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각자의 이유  | Motivations  



평소보다 따뜻하네, 잠에 취해 느릿느릿 돌아가는 머리로 존은 어렴풋이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셜록의 방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지 않는지 귀를 기울였지만, 조용하기만 했다.

잠시 후, 그는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이유를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그는 방 안쪽을 향해 소파에 왼쪽으로 누워있었다; 지난 2주 넘게 유지해온 평소 잠자는 자세 그대로였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목 아래를 휘감고 들어와 가슴으로 드리워진 팔은 물론 - 허리께에 올려진 손은 말할 것도 없다 - 그의 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닿아 있는 몸이라든가, 그의 다리에 착 감겨있는 길다란 다리 같은 거라 하겠다. 실상, 명백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태였다.

그는, 셜록 홈즈에게 포옥 감싸안겨 있는 거였다.[각주:1]

정말이지, 이건 범국가적인 ‘존 왓슨 고문’ 주간인 게 분명하다. 게다가 그에게 경고해준 사람도 하나 없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건지 알아내려 애쓰며, 지난 저녁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잘 보고 있던 토크쇼는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에 대해 셜록이 점점 더 이상한 것들을 따져묻는 바람에 오히려 관찰 수업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존은, 저녁이나마 마음 편히 먹기 위해 진저리를 치며 채널을 돌려야 했었다.

결국 그들은 퀴즈쇼로 합의를 봤었다. 존이 풀어보려 애쓰는 내내, 셜록은 그저 그 문제들 모두를 - 보아하니, 그가 답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 ‘명백하다’거나 ‘관계없다’고 잘라 말해버리긴 했지만.

존은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던 것까지도 기억이 났다. 그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 걸 두 번째로 놓치자, 셜록은 그에게 가서 자라고 했었다. 그때만큼은 소파에 있는데도 뭐라 하지도 않더니, TV를 좀더 켜놔도 괜찮은지만 확인했더랬다. 당연히 셜록은 혼자서도 자러 가는 것쯤은 할 수 있지 않은가, 평소에 그랬듯이?

그리고 나서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명백하게도, 어느 시점에선가 셜록이 존의 뒤로 끼어들어와서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그는 이른 아침 햇빛에 간신히 보이는, 자신의 가슴에 드리워진 팔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가운 차림인 걸 보니, 셜록은 자러 갈 준비를 하긴 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저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으려던 건 아닌 셈이다.

일어나려다 말고, 존은 문득 멈춰 생각해보았다. 그의 목 뒤에 와닿는 조용한 숨소리와, 그를 감은 팔이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걸 보니 셜록은 아직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마음놓고 몇 분 정도 이 상황을 즐기는게 그렇게 나쁜 걸까, 존은 궁금해졌다. 이젠 셜록도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딱히 떳떳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존은, 셜록과 같이 자는 버릇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고 싶고, 당장 유용하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자신만 곤란해지게 될 뿐이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 번, 그저 몇 분만 셜록의 품 안에 머물러, 매일 아침 이렇게 깨어난다고 상상해보는 것 정도는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허락해줘도 되지 않을까? 

현명하지 않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게 합리적인 전개일 거다 - 그의 머릿속 목소리가 속삭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일이다. 그냥 일어나서,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이런 일같은 건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던 척 하는거다; 유혹을 견뎌내고 평소대로 행동하는 거다. 이 모든 걸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거다… 지금 당장 소파에서 일어나야… 존은,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고 느껴지는 것에 집중했다. 그의 어깨와 목 사이에 꼭 들어맞는, 그를 둘러안은 가늘지만 힘있는 팔. 소유욕 묻어나는 행동이라 해도 믿을 만큼 가슴에 고즈넉히 얹혀지는 손의 무게감. 붙들고 있진 않지만, 허리께에 그저 올려진 다른쪽 손까지 - 그 긴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봐왔기에 그 하나하나를 느낄 수도, 선명하게 그려낼 수도 있었다. 이젠 그 손가락이, 맨살에서 고작 몇 겹의 얇은 천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채로 그를 만지고 있는 거였다. 이 남자에게 닿기를 그토록 애타게 바라왔던, 바로 그대로 말이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셜록의 몸에서 전해오는 놀라운 온기가 느껴졌다. 그의 목 뒤를 스치는 셜록의 부드러운 숨결. 존이 가볍게 전율하자, 안고 있는 셜록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에 얹은 손으로는 꼭 붙잡고 품 안으로 끌어안으며, 다른 한 손을 올려 허리를 감싸며 잠옷으로 입는 티셔츠를 한 움큼 그러쥔다.

존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동안 원해왔던, 꿈꿔왔던 그 모든 게 그를 감싸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셜록은 여느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까. 셜록이라면 관계나 연애, 개인적인 상호작용 같은 질척한 문제에는 빠지지 않을 거다. 그런 건 모두 그에게는 스쳐지나갈 일들일 뿐. 그라면 더더욱 그럴 거였다.

이건, 좋지 않은 생각이었던 거다.

언젠가 셜록이 스스로를 더 잘 추스릴 수 있게 되면 정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자기 보호라는 개념이 있기라도 했다면 이미 여러 달 전에 떠났었을 거다. 이 끌리는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얼마나 부질없는 마음인지를 깨닫자마자 그랬을 거였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초한 고통임을 알아차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조차도 그는 알고 있었다. 떠날 수 없다는 걸, 이해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 이 남자와 자신은 이어져 있다는 걸. 그들 사이에는 일련의 유대감이 있었다. 다른 모든 사람은 거부하면서도 존의 도움만은 받아들이는 걸 보면, 셜록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존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힘을 내어 소파에서 일어나려 했다.

곧바로 불평어린 끄응, 소리가 들려오더니 둘러안은 팔이 한층 다붙어 그를 꽉 감싸안고 만다.

“존,” 잠에 취해 허스키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존은 신경 끝자락까지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금 빠져나오려 해봤지만, 감겨 있는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 좀 해봐, 존.” 셜록이 다그쳤다.

“뭐하는 거야?”

셜록은 그의 말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뭐, 자고 있었지. 네가 꿈지럭거리기 전까지는 말야.” 그가 대답하자 더운 숨결이 존의 목 뒤를 간질였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태다.

“그래, 그런데 왜 여기서 자고 있냐구?” 존이 항의했다. “네 목적은 소파에서 날 끌어내는 거지, 네가 끼어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땐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 않던데 뭐.” 아리송한 말을 던지는 셜록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존은 따지듯 물으며 고개를 돌리려 해봤지만, 당장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셜록이 지금 뭘 하려는 걸까? 어젯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소파에 누운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네가 나랑 있어줬으면 좋겠어, 존.” 그의 질문은 무시한 채 셜록은 대답했다. “나한테 새 의사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신물이 난다니까; 다른 사람들이 날 이리저리 찔러보고 들쑤셔대는 건 싫어.”[각주:2] 

존은 셜록을 찔러본다는 생각에[각주:3] 눈빛이 약간 흐려지긴 했지만, 그가 하려는 말의 의미에만 집중하려 애써보았다.

“네가 내 의사가 되어줬으면 해.” 셜록은 재차 말했다. “그리고 난, 네가 나랑 같이 잤으면 좋겠어. 아니면,-” 그리고는 존의 귓가로 입을 내리며, 그가 대꾸하려는 걸 가로막는다. “아니면, 내가 올라가서 너랑 같이 자도 되겠지. 난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존은 좌절감에 끙, 소리를 내고는 어깨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 그의 정신을 쏙 빼놓는 - 셜록의 입가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시금 돌아누우려고도 해봤지만, 셜록은 더 꼭 끌어안을 뿐이었다 - 어쩌면 셜록은 둘 다 눈으로 보이는 실마리에 의지하지 않아야 이 대화가 더 잘 될 거라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셜록,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그건 안 되는 거라니까.” 존은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넌 이런 사람을 의사로 둬선 안돼. 그러니까…”

조금은 민망했지만, 존에겐 이 사태를 헤쳐나갈 다른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래. 정말 솔직히 말해서, 네게 욕정을 느끼는 사람 말야.” 그는 이를 악물며 끝맺었다. “그냥 명백하게 잘못된 거라구!”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지적했다. “내가 정상인 것처럼 취급하는군그래.” 

“넌 정상이야, 셜록.” 존이 대답했다. “계속 말하고 있잖아. 지금 그저 앞이 안 보인다는 게, 네가 정상이 아니-”

“아냐, 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셜록이 말했다. “내 현재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냐. 네가,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대응한다는 듯이 군다는 거지.” 그는 존의 팔을 쓸어내리더니, 다친 손에 이르러서는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매만진다.

“날 돌봐줄 때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왜 나한테 문제가 되는거야?” 그가 묻는다. “치료할 때 차이라도 생기나?”

존은 할 말을 잃었다. 셜록의 저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그가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느낌 때문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는 한마디 한마디에 그의 가슴 울림이 고스란히 존의 등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사건 현장에서 ‘희열을 느낀다’고[각주:4] 샐리가 말해준 건 알고 있어.” 셜록은 말을 이었다. 그의 말투에서 작은따옴표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말, 내가 조사해선 안된다는 뜻인가? 즐거워하지 않는 탐정이 하면 피해자들이 더 나은 대접이라도 받는다는 걸까?”

존은 잠시 고개를 돌리려 해 봤지만 금새 포기했다 - 셜록의 논리는 보통의, 인간들의 논리와는 다른 게 분명한데다 그걸 풀어보려 애쓸 이유도 없으니까.

“그건 옳지 않은거야.” 그는 꿋꿋이 되풀이했다. “특히, 지금 너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그래.” 존의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고집스러운 목소리였다.

“나같은 상황이 뭐가 어때서?” 셜록 역시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넌 내가 뭘 하는지를 못 보잖아.” 존은 설명했다. “미안해, 셜록.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네가 피해를 입기 쉬워지는걸. 내가 널 이용할 수도 있다구.”

셜록은 흥, 코웃음치더니 존의 손을 놓고 두 팔로 그를 다시금 감쌌다. 누가 봐도 이건 틀림없는 포옹이다. “네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 안해. 그리고, 만약 그런다 해도 난 별로 신경 안 써.” 그가 대답했다.

“신경 안 쓴단 말이지. 만약 내가…” 존은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셜록을 볼 수 없는 게 차라리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돌아보려던 걸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면 조금은 덜 당황스러울 테니까. 그때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믿기는 어려웠지만, 존은 알아야만 했다…

“셜록, 어제는 왜 수건만 걸치고 거실로 들어왔던 거야?” 존은 물었다.

그는 보지 않고도 어깨를 으쓱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가 바라던 걸 가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셜록이 대답했다. 귓가 가까이에서 속삭인 덕분에, 존은 그 말들이 살갗에 와닿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물론 심지어 머릿속에서도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게 네가 바라는 거 아냐? 우리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거?” 셜록이 묻는다. 마치 신문 스포츠면이나 토스트를 한 조각 더 권하는 것처럼. 

존은 자신의 입이 열렸다 닫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소용 없는 거였다; 이 사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셜록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존이 긴장을 늦추자 셜록도 안은 팔에 힘을 덜었다. 그 덕에 조금 꿈지럭거릴 수 있게 되어, 마주볼 수 있도록 돌아누웠다. 하지만 셜록은 여전히 눈을 감은 그대로였다.

네가 바라는 건 어쩌고?” 셜록의 가슴을 손으로 눌러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존은 물었다. 그래야 그의 쿵쾅거리는 심장이 정신 나간 희망을 핏줄까지 흘려내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셜록의 태도만 보고 그가 흥미조차 없을 거라고 너무 지레짐작부터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셜록은 다시금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벌써 말해줬잖아.” 그리고는 살짝 찌푸리며 덧붙인다. “그것도 여러 번.”

“육체적인 관계에는 전혀 관심없긴 했지만, 상대가 너라면 그렇게까지 기분 나쁠 것 같진 않아.” 존은, 셜록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유대감이 있다는 거 알아.” 셜록은 말을 이었다. 어스레한 빛 아래,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넌 남들과 달라. 몇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줬지. 그리고 날 위해서라면 수없이 위험도 무릅썼었고. 그런 네가 바라는 게 육체적인 관계라면, 나도 싫지 않아.”

존은 품었던 희망이 사라져버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고, 몸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는 셜록에게서 몸을 떼어냈고, 이번에는 셜록도 그를 놓아주었다. 존은 소파에서 빠져나와, 그 옆에 무릎을 세워 팔꿈치를 괴고 앉았다.

“너 그런 식으로 내 관심을 잡아두려 들면 안돼. 짖지 말라고 개한테 뼈다귀 던져주는 것처럼, 네 몸을 맡기려 들 수는 없는거라구. 너도 내 연민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나도 그렇거든.”

“연민 같은 거 아냐, 존.” 셜록도 불만스러운 얼굴로 몸을 세워 앉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하는 데 꼭 다 똑같은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 거야?” 그는 강조라도 하듯 팔을 휘저어 보이며 항의했다. “넌 나랑 자고 싶은거고, 난 너랑 일어나고 싶은 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구!”

침묵이 흘렀다. 셜록은 자신이 뱉은 말을 후회라도 하듯 입을 텁, 다물었지만 존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존의 추리력은 결코 셜록만큼은 아닐 테지만, 저 문장에서 뭔가 잘못된 점을 알아차릴 만큼은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넌 자는 게 문제가 아니란 거네. 나한테 소파에서 자면 허리아플 거라던 그 모든 이야기랑은 다르게 말이지.” 그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문제는, 일어나는 거였군.”

셜록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존은 그걸 시인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자, 그럼 네가 혼자 일어나는데 싫은 게 뭘까?” 그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진짜로 대답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게 다행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셜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셜록, 눈 좀 떠볼래?”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셜록의 오른손이 가볍게 움찔거리는 걸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존 왓슨보다 더 셜록 홈즈를 세심하게 살펴보진 못할 테니까.

그는 손을 뻗어 셜록의 손등에 가만히 얹었다. 잠시 후 셜록은 눈을 떴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침마다 시력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존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매일 아침마다,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 거야.” 그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희망이었다. 믿을 수도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희망이었던 거다. 혼수상태의 셜록이 처음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자, 셜록에게는 낯설기만 한 감정 말이다.

존은 의사로서 아기를 가지려 하는 여성들을 맡아봤고, 그들이 매달 어떤 걸 겪어내는지 지켜봐 왔었다. 모든 느낌을 분석하고, 메스꺼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굳게 믿으면서 이번 달… 이번 달에는 다를 거라고, 이번 달이야말로 성공할 거라고 믿고 싶어하는 모습을.

셜록은 그 모든 걸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겪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미안해, 셜록.” 그는 말했다. “알았어야 했는데.”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지만 셜록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이번에도 그의 세심한 시선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또 다른 게 있어?”

대답은 없었다.

“다른 게 있는 거군, 그렇지?” 그는 다그쳐 물었다. “뭔데?”

셜록은 고개를 저었다. 하루 아침에 너무 많은 약점을 드러내보였다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사냥개만큼이나 집요한 존은[각주:5] 포기할 생각따윈 없었다.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셜록에게 전에는 없었는데 지금 생긴 문제는 뭘까? 시력 뿐인 것 같은데. 가끔 실명이라는 말을 - 걱정한다는 말보다도 - 거슬려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아침에 겪는 것보다는 별 문제도 아닌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되돌아가거나 생겨날까봐 두려워하는 게, 특히 아침에 더 큰 영향을 미칠 만한 문제가 있는건가? 아니면 단순히 일어나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

“셜록, 실어증이 다시 생길까 걱정하진 않아도 돼.” 망설이며 말을 꺼내보았다.

“그정도는 나도 알아.” 셜록이 쏘아붙인다.

“그럼, 오늘 너 일어났을 때, 왜 나보고 말 좀 해보라고 한 거지?” 존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말을 걸기 전이면 항상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런거야?”

그 말에, 셜록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가버리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존이 여전히 그의 손등을 잡은 채 의자에 붙들어두고 있었는데다, 당장은 놓아줄 생각도 없었다. 셜록은 내심 갈등하더니, 이내 피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다시 앉아 고개를 젖혀 소파 쿠션에 기대었다.

“처음에는 마이크로프트가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었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말야.”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형의 목소리라는 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하는 말은 그냥 소음들이 뒤섞인 것 같았지. 다른 언어도 아니라, 그저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짧게 숨을 내뱉는다. “심지어 나, 웃기다고도 생각했었어. 형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뭐라 한 적도 많았으니까.”

셜록은 존이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닿게 마주댔다. “하지만 그때 네가 들어왔는데, 똑같은 거야. 네 발소리, 네 목소리, 네 감촉 모두 그대로인데,” 그리고는 존의 손을 꼭, 움켜잡는다. “네가 하는 말들은 다 이상했지. 그제서야 알았어, 잘못된게 나였다는 걸.”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한쪽 다리를 올려 옆으로 앉았다. 다른 손으로 셜록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자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모든 게 어둡기만 하고, 모든 게 앞뒤가 맞지 않았어. 난 무슨 일인지도 알 수 없었지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도 말야.” 셜록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자, 존의 손이 그의 목 뒤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난…” 그는 잠시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건…” 힘겨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좋지 않았어?” 눈치껏 제안해보는 존이다.

알아차렸는지, 셜록이 짧게 웃었다. “좋지 않았지, 전혀.”

존이 옆으로 끌어당겨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둘은 오른손을 마주잡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접어앉은 존의 가슴께에 셜록이 머리를 기댄 채로.

마침내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마이크로프트가 가져다준 말하는 시계를 진작 열어봤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 쓸 수 있었을 거 아냐.”

그 시계나 ‘맹인용 물건’류에 대한 - 아니면, 실은 그의 형이라든가 -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그랬듯, 셜록은 툴툴거리기만 했다.

존은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머리 위에 키스해 버리고는, “이 고집불통인 남자야.” 말했다. “이리 와, 준비해야 하니까.” 그는 일어나기 시작했다.

셜록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존?” 그렇게 묻더니, 더는 말이 없다.

존은 한숨을 쉬며 다시 앉아서는, “너랑 자겠다는 건 아냐, 셜록.” 경고하듯 말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생각은 해볼게.”

셜록은 전연 감명받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존은 잡힌 손을 빼내어 셜록의 얼굴을 그에게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네 의사 노릇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 네게 의학적인 우려사항이 생기면, 그게 뭐든간에 나한테 바로 이야기해줘야 해. 알겠어?”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았다. “설령 논리적이지 않은 걱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한테 이야기해, 셜록. 안그러면 새 의사를 찾아주고 그걸로 끝이야. 알아들었어?”

“응, 존.” 셜록은 바라던 걸 얻어낸 사람마냥 미소지었다. 의기양양해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게 빤히 보였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입가에는 히죽거림이 묻어났다. 적어도 존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번에는 정말 일어섰다. “우리 옷 챙겨 입어야해.” 단호하게 말했다. “이따 마이크로프트가 새로운 소식 가져오기로 했거든.”

“기쁘기도 하지.” 중얼거리는 셜록이었다.





“전 이해가 안 됩니다만.” 몇 시간쯤 지난 후, 존이 말했다.

마이크로프트가 증거 봉투에 밀봉해서 가져다준 코트에서 풍겨나는 멘솔 담배 냄새가 온 플랫에 진동했다. 이제는 셋이 둘러서 있는 부엌 테이블까지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셜록은 존이 그 마지막 바늘땀 하나의 디테일까지 설명하게 하고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점검해보고 있었다.

한참 몰두하고 있는 셜록을 두고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모리어티는 셜록이 그의 체취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저 코트를 입은 겁니다.” 그는 설명했다. “지나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꽤나 철두철미한 놈이니까요.”

“아뇨, 그건 이해가 갑니다.” 존이 말했다. “너무 명백하잖아요.” 방 안에서 가장 우둔한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한 마디 덧붙여 보았다.

“제가 이해 안 되는 건 애초에 모리어티가 거기서 뭘 하려던 건가, 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디 있을지 어떻게 알고 저 코트까지 준비해온 거죠? 그리고 셜록이 싸구려 비누 냄새를 맡았다고 했는데, 그 기생오라비 같은 자식[각주:6]이라면 그런 걸 쓸 것 같지는 않단 말입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려 잠시 멈추었다. “또, 제가 셜록을 두고 갈 걸 어떻게 안 거죠?” 그때의 후회가 사라지기나 할까? 존은 의아해졌다. “도대체 왜 그렇게 애를 쓴 걸까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목적이 뭐죠?”

그때까지 셜록은 코트에 코를 파묻다시피하며 안주머니 냄새를 맡으려 드는 것 같았고, 결국 보다 못한 마이크로프트가 다시 끼어들었다.

“당신의 ‘산책’ 습관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존. 내 동생은 평생 그렇게 많이 걸어본 일이 없으니 말이죠.” 마이크로프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어제 날씨는 대단히 좋았으니, 당신이 낮 시간 중에 외출할 거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부엌을 나서 셜록의 의자에 앉으며, 냄새가 나는 쪽으로 코를 향했다.

“짐작컨대 그라면 플랫을 감시할 사람을 붙여두었을 테고, 당신이 나서자마자 연락을 받았겠죠. 공원이 가까워서 당신은 거의 항상 그쪽으로 가곤 하겠습니다만, 그는 당연히 다른 경로에도 대비해두고 있었을 테구요.”

존은 이 형제 양쪽 모두를 지켜보기 편하도록 부엌과 거실 사이 문가로 다가섰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시도해 보았다. “그러니까, 그놈이 코트에 비누까지 챙긴 건 셜록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하고 싶었다는 거군요.” 그는 말하면서도 너무 질문처럼 들리지 않게 하려 애썼다. “정말 셜록이 그를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뿐일까요? 왜 이런 수고를 한 거죠?”

셜록이 일어섰다. “모리어티 측근 중 누군가가 이미 내 의료 기록을 봤을 거라 확신해.” 그가 말했다. “그가 다가와서 내 옆에 앉는데도, 정작 나는 그걸 깨닫지도 못할 걸 알길 바란 게 아닐까. 그에게는 내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그가 이겼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거지.”

흥미로운걸, 존은 생각했다. 어쩌면 걱정스럽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모리어티가 이긴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셜록의 말투에서는 전혀 패색이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의 목소리에서는 존이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불안하게 만드는 이상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래서 네가 옆에 있어야 했던거야, 존.” 셜록이 말을 이었다. “넌 그를 봤었잖아. 너라면 바로 알아보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줄 테니까. 내가 알지 못하면 그의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거든. 그는, 증인이 되어줄 네가 필요했던 거야.”

존이 남아있는 의문을 다시 제기하려던 찰나, 마이크로프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이 꽤 정확하게 지적해준 대로죠, 친애하는 존.”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모리어티는 당신이 그랬던 대로 둘이 떨어져 있을 상황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특히 당신이 내 동생 옆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점점 만족스러워 보이는 그의 미소에, 존은 꽤나 불편해졌다. 마이크로프트가 다시 말했다. “당신을 떨어뜨려 놓을 계획도 세워두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알아서 벌어졌으니 실행에 옮길 필요는 없었을 거구요.”

모두가 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셜록이 짧은 탄성을 내뱉더니 코트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왼쪽 소매를 잡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행복.” 

존과 마이크로프트는 서로 마주보았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존은 작은 만족감을 맛보았다.

“전에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았었어. 매우 희미하지만, 행복이 맞아.” 되풀이하며 두 사람을 휘휘 둘러보는 셜록은, 반응이 없는 데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그 여자 말야, 존.” 그가 상기시켜주었다. “내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 봤어? 그 여자, 크리니크의 ‘행복’[각주:7] 뿌리고 있었다구.” 그는 다시금 대답을 기다렸다. “땅콩도!”

존은 자신의 의자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었지만, 이내 셜록이 요구하듯 손을 내밀자 마지못해 방향을 바꿔 그 손을 잡았다. 셜록은 그를 잡아당기더니 어깨를 붙들었다.

“존,” 그가 말했다. “의사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뭐지?”

“어…” 존은 그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질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의학적인 응급 상황?”

“바로 그거야!” 셜록이 자신있게 외쳤다. “만약 우리가 길을 가다가 근처에 있던 여자가 땅콩이 걸렸다며 켁켁대기 시작하면, 넌 어떻게 했을까?” 그가 물었다. “지나가다 ‘여기 의사 있나요?’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면?”

“음, 아마도 난 도와주러 가지 않았을까.” 존이 대답했다.

“당연히 그랬겠지, 너라면 명백히 그랬을 거야 - 그럼 난 혼자 남겠지, 안그래?” 그는 이제 미소짓고 있었다. “그러면 모리어티는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 테고, 기적적으로 회생할 여자를 구해주고 돌아왔을 때 넌 내 옆에 서 있는 그를 보게 되었겠지. 자, 봐: 임무 완료인 거라구.”

“물론, 알아서 그렇게 되기도 했지.” 그가 덧붙였다. “신경쓸 필요도 없게끔 우리가 먼저 해줘버린 셈이야.”

여전히 당혹스럽기만 했기에 존은 다시 물었다. “그럼, 땅콩 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거야?” 

“그 여자라구, 존.” 셜록은 분한 듯한 목소리였다. “그 여자의 향수가 모리어티의 소매에 묻어 있잖아. 그 여자가 먼저 와서는, 내 벤치에 앉아서 땅콩을 먹고 있었다니까. 시끄러웠어. 짜증났다구. 내가 노려본 다음에서야 그 여자가 일어났고 - 그 다음에 모리어티가 왔지. 이해 가?”

존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네가 남자를 덜 신경쓰게 된 거군, 그 여자 때문에.” 그가 말했다. “그가 난데없이 네 벤치에 와서 앉았더라면 훨씬 더 관심을 가졌겠지만, 그 여자 때문에 넌 그저 공원에 사람이 많은 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야.”

“난 그를 무시할 셈이었어.” 셜록이 동의했다. 슬슬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나 쳐들어오는 데 진절머리가 났었거든. 그래서 그를 그냥 무시해버린 거지. 그가 나라면 그럴 거라 생각했던 그대로 말야.” 그는 내키지 않는 듯 미소지었다. “아, 그는 정말이지 탁월하군.”

그 말에 진심으로 기분이 상해버린 존은, 셜록에게서 떨어져 돌아서서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난 아직도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 그는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중얼거렸다. “땅콩 계획을 실행했다면 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을 테니 그를 잡을 수도 있었을 거야. 내가 그를 잡았을 거라구.”

마이크로프트는 다리를 바로 하고는 고쳐앉았다. “미안하지만, 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리어티는 압니까?”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그건 불보듯 뻔할 거라 생각했는데요!” 존이 대답했다. “머리에 총알 한 발 박아넣으면 대단히 나아질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마이크로프트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존. 미안해요.” 그는 목소리를 낮춰, 분명히 말했다. “내 말은, 당신이 내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리어티가 아느냐는 겁니다.”

셜록이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부엌으로 돌아간 셜록이 뒤에서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모두 다 알고 있었어?”라든가, “의식하지 못한 건 나 하나 뿐이었던 건가?”같은.

그는 수영장에서의 조우를 떠올려보았다. 모리어티가 그에게 말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좋았을 텐데. 왓슨 선생.’ 

“네,” 그는 느리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가 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프트는 두 손을 펴 보였다. “그럼, 딱 그에게 필요했던 그대로겠군요.” 그가 말했다. “예를 들어 그가 칼이나 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보죠 - 당신이 다가가기 전에 그가 셜록을 위협했더라면, 당신은 계속 갔을까요, 아니면 그가 도망가게 두었을까요?”

존은 신음을 흘려내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내 마이크로프트가 무릎을 가볍게 토닥여주는 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부엌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가 어떻게 빠져나갔을 거라 생각하니, 셜록?” 홈즈 형제 둘 다 예전에 이미 알아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존은 주의를 돌려주려는 마이크로프트의 시도에 고마워하며 작게 미소지어보였다.

셜록이 문가로 들어서더니, 존의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이크로프트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고, 존은 얼굴을 붉혔다. 조금은 짜증스럽기도 했다 - 이왕 당황스러워질 거라면, 적어도 충분히 당황스러울 만한 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애정이라기보다는 구속에 가까운 소파에서의 포옹 비스무리한 게 아닌 다른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셜록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어.” 셜록이 대답했다. “새거였어. 끽끽 소리가 났거든. 공원은 조깅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지. 그는 존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코트를 벗어버렸어. 안에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겠지. 주머니에 모자도 넣어두었을 테고 - 곧바로 다른 사람들처럼 보일 수 있었을 테니, 수많은 사람들에 에워싸인 채 공원 밖으로 조깅하듯 달려나가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겠지.”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야겠어.”

“실각시킬 정부들이라도 더 있는건가?” 셜록이 묻는다. 존이 느끼기엔 필요 이상으로 지독하게 빈정거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존 역시 따라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며 일부러 슬쩍 밀어내는 바람에, 셜록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둘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어제 존이 욕을 해댔던 것에 대해 나쁜 감정같은 건 품고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당연히 감시는 계속 둘 거다.” 그가 충고하듯 한 마디 한다. “이쯤 되면 위협도 줄어들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동의하는 바야.” 셜록이 말했다. 이 진척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존이 마이크로프트를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 셜록은 창가에 서 있었다.

“뭐가 그렇게 행복해?” 그는 물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낙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셜록은 돌아서서 그에게 씨익 미소지었다. 저 미소를 본지가 벌써 몇 주나 지났던가. 존은 어지러움마저 느껴졌다. 

“모리어티는 우리 사이의 유대감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셜록이 말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활용했지. 그리고 맞아, 이번 판은 그가 이겼어. 하지만 어제 - 내가 장님이라고 했을 때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존은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난 아냐’라고 했었지.” 그때 그의 대사 나머지 부분은 현재 이야기와는 관계 없다고 가정하고 대답했다.[각주:8]  

“그거야!” 셜록이 신이 난 듯 외쳤다. “모르겠어, 존? 안보여? 어제 이후로 그는 내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 거야 - 날 단념해버린 거지. 우리가 한 발 앞서고 있는 거라구!”

존은 멍해져버렸다. “난 아직 이해가 안 가는데.”

“존!” 이건, 예전의 셜록이었다. 그가 뭘 하려는 건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존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사실 그게 이유일지도 몰라, 그는 생각했다 - 그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이 모든 걸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주는 거였다.

셜록은 그의 어깨를 잡고는 꼭 움켜쥐었다. “지금 당장은 내 눈이 아무 소용 없겠지만, 나한테는 네가 있잖아. 안그래?”

존은 마른 침을 삼키고는, 확인해주었다. “너한테는 내가 있지.” 

셜록은 눈부시게 미소지었다. “네게 관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 원문: The Heart in the Whole (6/20): Motivations 
  • 역자 주석: 먹고 사는 일로 미칠듯이 바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편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어제 모팻느님께서 간지나게 던져주신 한마디 ‘It begins’와 문짝 떡밥에 불타오른 팬심 때문일거다. : ] 


  •  ◀ 5. 벤치의 남자 | The Man On The Bench  [ 목록 ]   7. 이렇게까지 해야 해? | Should It Be This Hard? ▶



    1. ‘He was being spooned by Sherlock Holmes.’ - spoon이라는 표현 완전 사랑하는데, 우리말로는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역자 취향대로 옮긴다. [본문으로]
    2. ‘I don't want anyone else poking and prodding me.’ - 아래 주석과 연결. [본문으로]
    3. ‘the thought of poking Sherlock’ - poke엔 (예상대로) 섹스의 의미도 있다. 자, 다같이~ 조니는 앙큼쟁이야…♪ [본문으로]
    4. ‘get off’ - 더빙판의 번역을 따른다. [본문으로]
    5. ‘John was like a terrier’ - 테리어는 영국 품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략 진돗개급 정도랄까. 작은 체구에 성격 좋고, 빠르고 끈질긴 편이라 작은 녀석은 애완용, 큰 녀석은 사냥용으로 기른다. ∴ 결론: 역시 멍멍존은 만국공통 진리! [본문으로]
    6. ‘the poncy git’ - 웨스트우드를 사랑하는 격조있는 분께서 어련하시겠어… [본문으로]
    7. ‘Clinique Happy’ - 문맥상 원래 단어의 의미와, 향수 이름을 중의적으로 사용했기에 부러 ‘행복’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8. 4편, 산책 나가기 전에 나눴던 대화 참조. 나머지 부분은 고백♡이었… *-_-*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