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인적 드문 크리스마스  | A Less Traveled Christmas, Part 1




(셜록 시점)


뭔가 잘못된거다.

눈을 떠 잠든 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아침, 그는 내 품 안에 포옥 안겨 있었다. 우리 둘 다 서로를 마주보고 모로 누워 있었다. 그의 왼손이 내 목을 감싸고 나는 이불 아래에서 그의 가슴을 오른팔로 둘러안고, 서로의 다리를 한데 얽은 채로.

우리가 이렇게 잠에서 깨어난 지도 꽤나 오래 지났다; 연이은 사건들 덕분에 2주간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지막 강도 사건까지 마무리짓고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난 그저 우리 침대로 그를 끌어들여 감싸안고픈 마음 뿐이었지만, 존은 2교대 진료를 간다며 층계에서 날 스쳐 지나가버렸다.

존과 이야기해보려고도 해봤다. 뭐, 내가 이야기한다고 해 봐야… 하지만 존은 평소보다도 더 완강했다. 보아하니, 나 혼자 잠드는 것 따위는 다른 의사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은거겠지. 어째서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비이성적으로 돌변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존은 맡은 바를 다 할 심산인 모양이다.

우린 병원에서 곧장 그를 데려왔지만, 그는 돌아오는 두 시간 내내 잠들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나 혼자서 외면하게 내버려둔 채로 말이다. 정말이지, 존과 함께 하면 할수록 내 형이란 작자는 점점 더 거슬리기만 할 뿐이라니까.

이젠 존의 모습을 샅샅이 눈에 담으며,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는 허리를 감싸안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붕대 가장자리에 엄지손가락이 스쳤을 때 나도 모르게 찡그리고 말았다. 몇 주 전 넘어진 상처는 꽤나 심했었다. 당시 쫓던 범인을 막 붙잡았을 때, 경찰이 우리 뒤를 바짝 따라와 있었다는 건 그에겐 행운이었던 셈이다. 또한,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내가 존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의 허리 왼쪽 앞에 생긴 찰과상이 감염된 건 그야말로 유감이었다. 평소 내가 손을 올려두던 바로 그곳이었으니 말이다 - 존은 자연스럽게 내 왼쪽에 붙어앉곤 했다. 우리 둘 다 자주 쓰는 손이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워낙에 자제력이 강한 존은, 내가 그의 앞주머니 위로 손가락을 밀어넣을 때조차 소스라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번 - 2주 전에 그랬을 때는 그런 그도 갑작스레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번에 물어봤을 때 그가 ‘주말’이라 했었으니, 오늘쯤이면 저 붕대를 떼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의 불편한 느낌은 여전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아직까지 뭐라 분류해낼 수 없는 인식 탓이다. 물론, 우린 지금 집에 와서 엄마가 몇 시간에 걸쳐 만나보셔야 할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끔찍한 연례 만찬에 참석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강제로라도 나를 끌어다 앉혀두려 드는 그 잘난 행사 말이다. 하지만, 존이 여기 있는데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내 어머니께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계셨다. 지금 내가 알몸인 채로 나만큼이나 홀딱 벗은 연인을 끌어안고 있는 침대에. 내 처음 짐작이 맞았던 거다… 결코 이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말을 하긴 싫었기에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지난 밤 눈도 채 뜨지 못한 걸 차에서 끌고나오다시피 해서 침대로 데려왔을 만큼 피곤해하던 - 신발조차 벗겨주기 전에 잠들어버린 존을 깨우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 셜록. 그렇게 인상 써 봐야 네 머리만 아플 뿐이란다.” 그나마 나직하게 말하긴 했지만, 어쨌든 짜증스럽긴 했다. “엄만 그저 너희 둘을 깨우려던 것 뿐이야.”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키득거렸다. 나는 눈을 굴렸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나한테 부적절하다고 뭐라 하는데 말이지.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난들 별 도리 있었겠는가? [각주:1] 

“미안하다, 얘야.” 그녀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존을 만나기 전에 넌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잖니. 놀려주고 싶은 게 산더미같은걸.” 그녀는 앞으로 몸을 숙여 조심스레 이불 위를 토닥여주었지만,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 존의 다리를 대신 건드린게 분명하다. 그가 살짝 꿈틀거린 덕에 그의 몸이 내게 부딪혀왔지만, 금방 다시 잠잠해졌다.

엄마와 한 방에 있는 상태로 흥분해버리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신음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나가버리라는 의도를 확실히 담아,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문 쪽을 가리켰다.

“15분 안에 내려와야 할 거야.” 그녀는 몸을 일으키시며 내게 경고하시고는, “너희 둘 다.” 덧붙였다. “늦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게 좋을걸. 다음번엔 버지니아를 보낼 테니까 - 그애 엄마가 붙여준 이름과는 전혀 맞지 않게 사는 아이잖니. 그 집안 사람들 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남기고 나가버리셨다. 전에도 자주 그랬던 것처럼, 내 어릴적 침실에 자물쇠가 있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나를 두고.

음, 만약 내가 스스로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도 만들어보게 된다면, 이거야말로 그 안에 포함되지 않도록 해야 할 첫 번째가 되겠군.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 안긴 이 남자에게 시선을 다시 돌리며,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존,” 그에게 부드럽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존, 우리 일어나야 해요.”

그는 팔을 쭉 뻗어 굳은 어깨를 풀면서, 고개를 돌리고는 작게 하품했다. “좋은 생각이네.” 그는 중얼거리고는 등을 대고 누워 나를 위로 끌어올렸다. 한 손은 내 머리카락을 헤집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등줄기를 쓸어내리면서. “으음… 셜록,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내 턱선을 따라 입맞추며 말한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해봤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땅이 꺼져라 후회하며 몸을 일으켜 존에게서 떨어져나오자, 곧바로 서늘함과 상실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침대에서 완전히 떨어지는 건 내겐 지나치게 큰 일이었다; 대신 나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존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혼란스러움과 실망, 욕정이 한데 엉켜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우리, 15분 내로 내려가야 하거든요.”

“안그러면?” 그가 묻는다. 이유는 없지만 왠지 놀이터가 떠오르게 하는 목소리다.

“안그러면 내 육촌 버지니아가 여기로 올 겁니다.” 그에게 설명했다. “그 여자가 내 침대로 숨어들어오려던 게 처음도 아닌데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 그 여자는 당신이 있대도 전혀 신경도 안 쓸걸요.”

존은 놀란 듯 눈썹을 들어올렸지만 더 묻지 않고 일어나 앉았다. “아무래도 네 가족들 이야기를 좀 더 해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는 말했다. “적어도, 이렇게 바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서만이라도 말이지.”





13분쯤 지나 함께 중앙 계단을 걸어내려오는 내내 그는 계속 이름들과 그 관계들을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첫번째 층계참을 반쯤 올라오던 버지니아는, 우리가 나타난게 정말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존.” 내키진 않았지만 그에게 소개는 해주기로 했다. “이쪽은 버지니아에요. 엄마 사촌 세레나의 따님이죠.” [각주:2]

존이 망설이며 손을 내밀자, 버지니아는 두손으로 덥석 붙잡고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음,” 그녀가 느리게 말을 꺼냈다. “당신 어디가 그렇게 특별한지 궁금해 죽어가던 참이었어요, 존.” 그리고는 나를 힐끔 쳐다보는데, 순간 존이 움찔 놀라는 걸 보고 그녀가 길고 뻘건 손톱으로 존의 손바닥을 긁어대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손목을 꽉 비틀어쥐니, 그제서야 존의 손을 놓아준다.

“버지니아,” 그녀에게 경고해주었다. “존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널 상대해줄 시간 따위는 절대 없을거야.”

그녀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존을 바라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일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한마디 인사만을 남기고는, 그는 다시금 내 손을 잡고 눈앞을 가로막고 선 짜증나는 친척을 피해 움직였다. 이따금 존은 정말이지 놀랍게도 완벽하다니까.

식전 음료시간마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순간에만 존을 소개하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마저도 너무 자주였다. 이 모든 건 엄마께서 당신 막내아들이 마침내 ‘짝을 찾았다’[각주:3]는 걸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계신 탓이다. 엄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셜록의 파트너’라고 소근거리시면서 온 사방을 휘젓고 돌아다니셨고, 그동안 나는 틈날 때마다 마이크로프트를 말없이 노려보아주었다.

존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아까 우리 살갗 아래 깊은 곳부터 간질이는 듯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끔씩은 방 안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조차 하기 어려워질 정도였다.

마침내 저녁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우연하게도 응접실 쪽으로 난 문 옆에 서 있게 되었다. 존은 문 손잡이를 슥 보더니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또 서로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따로따로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어둠만이 가득한 방에 들어섰다. 매서운 겨울날을 버텨내려 커튼은 내려져 있는 채였고, 구석에 자리잡은 나무에서만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 그것도 대부분이 쓸데없이 깜박이고 있는 전구들로 수놓아진 채 이 집 안 모든 방마다 들어가 있는 다른 나무들처럼 말이다.

문을 닫고 내게로 돌아서는, 내 연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제대로 키스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요, 존?” 한 걸음 다가서며 그에게 묻는다.

“항상 키스하고 있잖아.” 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상한 일이다; 논리적으로는 지난 몇 주라든가 비슷한 수준으로 치열한 몇몇 상황들만 제외하면 무척이나 자주 섹스해 왔으니, 이렇게 6개월 지나면 서로에게 익숙해질 만도 하다. 이 정도의 욕구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나 존 둘 다에게서 사그라들 기미는 아직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상, 여러모로 점점 더 타오르고 있는 것도 같다.

물러서서 문에 기댄 채, 고개를 젖혀 나를 올려다보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 마.” 그의 말에 더 활짝 웃어보이자, 이젠 얼굴을 구긴다. “그거 ‘존은 조그맣군’ 웃음이잖아.[각주:4]” 이 사람, 예의 그 정확함으로 한 마디 한다 - 그는 무척이나 정확하게 내 표정을 읽어내기에 이르러, 가끔 꽤나 놀라울 정도다. “내가 작은게 아냐.” 저렇게 항의하는 것도 처음은 아니다. “네가 어이없게 큰 것 뿐이라구.”

앞으로 몸을 숙이고 그의 머리 양 옆에 손을 올리며, 슬쩍 한쪽 눈썹을 치켜올려 보였다. 물론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그는 이 나라 평균보다 5cm 작고 나는 7.5cm 크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사실이 늘 유용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바 있다.

“내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숨결에 그가 전율한다. “날 바꾸고 싶어요, 존?” 그의 턱 가장자리를 입으로 누르며 묻자, 그의 손이 내 가슴 위로 올라온다.

“난 당신 바꾸고 싶지 않은걸요.” 그의 목을 따라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가며 말했다. “당신의 무엇 하나도 바꾸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어깨로 이어지는 곳을 살짝 깨물어 본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뱉고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따라 훑어올라가, 마주볼 수 있을만큼 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너, 이건 반칙이야.”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한번쯤은 말로 널 이겨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머리카락 사이로 그가 손을 밀어넣어 부드럽게 그러쥐었고, 나는 그 손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나한테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해주는 건 어때?” 그가 슬쩍 제안했다. “한번쯤은, 내가 결정할 수 있게 양보해주는 거?”

다시금 그를 바라보았지만, 시선은 오물거리는 그의 입매에 머물렀다. “말했잖아요,” 그에게 기대며, 입술을 살짝 맞대었다. “난 크리스마스같은 거 관심 없어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맞닿은 입술을 가볍게 문질러준다. “이런 저녁식사, 마이크로프트를 떼어 내려고 매년 오긴 하지만 그게 답니다. 이것만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가 내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나를 살짝 밀어냈다. “그래, 크리스마스같은거 챙기지 않는다고 했던 거 알아.” 동의하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잖아?” 그는 내 눈을 마주보려 애쓰고 있었지만 자꾸 내 입으로 향하려는 시선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관심을 돌리기 쉽겠군. 내가 혀 끝으로 아랫입술을 따라 그리자,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존,” 그가 가장 반응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존, 난 이야기나 하고 싶은 게 아니라구요.” 왼팔만으로 버티게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그의 허리로 내려 재빨리 말쑥한 셔츠를 바지에서 빼내고, 맨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손가락을 허리띠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그의 입술이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납게 그의 입을 탐했다. 고개를 기울여 혀끝으로 그의 아랫입술을 따라 훑고는 한층 더 입안 깊숙이 헤집어대며 앞으로 밀어붙이자, 그의 머리가 문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다시금 그에게 제대로 키스하는 느낌은 너무나 좋았다. 따로든 같이든간에, 일만 하고 있기에는 2주일은 너무 길었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자제했었던 기간 덕분에 지금 이 경험이 강렬해진 게 확실했다. 나는 잠시나마 존의 맛과 느낌에 완전히 빠져버리지 않은 두뇌 일부분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가끔씩은 그런 부분이 줄어드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심지어 지금같은 순간을 얻을 수 있다 할지라도 자제라는 대가는 너무 크다고 금방 결론지어버렸다.

보통은 내가 이끌어가긴 하지만, 고분고분함과는 거리가 먼 존은 금세 더 공격적으로 반응해온다. 그는 한 손으로는 내 뒷덜미를 감싸쥔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내 엉덩이를 붙잡고 날카롭게 끌어당겨 서로의 몸을 맞대게 했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 내가 벽장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항상 존을 기대세워둘 것이라든가 앉히거나 눕혀둘 수 있을 테이블이나 벤치같은, 우리 키 차이를 해결해줄 무언가가 늘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옮기기 어렵다고 해도 존이 더 높은 위치에 있게 두진 않으려 한다. 그가 날 올려다보는 모습이나 고개를 기울이는 각도에 뭔가가 있는지, 그때마다 가슴에서 이상한 아픔이 느껴진다. 물론 전혀 불쾌한 느낌은 아니기에,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특별한 미소를 짓게 된 모양이다. 물론, 존은 그마저도 재빨리 이해해버렸고.

그가 내 삶에 들어오기 전까지 잘 웃지 않았던 걸 생각해 보면, 그는 지금쯤 꽤나 많은 목록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주었던, 이른바 ‘안아봐도 될까요?’ 미소를 포함해서[각주:5] -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또 뭐 날려먹었는데, 그래도 나 사랑해요?’[각주:6] 식의, 그가 제일 덜 좋아하는 그 미소 말이다.

나는 바로 옆, 커다란 테이블을 찾아냈다. 마이크로프트가 집에 있을 때면 책상으로 종종 쓰던 거라 더 마음에 들었다 - 다음에 여기서 편지를 쓰고 있는 그를 보면서 지금 일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나는 존의 바지 뒤에서 손을 빼내어 우리가 들어왔던 문의 열쇠를 돌려 잠그고는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고 문에서부터 끌어당겼다. 고개를 숙여 다시 그에게 키스하며, 몸을 돌려 테이블 쪽으로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가려는 방향을 알아차린 그는 뒤로 한 손을 뻗어 몸을 받칠 준비를 했지만, 그마저도 내겐 너무 느렸다. 그가 한 손을 짚자마자,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허벅지를 감싸 그를 들어올렸다. 그를 들어올릴 때면 늘 그랬듯 그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고, 내 아랫입술을 꽤 세게 깨물었다. 이것도 그가 꽤나 자주 하는 행동이다. 아마 그도 언젠가는 깨달을지도 모른다 - 이런 행동들 중 무엇도 날 억제할 수는 없다는 걸, 그리고 사실은 그 정반대라는 걸 말이다.

그새 나는 다시 그의 허리에 손을 얹고 테이블 끝으로 그를 끌어당기며, 그의 다리 사이로 다가서서 서로의 몸을 맞대었다. 우리 둘 모두 그 느낌에 신음을 내뱉었다. 완벽하군.

잠시 그와 이마를 맞댄 채, 부드럽게 허리를 그에게 맞부딪히며 닿아있는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동안 그는 내 셔츠로 두 손을 뻗어, 가슴이 드러나보일 만큼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셔츠를 벌어젖히더니, 손가락 끝으로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쓸어내렸다. 처음에는 내 유두를 피해 어루만지다, 갑자기 방향을 바꿔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오기 시작했다.

그 느낌에 온 몸이 떨려왔다. 한 손을 내려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머리 뒤를 부여잡고 다시금 키스했다. 그는 내 입 안으로 신음소리를 흘려내며 내게서 떨어지려 애쓰며, 손으로는 내 유두를 문지르고, 손가락으로 굴리고 꼬집어서, 내가 그 느낌에 취해 고개를 젖히며 그의 입에서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 지분거렸다. 걱정스러우리만치 큰 신음소리가 내 입에서 비어져나왔다. 나를 자극하고 쉴새없이 이어지는 내 생각들을 밀어내면서 그는 집요하게 애무를 이어갔다. 내 머릿속을 채운 끊임없는 소음과 가끔씩 날 미치게 만드는 잡음들 모두가 희미한 소리로 잦아들고, 내 세계에 오직 존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버리고 말 거다. 다시금 그에게 키스하며, 그가 쾌감에 젖어 나를 다리로 휘감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뒤로 밀어 넘어뜨리며 온 몸을 기대 그의 두 손을 우리 몸 사이에 가두고는, 감싸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의 몸을 지탱했다. 그는 잠시 저항했고, 복근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계속 들이밀자, 그는 마침내 테이블 위로 눕힐 수 있도록 몸에 힘을 빼주었다. 

그의 셔츠를 끌어올리고 벨트를 풀자, 그는 신음하며 팔꿈치로 버티고 몸을 일으켰다. 나무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나를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 시시각각 바뀌는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의 온 몸에 그려지면 어떻게 보일지가 사뭇 궁금해졌다.

“셜록, 잠깐만.” 가쁜 목소리, 그도 원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우리 지금 이러면 안돼. 여기서는 절대 안된다구. 이 나라 유명인사의 절반쯤이 바로 문 옆에 있잖아.”

손을 아래로 옮겨 바지 위로 그를 어루만지자 헉, 하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다. “셜록, 그만. 진짜야.” 그가 말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게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허리띠 가를 따라 입맞추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몰래 윗 버튼을 한 손으로 풀어냈다.

그때 문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잽싸게 일어나 나를 밀어내고는, 테이블에서 내려와 바지 안으로 셔츠를 다시 밀어넣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만히 집중하자 어머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맙소사.” 문이 살짝 흔들렸다 - 아마 문에 기대신 모양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이번에는 조금 더 컸다. “아니, 그애들은 여기 없단다. 버지니아. 테라스에라도 나간게 아닐까?” 답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엄마가 다시 말씀하신다. “그래, 춥다는 건 알지. 걱정은 말으렴, 마이크로프트가 그애들을 찾아올 테니까. 어쨌든간에.” 문을 걷어차신 건지, 가벼운 쿵 소리가 들린다. “크리스마스 저녁시간이다.”

서재로 이어져 있는 반대쪽 구석 문이 열리자 존이 움찔 놀랐다. 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거대한 건물 뒤에 숨겨져 있기라도 하다고 생각했나. 다른 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가보다. 그가 나무라듯이 쳐다보기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무슨 말을 해주길 바란 걸까? 2주는 너무 길었는걸.

마이크로프트가 걸어들어오더니 눈을 굴렸다. “꼭 내 책상이어야만 했던 거니, 셜록?” 그가 물어왔고, “정말로?” 고개를 젓는다. “안녕하신가, 존.” 하지만 존은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음, 저 이상 더 빨개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버지니아가 금방 들이닥칠거야.” 그가 경고해주었다. “욕실 사태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셔츠 매무새를 다듬는게 좋겠구나.”

나는 인상을 구겼지만, 존이 아까보다 더 기분이 나빠보인다는 걸 눈치채고는 어쨌든 그 말대로 했다 - 내 가족들로부터 이만큼이나 오래 지켜냈다는 걸 그가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는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다. 화학 작용으로 인해 모두들 카드 쪼가리를 열어대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고 있는데다 - 아니나 다를까, 일찌감치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끼리만 웃길 소위 ‘농담’들이 쏟아졌다.

올해에는 새롭게 등장한 짜증스러운 질문들도 많았다. 이제는 내게 선물할 사람이 생겼으니 ‘크리스마스 정신’에 동참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질문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비논리적인데다 내 직계 가족에게는 불쾌한 발언이라, 확실히 해두고자 했던 거기도 하다.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존의 손을 잡았다; 내치지는 않았지만, 참고 있는 것 같긴 했다. 놀라진 않았다. 이런 강제적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피하느라 꽤나 그럴듯하게 남은 한 해를 다 써버렸지만, 시도는 유감스럽게 끝나버린 거다. 나는 마음 속으로 우리 플랫을 떠올려보았다. 내년에는 마이크로프트에게 확실히 해둬야겠군, 나는 결심했다. 어쨌든 20년이 넘었고 엄마도 괜찮은 것 같다. 더 이상은 절대로 안될 일이다. 나는 존의 손을 꼭 그러쥐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버지니아가 테이블 맞은편 끝에 앉아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식사가 끝날 때쯤 아델라이드 증조모님께서 다시금 보온병을 채우러 간 틈을 타서, 그녀는 갑자기 우리 맞은편 자리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이 ‘사교적인 인사’라고 여기는 게 분명한 질문들을 쏟아내는 걸로 시작해서 결정타를 날릴 준비를 했다. “그럼, 존.” 기계로 태닝한 어깨 위로 금발머리를 어색하게 늘어뜨린 채, 존을 바라보며 가짜 속눈썹을 깜박거렸다. “당신 비밀이 뭔가요?”

존을 흘긋 쳐다보니, 전혀 감명받지 않은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뭐라고 하셨죠?” 그는 정중하게 되물었다. “저는 비밀이라고 할 만한게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요. 특히나 셜록에게는 더욱 그렇구요.” 그의 목소리에서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이상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 그렇죠… 셜록.” 그녀는 히죽거리며 대꾸했다. “자, 그게 질문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나를 훑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비죽였다. “접근 불가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셜록 말이죠.” 그녀는 다시 존을 바라보았다. “말해봐요, 존.” 그녀가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자, 드레스 앞부분이 과도한 실리콘으로 늘어졌다. “어떻게 내 친애하는 육촌의 침대까지 기어들어간 거죠?”

주위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분노에 차 대꾸하려 입을 열었지만, 존은 어깨를 펴고는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대체로는 불러주기까지 기다리는게 좋은 전략이더군요.” 그는 그녀의 태도에 대한 느낌을 분명히 내비치며 답했다.

그녀의 눈이 사악하게 가늘어졌고, 나는 긴장하며 마이크로프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버지니아는 얄팍한 계집이긴 하지만,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서 뭘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신의 셜록이 왜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지는 알아요?” 그녀가 존에게 묻는다. 그가 나에게 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의심을 확신으로 굳혔는지 말을 이었다. “왜 당신이 선물을 받지 못할 건지는 말해 주던가요? 당신네 플랫에 트리같은게 없는 이유는?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런던으로 돌아가버리려는 이유는요?”

존은 창백해졌지만, 꿋꿋하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같은 건 비논리적이니까요.” 내가 해준 유일한 답변이자 설명을 그대로 따라 말했다.

버지니아는 웃었다. “아, 비논리적이죠. 맞네요.” 그녀가 대답하려 입을 열었다. “그건…”

버지니아!” 어머니의 목소리에 방 전체가 조용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버지니아, 아가야. 커피 마시러 가운데 응접실로 가야 할 것 같구나.” 그녀는 일어서서 우리 쪽으로 다가섰다. “같이 가지 않으련?” 그녀는 마지못해 일어서는 버지니아의 팔짱을 끼고 가버리신다. “자, 이제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 지내고 있다던 네 귀여운 언니 템퍼런스[각주:7]에 대해 이야기해주렴…” 사라지는 그들 뒤로 사람들도 따라가기 시작했지만, 존은 움직이지 않았다.

“존?” 그는 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나를 보고 있진 않았다. “이리 와요.” 그의 팔을 잡아당기자 그는 일어섰고, 마이크로프트가 나타났다.

“난 한 시간 내로 갈 거란다.” 내게 말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표정 없는 존을 훑고 있었다. “둘 다 가서 짐을 챙기는게 어때? 방해하지 않도록 하지.” 그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수습해!’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신체적인 트라우마나 위험이 있으면 존은 더욱 예민해져서 나만큼이나 다가올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정서적인 혼란 상태에서는 - 특히 그게 나와 관련된 거라면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지난 6개월간 의견 충돌은 물론, 노골적인 말다툼까지도 있었다. 존이 내게 져줄 때면 정말 조용하고 냉담해지곤 했었다. 내가 그럴 때면 그는 삐진 거라 하겠지만, 그에겐 그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그럴 때면 오히려… 재고하는 것에 가까웠다. 가끔 그 후에도 며칠씩 눈가에 그늘이 져 있긴 했지만, 결국은 항상 금방 떨쳐버리곤 했었다.

나는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건 안좋은 상황이다.

방에 돌아왔을 때쯤엔 그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여자가 말하려던 건 뭐였어?”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상황상 화라도 내는 게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그가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난 반가웠다.

문을 닫고 그에게로 돌아섰다. “아버지와 관련된 거겠죠, 내 생각엔.”

그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전까지 아버지가 있는지조차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닐 테다.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떠나셨습니다.” 나는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마스 당일이죠. 난 열 살, 거의 열한 살이 되었고. 마이크로프트는 열여덟 살, 대학교에 있느라 휴일 내내 집에 오지 않았었어요 - 집에 오지 않았던 건 그때 딱 한번 뿐이었죠.”

존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아버지가 떠나셨다?” 그는 되풀이했다. “그냥… 가버리셨다는 건가?”

“우리가 일어났을 때 이미 안 계셨어요.” 좀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진 계셨지만, 크리스마스날 아침엔 안 계셨던 거죠. 수상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 메모를 남겨두셨으니까요.”

“뭐라고 씌어있었는데?” 그렇게 묻는 존의 목소리는, 어쩐지 답을 듣기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몰라요. 엄마가 말해주지 않으셨거든요.” 되새겨 생각해보았다. “당연히 찾아보기도 했었어요. 타고난 호기심이랄까.”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집착했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마이크로프트에게 줘버리신게 분명해요. 절대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태워버리셨을지도 모르잖아?” 존이 한 마디 거든다. “화나셨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요.” 동의하는 투로 대꾸는 했지만,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그것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나는 눈을 데굴 굴렸다. “무슨 소립니까, 존.” 그에게 말했다. “크리스마스같은 건 비논리적이에요. 뻔한 상술이죠. 당신이 크리스찬이라면 모를까, 무신론자에게는 극도로 터무니없는 거라구요. 버지니아가 당신에게 이야기하려던 건 내 아버지에 대한 정보일 게 뻔하지만, 그녀의 추리는 잘못된 겁니다. 당신 대답이 정확했어요.”

“그럼 아버지가 떠나신 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거고?” 다시금 묻는다.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지만, 당분간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떠나신 건, 이 끔찍한 가족 만찬에 매년 참석하는 이유일 뿐이에요. 마이크로프트가 늘 강요하니까요. 엄마를 위해서라도 와야만 한다고 - 자기가 이 약속 하나 때문에 조율했다던 온갖 종류의 국제적인 위기들을 들먹이면서, 일년에 한번 런던에서 나오는 것쯤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마이크로프트다운 말이네.” 수긍하면서도 존은 여전히 무표정한 그대로였다.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내가 만지기도 전에 그는 일어서서 몇 걸음 물러섰다.

“모든 걸 다 내게 말해줄 필요는 없어, 셜록.” 그는 내게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뭐, 불가능하기도 하겠지. 네 두뇌에서 돌아가는 그 모든 걸 생각하면 말야.” 그는 웃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웃음은 아니었다.

“네게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을만 하지. 원한다면 비밀로 할 수도 있겠고. 하지만, 몇 가지 - 다른 사람들도 아는 것들 정도는… 만약 우리가 이 관계를 이어갈 거라면, 나도 그런 것 정도는 알아야 하잖아.”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만약이라니? 이건 ‘좋지 않은(Not Good)’ 정도를 넘어섰다. 나는 일어섰다. “존, 나는…”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돌아서서 나를 마주보았다.

“난 네게 비밀같은거 없어, 셜록. 그럴 수도 없겠지.” 그는 말했다. 순간, 그의 눈꺼풀이 가볍게 움찔거리는 것이 의아했다. “나에 대한 중요한 것들은 며칠만에 거의 다 알아버렸으니까. 너도 어쩔 수 없겠지. 그리고 나도 괜찮아. 그런 건 문제없어.”

“하지만, 난 그렇게 못하잖아, 셜록.”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무슨 느낌인지, 종종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있어. 가끔은 너보다도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실을 추리해낼 재주는 없어 - 내가 모르는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야. 나는 네가 말해주는 것만 알고, 네가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만 공유하고, 네가 주는 기회만 잡을 수 있단 말이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가슴이 빠르게 들썩이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거였구나, 아까, 그런거지?”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우리가 응접실에 있었을 때 말야.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 너, 일부러 내 관심을 돌렸던 거야. 내가 널 알지 못하게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한 거지.” 그는 처연하게 고개를 저었고, “넌 날 가지고 놀았어, 셜록.” 뒤돌아섰다. “날 바보로 만들었던 거로군.”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우리 관계와는 아무 관계 없는 거 아닌가? 무관한 일이다. “집에 가면 안될까요?” 그에게 물었다. “나랑 집에 가면 안돼요?”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는 조그맣게 보였지만, 미소지을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 집에 가자.”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난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그는 옷장 쪽으로 다가가 바지와 스웨터를 꺼내고는,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가 단정한 바지를 벗었을 때, 나는 속옷 허리께로 붕대 끝자락이 보이는 걸 알아차렸다.

“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존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움찔 놀랐다. 나는 붕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이제 떼어도 되나요? 주말이라고 했잖아요.”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잠시였지만,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 설마 그 상처,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던 걸까? 감염부위가 넓어지기라도 했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앞으로 다가서자, 그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그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입 끝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속옷 옆을 끌어내려 붕대를 전부 드러내보이며 내게 오라고 손짓했다. “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지.” 그가 말했다.

그저 상처를 직접 점검하겠다는 생각에만 급급한 채, 재빨리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붕대 가장자리를 잡고 천천히 떼어내기 시작했지만, 존이 불평하듯 말했다. “그냥 확 떼어버려.” 나는 그의 말에 따랐다. 덜 아프게끔 다른 손으로는 상처 주위를 단단히 잡고서.

그의 살갗에는 붕대 때문에 끈끈한 네모 자욱이 남았지만, 그 가운데에 남겨진 뚜렷한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흉터나 찰과상, 염증 따위가 아니었다. 존은 결국, 내게 비밀을 지키고 있던 거였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다시 내려다본다. 그건, 문신이었다 - 내가 늘 손을 얹던 허리 바로 위에, 작지만 너무도 또렷한, 깔끔하게 검정색 잉크로 새겨진: SH

“메리 크리스마스.” 존이 말했다.



  • 저자 주석: 이건 이 커플의 첫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이자, 번외편입니다.
    존의 [해소]부터 6개월 후이자, 마이크로프트의 에필로그 [그 길에 서서]에서 18개월 전이에요.
    br0-Harry님이 이 마지막 장면을 훌륭하게 그림으로 그려주셨습니다 -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거에요: 메리 크리스마스 
  • 역자 주석: 사귀기 시작한지 6개월차, 여전히 서툴고 풋풋한 그 둘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4월이지만 새삼스레 크리스마스가 그립다. 

 
  1. 왠지 ‘피는 못 속인다’ 말이 생각나는데… [본문으로]
  2. 19편에서 엄마 홈즈가 엄청 싫어하던 바로 그 세레나의 딸. 앞서 침대에서도 이름과 안 어울리는 건 그 집안 내력이라는 드립을 치시기도. [본문으로]
  3. ‘find somebody’ - 사심이 담긴 번역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_-a [본문으로]
  4. ‘John is short’ smile ♡ [본문으로]
  5. ‘Can I have a hug?’ ♡♡ [본문으로]
  6. ‘I've blown something up, do you still love me?’ ♡♡♡ [본문으로]
  7. ‘Temperance’ - 브레넌이 아니다…가 아니라;; ‘절제’라는 뜻. 이집 식구들은 이름이 왜들 이럴까.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