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아니, 그럴리가 없어. 그는 친구로써 말한거잖아. 안그래? 였다. 연구실 사람들 모두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도 나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내 표정이 꽤나 가관이었나보다. 레스트라드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역시도 몰리의 말에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것 같다.
존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그 다음으로 한 생각은, 내가 저 얼어죽을 커피잔만으로도 알아낼 수도 있었겠다는 거였다. 그의 맥박수나 동공이 확장되는 걸 확인할 수도, 그가 헤어 제품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거나, 그의 메일함을 전부 훑어볼 수도 있었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만 했다면, 난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즉시 추리해 낼 수 있었을 거다. 여기에도 증거란게 있다면, 찾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러나 머뭇거리며 한걸음 그에게 다가선 순간, 난 깨달았다. 누구나 그냥 알게 되는 무언가. 실낱같은 흔적 하나라도 남기기엔 너무나도 소중하고 특별한 무언가. 따뜻하고 포근한, 과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의 어떤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그런 것들 중 하나다.
그가 나를 바라보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내 가슴 안에 폭죽이랑 나비를 한데 넣어두고 죽을 때까지 싸우게 만들기라도 한 것 같은, 내겐 완전히 낯선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 안돼. 이럴 리가 없어. 난 누구에게도 이런 걸 느끼진 않는다구! 존에게는 더더욱.
잠깐, 존이 왜 안되는거지?
나를 살펴보는 그의 시선에서, 과학자로서의 나는 예전의 내가 미처 보지 못했었던 모든 신호들을 읽어냈다. 이럴수가, 어떻게 내가 몰랐던 걸까? 항상 뭔가가 더 있다니까.
“커피?” 잔을 내밀며 그가 말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에서 잔을 받아들었고, 우리의 손끝이 스치는 순간 내 팔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 이 느낌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이렇게 바보같다니!
굳은 몸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잔을 들고 단숨에 비워내고는 – 방 저쪽으로 던져버렸다.
그 잔은 앤더슨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춰버렸고, 그는 한 방에 쓰러졌다. 동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떠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존의 손을 잡고 그들 몰래 뒷문으로 달려나갔다.
겨울의 바깥 풍경은 아름답다. 나뭇가지에서는 빗방울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늘 바래왔던 그대로였지만, 나는 나무들이나 은빛 하늘을 잊어버린 채 존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어떻게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던 걸까? 그의 매력적인 눈과 찡그릴 때의 부드러운 곡선, 작고 귀여운 귀를, 어째서 놓쳤던 거지? 어떻게 이 내가, 이렇게나 어이없게 못 보고 지나쳐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고, 또다른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존과 이런 관계를 맺는다는 건 내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는 괴롭고 골치아픈데다 당황스럽기까지 한 섹스까지도. – 뭐, 앤더슨에게서 엿듣기로는 그랬다는 거지만. 게다가 그가 내 해골을 다시 뺏어가버리면 어쩌지? 허드슨 부인에게서 돌려받은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하얀 입김을 흩어내며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 나는 그 모든 게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한다면 희생도 필요하니까.
나는 미소지었다. 그래, 사랑. 그거였다. 난 사랑에 빠진거다. 춥고 초조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있기에, 나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행복하다; 세상에, 형편없는 팝송 가사같군그래.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존 왓슨, 나는 당신과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셜록,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말했다. “위험했다구! 그가 심각하게 다치기라도-“
“존,” 나는 가로막으며 말했다. “입 다물어요.”
그는 뺨을 붉히며 나를 노려보았다. “입 다물라고 하지 마. 자네 맘대로-“
“존, 입 다물라구요.” 다시 한마디 해주고는, 몸을 숙여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가 쓴거라고, 그가 진심이라고 누가 그래? 그는 완전히 멈춰서 있었고, 나는 두려움에 가슴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때, 그가 이마를 살짝 찡그리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내 허리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나는 몇초 지나서야 우리가 입맞추고 있다는 걸, 실제로 키스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말도 안돼. 하지만 난, 좋았다.
잠시 후 존이 물러섰다. 동공은 확장되고 두 뺨에는 홍조를 띤 채 그는 빠르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며, 그는 확실히, 분명히 사랑에 빠진 상태였다. 한참 올라간 내 심박수와 함박웃음이 되어버릴 듯한 미소를 감안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보일지도 궁금해졌다.
“자네, 별다른 이유 없이 친구에게 키스할 순 없는거라구.” 그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네, 당신 말대로에요. 내가 왜 그랬겠어요?”
그는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고, “자네는 바보니까–“
“그리고 존, 사랑해요.” 내가 마무리했다. 좋아, 한층 더 한심해졌군. 그는 하얗게 질리더니, 도망치듯 시선을 피했다. 아냐,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었어. 내가 지나쳐서 모두 망쳐버리고 만 건가. 존은 침을 삼키고 주먹을 꽉 쥐고는, 소리치며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몰리이이이이!”
그리고 난, 씨익 미소짓고는 그를 뒤쫓았다.
“아, 두분 너무 잘됐어요!” 몰리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존의 손을 잡고 잠시 깡총깡총 뛰어댔지만, 나를 보자마자 멈춰섰다. 두 사람 모두 만면에 하나 가득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몰리의 아이디어였어, 사실.” 존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우릴 엮어준 셈이지.” 몰리가 그의 어깨를 쿡 찔렀다. “그래, 그래, 알았다구요. 내가 어떻게 할지 그녀에게 물어봤어. 내 생각에 난 그저… 모르겠다, 난 그저 자네가 날 모른척할거라 생각했거든.”
다가서서, “그럼 당신, 날 사랑하는 건가요? 정말?”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연구실의 모든 사람이 숨죽인채 바라보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는 나에게 미소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정말이야.”
“난 여간해선 이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단 겁니다, 존.”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내가 일생을 걸고 누군가를 믿거나, 그 사람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보호하려 들었던 적이 있었나? 대체 언제부터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줬던 거지?
2월의 열네 번째 날부터, 바로 오늘부터다. 존같은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과, 내가 항상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이 순간부터. 어리석고 비현실적인데다, 감상적이기까지 한 발렌타인 데이란 날부터!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알고 있어.” 다시 나에게 키스했다. 모두들 놀라며 미소지었고 앤더슨은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댄 채 앓는 소리를 냈다. 바깥 세상은 차갑지만 환했고, 앙상한 나무들이 빗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모든 것이 너무도 명확했지만 – 지금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건 존의 따스한 품과 부드러운 입술 뿐이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첫 날, 이제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주위에서는 행복한 탄성이 이어졌고, 비는 그치지 않았으며, 라디오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피커를 쏴버리지 않았다.
+)
설레는 마음으로 고백하고, 받아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감동,
사랑에 빠진 다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셜록의 시선이 처음과 달라지는 데서 한번 더 감동.
아... 달콤하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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