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 저자: entangled_now + 역자: PasserbyNo3
  • 등급: PG-13 (전체연령가)
  • 길이: 열역학 시리즈 1편 (약 3,6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난방이 안되는데다, 셜록의 침대에는 죽은 부엉이가…
    - ‘저체온증으로 인한 포옹신’이라는 요청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libraryofsol.livejournal.com/152429.html



새벽 2시, 존은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이 온통 얼어붙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매서운 추위가 아니라, 칼로 에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온 몸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는 축축하고도 척 들러붙는 추위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팔다리가 얼음덩어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의아해지는 그런.

“젠장.” 내뱉은 말이 뿌옇게 김이 되어 흩어졌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쓸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이 냉기가 하반신까지 스며들어버렸을 게 뻔했다. 이불을 둘둘 말고 있는데도 어둠 속에서 이를 딱딱 부딪힐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 보일러[각주:1]가 있지 않았나?

그걸 켜둘 만큼의 정신머리가 있는 건 존 혼자뿐인가?

그는 다시 한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꿈지럭거렸고 - 시발 - 침대 밖 세계로의 모험을 떠나는 그의 여정은 지금껏 겪었던 모든 추운 날 아침들이 합심해서 따귀라도 갈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존은 창 밖을 내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시에만 해도 밖에 눈이 30cm나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60cm도 더 넘는 것 같군. 길이란 건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거대한 흰색 투성이에 한때는 런던이었을 희끄무레한 흔적 뿐. 그는 어딘가 들이받지 않게끔 걸음걸이를 추스리려 애쓰며 터덜터덜 방에서 걸어나왔다. 분명히 이 집에는 보일러 비스무리한 게 있을 거다. 라디에이터가 있지 않은가. 찾을 수 있을 리야 없겠지만.

허드슨 부인이 집을 비운데다 이렇게 눈이 계속 쌓이는 추세라면 금방 돌아올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랫층까지 내려가 어둠 속에서 보일러를 찾는 수고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침대에서 나오려 사투를 벌이던 그때보다, 벌써 못해도 20도는 더 추워진 것 같은 느낌이니 말이다.

결국 그는 보일러를 찾지 못했다. 그가 찾아낸 건, 셔츠 바람으로 구부정하게 책상에 앉아 - 스코틀랜드 야드 파일에서 슬쩍 빼온 게 분명해 보이는 - 산더미같은 서류들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온통 구기고 있는 셜록이었다.

존은 그가 숨쉬는 것까지도 볼 수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희미하고 쌀쌀한 입김이 흩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뭐라뭐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기서 꼼짝도 안하고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던 거야?”

얼음장같은 공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신 것처럼, 셜록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적어도 미결사건 다섯 건 정도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만큼은. 다 시시해 빠졌어. 실망스럽다니까.”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존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철들을 훑어보았다. “너 또 서류 훔쳐왔어?”

“빌려온 거야, 레스트라드가 결코 눈치채지 못할 테니 그렇게 표현해도 될지는 좀 불확실한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셜록의 하얀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걸 보니, 존은 손을 뻗어 잡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데다, 불규칙하고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살갗을 따라 흐르는 잔떨림까지도 느껴졌다. 이 남자가 잠시 추위에 대한 스스로의 방어 체계마저 가차없이 억누르고 있었던 거라는 느낌이 드는 존이었다. 거실은 마치 지하 토굴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너 사건도 없지. 뭔가 끔찍하다거나, 촌각을 다투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너 지금 얼어죽어가는 중이거든. 자러 가.”

“거긴 죽은 부엉이가 있어서.” 셜록은 마치 저게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하게도 합리적인 답변이라도 되는 양 대답했다.

“죽은 부엉이가 - ” 존은 절레절레 도리질쳤다. “알고 싶지 않을 것 같군.” [각주:2]

셜록의 이가 또다시 딱딱 맞부딪힌다.

“셜록, 이대로 추운 데 있다가는 네 두뇌도 느려질걸. 그러다간 심지어 오늘 무슨 요일인지도 기억 못하게 될거야.” 존은 이렇게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게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일일 테니, 그 정도면 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반응으로 셜록의 표정이 짧게 움찔거리는 걸 보아하니, 그의 두뇌가 대략 50%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게다. 물론 그걸로도 런던 전체는 물론,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정도는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겠지만.

하지만 존이 자는 동안 셜록이 고집부리다 얼어죽게 둘 수는 없었다. 볼 때마다 전 세계를 덮을 기세로 눈이 쏟아져내리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이런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존은 힘없이 되뇌이며, 셜록을 의자에서 끌어내렸다.

그는 한쪽으로 기우뚱 하더니 관절이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움찔 놀랐다. 아니면 그의 혈액이 슬러쉬처럼 꿀렁꿀렁 흐르고 있다든지.

“맙소사, 셜록. 너 지금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나 해?”

“불쾌할 정도로 잘 인식하고 있는 중이거든, 고맙군그래.”

“스웨터 한 벌도 없어? 부식성 물질같은 걸 흘렸다거나 불태우지 않은 걸로.”

“아마도.” 셜록의 대답이다.

“적어도 코트를 입거나 장갑 정도는 낄 수도 있잖아?”

“그러려고 했지, 다른 생각에 빠졌지만.”

“손에 감각이나 있어?”

존의 방으로 가는 내내, 셜록은 자기가 자기 체온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지 않냐는 둥 뭐라뭐라 궁시렁거렸다.

존은 그런 그를 밀어 침대에 앉혔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다간 너, 영락없이 저체온증에 걸리겠어.” 한마디 쏘아붙이고는, 셜록이 뭐라 투덜대기 전에 신발과 양말을 벗겨버렸다. 그의 발은 맞닿은 손등이 시려워질 만큼 얼음장같았다. “그리고, 소매까지 걷어부치고 싶었던 이유는 대체 뭔데?”

“편하니까, 움직이기도 자유롭고.” 이제 셜록은 마치 턱에 경련이 일기라도 하는 것처럼[각주:3] 아예 규칙적으로 이를 딱딱 부딪혀대고 있다.

“감기 기운이 오는데도 참으려 들면 안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구.”

존은 셔츠를 풀고 셜록의 - 당황스러울 정도로 끝없이 길어보이는 - 팔에서 빼내어 바닥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참으려 드는게 아니라, 확실히 결정하기 어려워서, 가능한 한 열심히 고민하던 중이었어.”

셜록의 바지는 비싼데다 복잡하게 생겨먹어서 존은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알아내는 데만 몇분 걸려야 했고, 덜덜 떨며 짜증을 내다가 결국 풀어내고 다리 아래로 끄집어내리는 데 성공했다.[각주:4] 

셜록은 존의 어깨에 한 손을 얹은 채 엄지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졌고, 존은 그 차가운 느낌에 부르르 떨며 물러서고 말았다. 존이 자신을 눕히고 이불을 휙 덮어씌우는데도 셜록은 군말 없이 얌전히 따랐다.

“나, 내 핸드폰 필요한데?” 셜록의 말에, 잠시나마 한기가 달아났다.

“어디 있는데?”

“나도 몰라.” 셜록은 시인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실상 ‘네가 내 핸드폰 좀 찾아줄래,’겠군. 대답은 ‘싫어’인걸.” 

“네가 찾아주진 않아도 돼, 그냥 전화만 걸어주면 어디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 도저히 딱딱거리는 걸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셜록은 이를 앙 다물고 씹어뱉듯 말한다.

존은 옆으로 파고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셜록은 차가웠다. 불편한 건 물론 걱정스러우리만치 얼음장같다는 걸, 존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별 수 있겠는가, 이 남자를 어색하게나마 두 팔로 감싸안아줄 수 있게끔 가까이 끌어당길 수밖에.

셜록은 파묻힌 채 뭐라 하는 듯 했고 존은 얼굴 한가득 와닿는 싸늘하게 식은 머리카락을 느꼈다. 그는 셜록이 다시금 빠져나가려 든다거나, 열 교환 방식이 얼마나 복잡한지 일장연설을 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에 들려온 건 기분 좋은 그릉, 소리 뿐. 마치 존이 정말 끝내주는 생각이라도 해냈다는 듯이 말이다. 얼결에 셜록은 얼음장처럼 꽁꽁 언 손을 밀어넣고 있었고, 존은 훅, 숨을 들이마시며 움찔거리며 물러나려 해봤지만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소리내어 불평이라도 하려 했지만 - 마치 존이 놀랄 만한 일이라도 해보였다는 듯 셜록이 흐응, 하는 거다. 그러더니 셜록은 시트에 맞닿은 몸을 부러 옮겨 기다란 동결선이라도 되려는 듯 갑자기 존의 몸에 착 달라붙었고, 덕분에 그는 숨이 헉,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옆얼굴을 스치는 소리. 셜록이 열역학 제2법칙 어쩌구 하면서 중얼거리는 거다.

이젠 떨고 있는 건 셜록 뿐만이 아니게 되었다.

“뭔가 할래도 내 손가락에 감각이 없는걸?” 셜록은 짜증스럽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건 나도 알겠네.” 존은 맞받아쳤다. “끝내주게 차가운데다, 네가 손가락 하나를 내 배에다 들이대고 있으니 말이지.”

“체온을 빼앗아간다고 화라도 낼 셈이야, 존, 진짜로?”

“내 라구, 셜록.”

“그럼 어디가 좋은데?” 존이 제일 나은 위치만 정해주면 어디에서든지간에 온기를 싸그리 빼앗아갈 기세로 셜록은 손을 뻗었지만, 생각보다 금세 포기해버린 모양이다. 존의 목과 어깨 사이에 이마를 대고는 얼굴의 반을 파묻으며 엉겨오는 그는, 존이 이제껏 봐온 것 중 제일 욕심을 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 그 위대하고도 고결하신 두뇌에겐, 인간의 감각은 그저 생각을 방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존은 떨면서도 한마디 했다.

옆에서 셜록이 말똥 쳐다보는 품이, ‘내 입을 열게 만들 생각이라면 잘 좀 해 보시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 정도는 마음대로 놀려먹을 거라구.” 존은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난 한겨울에 부적절한 옷차림으로, 어두운 데 덩그러니 앉아 있을 만큼 어리석진 않으니 말이지.”

“그러니 난 이걸 가만히 들어줘야 하는 거고?”

“그렇지, 네가 지금 내 침대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존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죽은 부엉이 있잖아.” 존이 까먹기라도 했다는 듯 다시금 일깨워주는 셜록이다. 그게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시겠죠. 내가 어찌 그 죽은 부엉이를 잊겠어.”

“네 탓인 건 분명하잖아, 네가 날 이리로 데려왔으니까. 난 소파에서 잘 수도 있었다구.”

“넌 소파에서 자다간 얼어죽었을걸.” 과장되게 데굴, 눈을 굴리는 셜록을 완전히 무시하며 존은 말했다. 누가 셜록에게 지독하리만치 드라마틱하게 구는 기술을 가르칠 권리라도 있대나. “이런 식으로 굴 거면 네 걱정따위 안해도 됐을 텐데.”

“지금 있는 그대로 있으면, 우리 둘 다 쾌적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 셜록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인정했다.

“이럴 땐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좋겠는걸.” 존의 말에, 

“그러시겠죠.” 셜록의 대꾸.

“셜록.” 존은 경고하듯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그래, 그래, 좋아, 고맙습니다, 너무 재미있다 못해 이젠 한기까지 느껴질 지경이군.”

“어쩐지 이건 네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네.” 

“난 꽤나 많은 것들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좌절스럽게도 날씨는 포함이 안되더라구.”

“보일러는 왜 안 돌아가는 거지?” 존은 나직하게 물었다. 그저 추측하는 거긴 했지만, 지금쯤 그는 셜록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훅, 숨결이 그의 얼굴에 끼쳐온다. 어쩐지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비 발전기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이었지. 어쩌면 예비 보일러같은 것도 괜찮은 생각이겠다 싶네.” 셜록은, 모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데 새삼 화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그는 아예 제대로 덜덜 떨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저 체격에는 어색해보이기만 했다. 뭐, 이번만큼은 셜록의 신체가 이 사투를 이겨내보기로 했다는 좋은 징조일지도 모른다. 그의 두뇌라는 장대한 엔진도 - 얼마나 좋은지와는 관계없이 - 가끔은 엔지니어에게 굴복하고 말 테니까.

“네 머릿속에 있는 그놈의 할일 목록은 대체 얼마나 긴 거야.” 존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다, 목록같은 거면 지나치게 쉽지, 안그래? 아마도 플로우차트라든가, 어마어마한 벤다이어그램 네트워크 같은 거겠지.”

“무시무시하게 부정확하군.” 셜록은 투덜거리며, 존의 멀쩡한 어깨에 대고 이야기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렸다.

존은, 그 덕에 전해져오는 떨림을 단호하게 모른척 했다.

“내일은 누구도, 아무 데도 못 가. 그러니 네가 주방용품들로 스노모바일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범죄를 해결하는 일엔 손댈 생각도 마. 범죄 해결은 절대 안돼.”

셜록은, 북극 같은 온도를 잠깐 경험해본 정도로 자신을 막아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존이 완전 정신나간 거라는 듯 싫은 소리를 냈다.

“네게 갑자기 천리안이라도 생긴 거라면야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구. 셜록.”

“그 인간들, 나한테 문자를 보낼 수도 있잖아.”

“문자만으로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다 - 맙소사, 나 누구에게 말하는 거니, 당연히 넌 할 수 있을텐데.”

“사진도 쳐주나?” 셜록은 물었다.

“아니, 사진은 안돼.”

“이론의 여지가 있겠군,” 단호하게 답하는 셜록이다. “적중률이 너무 낮으니까.”

“대략 찍어볼 수도 있을 거 아냐.” 존의 제안에,

“존, 내가 그런 식으로 찍어댔으면 위키피디아 취급을 당했을걸.” 셜록은 대꾸했다.

존은 소리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다리를 쭉 펴보았지만 추운 것 같진 않았다.

“네가 위키피디아에게 자리를 빼앗길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범죄자들도 오늘 창 밖에 60cm 정도 쌓인 눈더미를 보면서 내심 생각했을걸. ‘있잖아, 영 안 땡기는걸.’[각주:5]

이불 아래에서 셜록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제 바깥 세상으로 손을 뻗어볼 만큼은 살아난 모양이다.

“내 핸드폰은 언제 채간거야?”

“네가 내 신발 벗길 때.” 셜록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했다. 간헐적인 떨림과 감각 없는 손가락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인해 당장은 제대로 들고 있기조차 힘든 것 같긴 했지만. 결국에는 존의 가슴에 얹어 균형을 잡았고, 버튼 눌리는 조그마한 타닥타닥, 소리와 티셔츠에 맞닿은 핸드폰을 타고 전해져오는 눌리는 느낌, 이상하게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에서 핸드폰 소리가 들려왔다.

“내 핸드폰, 부엌에 있어.” 셜록이 담담하게 말했다.

존은 들릴락 말락하게 뭐라 웅얼거렸다. 셜록이라면 어쨌든간에 뭐라 했는지 완벽하게 잘 알아차릴 거라 확신하면서도 말이다.

“내 핸드폰으로 뭐 이상한 거 하지 말라구.”

“그거 꽤나 폭넓고 도움 안되는 요구사항인걸.” 말하는 셜록의 얼굴은, 핸드폰 화면 불빛에 한층 더 이상해 보였다.

“살인범에겐 문자 보내지 마.”

“우리들 거의 대부분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걸, 존.”

존은 휴, 한숨만 나왔다.

나머지 타닥타닥, 소리에 대해선 전혀 알고 싶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존이었다. 그에 덧붙는, 나직하다 못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인 셜록의 중얼거리는 소리 같은 건 이상했지만 어쨌든 익숙했고.

반쯤 잠들어가고 있던 찰나, 가슴에 얹혀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날카롭게 울어댔다.

“그건 뭐야?”

“배터리.” 셜록은 짜증섞인 말투로,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대꾸했다. 그의 관심을 끌어줄 만한 게 갑작스레 사라져버리기 직전인 모양이다.

불현듯 온 방안이 캄캄해졌다.

휴, 한숨소리와 - 이어지는 셜록의 매끄러운 손가락, 배 위로 툭, 떨어지는 자신의 핸드폰.

“충전해.”

“싫어.”

“존.”

“싫다구.” 존은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어쨌든 셜록은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해마지 않으면서도. 짜증스러우리만치 시력이 좋으니 말이다.

얼음장처럼 차고 가느다란 셜록의 다리 한 쪽이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 침대에서 빠져나가려는 참이다. 존은 자신의 다리를 들어 옴짝달싹 못하게 고정시켜 버렸다.

셜록은, 존이 어이없이 군다는 듯 불만 섞인 짜증을 부리며 식식거렸다.

“너 아직 반쯤 얼어있거든. 그리고 난, 네가 책장이나 냉장고라든가, 아니면 바깥의 저 미친 눈더미 속에서 뭔가 엄청 흥미로운 걸 찾아낸대도 다시 일어나서 널 데리고 올 생각은 없다구.”

셜록은 들으란 듯 과장되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꺼져버린 핸드폰을 시트 안 어딘가로 - 이젠 쓸모도 없으니 어딘지도 중요하지 않을 테다 - 파묻어버렸다. 존은, 셜록이 이런 식으로 자기 방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둔 수많은 것들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저 거기 가야 할 일이 절대 없기만을 바랄 뿐. 신체 일부분들을 아무데나 두는 경향으로 미루어볼 때, 셜록의 방 안에 숨겨져 있을 무시무시하고도 거슬리는 뭔가가 부엉이 시체 하나 정도로 그치지 않을 확률은 평균 이상이 될 테니 말이다. 

존이 막 말을 걸어보려던 순간, 셜록이 하품을 했다. 실제로 하품을 하는 거다. 존은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얼굴을 존의 어깻죽지에 파묻는다. 아마도 코끝이 아직 꽁꽁 얼어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열기를 보존해보려는 걸테다. 존의 목덜미와 턱을 스륵, 스치는 그의 머리카락이 간질간질했다.

꽤나 오랫동안 셜록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존의 살갗을 덥혔다가 식히는 안정된 숨결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꾹꾹 눌러 잘 묻어두었던, 모호하게 계속되던 흥분감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조각들이야, 존.” 이불 아래 어딘가에서 셜록이 웅얼거렸다. “전부 조각조각이라구, 순서도 엉망이고. 아니면 순서는 맞는데 맞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거나.”

“무슨 소리야?” 존은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의미없는 이상한 웅얼거림밖에는.

그리고 이어 - 

셜록이 코를 고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잠꼬대를 했던 거였다.





존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추웠다. 햇빛이 난다고 해봐야 쓸데없고 달갑잖게 눈부시기만 할 뿐, 별반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나마 밤새 눈이 더 내리진 않은 것 같다는 게 다행일까. 지난번에 이만큼 눈이 왔을 때엔 모두가 1주일 내내 세계가 끝나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으니 말이다.

의외로 묵직한 누군가가 자신을 반쯤 덮고 누워있는 이유를 알아내기까지는 조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대체 어젯밤엔 어째서 이게 그렇게나 좋은 생각같았는지 생각해 내는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이 사태는 새벽 2시의 어둠 속에서보다, 대낮인 지금 훨씬 더 범죄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자세에서 존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셜록의 온통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그의 입꼬리 뿐이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여 보면 셜록의 얼굴을 다 볼 수 있을테다.

어쩐지, 눈표범을 사진에 담아낼 절호의 기회를 잡은 야생동물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저 위대한 셜록 홈즈도 잠을 잔다는 - 무려 낮시간에 -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너 카메라 템즈강에 빠뜨렸잖아. 그리고 네 핸드폰은, 우리 둘 다 이미 알다시피 전원이 나갔고.” 셜록은 눈도 뜨지 않은 채로 말했다. 저 남자의 두뇌는 잠든 것과 깨어있는 것의 차이를 알기나 하는 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존이었다.

“너, 그럴 땐 소름끼친다구.” 존은 말했다.

셜록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불현듯 존은, 이 남자가 이젠 완벽하게 따뜻해진 상태라 여기 이대로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생각해냈다.

“왜 아직 내 위에 누워있는 건데?”

잠시의 침묵.

“너 편안하거든.”[각주:6] 마침내, 셜록은 느릿느릿 조용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감각이란 것에 항복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게 가증스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나중에 만회하려면 훨씬 더 냉담하고도 멋지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를 질책하기라도 해야 할 것처럼 말이다.

완전히 생소한 것도 아니긴 하다. 셜록은 거의 대부분 의자나 소파, 아니면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들어버리곤 했으니까. 잠깐이지만, 그의 두뇌가 상식이란 수준에 굴복하고 마는 끔찍한 순간들 말이다. 순간, 존은 셜록이 완벽하게 - 아무리 해봐도 충분한 공간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욕심쟁이처럼, 보란듯 온 몸을 펴고 누워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버렸다. 아니면, 또다른 침대 파트너를 둔 적이 없다거나.

이 사실에 존은 어찌해야 할지 암담해졌다. 하지만 어쨌든 아직 움직이지는 않은 채, 그게 뭔가 특별한 종류의 약점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무리 그가 따뜻하다 한들, 셜록은 - 그들은 - 그런 게 아니니 말이다.

“이봐, 셜록. 이건 정말이지 그런 게 -”

“재미없게 굴지 말라구, 존. 넌 그러기엔 아까우니까.”

저 대답에 존은 기뻐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입은 다물고 있기로 했다.

“커피.” 셜록이 한마디 한다.

존은 그의 머리카락을 노려보았다.

“그거, 힌트야?”

“나 자극제가 필요해.” 마치 생과 사가 걸린 상황이라는 듯한 셜록의 대답이다.

존은 휴,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젖혔다.

“시발.” 곧바로 입에서 튀어나와버린다. 미칠듯 추웠으니까. 어떻게든지 셜록에게 보일러를 고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할 테니 더더욱.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존은 스웨터를 꿰어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바닥에 닿는 순간 발이 거의 얼어붙다시피 해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그 전에 우선 주전자 안에 역겨운 게 들어있진 않은지 확인부터 했다[각주:7]) 한발짝 옮길 때마다 감각이 없어져 어색하게 미끄러지곤 했다.

그는 머그 두 개를 들고 윗층으로 되돌아갔다.

셜록은 아까 그대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그의 침대에 말이다. 가장자리로 비어져나온 길고 흰 손과 베개 위로 흐트러진 짙은 색 머리카락. 그 광경에 존은, 이게 그가 평소 하던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찔하리만치 강하게 깨닫고 말았다. 그가 알던 그 어떤 다른 남자와도 이런 일은 결코 없었던 거다. 이제껏 단 한번도.

“침대로 돌아와, 추워.” 셜록은 성마르게 재촉했다.

불현듯 존은 섹스 없이도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거야말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설명인 것 같은데다, 이 남자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알아차릴 것까지도 확신하고 있었을 테니까. 선을 넘는 순간에는 알아차렸어야 했던 거다. 플랫메이트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다른 뭔가로? 하지만 최악인 건, 어느 정도는 실제로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 - 정상적인 사람들은 번번이 말리지 않았던가. 

그보다 조금 더 걱정스러운 건, 갑작스레 셜록과의 섹스는 어떨지가 궁금해졌다는 거겠다. 그런 생각같은 건 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수도 없이 많은 합리적인 이유로다가 똑똑히 알고 있었으니까. 셜록이 섹스란 걸 하긴 하는지, 아니면 자기 수준에 안 맞는데다 끔찍하리만치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조차 알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는 침대 맞은편, 그저께 신문 위에 커피를 올려놓았다.

셜록은 ‘17분’처럼 들리는 뭔가를 웅얼거리더니, 한 팔을 뻗어 머그를 잡았다.

“내 침대에다 커피 흘리지 마.” 존은 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내 침대에서 나가’란 말은 아니었다. 응당 그래야만 했을 테고, 그러고 싶었어야 하는데도.

그는 별 생각 없이 셜록의 두 다리를 밀어내며 침대로 기어올라갔다. 다른데는 추운데다, 부엌으로의 길고도 불쾌한 여정 동안에도 셜록이 이불을 따뜻하게 잘 지키고 있는 쾌거를 이룩했기 때문이겠다.

게다가 아직 일어나기에 너무 이르기도 했고.

뭐, 아니면 기타등등.

셜록은 뭔가 달갑잖은 듯 툴툴거리더니 예의 그 터무니없이 길쭉한 팔로 바닥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돌아누워 존의 몸에 가까이 달라붙는다. 지금 당장 수 있는 게 그거라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도 안되게 따뜻한 손이 -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을 감싸고 있던 탓이다 - 존의 갈비뼈 위에 얹힌다.

문득, 제대로 숨을 쉬는 게 너무나도 어려워지고 말았다.



+)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요 글이 문득 생각나서. 라고 적어둔 게 벌써 2주 전이었… -_-;; 
어느 날 회사 구석에서 자다 깨서 엄청 추웠는데, 불현듯 부둥부둥 사람의 온기가 그립더라.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존이 있다면, 침대를 포근하게 데워줄 셜록이 있다면 겨울이 몇 배 더 좋을텐데 : ]



  1. ‘heating’ - 난방 장치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하니까, 221B에도 보일러를 놓아드리기로 :D [본문으로]
  2. …내 말이. [본문으로]
  3. ‘like he has a tick in his jaw’ - 원문은 tick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tic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옮긴다. [본문으로]
  4. 저… 저기요?;; XD [본문으로]
  5. ‘y’know what, I don't fancy it.’ - 존의 이런 시크한 말투가 마음에 든다. [본문으로]
  6. ”You're comfortable,” - 존은 역시 곰인형이었… [본문으로]
  7. 이거시 바로 생활의 지혜이자 살림의 노하우.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