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파  | Aftermath 



두 발.

총성은 두 발이었다.

되돌아보면

기다렸다. 그 칸막이 옆에 등을 기댄 채로, 다리에 힘을 주어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에 힘을 모으며, 가늘게 뜬 눈으로는 셜록의 손에 쥐어진 총만을 응시하면서. 그리고, 셜록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그러쥐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셜록이 마음을 바꾸거나 행동을 멈출 수 있을 순간마저 지나, 총성을 피할 수조차 없게 될 그 순간까지.

그제서야 그는 움직였다. 사력을 다해 전속력으로 타일 바닥을 가로질러 곧바로 셜록에게로 향했고, 팔을 쭉 뻗어 그를 감싸안으며 속도를 더해 몸을 비틀어 서로를 수영장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폭탄 조끼에서 일어난 불길이 그들의 머리 위로 터져나오던 바로 그 순간, 폭발의 위력으로 인해 두 사람은 더욱 물 속 깊이 빠져들었다.

시끄러운 소리, 빛, 압력, 산소 부족, 모든 감각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를 이해해버린 순간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솟구쳐 오르던 두려움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던 셜록, 존이 감싸안던 그때 갑자기 그의 몸이 꿈틀거렸던 기억, 그리고 너무나도 강력하고도 두려운, 두 발의 총성을 들어버렸다는 인식 그 자체.

총성은 두 발이었다. 단 한 번뿐이어야 했는데…





존은 병원 의자에서 불편하게 굳은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곧바로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는 사람부터 훑어보고는, 이어 좌우로 둘러선 기계들이 출력해내는 결과를 바라보았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항시 그렇게나 정확하게, 절도있게 움직이던 강하고 유능한 손. 바이올린이 낼 수 있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던 긴 손가락들. 이제는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는, 움직이지 않는, 정맥이 두드러져 보일 만큼 파리하게 질려버린 창백한 살결. 

셜록이 눈을 떠 존이 자기 손을 잡고 있는 걸 본 순간의 반응을 상상하며, 그는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 했다. 저 눈썹이 부담스러우리만치 휘어질 것까지도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움직이게 만들기라도 할 듯 셜록의 눈썹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두드러진 광대뼈와 긴 턱, 놀라우리만치 도톰한 입술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존이 이제껏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생기넘치고 깨어 있는, 활기찬 사람 - 그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뒤에서 문이 열렸지만 존은 돌아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병원 스탭이 가족도 아니고, 관계도 권리도 없다며 그를 내쫓으려 했었지만 존은 고집스레 머물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를 거의 몰아낼 지경이 되자, 마이크로프트가 손을 써 주었다. 

존 때문에 그들이 환자를 단 한 명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며 마이크로프트가 한 마디 했다. 존은 알아차리지 못할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존이 팔을 뻗어 셜록을 돌려안아주었기에, 그의 뒷머리를 뚫어버렸을지도 모를 총알이 실제로는 살짝 스치는 정도로 그칠 수 있었던 셈이다.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지만, 존은 더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홈즈 형제들을 겪을 만큼 겪어본 그이기에, 이길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변화는 없나요?” 마이크로프트 대신 오전 확인차 들른 안시아다.

존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안시아가 이 방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안시아는 셜록을 걱정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침대에 누운 저 육체 안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지, 아니면 그저 빈 집, 껍데기인지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거였다; 그녀에게 셜록은 그저 토의할 거리 중 한 가지 항목에 지나지 않으니, 신경쓸 리도 없겠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머리에는 붕대같은 게 둘러져 있지 않았다. 팔에 바늘이 꽂혀있지도, 숨쉬는 걸 도와줄 산소호흡기도 물고 있지 않다. 뜨여 있는, 의식있는, 정신을 차린, 깨어 있는 눈… 존은 그녀를 오래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이 침대에 누워 있는 육체가 왜 셜록이어야만 했던 거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 그 누구도 셜록만큼 생기넘치고, 독특하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 아닌데.

의사로서, 존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그는 알고 있었다. 셜록이 그럴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걷고 말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분개하는 건 잘못된 거다.

하지만 한 남자로서는 개의치 않았다. 다른 어떤 누구라도 좋았을 테다. 안시아였더라도, 존 자신이었더라도. 세상 한가운데 이만큼이나 커다란 빈 자리를 남겨둘 셜록 홈즈만 아니었다면, 그 누구라도 괜찮았을 거였다. 그러다 그가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을 때, 그녀는 이미 가고 없었다.





그 폭발 이후로, 엿새하고도 일곱 밤이 지났다.

첫날 밤은 극심한 공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존의 기억에는 희미한 움직임과 색깔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내내, 피와 고함 소리, 황급히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완벽한 정적만이 흘렀다. 셜록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살아는 있지만, 어쩐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사람들은 존을 찔러대며 눈동자에 불빛을 비춰보았다. “쇼크로군요.” 그들이 말했다. “당신 쇼크상태에요.”  존은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거기에는 이미 없는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무력했다.

병원. 셜록은 급하게 실려갔다. 그의 뇌에 차오른 압력을 낮춰줄 응급 수술이었다. 두개골 뒤로 가로질러 지나간 총알 궤적만큼 훼손된 부분도 복구했다. 그저, 살아날 거라는 절박한 희망 뿐이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지만, 이제 두 손은 떨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저 의미없는 소음일 뿐. 그의 머릿속에서 말들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수술만 좀 견뎌내줘, 셜록. 죽으면 안돼. 테디베어처럼 마당을 뱅글뱅글 돌고, 또 돌고.[각주:1] 죽지마, 셜록. 죽지만 말아줘. 스스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 계속.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방황하는, 혼자만이 남겨진 첫번째 날.

손도 대지 않은 식어가는 커피와, 경찰들이 던져대는 아무 의미 없는, 말도 안되는, 상관없는 질문들로 채워지는 하루였다. - 그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모르나? 그게 무슨 상관인데?

셜록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하루였다. 일어나서는 저 질문들에 대답해 주고, 집에 가게 풀어 달라며 요구하기만을 기다리는 - 그에게 결정적인 단계에 이른 실험들도 몇 개 있다는 걸, 저들은 모르는 건가?

기나긴 하루, 끝없는 하루, 끊임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하루였다. 셜록이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그 빌어먹을 모리어티놈을[각주:2] 잡겠다며 뛰쳐나가지도 않았으니까. 지루하다고, 뻔하다고, 바보같다고 존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으니까. 깨어나지도 않았으니까. 그는, 그렇게 깨어나지 않았던 거다.

그날 밤은 조용하기만 했다. 모니터의 삑- 소리, 산소호흡기의 쉭- 소리 모두 주변의 잡음들에 묻혀 사라져갔다.

조용했다.

‘가끔, 며칠씩 말을 안 할 때도 있어요.’ 셜록은 그에게 미리 경고했었다. ‘괜찮겠어요?’ [각주:3]

사실 존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었지만, 뭔가 말을 했더라면 그 대답은 ‘괜찮아’[각주:4]였을 거였다. 이제 그는 괜찮지 않았다. 그는 더이상 ‘괜찮아’라고는 말하지 않을 거다. 

이틀째 되던 날, 그들은 더 많은 전문의들을 데려왔다. 존은, 생전 처음으로 그가 의사가 아니었기만을 바랬다. 글라스고 코마 스케일(Glasgow Coma Scale)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를, 외상성 뇌손상(TBI: Traumatic Brain Injury)의 예후따위 잘 몰랐기를, 24시간이 지나버린 후에 셜록의 가능성이 얼마나 낮아지는지 알지 못했기를, 그는 바라마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의사들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질문하기도 하고, 정보를 요구하기도 하면서. 존은 그들이 대답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권력과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인간 두뇌의 수수께끼까지 추리해낼 수는 없었다. 셜록이 일어났을 때 - 그런다고 할지라도, 그가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될지 알아낼 방법따위는 없는 거였다.

마이크로프트는 전문의들과도 이야기했다. 존은 그들이 기억이나 언어능력, 시력, 균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셜록은 심한 감정 기복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거다. 가장 큰 문제는 인지 기능에 달려 있었다 - 주의력, 집중력, 정보 처리능력, 셜록이 스스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거다.

그가 알까? 존은 의아했다. 만약 셜록이 다른 사람, 보통 사람, 여느 모든 사람과도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서 깨어난다면, 자신이 뭘 잃어버린 건지는 알까? 때때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부정하며, 외상 후 행동을 그 전 능력과 비교하지 못하곤 한다. 그들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채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존은 생각했다. 셜록에겐 그 편이 나을 거였다. 그가 깨어나면 알 수 있겠지. 그가 깨어나기만 한다면.

셜록을 지켜보며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오고 갔지만, 존은 그대로 남아 그의 친구만큼이나 움직이지 않은 채 내내 그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들이 맡았던 사건과, 그들이 아는 사람들, 심지어 그 빌어먹을 태양계에 대해서까지도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는 건 정말 잠시뿐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때 - 먹고 씻는 등, 자신의 몸이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을 처리할 동안에는 마이크로프트가 와서 자리를 지켜주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를 위해서 존도 노력하려 애썼다. 셜록의 형이기에 그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면서 머릿속 자욱하게 내려앉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밀어내려 애써보았다. 희뿌연 연무처럼, 생각들이 속삭였다. 이건 진짜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새벽 네시에 바이올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게 될거야’라고, 이 모든 게 나쁜 꿈이고, 이제껏 꾸었던 꿈 중 가장 지독한 꿈일 뿐이라고; 끔찍한 일인 건 확실하지만, 진짜일 리는 없다고.

얼마 후, 포기한 마이크로프트는 연민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그의 동생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의 가족이 영영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는건데.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존에게 미소지어보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는 보고서들을 읽어봤다고 했다. 존이 말을 했었는지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진술서를 보고, 총을 쐈던 바로 그 스나이퍼도 심문해보았다고 했다. 그는 모리어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았다. 그리고 존이 뭘 하려 했었는지도, 그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너무도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려 했다는 것조차도. 마이크로프트는 알았다. 그는 다 알고 있었다.
 
엿새가 지나 일곱번째 밤이 찾아왔다. 하루만 더 지나면, 존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거다. 집에 가서는, 아마도 설록은 사라져버린 거라고, 침대에 누워 있는 건 그저 육체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려 애써야 할 거다. 더이상은 셜록이 아니라고. 다시는, 셜록이 아닐 거라고.

이레, 그는 최선을 다했었다. 이레 동안 바라고,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신에게 기도했다. 스스로 신의 존재를 믿는지조차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기도했다.

이레가 지난 후, 10%의 회복 가능성은 3%로 떨어졌다. 10% 정도면 꽤나 좋았다. 10%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으니까.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10%라면 희망을 가질 수도, 셜록이 눈을 뜰 거라 믿을 수도 있을 거였다.

그가 눈을 뜨고, 거기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존을 바라볼 거라고. 심지어 셜록이 싫어하고 화를 낸다 해도, 그에게로 방울방울 흘러나오는 존의 감정과 느낌들을, 셜록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셜록이라면, 눈을 뜨자마자 존의 손을 뿌리치며 그 거만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볼 거다. 이제 곧, 그는 눈을 뜰 거다. 눈을 뜨고는 존을 바라봐줄 거다. 그가 기다리니까. 그의 세계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둠. 고통. 혼란. 그는 공허한 가운데 길을 잃고, 혼자 떨어져나온 채 표류하고 있었다. 끊어진 기억들, 그랬던가? 기억인가, 아니면 환상?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들. 소음, 빛, 그를 감싸안은 팔의 느낌들. 공허함이 차올라와 그를 다시 삼켜버린다. 암흑이다.

존재감. 목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 그저 소리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익숙하다. 따뜻한, 안심할 수 있는 소리, 집과도 같은 울림. 희미해져가는.

손길. 무언가 그를 어루만지고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보다 따뜻한 손이다. 달라. 뭐지? 이 손길은 누굴까? 손을 뻗으면…





존은,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상상이라도 했던 건가? 그의 기도가 기적을 일으킨 걸까, 아니면 그저 그의 갈망이 만들어낸 환영인 걸까?

아니, 그는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셜록의 손이 꿈틀거렸었다. 그는 기다렸다. 자신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희망이라는 건 위험하기 그지없는 감정이니까.

몇 시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더니, 셜록의 손가락에 확실히 힘이 들어갔다. 존은 반대편 손을 흘끔 바라보았다 - 그쪽 역시 구부러지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비상벨 버튼을 눌렀다. 이거면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마이크로프트도 동생이 깨어날 수도 있음을 알게 될 거다. 위험한 희망을 억누르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2단계로 진행된다고 해서 8단계까지 나아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데다[각주:5] 셜록이 금방이라도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그렇게 몇 달, 혹은 몇 년이라도 그대로 그의 머릿속에 갇힌 채로 남아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걸 스스로 되새겼다.

오후쯤 되자 셜록의 반응은 훨씬 더 활발해졌다. 침대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붕대를 잡아당기거나 건드리기라도 하면 뿌리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산소호흡기를 벗고도 스스로 숨을 쉬게 되었고, 두서 없고 알아듣긴 어렵지만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눈도 뜨긴 했지만, 누구도 응시하지는 않은 채 초점 없는 시선으로 이리저리 훑기만 했다.

“혼돈 및 불안 상태입니다.” 전문의가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했다. “란초 인지 기능 척도 4단계군요. 훌륭합니다.” 남자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존은 아주 조금이나마 가슴 속 희망이 싹틀 수 있도록 여유를 주기로 했다. 자신은 없지만 조심스럽게 낙관해도 되지 않을까. 실망할 수도 있다는 건 여전히 각오하고 있지만, 그 느낌은 점점 강해져만 갔다.

“3단계가 난관입니다.” 전문의가 말을 이었다. “그가 이만큼 잘 해낸 걸 보면,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프트가 무언가 나직하게 말했고, 존은 이어 그 의사가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텔레비전에서나 있는 일이겠죠. 혼수상태에서 곧바로는 회복 못해요; 뇌라는 건 전등 스위치가 아니잖습니까. 스스로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금 나직한 말소리가 이어졌다; 들을 생각도 않은 채, 존은 가장 소중한 친구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눈에 새겨넣고 있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아직 그를 알아보지도, 인식하지도 못하지만,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그를.

그날 밤, 존은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침대에서 잠들었다. 물론, 침대라고 해봐야 병원 방문객용 객실 침대 중 하나였고, 그는 사실상 건물을 떠나지 않긴 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마이크로프트가 동생 옆에 앉아 있을 거였다. 존은 생각없이 셜록의 손을 잡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터라, 그러지 않을 거라고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셜록의 불안함을 더하고 싶진 않았다; 뇌손상 환자들은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 게 일반적이고, 특히 초반에는 신체적인 접촉 자체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들에게로 돌아오고 있는 이 사람이, 그들이 그전까지 알아왔던 셜록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판단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는 분명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었다 - 셜록이니 당연하잖아, 그라면 서두르고도 남겠지. 이번에는 존의 얼굴에도 거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는 밤샘 간호로 녹초가 된 채 푹 잠들었다. 

이번만큼은 폭발이나 총소리 꿈이 아닌, 사람을 압도하며 숨겨둔 비밀까지도 모두 알아차리는 그 꿰뚫어보는 시선, 셜록의 눈빛을 꿈꾸면서 - 하지만 그 시선 조심해야겠는걸,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직전에 존은 생각했다; 아침에는 다시금 감정을 추스려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셜록이 볼 테니까… 셜록이라면 알아차릴 테니까… 존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셜록은 스스로가 누군지를 자각한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기계의 삑- 소리와 그의 옆 의자에서 누군가 다리를 꼬아 앉으면서 내는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팔에 꽂힌 바늘도 느낄 수 있었고, 머리는 아파왔다. 병원이겠군, 그럼. 그는 눈을 떴다; 밤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목소리다. 마이크로프트. 하지만 헛소리를 해대는 걸 보니 - 바뀐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양이군. 셜록은 내심 미소지었다.

문 소리, 이어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불을 켤 생각이 없는 건가?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익숙한 발걸음, 집과도 같은 울림. “존?”

존의 목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지만, 하는 말은 이상하게 들렸다. 셜록은 고개를 돌렸다.

존은 어두운 데서 돌아다닐 리가 없는데, 설마? 머리에 붕대라도 감겨 있는 건가? 손을 뻗어 확인해보았다. 붕대가 있긴 했지만, 얼굴은 가려져 있지 않았다.

셜록이 한 손을 내밀자, 익숙한 손이 빠르게 감싸왔다.

“존, 왜 네가 안 보이지?”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1/20): Aftermath
  • 저자 주석: 이 이야기는 ‘잔혹한 게임’ 직후로 설정되어 있으며, 제 이전 이야기 [인적 드문 길]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 역자 주석: 온통 어두운 셜록의 세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라, 까만 날(4/14)에 맞추어 시작하기로 했다.
      나같은 초짜에게는 쉽지 않은 글인지라, 여유롭게 진행해 볼 생각이다. 
      분량이 워낙 많아 조금은 긴 여정이 되겠지만, 이제 시작. : ]  


  •      [ 목록 ]   2. 다시, 집으로 | Home Again ▶ 


     
    1. ‘Round and round the garden, like teddy bear.’ - 더빙판의 번역을 따랐다. [본문으로]
    2. ‘Mori-bloody-arty’ - 그 분노를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본문으로]
    3. ‘Sometimes, I don't talk for days on end, Would that bother you?’ - 처음 만난 날, 셜록이 그랬었다. [본문으로]
    4. ‘No.’ - bother 자체가 부정의문이라 이해하기 쉽게 반대로. [본문으로]
    5. ‘The Rancho Levels of Cognitive Functioning’에 근거. 뇌손상 환자의 회복 상태를 인지 기능 수준에 따라 1~10단계까지 구분한 것으로, 2단계면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이며, 7~8단계면 사회생활 복귀 가능한 수준임. 원문은 다음 URL 참조. http://www.rancho.org/research/cognitive_levels.pdf 내가 이 나이에 픽 번역하려고 외국 재활의학병원 홈페이지까지 뒤지게 되다니…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