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저녁 | You Can Imagine the Christmas Dinners (7/8)





기다린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지루하기도 했다. 존은, 저 가엾은 벽에다 셜록이 뚫어놓은 총알 구멍 말고도 몇 개 더해야 할지를 고민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상적이고도 고결한 시민이지 정신나간 소시오패스가 아니었기에, 대신에 가만히 앉아 벅시 말론을 끝까지 보는 것은 물론,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월레스와 그로밋 예전 에피소드 몇 개까지 이어서 보며 버텼다. 하지만 혼자 앉아 가족용 오락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영 꺼림칙했던 그는, 해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는 클라라와 다시 잘 되어가는 중이라 휴일도 함께 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셜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 들자 전화를 끊어버리긴 했지만; 이 플랫메이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간 멈출 수 없을 뿐더러 터무니없는 이야기마저 몽땅 다 해버릴까 걱정스러웠던 탓이다.


새로운 메시지 없음


날이 저물어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쯤 그는 맥주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부엌엔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다 오늘같은 날 문 연 곳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셜록에게 문자를 보내 어디에서 우유를 샀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 생각은 해봤지만 답장을 해줄 리는 없을 테다. 망할 놈의 크리스마스, 방 한구석에 세워둔 자그마한 플라스틱 트리를 노려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망할 놈의 트리.


“저건 목적이 뭔데?”

“목적같은 거 없어, 셜록. 트리인걸.”

“저건 트리가 아냐. 저 끔찍하고 천박한 걸 트리라 부르다니, 존. 그건 터소 밀랍인형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꼴이나 다름없다구. 저건 트리가 아냐.”

그는 존이 힘들게 방울에 반짝이로 뒤덮는 걸 바라보는 게 낫다며, 장식하는 건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한데 모은 채 소파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존이 다 끝냈는데도, 마치 뭔가 빠져있다는 듯 비판하는 눈초리로 빤히 쳐다보는 거다.

“그거 위에 뭐 있어야 하지 않아?”

“뭐, 요정이나 별 같은거? 아무 것도 없는걸.”

“흐음. 나 있어.”

“안 도와주는 줄 알았는데.”

“안 했지. 이제 하려구.”

“음, 뭘 하려고 - 아, 셜록. 아니, 해골은 안돼. 해골은 안된다구. 뭐 하는거야-”

“도와주는 거지.”



존은 관자놀이를 슬슬 문지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셜록은 이 문제로 언제까지 삐져 있으려는 걸까? 그 인간 모르게 어머니가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은 걸로 화가 났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솔직히, 그 화를 왜 자신에게 풀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단 말이다. 젠장맞을, 그가 가담이라도 한 건 아니잖은가 - 그 역시 셜록이 알아차리기 고작 30분 전에야 알았단 말이다! 그리고 셜록이 이 모든 사태를 재고한다면, 그래서 둘이 엮이는걸 원치 않는다면, 그럼 그걸로 된 거고 - 그 생각에 불현듯 가슴이 메여오긴 했지만 - 그냥 보통 때처럼 돌아가는 거다. 하지만 셜록이 여기 있지도 않으면 돌아갈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는 우울하게 커피 테이블을 툭, 발로 차며 혼자 생각했다.

그는 한동안 거기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해가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져 버리는 내내,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셜록이 오늘 밤에 돌아오기나 할까, 의아해하던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자기 아랫층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는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셜록?” 그는 계단 쪽으로 다가서며 불러보았다.

“유후~ 나란다!”

존은 참고 있던 숨을 한번에 뱉어냈다. 허드슨 부인이군. 그는 의자로 털썩 주저앉으며 다시 리모컨을 잡아들어 멍하니 채널을 돌려댔다. 그녀의 발소리가 계단을 따라 올라오더니, 야단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푸딩 좀 가져왔단다, 얘야.” 그녀는 두 팔 가득 커다란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종종거리며 들어갔다.

“냉장고에 넣어둘- 아, 이번엔 뭔 일을 저지른 거니?”

허드슨 부인이 말없이 냉장고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존은 비어져나오는 미소를 손으로 가렸다. 그녀는 얼굴 한가득 걱정어린 기색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우유 필요하세요, 허드슨 부인?”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는 그의 말에, 그녀는 긴 한숨 한번 내쉬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몇 팩 꺼내들었다.

“그래, 뭐 거의 다 떨어져가긴 했었으니까. 몇개 집어가마, 푸딩 놓을 자리는 있어야잖니. 하지만 정말이지, 존. 이앤 어디 있는 거니?”

존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그는 다시금 채널을 바꾸어댔다. 미스터 빈, 탑기어 스페셜, 연말 특집 빅팻 퀴즈, 그것도 무려 2년 전 거다.

“아실지도 모를 거라 기대했어요.” 그는 대답했다. “전 몇 시간째 못 봤거든요.”

허드슨 부인은 측은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더니, 다가와서 옆의 의자에 앉아 손을 톡톡 토닥여주었다.

“아, 얘야. 너희 둘 또 다툰거니?”

존은 그녀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반박하려다 말고, 뭘 반박해야 할지 의야해져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네, 조금요.”

“그래, 잘 되어가는 꼴을 못 봤다니까.” 그녀는 냉정하게 한마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차 타올게, 어떠니?”

부엌으로 향하는 그녀에게 동의하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양봉에 대한 셜록의 책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마치 그 안에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이라도 들어 있을 것처럼. 뭐, 수많은 답이 들어있긴 하지, 그는 생각했다. 대부분 벌 관련된 질문에 대한 거긴 하겠지만.

갑자기 핸드폰이 삑, 울어댔다. 그는 테이블에서 재빨리 핸드폰을 낚아채며, 너무 서두른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본 사람이 없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받은 메시지
당장 지원 필요함. 옥스포드 광장. SH



존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과 자켓을 챙겼다.

“허드슨 부인, 저 나가요!” 그는 부엌을 향해 소리쳤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 두 개를 들고 막 모서리를 나서던 부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는 말했다. “네, 그건 죄송해요, 하지만 셜록이 곤란한 상황인 것 같아서요.”

그는 위험한 상황이라면 부숭부숭한 스웨터보다는 잘 챙겨입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자켓을 걸쳐입고 셜록의 목도리 중 하나를 집어서 목에 둘러맸다. 머릿속 대부분은 가능한 상황들을 떠올려보며 모험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한구석은 걸맞잖게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목도리에서 셜록 냄새가 나는데, 그러고 보니 셜록이 어떤 냄새가 났었더라, 이제 생각해 보니 그에게선 진한 커피와 약간의 화학 약품, 그리고 밤공기같은 냄새가 났지, 좋았어, 그치, 그래, 정말 마음에 들었는걸; 다행스럽게도 그의 두뇌 중 그나마 합리적인 부분이 남아 있어 윗층 책상 사럽에서 총을 꺼내오는 데는 성공했다.


받은 메시지
허드슨 부인께는 기다리지 마시라고 해. SH



“기다리지 마세요, 허드슨 부인!” 그는 부인을 지나쳐 한번에 두 계단씩 뛰어내려가며 외쳤다.

그녀는 쯧쯧, 소리내어 혀를 찼다. “너도 그애만큼이나 나빠지는구나, 존 왓슨. 교양이 없잖니! 둘 다 말짱하게 돌아오기나 하려무나, 또 내 카펫에 핏자국 남는 건 싫으니까.”

“그럴게요, 허드슨 부인!”

그는 보도까지 뛰어내렸다. 꽁꽁 언 보도블록 위로 발자국 소리가, 그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오늘 중 처음으로 제대로 깨어있는 기분이었다. 주변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느낌. 그는 팔을 뻗어 택시를 불렀고, 그의 입김이 공기 중에 하얗게 스러졌다.

택시를 불러세우는 데 있어 셜록만큼 능란하진 않았지만, 어쟀든 세 번만에 잡아세우는 데 성공했고, 올라타자마자 기사에게 옥스포드 광장으로 가달라고 했다.


받는 이: 셜록
가는 중이야, 괜찮아? J

받은 메시지
빨리 와. SH



존은 쿵쿵, 불안함을 느끼며 레스트라드에게 연락할까도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다면 아마도 셜록이 이야기했을 거라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 플랫메이트가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해졌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느 사람들은 술을 퍼마시겠지만, 셜록이라면 그 대신에 위험이란 게 털끝만큼이라도 보이는 쪽에 달려들기를 택할 게 뻔하니 말이다. 더 복잡한 것일수록 더 좋겠지. 그저 나름의 대응기제라는 걸, 존은 알았다. 오늘 오후 내내 그가 끊임없이 차를 마시던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멀지 않은 - 솔직히 어렵잖게 걸어왔을 수도 있을 거리였지만, 시각을 다투는 일인 것 같았기에 일분 일초도 허비할 수 없었다.  택시는 리젠트 가에 멈춰섰고, 존은 다음엔 어디로 가야할지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보도에서 잠시 멈춰섰지만, 셜록 주변을 늘 따라다니던 소음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총소리도, 사이렌도, 비명소리도 없는 거다.


받는 이: 셜록
리젠트 가야 - 너 어딨어? J

받은 메시지
W1S 2QB. 서둘러. SH



그는 핸드폰에 우편번호를 최대한 빠르게 찍어넣었고, GPS를 보며 길을 따라 달려갔다. 한밤중, 이 고요함에 안심해야 하는지, 당황해야 하는지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어쨌든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가능한 모든 경우의 - 최악의 사태가 그려지며 머릿속을 스쳐갔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폭력배들에게 끌려가 골목 어딘가, 얻어맞은 채 의자에 묶여 있는 셜록의 모습.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던 나머지, 존은 그림자 속에 반쯤 가려진 채 서 있던 셜록을 그대로 지나쳐버릴 뻔 했다.

“존.”

그는 그대로 멈춰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추위를 막으려 코트를 여민 채로 아무렇지 않게 벽에 기대서 있는 셜록은 너무나도 차분하게만 보였고, 존은 안도감에 힘이 쭉 빠졌다.

“셜록! 무슨 일이야? 나 총 가져왔-”

“필요 없을 거야.”

존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금이라도 읽어내 보려 애썼지만, 여느때처럼 무표정에다 차분하기만 했다.

“알았어. 그래, 뭐, 좋아. 그러면. 무슨 사건인데?” 그는 물었다.

“사건?”

“그래, 셜록. 사건. 날 여기로 불러온 이유 말야. 서두르라며. 네가 위험한 줄 알았다구.”

셜록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다.

“아! 아냐. 위험한 거 없어. 너 기다리다가 좀 추워서.”

존은 그를 바라보다 말고, 치미는 분노에 으릉, 신음하며 보도를 왔다갔다 했다. 그렇게 걱정하게 하다니. 저 자기밖에 모르는, 으스대기나 하는, 오만한 녀석이-

“그러니까 난 여기까지 죽어라 뛰어왔는데, 눈꼽만큼도 위험한 게 아니었다는 거지, 넌 그냥 좀 추웠다는 거고-”

“아, 그렇게 과장하지 말라구, 존. 거의 택시 타고 왔으면서, 네 신발 봐. 게다가, 그냥 내가 ‘좀 추웠다’는 것 때문만은 아닌걸.”

존은 씩씩거리며, 이 친구 앞에 딱 멈춰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뭔데? 무슨 사건이야? 우리한테 사건이란 게 있긴 해?”

뜻밖에도 셜록은 해사하게 웃었고, 어둠 속에서 그의 두 눈은 까맣게 반짝였다.

“우리한텐 예약이 있어. 존.”

존은 눈만 꿈벅, 할 뿐이었다. “미안, 뭐라구?”

셜록은 실망스러운 듯 눈썹을 찡그리더니, 살짝 기분이 상한 것처럼 불안하게 존을 바라보고 섰다. 그는 등 뒤,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예약 말야. 뭐, 너 타이 음식 먹고 싶은지 좀 됐다며.[각주:1] 내 생각엔-”

존은 뒤돌아서서, 길 건너편에 화려하게 꾸며진 타이 음식점을 바라보았다. 거리를 따라 달려오는 동안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아니, 난 그게 - 그랬지. 난 - 이거 데이트야?”

셜록은 그를 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명백하잖아.”

“그럼 사건은 없는 거고. 데이트 때문에 날 여기로 끌고 온 거야?”

셜록은 얼굴을 구겼다. 살짝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게 나빠? 내가 뭐 잘못 한건가.”

존은 이 남자가 농담이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아해하며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내 말은 - 아니, 그러니까 이거… 훌륭해.” 그리고 안도감에 활짝 미소지어보였다. “훌륭해, 셜록. 그저 - 네가 하루 종일 나 무시했었으니까, 내 생각엔…”

셜록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나 바빴어, 존. 내 일을 질투하면 안되지. 난 네가 나간다거나 병원에서 의사 노릇 하는 거 신경 안 쓰잖아. 널 하루 종일 집에서 내 근처에 두는 게 나한테 훨씬 더 유용한데도 말이지. 그럼 갈까?” 그는 장갑을 벗으며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존은 지금까지 벌어진 이 사태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 뒤를 따라갔다; 다시금 감정적으로 한방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복싱 데이잖아. 열려 있기는 한 거야?” 그는 물었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 위해서 연 거지.” 셜록은 문을 두드리며 존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도와주고 있던 거로군.” 셜록이 원하기만 한다면 런던의 절반에서 공짜 서비스를 받고도 남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점 안쪽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타이 음식점을 가진 사람은 모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했잖아.” 셜록은 손을 휘, 저어보이며 말했다. “바빴다니까.”

“누구-” 문이 활짝 열리고, 대머리에 키 작은 남자가 나오더니 셜록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셜록 홈즈씨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포옹에 셜록은 살짝 놀란 듯, 존에게로 사과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파타라[각주:2]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친구! 돌아와서 너무 기쁘군요!”

“첸 씨.” 셜록이 말했다. “이쪽은 말씀드린 제 파트너, 왓슨 선생입니다; 염치없게도 오늘 밤엔 저희가 당신 환대를 받게 되었네요.”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었는걸요!” 그는 두 사람을 문 안쪽으로 불러들이며 말했다. “주방에도 준비해 두었답니다. 오늘 당신이 도와주신 것에 비하면 약소하지요, 우리 모두 너무나도 고마워하고 있으니까요-”

남자는 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홈즈 씨가 당신에게 이야기해-”

“창가 자리가 좋겠네요, 첸 씨.” 셜록은 유연하게 가로막으며 말을 꺼냈다.

“그럼요.” 첸 씨는 두 사람의 코트를 걸어주려 받아들고는 룸으로 안내했다. “돌아와주셔서 린이 무척 기뻐하고 있답니다, 홈즈 씨.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하더라구요.”

존은 뒤쪽 룸에서 웨이트리스들이 흘끔흘끔 훔쳐보는 시선을 알아차렸고, 그중 한 명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물론이죠.” 셜록은 익숙한 손길로 와인 목록을 훑어내리며 대답했다. 첸 씨는 웨이트리스를 두고 뒤쪽 룸으로 사라졌고, 그녀는 다가와서 셜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음, 중국어같은데 - 생각하던 존은, 셜록이 그대로 받아 대답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순간, 거실에 놓여 있던 지나-티벳어족에 대한 책이 불현듯 떠올랐다.

“괜찮다면, 와인은 내가 골라도 될까.” 셜록의 말이 이어지던 생각을 끊어냈다. 존이 눈을 깜박, 하는 사이 여자는 주방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 친구를 보며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셜록, 너 배운 적이라도-”

“회화 정도야. 레드 괜찮아? 넌 여름철이면 화이트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9월만 되면 레드로 바꾸잖아.”

존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마치 언제 어떤 주류를 마시는지 분류해놓은 사람이 있다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레드 괜찮아, 그래, 좀더… 다사로울 것 같네…” 멍하니 대꾸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방금 알게 된 것들을 한데 모아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셜록이 오늘 아침에 형네 저택 침대에 자신을 혼자 버려두고 힁허케 사라져버린 다음, 하루 종일 첸 씨를 위한 사건을 찾아다니고 - 해결하고 -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타이 음식점 소유주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겠지.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새로운 언어까지 하나 배워두었던가 보다. 음, 애러실리아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지 않을만도 했군 그래.

웨이트리스가 돌아와서 와인을 따라주었고, 셜록은 잔 너머로 존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좀 놀란 것 같네.”

“그냥… 꽤나 의외라서 말이지, 그런 거야. 넌… 나 타이 음식점 데려오겠다고 하루 종일 사건에 매달려 있던 거야? 그거… 음. 놀라운걸.”

“내 생각은 어젯밤에 꽤나 명확히 표현했던 것 같은데?”

“으음.” 존은 대답했다. “그러긴 했지. 하지만 아무 것도 실천에 옮기진 않았는데다, 밤 내내 날 외면했잖아 - 무의식 중에 내 개인 영역을 침범한 건 빼고. 그래놓고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져버린데다, 낮에도 내내 외면해 놓고. 그놈의 의도인지 뭔지는 나몰라라 하고 말이지.[각주:3] 네 말대로라면 - 아니면 알고 있긴 했나?[각주:4]

“알고 있었지, 존. 모든 사실을 알기 전에는 이론을 세우면 안되는 거야. 뭐 먹을래? 생강 소스 전복이 근사하다던데.”

존은 앞에 놓인 메뉴를 내려다보았다.

“전복이 뭐야?”

“고둥의 일종이야. 전복 과(Haliotidae) 전복 속(Haliotis)이고. 유생체는 난황영양성이라 난황낭을 먹고 자라.”[각주:5] 셜록은 자기 몫의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했고, 존은 코끝을 찡그렸다.

“아닌 것 같아.” 중얼거리며, 아무래도 그냥 붉은 코코넛 커리 곁들인 양고기를 고수하는 게 좋겠다고 다짐하는 존이었다. “난 그냥 붉은 코코넛 커리 곁들인 양고기로 할게.”

“그래, 그럴 거라 생각했어. 나는 느아 똠 까티[각주:6]로, 또-”

“너 진짜로 먹는거야?” 존이 놀라 물었다. “맙소사, 오늘만 연속으로 두번째네. 무슨 기록이라도 되겠는걸!”

셜록은 새우 크래커 한 바구니를 가져다준 웨이트리스 중 한 명과 - 이번에는 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 눈을 맞추며 음식을 주문했고, 그녀는 내역을 그대로 받아적기 시작했다. 존은 그를 찬찬히 뜯어보면서도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두 사람이 식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것도 아닌지라, 이런 상황은 여러모로 완전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전히 생경하기만 했다. 보통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이었기에 먹는 건 그 혼자 뿐, 셜록은 보통 정신사납게 어깨 너머로다가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으니까. 게다가 그가 생각하기엔, 보통 (거의 그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섹스하기 전 상황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같은 것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셜록의 심경 변화는 말할 것도 없겠고; 어젯밤만 해도 모든 것들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의 어머니에게 화나고, 형에게 화나고, 그 자신에게도 화나고, 존에게도 화가 나 있었지 않은가. 지금은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존은 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그런 기색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는걸, 그는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셜록에게서 느껴지는 미세한 긴장감. 숨겨둔 기운에 떨리는 것만 같았다. 반면에, 사건을 마치고 났을 때 종종 그렇기도 했다. 아드레날린 기운이 가시고 남은 일주일 내내 지독한 슬럼프를 겪기 전까지긴 하겠지만.

“너, 며칠동안 참기 힘들거야.” 그는 새우 크래커 한구석을 오물거리는 셜록에게 말을 건넸다. 셜록은 짐짓 상처받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그게 네 작업용 멘트야, 존? 네 여친들이 몇 명 없기도 했지만, 오래 못 버틸 만도 하네. 물론 그게 유일한 이유일 거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말야.”

존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 말씀해보시죠, 천재님. 이유가 뭔데?”

셜록이 데굴, 눈을 굴리며 막 대답하려는 찰나, 웨이트리스가 초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미소지으며 중국어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거 네가 주문한 거야?” 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좀더 로맨틱하다고 들었거든. 실은, 궁금해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네가 의견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군.” 그는 새우 크래커 몇 개를 입 안으로 던져넣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물어봐.”

최적의 로맨스에는 초가 몇 개나 필요해?”[각주:7]

존은 그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셜록과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완벽한 이방인에게 인류에 대해 설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실제로도 외계인일지도 모르지, 그는 생각했다. 저 골격 구조만큼은 확실하게 설명이 될 테니 말이다.[각주:8]

“거기엔… 실질적으로 정해진 숫자 같은 건 없다고 봐.”

셜록은 저 초가 개인적으로 모멸감이라도 주었다는 듯이 노려보면서, 제풀에 못이겨 씩씩거렸다. 처음도 아니긴 하지만, 셜록 홈즈라는 인간과 연애하는 사이가 될지 말지 생각하는게 이제껏 해왔던 생각 중 최악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까지 저 남자에 대해 남몰래 생각해본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삑, 울어대기에, 꺼내어 들여다보았다.


받은 메시지: 미등록 번호
달링! 그앤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뿐이라고 그랬잖아요. 저녁식사 근사해 보이네요. AH♡



존은 자리에서 고쳐앉으며, 어딘가에서 애러실리아의 감시 카메라를 발견해내기라도 할 것처럼 식당 안을 휘 둘러보았다. 당연하겠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마이크로프트 역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아해하며, 그 생각만으로도 확 불편해지고 말았다.


받는 이: 미등록 번호
밤새 지켜보실 건가요? J (추신. 어젯밤에 찍은 사진들 사본 좀 221B로 보내주세요)[각주:9]

받은 메시지: 미등록 번호
그저 두 사람 점검한 것 뿐인걸요. 마이크로프트는 외국에 있구요.[각주:10] 이제 자러 갈게요 - 그앤 온전히 당신 거랍니다 ;) AH♡



“그거 누구야?” 셜록은 유심히 쳐다보며 따지듯 물었고, 존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 것도, 누구도 아냐. 그냥 일.”

셜록이 눈을 가늘게 찡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 그때 마침 웨이트리스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두 사람 앞에 놓아준 덕에 열었던 입을 딱, 다물었다. 맛있는 냄새다, 존은 생각했다. 인도에 이탈리안에 중국 포장음식만 끊임없이 돌아가며 먹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 타이 음식을 먹어봤던 게 언제쯤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맛있는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곧바로 젓가락으로 고기 몇 점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잘 써본 적이라곤 없는 그였지만, 셜록은 짜증날 정도로 완벽하기만 했다. 명백한 거겠지만서도.

냄새만큼이나 맛도 환상적이어서, 두 사람은 한동안 말 한마디 없이 앞에 놓인 음식들을 우걱우걱 먹기만 했다. 존은 커리를 핑계로 셜록에게서 시선을 돌렸지만, 먹는 내내 그가 흘끔흘끔 쳐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부러 타이밍 맞춰 눈을 들었을 때, 셜록은 애정과 짜증이 반반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에 말해줬잖아, 아랫쪽 젓가락은 가만히 두고 윗쪽을 돌리라니까 - 꽤나 단순한 거라구.” 셜록이 밥을 입으로 가져가며 신음처럼 한소리 했다. 존은 꿋꿋하게 고추 한 조각을 쿡, 찌르며 그를 째려봐주었다.

“근데 왜 내가 며칠동안 참기 힘들거라고 생각한 거야?”

바로 전 대사에서 180도 바뀌어버린 화제에, 존은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셜록과 이야기한다는 건 외계인이랑 대화하는 것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는걸; 페이지가 몽땅 뒤죽박죽 섞여버린 소설책 줄거리를 짜맞춰보려 하는 거랑 더 비슷할지도.

“넌 사건 끝나면 항상 지루해하잖아. 심지어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텔레비전도 볼만한 게 없으니, 아무것도 생각할 게 없을 거거든. 나야 당연히 알지, 하루 진종일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는 툴툴거리며 대답해주었다. 

“음, 그럼 다른 쪽으로 할 거리를 찾아봐야겠는걸, 안그래.” 한쪽 입꼬리를 슬몃 끌어올리며 대답하는 셜록이다.

“어떤 거?”

셜록은 마치 그가 일부러 둔한 척 하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나무라는 눈빛을 쏘아보냈다.

“섹스라는 의미잖아, 존. 난 성적인 유희란 게, 데이트할 때의 시나리오에선 대체로 완곡한 표현으로 언급되기 마련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성행위에 대한 욕구를, 실제로 발생 직전까지 쌍방 모두가 언어적으로는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야. 가끔은 그때까지 안할 때도 있고. 이게 틀려?”[각주:11] 

존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셜록 버전의 작업이 아닐까 하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쌍방이 각자 이런 결론을 내리는 데는 별도의 뚜렷한 지표를 사용하는 것 같더군: 언어적 암시, 몸짓 언어, 감각적 감응, 그리고-” 셜록은, 말을 이으며 손을 뻗었다. “접촉이지.” 

그는 존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어루만졌다. 순간, 존은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르며 허리 아랫쪽에 묵직한 열기가 모여드는 걸 느꼈다. 셜록은 의기양양하게 씨익, 미소지었다.

“훌륭한걸, 너 동공이 확장됐네. 꽤나 만족스러운 피험자인걸, 존. 완곡하게 말하는 건 좀 부족했지만 말야.”

존은 그저 말없이 입을 딱 벌린채 고개저으며 테이블 건너편 셜록을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셜록이 정말로 신경써서 차려입은 것처럼 타이까지 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심지어 저 제멋대로인 머리마저도 눌러 다듬으려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뭔데.”

“그러니까, 그게-” 그는 입을 열긴 했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노리개… 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랬었잖아? 그랬던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조금 헷갈려서.”

눈빛이 살짝 어두워진 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지. 엄마는 어떠셔, 존? 아까 전에 너한테 문자 보낸거, 엄마였을 거라 보는데.”

존은 움찔, 놀랐고, 스스로 왜 숨기려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어젯밤 일이 어쩌다 180도 뒤바뀌어버렸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쯤에는 제대로 배웠어야 했으련만.

“뭐, 네 말 그대로야. 그리고 엄마께는, 난 당신이 짜두신 어이없는 판에서의 노리개가 되진 않겠노라고 전해드려도 돼.”

“그럼 무슨-”

“만약 내가 이걸 한다면,” 셜록은 존의 손을 뒤집더니, 갑자기 손가락으로 그 손바닥을 훑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마음먹고 -  방식대로 한다면 말야. 어머니 말고.”

불현듯 이 모든 사태 뒤에 숨겨진 목적을 이해해버린 존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 오늘 아침, 셜록이 그 집에서, 그 어머니에게서부터 황급히 떠나버린 것. 첸 씨와 린을 위해 하루 종일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매달린 것도. 복싱 데이,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식당에서의 이 기묘한 데이트까지도 모두.

“난, 어머니께서 도와주지 않아도 완벽하게 할 수 있단 말야.” 셜록은 한데 얽은 서로의 손가락을 무섭게 쏘아보며 궁시렁거렸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구.”[각주:12] 

존은, 난생 처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이해하려 애쓰는 이 고집불통 꼬맹이를 향해 씩 웃어보이며 셜록의 손에 다른 손을 포갰다.

“관계란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말야,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라고 봐.”

그 말에, 셜록은 눈을 들어 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아주아주 미세하게 커지는 것 같더니, 이내 눈가에 살며시 주름이 잡힌다.

“뭐, 네가 도와줄 수 있겠지.” 셜록은 수긍하며 부끄러운듯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미소에 가슴이 덜컹 흔들리는 존이었다. 그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 이제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 최고로 기이하고, 짜증스럽고, 믿어지지 않는 - 이 놀라운 남자를 바라보며, 대체 어쩌다 빠져버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럼. 그 말은 우리가-”

“그렇다고 봐.”

“그렇군.”

셜록은 조심스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하는 것 같달까. 존은 힌트따윈 주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자신의 잔에 남아있던 와인을 꿀꺽, 넘겼다. 셜록은 거의 비어버린 그의 그릇을 가리켰다.

“다 먹은거-”

“맞아.”

“난 첸 씨에게 인사라도 해야겠어, 그런 다음엔…”

셜록은 또다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난감하다는 듯 존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존, 내가 이런 것들을 정말 잘 할지 확신이 안 서.” 이제껏 만났던 세상 누구보다도 똑똑한 사람이 완전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모습에, 존은 하마터면 싱글 웃어버릴 뻔 했다.

“그렇다면야 네가 빨리 배우는 편이란 게 다행이겠네.” 그는 말했다. “우린 해결해낼 거라 장담하거든.”

정말 솔직히, 그게 뭐가 될지는 알 수 없긴 하지만. 둘이 뭘 한단 말인가? 손 꼭 붙잡고 범죄 현장을 거닐어야 하나? 시체 안치소에서 그 짓이라도 할까? 사건에 매달려 있을 때면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란 걸 둘 줄 모르는 셜록이었기에, 사귀게 된다 해도 바뀔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지조차 잘 모르겠는걸, 그는 생각했다.

“그럼 우린 이제 뭐하지?” 셜록이 대뜸 물었지만, 영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가는거지.” 존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해주었다. “우린 베이커가로 돌아갈거야. 보통 때처럼 말야.”

“그리고 나선?”

“뭐, 우린 할 거리를 찾아낼 거거든.”

“예를 들면?”

존은 테이블 맞은편의 친구를 향해 히죽 웃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한마디 던졌다.

“섹스라는 의미잖아, 셜록.”

“그렇군.” 셜록은 꿀꺽, 힘겹게 마른침을 삼키며 한마디 했다. “좋아. 그거 좋네.”

존은 그대로 돌아서서 식당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이번만큼은, 셜록이 그를 쫓아오게 두고서.



+)
그러니까 홈즈 가의 크리스마스 사태를 한줄로 요약해 보자면…
‘고집불통_셜로기와_치맛바람_어머니.txt’라든가 ‘알아서_척척척_스스로_셜로기.mp3’ 정도려나? :P 
작업 정도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며 제멋대로 가출해버린 셜록 어린이와 
그 꼬맹이가 좋아 죽는 존 아저씨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는 - 사랑스러운 어느 크리스마스 이야기.
내내 미소짓게 되는 귀여움에, 생각날 때마다 읽곤 했던 글이다. 들러주신 분들도 모쪼록 행복하셨기를! : ]



  1. ‘You said you'd been hankering for Thai food’ - 2편 참조. 먹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는 셜록 :D [본문으로]
  2. ‘Patara’ - 유명한 타이 음식점 체인. 런던에 분점이 있다: http://goo.gl/dbz1k [본문으로]
  3. ‘whatever intentions you'd had had gone right out the window’ - go out the window는 없어진다거나 사라졌다는 의미의 표현. 각주4에 이어서. [본문으로]
  4. ‘or did you use the door?’ - 앞의 the window를 받아서 the door라고 되물어보는, 나름 냉소 섞인 반문인 셈. 하지만 말 그대로 옮기면 뉘앙스가 안 살아서 의미 중심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5. …음식을 그렇게 소개하면 그걸 누가 먹겠니;; [본문으로]
  6. 'nua tom kati' - 파타라에서 서비스하는 신선한 라임과 레몬그라스, 칠리를 넣어 향긋하고 진한 코코넛 소스로 서서히 졸여낸 소고기 요리(£14.25)… 라고. 요리 사진과 후기는 여기: http://goo.gl/0L825 [본문으로]
  7. …셜록;; [본문으로]
  8. …존;; [본문으로]
  9. 따지는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는 당당한 남자 존♡ [본문으로]
  10. …생각은 읽지 마세요, 어머니;; [본문으로]
  11. 완전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느낌이라 옮기는 것도 부러 딱딱한 말투로… 이런 셜록같으니라구 orz [본문으로]
  12. ‘I can do it on my own.’ - 셜록 어린이, 그래쩌요?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