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은 열 살이었다. 그가 정원에서 누나와 가짜 칼싸움을 하던 그때, 그녀가 풀밭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는 어두운 색의 물체를 발견했다. 그녀는 정신없게 카랑한 목소리로 거의 소리지르다시피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고, 긴 다리로는 이미 베란다를 향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존은 근처에 흩어진 어두운색 깃털들을 놀란 듯 바라보고는, 달려가 아버지의 공구창고 옆에서 삽을 꺼내들었다.

그때 해리는 뒷문을 열어젖히고 뒤돌아 그를 쳐다봤지만, 존은 이미 마당을 건너 돌아가서 삽의 뾰족한 끝부분으로 뱀의 머리를 내려찍고 있었다. 기분나쁜 탁, 소리에 그녀는 진짜로 소리를 질렀고, 꽃무늬 치마를 휘날리며 풀밭을 가로질러 계단을 뛰어올라가버렸다.

“괜찮아?” 존은 웅크린 까마귀에게 물었다. 까마귀는 반짝이는 큰 눈으로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 맞다,” 그는 내심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넌 새였지, 참.” 

“넌 왜 뭐든 구해주려고 드는거야?” 대뜸 구박하면서도, 해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마에 입맞추면서 숨죽여 안도했다. “들어가자. 정원에 뱀이 있다는 건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릴게.” 





그는 열두살이었다. 숙제노트 빈 구석마다 막대그림같은 낙서를 하다가 거실 창밖을 바라봤을 때, 앞뜰에 웅크려 있는 작은 형체를 발견했다. 존은 호기심에 다가가 유리창을 톡톡 두들겨 봤지만,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들을 챙겨 의자 아래 밀어넣고, 일어나 앞문으로 다가가 걸쇠를 풀고 머리를 내밀 수 있을 만큼 문을 열었다. “야!”

여전히 반응이 없다. 존은 버팀쇠를 찾아 앞문이 열려있도록 아래 괴어두고는 밖으로 나와, 풀밭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야,” 그 아이의 코트 끝에 손가락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그는 조용히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그때, 검은빛의 곱슬거리는 앞머리 아래 밝은 푸른색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 이걸 잃어버렸더라.” 그 아이는 일어서며 말했다. 존은 그 아이의 장갑 낀 손과, 잡고 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그는 당황하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존이 상자를 받고 눈을 깜박였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거 내거야?” 그는 현관문이 닫히게끔 버팀쇠를 발로 차면서 안으로 들어와, 해리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현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가 존을 흘끗 쳐다보더니, 상자를 보고는 콧잔등을 가볍게 찡그렸다.

“그럴거야.” 그녀는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껀 확실히 아니거든.”





“넌 그걸 열게 될거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이 책상에서 시선을 들었을 때,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한데 모은 채 침대 위에 웅크려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열 일곱이나 대략 그쯤, 자신과 또래일 거라고 존은 생각했다; 진과 빳빳한 푸른색 워크셔츠, 목에 두른 보랏빛 스카프를 보아하니, 체격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좀더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내가?” 존은 물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책상 세번째 서랍을 열어 영수증과 갖가지 종이들을 들어내고 그 아래 안전하게 보관해두었던 작은 갈색 상자를 꺼냈다.

그래.” 대수롭지 않은 듯 그는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한층 차분하게 덧붙였다. 
“대신, 네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때만이야. 꼭 행복해야 하고.”

깨어났을 때에는, 책장이 그의 얼굴에 들러붙은 상태였다.





스물 네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는 거의 상자를 열 뻔 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는 그 이상한 소년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망설이다가 결국 옷장 아래 구두상자 안에 다시 넣어두었다.

“네가 준 상자, 시간 제한은 있는거야?” 5주 후에 그는 물었다. 시트를 둘둘 말고 침대 한쪽으로 구겨지듯 누워, 아픈 가슴을 조용히 부여잡은 채로. 그 소년은 – 이제는 남자였다, 그도 나이를 먹고 있었으니까 – 존의 눈가에 손가락을 얹고는 한번, 두번 가볍게 문질러주었다.

“아니,” 마침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건 아냐. 네가 내킬 때 쓰면 돼.”





아프간 파견 소식을 들은 날 밤, 그는 다시 그 남자의 꿈을 꾸었다.

“이거 되돌려줘야 할 것 같아.” 존은 상자를 내밀며 그에게 말했다.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고는, 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가지고 있어.” 그가 대답했다.

“가져갈 수가 없어.” 그는 앞으로 다가섰다.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상자를 쥔 손가락에 힘을 빼고, 한숨을 내쉬며 강조하듯 말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음, 뭐든간에, 거기서 찾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넌, 그곳에서도 너만의 것들이나 행복을 찾을거라고 생각하는거군.”

“더 이상한 일들도 일어났는걸.” 존은 으쓱하며 대답했다. “부탁이야.”

그는 잠시 바라보더니, 팔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존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는 거의 가슴이 맞닿을만큼 가까워질때까지 천천히 팔을 굽혔고, 상자를 존의 심장 근처에 대고는 손바닥으로 꾹 눌러주었다. 

“거기서 찾아낸다면,” 존의 눈가에 키스라도 할 듯이, 가깝게 입술을 스치며 남자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가져다 줄거야.”





그가 런던 병원으로 이송된 후 처음으로 문병온 사람은 해리였다.

“날 보고 싶어하지 않는 건 알아.” 그녀는 말문을 열었고, 항복할게-부디-용서해 라는 듯 손을 들어보이더니 몸을 숙여 그의 침대 옆 탁자 위에 나무상자를 올려놓았다. “클라라 이사를 도와주다가 낡은 코트들 틈에서 찾아냈어. 돌려받고 싶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거,” 덧붙이며 옆에 핸드폰을 놓았고, 존은 클라라가 그녀에게 사줬던 것임을 알아보았다. “내가 주는거야. 멀리하진 말아줬음 좋겠다.”

"고마워." 존은 예의상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장기간으로 플랫을 계약할 형편이 아니었고, 어느덧 주머니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가 당신이 원하는 곳인가?” 남자는 부엌 카운터에 기대어 물었다.

존은 그를 바라보다가, 푸른색 벽지와 어두운 조명, 창 밖을 차례차례 훑어보고 대답했다. “난 여기가 좋아.”

“그럼 열어봐.” 그는 갑자기 창문 옆 그의 근처로 다가섰고, 존의 손에 상자를 얹고는 긴 손가락으로 감싸쥐었다.

그는 상자와 그것을 감싼 손가락을 바라보다, 다시 올려보며 말했다. “행복하진 않아.”

아주 짧은 순간 남자가 실제로 웃는 모습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몸을 숙여 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밖으로 나가봐.”

갑자기 그는 아프간에서 매복중이던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고,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난 당신 이름도 모른다구.” 그는 가슴이 터질듯 거칠게 헐떡이며, 빈 방 한가운데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 뿐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고, 그때 마이크 스탬포드를 만나 셜록 홈즈를 소개받게 되었다. 덕분에 감당하기 어려운 집세 고민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확실히 금세 지루해질 일은 없게 되었다.





셜록과 함께 산 지 5개월이 지난 어느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안락의자에 웅크려앉은 채로 그 - 존이 책상 서랍에 넣은 채로 확실히 잠가두기까지 했던 - 나무 상자의 무늬를 손으로 쓰다듬어보고 있는 플랫메이트를 발견했다.

“그랬지.” 그 광경을 보고 분한 듯 씩씩거리고 있는 존에게, 셜록은 대답했다. “어렵지도 않게 잠겨있던걸."

“자네는 대체, 좀,” 존은 화를 내며, 빠르게 방을 가로질러 셜록의 손에서 상자를 낚아챘다. “난 자네가 한번 따보라고 잠그는게 아냐. 내 소지품에 제발, 손대지 말라고 잠가두는 거지.”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들켜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갑작스레 온 몸의 살갗이 팽팽하게 조여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계단을 뛰쳐올라가 문을 쾅 닫았다.





“난 당신 이름도 몰라.” 존은 말했다.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어, 당신.”

남자는 침대로 다가와 그를 마주보고, 손을 들어 그의 턱을 들어올렸다. 
“우린 만난 적이 있거든.” 그는 긴 속눈썹을 깜박이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이름이?” 존은 물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 존의 턱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중요하지 않아.”

“내겐 그렇지 않은데.” 그가 조용히 대답했을 때, 남자의 손끝은 그의 입술 사이를 스쳐갔다.

“원했던 곳에 있는건가?” 남자는 물었고, 존은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난 여기가 마음에 들어.”

“그럼, 행복한가?”

“그래.” 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그래, 행복해.”

남자의 손길이 얼굴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존은 눈을 떴고, 그가 짙은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검은 깃털 하나를 꺼내어 자신의 귀 뒤에 꽂아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럼 일어나." 그는 말했다. "상자를 열어봐."





존이 아랫층으로 내려왔을 때, 셜록은 커피 테이블에 올라서서 천장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존은 상자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봐도 돼, 원한다면.”

셜록은 상자 위를 쓱 훑어보고는, 찌푸리듯 눈썹을 모으더니 지적했다. “열려있잖아.” 

“그런가봐.” 존은 으쓱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셜록은 테이블에서 내려와 갑자기 존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모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존이 한발짝 물러서기도 전에 셜록의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가볍게 - 너무 꽉 조여들진 않도록 - 감쌌다.

“왜 아직 여기 있는거지?” 셜록이 물었다.

“떠날 생각도 없었는데?” 그의 질문이 마치 수수께끼(trick question)라도 되는 것처럼, 존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 실제 속임수일지도. 셜록의 손끝이 팔에서부터 갑자기 존의 머리카락으로 스치듯 올라가, 귀 뒤에서 까마귀 깃털을 뽑아 자신의 머리에 꽂아넣는 순간 그는 헉, 하고 놀라 상자를 거의 떨어뜨릴 뻔 했다.

“이상한데,” 셜록은 고개를 갸웃하며 작게 되뇌었다. 그리고는, 아, 그랬던 건가, 존은 마법처럼 그를 알아보고는 그만 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로 전에 내가 이걸 줬었던 남자는 성을 얻어갔지.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여기 있어. 놀라운 결과군,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아.”

“자네였군.”

“그래,” 셜록은 퉁명스럽게 고개를 까닥하며 수긍했다. 그의 손이 존의 가슴을 미끄러지듯 어루만지고는, 어깨와 목을 따라 올라가 그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미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셜록의 시선은 존의 눈에서부터 입술까지 스쳐지난 후, 다시 그의 눈과 마주했다. 
“키스해도 될까?”

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것인 양 물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는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존은 기대어 키스했다. 그게 바로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이자 마지막 하나인 것처럼. 



+) 
달콤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운명처럼 이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
어릴때부터 다정한 존도 좋지만, 까마귀랑 셜록도 은근 잘 어울려. : ]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