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긋지긋한 일상 탈출법 | Abhorring the Dull Routine of Existence (2/3)





금요일


다음날 아침 11시가 되어서야 셜록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존은 오전 내내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눈 앞에 앉아 있는 환자를 지켜보면서, 동시에 나머지 관심을 셜록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데 쏟으며 강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뉴스 리포트들을 검색해대고 있던 거였다. 당연히 아무 소식도 없었고, 그의 블로그에도 업데이트는 없었다. 이제 막 다섯번째 새로고침을 누르던 찰나, 핸드폰에서 반가운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받은 메시지
그애가 방금 내 집 문앞에 나타났습니다. M


받는 이: 마이크로프트 홈즈
다행이네요. 그 인간 괜찮은가요? JW

받은 메시지
계속 그 유명한 부부젤라마냥 소란스럽게 굴고 있군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장담하죠. M


받는 이: 마이크로프트 홈즈
정말 다행입니다. 사라져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라고 전해주세요! JW (추신. 행운을 빕니다.)


존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씨익 미소지었다. 반은 안도감에서 우러나온 거였지만, 나머지 반은 카페인에 취한 상태의 셜록을 상대하는 마이크로프트를 떠올리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말과 전부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 영국 정부, 영국 비밀 정보부에다 CIA까지 - 이런 남동생에 단순한 레드불 과용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도 했다.

적어도 핸드폰이 울리기 전까지, 딱 30분 동안은 그랬던 모양이다.

존은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환자에게 사과의 눈빛을 보낸 다음, 핸드폰을 내려다보고는 발신인 이름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발신: 마이크로프트 홈즈


그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무슨 일이 되었든간에 당장 이 환자 검진하는 걸 마치기까지 10분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항상 그는 울어대는 전화를 받는답시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게 버릇없는 행동이라고 느꼈었다; 특히 줄을 서서 기다릴 때, 가게 점원이 서빙하다 말고 전화를 받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이따 마이크로프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봐야겠군, 존은 생각하며 펜을 집어들고 앞에 놓인 패드에 증상을 적어넣기 시작했다.

병원의 모든 전화가 일제히 울려대기 시작했다. [각주:1]

존은 온 사방에서 울려오는 각기 다른 벨소리들의 불협화음에 아연해져서는, 책상 위 내선 전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환자는 - 인자하고 나이든 히긴스 부인은 이런 식으로 방해받아 마땅할 사람은 아니었다 - 자기 주변을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가 막 손을 뻗어 전화를 받으려던 순간 모든 벨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더니, 3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새라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존, 당신 가봐야겠어요.” 그녀는 다급하게 말하더니, 환자와 함께 있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재빠르게 덧붙였다. “정말 죄송해요, 히긴스 부인.”

“무슨 일입니까?”

“마이크로프트 홈즈 씨라는군요.” 그녀는, 그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당신 친구인가요? 그가 말하길, 영국 정부의 명령으로 당신이 그 사람 집에 지금 당장 가봐야 한다던데요.”

“아, 그 사람 농담하려는 거겠-“ 존이 입을 열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그가 필요한 서류들 모조리 팩스로 보내왔다구요.” 그녀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실은, 여기 있는 팩스기기들 전부 다로 보내더군요. 공식적인 일인 게 분명해요. 존, 이 남자 누군가요?”

가엾은 히긴스 부인은 겁에 질린 것 같았다. 피로가 밀려드는 걸 느끼며, 존은 눈을 부볐다.

“셜록의 형이에요, 그는- 뭐. 솔직히 말하자면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죠. 하지만 그것도 집안 내력인 것 같아요.”

새라는 희미하게 미소지어보였지만, 여전히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존은,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제길. 새라, 나 일하는 중이잖습니까. 홈즈 형제 중 하나가 부를 때마다 그냥 따라갈 수는 없단 말입니다.”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 같진 않던데요…” 그녀가 애매하게 한 마디 한다.

“당신도 의사 없이 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잖아요! 난 모두를 모르는체 할 수 없는 것 뿐이라구요. 이건 말도 안 돼요. 내가 그에게 전화해서 안 간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남자가 슥 들어섰다. 존과 새라 모두 휙 돌아 그를 바라보자, 그 남자는 양쪽 모두를 살피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왓슨 선생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메모장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소여 선생님이시겠군요.”

그는 존의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노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한번 더 메모장을 뒤적거린다.

“에밀리아 히긴스 부인, 1934년생, 인헷지 남단 47번지, 미망인, 베스라는 고양이 한 마리.”

존은 눈을 깜박였다.

“당신 대체 누굽니까?” 답을 듣는 걸 조금은 두려워하며 물으니, 남자가 갑자기 미소를 짓는다.

“당신 후임이죠, 왓슨 선생님.” 새라에게로 손을 내밀며 남자가 말했다. “마크 드라이어입니다. 응급 의학과 전문의(Emergency GP)죠. 왓슨 선생님께서… 정부 업무를 처리하실 동안 오늘 병원에 남은 일들을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정부 업무라니요!”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셜록이 늘 그렇듯 빌어먹을 바보짓을 해대는데다 마이크로프트가 손을 쓰려 하지 않는…”

“조심하시죠.”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존은 말을 멈추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새라는 미심쩍은 듯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존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남자였다.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그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갈게요, 밖에는 무시무시한 차가 기다리고 있는거겠죠?”

남자는 희미하게 히죽 웃어보이더니 문 쪽을 가리키며 존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내쫓았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병원을 나섰고 - 동료들은 물론 환자들까지 그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문 밖에는 예의 그 검정색 리무진께서 보란 듯이 기다리고 계셨다.

가는 길은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의 집은 거리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템즈강변 근처 런던 중심가 어딘가에 있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겠군, 그는 추측했다. 그래야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을 테니까. 우아하지만 자그마한 집이었고, - 존은 마이크로프트는 시내외 양쪽에 집이 있다고 셜록이 말했던 걸 떠올렸다 - 잘 정돈된 앞마당도 있었다. 가는 길에 존은 자그마한 나무들 몇 그루가 뿌리채 뽑혀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그 지역에 작은 회오리바람이라도 쓸고 간 것처럼. 그는 왠지 사실과는 전혀 다를 것 같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홈즈가의 큰형님께서는 정문 앞에서 그를 맞았다. 두 손으로는 차 한잔을 받쳐쥐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왓슨 선생.” 그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들어오시죠. 그렇게 짧은 알림만으로도 와주시니 고맙군요.” [각주:2]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만.” 존은 코트를 벗으며 툴툴거렸다. “아시다시피 저도 엄연히 직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해야 할 의무가 있다구요.”

“아, 하지만 당신의 기본적인 의무는 당연히 국가를 위한 거잖습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대꾸했다. “군인이니, 당신이라면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이게 진짜 그런 일인지-”

“그런 일입니다.” 존을 널찍한 복도로 안내하며, 마이크로프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국가는 날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건 - 음, 확실히 내게 필요 없는 건 바로 이 사태죠, 왓슨 선생.”

그는 앞에 있는 방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존은 눈을 깜박였다. 사무실같은데, 그는 생각했다. 사무실이라는 게 보통은 제멋대로 얽힌 털실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게 아니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게다가 방 안쪽에서는 사각사각, 이상한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존은 한발짝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문 주위로 머리를 비죽 들이밀었다.

방 안 전체가 노끈 비스무리한 것들로 뒤덮여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거미집이라도 지은 양, 눈에 보이는 모든 가구들을 얼기설기 얽어둔 채로 말이다: 의자 다리, 책상 전등, 창문 걸쇠까지도. 이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에는 셜록이 있었다. 그는 한 발로 선 채 이상하게 빙글빙글 돌면서[각주:3] 줄 사이로 몸을 숙이면서 방을 가로질러가는 중이었다. 존이 큼, 헛기침하자 셜록이 반쯤 굽힌 림보 자세에서 그대로 멈춰서며 그를 바라보았다.

“존!” 이 방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셜록은 무척 큰 소리로 말했다. “의사, 의사, 의사, 하고 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존은 단 한 명 뿐이야. 내가 계속 생각했던 사람 - 들어와.”

셜록의 눈은 어둡게 빛나고 있었고, 그는 이 방 안의 모든 것들이 한번에 그에게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끊임없이 놀라는 것 같았다. 그는 줄 사이로 계속 옮겨다니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우아했지만, 한편으로는 광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그렇게나 많은 레드불을 마시고 그만큼 적게 잔 사람 치고는 훨씬 정제된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존은 난감한 듯 돌아섰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여기 온 다음부터 계속 저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디 있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저앤 내가 물을 때마다 ‘생각중’이라고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애가 스스로 알고 있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왓슨 선생. 난 진심으로 내 사무실을 되찾고 싶어요.”

존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줄을 피하려 숙이면서 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섰다. 

“뭐 하는거야, 셜록?” 약간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실습 중이야. 레이저.” 셜록이 대꾸한다. “만약을 대비해서지. 너도 실습해둬야 해. 너도 거기 있게 될 것 같거든.”

“내가 거기 있을- 미안, 내가 거기엘 언제 가는데?”

셜록은 아슬아슬하게 다리가 꼬이지 않도록 휙 돌아서더니, 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항상, 존. 명백하잖아. 그리고 특히 레이저가 있으면 정말 위험하겠지. 네가 그런 걸 즐긴다는 건 우리 둘다 알고 있잖아. 잠을 잘 못 잤네, 왜 그렇지? 내가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 결론이 잘못될까봐 걱정돼; 내 생각 패턴 중에 많은 부분이 조금… 편향된 것 같거든. 지금 당장은, 격조가 없어.[각주:4] 그런 거 있잖아 - 그거 어제 입었던 셔츠야?”

“그건 또 어떻게 알- 난 어제 널 본 적도 없다구, 셜록.” 존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셜록은 픽, 웃었다.

“깜깜하군그래, 게다가 네 추리란 건 도무지 나아지질 않아. 왜 네가 못 봤다고 해서 그 사람도 널 못 봤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리는 거지?”

존은 대꾸하려 입을 열었지만, 셜록의 말 뜻을 깨닫자마자 금세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날 어제 봤단 말야?! 셜록, 난 너 걱정했다구, 네가 사라져버렸었잖아! 핸드폰은 꺼져있고! 네가 날 봤었다면 최소한 멀쩡한지 정도는 나한테 알려줄 수도 있었잖아, 도대체 넌 무슨-”

“아냐아냐, 아니지. 네가 알면 실험 전체가 물거품이 되어버렸을거야; 어떤 부분은 애매하긴 하지만, 상황상 꽤나 성공적이었던 셈이지; 통제 집단이 없어서, 너도 알겠지, 제어가 안돼, 아, 전혀 제어가 안되었지, 걱정이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뻣뻣한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밀어넣으며 정신나간 듯 웃어제꼈다. “너 잠을 제대로 못 잤지, 왜 그런 거야?”

“이봐, 맥박 좀 재게 이리 좀 와 보지그래.” 존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빌어먹을 멍청한 실험 때문에 널 매일매일 확인해볼 생각이었다구. 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었을 테니까 - 이리 와.”

셜록은 잠시 그를 째려보더니, 연이어 굽히고 뛰고 비틀면서 - 어떻게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줄들을 피해 존 앞에 사뿐 도착했다.

“나 여깄어, 존. 존, 안녕.” 개인 공간따위는 평소보다 더 무시한 채로, 존에게로 다가서며 그가 말했다. 눈 자체는 이상하리만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피곤이 묻어났다. 그의 몸은 넘치는 기운으로 통통 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머지 않아 다시 쓰러져버릴 거란 걸 존은 알 수 있었다.


Artwork by 소천

“으음, 그래, 안녕.”

그는 이 친구님의 바이탈을 다시 확인했지만, 지난번과 거의 비슷했다. 달라진 점은 동공이 더욱 확장되어 훨씬 더 어두워보인다는 것과,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는 것 정도였다.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 문가에 선 채로, 그들은 무언가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를 검사하고 있었다; 셜록은 존의 전신을 훑어보며 지난번에 봤을 때와 달라진 모든 점들을 분류해내고는 내내 나직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존은 맥박을 확인하려 셜록의 목에 손가락을 얹었지만, 그가 밭은 숨을 내뱉으며 물러서자 깜짝 놀랐다.

“미안.” 존이 자동적으로 사과했다. “미안, 난- 넌 지금 일종의 감각 과부하 상태인 거지, 아마도?”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상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 하며 묻는다.

“이거 정상이야?”

“괜찮아.” 존은 그들 둘 다 이제는 정말 ‘정상’이란 게 뭔지 모른다는 걸 떠올리며, 안심시키려는 듯 대답했다. “넌 그저 진정하고 잠시 쉬면 돼. 이리 와, 베이커가로 돌아가자. 기분 좋게 차 한 잔 마시면- 음, 너는 그냥 우유가 좋겠다.”

셜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그를 스쳐지나, 마이크로프트가 서서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복도로 빠져나갔다.

“이제 존이 나 집에 데려다 줄거야, 마이크로프트.” 이 형제들이 서로를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지독한 빈정거림 섞인 말투로 셜록이 말했다. “엄마 뵙게 되면 내 안부 전해 줘.”

“그러지.” 마이크로프트가 손톱 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가 마침내 지켜줄 사람[각주:5]을 찾았다는 걸 들으시면 무척 기뻐하실 게다.” 

셜록은 무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존은 내 경호원같은 게 아냐, 그는…” 그는 앞문을 열려다가 잠겨 있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멈추었다. 그는 분노에 차서 가만히 응시하더니, 열어보려는 듯 갖가지 볼트들과 문 열쇠 구멍을 허둥지둥 만지작거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존에게로 돌아서는 그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존, 이 문 문제가 있나봐.”

그러더니 수상쩍다는 듯 마이크로프트에게로 돌아선다.

“무슨 짓을 해둔거야?”

마이크로프트가 한발짝 나서서 볼트 하나를 부드럽게 꽂아넣고는, 손쉽게 문을 밀어 열었다. 지켜보고 있던 셜록은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교활한 속임수로군!” 한 마디 하더니, 집을 나서서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존은 서둘러 그를 뒤쫓았다. 그는 정원 문 앞에서야 셜록을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셜록이 갑자기 멈춰서서 그를 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어디 가는거지?” 어벙한 표정으로 묻는다.

집으로, 셜록. 기억하지?”

“아!”

존은 이 친구를 돌려세우고는, 문을 지나 그들을 베이커가까지 데려다줄 커다란 차가 기다리고 있는 방향으로 밀고 갔다. 몇 미터 못 가 셜록이 다시 멈춰섰다.

“이번엔 뭔데?” 존이 따지듯 물었다. 셜록은 마치 지금 막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나 어디 있었어?”

존은 끙, 신음소리를 내뱉고는 차 안으로 그를 밀어넣었다. 존은 기억 손실이 레드불 과다 복용에 따르는 정상적인 증상인지 아니면 그저 셜록스러운[각주:6] 건지는 물론이거니와, 지난 며칠간 이 플랫메이트님께서 있었던 곳을 그가 당최 알아낼 수나 있을지조차 의아해졌다.

“그냥 가만히 있어, 셜록. 푸욱~ 오래 자고 일어난 다음에도 네가 지난 48시간 동안 어디 있었는지 추리해낼 시간은 충분하니까. 물도 많이 마시고. 그리고 자극제는 그게 뭐든, 어떤 종류든간에 절대 안돼.”

“아, 따분해.”

“그래, 음, 우리 중 누군가는 실제로 인생에서 조금 지루한 것쯤은 좋아한다구. 우리 중 누군가는 자기 플랫메이트를 가만히 앉아있게 만들려고 의자에 수갑으로 채워놓아야 하는 건 안 좋아하고 말이지 - 그건 그렇고,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는 안 물어볼거야 - 우리 중 누군가는 반나절 동안 속을 태우거나 중간에 뛰쳐나오는 일 없이 그저 하루치 일 정도는 해보고 싶은거고. 우리 중 누군가는 커피가루나 보드게임이나 양털같은 게 사방에 널려있지 않은 거실을 갖고 싶은 거지 - 내일 네가 제대로 치워놔야 할 거야. 셜록, 너 듣고는 있-“

그는 차 안에서 몸을 돌려, 평소와 다름없이 일부러 가능한 한 가장 드라마틱한 자세라도 취하려는 듯 좌석 맞은편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친구님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스카프에 살짝 침까지 흘려가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토요일


존은 조용한 가운데 눈을 떴다. 그리고는 곧바로 셜록이 또다시 어딘가로 내뺀 게 아닐지 겁에 질렸다. 어젯밤에 그는 의식 없는 셜록을 계단 위로 끌고 올라가려 사투를 벌여봤지만, 결국 실패하고는 소파에 내버려두고 왔었다; 친구님께서는 완전히 엉망이었지, 그는 생각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완연한데다[각주:7] 살갗에는 회색빛이 돌았다. 억지로 깨워서 조금이나마 물을 마시게 하고는 셜록의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서 소파 위에 누운 그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그는 완전히 안정된 것 같았고, 그저 잠만 좀 자두면 될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지만, 존은 여전히 자기 방으로 자러 올라가 버린 데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온 밤 내내 셜록을 지켜볼 수 있도록, 셜록 옆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란히 누워 자는 것까지 고려해 보았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그를 부르는 편안한 침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녹초가 된 채 계단을 올라갔었다. 다음 날이 주말이라는 게 그때만큼 기쁜 적도 없었을 거다.

이제 그는, 방금 말한 그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침대 머리맡 테이블에 놓인 알림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어느덧 정오가 지난 걸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이것보다 몇 시간쯤은 전에 셜록이 바이올린으로 만들어 내는 끽끽 소리나, 알 수 없는 폭발 소리에 일어나곤 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보통은 그 스스로도 이보다는 일찍 일어나긴 했었지만, 이번 주는 내내 고단했지 않은가.

그는, 무슨 광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스러워하며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남은 커피들을 숨겨두긴 했었던가? 셜록이 그놈의 실험을 거의 끝냈으리라고 꽤나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어쩌면 그의 희망이 너무 컸던 걸지도 모르니까.

셜록은 어제 그가 내버려둔 딱 그대로, 소파 위에 널부러진 채 잠들어 있었다. 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 의자에 몸을 묻었다.

셜록이 한쪽 눈을 슬쩍 뜬다.

“지루해.”

존은 코웃음을 쳤다.

“벌써? 지금 막 일어났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지루해질 수 있다는 거야?”

셜록은 싱긋 웃더니 몸을 기울여서는 그가 좋아하는 반쯤 거꾸로 누운 자세를 취한다. 존은, 미묘하게 데자뷰라는 느낌이 들었다.

“있잖아, 나 뭔가 엄청 이상한 꿈을 꿨어.” 셜록이 몸을 틀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거기 있었어. 나름… 흥미롭더군.”

존은 이 플랫메이트에게 애매하게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그럼, 그놈의 실험은 끝난 거라 생각해도 되겠지?” 그는 가볍게 물었다.

“어떤 거?” 셜록은 무릎 위에 바이올린을 올려놓고 현을 퉁겨대며,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나른하게 되물었다.

“뭐, 그 실험- 레드불 말야, 셜록. 이거 말고 실험이 또 있었어?!”

셜록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몸을 돌려 소파에 바로 앉았다.

“언제나지, 존.” 그는 존을 늘 화나면서도 동시에 흥분되게 만드는 그 강렬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난, 시간을 보낼만한 뭔가가 필요하거든.”

존은 한숨을 푹 쉬며 채널을 돌렸다. 그는 토요일 오후 텔레비전이 너무 싫었다.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 존은 툴툴거리며 한 마디 했다.

셜록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바이올린으로 긴 음을 냈다.

“그럼 보통 사람들은 뭘 하는데?”

“보통 일들.” 존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모르겠다, 조깅이나 뜨개질, 베이킹같은 건가.”

마지막 한 마디에, 돌아보는 셜록의 눈빛은 깊은 곳 어디에선가부터 흥미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 베이킹이라.” 호기심 어린 말투로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리듯 발음했다. “그거 흥미로운데.”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코트를 걸쳐입고, 문으로 향하며 스카프를 둘러맸다.

“나 장 보러 가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우유, 아이스크림(Cornettos). 잠깐, 네가 장을 보러 간다구?! 너 절대 안가잖아, 뭘 사러 가는 건데?”

셜록은 문을 열어젖히고는 존에게 환하게,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씨익 웃어보였다.

“재료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셜록은 계단 아래로 사라져갔다.

존은 초조함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분명, 이 말을 후회하게 될 거였다. 



+)
빙글빙글 휘젓고 다니다가도 존이 오니까 꺄꺄거리는 셜록이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아. 이 귀여운 셜록을 어쩌면 좋아! 당연히 존은 세인트니까 모두 감싸주고 보듬보듬 예뻐해 주겠지만,
내가 존이라도, 이 셜로기가 한숨은 좀 나오겠지만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아♡
그리고 역시, 간지 쩌는 우리의 마형님. 존경합니다. : ]
  • 그림: 소천님께서 레드불 마시고 헤롱헤롱 취해버린 셜록과 존의 재회 장면(?)을 선물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XD 



    1. 역시 마형님! 간지가 뭔지 아신다니까. [본문으로]
    2. 역시 마형님! 2 예의란 게 뭔지도 잘 아신다니까. [본문으로]
    3. ‘pirouetting’ - 이런 자세. http://youtu.be/Lo9s0jlxPqQ 빙글빙글 셜로기, 상상만 해도 :D [본문으로]
    4. ‘they lack elegance’ - 더빙판의 ‘격조’라는 표현이 맘에 들어서. [본문으로]
    5. ‘minder’ - 보모나 경호원이라고 쓰기엔 왠지 미묘해서. 사심 담겨있다고는 말 못하지;; [본문으로]
    6. ‘Sherlockian’ - 셜록스러워! [본문으로]
    7. ‘with exhausted rings under his eyes’ - 다크서클은 뭔가 콩글리쉬같긴 하지만, 좀더 익숙한 표현일듯.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