [본문으로]
  7. ‘catamite’ – 19금 시중을 드는 남자아이. http://goo.gl/j1XP1 [본문으로]
  8. ‘You can want this. You can have this.’ – have를, 인간으로서의 느낌과 감정을 가져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느낀다’고 옮긴다. 물론, 중의적으로 쓴 거기도 하고. :9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