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An Arbitrary Celebration of Staying Alive for Another Year [각주:1]
  • 저자: ardenteurophile + 역자: PasserbyNo3
  • 등급: G (전연령가)
  • 길이: 단편 (약 3,6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존이 원한 건 그저 친구들과 함께 동네 술집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었지만, 셜록은 그럴 생각이 없다.
    - nishi_shinji님 생일 기념으로 쓴 것!
  • 역자 주석: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ardenteurophile.livejournal.com/9994.html



“셜록, ‘아니요’를 눌렀네.” 존은 노트북을 두드리다 말고 그의 친구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아니요’를 누른거야?” [각주:2]
 
늘 그렇듯, 셜록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극적인 효과를 내주는 자세로, 소파 위에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드러누워 있었다. 가슴 위에는 바이올린을 얹어둔 채, 한 손으로는 현을 늘어지듯 퉁겨대면서.

셜록은, 자신의 플랫메이트가 뭔가 말한 건 알겠지만 뭐라 말했는지는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요’를 눌렀잖아. 페이스북에서.” 존은 되풀이해서 말해주었다. “왜냐구?”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존은 셜록이 자신의 말을 듣긴 했는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그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소파에서 몸을 돌려 존을 마주보았다. 셜록은 다리를 아래로 내려놓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셜록의 목소리에서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완연했다. “참석할 생각이 없으니까.”

존은 이벤트 페이지를 쏘아보면서 스크롤바를 내려보았다. 해리, 클라라, 레스트라드, 마이크…, 젠장, 심지어 앤더슨조차도 ‘불확실’을 눌렀단 말이다.

“다들 올 거라구.” 그는, 징징거리는 투로 말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셜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생겼군.” 한 마디 하고는, 셜록은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로질러갔다. 존은 심지어 파자마에 가운 차림일 때조차도 저렇게나 오만해보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어쨌든 일어나 셜록을 종종 따라갔다.

“하지만 셜록, 내 생일이잖아! 넌 와야 한다구!” 그의 말에서 삐진 티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셜록은 차를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범죄와 관련된 영역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 마구잡이로 말이다. 아무리 공정하게 말한다 하더라도 셜록이 끓인 차는 그 자체로 이미 범죄였다. 존은, 그가 그저 대화하기 싫어서 괜히 한번 해 보는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365일간 더 살아 남았다는 단순한 사실을 축하해야 할 논리적인 이유는 없잖아.” 셜록은 설탕을 - 존은 그게 설탕이기만을 바랬다 - 머그컵에(그리고 동시에 조리대 전체로) 떠넣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완전히 제멋대로라구.”

“누군가는 그런걸 좋아하거든.” 존은 셜록이 훨씬 더 어질러버리기 전에 그를 밀어내고, 대신 차를 타겠다고 생각하며 대꾸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그걸 즐긴다구. 게다가, 올 한 해 동안 내가 네 덕분에 거의 죽을 뻔했던 했던 횟수를 생각하면, 아직 네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축하라도 하고 싶어질걸.”

셜록은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난 그러고 있어, 존.” 대답하는 셜록의 목소리에서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묻어났다. “매일매일.”

존은 놀라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활짝 웃어보였다.

“와! 네가 걱정했다는 건 몰랐는데…” 그는 놀리듯 말했지만, 잔주름 잡힌 눈꼬리는 웃고 있었다. 셜록은 그를 내려다보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휙 고개를 돌려 거실로 되돌아갔다.

“그래, 알았어.” 그가 어깨 너머로 말했다. “지루한데다 수다떨기나 좋아하는 멍청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답시고 술집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집에 있으면 안돼?”

존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 두개를 들고 그를 따라갔다. 그게 누구든간에, 티백을 발명한 사람에게 조용히 감사를 보내면서. 이 기분 좋고 나긋나긋한 차를 매일 마시지 않고서는 셜록은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존은 꽤나 확신하고 있었다 - 아, 매 시간이 더 맞는 말이겠군. 특별히 운 나쁜 날이라면 30분마다겠고.

“그 ‘지루한데다 수다떨기나 좋아하는 멍청이들’이 내 친구라 유감이군. 생일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라구.” 심술궂게 대꾸하며 테이블에 머그컵을 내려놓고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존은 언제부터 셜록이 소파 전체를 몽땅 차지해버리고는 다 떨어지고 모양 안나는 의자로 자신을 밀어내 버리게 된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 삶의 다른 모든 면마저도 다 차지해버린 때와도 비슷하겠군, 심지어 연애사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지. 존은 살짝 찡그리며 생각했다; 사라가 갑자기 시들해지더니 그 빌어먹을 수염 덥수룩한 소아과 의사랑 데이트하기 시작한 건 모두 다 이 동거남[각주:3]의 잘못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 존.” 셜록이 말을 꺼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데굴 눈 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네 친구들? 스코틀랜드 야드 직원 절반에, 소원하신 누나와 그 누나의 전 여친에다, 네 전 여친이랑 병원 동료들 말야? 설마.”

존은, 저 말들이 예상보다 더 강력하다는 데 분개하며 자리를 옮겨앉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 그는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친구”라고 분류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본지 너무 오래 되긴 했다. 아프간 가기 전까지는 꽤 많았었는데. 이후 그들에게 연락하려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저 앉아서 마치 뭔가 중요하다는 듯이 수다나 떨고 있는 걸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것 뿐이다.

대답이 없자, 셜록이 그를 날카롭게 살펴보았다.

“내가 마음 상하게 했군.”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 한다.

“그래, 웃기기도 하지.” 존이 쏘아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 하나 없다는 말을 듣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셜록, 난 안 그렇거든.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초월한 척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우리 중 누군가에겐 그런게 실제로 필요하다구…”

“너한텐 내가 있잖아.” 셜록이 끼어든다. “난 네 친구인걸.”

존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 동거남이 미묘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평소 아무 감정 없던 저 얼굴에 이렇게나 아이같은 표정이라니, 이상해 보이잖아. 존은 반쯤 웃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셜록 홈즈씨.”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한 모금 넘기며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따스함을 느꼈다. “넌 내가 이제껏 만나본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걸.”

“하지만 나, 네 친구잖아?”

존은 눈을 굴렸다.

“응, 명백하게도 그렇지. 그래, 넌 내 친구 맞아. 가끔씩은 내가 널 왜 참아주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야.”

셜록은 만족스러운 듯 씩 웃더니, 소파에 기대어 앉아 존의 노트북을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 존은 노려보긴 했지만, 굳이 침실에서 자기 꺼 가져다 쓰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말다툼 따위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존이 컴퓨터를 되찾아 왔을 땐 이미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나마도 그건 셜록이 갑자기 방을 나서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래로 내려가버린 덕분이기도 했다. 신경 안 쓰인다구,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사건도 없으니 셜록은 아마도 어이없는 실험이나 기타등등에 필요한 뭔가를 구하러 간 것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낫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하고 있기도 했다.

그는 사라가 생일 초대에 응답을 보냈는지 확인하려 페이스북을 열어보고는, 놀랍게도 자신이 초대를 받았다는 걸 발견했다. 드문 일인데,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초대를 열어보며 생각했다.

셜록으로부터 온 거였다.


* 장소: 런던 웨스트민스터, 베이커가 221B
* 개설자: 셜록 홈즈
* 상세 정보: 네가 한해 동안 죽지 않고 버텼다는 게 매우 기쁘다. 
   그 끔찍한 술집같은데 가지 말고 생일 축하할 겸 나랑 집에 있자. 
   생일이란 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잖아, 존.


참석자 목록에는 달랑 두 사람 뿐이었다; 존 자신과 셜록. 후자는 이미 ‘참석’을 눌러둔 상태였다.

존은 눈을 굴리고는 힘주어 ‘아니요’를 클릭했다. 정말이지, 이건 셜록이 그의 해골바가지에게 별도로 프로필 페이지를 만들어줬던 때만큼이나 어이없는 상황이다. 생각난 김에, 이 동거남 씨가 그 페이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볼 겸 그쪽도 들어가보았다.

그 녀석의 상태는 2시간 전에 이렇게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존이 토스트를 먹는 걸 보고 있는 중. 정말이지 살아있는 인간이란 건 역하기 그지없군. 누가 나 좀 벽 쪽으로 돌려주지 않겠어?”

존은, 셜록이 여기에 ‘좋아요’까지 눌러놓은 걸 발견하고는 얼굴을 구겼다. [각주:4]

바로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받은 메시지 
왜 ‘아니요’를 누른거야? SH



뭐든 즉시 알아채버리는 탐정님의 미묘한 재주에 살짝 겁을 먹고는, 쭈뼛거리며 방 안을 휙 돌아보았다.


받는 이: 셜록 
어떻게 알았어?!

받은 메시지 
페이스북 앱, 존. 네가 고물 폰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가 주고 있거든. SH
[각주:5]

받는 이: 셜록 
그러니까,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돈을 헤프게 써대는 형이 있다는 거지?

받은 메시지 
왓슨 선생, 부디 날 여기에 끼워넣지 말아주시죠. 난 돈만큼 분별력도 있는 사람입니다. MH


받는 이: 마이크로프트 홈즈 
도대체 무슨 - 마이크로프트, 내 대화 내용까지 감시하고 있는 겁니까?!

받은 메시지 
마이크로프트한테 답장하지 마. 왜 ‘아니요’를 누른거냐니까? SH


받은 메시지 
명백하잖습니까. MH


받는 이: 셜록 
내가 그날 밤엔 벌써 약속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도 말이지!

받은 메시지 
그거 바꿔. SH


받는 이: 셜록 
싫어!

받는 이: 마이크로프트 홈즈 
소름끼치는군요.

받은 메시지 
보통 때는 날 위해서라면 약속 바꾸는 것 따위 신경쓰지 않았으면서. SH


받는 이: 셜록 
사실 신경쓰거든. 보통 때는 누군가의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그랬던 거지.

받은 메시지 
그정도는 조율할 수 있잖아. SH


받는 이: 셜록 
셜록! 그냥 술집으로 와.

받은 메시지 
싫어. 베이커가에서, 금요일 8시. SH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존 왓슨은 그의 생일날 웃고 떠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술집에 앉아있게 되었다는 말씀. 겉보기엔 멋진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 잘난 셜록 홈즈님께서 오지 않은 탓이다.

“제길.” 그는 나지막히 내뱉었다. 몇 시간여가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어색한데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샐리 도노반이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앤더슨 둘은, 질색해 마지않는 자문 탐정님께서 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은 다음에서야 같이 나타났다. 해리와 클라라 역시 함께 와 있었지만, 각각 테이블 맞은 편에 떨어져 앉아 서로의 눈을 피하는 중이었다.

“그녀석, 심지어 자리에 없을 때조차도 분위기를 망치는 재주가 있군그래!” 그는 한 손을 크게 휘저으며 말하다 거의 레스트라드의 잔을 엎을 뻔 했다. 샐리가 알겠다는 듯 히죽거렸다.

“그러게… 이상하죠…” 그녀가 말했다. “봐요, 지금은 당신의 밤이라구요. 전에도 말했죠, 셜록 홈즈는 친구같은거 안 키운다고. 그 인간은 그냥 필요할 때 당신을 이용하는 것 뿐인데다, 절대로 보답할 일 따위는 없을 거라니까요.”

앤더슨이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키득거린다. 존은 셜록에게 샐리가 저렇게나 지독하게 그를 미워하는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다.

때마침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누구일지는 뻔했다; 셜록은 그가 자신을 생각하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하는지, 항상 딱 그 순간에 문자를 보내오곤 했다. 그게 아니면, 그냥 그가 셜록을 많이 생각하는 걸지도. 지금 당장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건지도 확실치 않았다.


받은 메시지
왜 나가버린 거야? 집으로 와. SH


받는 이: 셜록
싫어. 술집으로 와.


그는 손에 쥔 핸드폰을 말없이 노려보다가 바지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마실래?” 클라라가 테이블에서 일어서며 묻는다. “내가 살게.”

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함께 잔을 나르러 바 쪽으로 향했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주말 밤 여느 런던 술집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미어터지고 있었다. 그는 클라라를 만나서 반가웠다; 해리와 사귀기 전부터 그녀는 그의 친구였지만, 그들이 헤어진 후에는 더이상 그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괜찮아?” 사람들 소리 때문에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녀는 바 가장자리에 기댄 채,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검붉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당연하지…” 그녀는 방금 일어선 테이블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냥… 우습지, 해리랑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않고 있는다는 거. 더 최악인 건 말야, 나 사실 그녀가 엉망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녀는 괜찮아 보여. 정말 괜찮은 거야? 어떻게 지낸대?”

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느 책임감 있는 오빠들만큼은 자주 찾아보지 못한 걸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 음, 오늘 밤에도 오렌지 주스만 마셨어. 그 정도면 양호하잖아.”

클라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소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즐겁지 않았다는 건 아냐, 존. 샐리는 꽤나 신난 것 같고, 저 경위 - 그렉, 저 사람 이름 맞지? 그렉. 뭐, 싫다고는 안 할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녀는 공모라도 하듯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존은 레스트라드가 있는 테이블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 역시도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야… 아, 모르겠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에게 온통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단 한 사람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거 알아?”

존은 위로하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녀가 하려는 말을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너무 잘 알지.” 그 대답에, 클라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예리하게 그를 살폈다. 그녀가 입을 열려던 찰나, 바텐더가 다가와 주문을 받는 바람에 둘 다 술잔을 한아름 부여안고 테이블로 돌아오게 되었다.

클라라가 자리에 다시 앉기 직전에 존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귓속말로 물었다.

“그냥,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건 어때?”

클라라는 차분하게 그를 응시했다.

“그냥, 그에게 말을 걸어보는 건 어때?”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묻는다.

존은 그녀를 마주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때, 주머니에서 다시금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누군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클라라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너 하면, 나도 할게.” 그 한 마디만 남기고, 존은 자기 생일파티를 외면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베이커가 221번지 계단 위에 막 올라섰을 때, 플랫의 문이 눈앞에서 확 열리는 바람에 그는 셜록에게로 안기다시피 부딪히고 말았다. 셜록은 외투에 스카프까지 두른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아.” 그럼 사건인가, 아니면 뭔가 터무니없는 실험이라도 하던 중이었나. “나가는 거야?” 셜록은 조금 어벙한 표정으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상황 봐서.” 그가 말했다. “들어오는 거야?”

“어, 응. 그래. 그럴 생각이었는데, 네가 어디 갈 거라면-“

“아냐아냐. 안가. 괜찮아.” 셜록은 그를 문 안쪽으로 들여보내고는 코트를 벗었다. “난 그냥 거기 가려던- 어- 뭐 이젠 그럴 필요 없어졌어. 그래서…”

존은 자켓 단추를 풀다 말고 멈춰서서 이 동거남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셜록, 너- 그러니까 너, 술집에 가려던 거였어?!”

셜록은 그에게 다가섰지만, 살짝 씩씩거리고 있었다.

“내가 너 와 달라고 분명히 해두었으니, 집에 좀더 일찍 올 거라 생각했어.” 그가 말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넌 집에 와서 나랑 있는 대신에 네… 친구들이랑 보낼 생각인 것 같더군. 그래서 내 생각엔…”

머뭇거리는 그는, 살짝 마음 상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존, 왜 ‘아니요’를 누른거야?”

존은 소리내어 웃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 이 동거남이 생각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음, 그러니까, 꽤나 자주 말이다.

“실제로 ‘참석’해야 할 상황인 줄은 몰랐거든. 보통은 그냥 내 집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페이스북 이벤트를 만들지는 않으니 말이지…”

셜록은 눈을 크게 뜨고는, 혼란스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네 생일 축하해주고 싶다고 말했잖아. 그냥 주저앉아서… 엑스팩터(X Factor)나, 기타등등 네가 금요일 밤마다 보던 것 따위를 보려던 게 아니었다구.” 그는 TV프로그램 이름을 넌더리난다는 듯 내뱉었다.

“뭐, 지금 난 여기 있잖아.” 존이 말했다. “뭐 할 건데?”

셜록이 갑자기 활짝 웃었다. 저 꽤나 당황스러운 미소를 뒤로 하며, 그는 문을 닫았다. 잘한 거였군, 존은 생각했다; 의도는 확실히 좋았지만, 효과만 놓고 보자면 살짝 불안하긴 하다.

“응, 넌 여기 있는거야. 그렇지!”

“좋은 추리네.”

셜록은 존의 팔을 붙잡고는 어둠으로 가려진 거실로 끌고 들어갔다.

“내가 조사를 좀 해 봤는데…” 어둠 속 어딘가에서 셜록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전등이 있는 쪽으로 방을 가로질러가는 그의 실루엣이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적 특수성은 있겠지만, 필수불가결한 요소들 대부분을 정해봤지…”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전등이 켜졌다. 그와 동시에 거대하게 커져버린 박쥐같은 무언가 옆에 서 있는 셜록이 드러났고, 방안 가득한…

“풍선?!”

천장을 동동 떠다니고 있는 색색깔의 풍선들을 바라보며, 존이 외쳤다. 적어도 50개는 족히 되어보였다.

셜록의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이거 틀린거야?”

존은, 파티 풍선으로 가득한 방 한가운데 쓸쓸한 꼬맹이처럼 서 있는 저 대단한 셜록 홈즈를 흘긋 바라보고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메라를 가져왔더라면 이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 야드 사람들과 - 어쩌면 - 마이크로프트에게 보내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옆구리가 아파올 때까지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는 웃음이 천천히 잦아들 때쯤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셜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풍선 맞아.” 결국, 한 마디 하며 그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좋아, 잘 했어.”

그 말에 셜록은 스스로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천장에 떠 있던 풍선 중 하나의 줄을 잡고는 - 당황스럽지만, 존은 저 풍선들이 자신에게는 닿지 않을 만큼 조금 높이 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방을 가로질러와서 존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존은 즉흥적으로 팔을 뻗어 풍선을 잡고는 셜록의 머리 위에 대고 문질렀다. 이 탐정님은 당황스러웠는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생일날 전통인가?” 그가 묻는다. “뭐 하는 건데?”

“네 머리 모로 세우고 있어.” 풍선을 앞뒤로 문질러대며 존이 설명했다. 셜록은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더니 평소답지 않게 존에게 진지한 시선을 보내왔다.

“아, 전기로군.”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존은 미소지으며 뒤로 물러서서, 셜록의 머리 위로 풍선을 살짝 들어올렸다. 머리카락이 거꾸로 일어선 걸 보고 빙그레 웃고는 풍선을 당기며 덥석 붙잡았다.

“꽤나 괜찮은데, 보라구.” 그를 거울 앞에 세우며 존이 한 마디 했다. 셜록은 머리를 바라보고는 즐거운 듯 작게 웃었다.

“그리고 나, 너 줄 케익 만들었어.” 갑자기 그에게로 돌아서며 셜록이 선언하듯 말한다. 그제서야 존은 셜록의 옷 위에 떨어져 있던 고운 흰 먼지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걱정스레 마른 침을 삼켰다.

“네가 구웠다고?”

셜록이 눈을 데굴 굴린다.

“나도 할 수 있어, 존. 베이킹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과학의 일종이라구.”

그가 존의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은,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은 부엌이었다. 달걀과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폭탄 말이다. 존은, 이 모든 걸 치우는 건 결국 자신일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조금 움찔했다.

“게다가,” 셜록이 말을 잇는다. “유사시에는 허드슨 부인도 있으니까.”

그는 냉장고를 열어 잘려진 귀들이 들어있는 봉지 옆, 둘째칸에 놓여 있는 거대한 잼 스펀지케익을 꺼냈다. 그는 자랑스럽게, 거의 경건한 자세로 부엌 테이블 위에 그걸 올려놓았다.

케익 위에는 크고 비뚤비뚤하게 글씨가 아이싱되어 있었다: HAPPY BIRTHDAY JOHN

“와우.” [각주:6]

존은 환하게 웃으며, 이 물체를 살짝 찔러보았다. 밀도 면에서는 확실히 케익처럼 보이긴 했다.

“와, 나 엄청 감동받았어.” 그가 말했다. “먹어도 되는 거야?”

셜록은 흥, 코웃음을 치더니 찬장에서 접시와 나이프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존은 테이블에 앉아 눈앞에 놓인 거대한 케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먹어도 되는거지. 내가 레시피를 조금 바꾸긴 했지만, 그건 그저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하려던 것 뿐이라구. 허드슨 부인의 스펀지케익은 늘 조금 퍽퍽하거든.”

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말은 그분이 못 듣게 신경써야 해!”

셜록은 큰 나이프를 쥐고 케익을 두 조각으로 잘랐다. 존이 한 입 베어물려던 순간,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꺼내들고 문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그가 말했다. “해리야. 내가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던 중이라네. 실은 내가… 도망쳐나온 거나 다름없거든. 조금은.”

셜록이 그를 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망쳐나왔다구?”

“응, 난… 뭐, 너랑 같이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사실은.” 존은 설명하려 애썼다. “그 사람들이랑은 같이 있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말야.”

셜록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금세 활짝 웃었다. 그리고, 존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술집을 나설 때 이 동거남과 이야기해보마고 클라라와 약속은 했었지만, 막상 지금은 뭐라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우리들 전부 한꺼번에 같이 있는 게 좋은거지…?” 그의 생각을 가로막고 셜록이 묻는다. 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니까… 내 생일이잖아, 그래. 게다가 해리가 널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기도 하고.”

셜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화난 척 눈을 굴렸지만, 그의 눈빛은 다정하기만 했다.

“아, 그럼 그러자구. 그 사람들 다 초대해.” 그가 말했다. “우리, 풍선은 많으니까.”

존은 행복에 겨워, 환하게 웃으며 잽싸게 해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모두들 221B로 오라고 - 도노반과 앤더슨조차도, 그들이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그들이 마이크로프트에게도 연락하지 않을까? 그건 조금 성급한 것 같긴 하군,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셜록에게 아직 제대로 이야기한 게 아니란 걸 알면 클라라가 그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 더 기다려줄 수도 있을 테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일단 지금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기로 하자구. [각주:7]



+)
페이스북 이벤트로 생일 약속을 잡는 조니보이에, 앱으로 알림 확인하는 셜로기.
읽고 있으려니 주변에 정말 이 둘이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아직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인 두 사람, 완전 귀엽잖아!
물론 하이라이트는 우리의 빅브라더 마형님의 난입이겠지만서도 : ]




  1. 한 해 더 살아남은 걸 축하하는 임시 기념일 - ‘생일’의 홈즈어… 랄까 -_-? [본문으로]
  2. ‘Not Attending’ - 한국 페이스북에서는 ‘아니요’로 표시되므로 거기에 맞춰서 적었다. (한국 페이스북 이벤트 참석 여부 표기: Attending=참석, Maybe=불확실, Not Attending=아니요) [본문으로]
  3. ‘housemate’ - 그냥 동거인이라 써도 되겠지만, 좀더 유쾌하게. : ] [본문으로]
  4. 작곡-_-은 물론, 북치고 장구치고… 우리 셜로기 심심했구나;; [본문으로]
  5. 모 님 말마따나, 21세기 런더너 셜로기! [본문으로]
  6. 이 순간 머릿속에 노스렌드를 떠올린 당신… 쯧쯧;; [본문으로]
  7.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 관용구. 셜록과 친구들을 다 얻는 욕심쟁이 조니보이를 표현하면서, 셜록이 만들어준 케익과도 맞물린 좋은 표현이지만… 거기까진 한글로 살려낼 방법이 없었다 ㅠㅠ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