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Let You Kiss Me (So Sweet and So Soft) 
  • 저자: out_there + 역자: PasserbyNo3 
  • 등급: 전체연령가 (G)
  • 길이: 단편 (약 8,7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제목은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의 "Fidelity"에서 따왔습니다. 
  • 역자 주석: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116314 



첫 번째는, 존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의 몫으로 준비한 식빵 네 장을 - 셜록이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면, 한번쯤은 스스로 나가서 빵 정도는 사올 수도 있을텐데 - 작은 체다치즈 조각과 잘 익은 선홍색 토마토 한 개 옆에 꺼내두었다. 치즈는 얇게, 토마토는 두툼하게 썰어두고 그 위에 살살 소금을 뿌리고 있었을 때, 문이 열렸다.

존은 습관적으로 어깨 너머로 흘끗 쳐다봤지만, 셜록 뿐이었다. 그는 마지막 식빵 두 장을 맞물려 샌드위치를 완성했고, 절반으로 자른 다음에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셜록은 우편물 뭉치를 - 대부분은 카탈로그나 갖가지 정크메일들이지만, 존이 모른척하고픈 청구서도 가끔 끼어있는 - 밀어 치우면서, 탁자 위에 익숙한 흰색, 푸른색, 붉은색 비닐봉지를 올려놓았다.

“마트(Tesco) 갔다온거야?” 존은 물었다. 아무리 그가 훌륭하신 셜록 홈즈님과 몇 달간을 함께 살면서 런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상대해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셜록이 쇼핑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라즈베리 코디얼(cordial)[각주:1]이 필요했습니다. 희석한 코디얼 얼룩이 어떻게 남는지 보고 싶기도 했고, 흩뿌려지는 패턴을 분석하는데도 항상 유용하거든요. 당신에겐 빵이 필요했구요.” 셜록은 빵 한 덩이를 꺼내, 손을 내밀어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놈의 빵이 저 쇼핑백들 사이 어딘가 들어가 있는지, 아니면 희한하게도 접시 위 샌드위치의 일부가 되어 있는지조차 그가 모를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우유도.”

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받아들었다. “남아있었는걸.” 그는 아랫칸에 놓여있는 케익 상자를 무시하며 냉장고 윗칸에 그것을 넣었다. 나름의 타협점이었다. 냉장고 안에 신체부위를 넣는 걸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런 걸 제일 처음으로 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 방법대로라면 셜록이 무슨 실험을 하는지, 그는 알 필요가 없었다. (머리는 아니다. 머리는 세 조각이라도 내기 전엔 그 상자에 넣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존은, 그런 걸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우유 좀 주겠어?”

존은 그 빵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 어쩌면 특별히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온 날은 점심으로 샌드위치 두 쪽을 먹는다든가 – 그러나 셜록은 한 마디도 없이 무시해버렸다.

존이 냉장고 문을 닫으며 돌아섰을 때, 셜록은 바로 뒤에 있었다. 정확히 3인치 떨어진 거리에.

두려워했어야 마땅했다. 존이 화들짝 놀라거나 움찔한다거나, 기타등등 보통 사람들이 놀랐을 때 하는 행동을 취하는 게 당연했겠지만, 이건 셜록이 아닌가. 창백하고 날카로운 눈과 제멋대로인 머리, 부드럽게 접힌 칼라의 셜록, 셜록은 위협적이진 않으니까. 그는 주로 흥미로운 쪽이었다. 플랫 주변을 지루해하며 늘어져 있는지, 아니면 사건을 해결하는 중인지에 따라 거기에 좌절이나 매력까지 더해서. 

그 특유의 신중함과 군대에서 모두에게 주입하는 보고-재고-쏴버리는 조심스러움 사이에서, 존은 위험을 감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끔, 그는 소리지르고 싸우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알아서 피해버릴만큼 똑똑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셜록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터무니없이 - 위험하다 싶을 만큼 가까이 서 있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궁금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셜록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존은 그가 뭘 찾으려는 건지 의아했다. 허드슨 부인에게 두 손 들고 셜록의 책이 어수선하게 가득찬 선반을 청소했다는 걸 증명할 옷깃의 먼지? 헤드앤숄더로 바꾸어야 한다는 신호인 비듬 초기증상이라도? 아니, 어쩌면 더더욱 믿기지 않거나 어이없는 무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적이고 잘 모를거라 생각하는 디테일을 보여주는 아주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셜록은, 그에게 키스했다.

존이 처음 한 생각은, 너무나 이상하게도 이런 거였다: 머리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이상한데. 그가 자신보다 큰 누군가와 키스해 본 건 5학년 때 제니 하그레이브즈가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다리는 바닥까지 길게 뻗어 있었고, 무릎에 닿지 않는 스커트만 입었다. 그런 그녀와 키스한 덕분에, 그는 영광스럽게도 5주 내내 목이 결렸었다.

그때 이후로 그는 좀더 긴 치마를 입는 작은 아가씨들과 데이트해왔고, 입맞출 때 몸을 숙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는 숙이지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셜록이 몇 인치 정도 고개를 숙여 존에게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짝 벌어진 셜록의 입술은, 존의 뺨에 와닿는 셜록의 코끝과 부드러운 숨결처럼 따뜻했다. 벌어진 자켓 아래, 존의 셔츠에 맞닿아 있는 셜록의 서늘한 손과는 다르게.

셜록과 마찬가지로 존은 눈을 뜨고 있었고, 셜록이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의아해하고 있기도 했다. 분명 그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였다. 체온이나 호흡 속도와 관련된 터무니없는 실험이라거나, 새로운 소매치기 방법을 테스트하는 것일지도. 셜록은 별 특이한 이유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하긴 해도, 어찌되었든간에 거기엔 항상 논리와 호기심이 숨겨져 있으니까. 때때로, 그는 존에게 설명하기까지 그저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다.

셜록은 존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물러서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검붉은 빛깔의 코디얼을 챙겨 사라졌다. 아마도 그의 방으로 가는 걸테지.

존은 주머니 안에 지갑이 잘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지갑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무사한지 점검했다. 그 다음, 그는 샌드위치를 집어들고 소파로 건너가 텔레비전을 켰다.





두 번째 일어났을 때는, 존은 반쯤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악몽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너무나도 선명한 꿈이었던 터라, 그는 발견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숨을 죽이며 총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이런 꿈을 꾸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빈 손으로 잠에서 깨는 게 싫었고, 심지어는 간신히 다시 잠이 든다 해도 절대 편안한 밤을 보낼 수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8시고, 바깥도 환해서 잠도 거의 깬 상태였기에 존은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한 채로 난간을 붙들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여전히 눈을 감고 발을 질질 끌며 부엌으로 향하는 그에게, 셜록이 말했다. “차 한잔 할래요?”

당연히 대답은 좋다는 거겠지만, 셜록의 저 말은 그더러 타오라는 소리다. 존은 간신히 한쪽 눈을 뜨고는 셜록을 째려보았다.

“여기요.” 셜록은 찻잔과도 매우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를 가지고 존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자네가? 차를?” 그 말인즉슨, “자네, 셜록 홈즈가, 차를 타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다 마침내 이 유용한 재주를 나눠쓰기로 결심이라도 했다는 건가?”였지만, 잠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말하기엔 너무 긴 대사였다.

“허드슨 부인이 타줬어요.” 셜록은 존의 손에 따뜻한 잔을 쥐어주고는 고개를 숙여 존의 입술에 키스했다. 입을 열지 않은 채, 상대가 아직 이를 닦지 못했을 이른 아침에 해줄 만한, 그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좋은 아침.” 훌륭한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차 한잔으로 마음까지 편안해진 존을 두고, 셜록은 사라졌다.

차를 다 마시고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기도 전에, 존은 이 상황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푸른 꽃이 그려진 허드슨 부인의 빈 찻주전자 옆에 찻잔과 받침을 내려놓고는 셜록의 방으로 향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셜록은, 무슨 이유에선지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잠깐,” 셜록이 어디 가버리는게 아님을 알면서도 존은 말을 꺼냈다. “허드슨 부인이 차 타준거야?”

셜록은 체셔캣 고양이(Cheshire-Cat)마냥 히죽 웃어보였다. “내가, 우리가 책장 닦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며칠 전에 내가 했는걸.”

“압니다. 하지만 허드슨 부인은 눈치도 못 채던걸요. 왠지 모르겠지만, 일을 해버리는 것보다 하겠다고 약속하는게 늘 결과가 더 좋더라구요.”

존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네 결과를 얻으려고 내 노동력을 이용한 거 아냐.”

“설마.” 셜록은 벽을 밀면서, 미묘하지만 매끄러운 동작으로 손을 바꾸어 짚었다. “당신의 노동 약속을 이용한 거죠. 게다가 얻은 것도 나눠줬고.”

“차 한 주전자에서, 내 몫은 한 잔이고?”

“협상할 때 당신이 한 것에 상응하는 분량만큼 나눠준 건데요.”

존은 조용히 샤워하러 들어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응하는 분량’만큼 더운 물을 쓰겠다느니 어쩌느니 중얼거리면서.





세 번째는 버터 치킨을 먹은 다음이었다. 셜록은 인도 식당들의 식별 가능한 패턴과, 요리에 적합한 향신료의 정도를 알아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셜록은 각각의 식당들이 향신료를 사용하는 정도가 준비된 모든 요리들의 대략적인 온도를 반영할 거라 생각했다; 각기 다른 식당에서 버터 치킨을 먹은 지 3일째 되던 밤, 존은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묘하게도, 같은 음식을 아주 약간만 맛을 달리해서 내고 또 내던, 형편 없는 군대 짬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셜록은 매 끼니때마다 바라보고, 관찰하고, 마음 속으로 보고 냄새맡거나 들을 수 있는 모든 디테일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있었다. 존이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 어째서 버터 치킨인지를 물었지만, 셜록은 그저 눈을 굴리더니 대답했다. “당신 생각보다 세 배쯤 매운 빈달루가 딱히 즐거운 경험은 아니겠지만, 또 먹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 셜록은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관찰하고 추리하는 중이었다. 일하고 있는 거다. 분명 ‘일’이라 하기엔 꽤나 이상한 거긴 하지만.

존은 방해가 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셜록과 함께 산다는 건, 가끔 자신의 삶에서조차 불필요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때같으면 그야말로 셜록이 경찰이나 범죄자 모두에게 목이라도 졸리지 않게끔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란 걸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날 밤 끝자락엔, 셜록이 존에게 향신료 맛의 정도와, 대략적인 온도와, 담백한 수준은 물론, 쌀, 닭고기, 음료, 서비스에 따라 요리를 평가해보라고 할 게 뻔했다. 셜록은 카드까지 준비해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채워넣으라며 존에게 강요하기까지 했다. (존은 그들이 음식 평론가나 비판 일색인 여행객처럼 보이지나 않을지 궁금했다.)

“이것들 다 무슨 돈으로 사는거야?” 집으로 걸어가면서 존이 물었다. 셜록이 코트나 스카프 없이 수트만 입고 나올 만큼 밤 공기가적당히 포근했기에, 존은 반사적으로 택시를 잡으려 드는 셜록을 막아세웠다.

“카드죠.” 셜록은 도노반의 이름이 새겨진 밝은 오렌지색 카드를 휘릭 꺼내들며 말했다. “전날 밤에는 앤더슨거. 그저께는 레스트라드가 내준 셈이구요.”

“그사람들 경찰이라구. 절도를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존이 대꾸하긴 했지만, 진심은 담겨있지 않았다. 셜록이 저렇게나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을 때면, 도무지 뭐라 할 수가 없었으니까.

“가짜 카드로 바꿔치기하고, 진짜는 아침에 되돌려주거든요. 월간 고지서에서 요금 나간 걸 봤을 땐 아무것도 못 할 걸요.”

존은 머릿속으로 그들이 갔다온 세 식당을 떠올렸다. 지도에 표시해 보자니, 그 삼각형 한가운데에 베이커가 221B가 있게 될 거였다. “레스트라드는 30초만에 너란 걸 알아차릴걸.”

“아, 내가 했다는 건 그들도 알거에요.” 가로등 불빛에 셜록의 미소 가장자리가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모를걸요. 증명할 수도 없을 거에요.”

그는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일주일 내내 사건 하나 없었던 셜록에게는, 경관들을 골려먹는 게 나름의 차선책이었다는 걸 말이다. 존은 전에도 플랫메이트와 살아본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에나 바츠 때. 그리고 그는 지저분한 부엌이나 열린 채 김빠진 맥주병들, 아예 모르는 사람이 거실에서 반쯤 벗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거나 아침을 차리는 것들에도 나름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약에 취한 사람들의 역겨운 단내조차도 기억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더랬다. “그럼, 네 말대로 우리 플랫이 깨끗하다는 의미로 생각해도 되겠지?” [각주:2] 

“그럼요.” 아랫층 식당을 지나칠 때쯤 걸음을 늦추며, 셜록이 대답했다. 그는 문 밖에서 멈춰선 채 입을 열었다. “잠깐 걸으려구요. 그 사람들 웨이머스가(Weymouth Street)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난 보행자 통행량에 미치는 영향이라도 알아봐야겠습니다.”

“난 일찍 잘 생각이야.” 존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구.”

“그래요.” 셜록이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존에게 키스했다. 한 손은 존의 어깨에 올리고, 존의 문가에 선 채로. 그야말로 굿나잇 키스가 아닐 리 만무했다. 그들은 큰길가에 있었고 서로 조금은 떨어져 있었지만, 셜록의 눈은 감겨 있는데다 그의 입은 따뜻하고 촉촉했다. 셜록의 혀끝이 그의 입술에 와닿았다. 강요하거나 요구하려 드는 건 아니었지만, 생기있고 유혹적인데다, 분명히 섹스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무언가 있었다. 특히 좋았던 데이트 막바지에서나 할 법한 그런 키스였다.

뒷쪽 칸막이 자리에서의 둘만의 저녁식사였고, 셜록이 계산했다. 그리고 지금, 존은 문 앞에서 굿나잇 키스를 당하는 중이었다.

그때, 셜록이 물러섰다. “잘 자요.” 전처럼 으스대는 게 아닌 - 사뭇 비밀스럽지만 기쁜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보이더니, 셜록은 그대로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세번째로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어요, 존.”이나 “나랑 데이트할래요? 오늘밤 저녁 어때요?”가 다를 것 하나 없다는 듯이.

셜록이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즉석에서 규칙을 바꿔버릴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일부러 천천히 방으로 향하는 계단 하나 하나를 터벅터벅 딛고 올라가면서, 바로 그거야말로 이 모든 것 중 제일 거슬리는 부분이라고 존은 생각했다. 그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셜록이 규칙을 바꿔버린 거다. 데이트란 건 원래 재미있고 활기 넘치는 거고, 수작도 걸고, 진짜 모습보다도 좀더 잘난체하기도 해야 하는 거다. 존은 데이트 전문이었다. 보통 그가 데이트를 할 때는, 테이블에 조용히 앉은 채로 셜록이 숨겨진 향신료 테스터[각주:3]를 찾으려 애쓰는 동안 핸드폰으로 테트리스를 하고 있진 않는단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존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셜록은 무엇 하나 보통처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다음날 아침, 존은 궁금해졌다. 그는 그냥 셜록에게 불쑥 물어볼까도 생각했다. 어젯밤, 데이트였느냐고. 아니면 뭔가… 좀더 시시한 거? 더 셜록다운 거? 덜 로맨틱한 거? 물어볼 방법은 커녕, 질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셜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하지만 의자 위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담요가, 냉장고에는 두번째 케익 상자가(존은 엿보지 않았다. 모르는 게 나으니까.) 들어 있는 걸 보면, 어젯밤 어느 때쯤엔가 셜록이 집에 오긴 왔던가보다.

그는 메시지를 남겨뒀다. 부엌 벽지에 연필로 가로질러 써둔 둥글둥글한 글씨다:
개 때문에 누구 만나러 감. SH (Gone to see a man about a dog. SH)

존은 그걸 읽고는 웃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때 그가 혼자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 냉장고 안에 있는 무언가를 셈에 넣지 않는다면 - 가볍게 포기했다.

정말 우스운 건, 아마 셜록이 이 메시지에 대해 완전 심각했을 거란 사실이다. 그는 아마도 이걸 썼을 때 개과에 관련된 누군가를 의미했던 거겠지. 그는 분명 일상적인 대화에서의 저 문장의 의미같은 건 생각조차 안 했을 거다. [각주:4] 

태양계와도 비슷한 것일 테다. 셜록은 북극의 자기장과 항로에 주는 영향은 이해하지만, 그게 지구가 끊임없이 자전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셜록은… 모른다. 그의 상식과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셜록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노숙자 여자아이를 보면 5파운드 지폐를 꺼내주곤 한다. 공감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 스스로의 안락한 생활으로 인한 교양 차원에서의 책임감에서 우러나서거나, 아니면 타인에게 너그러운 것처럼 보이게 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셜록은, 지하에서 조사해줄 스파이 조직을 운영하려고 노숙자들에게 돈을 준다.

어젯밤 일은 데이트였을 수도 있다. 모든 전형적인 징후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셜록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 아님 마이크로프트라든가. 존은 마음 속으로 추가했다 - 좀더 쉽게 추측해냈을 거다. 하지만 이건, 그런게 아니니까…

존은 종이를 한 장 꺼내고는, 부엌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갖가지 무더기들 속에 묻혀있던 펜을 찾아냈다. 그는 앉아서 쓸 만큼의 공간을 치워내고는 가능한 동기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슬쩍 하기[각주:5]

2. 본드 영화같은 감시 회피 기술 시험하기.

3. 공개적인 반응 시험하기. 아마 얼마나 동요하게 되는지 시험하는 걸지도? 아니면 런던 특정 지역에서의 동성애 혐오 정도를 측정하는 거? (하지만 그러려면 셜록은 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해서 실행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지.)

4. 일종의 마이크로프트 놀려먹기? 유치하다, 하지만 셜록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어쩌면 미행당하고 있었을지도? 셜록이 거절한 정부 사건이라도 있나?

5. 허드슨 부인에게 소문거리 만들어주기. 아마 그녀의 찻주전자 안쪽 검푸른 얼룩에 신경쓰지 않게끔 만들 수 있을지도? (셜록이 어떻게 퍼런 얼룩을 만든거지?)


물음표로 끝나는 수많은 생각들 뿐이었다. 존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추측을 하기엔 너무 많았고, 무엇 하나도 셜록 스타일의 실험에 어울릴 만큼 비현실적인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셜록이라면, 뭐든 다 가능할 거다.

 셜록은 기대치를 설정하고 뒤집는 걸 좋아하니까, 결국 존은 추가해넣었다:


 6. 솔직한 연애감정에서 우러난 진짜 데이트.


너무나도 터무니없어 보여서 직직 그어버릴까도 생각했다. 아니면, 셜록이 맞는 답을 고르게끔 페이지를 펼쳐두거나.





병원에서, 그는 책상에서 앉은 채 점심을 먹으며 셔츠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다. 셜록은 불가능한 것과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줬었다. 그리고 정말로 이 여섯개 항목을 보면, 모두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실제로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셜록 홈즈에게만큼은 불가능하진 않다는 거다.

존이 바라는 건, 일곱 번째 항목을 찾아내는 거였다. 말이 되는 뭔가를 말이다.

그러다 실패하고는, 두 번째 항목으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셜록을 대입해보려니 보기보다 더 어려웠다. 주로 셜록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편이었다. 새라를 예로 들어보자. 친절하고, 합리적이고, 다정한 여자다. 셜록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동안 생애 최고로 무시무시한 밤을 겪고야 말았기에, 그녀가 셜록에게만큼은 유독 차가운 것도 당연하겠지. 그건 동시에, 존이 그녀에게 이에 대해 의견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허드슨 부인이야 항상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니, 도움이 안 된다. 레스트라드는 플랫만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라도 꺼냈다가는 양쪽 모두 엄청나게 어색해질 게 뻔했다. 레스트라드는 지금도 충분히 셜록을 잘 참아주고 있으니까; 존은 이 가엾은 남자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까지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휘날리는 코트자락과 엄청난 지적 능력 이상으로 셜록을 잘 알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마이크로프트다.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게다가, 존은 셜록이 처음에 묘사해주었던(당신이 만날 사람 중 가장 위험한 남자라던) 게 순수한 과장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난데없이 전화를 걸어 셜록의 연애사를 좀 아는지, 그의 동생이 섹스하려 드는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느냐고 묻진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록에서 가능성을 제외하는 것 정도는 나쁠 것 없지 않은가, 그렇지? 그가 셜록의 플랫메이트이자 친구, 살인-해결 동료라는 미명 하에 더 어리석은 일들도 저질러왔다는 건 분명한데 말이다. 폭발물을 둘려맨 상태로 뛰어난 사격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적도 있고, 숙련된 국제 암살범들에게 습격당한 적도 있었다. 이거라 해서 별다를 것 없을 테다.

존은 핸드폰의 연락처에서 멈춘 후,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한 번 울리기가 무섭게 바로 연결되었다.

“아, 존.” 마이크로프트가 차가운 크림 같은(부드럽고 정말, 정말 차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사정상 셜록과는 조언을 해주거나 일을 제안하지도 않았고, 이야기해보지도 못했다는 말을 해줘야 할 것 같군요. 221B에서 당신 둘을 본 이후로 말입니다.”

늘 그랬듯, 마이크로프트는 주소에서 ‘B’를 강조했다. 존은 그가 홈즈가의 누군가가 문자로 구분된 건물에 산다는 사실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정부에서 ‘말단’ 일을 하면서도 하이드 파크(Hyde Park)가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집에 살 수 있는 걸 보면(셜록이 걸어다니기도 한다는 걸 믿을 수 있다면 말이다), 셜록의 수입이나 생활 방식은 가족에 대한 반항인 것도 같다.

존은 네 번째 항목에 줄을 그었다. 하지만 그가 전화한 이유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난 셜록을 압니다. 최근 셜록의 한바탕 연극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게, 내게 연락해서 - 그것도 병원에서, 점심시간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 듣고 싶던 직접적인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알 필요도 없죠.”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 중인데도, 어쨌든 끄덕였다. 마이크로프트는 말을 이었다.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만, 긴급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서요. 셜록에게 안부 전해 주시죠.” 그러더니 끊어버렸다.

존이 이 통화에서 한 거라고는 그저 전화를 건 것 뿐이었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에겐 이야기 상대로 뼈만 남은 해골 따위는 필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그런 용도로 쓰고 있으니까. 존은 그게 셜록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냥 홈즈가 사람들은 모조리 돈보다도 문제가 더 많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10분 남아 있길래 BBC 뉴스 웹사이트를 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그 긴급한 문제라는 건 아마도 이런 매체들에는 보도되지 않겠지, 그들은 전혀 알 리 없을 테니까. 어쨌든 확인은 해보기로 한다.





존은 아픈 동료 대신에 (새라가 너무도 다정하게 부탁한데다 피자 뇌물까지 먹였다) 네 시간이나 추가 근무를 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플랫은 어둑어둑하고 텅 비어 있었다. 셜록의 흔적은 아무데도 없었기에 – 부엌 카운터조차 존이 나갈 때 둔 그대로 깨끗한 채였다 – 존은 바로 윗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는 침실 문을 열고, (나중에) 열쇠가 주머니에 있다는 걸 기억해내길 바라며 웃옷을 벗었다. 끈도 풀지 않은 채 성의없이 잡아 빼듯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돌아서서 침대 머리맡 전등을 켰다. 바지를 벗은 다음 스웨터를 머리 위로 끌어올려 벗고는, 잘 때 입는 티셔츠를 집으려 돌아섰다.

그는 베개 아래, 부드러운 면 티셔츠 근처에 손을 넣은 채로 얼어붙었다. 침대 다른 쪽에는 – 그가 자는 쪽 말고. 아마 셜록은 알고 있었을 테니까 – 웅크려 누운 셜록이 있었다. 그는 파자마 바지와 회색 티셔츠 위에 진푸른빛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벽을 등진 채로 무릎은 갈비뼈 부근에 모아 접고, 팔은 70도 각도로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다. 셜록은 절대 그래선 안될 것 같았지만 어쨌든 자리부터 잡은 모양이다. 그는 이불 위에 누워 있었고, 희멀건 맨발은 거의 존의 미색 리넨 옷(그의 취향은 아니다; 해리가 선물한 거)과도 비슷할 정도였다. 그는 잠들어 있는 듯 했다, 존이 보기에는.

존은 비현실적인 것들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런던의 은밀한 부분들을 헤집고 다니며 살인청부업자들을 잡아들이는 건 비현실적이다. 너무 흔한 게 되어버린 ‘…그런 다음에 그들은 총을 쏘거나, 목을 조르거나, 죽을 때까지 질식시키거나 두들겨 패려 했다…’ 부분을 블로그에서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집에 돌아와 그의 침대에서 웅크려 잠든 플랫메이트를 발견하는 건 비현실적인 걸 훌쩍 넘어선 수준이라, 그런 존조차도 지금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티셔츠를 끄집어냈다.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로 들어갔다. 불을 막 끄려던 순간, 셜록이 입을 열었다. “응웬 선생(Dr. Nguyen)이 결국 위염(the stomach flu)에 걸린 모양이군요.”

잠에 취해 갈리는 목소리였지만, 존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을 때 셜록의 눈은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존이 할 수 있을 말이라고는 뻔하다거나 어리석다는 것 뿐이었다.

셜록은 한쪽 팔꿈치로 몸을 괴어 일으키고는,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세 시간 전에 올 거였잖습니까.” 존이 네 시간씩이나 되는 추가근무를 하고 왔는데도 말이지. 예정된 일정보다 60분이나 더 지연된 거기도 했다. 어쩌면 날씨 패턴에다 지하철 보수까지 겹쳤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셜록이 존에게 심부름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는지도.

기나긴 하루였다. 이길 수도 없을 논쟁따위, 시작할 생각도 없었다.

오른쪽 머리가 살짝 눌린 채로 셜록은 일어나 앉았고, 존에게로 기대왔다. 셜록이 표범이 먹이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점점 다가오는 동안 존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살갗을 스치는 셜록의 따뜻한 숨결과, 입술에 와닿는 셜록의 입술을 느끼기 전까지는.

그때, 존은 생각했다: 이딴거 다 집어치우자.(Bollocks to this)

셜록이 하려 드는게 뭐든지간에 가만히 누워서 당하지만은 않을 거다. 알 수도 없는 이유로 키스를 당하는 거라면 - 설명해주기만을 얼마나 참을성 있게 기다렸는지는 상관도 하지 않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로 - 차라리 즐기는 편이 낫다.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겠지.

존은 셜록의 머리카락 아래 목덜미에 손을 올리고는 가까이 끌어당겼다. 고개를 기울이고 날선 이 사이를 핥으며, 존은 그를 꼭 붙들고 있었다. 셜록이 짧게 숨을 들이쉬는 걸 느꼈지만,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깊고, 축축하고, (좋은 쪽으로) 야하게 이어갔다. 땀과 서로의 몸, 살갗이 맞닿는, 헐떡임과 신음소리, 숨죽인 욕설이 섞여드는 그런 키스 말이다.

셜록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한 손으로는 존의 멀쩡한 어깨를 잡고, 가끔은 꼭 그러쥐면서.

존은, 숨을 쉬어야 할 만큼 어지러울 때가 다 되어서야 그를 놓아주었다.

셜록은 몸을 일으켜세우고는 존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그의 눈은 어둡게 빛났고, 입술은 붉고 번들거렸다. 셜록은 숨가쁘게 말을 꺼냈다. “이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결과가 나오겠는데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셜록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뇨, 끝내줄 겁니다.” 그는 다시금 몸을 숙여 존에게 키스했다… 존은 언제나 키스하는 걸 꽤나 좋아했다. 그는, 이게 좋았다. 셜록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감아넣는 것도, 존이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그를 계속 안고 있는 것도, 팔을 뻗어 가까이 맞대면 다시금 멎어버리는 셜록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그들이 숨차하며 떨어졌을 때쯤에는, 존은 한 손을 셜록의 목 뒤에 얹고 다른 손으로 셜록의 허리를 감고서 손끝으로는 허리 아래 따뜻한 살갗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지금, 그나마 존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때 그만둬야 했다.

“이게 무슨,” 존은 진심어린 느낌을 담아 말했다. “비역질이야, 셜록?”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핵심이죠.” [각주:6] 

잠시, 존은 자신이 외계인과 함께 침대에 - 침대라구, 머릿속에서 새되고 겁먹은 목소리가 꽥,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어했다, -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지구인들의 문화를 관찰해오면서 영어-홈즈어 사전(English-to-Holmesian dictionary)[각주:7] 같은 뭔가로 언어를 배워먹은 외계인 말이다.

“셜록,” 존은 다시 시도했다. 차분하게, 조심스럽게. 상황을 인식한 채로, 피해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려 애쓰면서. “나한테 키스한게 이번으로 네번째, 음, 다섯번째잖아. 왜냐구?”

셜록은, 찡그리진 않았지만 짜증난 듯한 표정이었다. 만약 그가 무의미한 설명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존은 당장이라도 셜록을 침대에서 걷어차 버릴 생각이었다. “섹스 준비 단계죠.”

“알았어.” 답변만 놓고 보면, 엄밀히 따지면 맞는 말이긴 하다. 셜록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보통은 근사한 섹스(shag)를 하겠답시고 온전한, 사실에만 기반한 진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셜록은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생각에 빠졌다. “나도 잘 몰라요. 옷을 다 입고 있더라도, 살과 살이 맞닿는 친밀함이 아닐까 싶은데. 성교로 연결되는 논리적인 단계잖습니까. 문화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감정적인 함의가 들어가 있는 거긴 하지만, 내 생각엔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데 좀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셜록은, 관계라는 게 마치 물리학과 결합된 공학의 또다른 업적이라도 된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저 한 가지 기여 요인에 지나지 않을 것 같네요.”

다시금, 존은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외계인이라니까. 그에겐 정말이지 그놈의 영어-홈즈어 사전 한 권이 절실했다. 
“키스가 섹스로 이어지게 되는 이유 말고. 왜 나랑 자고 싶은 거냐구?”

“잘 것까지 고려해보진 않았었는데요. 단지 당신이 늦게 왔기 때문에 잠들어버렸던 것 뿐입니다.”

“질문을 회피하지 마!” 존은 양 손을 천장으로 휘저었다. 천장이래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 나랑 자려 드는지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든가, 아니면 내 침대에서 나가.”

유난히 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존을 노려보며, 셜록은 일어나 앉았다. “일부러 둔한 척 하는군요.” 그거야말로 셜록이 알고 있는 최고로 지독한 모욕이라도 된다는 듯한 말투였다.

존은 그가 문을 나서는 걸 바라보고는, 반항하듯 돌아누웠다.

셜록에게 과다 노출된 덕분에 그의 두뇌나 분별력이 쇠퇴해버린 거다. 논리적으로 보면,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그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을 만한 질문을 했던 것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셜록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그라면 정당하다고 느껴야 마땅했다. 그가 옳다는 느낌이 들었어야 했던 거다.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 이 텅 빈, 헛헛한 아픔 - 불안함을 그는 쉽사리 알아차렸다. 죄책감. 전혀 공평하지 않은 셈이다.








+)
읽는 맛이 있는 글이다. 차분한 표현 아래에서 감정이 묻어나는, 그런. 오래전부터 번역하리라 벼르던 글인데, 
막상 하려니 옮기기 어려운 표현도 꽤 있어서 조금 애먹긴 했지만, 그래도 이분 글은 번역하고 있는 게 즐거웠다. 

아, 물론. 나는 이 글에서의 셜록과 존이 너무 맘에 든다. 제대로 셜록답고, 존답잖아.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언제나 미소짓게 되는 글. : ] 




  1. 이거 보고 시적 허용을 생각하신 분 있으시려나? : ] [본문으로]
  2. (fake) Drug Bust때 clean하다던 셜록의 말을 인용한 셈. [본문으로]
  3. ‘spice-o-meter’. 없는 말이다. -o-meter를 붙여 만든 센스있는 표현. [본문으로]
  4. 센스있는+재미난 부분 - 셜록의 메시지가 웃긴 이유는, ‘see a man about a dog’이란 말이 실은 별 이유 없이 자리를 뜰 때 하는 말 - 일종의 숙어이기 때문. 셜록은 정말 ‘개 때문에’ ‘관련된 누군가’를 만나러 가겠다는 의미였겠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어이없는 말인 거다. (음… 예를 들면 ‘화장 고치러 간다’는게 정말 ‘화장을 수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화장실 갔다올게’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랑 비슷하달까.) [본문으로]
  5. ‘Picking pockets’ 셜로기 언제 철들거니… [본문으로]
  6. 센스있는+재미난 부분 2 - 존의 대사 원문은 ‘What the buggery fuck’. 존은 ‘무슨 짓이야(what the fuck~)’를 강조하자고 한 말이지만, 셜록은 말 그대로 남-남간의 행위 ‘비역질(buggery fuck)’로 이해하고 대답한 것. 즉, 앞서 나온 see a man about a dog처럼, 일반인 존은 구어체로 이야기했지만 유니크(?)한 셜록님께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재연된 셈. [본문으로]
  7. 저도 갖고 싶습니다! 공구! 공구!!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