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An Act of Charity
  • 저자: wordstrings + 역자: PasserbyNo3
  • 등급: 13세 이상 (PG-13)
  • 길이: Paradox Series 1편 (약 4,000단어)
  • 경고: 어두운 내용이 있습니다.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셜록 관점. 셜록의 머릿속 생각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존은 쫓겨날 뻔 합니다.
  • 역자 주석: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 http://wordstrings.livejournal.com/652.html#cutid1



셜록은 생각하는 중이다.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실종된 - 사실은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 남편 사건은 비도덕적이지만 패치 한개감도 되지 않는 작은 문제다. [추리의 과학] 홈페이지의 킬로바이트조차 아까운. 그래서 차라리 투박한 천장을 바라보며 다른 추리를 시작했다. 그는 머리 아래에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도록 스위스 시계만큼이나 안정된 각도로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다마스크직 베개를 괴어두었다. 핸드폰은 방 건너편에 있었지만, 어쨌든간에 그의 고객에겐 이 소식이 달갑지 않을 테다. 그러니까 현대식으로 “nite”이라고 쓰는, 미친듯이 화를 내고 완전히 정신나간 수준으로 필사적인 사연 뒤에 맺음말로 “xoxo”까지 잊지 않는 그의 고객 말이다.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니, 대략 20분 정도는 흐뭇해하도록 내버려두자. 그게 아니면, 집이 폭삭 망해버리기 전까지 죽어버린게 아닐지를 더 걱정하게 될 뿐이다. 누가 다치는 것도 아니니, 이런거야말로 자선행위일지도. 

아니, 그건 아니지. 셜록은 평소처럼 지독하리만치 무감각하게 생각했다. 연습을 좀 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더 감정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할 수 있다면 소시오패스라도 할 수 있을거다. 하지만 단순히 일어나는 것조차 귀찮은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가지기엔 어렵지 않을까.

재미있는 건, 그저 스쳐버리고 마는 디테일들이 놀라우리만치 많다는 거다. 예를 들면, 그의 바로 위, 낡은 플랫의 금간 회반죽 천장에는 간신히 볼 수 있을만큼 흐릿한 얼룩이 있다. 뿜어져나온 샴페인의 흔적. 다른 것일리가 없지. 보아하니 최소한 20년은 된 거다. 그리고 바닥의 아주 작은 자국들과 긁힌 흔적, 무의식적으로 생활의 궤적을 따라 흘려놓은 사람들의 사소한 자취 하나하나들 - 카펫의 자욱은 말할 것도 없다 - 모두에서, 셜록은 정확히 20년 전의 가구 위치부터 언제 병을 땄는지까지 알아낼 수... 아, 결혼식 뒷풀이에서 건배한 거군.

그게 아니면 기념일 파티일 수도. 여기 있는 제한된 데이터만으로는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리며 눈을 감았을 때, 예전의 결혼 축배 생각은 현재의 혼외정사 건으로 스며들듯 이어졌다. 이럴때 모든 것, 관계 없어보이는 것들에서까지 패턴을 보게 되는 그의 능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니코틴 외에 다른 약물이 무척이나 절실해졌다. 지금 그는 완전히 냉정한 상태였다. 심지어 아침에 커피조차 안 마셨는데도. 존은, 그래도 크림 조금과 설탕 반 스푼을 넣어서 마셨었다. 존은 습관처럼 블랙커피를 마셨지만, 지금 적당한 만큼의 크림과 설탕을 넣어서 마시고 있는 건 누구든 마음껏 크림과 설탕을 소비할 수 있는 런던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일주일 안에 그만두겠지, 셜록은 생각했고, 그만두고 나면 이유를 말해줄 거다.

“오늘 아침에는 블랙이군요.”

”아, 그렇다네. 걱정은 마, 아직 네 형이 날 사이보그로 바꿔버리진 않았으니까. 넌 무사할걸.”

”아뇨, 안심해도 됩니다.
 뭐 사실, 당신이 무사하지 않다면 그것도 내겐 꽤나 흥미로울 겁니다. 당신은 줄곧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뭐, 너처럼 말야?”

”네, 정확해요. 그리고 당신, 블랙으로 마시고 있군요. 꽤 편안하게 느껴지나봅니다.”

”이게?”

”내가요.”

아니,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 셜록은 생각한다.

”네, 정확해요. 그리고 당신, 블랙으로 마시고 있군요. 꽤 편안하게 느껴지나봅니다.”

”이게?”

”당연하겠지만, 당신도 어젯밤에 우리를 쏴대던 남자 덕분에 당신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것 정도는 알아채고 있겠죠."

잠깐, 뭔가 너무 나간 것 같군. 그 가엾은 남자는 안중에도 없이, 뜻하지 않게 존 왓슨을 생각하는 건 이정도면 충분하다.

길게 숨을 들이쉬며, 셜록은 용기내어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충분히 건강했다. 또렷이 깨어있고, 잘 알고 있는데다 지독하게 간절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생각은 인공적인 자극제의 영향 없이 전적으로 깨끗한 상태다. 그러니까, 셜록은 결심했다. 작은 테스트에 착수해볼까. 모든 것을 건, 단 하나의 진짜 중요한 테스트.

두렵지만 고심 끝에 결정한 시도이자, 5년만의 첫 번째 테스트다. 불안함에 계속 이를 악물긴 해야 하지만, 그는 단호할 정도로 확고하니 어쩌면 처음으로 성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테스트해야 할 질문은 매우 단순하다.

지금, 예전보다 좋은가?

그는 의도적으로 생각을 그만뒀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공허. 고요, 확신, 내적인 평온함. 분명 있을 텐데, 지금은 어딘가 숨겨져있는 것 뿐이다. 지금은 그도 나이를 먹었고, 30대 초반에 직업도 있고, 이번 한번만큼은 차분했다. 드디어 스스로를 따라잡은 거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완전히 비워낼 수 있기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정확히 3초간, 텅 빈 상태였다.

제발 모두 되돌릴 수 있기를, 그럴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것, 무의미하고, 사소하고, 정리되지 않고, 버림받은, 잊혀진, 간과된 세상 모든 것들, 완전한 가식 아닌가, 각자 특유의 냄새와 질감을 가진 수많은 사물들이 있는데다, 절반은 비뚤어지고 깨어져있어, 녹색과 청록색은 너무도 달라서 그 사이엔 최소한 천가지 이상의 푸른색이 있겠지, 난 그 모든게 필요할지 물어볼거야, 신은 아마 없겠지, 있다면 농담일거야, 그렇지 않을까, 여기 혼자 남겨져버린 누군가는 한번에 그 모든걸 알아볼 수 있겠지, 분홍색은 붉은색과 확실히 다른 맛이 난다는 것도 알아, 예를 들어 지난번 지하 계단의 그 소녀는 다른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밝은 푸른색 부츠를 신고 있었지. 그런걸 보면 누군가 봐주길 절실하게 바랐던 거야, 그리고 그녀는 분명 음악업계에서 잘나갔을거야, 아 그렇지, 그녀의 남자친구가 나가버린지 얼마 안되었군, 밝은 푸른색 부츠와 눈 아래에 바른 컨실러를 보면 그렇지, 그닥 어울리진 않지만 새것은 아닌 향수로 볼 때 그녀는 그냥 새로운 향기가 필요했던 것 같군,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친구 중 하나는 이날 오후에 그녀의 자스민향은 빌어먹을 장례식 냄새같다고 말해주겠지, 하지만 누가 그녀를 보고 도와주겠어, 어떻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던 거지, 세상 가득한 그 빌어먹을 수많은 것들과 몇백만 몇십억의 가치 없는 비인간적인 사람들 중 일부라도 지워버리고 새로 만들면 어떨까, 그들 모두는 너무 어리석어서 무엇 하나, 어디에도 쓸모가 없거나, 아예 근본적으로 다르겠지, 어째서, 모조리 태워버려야 하는데, 전소시켜버릴만큼 충분히 오래됐어, 모조리 휘발유를 끼얹어버리고 성냥이라도 찾아야 해, 그리고 --

셜록은 깜짝 놀라 짧게 헉, 하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이러면 전보다 나아진게 없지 않은가.

복부를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불편해졌다. 심지어 그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혐오스럽군. 좋을 게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진실에 맞서서 끝을 봐야 하는 거라고, 그는 즉시 스스로 되뇌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그의 창백한 외면과 달리 이렇게 떨리는 이유라고. 실제로도 정말 나쁜 상태였기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해버릴 것 같았다. 만약 셜록이 스스로에게 감정적일 수 있었다면, 아마 제대로 영향받았을 거다.

그게 전부는 아냐. 그는 마음 속으로 사납게 쏘아붙였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나쁜 게 사라지길, 다른 사람들처럼 비워낼 수 있길 바라잖아. 이 엉망진창인 세상 안으로 들어가기를.

그는 눈꺼풀 위로 손끝을 움직였다. 여기에서 벗어나, 세상 모든 것들의 특이한 점들을 좋아할 거다. 자세한 사실을 찾아내고, 세부적인 것까지 살펴보고 그 모든 것들을 활용할 거다, 캘리포니아 서퍼들이 파도를 타듯이. 그것들이 있으면, 그는 기억 아닌 추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게 바로 그가 할 일이다. 누구도 목재를 베는데 우산을 사용하거나, 여분 타이어를 교체할 때 전구를, 플랫 부엌 바닥을 문질러 청소할 때 토마토를 쓰지는 않으니까.

누구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괴물을 원하진 않는다.

그는, 괴물이 결론이라고 판단했다.

일례로, 존의 스웨터를 봐. 오트밀색 같은거. 아프간에 가기 전에 해리가 준거다. 명백하지 – 그의 바지는 괜찮지만 브랜드는 별로고, 신발은 완전 칙칙하고, 가죽패치된 검은 자켓은 훌륭한데,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괜찮은 중고가게에서 직접 산거다. 이월상품인데다 거의 새거지만, 전주인은 팔러먼트(Parliaments)를 피우는 사람이었군. 존은 팔러먼트를 안 피우고 돈도 없으니, 거의 안 입은 코트를 싸게 산 거겠지. 하지만 그 패션 취향은 신상품일 때는 훨씬 비쌌을 점퍼와는 완전히 안맞는데다, 냄새를 보니 곰팡이가 슬기 직전에서야 창고에서 꺼냈군. 그러니 전쟁 파병 전일텐데, 그의 취향과 딱 맞지는 않지만 고급스럽고 그에게 딱 맞는다. 그에게 반하지 않았거나 아예 눈이 먼 게 아니라면, 멀쩡한 센스를 가진 여자친구가 저런 옷을 사줄리가 없다. 푸른색 캐시미어나 보랏빛 회색 브이넥이 그에게 훨씬 잘 어울렸을 테니까. 따뜻하고 편한, 여동생같은 느낌이라, 매력적으로 보이기보다는 그냥 따뜻하게 입는 옷이다. 물론 그가 매력이 없다는건 아니고,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오트밀색이나 팔러먼트 냄새가 아니었다면 - 당신들에겐 뭐든 전혀 상관없겠지만 - 이런 것들은 결코 알아낼 수 없었겠지. 그렇지 않나?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 
내가 진심 사랑해마지 않는 시리즈. 번역도 이것때문에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착꾸러기 셜록의 생각들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것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존도 너무 좋다.

특히 이번 편은 시리즈의 시작인 만큼,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본 적 없었던 셜록의 낯선 관계맺기가 잘 드러나서 좋더라. : ]

큰맘먹고 시작하긴 했지만, 분량도 많고 어려워서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할 생각이다.
이거 다 하면 제본이라도 해서 작가님에게 선물이라도 해볼까...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