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키스 금지령  | The Kiss Embargo  



존을 원해 - 베이커가로 함께 돌아오면서 셜록은 문득 깨달았다.

어떤 의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존을 원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를 만지고 싶고, 그의 살결을 - 얼마나 따뜻한지, 얼마나 뜨거운지 느끼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도, 다시 그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키스하고 - 어떤 맛인지, 서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가끔 그러는 것처럼 존이 주도권을 잡으려 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제심이 넘치는데다 이용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하며 늘 멈추는 그인데. 셜록을 아껴주는 - 너무, 너무도 조심스러운 그인데; 정말이지 짜증스럽고, 불만스럽고, 미쳐버릴 정도로 조심스러운 그인데 말이다.[각주:1] 

저 자제력을 허물어버리려면 뭐가 필요할까, 셜록은 문득 궁금해졌다. 존이 무너지는 순간이 - 이 끌림이 서로 같은 마음이란 걸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으려 들 그런 순간이 있긴 할까?

셜록은 그 생각에 바르르 전율했다. 그는 늘 스스로 주도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래라 저래라 참견받는 건 좋아한 적도 없을 뿐더러, 혐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존이 자제력을 잃고, 이런… 뭐가 되었든간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가진다는 생각은 - 음, 그건 셜록이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무척이나 흥미로운 생각이었다.

그는 존이 앞서나가도록 두자고, 다그치는 건 불공평한 일일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존은 오늘도 너무 잘 해주었으니까 - 그의 눈이 되어주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온전하게 만들어주었다.[각주:2] 존은 중요하다. 존은 필요하다. 존은 필수인 거다.[각주:3] 좌석 가장자리를 움켜쥔 셜록의 장갑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만지면 안돼, 런던의 차량들 사이를 가르는 택시 안에서 존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였다.

시체 안치소를 나오면서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평소대로의 다정한 침묵은 아니었다 - 결코 아니고말고. 오늘 셜록이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음을 존은 알 수 있었다. 셜록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데에 커다란 안도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셜록을 실망시키지 않고, 그가 일할 수 있을 만큼 해낸 셈이니까.

하지만 지금 감돌고 있는 기운은 안도감이 아니었다. 이건, 셜록이 말한 ‘순간들’ 중 하나였던 거다 - 사건 직후, 아드레날린에 취해 가슴 뛰는 순간들…[각주:4] 다른 게 있다면, 지금 그걸 알아차린 건 존 혼자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자신의 왼쪽 - 자리를 꽉 움켜쥐고 있는 셜록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존 혼자뿐인건 절대 아니다.

그가 바라보자 근처에 있던 팔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셜록이 다른 손으로 천천히, 조금씩, 손가락 하나 하나씩 장갑을 벗기기 시작했고, 오른손의 창백한 맨 살결이 처츰 드러났다. 너무나도 천천히, 정말 의도적으로 셜록은 팔을 뻗어, 그들 자리 사이에 그 손을 손바닥을 위로 해서 올려두었다.

저게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의 잠옷 바지로 슬며시 밀어넣었던 그 손은 아닐거야, 존은 생각했다. 셜록같이 천재적인 탐정이, 자신이 그렇게 더듬어대는 데 잘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존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는 정말, 그의 말마따나 순진했던 거였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는 거기 그대로 누운 채로, 저 긴 손가락들이 자신의 음모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알아차리자 곧바로, 그것도 굉장히 흥분해버리고야 만 거였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의아해했지만,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쳐간 세 가지 생각은 곧바로 제외해버렸다. 그나마 네번째 가능성이 그럴싸해 보였다[각주:5]; ‘셜록의 손이야, 셜록의 손이라구’ 하는 말들로 무한루프를 도느라 완전히 멈춰버리지 않은 나머지 머리로나마 그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셜록이 더듬도록 내버려두고 그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말았다.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지 궁금해하면서.

셜록이 막힌 듯,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하는 때가 되어서야, 존은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체념하고는 샤워나 하자, 마음먹고 ‘일어나는’ 척 했다. 그래도 이번엔 찬물 샤워는 아니어도 되겠지, 그는 생각했다. 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셜록이 주장해왔던 지난 주 이후부터는 스스로의 판타지를 억누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제 그는, 마치 제안이라도 하듯 놓여진 그 손을 바라보았다. 접촉 실험이 성공적이었으니, 셜록은 그 이상을 각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문제는 - 그 이상이라는 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가, 라는 거겠지.





셜록은 기다렸다. 그의 손은 차갑게 드러내놓아진 느낌이었지만, 존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기다려보는 거다. 이건 다그치는 게 아냐, 그저 제안하는 거라구.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일 테니까.

존은 그가 말하려는 게, 부탁하려는 게 뭔지 이해해줄까? 셜록조차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데 존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그 이상을 원한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연결고리… 더 많은, .

따스한 손이 그의 손가락을 감싸는 순간, 그의 생각은 멈춰버렸다. 그 열기가 그의 팔을 따라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촉각이라는 건 정말 특이한 감각인 게 분명하다. 그가 의지하는 데 익숙했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저 안내받기 위해서 존의 팔꿈치를 잡기도 했었고, 심지어 침대에서조차 존을 감싸안지 않았던가. 그때는 그저 편안하고 따뜻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저 손이 맞닿아 있을 뿐인데 어떻게 벌거벗은 것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정적을 깨뜨리고 입을 열었다. “존?” 그의 목소리는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셜록.” 존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낮고, 어쩐지 긴장한 듯한 목소리.

셜록은 그가 원하는 걸 어떻게 표현하는 게 최선일지 고민해보았지만, 결국에는 평소 그의 능란한 화법따위는 포기해버리기로 했다. “복도?”

존이 훅,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손을 감싸쥔 그의 손가락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지만, 이내 다시 풀어졌다.

“난 못해,” 존이 말했다. “네게 그렇게 키스할 순 없어, 아직 아냐. 네가 진심이라고 확신할 때까지는 안돼.”

셜록은 이를 갈았다. 어째서 이렇게 짜증나게 구는 사람에게 끌리게 된 걸까?

“그런 표정 짓지 마.” 존이 또다시 말했다. “너랑 똑같은 의미로 한 말은 아니니까.” 그는 셜록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둥글게 문질러주었다. “네게 설명하려 애써볼 수는 있겠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셜록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몸을 반쯤 틀어 경청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건 흥미롭겠는걸.

존은 한숨을 푹, 쉬더니 “키스하는 건… 말야,” 정정하듯 말했다. “정말 친밀한 경험이거든.”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존의 손에서 전해지는 열기와, 셜록의 손등을 끊임없이 어루만지는 엄지손가락의 느낌 뿐.

“다른 것들 거의 대부분은, 네가 관여하지 않을 수 있을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네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네 머릿속에서 한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게, 너무 빨리 끝나버리지 않게. 서둘지 않는거지 - 기다리면 더 나을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건 나중에 하는 거랄까[각주:6]; 알겠어?”

셜록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누구와도, 단 한번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키스한다는 건 그런게 아냐. 적어도 내겐 그래.” 존이 말했다. “정말 개인적인 거야. 딱 그 순간에, 그 사람과만. 이어지는 거지.”

셜록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관심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존에 관해서 자주 쓰곤 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얼마나 개인적인지, 얼마나 친밀한 느낌인지는 네가 키스하는 상대와, 그 사람에 대한 네 감정이 어떤지에 달려 있는거야.” 존은 말을 이었다. “어쩌면 나, 다른 사람과는 키스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고 넘겨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셜록은 얼굴을 찡그렸다. 존이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건 싫었다. 존이 다른 누군가와 이어진다니, 정말이지 싫었다.

존이 그의 손을 힘주어 그러쥔다. “괜찮아, 설명하려는 것 뿐이니까.” 그가 말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키스하려는 게 아냐.” 잠시 멈추는 걸 보니,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깐, 오늘 아침에 네가 이야기했던거, 그러니까 네가 추리해내겠다던 목록에는 그게 없던 거야?” 물어보긴 했지만,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뭐, 난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지워버려도 돼.”

엄지손가락이 다시금 천천히 원을 그리듯 움직인다. “하지만 네게 키스하는 건 말야, 셜록.”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네게 키스하는 건 무엇보다도 큰일인거야.” 셜록은 신중하게 아침에 만들었던 마음 속 목록에서 또다른 항목 하나를 체크해 두었다.

존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살짝 다른 각도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게 분명하다. “네게 키스하는 거, 난 수천번도 더 생각했었어.” 그가 말했다. “젠장, 심지어 꿈까지 꿨을 정도라니까. 그것도 계속해서 말야.” 그런 스스로가 넌더리난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러진 않아서 다행이야. 우리가 이걸 해보는데 동의했단 건 알고 있으니까.” 그는 스스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주잡은 손을 가볍게 들어보였다. “네가 촉각을 탐구하고 싶어하고, 육체적 관계에서의 가능성을 조사해보고 싶어한다는 거 알아. 그리고 나랑 하는 것도 괜찮고.” 그리고는 목을 가다듬더니 덧붙인다. “괜찮은 거 이상이지.”

“하지만 네가 결론을 얻기 전까지, 난 내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호해야 하는 거야. 네겐 아니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떠나야 하는, 그런 상황은 바라지 않으니까. 이해가 가, 셜록? 난, 내가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만들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이쯤 되어서야, 셜록은 이제껏 그가 이 대화에 전적으로 존의 입장에만 의지해서, 예상 가능한 측면으로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젠 그가 조금 더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럼 키스하는 게 그 선을 넘는 일인가?”

“그럴 수 있지.” 그가 미심쩍은 듯 묻자, 존이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건 괜찮고?”

“다른 건 괜찮을걸.”

셜록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존의 관점을 이해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가 이해한 대로라면, 그건 성적인 면에서 진도를 나가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상반되는 거였다. 하지만 이쪽 분야에 대한 존의 자각 수준이 자신보다는 훨씬 더 탁월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이 그렇게 느끼는 거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네게 맡길 거야. 알겠지?” 그의 생각을 가로막는 존이었다.

“네가 진심이라는 확신이 서면 내게 키스해도 돼.” 그가 말을 잇는다. “충분한 데이터를 얻은 다음에, 네가 내린 결론이 나랑 제대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거라면, 그러면 괜찮아. 해봐.”

“하지만 셜록,” 그가 덧붙였다. “부탁할게, 네 친구로서. 그 결정을 서두르진 말아줘. 너라면 항상 모든 걸 알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고, 그게 네겐 늘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부탁이야. 날 위해서, 네가 확신하기 전까지는 기다려줘. 알겠지?”

셜록은 스스로가 궁지에 몰렸다는 걸 깨닫고는 입술을 비죽였다. 지금 당장 진심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었다. 존이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존이 떠난다는 위협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야만 할 거였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다리는 건 질색인데.

가는 내내 셜록의 두뇌 일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이동 경로를 쫓으며 모든 굽이와 모퉁이들을 다 확인하고 있었기에, 이젠 거의 집에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 마지못해 동의하고는 한번 더 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내게 키스해주길 바란 것 뿐인데, 그게 다였다구.” 삐진듯한 목소리일 걸 알지만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그의 얼굴 옆에 손이, 귀 바로 아래에 무언가 눌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입술이 와닿는, 살짝 깨무는 느낌. 셜록은 헉, 헛숨을 들이켰다. 놀라움과 또다른 무언가로; 더… 기대감에 가까운, 무언가.

존이 물러났지만, 그다지 멀리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의 말들이 셜록의 목덜미에 뜨겁게 와닿았다. “아, 네게 키스할거야, 셜록. 네게 키스하는 건 아무 문제 없어.” 그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어디에라도 키스해줄게.” 그의 이가 셜록의 귓가에 스쳤다. “입에만 빼고.”

택시는 베이커가에 멈춰섰다. 존이 기사에게 요금을 내는 동안 셜록은 문을 열고 내렸다. 존이 인도에 발을 딛자마자, 셜록은 그의 손을 잡아 조심스레 그의 벨트 버클 위로 이끌었다. 적절할 정도로 높게, 하지만 그의 의도가 분명히 전달될 만큼은 낮게. “어디에라도?” 그는 유혹하듯 한쪽 눈썹을 휘며 물었다.

존은 택시 문을 닫으며 조금 휘청거렸지만, 다른 팔을 셜록의 코트 안으로 밀어넣어 그의 등허리를 감싸며 재빨리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는 셜록의 복부를 사이에 두고 두 손을 마주잡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래, 맙소사.”





그의 손을 놓고 현관으로 돌아서는 존의 머리는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지금 자신이, 정말 저 셜록 홈즈에게 입으로 해주겠다고 한 게 맞는건가, 그것도 처음으로? 딱 그런 것 같았는데.

셜록이 진심으로 저런 류의 강렬함을 각오하긴 한 건지 반쯤은 궁금해졌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적어도 셜록은 이제 그 숨막힐 것 같던 마사지도 경험해 봤는데다, 저런 제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이 섰다고 느낀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겠다고 존은 다짐했다. 결국 존 역시도 한낱 인간일 뿐이니… 셜록에게 손을, 입을 댈 수 있는 기회를 더는 뿌리칠 수 없었다. 저렇게나 거리낌없이, 심지어 간절하리만치 제안해 오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른손으로 셜록의 손목을 감싸쥐고는 재빨리 현관 앞으로 끌고 갔다. 왼손으로는 열쇠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이면서.

그때, 셜록이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그리고는 이제 막 자물쇠에 열쇠를 꽂으려던 존의 손 위에 다른 손을 얹는다. “기다려, 존.” 그가 말했다. “누가 있어.”

존이 미처 둘러보기도 전에 셜록은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문에 이마를 쿵 부딪힌다.

“잘 지냈니.” 뒤에서 들려오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에 존은 돌아섰다. 홈즈가의 형님은 예의바르게 미소지어보였지만, 그 안에 선득한 날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혀 좋아보이지 않았다.

셜록은 움직이지도 않고 말했다. “이만큼이나 이례적으로 좋지 않은 타이밍에 들이닥쳐 주시는 불쾌함을 감수해야 할 만큼 신세진 게 뭘까?” 그의 물음에 뚝뚝 묻어나는 무례함을 느꼈지만, 존은 이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까?” 마이크로프트가 문을 가리키며 제안했다. 존은 극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셜록을 흘긋 살펴보고는 열쇠를 돌려 안쪽으로 안내했다.

존이 서둘러 차를 준비하는 동안, 두 형제는 말없이 두뇌싸움에 돌입이라도 한 듯 각각 반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잔을 받아들고 나자, 방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존은 가능한 한 오래 끼어들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으며 테이블에 기대섰다.

마침내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정말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는 거니?” 셜록을 향해 물었다. “고작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모리어티가 너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며 기뻐하더니, 이젠 둘이 쌍으로,” 못마땅해하는 시선이 존에게까지 스쳐지나갔다. “일부러 관심을 끌고 있잖니.”

셜록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그가 사건을 해결했다구요.” 존이 지적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를 둘씩이나 치워버렸단 말입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전연 감명받지 않은 듯한 얼굴로 셜록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겠다는 게 네 의도였어?” 그가 물었다. “모리어티가 널 다시금 멈춰세울 때까지 눈먼 탐정 노릇을 계속하는 게? 이번에는 존마저도 막을 수 없게 해보려는 거니?”

“내가 뭘 하길 바라는 거지?” 셜록은 짜증스럽게 따져물었다. “내 머리가 완전히 썩어버릴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는 거?”

“내가 일을 할 수 있게 내버려둬 줬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너도 네 일로 돌아가는 게 안전해질 테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쓸만한 사람들에게 모리어티 사태를 맡겨뒀어. 다시는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할 게다.”

“당신에겐 셜록만큼 괜찮은 인력은 없잖습니까.” 존이 입을 열었다. “그 싸이코자식을 잡길 바란다면, 셜록이 도울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잡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아마도 그일 테니까요.”

셜록은 반쯤 미소짓듯 입술을 끌어올렸지만, 마이크로프트가 차가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날 놀라게 하는군요, 존.” 그가 말했다. “놀랍습니다, 그것도 매우.”

그는 우산을 앞뒤로 흔들더니 짚고 기대섰다. “난 생각했었습니다, 당신의 감정이라는 게.”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 무시하는 듯한 기색이 묻어났다. “셜록을 지켜내는 데 조금 더 관심이 있을 거라고 - 위험한데다 자칫하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지도 모를 상황으로 부추기진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는 키 차이를 이용해서 존을 깔보듯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해서, 실망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존은 셜록이 입술을 꼭 다무는 걸 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빅 브라더’ 증후군이라 생각해왔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셜록을 사랑하지만, 정말로 그를 존중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동생이 천재인 걸 잘 알고 기회가 될 때마다 활용하는 데에도 만족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린애인 양 취급하고 있던 거다. 당연히 그럴수록 셜록은 더더욱 유치하게 굴 수밖에.

예전에 허드슨 부인이 집세는 다 처리되었다고 말해주던 거나, 존이 현금 인출기를 사용할 때마다 잔고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던 이유가 이거였다. 그리고 셜록이, 자신을 아껴주는 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겠지.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의 동생을 보살피고 보호해주는 것에 만족했지만, 그 동생이 스스로 선택하는 건 싫어했던 거다.

존은 자신의 태도가 자세에 드러나도록 조금 더 몸을 세우고는, 처음 만났던 그때의 군인다운 모습으로 마이크로프트를 마주했다.

“당신이 셜록에게 최선일 걸 바란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병원에서부터 그 이후로도 계속, 나를 도와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우선하는 게 당신과도 같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는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며, 마이크로프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 동생에게 난, 여러가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상을 원한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 게 분명하구요. 하지만, 난 셜록을 지켜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놀란 듯한 셜록의 표정을 흘긋 바라보았다.

“셜록이 사랑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그 자신이 되려는 걸 내가 막으려 든다면, 그럴바엔 차라리 내가 그를 쏴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그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그걸 사랑이라 말할 셈이라면, 그런 건 당신 마음대로 하시죠.”

홈즈가의 두 형제는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마이크로프트가 천천히 돌아서서 서로 마주하게 되자 둘 다 자동적으로 표정을 지워냈다. 마이크로프트는 지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존은 생각했지만, 어쩌면 셜록이 시력을 되찾았으면서도 시인하지 않았을 뿐이라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셜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니까. 적어도 마이크로프트가 신경쓰고 있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마는 존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존은 손짓이라도 하려는 듯 셜록의 손끝이 가볍게 움찔거리는 걸 눈치챘다. 방을 가로질러 셜록이 앉은 의자 옆에 걸터앉자, 그의 팔이 곧바로 존을 감싸안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일어섰다. “잘 알았다.” 그는 말했다. “이게 네가 바라는 거니, 셜록?”

존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셜록이 대답하는 걸 보며, 존은 실제 그 말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만 같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각주:7]

“안시아에게 곧 들르라고 하마.”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녀가 지금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 줄거야.”

존은 일어서려 했으나, 셜록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기에 다시 가만히 앉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일어설 필요 없습니다, 존. 알아서 나갈 수 있어요.” 문으로 돌아서는 그의 시선이 다시금 둘을 훑었고, 떠나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조만간 다시 봅시다.”

마이크로프트가 떠난 플랫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존이 고개를 돌렸을 때, 셜록은 거의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순간 존은 셜록이 두 팔로 자신을 붙잡고 의자로 끌어당기는 걸 깨달았고, 이내 길게 몸을 편 셜록 위에 존이 누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그가 놀라 신음하자, 셜록이 붙들고 있던 왼쪽 손으로 존의 가슴을 받친 채로 다른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존의 바지 허리 아래로 밀고 들어오는 그의 손가락과 이 자세, 오늘 아침에 깨어났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 감각에 온 몸을 휘고 마는 존의 귓가에, 낮고 허스키한 셜록의 목소리가 와닿았다.

“존,” 목소리가 울린다. “존,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목덜미에 와닿는 셜록의 입술을 느끼며 존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네가… 상상해왔던 게 있다면…” 셜록의 입술이 스치듯 올라가더니, 그의 귓불을 가볍게 깨문다.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온 몸이 떨려오는 걸 느끼며 존은 스스로를 지탱하려 의자 팔걸이를 꽉 붙들었다.

셜록의 손이 미끄러져 올라와 그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일거야…” 그가 속삭였다.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10/20): The Kiss Embargo 
  • 역자 주석: 이제 10편, 어느새 반밖에 반이나!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존이나 느끼면서도 모르는 셜록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서로에 대한 끌림은 확실해서 좋다.
      수줍게 손 내미는 셜록도 귀엽지만, 역시 앙큼한 어른스러운 존. 셜록을 향한 그의 마음은 정말 든든하고, 포근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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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어!;;; [본문으로]
    2. ‘making him whole’ - 한글 제목을 이리 짓게 된 이유. 자세한 설명은 ‘마음..’ 목록에 추가 :D [본문으로]
    3. ‘John was important, John was necessary, John was essential.’ -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본문으로]
    4. 8편에서 셜록이 묘사해주었던 그 순간들. [본문으로]
    5. 대체 무슨 생각을 네 가지나 한 건지, 이런 앙큼쟁이;;; [본문으로]
    6. ‘Delayed gratification’ - 맛있는 걸 나중에 먹는 것 같은 느낌. [본문으로]
    7. 홈즈가의 종특은 역시 텔레파시였을지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