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John's Dragon
  • 저자: misswinterhill + 역자: PasserbyNo3
  • 등급: G
  • 길이: 단편 (약 6,500단어)
  • 경고: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와의 크로스오버입니다. 퓨전이나 뭐 기타등등에 더 가깝지만요.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 셜록은 기이하고, 지긋지긋하고, 멀쩡한 구석이라고는 1g도 없는 드래곤입니다.
    - copperbadge님, neifile7님. 이런 글 검토하시는 걸로 두 분의 멋진 이름에 먹칠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해요.
      (하지만 두분 덕에 백만배쯤 나아졌답니다!)
    - 제가 몸담고 있는 모든 팬덤을 한데 섞어 엄청 특이한 퓨전을 쓰고 싶더라구요.
      이건 셜록을 위한 글로, 요청글에 따라 썼습니다.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misswinterhill.livejournal.com/68642.html



드래곤 한 마리가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존은, 그놈이 가 버리기만을 바라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정말이지, 드래곤은 질릴 만큼 봤단 말이다. 그것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만큼 많이. 

드래곤이 울타리 말뚝 위로 폴짝 뛰어오르자 우드득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매애애-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줄 몰라하며 매애애- 울어대는 양 한 마리가 그의 옆으로 뎅굴뎅굴 굴러내려가더니, 이내 가죽 질감의 날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이 상상한 대로 말하자면, 그건 뭐랄까 - 당황스러워하는 듯한 소리라 하겠다.

“그만 좀 따라오지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우리가 네 운명의 친구라 해도 신경 안써. 난 네 친구가 될 생각이 없거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실망한 듯한 그릉, 소리에, 존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이봐.” 하지만, 이내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나이트 퓨어리[각주:1]였다. 저 유명한 나이트 퓨어리 말이다. 게다가 그 녀석이 크고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는, 이도 하나 없이 씨익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단 말이다. 

“난-“ 애써 말을 이어 본다. “난 드래곤이랑은 잘 안 맞아.”

드래곤 녀석이 몇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드래곤에 대해서라면 정신적 외상은 물론, 끔찍하게 싫은 과거까지 있다구.” 존은 말하면서 뒤로 물러서다가, 양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걸려 넘어지는 순간 양은 매애애- 시끄럽게 울어댔다. 무력하게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그에게로, 드래곤이 다가와 몸을 숙인다. 어깨로라도 땅을 파고들 기세로 도망치려 애써보는 존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렇다니까. 위험한 섬 원정대였다구. 그리고 그 나이트메어 놈이, 우리 배를- 난-“

그녀석이 할짝, 핥았다. 존은 온 몸으로 그녀석과 저 특이한 애정표현을 밀어내려 애쓰며 매섭게 쏘아봐주었다.

“내 다리만이라도 좀 놔줄 수 있을까?” 그가 부탁하자, 드래곤은 그릉거리더니 날개를 휘휘 저어 지붕 위로 날아올라서는 말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드래곤의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며, 존이 절뚝절뚝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날아다니는 모든 건 물론, 비늘을 가진 모든 것들을 저주하는 모습을. 그 중에서도 특히, 절대로, 모든 드래곤들을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존은 문가에서 잠들어 있는 드래곤 녀석을 발견했다. 시커멓고 거대한 녀석,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런 지팡이를 짚고서는 더더욱 그렇지. 존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녀석의 옆구리를 발 끝으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일어나.” 그의 말에, 녀석은 작게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뎅굴 돌아눕는다. 존은 별 수 없이 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꼬리에 걸릴 뻔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녀석은 아침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모양이니, 적어도 오늘 아침만큼은 비늘덩어리 동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선뜻 드래곤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깨의 끔찍한 화상 흉터는 추운 날이면 욱신거리는 데다(게다가 여긴 맨날 춥다), 밤이 되어 하루의 피곤함을 씻어내려 옷을 벗을 때면 보기 흉하기도 했다(어느정도 더러워야 악마들을 멀리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 같은 건 상관없이, 존은 씻는데 까다롭게 굴었다). 이제는 몬스트러스 나이트메어[각주:2]를 보면, 화상을 입던 순간과 어깨 부드러운 살갗에 들러붙던 갑옷의 금속 질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은 드래곤들이 머리 위에서 휘휘 날아다니는 길을 따라 절뚝절뚝 내려갔다. 그롱클[각주:3]이 불을 뿜어댈 때만 빼면 드래곤이라 해도 진짜 해롭지는 않은 녀석들이지만, 그렇게 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들 했다. 다른 날같았으면 멈춰서서 넘실거리는 바다와 화려한 색색의 드래곤들을 지켜보면서 햇살 좋은 날이고, 빌어먹을 배에 타지도, 침입자나 드래곤들, 아니면 둘 다와 싸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만끽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존에게는 오늘,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던 탓이다.

존은 족장의 집 문을 노크했다 - 스토익과는 혈연이 아닌, 혼인으로 이어진 친척이었지만, 스토익은 그런건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존의 배가 정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존을 불러냈더랬다; 그의 말로는 다른 의사가 히컵[각주:4]을 돌봐주고 있으니 급하지 않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급한 거 아닌가.

스토익이 문을 열자, 안에는 그 유명한 나이트 퓨어리 투슬리스[각주:5]가 있었다. 그리고 문가로 새어들어오는 햇살로 반짝이는 침대 위에는, 히컵이 잠들어 있었다. 스토익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맞았다. 히컵은 먼 친척들 중에서 존이 제일 예뻐하는 녀석이었다; 그들 둘 다 비슷하게 바이킹답지 않은 몸매를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항상 저 꼬맹이가 의사가 되는 데 관심이 있기를 바랐음에도, 녀석은 드래곤을 쫓는다며 훌쩍 가버리고 말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녀석은 좀 어때?” 존이 고개를 들이밀고 히컵의 다리 상처를 꾹꾹 눌러보고 있자니 스토익이 물어온다.

“상처는 깨끗해.” 존이 말했다. 나이트 퓨어리가 - 존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나이트 퓨어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어깨 너머로 숨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불꽃으로 재빨리 지져낸 것 같네. 아프지 않았을 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 처리할 걸 좀 줄게 - 어쨌든 깔끔해. 잘 아물거야.”

“잘 됐군.” 스토익이 대꾸하며, “아니면 널 죽여버렸을지도.” 큼지막한 손으로 존의 어깨를 투닥인다. 존은 찌릿 가슴을 스쳐지나가는 통증에 움찔하고 말았다. 그랬다. 해묵은 상처가 여전히 거기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말았으니까. 그는 두번 다시 배를 타지 않았다; 여기, 마을에만 처박혀 양치기와 라이더와 대장장이 - 존이 이제껏 봐온 사람들 중 다리를 잃어버리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 고버나 수습해주고 있었다. 스토익은 그냥 농담을 하는 거였다 - 뭐,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투슬리스는 선반 위로 뛰어올라서는 커다란, 측은해보이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말똥말똥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날 드래곤 한 마리 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지나 않을지 의아해지는 존이었다.

그들은 어둑어둑한 집 안에서 나와 눈을 깜박이며 햇빛 속으로 나섰다 - 햇살 아래 풀은 비현실적일 만큼 푸르른 데다, 끝부분은 살랑이며 반짝이는 물결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 기름처럼 번들거리는 비늘덩어리 드래곤 녀석이 문가에서 존을 기다리고 있군그래. 드래곤은 기쁜 듯 푸르르, 소리를 내더니, 존에게로 휘릭 다가와 욱신거리는 어깨에 코를 들이민다.

“저리 가.” 존은 녀석의 주둥이를 밀어내며 말했다.

집 문간에 서 있던 투슬리스가 그릉거렸다. 나이트 퓨어리는 - 존의 나이트 퓨어리 말이다 - 존과 투슬리스 사이로 끼어들어서는 꼬리를 휙휙 휘둘러댔다.

“저건 확실히- 특이한데.” 스토익이 말했다. “셜록은 보통 근처에 오는 건 누구든 물어버리거든.”

투슬리스는 팩, 발끈하며 존의 드래… 아니, 셜록을 주시했다. 셜록은 볏을 바짝 세우고 이를 드러내며 파릇, 물러선다.

“어이!” 스토익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 안으로 들어와. 넌 셜록을 물어뜯을 시간에 내 아들녀석을 돌봐줘야지, 그리고 넌, 저리 가버려. 투슬리스 식도에서 네놈을 꺼내줄 생각은 없으니까.”

셜록은 날개를 흔들며 그르릉거렸다.

“자네, 저녀석 아는거야?” 존이 물었다. “셜록이랬나?”

“나한테 묻지 마; 꼬마놈들 중에 하나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놓은 거니까. 다른 드래곤들이랑 같이 왔더군.” 셜록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한바퀴 휙, 도는 걸 바라보며 스토익이 말했다. 셜록은 잘 날아다니던 테러블 테러와 부딪힐 뻔 했다가, 이내 바닥에 온전히 내려섰다. “다른 드래곤이 저놈에게 다가가는 건 본 적이 없어. 심지어 그롱클 녀석들마저도 가까이 가지 않더라니까. 그녀석들 진짜 꼴통이잖아.”[각주:6]

“왜지?” 존은 물었다.

“저녀석은 좀 - 웃겨. 나이트 퓨어리들이 다 그렇지만.” 스토익이 그런다. “저녀석에게 물고기라도 줘봐, 그러면 영원히 네꺼가 될 테니까.”[각주:7] 안에서 쾅,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슬리스!”

스토익이 투슬리스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틈을 타 존은 재빨리 빠져나왔다; 어쩐지 정신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존의 옆을 졸졸 따라왔다. 그의 지팡이를 뭔가 속셈이 있는 듯한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면서.

“꿈도 꾸지 말라구.” 존은 재빨리 한마디 했다. “그리고 셜록, 맞지?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셜록은 다시금 그를 할짝, 핥더니 앞으로 폴짝거리며 가릉거린다. 존은 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좋든 싫든간에, 그에게 드래곤이 생긴 모양이다.





어느 밤엔가는 존의 머리 끝까지 불이 붙었다. 불꽃과 고기 굽는 냄새, 화로 위 꼬치구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진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 중 무엇 하나도 진짜가 아니었다. 히컵은 일주일쯤 전에 깨어났다. 그 꼬맹이는 설명하려 애를 썼지만 - 그녀석들은 스스로를 지키려던 거에요,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요. - 드래곤들이 항상, 인간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잘 지켜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까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오늘 밤, 그는 어깨가 욱신거렸고, 목 부근까지 불꽃이 휘감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작은 그릉,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아주 희미한 소리. 이내 무언가 그의 어깨를 슬슬 문지른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욱신거리는 흉터자욱을 달래주는 걸 느끼며 그는 휴, 날숨을 뱉어냈다.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셜록이 무지막지하게 큰 턱으로 어깨를 눌러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존이 묻자, 셜록은 푸르르, 대답하듯 소리를 내고는 주위에 웅크려 떨리는 그의 몸을 날개로 덮어준다. “대체 어떻게 안으로 들어온거야?”

그들의 무게에 눌린 침대가 삐걱거리더니 이내 쿵, 네 다리 모두 폭삭 주저앉으며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존은 날개를 밀어치우고 일어날까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힘든 일이라 그냥 돌아눕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셜록의 옆구리로만큼은 파고들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얼마나 들러붙어 있을지까지는 생각하지 말자구.





셜록은 매일 밤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셜록은 심지어 매일 밤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느 밤엔가는, 존은 바이킹들이 문을 쾅쾅 두들겨대는 소리와, 네 빌어먹을 드래곤을 당장 저기서 꺼내라는 거친 구박 소리에 깨어나곤 했다. 그 “저기”라는 건 맥주통부터 문, 고버네 대장간, 바닷가 등등 모든 곳을 의미했다. 게다가 어느 인상깊던 밤엔가는, 썩은 해초 같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진흙덩어리에 뒤덮인 채 광장 한가운데에 놓인 바위 두 개 사이에 끼어 있기까지 했다.(그러니까 대체 저 바위들은 어디에서 나온 거냐고?)

존이 아무리 저건 드래곤이 아니라구요, 라며 수십번을 말해본들 소용이 없었다. 새벽 2시에 셜록이 요란스레 벽장을 뒤지고 돌아다니는 동안, 부엌 바닥에 남아있던 진흙 찌끄러기를 긁어내야 하는 건 그의 몫이었으니까. 그래놓고 셜록은 존의 멀쩡한 칼을 이빨로 덥석 물고는 냄새의 흔적을 뒤쫓는 개처럼 문 밖으로 폴짝폴짝 뛰어나가고 마는 거다.

“저녀석이 네 드래곤이면, 한번 타보지 그래?” 존은 진흙덩어리에 대고 푸념하듯 말했다. “저녀석이 네 드래곤이면, 사라져버린 황금 토크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는거지? 정말 저녀석이 찾았다고 생각해? 훔친 게 아니고? 저녀석이 네 드래곤이면, 어째서 저녀석한테 한밤중에 양 굴려대는 걸 그만두라고도 못하는 거야?” (그는 사실 셜록이 언덕 위에서부터 양 무리로 양 한 마리를 데구르르 굴렸을 때 벌어지는 연쇄반응을 즐기는게 아닌지 의심하는 중이었다.)[각주:8] “저게 진짜 네 드래곤이면, 어째서 저녀석은 정상적인 드래곤처럼 굴지 않는거냐구?”

진흙이 얼룩만 남았을 때에서야 마침내 포기하고는, 침대의 잔해 위로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는 웅크려 누운 채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 일어났을 때에도 셜록은 집에 없었다. 존은 제대로 된 - 빌어먹을 셜록 녀석이 훔쳐먹지 않는 - 아침식사를 만들어서는, 밖으로 먹으러 나왔다. 부엌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해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던 탓이다. 존의 정원에는, 그롱클 한 마리가 수선화 사이를 킁킁 파헤치고 다니며 알뿌리를 억센 턱으로 으득으득 씹어먹고 있었다.

“어이!” 입안 가득 달걀을 문 채로 소리치자, 입안 가득 꽃을 문 그롱클이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펑, 터져버리고 만다.

그는 그대로 문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셜록이 그를 구하러 나타난 건지, 아무렇게나 흩어져버린 존의 아침식사를 한입에 텁, 삼켜버리고는 그릉그릉, 김이 올라오는 그롱클 흔적 무더기를 킁킁거린다.

“이게 무슨-?” 존은 다가오는 고버에게 묻기로 했다.

“이번주만 해도 벌써 세번째야.” 셜록이 달그락 달그락 존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가 절뚝거리며 다가와서는 한마디 한다. “누군가 처리하긴 해야 했거든.”

셜록이 죽은 그롱클 한 토막을 물어올리더니 맛을 본다. 존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역겹다구.”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셜록은 친절하게 퉤, 다시 뱉어냈다. 그러더니 마치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존의 지팡이를 휙 채어가서는, 앞발 사이로 이리저리 튕겨보더니 뒤로 재빨리 도망친다.

“이봐!”

셜록이 그의 지팡이를 가져가서는, 아예 던지고 놀고 앉아 있는 거다.

“그거 내려놔!” 존이 소리쳤지만, 셜록은 그를 무시하고는 지팡이를 입으로 텁, 물었다. “그거 당장 내려놔, 멍청한 녀석-“

무시무시한 우직, 소리. 존의 지팡이를 제대로 물어 부숴놓고는 그의 발치에 퉤, 뱉어놓는 셜록이다. 존은 몸을 숙여 집어들었지만, 끈적거리는 조각들을 보니 고치긴 글러먹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분노에 차 따져물었다. “그렇게까지 지루한 건 아닐거 아냐.”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놀란 존은, 엉망으로 망가져버린 지팡이 잔해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너 지루하구나.” 그의 말에, 셜록은 기대하는 듯 작게 가릉거리며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지루한 건데, 어째서 내가 그 해결방법이 되어야 하지? 

셜록은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앉았다. 존이 원한다면 셜록의 등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그가 원한다면 말이다. 당연히 원할 리가 없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싫어.” 셜록이 볏을 쫑긋 치켜올린다. “싫다구.”

그러자 셜록이 몸을 뻗어 그를 덥석 물었다. 존은 두 팔로 셜록의 입을 벌리려 애쓰며 발로 차다가, 문득 셜록이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이녀석, 존을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었던가보다. 셜록이 목구멍 안쪽에서 낮게 그르렁거렸다. 셜록의 근육이 꿈틀대는 걸 존이 느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녀석은 몸을 웅크리더니, 속절없이 소리소리질러대는 존을 입에 문 채로 공중으로 튕기듯 날아올랐다. 금세, 존은 반항하기를 그만두었다. 이렇게 든든하게 붙들어주고 있는 입에서 빠져나가려 들었다가 그대로 떨어져 땅바닥에 부딪힐 준비까지는 되어있지 않았던 탓이다. 물론, 그 든든한 곳에서 그가 해먹은 아침식사의 흔적들과 죽은 그롱클과 기타등등 알 수 없는 것들이 뒤섞여 존의 스웨터로 뚝뚝 흘러내리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높이, 더 높이. 인간 라이더를 태운 다른 마을의 드래곤들보다 훨씬 위로. 어째서 그에게 반한 게 테러블 테러[각주:9]가 아니었던 걸까? 테러 녀석들은 햇살 아래 누워 배를 긁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대체 왜 꼭 이렇게 정신나간 나이트 퓨어리여야 했던 거지?

셜록의 미친듯한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궤도도 조금씩 안정되어갔을 때에서야, 존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바다는 심지어 물결도 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태양이 화려하게 반사되어 보이는 물,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저 멀리에 배 한 척이 보였다.

“저건 뭐야?” 그가 물었다. 존이 돛을 알아볼 수 없다는 건 단 한 가지 의미밖에 없었다 - 침략자들. “셜록, 날 좀더 꽉 잡고 저 배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셜록은 그를 툭, 떨어뜨렸다.

존은 3초간 오, 멋진걸 생각했지만, 금세 이렇게 떨어지면 실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셜록은 허공에서 커다랗게 한바퀴 돌았고, 존은 빠르게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바다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정도 높이라면, 딱딱한 데 부딪히는 것 같을텐데-

실제로도 딱딱한 데 부딪혔기에, 그는 숨이 멎을 만큼 놀라고 말았다. 눈을 뜨자 어두운 색 비늘들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이 아플 만큼 꽉 붙잡았다. 셜록이 안장이나 고삐 같은 걸 차고 있진 않았지만, 존이 앉을 때는 그닥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녀석의 몸 곳곳은 위풍당당하게 울룩불룩 솟아있는 데다, 존의 허벅지 아래에서 물결치듯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우,” 존은 나직한 탄성을 뱉어냈다. “아, 오오. 와우.”

셜록은 물 위를 낮게 가로질러 날았다. 아드레날린이 울컥울컥 존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따뜻하게, 그리고는 차갑게 그의 몸을 나긋하게 풀어주었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인 양 함께 날아오르며, 서로를 제어하고 또 서로의 몸 구석구석을 느끼고 있었다. 셜록의 날개가 그의 옆에서 크게 휘감아치며 허공을 가로질렀고, 거대한 녀석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등을 타고 누운 존에게 전해져 왔다. 가슴과 등이, 살갗에 비늘이 맞닿은 채로.

셜록이 배 근처에 다다라 위로 치솟아올랐을 때, 존은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사실로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바이킹의 배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좀더 보고 싶은 마음에, 존은 셜록의 어깨에 기대어 갑판 위, 작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모습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셜록이 예상 외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존은 방패와 배 위에 새겨진 엠블럼과 색깔을 좀더 똑똑히 보았다. 다시금 훅, 숨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침략자들이야.” 그의 말에, 셜록은 대답하는 듯 소리를 흘려냈다. “아랫동네 놈들이군.”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하는 건 의미없는 짓이었다. 바이킹 침략자들이 원하는 건 침략 자체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드래곤과 관련된 작전에는 한번밖에 참여해본 적 없는 존이라 해도,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 깊게 새겨진 강력한 충동과 보물을 향한 탐욕은 잘 알았다. 지금 갑판 위의 조그마한 사람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그리고 갑판에 뭔가 묶여 있었다. 모닥불처럼 환하게 빛나는, 비늘에 커다란 발톱까지 달린…

나이트메어다.” 갑판 위에서 날아오르려는 그 물체와, 목에 걸린 거대한 사슬이 철컹거리는 걸 발견하고 존은 말했다. 저 사슬은 어디까지고, 저놈은 어디까지 닿는 걸까? 셜록은 크게 포효하더니, 몸 가까이 날개를 접고는 싸움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몬스터러스 나이트메어가 으르렁거리더니 불을 뿜었고, 셜록이 재빠르게 선회하자 불꽃은 존의 머리 바로 위를 스쳤다. 셜록은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지러웠다. “셜록!”

셜록은 멈추지 않았다. 셜록이 맞서 불을 뿜어내는 순간 존은 정신을 차리려 애써 보았다. 안심하기엔 물도, 갑판도 너무 가까웠다. 안심하기엔 저 드래곤도 너무 가까웠다. 생각을 하라구, 존은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셜록이 뭘 보여주려 하는 거지?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게 아니면 셜록은 지금쯤 날아가 버리고도 남았을 거다; 녀석은 스스로 죽고 싶어할지언정 존을 죽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까. 사람들 - 휙 돌고 - 대포들이 있었다 - 또 한바퀴 그들을 휙휙 스쳐가는 대포알 - 그리고 무언가 거대한 덩어리. 노랗지만 황금은 아닌데. 배 반대쪽 끝에는 드래곤이 있었다. 다시 돌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셜록은 한번 더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닿지도 않을 불꽃을 뿜어대는 몬스터러스 나이트메어를 뒤로 하고 날아오르며, 둘은 헐떡이고 있었다. 힘에 부치고, 놀랍기도 했지만, 함께 날아오르는 자체만으로도 끝내주게 짜릿했던 거다.

놀라운 소식을 가져온 그들의 장엄한 귀환은, 셜록이 또다른 그롱클의 폭발 반경 한가운데 착지하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녀석은 신선한 장어라도 되는 양 노란 돌을 내려놓고 느릿느릿 물러나더니, 꼬리로 존을 휘감고는 의기양양하게 가릉거리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
바쁜 일상에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게 어쩐지 수줍어서(?) 옮기고 있던 글이나마 잘라 올려본다.
워낙에 저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했던 터라, 베모 배우 출연 루머(?)가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이게 생각났었더랬다.
제멋대로인데다 존 한정 땡깡쟁이 셜로기가, 어쩐지 참으로 나이트 퓨어리와 잘 어울려서 좋아하는 글. 귀엽잖아.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시지 않으려나? : ] 

※ 존, 셜록을 제외한 인물/드래곤 이름 표기는 영화의 번역을 따릅니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공홈. 



  1. ‘Night Fury’ - 이렇게 생긴 녀석. http://goo.gl/2fQLi [본문으로]
  2. ‘Monstrous Nightmare’ - 이렇게 생긴 녀석. http://goo.gl/HTDvQ [본문으로]
  3. ‘Gronckle’ - 이렇게 생겼다. http://goo.gl/43Bpn [본문으로]
  4. ‘Hiccup’ - 영화에서의 (사람) 주인공. [본문으로]
  5. ‘Toothless’ - 영화 주인공! 귀여운 녀석 >_< [본문으로]
  6. ‘they’re dumber than a box of rocks.’ - dumb의 강력;;한 표현이라고. http://goo.gl/SQZ0L [본문으로]
  7. 영화에서 물고기를 덥석, 물어가는 투슬리스가 어찌나 좋던지♡ [본문으로]
  8. 드래곤이어도 초딩인 셜로기는 양으로 볼링을 하는겁니다. 그런겁니다. [본문으로]
  9. ‘Terrible Terror’ - 이렇게 생겼다. http://goo.gl/ydhY2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