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Dates of Vast Importance
- 저자: mia6363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3세 이상 (PG-13)
- 길이: 단편 (약 7,300단어)
- 경고: <The Great Game>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세상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주는 존!
- 역자 주석: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 http://mia6363.livejournal.com/46497.html#cutid1
* 2010년 2월 4일 오전 6:45 - 존 H. 왓슨 재채기하다
사람들은 인생의 1/3을 잠자는 데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셜록은 서성이다 말고 화가 난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어이없는 종족에 속해있는 거지?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이제 셜록은 깨어있는 시간 48시간당 3시간 수준까지 수면량을 줄여낸 상태였다.
존 왓슨은 딱 런던의 다른 모든 사람들만큼 자곤 했다. 10시 30분이면 하품하기 시작했고,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7시간을 잤으며, 6시 10분이면 셜록은 부엌에서 차와 토스트를 준비하는 존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타일바닥 위에서 존의 체중이 이동하는 것이 느껴지면, 셜록은 발가락을 꿈지럭거리며 의자에서 기지개를 켠다.
해어진 천이 스륵거리는 부드러운 소리를 듣고 셜록은 존이 예의 그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옆부분의 구멍들이나 그가 입는 빈도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선물받았은 것이거나 아끼는 파자마 웃옷일 테다. 눈을 감으면, 살갗이 맞닿는 소리에서 존이 사각팬티를 입고 있고, 무릎과 허벅지가 가끔 스치곤 한다는 걸 알아낼 수 있다. 셜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붉은 것은, 허리 부분에 고무밴드가 있는, 거의 3~4년쯤 된 진홍색 플란넬 속옷이다. 아니면 검은 색. 비교적 새 속옷이고, 플레이보이 토끼로고가 허리에 있는 걸 봐서 아마 예전 여자친구가 준 선물일 테다. 그녀는 아마 스스로가 영리하다고 생각했을 테지.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존에게 그걸 선물했을 때, 이 의사의 귀끝이 발갛게 물드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서 부엌 쪽을 바라보았다. 초록색 티셔츠, 어두운 붉은색 속옷.[각주:1] 어떤 사람들은(바보들) 존에게 추운 계절인데도 왜 옷을 껴입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셜록은 존의 피부에 잘게 돋아난 소름들과, 눈을 깜박거려 빠르게 잠을 깨는 과정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존에게는, 추운게 짧고 효율적인 시간에 빠르게 잠에서 깨어나 기민한 상태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거다.
토스트와 잼을 보지도 않은 채 존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은 아침.”
셜록은 몸을 펴고, 의자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뭔데?” 존은 엄마나 마이크로프트처럼 한숨을 쉬거나 눈을 굴리지 않는다. 그는 미소지어주었다. 조금은 삐딱하고 불완전하지만, 셜록을 바라보면서. 셜록은 스토브 위의 주전자를 흘긋 살폈다. “생강차로 하지, 자네 속 좀 편해질거야.”
웃음 반, 한숨 반, 셜록은 존의 반응이 이상했다. 난 농담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존이 수납장을 바라봤을 때, 이미 셜록은 수납장을 열고 키 작은 존 너머로 팔을 뻗어 상자를 꺼내주었다. 존은 고분고분히 받아들었다.
“고마워.”
셜록은 그저 툴툴거릴 뿐이었다. 그가 오늘은 어떤 실험을 할지를 고심하며 냉장고로 향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왓슨 선생은 어때?
마이크로프트 홈즈
존은 곰팡이 실험물을 보면 메슥거림을 참았지만, 전자레인지의 눈알들은 재미있어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돌아서는 그의 입끝이 살짝 올라가니까.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좀더 지독한 악몽을 꾸며, 대략 3일에 한번 꼴로 뒤척이곤 한다. 심리적인 문제로 절뚝거리던 것은 없어졌고, 대부분 셜록에 대한 이야기 뿐이라 심리치료사가 조금씩 성가셔하긴 했지만, 그는 블로그도 썼다. 2주간에 걸쳐 그녀는 셜록과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그녀 딴에는 조심스럽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조언했다. 안그래도 예약을 줄여가고 있던 존은, 그 이후로 아예 찾아가는 걸 그만뒀다.
셜록은 "좋아"라고 타이핑했지만, 존이 굉장한 소리를 내자마자 핸드폰을 밀어놓았다. 마치 생쥐가 딸꾹질이라도 하는 듯한 고음의 '끽' 소리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존은 어깨부터 귀끝까지 센티미터 단위로 서서히 발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존이 다시 긴장하는 걸 바라보며, 셜록은 혀끝으로 입 안을 훑었다.
“존?” 가엾은 의사 선생은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뭐였어?”
“아무것도 아냐.” 존은 뺨에 홍조를 띤 채 돌아섰다. “그냥, 어, 재채기한 것 뿐이야.”
셜록은 벽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초침이 조금씩 12에 가까워질 때마다, 존의 손떨림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셜록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재미있군. 다시 해봐.”
“뭐?” 존은 눈을 깜박이더니,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싫어.”
“좋아!” 셜록은 손을 마주 비볐다. “최고로 재미있는 소리야. 자네 성대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다니 신기한데. 다시 해보라구.”
존은 웃었고, 셜록은 후추를 한움큼 들고 부엌으로 존을 쫓아들어갈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 대신, 그는 존과 그의 놀라운 재채기 소리를 늘 기억할 수 있도록 그날의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기록해두었다.
(그 이후, 전략적으로 놓아둔 후추 덕분에 존은 또 재채기했다. 그는 웃었고,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 2010년 3월 1일 오전 2:35 - 존 H. 왓슨 바느질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이 내 옷을 꿰매주었다)
이 사건은 셜록으로 하여금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새벽 2시 15분에 일어나게 만든, 몇몇 작은 일들에 이어서 발생했다.
주초에 레스트라드가 지나가는 말로 셜록의 스카프에 대해 언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셜록이 한 남자의 시신(40대 후반, 15년 이상의 결혼생활, 동성과의 불륜관계)을 살펴보던 중에, 레스트라드가 평소에 말도 안되는 결론들 사이에서 헤맬 때처럼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자네 스카프 좋아보이는데.”
여전히 시신을 주시하며, 셜록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구요?”
“자네 스카프 말야.” 셜록이 그 남자의 잘 손질된 손톱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레스트라드는 돌아서 물러섰다. “너저분해보이지 않는걸.”
당시에는, 셜록은 ‘레스트라드는 바보’ 폴더로 그 정보를 밀어넣듯 보관해두었었다.
하지만 다시 같은 일이 발생했다. 도노반은 뭔가 ‘가난뱅이에서 벼락부자되기’ 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셜록은 그녀의 비난조인데다 부적절한 지적들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셜록과 존이 범죄 현장에서 나서던 그때, 앤더슨이 낄낄거렸다.
“존이 네 옷까지 챙겨주는거냐, 아니면 드디어 네놈도 외모 자랑이란 걸 하고 싶어진 거냐?”
도노반이 그 뒤로 다가섰다.
“괴물.”
천치들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그렇고 그런 낡아빠진 잡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채로운 존의 반응이 셜록의 관심을 끌었다. 보통 그들이 하는 말이 특히 심해질 때면, 존은 명백하게 분노를 누르며 이를 악물고 손끝을 움찔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존의 귀끝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언급한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왜 당황하는 거지? 물론, 존이 셜록의 옷 상태에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셜록은, 자기 옷 정도는 - 허드슨 부인이 집밖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을 만큼 구멍나거나 찢어질 만큼 해지면 - 스스로 샀다. 존은 한번도 셜록에게 옷을 사 준 적이 없을 뿐더러, 분명 셜록 꾸미기같은 어이없는 일 따위도 하지 않았다. [각주:2]
그러나 어쩐지 존은 셜록의 옷차림과 자신을 연관짓고 있는 것 같았고, 셜록은 새벽 두시가 되어서야 갑자기 그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장으로 향했다. 피로 얼룩진 누더기(마른 혈액의 농도와 외형에 대한 현장 실험이었다)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셔츠를 끄집어냈다.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상태였다. 아니, 아니야. 틀려. 셜록은 불빛 아래서 진푸른 셔츠를 살펴보았다. 연쇄 자살 사건으로 택시기사를 뒤쫓았을 때(그러니까, 존이 "분홍색 연구"라고 이름붙였던) 그는 소맷부리를 잘라냈었다. 그는 옷과 살갗 모두 찢어지고도 남을 만큼 세게 벽돌에 부대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했다.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았다. 소매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수선된 거였다, 마치 생채기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길게 숨을 내쉬며 셜록은 손끝으로 천을 쓰다듬었고, 찾아냈다. 부드럽고, 거의 보이지 않는 가늘고 흰색 바늘땀 자욱을. 누군가가 그의 셔츠를 기워준 것이다.
흥미롭군.
차. 그는 차를 마시고 싶었다. 셜록은 셔츠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문을 열려 했지만, 바깥쪽 바닥에 세워둔 의자가 그를 멈춰세웠다. 셜록은 잠시 멈춰서서 30까지 센 다음, 천천히 문을 열었다.
은은한 빛이 셜록의 어두운 방 안으로 새어들어왔다. 셜록은 큰 방으로 난 가느다란 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을 깜박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셜록은 역시 옳았다.
존은 셜록을 등진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부엌 의자들 중 하나에는 셜록의 쪽빛 스카프와 검은 바지가 걸쳐져 있었고, 존의 옆에는 색색의 실타래들이 놓여있었다. 셜록은 한땀 한땀 놓을 때마다 플랫메이트의 어깨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모습을, 왜인지 궁금해하며 잠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존이 스카프로 손을 뻗었을 때,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라도 던져진 것처럼 셜록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지난 몇주간, 존은 청구서들에 대해 투덜거리며 한숨을 쉬곤 했었다. 무의미하고, 끊임없는 청구서들. 돈. 그는 셜록의 옷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입을 수 있게 해서라도 저축하려 노력하고 있던 거였다.
셜록은 좀더 바라보고 있다가, 노트북으로 돌아서며 새 데이터셋을 기록해두었다.
* 2010년 3월 13일, 오전 7:35 - 존이 잠든 나의 신발을 벗겨주다
또한, 그는 의자에 담요를 더 꺼내둔 장본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런던이 흥미로운 범죄자들로부터 해방이라도 된 것 같은, 길고 끔찍한 지루한 날들 중 하루였다. 존이라면 하루 종일 기꺼이 병원에 앉아있었을지도 모르지만(하지만 솔직해지자. 존 역시 그런걸 싫어한다) 셜록은 견딜 수 없었다. 그에게는 할일이 절실했고, 그 피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정체기 동안 모든 걸 다 해봤다.
물론, 셜록은 그렇게나 오랫동안 모든 걸 할 수 있긴 했지만, 그런 다음이면 의자에서 의식을 잃다시피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셜록은 그를 배신한 육체가 언제부터 휴식에 들어갔던 건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의자까지는 와서 쓰러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난번에는 피곤한데다 분노한 존 왓슨이 부엌 바닥에 있던 그를 흔들어 깨워야 했으니까.
셜록은 이러한 몇번의 강제 수면 상태에서는 단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 그는 물 속에 있거나, 중력이 그의 몸을 받쳐주지 못하는 우주공간에서 떠돌듯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잠재의식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었는데, 그때 무언가가 그를 기슭으로 끌어당겼다. 이번 경우엔, 그의 신발끈에 올려진 손가락이 그것이었다. 셜록은 그의 정신이 휘감겨오는 수면의 물살 속에서 그를 끌어내어 의식 상태로 되돌려놓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눈꺼풀을 들어올렸고, 때마침 존이 셜록의 다른 쪽 신발로 손을 뻗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존은 셜록의 자잘한 상처들을 치료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또 정확하게 셜록의 신발을 벗겨냈다. 셜록은 다시 눈을 감았고, 조심스럽게 만지고 당기는 존의 손가락과, 이어서 다른 쪽 신발을 부드럽게 벗기는 느낌에 집중했다.
셜록이 만약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이런 순간과도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상상해봤다; 부드러운 불빛, 나지막한 소리, 다정한 애무. 셜록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고, 무릎을 펴고 일어날 때 존의 숨소리가 잠시 멎는 것을 들었다. 그는 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셜록은 전형적인 잠든 사람처럼, 표정을 풀고 느릿하고 안정된 숨소리를 낼 수 있도록 주의했다.
존은 잠시 멈춰섰고, 셜록은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이 선량한(대단하고, 환상적이기까지 한) 의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셜록을 빤히 쳐다본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분석하려 들고, 레스트라드는 그를 이해하려 하고, 도노반은 씹어댈 만한 새롭고 역겨운 떡밥을 찾으려 한다. 앤더슨도 바라보긴 하지만, 그의 시선은 생명이 없는 시체의 그것과도 같다. 활기없는, 따분한.
하지만 존은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는 바라볼 때, 보통 ‘훌륭해’나 ‘굉장해’같은 말들을 내뱉곤 한다. 그는 셜록이 괴물이 아닌(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말 천재인 것처럼(실제로도 그렇다) 바라본다. 존은 그를 칭찬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셜록은 이번에는 존이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고 싶어졌다. 하지만 셜록이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직전에, 존은 몇 발짝 다가와 담요로 셜록의 몸을 덮어주었다.
당연하게도, 존은 셜록을 꼭꼭 감싸넣는 것까지도 철저했다. 셜록은 집중하려 애썼지만, 존의 손가락 때문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존은 손끝으로 셜록 옆쪽을 따라 가장자리를 - 너무 세지 않게, 셜록이 정어리통조림이라도 될 듯 꽉 끼어버리지 않도록 - 눌러가며 담요를 펴 주었다. 존 덕분에 편안해졌다.
존은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준다.[각주:3]
몇시간 지난 후이긴 했지만, 셜록은 결국 이 사건을 기록해두었다.
* 2010년 4월 5일 오전 12:11 - 존이 나 대신 총을 맞다
만약 셜록이, 모리어티와의 게임이 지금까지 경험해본 모든 것 중 가장 신나는, 선풍적인 즐거움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우수한 지성으로 한데 버무려놓은 퍼즐, 도전. 셜록과도 같은 지성 말이다. 이 지루한 세상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결국 같이 놀 누군가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존은 피곤했다. 그의 눈빛과 등허리, 어깨에 온통 피곤함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는 재미있지도 않았다. 셜록은 이 의사 선생에게 설명해줄 수 있길 바랬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아드레날린의 파동을 느끼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바빴다. 그야말로 장관이자, 환상적인 여정이었다. 셜록은 마냥 신난데다 심지어 기쁘기까지 해서, 문제의 풀에 들어설 때에는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존이 샘텍스(Semtex) 폭탄을 두르고 나타났다. 존의 심장 바로 위에 레이저포인트가 겨냥된 채로… 갑자기 세상이 전혀 아름답지 않게 보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모든 것이 역겨우리만치 추악하게 바뀌었다. 존, 피곤하고, 아름답고, 충직한 존이 위험에 처했다. 셜록 때문에… 셜록의 처음이자 단 하나뿐인 친구였기 때문에.
모리어티는 놀이상대나 그 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셜록의 시야를 날카롭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셜록이 알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더 - 이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모리어티가 떠나자마자, 셜록은 떨리고 아파오는 걸 느끼며 존의 몸에서 조끼를 벗겨내 던져버렸다. 그는 존을 바라보고 잠시 출구를 확인하러 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존은 축축한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셜록의 손에 쥐어진 총은 무거웠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존은 우스운 농담을 던졌고, 셜록은 그제서야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존을 일으켜주려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집으로 돌아가서, 차를 마시고는 텔레비전 앞에서 잠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붉은 레이저포인트가 나타났고 모리어티가 되돌아왔다 - 셜록은 빠르게 존을 바라보았고, 갑자기 알아차렸다.
폭탄. 폭탄을 쏘는 거다. 모두 죽을 확률은 70%. 느리지만 확실히 사망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을 확률은 25%다. 셜록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고, 존의 몸이 단단한 벽처럼 그에게 부딪쳐왔다. 불길은 모든 것을 삼켜버렸고, 그들이 물 속으로 빠지기 바로 직전에 총알이 스쳐지나갔다. 존, 몹시도 충직한 그가, 확률마저 이겨낸거다.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불타는 와중에도, 물 속에서는 모든 것이 유쾌할 만큼 조용했다. 괜찮은 휴식이었다, 존의 몸이 꿈틀대기 전까지는. 셜록이 눈을 떴을때, 보이는 것은 붉은색 뿐이었다.
피. 존의 피다.
존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뱉었다. 그들은 수면으로 올라와, 열기 뒤로 물러났다. 셜록은 물 안에서 버틸 수도 있었지만, 존은 그렇지 못했다. 셜록은 야트막한 가장자리로 끌고 나왔다. 그는, 맹렬하게 붉은색 피를 뿜어내고 있는 존의 멀쩡한 어깨(예전에 멀쩡했던)에 손을 올렸던 것을 기억했다.
“젠장, 존- 어떻게- 무슨 일이야?”
건물이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셜록은 곧바로 존이 자신을 밀쳐낼만큼의 분별력이 있다는 데 기뻐졌다.
“가자!” 불꽃과 쓰러져가는 건물 따위는 셜록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셜록을 맞추어야 했을 총알로 인해 흘러나오는 피 뿐이었다. 존이 없었다면 정확히 셜록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들이 달릴 때까지, 존은 셜록의 손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가자, 당장 가야해!”
* 2010년 4월 6일 오전 1:03 - 존이 내 손을 잡다
마이크로프트는 중요한 순간에 쓸만하다는 걸 걸 입증해보였다. 어둠 속에서 구급차의 불빛이 깜박일 때까지, 셜록은 숨돌릴 새 없이 바빴다. 셜록은 장갑을 벗어던지고는 존의 어깨 상처에 손을 대고 눌렀다. 존은 짧은 신음을 뱉어내면서도 셜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고마워.” 그들 둘 다 완전히 젖어버린 상태였고, 존은 살짝 떨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핥았지만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괜찮아, 셜록?”
셜록은 손끝이 움찔거리는 걸 느끼며 눈을 깜박였다. 그는 다른 손으로 존의 얼굴을 감싸고, 존의 눈을 응시했다.
“뇌진탕인게 분명하군. 세상 누구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정말이지. 존, 너 총 맞았다니까.”
존은 짧게, 조금은 큰 소리로 웃었다. 셜록은 상처를 계속 누르고 있었고, 존의 호흡은 거칠었지만 확실했다. 붉고 푸른 불빛이 멀리에서부터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의 주름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는 셜록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깍지껴 쥐었다.
셜록은 그가 납빛 얼굴로 기우뚱거리면서 일어서는 걸 바라보았다. 존은 가볍게 웃었지만, 셜록이 좋아하던 평소 웃음보다는 공허하기만 했다.
“이 모든 걸 블로그에 올리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그 말에 셜록은 작게 미소지었고, 존이 좀더 제정신을 차리게끔 흔들기라도 하고픈 충동을 억눌렀다.
“곧 뭔가 생각날 거야.”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셜록은 입술 끝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
“자네 그 감상적인 모험담 취향은 좀 자제해보라구.”
다시금 함께 웃는 그들의 모습에, 구급대원이 혼란스러워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존과 셜록은 구급차 뒤쪽으로 끌려들어갔다. 존의 셔츠는 잘려나갔고, 셜록은 어깨에 또다른 주황색 담요를 덮게 되었다. 실려가는 내내 셜록의 손은 존의 손과 서로 얽혀 있었다.
* 2010년 5월 10일 오전 12:05 - 존이 나와 잤다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존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사체가 부패되는 걸 관찰하는 것과도 같았다. 자연스럽고, 시간이 걸리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이 의사는 병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도 먹는 건 더 줄어들고 있었다. 셜록이 걱정해서가 아니라(그는 걱정같은건 안한다) 존의 신체는 셜록처럼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존에게는 평균적인 인간의 신체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했고, 이대로라면 오늘 내일 중으로 쓰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셜록은 그저 존이 일단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도와줄 셜록이 없는 어딘가에서 이 의사가 문제라도 일으키게 되는 건 참을 수 없을 테니까. 셜록이 걱정해서가 아니다(그는 그런거 안한다).
셜록은 열다섯 잔의 차를 마셨고, 존의 블로그에 올라온 모든 글과 덧글들을, 그것도 세번씩이나 읽었다. 셜록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계단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셜록은 문으로 다가갔지만, 허드슨 부인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셜록은 그쪽을 노려보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셜록은… 감정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감정이란 건 골치아프고, 예측할 수 없는데다 개개인마다 주관적이기까지 했다. 모방하거나 조작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건, 셜록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눈을 감으며, 셜록은 존을 떠올렸다. 이 의사는 특히, 셜록에 대해서는 참을성 있는 남자다. 그는 셜록이 하루 종일 입을 다무는 거나 바이올린 소리마저도 참아주었고… 존 스스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는 셜록을 친구로 생각해주고 있었다. 친구. 동료부터 인생의 파트너까지, 폭넓게 다양한 의미를 전해주는 세계다. 함께 여행하고, 살아가고, 웃는 -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정서적인 도움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친구 말이다.
그게 문제였다. 셜록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유혹할 수도, 지금보다 더 남들의 마음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게임의 일부였을 뿐, 진짜는 아니었다. 셜록이 꾸며낸다 해도 존은 알아차릴 테다… 존을 다른 모든 놈들처럼 취급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치밀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마룻바닥이 삐걱거렸고, 셜록은 눈을 떴다.
소매를 반쯤 걷어올린 구겨진 셔츠를 입은 존이, 문에 기대서 있었다. 셜록은 존을 바라보았고, 존 역시 그를 마주보았다. 셜록은 마음 속으로 끝없는 가능성과 경로들을 모두 점검해보았다.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봐야 하는 건가? 무언가 말해야-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하나? 이상했다; 셜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존은 앞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금방 셜록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서 있을 기운마저도 모두 다 써 버린 것처럼, 쓰러지듯이. 존은 눈을 감은 채로 뒤로 고개를 기대며 입을 열었다.
“텔레비전에서 볼 만한거 해?”
셜록은 푸념하듯 대꾸했다.
“늘 하는, 하찮은 것들 뿐이야.”
존은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떴다.
“듣기만 해도 지루하군.”
“믿기조차 어려울 만큼 그렇지.” 거리에서의 소리들이 벽을 타고 부드럽게 울려왔다. 런던만의 교향곡. 어둠 속에 나란히 앉은 채, 셜록은 존이 자세를 고쳐앉는 걸 바라봤다. “어깨는 어때?”
존은 그에게 거짓말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물어볼 때는 거짓말로 응수했지만, 셜록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 쑤시지만, 나아지고 있어.” 이제 셜록은 존 가까이에 있었지만, 사라의 향수냄새도 나지 않았고, 그녀가 존의 뺨에 입맞출 때 남겨지던 희미한 립스틱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존의 눈가에서 느껴지는 건 무겁게 자리잡은 스트레스와 부끄러움 뿐이었다. 아… 존과 사라가 헤어졌군. 아니라 해도 곧 그렇게 될 테지만.
“새 사건이라도 찾았어?”
“아니.”
존은 당황스러워하는 듯한 소리를 냈고, 셜록은 몸을 틀어 의자 뒤로 한쪽 팔을 올리며 물었다. “왜 그랬을거라 생각했지?”
“자네가 방금, 당장이라도 모든 걸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을 지었는걸.” 셜록을 쿡 찌르는 존의 삐딱한 미소가 달빛 아래서 부드럽게 빛났다. “난 괜찮아, 셜록. 걱정하지 않아도 돼.”
셜록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난 걱정한거 아닌데.”
“어련하시겠어.” 존의 목소리에 미소가 묻어났다. “내가 미쳤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뚜렷한 목적 없이 (쓸모없는) 수다를 떨곤 한다. 평화로운 침묵이 어디가 그렇게나 두려운 건지, 셜록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존을 만난 그날 셜록은 알 수 있었다. 존은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걸. 존은 할 말이 없을 때 침묵을 깨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 있었고, 몇 시간 지나서 잠에서 깨기 전까지는 셜록은 스스로 잠들었었는지도 몰랐다.
그가 처음 알아차린 건, 존의 샴푸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셜록은 눈을 깜박였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를 추리해 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 시점엔가, 아마도 자정 무렵에 그들은 잠이 들었던 거다. 잠재의식 속에서, 몸이 알아서 온기와 (또는)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 맞닿아 있다는 편안함을 찾아간 거겠지. 그렇게, 존의 머리카락 사이에 셜록이 코끝을 묻은 채로 아침이 온 것일테다.
존을 깨워 밀어내는 대신, 셜록은 가만히, 다시 눈을 감았다. 나중에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2010년 6월 17일 오후 8:47 - 존이 나에게 선물을 사주다 (아마도 기념품)
존이 며칠간 해리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을 때, 셜록은 그저 툴툴거리기만 하고는 계속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는, 오후 7시가 되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전까지 정말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셜록은 바이올린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잽싸게 핸드폰을 꺼내어 짧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나 있을건데?
SH
존에게서 답을 받기까지, 셜록은 꼬박 5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틀, 아니면 사흘. 왜?
셜록은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답하고는, “그냥.”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57시간 동안 무얼 했느냐고 존이 묻기라도 한다면, 셜록이 조리있게 답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첫째 날, 셜록은 탈진 요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그 앞에 가로놓인 모든 대상에 대한 실험을 했고, 그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할 때까지 깨어있었다. 셜록은 어릿한 탈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고, 기억나는 건 익숙한 내음의 부드러운 무언가 위로 쓰러져버렸다는 것 뿐이었다.
둘째 날, (오후에서야) 셜록은 자신이 존의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 셜록은 온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뚜렷한 존의 내음을 분류해넣었다. 존의 시트는 별다른 특징 없었고, 매트리스는 딱딱하고 단단했지만, 기댈만 했다. 머리가 쑤시는 걸 느끼며, 셜록은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셜록의 두통은 잦아들었고, 편두통은 곧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셜록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짙은 푸른색 티셔츠를 발견했다. 그저 그 냄새가 두통을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되뇌이며, 그는 티셔츠를 집어 입었다. 외로운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셜록 홈즈는 외로움 따위 절대 느끼지 않으니까. 셜록은 몇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존의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셔츠는 그대로 입고 있었다.
둘째 날에는 계속 바이올린을 들고 돌아다니면서도 절대로 연주는 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차를 끓여 마시면서 하루를 보냈다. 셜록은 지루했다. 자주 그러긴 했지만, 이번의 지루함은 왠지 기분 나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할 거리를 만들어냈지만, 끝까지 하고 있기에는 너무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셜록의 머릿속은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찼고,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레스트라드가 문자를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셜록은 굳이 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셜록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거라 믿었다.
존은 한 손에는 바이올린 활을,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셜록을 발견했다. 셜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버린 채로 바닥에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존을 올려다보았던 걸 기억했다. 존은 가방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그의 옷, 다른 하나는- 셜록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서점에서 가져온 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허드슨 부인이 심하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셜록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일어났다.
“지독하게 지루하긴 했지만, 별다른 건 없었어.” 존은, 셜록으로 하여금 따라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미소를 얼굴 한가득 지어보였다. “해리는 어때?”
“좋아.” 존의 눈가에 남아있는 긴장감에서, 셜록은 그녀가 여전히 술버릇을 고치지 못했지만 전만큼은 아니라는 걸 읽어낼 수 있었다. 작은 발전이군. 존은 수수께끼의 종이봉투를 셜록에게로 내밀었다. “이걸 보니 네 생각이 나더라구.” 셜록은 존의 젖은 손으로부터 봉투를 받아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당연하게도 책이었다. 존은 자켓조차 벗지 않은 채로, 셜록이 펼치기 전에 겉표지 뒷면의 안내글부터 읽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존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어깨를 조금 치켜올렸다. “폴 에크만(Paul Ekman)은 아무말 없이 자세만으로도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더군. 난, 어, 네가 재미있어할 것 같아서-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셜록에게 선물을 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책에서 눈을 들어 미소지어보이고는, 서둘러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셜록은 그의 새 책에 푹 빠져 있었다. 존이 자기 옷을 입고 있는거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 2010년 6월 24일 오후 11:21 - 내가 존 대신 총을 맞다
솔직히 셜록은 왜 그렇게 호들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존이 셜록 대신 오른쪽 어깨에 한 방 맞았었고, 이 상황을 단순하게 보면, (어떤 뜻으로는) 그저 보답한 거라 할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존이 이런 상태인지라, 셜록은 그저 그렇게 생각만 할 뿐 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여느 사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영감을 한껏 자극했고, 존도 몇 마디 가벼운 농담을 던져댔다… 크리스마스보다 좋았다. 셜록은 살인범이 어디 있을지 알고 있었고, 런던 현지 사건이었기에 자신도 있었다. 셜록은 런던이라면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었는데다, 존이 옆에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보통(완전히 보통은 아니지만) 남자 덕분에 이렇게나 큰 기쁨을 느끼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매혹적인 시간에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존이 레스트라드에게 어디에서 만날지 문자를 보냈다. 경찰이 그곳에 도착할 때쯤이면 셜록은 살인범을 잡았을 테지. 셜록은, 존이 짧게 숨을 고르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던 걸 기억했다.
“준비됐어?”
셜록은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단지, 그들이 실제로는 준비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셜록은 언뜻 존 뒤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았다. 총의 달칵 소리를 듣자마자, 셜록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다. 총성이 런던 거리를 울리던 바로 그 순간, 그는 존을 밀쳐 넘어뜨렸다. 존은, 군인답게 권총을 뽑아 두 발을 쏴서 살인범을 쓰러뜨렸다. 셜록은 눈을 깜박이며 존의 놀라운 사격술과 반사신경을 칭찬해주려던 순간… 어깨의 뜨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는 짧은 신음을 토해냈고, 존은 모랫바닥에서 시선을 들었다.
존의 얼굴은 걱정스러우리만치 암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일어서서 상처에 손을 얹고 꾹 눌렀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이 셜록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고, 거의 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존이 간신히 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분별력을 찾았을 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너- 이 멍청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셜록은 욕이 나오는 걸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존-“
“그만둬.” 존은 그를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짓이었다구, 셜록.”
“널 쏘려고 했잖아, 존.”
그 말에 이 의사는 할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총알이 지나간 상처를 손으로 누른 채 그저 셜록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청난 통증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괜찮을 거라며 존을 안심시키기 위해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셜록의 피가 존의 손가락 위로 방울방울 흘렀고, 셜록은 존에게 기대어 이마를 맞대었다.
존은 희미하게 괴로운 듯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대로 셜록에게 기대왔다.
* 2010년 6월 24일 오후 11:39 - 처음으로 존이 우는 걸 보다
이번에는 존이 눈에 확 띄는 주황색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레스트라드는 존이 셜록과 함께 구급차에 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셜록은 숨이 멎는 것 같았지만, 응급 구조요원 중 하나가 금방 모르핀을 놓아주었다. 그는 눈을 깜박였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총을 맞은 자리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 주변 피부들이 뜨겁게 일어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셜록은 구멍 주위를 검지손가락 끝으로 따라 쓰다듬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존이 그의 손을 쳐냈다.
“제발 좀, 셜록-“
셜록은 말을 하려다 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쯤 되면 존에게 더 궁금한 게(알고 싶은 것도) 없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빈정대려던 농담조의 말들 모두, 그의 친구를 제대로 보자마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존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시선은 바닥으로 떨군 채, 손마디가 하얗게 될 만큼 무릎을 꽉 쥐고 있었다.
진통제를 먹었을지언정, 셜록이 존의 어깨의 떨림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는 물줄기를 못 보고 지나칠 리가 없었다. 셜록은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수없이 봐 왔지만… 누군가가 그를 위해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셜록은 항상 감정들이란 보기 싫고 짜증스러운 거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었지만… 재고해볼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존의 모습은 전혀 보기 싫지도,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셜록은 입술을 핥고는 조심스레 존의 손마디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드는 존의 얼굴에서 눈물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구급차가 또 덜컹거렸고, 다시 안정될 즈음에는 존의 손이 셜록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
* 2010년 6월 27일 오후 9:58 - 존이 내게 키스했다 (이게 그가 했던 첫 번째였다)
“긁지 마.”
존이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는 걸 보니, 얼마 전 있었던 모험으로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셜록은 무릎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쳐댔다.
“바디랭귀지를 읽어내는 게 점점 늘고 있군그래, 존.”
셜록의 어깨에 붙어 있는 반창고는 건조하고, 가려운데다 분명 답답했다. 묵직한 고통 때문에 거슬린 지도 꽤나 오래 지났다. 셜록이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빌어먹을 봉합 자국… 어리석은 인간의 삶이라니.[각주:4] 셜록의 상처에 대한 그나마 긍정적인 의견이라고는, 의사 플랫메이트 덕분에 그놈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뿐이었다.
계속 지켜보기만 하자, 존은 금세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좋아.”
존이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자 셜록은 셔츠의 단추를 풀고는 벗어던져버렸다. 존은 어수선한 부엌 테이블에서 의료세트를 챙겨와서는 셜록에게 건넸다. 존이 셜록의 어깨를 천천히, 세심하게 벗겨내는 동안 그는 상자를 열고는 젤과 거즈를 꺼냈다. 셜록은 상처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존의 진푸른 눈이 조금씩 가늘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몇년 안에 안경이 필요해지겠는걸.”
존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그 푸른 눈동자가 셜록을 마주본다.
“그거 쓰면 나 좀 근사해보일 것 같아?”
셜록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가능성은 있겠네.” 서늘한 공기가 셜록의 살갗을 스치자, 자잘하게 소름이 돋는게 느껴졌다.
“어때 보여?”
“좋아졌어.” 존은 알콜로 상처를 소독해주었고, 셜록의 턱에 힘이 들어가자 눈빛으로 무언의 사과를 건네왔다. “이젠 긁으면 안돼, 셜록.”
손가락 끝으로는 알 수 없는 박자로 무릎을 두드리며, 셜록은 무시하는 소리를 흘려냈다. 존은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젤을 펴바르고는 반창고를 새것으로 바꿔주었다. 이 의사의 뺨은 약간 발그레했고, 셜록의 어깨를 좀처럼 보지 않으려 했다. 키워드: 좀처럼. 셜록만큼의 천재가 아니더라도 존의 눈빛과 숨소리, 미소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셜록 역시 일상적인 상호작용 안에서 간간히 알아차렸었고, 셜록이 총을 맞은 이후 빈도가 늘어난 것 뿐이었다.
그들의 첫 사건(“분홍색 연구”) 때, 셜록은 존이 성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셜록은 그때… 어떤 의미로는 겁을 먹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첫 만남부터 이 의사가 마음에 들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섹스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란 건 너무나도 따분하고 뻔한데다 암담하리만치 섹스에 목매고 산다. 하지만,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존은 다를 거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은 부엌의 그 수많은 실험들을 참아주었으니까; 존은 (가끔) 범죄 현장에서 셜록과 낄낄거리기도 했다.
존은 다시 셜록을 감싸주고는, 새 반창고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다 됐어.”
그리고, 그저 욕정만은 아니었다. 물론 셜록이 셔츠를 벗어야 했던 때마다 존의 동공이 확장되곤 했지만, 그건 그저 동물적인 욕구일 뿐이었다. 존의 부드러운 미소와 조용한 배려는 성적인 충동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었다. 셜록은 존이 차를 타러(생강, 존의 속은 그닥 좋지 않았다) 부엌으로 느리게 걸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셜록은 목을 가다듬었다.
“네가 동성애 혐오자가 아닌 거 알아. 누나가 레즈비언이니 동성인 사람에게 끌리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역겨워하지 않는 거겠지.”
렌지에서 돌아서는 존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희미한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네가 나한테 끌린다는 거.” 셜록의 대답에 존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이 의사는 말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기에 셜록은 그대로 이어갔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런 걸, 내게서 감추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잖아. 난 오히려 인정하길 망설이는 이유가 혼란스러워.” 셜록은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창피한 거야, 그냥 부정하려는 거야?”
불꽃이 주전자를 감싸 타오르고 있었고, 존은 자세를 바로잡더니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넌 관계 문제에서의 입장을 분명히 했었잖아, 셜록. 난 그럴 생각이 없-”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적절한 표현을 찾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난 그런… 사소한 문제로 널 귀찮게 할 생각은 없어.”
존이 분석적인 표현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모습에 셜록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사람들은 따분하고 단조로운 편이야, 존. 하지만 넌 드문 예외 중의 하나라구.”
존의 눈이 아주 조금 커지더니, 귀끝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 미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잠깐만, 무슨 말이야?”
셜록은 눈을 데굴 굴렸다.
“넌 전혀 지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존.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셜록은 허공으로 손을 저어보였다. “스스로 감추려 들 필요 없다는 거지.”
존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셜록의 입술에서부터 어깨, 가슴을 거쳐 마침내 셜록의 눈에 머물렀다. 존의 모든 감정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보기에 퍽 매력적인 광경이었다. 그 모든 것은 마침내 조심스러운 희망으로 이어졌다.
“그럼… 만약 네게 키스한다면…”
“뭐라 하지 않겠지.”
마침내, 존은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셜록이 뭔가 정말 웃긴 말을 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존은 가볍게 웃음소리를 흩어내며 셜록의 의자 쪽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빛은 확실히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넌, 정말 대단해.”
그게 칭찬인지 욕인지 물어볼 시간조차 주지 않고, 존은 셜록에게 키스했다. 셜록이 상상했던 만큼 다정한 키스였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고, 존 역시 그랬다. 빠르고 수줍게 눌러오는 느낌으로, 존이 환하게 미소짓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전자 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셜록 역시 존의 입술 위에 화답하는 미소를 그려주었다.
* 2010년 11월 15일 오전 1:20 - 존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수족관의 기분 좋은 밤은 이론상 괜찮게 들리겠지만, 존과 셜록에게는 늘 문제가 따라다녔다. 셜록은 문제 자체가 놀라울 만큼 즐거웠기에 딱히 불평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존은 불평을 입 밖에 꺼내어 말하곤 했다. 그날은 아마도 존이 불평하는 밤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셜록, 우린 수족관에 침입해선 안된다구.”같은. 셜록이 보안 시스템에 걸린다고 해서 단념할 리가 없으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아니면 존이 다른 전략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셜록, 별거 아닐거야.”처럼 말이다.
단, 그들 둘 다 결코 별게 아닐 리 없다는 걸 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날 내내 여행 가이드는 상어 수조에 다다른 이후부터 망설임은 물론, 불안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존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어지간해서는 모른다) 고깃덩어리의 선연한 색깔이 평소 정육점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셜록은 이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뭘 먹이는지 알고 싶었기에 한밤중에 수족관을 침입하게 된 거였고, 존은 부지런히 그를 따라가는 중인 셈이다.
빛이라고는 수조에서 비치는 것과 그들의 손전등 불빛 뿐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유리 수조에 들어섰고, 큰가오리(manta ray)가 머리 위로 헤엄쳐 지나갔다. 존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셜록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경이로움에 넋을 잃은 듯한 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성가신 규칙따위 지킬 필요 없이, 다채로운 수중 생물들의 향연을 지켜보며 존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있잖아… 이거 거의 로맨틱한데.”
존의 목소리가 울려왔고, 셜록은 히죽 웃었다.
“불법 침입에 어쩌면 살인 폭로에 가담하는 건데… 내가 안좋은 영향을 주었다고들 하겠는걸.”
함께 “직원 전용” 구역으로 들어가며, 존은 가볍게 웃고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람들 생각을 신경이나 쓰는 것처럼 그러네.”
존 왓슨의 가장 아름다운 특성은, 그 역시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셜록이 갑자기 옆길로 새는 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해도, 존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듣기만 했다. 나중에, 집에 가면 셜록은 남몰래 그의 그런 부분을, 대부분의 인간들이 수년간 잊고 있었던 그 다정함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를 존에게 보여줄 거다.
상어의 먹이를 보관하는 문 앞에 도착하자, 셜록은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그 안에 있는 동물은 전혀 소극적이지 않은데도, 그 물은 은폐라도 해주듯 잠잠하기만 했다. 셜록은 코트 주머니에서 문 따는 장비를 꺼내 돌렸고, 존은 목을 가다듬으며 가는 도구를 잡아주었다.
이 다음, 일련의 사건들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작은 달칵 소리가 문이 열렸음을 알려주었다. 셜록은 문을 열었고, 시신 한 구가 그들 바로 위로 떨어지다시피 했다. 손전등이 셜록의 입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고, 존은 공포와 놀라움에 숨죽여 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팔은 소리를 내며 휙 돌아갔고, 이 의사는 미끄러져 넘어졌다.
셜록은, 존이 상어 수조 안으로 떨어져버리는 이미지를 머리로 그려내자마자 시간이 티끌만큼으로 줄어드는 것만 같던 것을 기억했다. 시신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셜록은 팔을 뻗어 존의 니트 스웨터에 손가락을 감아넣었다. 손가락 끝에서 털실의 질감이 느껴졌지만, 셜록은 다른 한 팔로 존의 어깨를 걸고는 품 안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존은 크게 숨을 내쉬었고, 그의 손전등은 물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 어둠 깊이 가라앉았다. 존은 셜록에게 매달린 채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고, 그의 심장은 셜록의 가슴에 맞닿은 채 시끄럽게 뛰고 있었다. 존은, 심호흡을 하면서도 떨고 있었다.
“맙소사, 사랑해.”
그 끔찍한 낮시간 내내, 셜록은 “사랑”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 없이 무심코 내뱉어지는 걸 종종 봐왔었다. 셜록 역시 그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사건과 관련있을 때 외에는 그저 잘 사용하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존은, 다른 사람들을 여러모로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존은 그의 어머니, 아버지, 누나와 예전 여자친구를 그의 인생 모든 면에서 그러하듯 충심으로 사랑했다. 존이라면 그 말을 한낱 어제자 쓰레기처럼 내버리진 않을 거다.
셜록은 눈을 감고, 존의 떨림이 멎을 때까지 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셜록은 존의 차분한 심장 고동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나 살아있어, 여기 있잖아, 어디에도 가지 않아.” 그리고 이제, 셜록은 그 소리 하나하나에서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랑해.”
셜록은 조금 물러나 존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손끝을 간질이는 존의 목 뒤 짧은 머리카락들이 느껴졌다.
“레스트라드에게 연락할게.”
존은 가볍게 코웃음치고는 셜록의 입술 위에 미소지었다.
“또다시 긴 밤이 되겠군.”
* 2011년 1월 27일 오후 11:59 - 내가 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안녕, 괴물.”
도노반은 예의 그 립스틱 발린 비웃음을 흘렸고, 셜록은 존을 위해 경찰 줄테이프를 들어올려주었다.
“안녕, 샐리.”
평소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밤이었다. 앤더슨은 여전히 거슬렸고, 레스트라드는 머뭇거리면서도 고분고분 따라주었다. 그리고, 존이 있었다. 그는 “분홍색 연구” 이후로 지금까지 함께 왔고, 왜인지 전혀 바뀌지도 않았다. 그 생각 자체는 역설이겠지만, 셜록은 다르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존은 전보다 다양한 이유로 범죄 현장에 따라오고 있는데다, 대부분의 경관 이름을 알게 되기도 했다.
레스트라드는 셜록을 뒷방으로 안내했고, 그곳에는 손에 총을 든 채로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중년 남자의 시신이 있었다. 셜록은 돌아서서 라텍스 장갑을 끼면서 앤더슨의 비방을 피하고 있는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들어와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죽은지 이틀쯤 된 것 같네요.” 셜록이 순수하게 분석적인 것과는 달리, 존은 시신을 만질 때면 더욱 동정심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자살은 아닙니다.” 셜록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레스트라드가 깜짝 놀라는 걸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존은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었다. “관자놀이에는 총 때문에 생긴 화상 자국이 없습니다. 스스로 쐈다면 있었겠지만요.”
그들의 숨결은 앞에서 흩어졌다. 레스트라드는 셜록에게 작게 고갯짓해보이고는 그들 방식대로 알아서 하게끔 두고 나갔다. 셜록의 두뇌는 그 모든 사소한 것까지(눈가의 주름, 빠져버린 이빨, 왼손 가운데 손가락 골절) 다 알아차렸고, 존은 그저 처음 그날 밤처럼 셜록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매혹되어, 눈도 떼지 못한 채, 감동하면서.
존이 셜록의 지성에 질릴 줄 모른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셜록을 놀라게 했다. 셜록은 장갑 낀 손가락으로 존의 손을 쓰다듬었다.
“내가 널 사랑하는거, 알고 있지. 존.”
그건 실상 질문이 아니었다. 나중에 존은 - 다음번에는 셜록이 바닥에 시신이 누워있는 방 안에서 나갈 때까지 로맨틱한 고백을 미루고 싶어질 거라 말할 거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존은 미소를 지으며(조금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셜록은 존의 심장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레스트라드가 거의 자라지 않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돌아왔다.
“좋아, 셜록. 뭘 알아냈지?”
존은 물러섰고, 잠시 그들의 숨결이 한데 얽혔다. 셜록의 코끝은 차가웠고, 조금은 목이 탔다. 레스트라드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존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볼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인생이란 것이 그러하듯 불완전하게도 완전했기에, 셜록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다른 사건을 해결해버릴 채비를 했다.
원제에서 보다시피 이 글은, 셜록이 생각하는 '엄청 중요한 날'과 그날의 사건 요약이다.
이 글에서의 셜록은 지나치게 차분하다는 것만 빼면, 정말이지 셜록다워서 좋았다.
소소한 사건이지만 깨달음이 있었던 날들을, 날짜는 물론 분 단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까지도.
셜록의 눈에 비친 따뜻한 존과, 이 셜록이 참 좋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포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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