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I Prefer to Text
  • 저자: ellie-hell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3세 이상 (PG-13)
  • 길이: 단편 (약 8,3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흔쾌히 검토해주시고 영국식으로 교정해주신 polkadotsquared님에게 감사 감사합니다!
    - 요청글에 따라 썼습니다. 원래 짧고 달달하게 쓰려 했는데, 어쩐지 무지 길고 매우, 엄청 달달해져버렸네요.
    - 특별 인사! 덧글 달아주신 수많은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쓴 픽이었는데, 여러분의 멋진 응원들 덕분에 의욕이 생기고 힘도 났어요.
      여러분 덕에 요청글 더 받아서 쓰고 싶어졌답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ellie-hell.livejournal.com/5221.html



이 모든 건, 모리어티와의 조우에서 얻은 부상으로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부상 유형에 따라 둘은 각각 배치되었다: 셜록은 근골격계 병동으로, 존은 응급 외상 병동으로. 졸라대거나 간섭하려 해 봐야 -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따로따로 - 직원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셜록은 그의 플랫메이트와 한 방을 쓸 수 없는 거였다; 지루하고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담당 의사를 이쪽에서 저쪽 병동까지 뛰어다니게 해 봐야 역효과만 낳을 뿐이었다. 셜록과 존이 플랫메이트가 된 이후, 둘은 단 한번도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떨어져 있다는 데 제일 타격을 입는 건 셜록이었다. 존이 의식이 없는 상태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주 이유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셜록이 지루해서 그런 거기도 했다. 지루하다 못해 안절부절 못할 지경인데다, 지독하게 아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른쪽 다리가 두 군데나 골절되었다 하더라도, 셜록은 투여해주는 모르핀을 맞을 생각은 없었다. 고통이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해주었으니까. 

마이크로프트는 자주 들렀다. 형이 존의 회복 경과에 대해 믿을 만한 소식을 계속 전해주는 것만 아니었더라면 셜록은 짜증을 내고도 남았을 테다. 그러던 어느 햇살 좋은 오후, 마이크로프트가 선물을 들고 왔다: 존이 더이상 의식 불명 상태가 아니라는 소식과, 새 핸드폰이었다.

“건물이 무너질 때 둘 다 폰이 부서져버렸길래, 너와 존이 쓸 새걸 가져왔다. 잘 쓰려무나.” 그는 한마디 하더니, 작게 끄덕여보이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셜록은 곧바로 작은 상자를 찢다시피 열어젖혔고, 완전 신형 블랙베리에 여느 때처럼 제 위치에 손가락을 얹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열리는 순간의 낯익은 구동음이 그에겐 아름다운 교향곡 소리나 다름없는데다,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는 가능성으로 흥분에 겨워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는 산처럼 쌓아둔 베개에 기대며 새 문자 메시지를 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당신 깨어났다더군요. 돌아온 걸 환영해요.


답장이 올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존은 극도로 약해져, 지친데다 진통제에 취해 있을 테니까. 시간이라도 때울 요량으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 병실 침대에서도 풀어낼 수 있을 만한 범죄가 있을지를 살피며 최근 며칠간의 눈에 띄는 기사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핸드폰에서 새 문자가 왔다는 알림음이 삑, 울렸다. 

 
마이크로프트가 네 상태도 알려주던데, 어떻게 버티고 있어? 간호사들 괴롭히고 있는거야? 제발 간호사들 겁주지 말라구!


셜록은 살짝 발끈했지만, 그의 손가락은 곧바로 작은 키보드 위에서 유연하게 움직였다.


난 그런 짓 안하거든요. 여기 차 끔찍하니까, 와서 타줘요.


두 층 아래에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웃을까 화낼까 고심하는 전직 군의관의 모습을 어렵잖게 그려볼 수 있었다. 너무 작기만 한 키를 느릿느릿 누르는 - 봉합할 때는 능숙하면서도, 기계를 다룰 때면 서투르기 짝이 없는 - 손가락들도.

 
마이크로프트가 그러더라. 넌 금방 휠체어 탈 만큼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까 차는 네가 타와.


셜록은 휠체어 생각에 얼굴을 구겼다. 존을 보고 싶은 만큼이나, 작은 나라마냥 너른 곳을 병원제 의자를 타고 돌아다니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놈의 의자가 주어지는 순간 곧바로 몸을 날릴 스스로를 잘 알기에, 마이크로프트가 했던 이야기의 의미에 만족하기로 했다.


상태는 어때요? 그는 답장을 보냈다.

아프고 멍해. 넌?

아프고 지루해요. 그나마 핸드폰이 도움이 되는군요.

네 형 덕분이야. 초콜릿도 가져다주시더군. 내가 하나 권했는데 어쩐지 웃겼어. 네 생각이 나더라.


셜록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에겐 초콜릿따위 가져다주지 않았다. 똑똑하게 머리 잘 썼군. 셜록이라면 무시해 버렸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이어트나 하라며 형을 무자비하게 놀려댔을 테니 말이다.


형은 나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셜록은 뉴스를 읽는 것도 그만두었고, 이젠 존에게서 답변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는 참이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10분을 더 기다리다가 또 문자를 보냈다.


존?


15분이 더 지났는데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존! 


걱정할 필요는 없었고 - 걱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 그의 이성적인 두뇌가 존은 괜찮다고, 잠들어버린 걸거라고, 나으려면 푹 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어딘가 아주 조그만 구석에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리어티가 이 친구에게 샘텍스 조끼를 입혀버리는 - 일련의 최근 사태로 인해 생겨버린 피해망상을 탓하며, 그는 새 핸드폰으로 응급 외상 병동에 전화를 걸어 간호사에게 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몇 분 후 그녀가 존이 잠들어 있다고 확인해주었고, 그제서야 그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그제 벌어진 이중 살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더 내놓으라며 레스트라드에게 열심히 메일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피해자의 최근 여행 기록만 조금 더 알아도 자신이 이 사건을 얼마나 쉽게 해결해낼 수 있을지를 줄줄이 설명하던 찰나, 그의 핸드폰이 삑, 소리를 냈다.


미안, 잠들었었네.

알아요.

제발, 셜록. 내 간호사들 좀 괴롭히지 말라니까!

안 그랬거든요. 좀 어때요?

여전히 아파. 아직도 멍하고. 넌 어때?

지루해요. 사건 해결하고 싶어요, 레스트라드가 하게 둔다면, 이겠지만.

허락해줄 거야, 뭐가 자신에게 좋은지 알 테니.


셜록은 낮게 쿡쿡, 웃으며 혼자 여기 갇혀 있는 대신, 존과 같은 방을 썼으면 좋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이젠 휠체어도 썩 나쁜 것 같진 않았지만, 아직 쓸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친구를 보고 싶었다. 그의 관찰력이라는 건 실제로 관찰할 수 있을 때나 유용한 거니, 볼 수 있기 전까지는 존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진짜로 알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렇게 친구가 있기만을 그리워하는데도, 셜록이 기다리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있었다. 존이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홈즈가 아니었으니까; 불편한 감정을 넘겨버리지 않는데다, 샅샅이 파헤쳐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셜록은, 자신이 쥐고 있는 통신수단이 그런 논의를 조금 편하게 해줄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느끼는지 보겠다고 두개골까지 열어보려 들 기세인 존의 진푸른 눈망울 - 그것만 없어도 조금이나마 쉬워질 게 분명하다.


모리어티가 당신 납치해서 해치거나 했어요?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돼?

안돼요.


셜록은 침대에서 한숨을 내쉬며 지친 손으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 아니, 머리카락은 아니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을 테니까 - 쓸어보는 존을 그려보았다.


내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놈 못 잡았군, 그렇지?

네. 마이크로프트가 찾고는 있지만, 모리어티가 눈에 띄려 들지 않는 한 형도 찾지 못할 거라 봐요.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쳤어야지. 그랬으면 우리 중 하나만 병원 침대에 처박혀 있어도 됐잖아.

바보같은 소리 마요. 내가 도망쳤으면 당신은 죽었을 거라구요. 그는 꽤나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나머지 메시지를 입력해넣었다.
나한테 누가 그래준 건 처음이었어요.

언제라도, 기꺼이.


문자로 대화할 때는 말투나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게 문제다. 셜록은 조금 전 존의 문자가 진지한 건지 비꼬는 건지, 아니면 심지어 농담인지조차 감지해낼 수 없었다. 계속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존에게서 또다시 문자가 왔다.


난, 우리 둘 다 살아있어서 기뻐. 나 혼자 살아남았더라면 어땠을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존의 문자를 읽는 순간 셜록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을 느꼈다. 수영장에서 구조된 이후부터 셜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문제를, 그가 말로 해버린 셈이었다.


나도 그래요.


그런 다음, 그들은 화제를 보다 가볍고 즐거운 것들로 바꿔 보았다. 그들이 받은 꽃이라든가(존이 더 많이 받았다) 카드(존이 더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가져다준 군것질거리(존이 더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다들 존을 더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다음 날, 셜록의 담당 의사가 엄청 커다란 병원용 휠체어 하나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몸을 눕혀야만 할 때 쓰는, 높은 등받이가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셜록은 간호사가 자신을 앉혀주는데도 군말없이 따랐다. 이 커다란 흉물덩어리가 거의 조종하기 불가능하다는 것도, 엘리베이터까지 가기도 전에 땀이 뻘뻘 쏟아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머잖아 존의 병실에 들어가 앉고 나서야, 마침내 그는 마음이 놓였다. 

셜록은, 담당 의사를 봐야 한다거나 물리치료를 받을 때, 아니면 간호사한테 쫓겨날 때만 빼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플랫메이트의 병실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문자는 종종 주고받았다. 주로 셜록이 존에게 병실로 와서 차를 타 달라고 보내면, 존이 바보짓 그만두지 않으면 깁스에 고양이를 그려버리겠다며 협박하는 식이었다.

드디어, 둘 다 병원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아직 셜록이 물리치료를 받으러 통원을 해야 하긴 했지만, 그렇대도 두 사람 모두 베이커가 221B에 들어서는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존이 두 사람 분의 차를 타 왔고, 셜록은 더할 나위 없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존은, 나중에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 때를 틈타 깁스에 고양이 얼굴을 그려넣는 것으로 보복해주었다.





퇴원한 이후, 테이크아웃 용기들과 차, 노트북, DVD, 미해결 사건들(레스트라드의 호의다), 베개들, 미묘한 눈싸움(셜록 대 깁스에 그려진 고양이)과 핸드폰이 그들의 일상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둘 다 플랫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로 존이 윗층 자신의 침실로 올라간 저녁때로, 그건 두 사람의 습관과도 같았다. 보통은 존에게 베개나 이불, 셜록의 노트북, 잼병, 좀더 푹신한 베개라든가 (특히) 존의 노트북을 가지고 당장 내려오라는 식으로 셜록이 먼저 문자를 보내는 거다. 그리고, 얼마나 짜증이 나든간에 존은 항상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네가 제일 게으르다니까. 그리고 너, 걸을 수 있거든. 그러니 당장 가서 네 잘난 노트북 갖다 쓰시지.

못 가요, 나 사건으로 바쁘거든요. 이거 중요하다구요!

뭐, 나도 못 가. 나 자려고 애쓰느라 바빠. 자는 것도 중요하거든.


이러면 셜록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들으란 듯 한숨을 내쉬겠지, 존이 방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그러면 존은 씩, 웃으면서도 침대에서 일어나진 않을 거다.


일어나려다 베개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새 베개 가져다줘요.

네 팔 오징어다리처럼 끝내주게 길잖아.[각주:1] 베개는 알아서 집고 난 좀 내버려두시지.


매일 밤 이런 식이었다. 존이 그만두라고 하거나 잠들어서 답을 못 해줄 때까지 셜록은 항상 답장을 보냈다. 잘 자라는 둘만의 인사 방식이었던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몇 주가 몇 달이 되어버렸다. 존은 주 3회 출근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셜록의 다리는 다 나아 깁스를 풀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현장을 찾고 범죄자를 뒤쫓는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늦은 밤 문자 대화만큼은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당신 리조또 더 있어요?


좁은 계단을 오르고 지붕 위를 뛰어다녀야 했던, 지독하게 피곤했던 사건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밤, 셜록은 물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다 다리는 아프고 뱃속은 거슬릴 만큼 꾸르륵거리고 있어, 존이 거실에 함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냉장고에 있어. 다 먹어두라구, 오늘같은 밤을 보낸 다음에는 배를 채워둬야지.


셜록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전자레인지에 남은 리조또를 데워 핸드폰과 함께 방으로 들고 갔다. 그의 침대는 소파보다 편안했기에, 그는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먹고 있어요, 그러면 당신이 좋아할 것도 알구요.

그렇지. 리조또 먹고 나면 잠도 좀 자두겠다고 약속해줘.

그럴지도. 당신도 사건 생각하느라 못 자고 있죠. 괜찮은 포스팅거리라 생각하는 거구요.

정답이야. 의견 있어?

그렇죠.

이야기해줄래?

당신 한번만 더 내 망토 가지고 ‘휘날린다’는 표현을 쓰면,[각주:2] 그걸로 목을 확 졸라버릴 지도 몰라요.


푸하, 존의 폭소하는 소리가 아랫층에 있는 셜록에게까지 들려왔다.


네 망토라구? 정말? 지금부터 배트맨이라고 불러줄까?


셜록은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방금 보낸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여전히 윗층에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존의 킥킥 웃음 소리에, 셜록은 눈을 데굴, 굴리며 답을 입력했다.


내 코트라구요. 코트로 당신 목을 확 졸라버릴거에요.[각주:3] 당신이 ‘휘날린다’는 부적절한 표현을 쓰는 바람에 헷갈렸잖아요.

그러시겠죠, 배트맨님.

내가 올라가게 만들지 마요.


존은 다시 소리내어 웃었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셜록의 침실까지 전해졌다. 리조또를 한입 더 떠먹는 자문 탐정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묻어났다. 아무리 별거 아닌 일에 웃더라도, 셜록은 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조금도 질리지 않았다. 그건 샘텍스 조끼를 쏘고 난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던 것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존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폭발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때 말이다. 그는 존의 웃음을, 그 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가능성을 떠올렸었다. 그런 생각은 삑, 새 문자 메시지 소리에 끊어졌다.


나 잘때 죽이기라도 하면, 레스트라드가 도노반에게 50파운드를 잃고 말걸.

그럼 그 여자 신날 기회를 주지 말도록 하자구요.

그래, 그러자구. 나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자야겠다. 잘자, 셜록.

잘자요, 존. 리조또 고마워요.

별말씀을. 네가 먹어주겠다고만 하면 또 해줄게.

그럴지도.

자러 가야지, 셜록.[각주:4]

자러 왔거든요. 자요, 존.[각주:5]

그러려고 하는 중이야. 이 거슬리는 삑삑 소리 때문에 깨어있는 거지.

당신이 나한테 문자 그만 보내면 삑삑거리는 것도 멈출거에요.

넌 항상 끝인사가 필요한 거야?

그럼요.

잘자, 셜록.

잘자요, 존.


셜록은 다 비운 리조또 그릇을 침대 머리맡 테이블에 올려놓고 불을 끄고는 뎅굴, 모로 누웠다. 핸드폰은 여전히 침대에 두고, 그는 어두워져 꺼지는 액정 화면을 가만 지켜보았다. 손가락으로 이 새 기계를 쓸어보며, 그는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외면했다가도 밤만 되면 다시 찾아오는 불쾌한 이미지를 막아 보려 애썼다. 샘텍스, 물, 피, 그리고 생기없는 존의 눈빛. 이 플랫메이트를 직접 볼 수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사히, 잘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존이 자기 침실로 돌아가고 문자도 보내지 않게 되면, 그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지친 몸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고 말았지만, 수영장에서의 그 사건 이후부터는 편안하게 잘 수도 없을 뿐더러 어깨의 긴장감도 뻣뻣하게 남아 있었다.





늦은 밤 문자 외에도, 셜록과 존의 - 서로에 대한 행동에는 몇몇 변화가 생겨났다. 너무도 작아 정확히 어떤 순간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변화들이지만. 서로를 만지는 빈도가 훨씬 늘어난 거다; 어깨에 손을 올린다거나, 손가락이 스친다거나, 코트를 입고 벗는 걸 도와준다거나 하는 식의 자그마한 몸짓이었다. 엄청나게 놀랍거나 인생이 확 바뀐다거나 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 전에 없던 가까움이 생겼다는 것만큼은 둘 다 알 수 있었다. 또, 괜찮기도 했다. 둘의 막역한 우정이 자연스럽게 한층 깊어지는 거니까. 셜록은 이런 자그마한 접촉이 마음에 들었다. 그에겐 이것들이 존이 살아 있다는 - 그의 살갗이 따뜻하다는,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추가적인 증거인 셈이었다.

이어지는 사건 덕분에 그들은 단서를 찾아 이곳 저곳의 교회들을 돌아다녀야 했다. 살인범이 사제들을 죽이고 다니며 시신에 동그란 알 수 없는 종교적 상징을 남겨두었던 탓이다. 셜록은 나흘만에 이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이는 결국 런던 거리들을 온통 누비고 다니는 격렬한 추격전까지 이어져, 종내에는 존이 살인범과 맞붙게 되어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범인이 키도 더 크고 힘도 셌던 탓에, 존은 난간 너머 차가운 템즈강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레스트라드가 살인범에게 수갑을 채우는 동안 셜록은 기슭으로 달려갔고, 부들부들 떨며 물 밖으로 나오는 존과 딱 마주쳤다. 셜록의 심장은 쿵쾅거리며 뛰어댔다. 존이 난간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본 그 순간부터 숨을 멈춰버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그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이 의사 선생에게로 달려들어 꼭 끌어안아버렸다. 존은, 온 몸을 떨면서도 어색하게 이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 괜찮아, 셜록. 안심해, 나 괜찮으니까.” 달래는 목소리가 나와주길 바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존은 자신의 이가 딱딱 부딪히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 셜록은 그의 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려, 자신의 긴 코트 단추를 풀고 그대로 존을 감싸 가까이 끌어안았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려버린 거다. 잠깐이었지만 그 수영장으로 또다시 되돌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존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쩌면(아마도?) 다쳤을지 모른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그에게로 달려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만 싶었다. 떨고 있는 남자를 가슴에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셜록은 숨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건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따스한 코트 안쪽으로 셜록의 등을 달래듯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있는 존의 손길, “나 괜찮아, 너도 괜찮은거야.”하는 그의 속삭임. 셜록은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처럼 그를 꽉 붙들고만 있었다. 둘은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고, 레스트라드가 연행을 마치고 존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러 왔을 때에서야 주변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듯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존이 템즈강으로 뛰어든 것 치고는 괜찮다며 레스트라드에게 확인해준 후 택시를 잡으러 큰길가로 향하면서도, 셜록은 존에게 자신의 코트를 입으라고 우겨댔다.

플랫으로 돌아와, 존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셜록은 중국음식을 주문해 두었다.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삼아, 둘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다. 평화롭고, 여느때와 거의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셜록은 안절부절 못하며 평소보다도 더 조바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존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에는 모든 게 괜찮다고, 사건 생각하던 것 뿐이라며 그저 손짓 한번으로 떨쳐버릴 뿐이었다. 결국 존은 손으로 가리면서 하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러 가겠다며 한마디 던지자 셜록은 알았다는 표시로 흐음, 넘겼다. 그러나 존이 윗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셜록은 늘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서는 등 뒤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맹렬하게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다 썼을 때쯤, 윗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존이 이를 닦은 후 파자마로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갔을 때에서야, 셜록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당신 이러면 안돼요.

뭘?

하잘것 없는 잡범 따위에 당신 목숨을 걸지 마요.

말했잖아, 난 괜찮다니까. 그저 찬물 좀 뒤집어 쓴 것 뿐이야, 우린 더 나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잖아.  

당신 안 죽는거에요.

나도 나 안 죽는거 알아, 별거 아니었는걸. 그리고 나 의사라구, 알지?

내 말은, 죽지 않는 거라구요. 절대로. 당신은 그러면 안돼. [각주:6]

기다려봐, 내가 아랫층으로 갈 테니까 같이 이야기하자.


셜록은 윗층에서 존의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일어나 아랫층으로 내려오려 한다는 신호다. 그는 서둘러 답장을 입력했다.


아니, 그러지 마요.


존의 매트리스가 좀더 삐걱거렸지만, 문이 열리거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존이 침대로 돌아간 거다. 


알았어. 내려가지 않을게. 음,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넌 없고 마이크로프트가 있었지… 난 무서웠어. 네가 죽어버려서, 그 소식을 나한테 전해주러 온 거라 생각했거든. 병원에서 내가 그랬잖아: 네가 죽었다면 난 어땠을지 모르겠다고. 우린 위험하게 살고 있으니, 걱정하는 건 당연해.


이번 문자는 꽤나 오래 걸렸기에, 도착할 때까지 셜록은 침실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문자를 읽어내렸고, 웃어야 할지 찡그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딱히 좋은 표정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존은 셜록의 기분을 알 거였다; 존은 아껴주는 데 익숙했고, 그가 아끼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데도 익숙했으니까.


마음에 안 들어요.

나도 좋아하진 않아.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잖아. 허파가 뭉개지고 심장이 뒤틀리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는걸, 그렇지 않아?


물론 그랬다. 존의 말이 옳았다. 범죄, 추격전, 수수께끼, 스릴, 극도의 흥분, 게임, 그리고 셜록이 유달리 뛰어난 추리를 해낼 때면 보이는 존의 그 눈빛. 예전에는 그의 직업에서 걱정이라는 건 단 한번도 고려해본 적 없는 요소였지만, 존과 함께 생겨난 걸지도 모른다. 이제 존은 그의 직업의 일부분이자 삶의 일부이니, 때로는 이 걱정이라는 녀석에 대처할 방법을 배워야만 하는 걸테다. 무너지는 가슴, 뭉개진 허파와 뒤틀린 심장까지도.


당신이니까 그런 거에요,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입력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워버리고는 다시 썼다.


그럴만 해요.

그럴 줄 알았어.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줘, 알았지? 그리고 이걸로 네 마음이 좀 편해진다면, 약속할게. 네가 허락해줄 때까진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거야.


셜록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막 답장을 막 쓰려던 순간, 새 문자가 왔다.


너, 정말 괜찮은 거지?

당연히 괜찮죠.

내가 내려가는 게 진짜 싫은거야? 난 살짝 바보같은 기분이 드는데.

난 문자가 편해요.[각주:7]

그래, 나도 알아. 그저… 너도 죽지 않게만 해, 알았지?

그럴게요.

고마워.

좀더 이야기하고 싶어?

네.

뭐 말하고 싶은 거라도?


셜록은 마음 속에 다른 걸 두고 있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어쩌면 존이 조금은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하지만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 당신이 무사한 것 이상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써 봤지만, 영 성에 차지 않아 모두 지워버리고는 다시 써 보았다.

당신이 거기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이렇게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다가, 다시 한번 문자를 읽고는 생각을 고쳤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걸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셜록은 그랬다. 그는 불만스러움에 침대로 털썩, 몸을 던지며 있던 문장을 다 지워버리고 새로 썼다.


다음 포스팅거리요. 당신이 내 추리들 모두 제대로 이해했음 좋겠어요. 그래야 글도 당신이 좋아라 하는 영화들 중 하나처럼 되어버리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 들어보도록 하지.


그 다음, 셜록은 지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추리를 이끌어냈던 필수 요소들을 집어가며 존에게 문자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사실에 기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세번째 상기시켜주었을 때, 그의 핸드폰은 잠잠하기만 했다. 이제 셜록은 존에게 갖가지 문장 부호에 대문자를 다양하게 써가며 이름을 강조해서 문자를 여러개 보내는 게 효율적이진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각주:8] 대신 그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꿈틀꿈틀 뒤척거리며 침대에서 30분 정도 버텨보다가, 결국 일어나서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는 존의 방, 닫힌 문 앞에 멈춰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존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때면 조용히 자는 편이었기에, 셜록은 몇 분 정도 지나서야 문 저편에 있는 남자가 무사히 살아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며 돌아섰고, 자신의 침대로 되돌아가 잠이 들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꼬옥 움켜쥔 채로.








+)
아무도 못 보고 넘어갈 줄 알았던 [깜짝 (각주)퀴즈] 정답자 shuriez님의 리퀘.
자신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벅찬 마음, 하지만 표현할 방법을 몰라 문자로 조금씩 내비치는 셜록이 좋다.
두근두근, 설레임 담긴 달달한 내용, 언제 읽어도 좋은 글 : ]



  1. ‘extremely long tentacles’ - 촉수보다 쉽게 와닿을 표현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2. ‘If you use the word ‘swish’ to talk about my cloak again’ - cloak이라고;; [본문으로]
  3. ‘My coat. I will throttle you with my coat’ - 셜록도 실수를 하는근영. [본문으로]
  4. ‘Go to bed’ - 아래 각주에 이어서. [본문으로]
  5. ‘I am in bed, Go to sleep.’ - 각주4를 말 그대로 받아서 답문을 보낸 것. 망토 운운해서 삐진걸지도? :D [본문으로]
  6. ‘You’re not allowed to’ - 셜로기의 이런 말투 정말 좋다. 주체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어쩌면 좋은가. [본문으로]
  7. ‘I prefer to text’ - S1-1 셜록의 대사이자 이 글의 제목. [본문으로]
  8. …효율적인 구석이 한개도 없잖아;;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