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The Art of Negotiation 
  • 저자: entangled_now + 역자: PasserbyNo3
  • 등급: PG-13 (전체연령가)
  • 길이: 열역학 시리즈 2편 (약 3,8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려면, 반복은 필수죠.
    - [열역학 제2법칙]의 속편입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libraryofsol.livejournal.com/152600.html



눈은 꿋꿋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온 천지라는 말이겠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긴 하지만, 저 눈더미들이 항복하고 녹아내릴 만큼의 따스함은 전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존으로서는 여전히 플랫 안에서도 스스로의 입김이 보일 지경이니 말이다. 실내 난방 장치라는 건 딱 이런 날 쓰라고 만들어진 걸테다.

토스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사태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내는 것 따위는 포기한지도 좀 됐다. 내일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그는 주전자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 셜록과 함께 살면서부터 온도 제어가 필요한 모든 것들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익혔다 -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 것보다 충격적인 실험물이라 할 만한 것들이 보통 더 많다는 사실쯤은 이쯤 되면 더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는 우유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존은 그중 절반은 싱크대로 부어버려야 했다. 가끔 셜록도 중요한 생활의 기술 몇 가지는 시도해보려 들겠지. 그래봐야 우유를 사온 다음에 그게 마술처럼 차나 커피로 뿅, 바뀌어버리기를 기대한다거나 하는 정도겠지만.

물론 차나 커피로 바뀌어버리는 사태가 응당 그래야 하는 수준보다 너무 자주 발생하게 되면 위험하긴 하다. 형편없는 태도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될 테니까. 지금도 셜록은 충분히 저 형편없는 태도로 잘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간혹 셜록의 두뇌가 최고 속도로 돌아갈 만한 일이 하나도 없을 때면 심지어 빵을 사다놓기도 한다. 아마 그게 샌드위치로 바뀌어버릴 거라 기대하는 걸지도. 어쩌면 저 인간은 빵을 충분히 오래 묵혀두고 있으면 샌드위치로 진화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각주:1] 

존은 주로 저 빵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실험물로 바뀌어버리는 걸 봐왔다. 그게 그저 곰팡이에 대한 실험일지라 해도 말이다. (늘 의도적으로 그리 된 건 아니었다)

그는 토스트 대신 눅눅해진 크루아상을 먹으며, 이가 자체 진동이라도 하게 만들만큼 진한 커피를 곁들였다. 지금 당장은 그게 그닥 거슬리지도 않기도 했다. 두 장의 스웨터를 껴입었는데도 여전히 얼어붙을 만큼 추웠으니까. 그나마 커피 덕분에 아직 자신에게 손가락이 있다는 걸 되새길 수 있었다.

“이 인간한테 보일러 고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는 누구 하나 상대도 없이 투덜거려 보았다.

그는 눅눅한 크루아상과 커피를 우물거리며 텔레비전을 켰다. 짐승들이 동물원에서 빠져나오고 계엄령이 선포된다든지 해서,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기를 반쯤 기대하면서. 거리는 지금 60cm에서 1미터 가량의 눈으로 온통 뒤덮여 있음에도 그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확실히 과잉 반응이긴 하다. 모종의 종말론같은 거랄까. 하지만 그 대신 자신의 일에 한껏 심취한 것 같은 뉴스 진행자가 얼마나 심각한 폭설인지에 대해 끝없이 떠들어대는 참이다. 간밤에 정확히 얼마나 많은 양의 눈이 내렸는지를 진지하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기개라고는 벌써 다 소진되어버린 모양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해주지 않긴 했지만. 존은 일단, ‘애초부터 없었다’고 할 만큼 지나치게 ‘소진되지는’ 않았다고 치기로 했다.

존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를 들었다. 소리만으로 듣자면, 상식이라는 건 가뿐하게 무시하고 산 채로 묻어버리려는 모양이다.

아랫층 어딘가에서, 셜록이 누군가를 바보라 불러대고 있었다. 존은 그게 누군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게 자신일지도 모를 가능성도 있으니까.[각주:2] 

어쨌든, 창가로 가서 내다볼 만큼은 궁금해졌다.

보아하니, 셜록이 남겨진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게끔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길을 건너보라며 돈을 준 모양이었다.

신나게 낄낄거리다가 말다 하는 소리들. 그래도 엄격한 실험 조건에 비해 셜록이 너무 심하게 뭐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장갑이랑 목도리는 하고 있기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셜록은 집 안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눈을 가져왔다. 뭔가 실험같은 걸 한다며 욕조에다 집어넣기 전까지 절반은 카펫에 주르륵 흘리면서. 그 실험이란 게 신체 일부분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등의 일과는 상관이 없길, 존은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았다. 오늘이 시체까지 든 욕조를 마주하게 되는 수요일이 되어버리는 사태만큼은 단호히 거부하겠노라 다짐도 했고.

어찌 되었든간에 당분간 목욕따위는 하지 않을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사람이 걸을 수 없게 되기 직전까지 얼마나 많은 양말을 껴신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참이었다.





얼마 후, 셜록은 공통점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일련의 책 무더기를 가지러 텔레비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추위가 자신의 소근육 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둥 어쩐다는 둥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일러 고쳐.” 존은, 셜록이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기 전에 잊지 않고 한마디 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부츠를 찾으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테이블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여다보았다.

최고의 효율성 지속을 위해 차가 필요함.
SH [각주:3]


존은 문자를 보며 크릉, 싫은 소리를 내고는 답장을 보냈다.

차를 타다주는데엔 예의란게 필요함 [각주:4]

핸드폰을 내려놓을 새도 없었다. 그는 문자가 오자마자 ‘보기’를 눌렀다.

고마워.
SH


데굴, 눈 한번 굴리고는 물을 올리러 가는 존이었다.





마침내 이 날씨는 위대하신 셜록 홈즈님마저도 꺾고야 말았다. 홀딱 젖은 채로 꽁꽁 얼어서 다시 나타난 그의 뺨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존이 이제껏 봐온 중에서 저게 가장 혈색좋은 모습일 테다.

그의 머리에는 눈이 한가득 엉겨 있었다.

“밖에 또 눈 오는 거야?” 존은 말했다.

그의 영리한 추리에도 셜록은 대꾸 한 마디 없었다.

어쨌든 존은 그에게 커피를 타다 주고는, 머리에서 눈 녹은 물을 쿠션으로 뚝뚝 흘리며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아직 코트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있는 그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야?”[각주:5] 존은 물었다.

셜록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소파 위로 다리를 끌어올렸다.

“내 생각엔, 그럴걸.”

존은 몸을 일으켜 찬장에 과학 관련 장비나 책이 아닌 뭔가 있을지 살피러 갔다. 그런 건 둘 다 - 셜록이 뭐라 생각하든지간에 -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전자렌지 안에 역겨운 건 없었고, 최근에 역겨운 뭔가가 들어있던 것 같은 냄새도 나지 않았기에 존은 밥 조금을 넣고 닫힌 문 너머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엌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냉기가 양말을 뚫고 스며들어 발이 아려오기까지는, 7분보다도 훨씬 금방이었다.

그가 되돌아왔을 때엔, 셜록은 채널을 돌려놓은 상태였다.

존은 원래 셜록이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었다. 작고 하등한 동물들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지적 능력을 갖춘 저 모든 우월한 포식자들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이 끔찍하리만치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동물들에겐 식욕 외에 다른 동기같은 게 없는데다, 뭔가를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거의 감추려고도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는, ‘가장 오래된 대자연의 살인 무기’라고 이름붙여 주었던 - 뱀에 대한 건 봤었다. 대략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수준 이상으로 즐기면서.

이제 셜록은 코트를 벗었고, 바닥을 드러낸 머그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존은 들고온 두번째 그릇으로 열원을 바꿔주었고, 셜록은 포크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걸로 누군가를 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정해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어찌되었든간에, 존은 리모콘을 되찾아오는데 성공했고 셜록은 억지로 생명을 건 포획[각주:6]을 보진 않겠다며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대체 이 남자, 자기 먹을 음식을 만드는 기술같은 건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보지도 않고 먹는 기술은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는 건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존은 할 수 있는 한 오래 무시하고 넘겨버렸다. 세번이나 더 채널을 돌리고도 남을 정도로 오래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쯤 여러가지 중얼거림 중에서도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실망했다니까’ 라는 말 정도는 알아들었다는 생각이 들고 마는 참이다.

아, 신이시여.

“뭐라구?” 결국 옆을 보며 대꾸하고 말았다. 여기선 셜록이 배에 올려둔 화면이 간신히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사람들은 자기들 문제를 ‘복잡하다’고 규정지어버리면 어김없이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잘못된 생각들을 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분명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 심지어 전혀 힘들 것도 없어. 이걸 봐. 웨스트코트 부인에게로 온 협박편지인데. 대명사를 남발하거나 배치에 신경쓰지 않는 걸 보면 남성이란 거야. 말투가 호전적이긴 하지만 인신공격적인 면이 있고, 여자 형제나 어머니에 비해 새 부인에 대해 모욕적인 표현을 쓴 걸 보면 일가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웨스트코트가 사람들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걸로 미루어볼 때 가까운 가족이야.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과장하는데다 은연중에 열등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 남동생들 중 하나겠고 - ” 셜록이 키를 누르자, 수많은 메일들이 떠 있던 화면이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바뀌었다. “ - 그들 중에서도 좋지 않은 선택을 했던 전력이 있고 현재 새 포르쉐 값을 치르느라 애를 먹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니, 답은 로버트 웨스트코트인거지.”

셜록은 의자 팔걸이 너머로 고개를 비죽 내밀더니, 존이 받아줘야 할지 바닥에 떨어지게 둬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노트북을 주르륵 미끄러뜨린다. 그는 메일의 첨부파일 두 개를 빤히 쳐다보다 말고 얼굴을 구기더니,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실제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셜록이 담담하게 말했다.

“넌 그 모든 걸 협박편지 한 통에 사진 한 장 보고 안 거야?” 셜록이 지금처럼 하는 걸 백번쯤 지켜봐 왔으면서도, 존은 여전히 말투에 묻어나는 의아한 기색을 지워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그는 속임수를 알아내려 애쓰는 - 커튼 뒤에 숨은 마술사 조수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니 말이다.

“저들에게 이야기해줄 거야?”

이 모든 일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하다는 듯, 셜록은 인상을 팍 구겼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삶이란 게 지독하게 따분하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아마 저들은 알고 싶어할 거거든.” 존은 콕 집어 말해주었다. 그였다 해도 알고 싶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셜록은 우아하게 소파에 쭉 뻗고 누운 채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두 팔을 양 옆으로 내던지듯 폈다.

“그리고 제발, 네 그 결론을 웨스트코트가의 주소록에 등록된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지는 마.”

셜록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세심할 줄 알아.”[각주:7] 

“아니, 넌 모르거든.” 존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꾸했고, 셜록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전에 어떤 남자가 살인자라고 폭로했었잖아, 그 남자 딸 결혼식에서.” 존은 대답했다. 정말이지 그건 이야기할 수 있을 허다한 사례들 중 달랑 하나에 불과할 뿐이란 말이다. 심지어 그건 셜록이 저지른 일들 중에 최고로 후안무치한 짓도 아니다. 그정도로는 택도 없지.

“그 남자 살인범이었는걸.”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사람들에게 완곡하게 전하는 걸 - 네가 그닥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좋아.” 셜록은 대수롭잖다는 듯 대답했다. “네가 이야기하면 되겠네.”

정말이지, 존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야 했다.





셜록이 거실 바닥에 대해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뭔가를 시작했을 때, 존은 자러 가기로 했다. 

그는 아랫층에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자장가삼아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디선가 새어들어온 빛줄기가 얼굴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그는 반쯤 잠에서 깨어버리고 말았다.

셜록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존은 이 남자 쪽을 보고 인상을 썼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가 실제로 알 수 있는, 희귀하고도 예기치 못한 순간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렇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 왜냐면 지금은 -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 새벽 2시고, 이러고 있기엔 엄청 이르거나, 어쩌면 엄청 늦은 시간일 테니 말이다.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요량 따위, 상대가 셜록일 때는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란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셜록은 뭔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조차도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느껴지도록 설명해내는 데 지나칠 정도로 탁월하니 말이다. 이럴 때의 정답이라면, 입도 뻥긋 하지 않고 그저 문 쪽을 가리켜보이는 걸테다.

“그건 네가 얼어죽지 않게 하려던 거지, 영구적인 초대는 아니었다구.” 하지만 존은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직 내 침대엔 죽은 부엉이가 있잖아.” 설명하는 셜록이다. 마치 그 말 하나면 이 상황이 마술처럼 괜찮은 걸로 바뀌어버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셜록. 침대는 자라고 있는 거지, 죽은 새라든지 하는 실험물을 두라고 있는 게 아냐.”

“소파나 부엌에 두면 네가 싫어할 거라 생각했는걸.” 셜록이 나직하게 뇌까리는 품이, 지금 짜증이 나 있는게 분명하다. “넌 돼지도 싫어했었잖아.”

“네가 그걸 부엌 테이블 위에서 해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놈의 죽은 부엉이를 내 탓으로 돌릴 생각따위는 하지도 마.” 존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서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앉았다. “너 말야. 새벽 두시에 내 방에 갑자기 들이닥쳐 놓고서는 내가 널 내 침대에서 재워줄 거라 기대하면 안되는 거라구.” 세상 그 누구라도, 그런 것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거다. 세상 그 누구라도 그정도는 이해할 거란 말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게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부적절하다는 것쯤은 이해하겠지.

존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셜록을 - 구시렁거리게 되어버릴 만큼 오래는 -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오늘 아침 - 이보다 더 나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온통 덮고 누운 셜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던 그 순간을,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잘 잊어버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꽤나 좋았어. 그렇다는 게 좀 충격적이라서 그냥 내가 상상 속에서 꾸며낸 일인 척 하고 싶단 말이지.’라니. 셜록이 예리하게 전부… 눈치채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저걸 표현해낼 방법따위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그는 이 사태를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견뎌내겠다며 솔직하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 그러지도 않을 테고.

“어제는 나 여기서 재워줬으면서.” 셜록이 입을 열었다.

“어젠 네 피 도는 꼴이 눈사람이나 다름없었거든. 네가 죽지 않게끔 할 수 있을, 제일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이었어.”

셜록의 눈빛. 절대 누구에게도 좋은 징조일 리 없는 바로 그 눈빛이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이 소파로 돌아가야 되는 거겠네. 네 체온이 주는 추가적인 이득을 제외하고라도, 거기 온도는 네 침대보다 상당히 낮은데 말이지. 어제와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군.”

존은 이 남자에게, 누군가의 침대로 들어가 보겠다며 이야기하는 것 치고는 그가 지금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청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줄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셜록을 다루기 곤란한 상태로 만드는 데에는, 그에게 도전거리를 던져주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내 두뇌로 판단하기엔 어젯밤 조건이 특히 편안했던 것 같더라구. 온도 아니면 다른 사람과의 근접성이겠지. 나도 확신할 수는 없어. 그게 실험을 되풀이해보고 싶은 이유기도 하고.” 

“안돼.”

“존 - ”

“안된다구.”

“단 한번의 실험으로 결론을 내리긴 불가능한걸.” 셜록은 입을 열었다. 마치 존이 전체 과학계를 실망시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꾹꾹 눌렀다. “실험이 아니거든. 내 침대고, 넌 불청객이라구.”

셜록은 존이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듯이 데굴, 눈을 굴렸다. “어젯밤보다도 훨씬 덜 복잡한 상황이잖아.”

지금 존은, 바라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잠이 확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이건 말도 안돼. 네가 악몽에 시달리는 꼬맹이도 아니잖아.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고. 여기서 같이 자겠노라 요구할 정도로 그럴싸한 이유따위는 하나도 없다구.”

“아직 춥잖아.” 간단하게 대꾸해버리는 셜록이다. “자는 내내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해야 할 일들을 줄여주는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구. 득을 보는 건 나뿐만이 아냐. 너, 추위 때문에 상당히 긴장해 있는데다 네 어깨랑 다리에도 안좋아. 최소한의 감정적인 흥분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결과를 얻는 셈이지.”

“네가 보일러를 안 고쳐서 추운거잖아.” 존은 악문 잇새로 한소리 했다. “넌 정말이지 구제불능이라니까.”

그는 뭐에 씌었길래 이불을 옆으로 걷어차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겠지, 그 어떤 것도. 그저 새벽 2시고, 피곤해서 자고 싶어서 그런 것 뿐이기만을 바라마지 않았다.

셜록은 팔다리가 길고 묵직한데다, 한 명 분 치고는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해버렸다. 그에게서 빠져나오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만큼의 공간이었다. 셜록이야 침대를 같이 쓰고 있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 했지만.

보통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어쩐지 더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셜록의 발이 얼음장같기도 했고.

존은 지금 이게 뭘 하는 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눈이 그치면 넌 죽은 부엉이를 치우는거야. 그리고 우리, 다신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는거다.”

“그건 쓸데없이 지나친 것 같은데.” 셜록이 끼어들었다.

“너도 그게 네 약점이라는 걸 깨달았나보군. 그리고 나중에 참고하라고 해주는 말인데, 누군가랑 잘 때는 침대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 게 예의라구.” 존은, 이 남자를 걷어차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진 말아야지.

“내가 너보다 크니까, 여유 공간에서 내가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인걸.” 지적하는 셜록이다. 그 사실따위 벌써 두 다리를 짜증날 정도로 길게 뻗어서 온 몸으로 증명해보이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런 적 없다는 듯이.

“그건 내가 너 잠들자마자  침대에서 걷어차버리지 않을 동안까지만 유효한 이야기가 될거야.”

“이거, 미묘하게 의미심장한 것 같지 않아?”[각주:8] 존은 잘해봐야 구박이나 받겠거니 하고 있는데, 흥미있다는 듯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묻는 셜록이다. 내가 미쳤지, 어째서인지 셜록이 이틀 연속으로 자신의 침대에서 버텨냈다는 건 그 외에 다른 설명따위 있을 리 없다. 심지어 더 이상은 뭐라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그렇고. 내가 미친거야, 누구든 붙잡고 이야길 해봐야 하는 걸지도. 아니면 최소한 스톡홀름 증후군의 정의 정도는 찾아봐야겠다. 만약을 대비해서 말이지.

한동안 조용하더니, 이내 핸드폰의 희미하지만 익숙한 불빛이 방 안을 비추었다. 

존은 돌아누울 생각도 않고 팔을 뻗어서는, 셜록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 베개 밑으로 파묻어버렸다. 무엇 하나 할 수 없게 한다며 짜증스레 투덜거리는 셜록은 완전히 무시해 버리면서.

“새벽 두시 넘어서는 문자 모험 같은 건 금지야. 내 규칙 중 하나라구.” 존은 딱 잘라 말했다.

“어째서 넌 규칙을 정하는데 난 안되는거야?”

“내 침실이니까, 내 규칙을 따라야지.”

“규칙들 이야기는 해줄거고?”

“아니.” 존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대꾸했다.

“무슨 규칙인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내가 어떻게 그 규칙을 지키라는 건데?” 셜록의 질문이다. 까만 어둠 속에서도 재미있다는 기색이 역력한 저 목소리라니, 부당한 노릇이다.

존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이제 규칙은 딱 하나야. 얼른 자.” 

“명령을 받고 잠드는 건 어려운걸.” 

“그럼 어떻게 할지 알아낼 때까지 자는 척이라도 해.”

셜록은 웃었고, 그 진동마저 고스란히 느껴졌다. 베개로 저 얼굴을 한방 갈겨주고픈 걸 꾹꾹 눌러 참아야만 할 지경이었다. 





존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고심하는 중이었다. 잠들지도 못한 데다가, 누군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잠들었던 걸 기억해냈다는 게 꽤나 확실했던 탓이다. 살갖에 맞닿아 있는 그의 얼굴 -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질였고, 그의 팔은 지금 - 시종일관 온기를 발산하고 있는 누군가를 감싸안고 있었다. 작은 따스함, 의외였지만 어쨌든 기분 좋았다.

그렇지 않은 이유를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셜록은 잠들어 있었다. 그런 척 하는 것도, 심장 뛰는 소리를 듣거나 둘의 상대적인 온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진짜로 자고 있는 거다. 존은 숨쉴 때마다 그의 등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존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뭘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팔을 풀어내고, 셜록의 다리 사이에 엉겨있던 다리를 빼낸 다음에 돌아누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침대 맞은편, 싸늘한 구석으로 옮겨가는 거다.

그는 자신이 그리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는 새벽 다섯 시에 다시 깨어났다. 셜록이 나직하게 구시렁거리며 인간이 한 손으로 할 수 있을 속도보다 더 빠르게 타이핑해대고 있었던 거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건 - 

“차.” 셜록은 마술 묘기라도 부리듯 한마디 던진다.

존은 그릉,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울림 소리를 흘려냈다. a) 잠이 제대로 깬 것도 아니었고, b) 셜록이 자신에게 따뜻한 마실거리를 가져다 준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남자가 저러겠다고 침대를 벗어났었다는 건 더더욱 기억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무리 잠이 들어 있었다지만 느끼고도 남았을 텐데. 하지만 그가 침대에서 나갔던 적이 있었다는 건 자명해 보였다. 차와 더불어 노트북도 있는데다, 셜록이 가운까지 입고 있는 모양이니 말이다.

존은 몸을 일으켜 잔을 받아들었다. 반쯤 마시고 나서야, 그는 새벽 다섯시에 깨어났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어야 했다는 걸 뒤늦게 기억해냈다.

어쩌면 아직까지 침대를 같이 쓰는 것으로 짜증나 있어야 했을지도.

하지만 차가 정말 따뜻하고 너무 좋았기에, 그냥 목구멍에서 그릉, 짜증섞인 소리 한번 내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셜록은 말짱하게 깨어있었고, 그의 윗쪽 -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아 있었다. 무릎에는 노트북을 얹고, 주변에는 세 개의 핸드폰을 흩어놓고서.

존은 저 세번째 핸드폰이 어디서 났는지 의아해졌다. 두번째야 자신의 거였지만.

“곤란할 일 같은 건 하지 않았어, 약속하지.” 셜록이 말했다.

“어느날 네게 진짜 초능력이 생긴대도, 아무도 눈치 못 챌거야. 너도 알겠지만.” 존은 머그컵에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김 너머로 투덜거렸다.

셜록은 타이핑을 멈추고는 그의 무릎 위로 핸드폰을 던져주었다.

“다음번에 문자 받으면, 회신 하나 해줘. 다섯 글자로, 아.니.거.든.요.”[각주:9] 

존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눈에 들어올 만큼 핸드폰을 돌려 보았다.

“셜록, 나 아직 잠도 안 깼어. 대체 새벽 다섯시에 이야기하고 있던 상대가 누군데 그래? 그리고 그 사람이 예상 외의 기지를 발휘해서 널 놀래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또 어디서 난 거고?”

“포브스 박사한테는 예상 외의 기지를 발휘할 창의력 같은 게 없거든.”

“겁나 좋군,[각주:10]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게 되다니.”

그때 핸드폰이 날카롭게 울려댔다.

존은 핸드폰을 뒤집어 ‘보기’ 버튼을 누르고는 멀뚱 바라보았다.

“‘7일 수요일’이라는데.”

셜록은 실망스럽긴 하지만,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식의 - 예의 그 태도로 다시 한번 흥, 코웃음칠 뿐이었다.

“그러니까 넌 내가 - ”

셜록은 ‘그래, 그래, 뭘 해야 할지 알잖아, 하라니까.’ 하듯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려 보였다. 실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짜증스럽게 느껴졌어야 하는 건데.

상대가 누구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는 셜록의 가차없는 문자를 그대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언제 아느냐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을지도. 아니면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점일지도 모르고.

“넌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안 줘, 너도 알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전체 형태가 한 눈에 들어올 리가 없으니, 점점이 조금씩 이어줄 필요가 있다구. 그런 걸 네가 조금만 고려해준다면 몇몇 정도는 이해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사람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걸 관둘 때를 놓쳐버리더니, 대답하길 포기하고 완전히 허둥대기 시작했는걸.”

“가끔은 네게 대응해줄 수 있을 방법이라는 게, 대답하길 포기하고 완전히 허둥대는 것밖에 없을 때가 있거든.”

셜록은 모욕이라 느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식식거렸다.

존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포브스 박사가 그 문자를 보낸 게 자신이라는 걸 알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네가 사람 자존심을 뭉개버리게끔 도와주고 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셜록.” 

“뭉개버리다니, 존. 그건 너무 지나치게 암시적인 - 아, 아. 그건 분명 기만적인 표현이라구.” 셜록은 노트북을 팔에 끼고 가운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넣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금 이 순간에 당장 처리해야만 하는 뭔가 복잡한 생각들을 좇는 모양인지, 그대로 방에서 휙 나가버렸다.

존은 그대로 배경이 되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기로 했다. 셜록의 두뇌에는 그가 필요하지 않은 게 거의 확실했으니까.

“보일러 고쳐.” 그는 셜록의 귀에 들릴 정도로 소리높여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몸을 누일 따뜻한 부분을 찾아보기로 한다. 여긴 그의 침대니까. 그러니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
셜록과 이야기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읭? 되어 있는 존. 당신은 이미 말린거야. 둘둘둘둘둘…
따뜻한 존 침대에 드려고 간밤에 무서리 폭설이 저리 내리고
셜록에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



  1. 그럼, 혹시 베이지색 스웨터를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으면 존으로 뾰롱~ 진화할까…? XD [본문으로]
  2. Aㅏ… [본문으로]
  3. ‘Tea required for continued maximum efficiency.’ - 건조하고도 딱딱한 말투라 이렇게 옮긴다. 아래에 이어서. [본문으로]
  4. ‘Manners required for tea making’ - 셜록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서 회신한 것. 그래서 같은 표현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5. “Are you eating?” - 엄마존다운 뉘앙스로다가. :P [본문으로]
  6. ‘Deadliest Catch’ - 베링 해에서 킹크랩을 잡는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을 다룬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번역은 한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의 제목을 따른다. 프로그램 소개는 여기. http://goo.gl/uup2q [본문으로]
  7. “I can be sensitive.” - 이런걸 보고 보통 ‘착각은 자유’라고들… [본문으로]
  8. “This really is a minefield of nuances isn't it?” - 존을 쿡, 찔러보는 질문. 표현이 맘에 들지만 직역하기엔 영 이상해서 의미만으로 옮겨보았다. [본문으로]
  9. ‘five letters, W. R. O. N. G.’ - 땡! 한 글자로 정리하려다, 또박또박 읊어주는 말맛을 살리고자 이렇게 옮긴다. [본문으로]
  10. ‘Fabulous’ - …보는 순간 모 짤방이 생각나서;;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