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적군 무력화  | Neutralise The Enemy 
 
 
 
(존 시점)


“그리고 다신 오지 말아요!”

나는 문을 쾅 닫는 소리에 작게 움찔했다. 그리고는 내 ‘사과용’ 꽃다발을 떨구고는 어깨가 살짝 처지는 걸 느끼며 돌아섰다. 아, 그래. 허드슨 부인은 꽃을 좋아할거야. 그녀는 분명 전에 - 사라와 레이첼, 앨리스에게 주려다 거절당한 것들을 드렸을 때에도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제인이 거절한 꽃다발이라 해도 나의 인내심 강한 안주인이 나쁘게 생각할 리 없다.

나는 돌아서며 한숨을 쉬었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제인과의 관계에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가보다. 그녀는 내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것 같았고, 이제는 말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지옥에서 온 사악한 악마 플랫메이트”. 아마도, 지난 저녁 데이트에서 날 불러냈던 긴급한 상황이란 게 사실은 셜록의 손가락이 병에 빠졌던 거라고 이야기했던 게 실수였나보다.





“대체 왜 병을 그냥 깨버리지 않은거야?”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존. 그랬다면 실험을 완전히 망쳐버렸을테니까."

“허드슨 부인에게 부탁하든지, 내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잖아?”

“허드슨 부인은 의학적 수련을 받은 적이 없잖습니까 – 그러다 내 손가락에 상처라도 냈다면 어땠겠어요?
 이건 내가 문자보낼 때 쓰는 손가락이라구요, 존.”





그래, 생각해보니 제인에게 이런 걸 설명해봐야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정말 위험하(다거나)고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무언가를 지어냈더라면 나았을지도. 나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가지고는 섹스 한번 못해보게 생겼다.

막 현관에 발을 들어놓는 순간, 핸드폰에서 문자 수신 알림이 울렸다. – '스코틀랜드 야드. 괜찮다면, 빨리 와요. SH.' 나는 아쉬워하며 주전자를 언뜻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고 돌아서야만 했다…

내가 레스트라드의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안쪽으로부터 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 샐리 도노반이 제일 시끄러웠다. 그녀는 분명 마구 소리치며 성질을 부리는 중이었고, 문 쪽으로 다가갈수록 그녀의 말들을 좀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 어째서 우리 모두가 저 미친자식의 추측이나 듣자고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거죠? 저 사람이야말로 범죄가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할 싸이코인게 분명해 보이는데. 저런 자식은 열심히 일하는, 진짜 경찰관들의 시간을 뺏고 있을 게 아니라, 정신병원에나 가야 한다구요. 저건 그냥 괴물이잖아요!”

나는 문턱을 지나며 얼핏 셜록을 보았고, 그의 상처받은 표정에 깜짝 놀라버렸다 – 그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 표정에,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그 특유의 오만방자한 미소를 띤 익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도노반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는 입을 열었고, 가슴에 비수를 꽂을만한, 들어도 마땅한 멸시성 발언들을 뱉어주려는 게 분명했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나는 방 전체를 조용히 시키고 내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예전 선임하사 모드로 일갈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조용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상황대로라면,” 나는 지친듯 책상 한구석을 괴고 앉은 레스트라드를 날카롭게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셜록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 같습니다만.” 내 신랄한 비난에 담긴 의미는 누가 봐도 분명했고, 나는 손끝으로 도노반, 그리고 앤더슨을 차례로 지적했다. “당신네 그 열심히 일하는, 진짜 경찰관들께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말입니다.”

레스트라드는 대답하지 못했고, 난 조금 난처하지만 어쨌든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팀을 담당하고 있는 경위로써,” 나는 단호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고, “당신 휘하 사람들의 저런 태도나 처신에 대해, 당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다들 멍한 표정들이었다; 심지어 셜록마저도 내 반응에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인 만큼 당신 부하들이 제대로 사죄하도록 처리하실 거라 믿겠습니다.” 나는 잠시 멈추고 도노반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직접 부른데다가, 당신들이 그렇게나 자주 기대는데도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도와주고 있는 자문 탐정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무례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한층 더 조용해졌다. 도노반과 앤더슨은 완전히 얼어붙은 것 같았고, 레스트라드 역시 비슷한 상태였다; 그들은 셜록이 부르면 따라오고 항상 곁에 붙어다니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존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군인 존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확실히 한참 전에 보여줬어야 했던가보다. 나는 그들이 셜록을 대하는 태도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끔찍하다는 듯이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는 특별히 신경쓰고 있지 않는 듯 해서, 나도 그냥 넘겨왔던 것 뿐이다 – 지금까지는.

“셜록,” 난 그의 주의를 끌기로 했다.
“네, 존?” 그는 선선히 대답했지만, 그의 눈에는 이상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 미묘한 승리감같은?

“다 끝난거야?” 나는 내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그가 하고 싶은 게 남아있는지 물었다.
“그래요, 존.” 그는 내 쪽으로 다가서며 다시 대답했다.

“문자할게요.” 그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듯한 레스트라이드를 향해 어깨 너머로 한마디 던졌고, 그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어, 고맙네, 셜록.”

방을 나서는 셜록을 따라 돌아서면서 레스트라드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조금은 창피해하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최소한 도노반만큼은 적절한 처신방법에 대해 - 전과는 다르게 - 한소리 듣게 될 거라고 추정했다. 

차를 잡으러 가는 동안, 여느때와 달리 셜록은 내내 조용했고, 내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 나는 그의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 “괜찮나?” 그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 조금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는 뭔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했던 거,” 그는 시선을 내리깔며 침을 삼키더니 다시 나를 응시했다. “내게 그래줬던 사람, 이제까지 한명도 없었어요.”

“자네 손을 들어준 거 말인가?” 나는 분명히 해두려 했다.

“내 편이 되어준 거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하이드파크 코너를 지나는 내내 눈길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무릎 위에서 내 손을 감아오는 셜록의 손가락을 느꼈을 때, 놀라 움찔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려 했지만, 그는 불안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마주잡은 우리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내 손을 꼭 감싸쥐고 몇 번 어루만지더니, 손을 놓아주고는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말 이상한 아침이었다.
 
 
 
  • 원문The Road Less Traveled (2/19): Neutralise The Enemy
  • 저자 주석:
    이 이야기는 <The Blind Banker>와 <The Great Game> 사이 어딘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 멋쟁이 br0-Harry님이 마지막 장면에 어울리는 굉장한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 정말 이상한 아침 
  • 역자 주석: 셜록의 존댓말은 물론 취향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글에서의 셜록은 존대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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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