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The Art of Flat-Sharing 
  • 저자: out_there + 역자: PasserbyNo3
  • 등급: G (전체연령가)
  • 길이: 단편 (약 5,700단어)
  • 경고: 없음
  • 저작권: 저자/역자 모두, 이 캐릭터들과 설정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저자 주석: 검토해주시고 영국식으로 교정해주신 Oxoniensis님에게 감사를.
  • 알림: PasserbyNo3가 습작으로 번역하였으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링크 외의 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 원문http://archiveofourown.org/works/200355



모두가 존 왓슨을 좋아한다. 현실적이고 잰체하지 않으면서도, 셜록 옆을 지키는 남자. 뭐… 모두들 존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셜록의 목적에도 잘 맞았다. 보조 경관들이 존을 반기며 쓸모없는 잡담을 나누는 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써 준다는 건, 셜록이 대답해야 하는 수없이 짜증나는 질문들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장에 들어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일 시간까지 훨씬 아끼는 길이기도 했으니까.

단… 모두가 존 왓슨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그들 모두가 셜록이 지독한 플랫메이트라고 생각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건, 다른 터무니없는 추측들만큼이나 거슬리는 일이었다. 셜록이 가끔 까다로울 수야 있겠지만, 존 역시 같이 살기에 이상적인 사람만은 아니란 말이다.

그는 아침이면 무뚝뚝하게 굴 뿐만 아니라, 샤워하러 가다가 가로막히기라도 하면 툭툭 쏘아붙이며 으릉, 싫은 소리를 해대기 일쑤였다. 게다가 자기 물건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집착했다: 그의 노트북, 목도리, 샴푸 등등. 실수로 다른 병에 있는 걸 쓰는 게 세계 최악의 범죄일 리 없건만, 존 왓슨에 따르자면 그런 건 교수형감이란다.

바닥에 욕실 매트를 두는 것도 그렇다. 욕실 매트의 용도란 건 바닥이 젖지 않게 하는 거고, 그래서 누군가 미끄러져서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걸 왜 샤워하고 나면 욕조에 걸어놔야만 한다는 건지, 셜록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차가운 자기질 욕조에 걸어둔다고 해서 더 빨리 마르지도 않을 테고, 셜록이 다음에 샤워하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그걸 또다시 옮겨야 하잖은가. 걸어두는 건 조금도 실용적이지 않단 말이다. 그런데도 존은, 권총을 안전하게 두는 것보다도 욕실에서의 에티켓 가지고 더 짜증을 부리는 거다. 

(모든 걸 고려해봤을 때, 어쩌면 이 방법이 그나마 최선일지도 모른다.)

셜록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규칙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데다, 가장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뭔가 하는 데에도 쓸데없이 주의만 흩어놓을 뿐이었다; 그런 건 쩨쩨하고 옹졸한 사람들이 편협한 사고방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존은 속이 좁거나 쩨쩨한 사람도 아니고, 하려고만 든다면 요령이 없지도 않다. 존은 흥미롭고, 예상 외의 면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셜록은, 존이 그런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는 이유까진 이해할 수 없어도 신경을 쓴다는 건 알았다. 그러니 그대로 따르는 게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다.

그런 이유로다가 셜록은 욕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존이 세면대에서 이를 닦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셜록이 바로 안으로 쳐들어가고도 남았겠지만, 존은 노크하라고 우겨대는데다 문을 열기 전에는 대답부터 기다려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곤 했기 때문이다.

입에 물고 있던 걸 퉤, 뱉어내는 소리에 이어 존의 대답이 들려왔다. “금방 나갈게.”

‘들어와’도, ‘저리가’도 아니군. 셜록은 문을 열었다.

“셜록-” 존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 규칙을 어겼다는 의미의 목소리다 - 한마디 했다. 하지만 셜록이 노크를 했는데도 존이 들어오라고 하지 않은 거니까, 이건 그가 아니라 분명 존의 실수다. 존은, 셜록의 팔을 내려다보더니 표정이 확 바뀐다. “너, 피 나잖아.”

누가 봐도 명백한 걸 다시 읊어대는 걸 존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 자체가 이미 명백한 걸 다시 읊어대는 걸테다. 그래서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손가락 아래로 아직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안타깝군; 이 셔츠 좋아하는데.) 세면대로 다가섰다.

존은 어느새 구급상자를 열어두고는, 수건을 손에 들고 수도꼭지를 틀고 있었다. “누가 공격이라도 한 거야, 아니면 실험이야?” 존은 셜록의 손목을 그러쥐고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며 물었다.

“실험이었어요.” 셜록의 말에, 존의 온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듯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그는 대담하게 처치해나갔고, 그의 손놀림은 세심하고 효율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유리병 하나가 깨졌거든요.”

존은 농담이나 선의의 거짓말 따위로(예를 들면 “별로 안 아플거야.”같은 - 셜록은 단 한번도 그런게 진실인 꼴을 못 봤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유리조각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며 손쉽게, 숙련된 손길로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내가 알아야 할 게 또 있나?”

존이 제일 신경쓰는 건 유리병 안에 오염물질같은게 있었는지일 테니, 셜록은 대답해주었다. “비어 있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존이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엌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도 있구요.”





대부분의 경우 존은 체계적이고 규칙적이었다. 한겨울에도 그는 6시 30분에 일어난다. 7시면 샤워를 하고, 7시 30분에는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습관처럼 차 한잔에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바른 토스트 두 조각을 곁들였다. 셜록이 부르기만 하면 존은 당장이라도 범죄 현장으로 따라올 테고, 필요하면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니기도 할 거다. 내내 그 생기 넘치는 미소를 띠고서. 둘 중 한 명이(또는 둘 다) 수도 없이 위험에 처하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존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사건마다 그를 따라왔다.

하지만 셜록이 마지막 남은 마멀레이드를 써 버리기라도 하면, 존은 발끈하며 한숨을 내쉬곤 한다. 뭐라뭐라 궁시렁거리면서 셜록을 째려보겠지. 셜록이 병을 없애버리든 찬장에 남겨두든 별 차이는 없다: 어쨌든간에 반인륜적인(아니면, 존이 한번 이상 투덜거렸던 바에 따르면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을 기본권”에 반하는) 범죄라는 거다.

존은 청소를 고집하는데다, 해야만 하는 거라며 불평까지 했다. 셜록은 밤마다 설거지를 하고 정리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터라, 이게 어째서 그의 잘못인지를 -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 알 수가 없었다. 찬장에 깨끗한 그릇이 없으면야 셜록도 충분히 설거지를 할 수 있고, 또 그럴 거였다. 그 찬장이 비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난 다음이면, 존은 시계마냥 규칙적으로 그를 의자에서 끌어내어 싱크대를 그릇들로 채워넣기 시작하는 거다. 만약 셜록이 도우려 들지 않을라치면, 존은 나직하게 투덜대곤 했다. 그것도 딱, 셜록이 들릴 만큼만 큰 소리로 말이다.

그러니 셜록이 도울 수밖에. 전혀 불필요한데도 말이다; 설거지는 물론이거니와,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그랬다. 3주 정도, 혹은 그 이상(그녀의 한계점은 평균적으로 22일 정도인 것 같다) 내버려두면 허드슨 부인이 할 텐데. 셜록이 설거지를 하면 존은 옆에서 그릇을 말리면서 - 아니면 반대거나 - 둘은 존의 그날 일과에 대해서나(셜록이 추리하면, 존이 확정해주는 식이다), 발톱의 부패에 대한 최신 과학적 연구 결과나 무명의 유럽 암살자들, 90년대산 스위스 시계가 최근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셜록이 사건을 맡고 있을 때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데 가능한 모든 뇌세포들을 동원하고 있는데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존이 일어나는 거나 들릴듯 말듯한 불평같은 건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거지처럼 지루한 걱정거리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





존은 정리도 했다. 셜록도 이런 게 일반적으로 플랫메이트로서의 실격 조건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존은 자기 방은 말끔하게 정리하고, 모든 걸 선반과 서랍에 꽁꽁 싸매어 숨겨두었다. 그는 거실에 노트북이나, 가끔은 신문 정도를 두긴 했지만 그 외의 모든 개인 물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다. 셜록이야 항상 존의 흔적들을 알아보지만(의자 왼쪽 팔걸이에 놓여있는 리모콘, 존의 신발 뒷굽에서 떨어진 의자 아래 흙, 테이블 가장자리에 있는 밀빛 머리카락), 대부분은 존이 여기 살고 있는 걸 몰랐다면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거였다.

존이 정리하는 것 자체에는 셜록도 아무 이의 없었다. 셜록이 반대하는 건, 존이 셜록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거다. 존은 물건들을 옮겨 쌓아두거나 기타등등 쓸데없는 것들을 커피 테이블 아래 숨겨두기도 하고, 심지어 소파와 의자들을 몽땅 치워버리기도 했다. 한번은 셜록이 임시로 마련해둔 부엌 실험실을 그가 싹 옮겨버린 적도 있었다. 몽땅 벽 쪽으로 밀어두고는 푸른색 체크무늬 테이블보 아래에 숨겨버린 거다. (셜록은 화가 치민 나머지 테이블을 통째로 엎어버렸다. 부서진 것 중에 대체 불가능한 건 없었지만.)

존이 매일매일 그러진 않았지만 - 만약 그랬다면 셜록은 곧바로 나가라고 했을 거다 -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을 때면 그랬다. 잠시 새라가 오긴 했지만, 새라는 책과 암호들로 뒤덮인 집을 봐 버렸다. 나중에는 벽에 남겨진 총알 구멍들(셜록이 한 것)과 나무판자로 빗장질러진 창문도(셜록이 한 건 아니다) 봤으니, 존이 노력한다 해도 대부분 소용 없는 거긴 했다. 셜록도 그 정도는 감수해줄 수 있었다.

지금 존은 제니를 만나는 중이다. 즐겨 신는 10cm 하이힐을 벗고 서면 175cm 정도인, 키만 컸지 따분한 여자다. 치과 조무사로 모든 게 정돈되고 살균된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충치 패턴이라거나 닳아버린 치아에서 보이는 스트레스 징후 외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들르기 전이면 존은 청소하고 - 셜록이 지금 조사하고 있을지도 모를 모든 것들을 옮겨버리면서 - 정리하기 바빴다. 그러고는 뻔뻔하게도 이러는 거다. “제발 좀, 셜록.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리를 피해줄 수 없겠어?”

그녀가 왔을 때 존이 하는 거라고는 소파에 앉아 그녀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척 와인을 따르며 수작을 거는 것 뿐인데. 셜록은 어째서 둘이 그러고 있게끔 자신이 플랫을 나가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존이 째려보다 문을 쾅 닫아버리더니, 다음날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런던의 모든 문제들은 다 셜록 책임이라는 식으로 투덜거렸던 거다. 셜록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로 비난받는데야 이골이 날 정도였고, 도노반이 그럴 땐 신경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존은… 곤란한 일이다. 거슬리기도 했다. 하등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셜록은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는 셜록은 안치소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주의를 끌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막 들어온 시신들이라고는 모두 따분하고 빤한 이유들로 살해되었는데다, 몰리가 계속 생글거리며 기이한 독극물이 숨겨져 있지 않느냐고 물어오는데도 뭐라 대답해줄 만한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조차 없었던 거다. 결국 셜록은 장기 샘플을 가지고 실험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소파에는 따분하고 키큰 제니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존에게 자신의 애완용 강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따분하군), 존의 무릎에 길다란 다리 한쪽을 얹은 채 손가락으로는 길다란 엷은 금빛 머리카락을(스트레이트 펌에 염색한 거지만, 따분하긴 마찬가지다) 비비 꼬아대는 중이었다. 강조해서 이야기할 때는 길다란 두 손가락으로 존의 손목을 쓸었고, 존은 미소지었다. 재미없는 이야기인데도(딱 그녀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는 키득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내 메스 어디 있죠?” 문가에 들어서며 셜록이 묻자, 존이 고개를 홱 돌렸다. 존이 째려보든 말든, 내일 하루 종일 노려보면서 카펫의 상태부터 런던의 교통 문제에 이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묻든 말든 셜록은 상관없었다. 셜록은 신경쓰지 않았고, 사과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셜록은 혐오스럽고 끔찍한 손님따위 플랫에 들이지 않으니까. 뭐, 마이크로프트가 있긴 하지만, 그가 마이크로프트를 초대한 건 아니니 그건 논외로 한다.

“내가 어떻게 알아?” 제니 앞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존이 되물었다.

“소파에 있었다구요.” 셜록의 말에 제니의 연푸른 눈이 우스꽝스럽게 휘둥그레졌다. 셜록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손님을 초대할 때 정리부터 하는 거야.” 존은 셜록에게라기보다, 제니를 향해 말했다. 그녀가 미소로 답하자(여전히 불안한 듯 했고, 셜록은 그녀가 존의 무릎에서 다리를 내려놓는 걸 의기양양하게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존은 셜록에게로 몸을 돌렸다. “네 침대 위에 있어. 몽땅 다. 가서 확인해 봐.”

셜록은 홱 돌아서서,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도마를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만약을 대비해서다. 셜록에게 갑자기 꿰맬 일이라도 생겨서 저 따분한 데이트에 방해라도 받는다면, 존이 고마워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바로 샘플을 챙겨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한발짝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거실에 들릴 만큼 소리를 내 주느라 유의하면서.

그의 침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정하게 덮여 있었다. 모든게 너무나도 정갈했다. 영어에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단어 어디 없을까? (당연하지만, 지루함 말고 다른 걸로.) 그를 지켜볼 존은 없지만, 셜록은 어쨌든 비웃음을 날렸다. 그는 책상을 치우고 샘플을 위에 올려둔 다음, 메스를 찾으러 갔다.

그때, 뭔가…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모든 물품들이 한 무더기씩으로 쌓여 있는데다, 각각의 무더기에는 검은 펜으로 숫자가 적인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거다. 그리고 침대 가운데, 정가운데에서 오른쪽에는 손으로 그린 거실 지도가 놓여 있었다. (존은 이걸 왼손으로 그린 거다. 왼쪽 다리 위로 오른쪽 다리를 꼬아 앉은 채로, 허벅지 위에 종이를 올려두고서.) 그림 주위에는 이곳저곳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저 물건들이 긴 의자, 커피 테이블, 식탁, 의자, 아니면 이것들 사이 바닥 어딘가에 놓여 있었는지를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셜록은 눈을 감으며 오늘 아침 거실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구석구석, 그는 무엇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해내려 애썼다. 거실이 아니었기에 그의 기억을 자극해줄 시각적인 단서는 없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존이 그려준 지도와 조심스레 쌓아둔 무더기들을 살피며 맞는지를 확인하려니(거의 맞았다; 완전히 잊어버린 것도 조금 있긴 했지만) 모든 디테일을 만족스러울 만한 수준으로 기억해내기도 어려웠다.





존에게는 더운 물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건 물론(“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셜록. 15분 넘게 쓰면 안돼.”) 난방비를 절약해야 한다는(존이 스웨터를 입을 만큼 춥지 않으면, 히터도 켜면 안된다) 규칙이 있었다. 심지어 셜록의 실험에 대한 규칙도 있었다; 자르거나 썰어야 하는 건 부엌에서 해야 한다거나(“카펫에선 안돼, 아니면 허드슨 부인에게 얼룩에 대해서 네가 직접 설명하든가. 난 널 위해서 카펫에 묻은 체액을 닦아낼 생각은 없거든, 셜록.”); 욕조에서 한 것들은 30시간 안에는 치워야 한다거나; 유황이 들어가는 실험을 하면 창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어지간해서는 셜록도 그 규칙을 따랐다. 예를 들어 320ppm 농도의 황화수소가 보통 크기의 침실에서 자연적으로 사라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을 때에도, 셜록은 스코틀랜드 야드에 가기 전에 분명히 창문을 열어 두었다. 그 사망 사건은 해당 시간 안에는 자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을 때, 레스트라드는 여느 수사관들보다 잘 이해했다.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던 앤더슨보다는 잘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셜록은 어쩔 수 없이 피해자의 체내에 있던 아질산아밀로 인해 가스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까지의 시간이 약간 늦춰졌다는 걸 뒷받침해줄 디테일들을 따분하리만치 느릿느릿하게 설명해야 했다. 거기에 이어서, 취미삼아 향정신성 마약을 사용했다는 완전히 명확한 징후들까지도 설명해야만 했던 것은 물론이다.

존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한창 병원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셜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앤더슨에게 그가 실험 가운만 걸쳤다 뿐이지 완전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각주:1] 사실을 설명해주려 애쓰는 것 뿐이었다. 이내 샐리도 말려들었고, 이 모든 사태는 레스트라드가 버럭 소리지르고 나서야 끝났다. 셜록이 존을 데리고 왔을 때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들은 살인범을 찾아냈고(헤어진 여자친구의 여동생으로, 피해자와 하룻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죄책감이 질투와 극도의 분노로 변해버렸던 모양이다)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자백했다. 개인적으로 셜록은 총을 뽑아들고 도망쳐보려 하는 살인범들을 선호했다; 그런 놈들이 훨씬 재미있잖은가.

존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셜록은 존 역시 동의할 거라 확신했다. 거리를 질주하고 코너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마침내 용의자를 땅바닥에 메치는 게 훨씬 더 만족스럽게 마련이니 말이다.





셜록이 집에 돌아왔을 때엔 이미 존이 돌아와 있음을 알리는 흔적들이 있었다. 탁자 위에서 1인치 옮겨진 주전자. 충전하려 꽂아둔 존의 노트북. 셜록은 희미하게 풍겨오는 카모마일 내음을 따라가 보았다(존은 밤늦은 시간에는 카페인이 든 음료를 즐기지 않았다. 자려고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향기는 존의 방이 아닌, 셜록의 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셜록은 문을 열었고, 복도의 불빛이 카펫을 가로질러 새어들어갔다. 그의 1인용 침대 옆에는 머그 하나가(이젠 차갑겠지, 셜록은 생각했다) 놓여 있었다. 한층 더 걱정스러운 건, 존이 있었다는 거다. 그의 침대에.

셜록은 팔짱을 끼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바닥이나 책상에 그의 옷은 없었다.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옷장 문은 그가 열어두었던 딱 그만큼만 살짝 열려 있었다. 셜록의 방에는 존의 옷이 없으니, 존이 옷을 갈아입진 않은 거다(아니, 틀렸다. 존은 줄무늬의 면 파자마를 입고 있으니까. 셜록은 이불 위로 비어져나온 그의 오른팔 소맷부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면… 여기에서 갈아입지 않은 거겠지. 존이 일부러 다른 데서 옷을 갈아입은 거라면, 여기에서 자겠다고 부러 마음 먹었다는 말이겠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존의 출현에 대한 이유 중에서 몇 가지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다 - 혼동했다거나, 뇌진탕을 겪었다거나,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거나 하는 정도. (이런 생각에 셜록이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건 개연성 있는 원인으로 이끌어줄 만한 다른 모든 가능성을 제거했기 때문일 거다. 존을 걱정한 건 분명 아니다. 그런 건… 무의미할 테니까.)

셜록은 존의 호흡이 고른지, 혈색은 정상인지 확인해 볼 요량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존이 깜박거리며 눈을 뜨는 걸 보니 반응은 정상인 것 같다.

“살인범은 잡았어?” 존이 묻는다. 그는 셜록의 침대에서 옆으로 살짝 움직이긴 했지만, 앉거나 일어나진 않았다.

“당신, 내 침대에 있네요.” 셜록은 말했다. 여긴 자신의 방이니까. 자신의 침대다. 이건 지난 사건 때 존이 그의 노트를 정리하는 것처럼 약간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거슬리는 일이란 말이다. “그리고 맞아요, 당연히 잡았죠.”

“잘했어.”

“당신, 아직 내 침대에 있잖아요.”

존은 그를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래서?”

“가서 당신꺼 써요!”

“그러고야 싶지.” 존은 차분하게 한 마디 하더니, 잠시 입을 오므리고만 있다. 짜증내고 있는 거였군, 셜록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스쳐지나가는 저 표정을,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한 존의 조심스러운 말투를 알고 있었다. “내 방에 가서 자고 싶었지. 누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가지만 않았다면 말야. 내가 아홉시 반에 집에 돌아와 보니까, 밖은 어둡고 추운데 내 방도 완전 춥더라구. 내가 북극곰이 아니다 보니 북극 기후에서는 잠들 수가 없어서 네 침대에 있는 거야.” 

논리적인 세계에서라면, 셜록은 자신이 존의 규칙을 따른 거고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규칙같은 건 없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었을 거다. 아니면 꽤나 유독한 가스로 가득 채웠던 방이라, 가능한 한 오래 통풍을 시켜두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그닥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난 어디서 자요?”

“소파를 추천하지. 거기서 자주 자기도 하잖아.” 존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불 한쪽을 펼쳐보인다. “하지만 미칠듯이 춥다구. 같이 자는게 나을걸.”

셜록은 타협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2인용 침대가 있는 방을 썼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처음 둘러보던 때, 존의 방(좀더 크고, 2인용 침대에 커다란 옷장, 작은 책장) 아니면 셜록의 방(1인용 침대, 좀 작은 옷장, 매우 큰 책상)이었다. 셜록은 가장 논리적인 선택을 했고, 큰 책상이 있는 방을 쓰기로 하고는 존의 방에서 책장을 빼내어 셜록의 방으로 옮겼다(그가 쓸 확률이 높았다; 갓 전역한 군의관보다야 그가 책이 더 많다는 것쯤은 명백하지 않은가).

침대로 파고들자마자, 셜록은 2인용 침대가 더 좋은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뒤틀고 돌아누워 봤지만 도저히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등 뒤가 휑해지거나 침대 가장자리에 한쪽 팔을 내밀지 않고서는 누울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1인용 매트리스는 그가 혼자 있을 때 꼭 맞았으니, 두 사람으로는 안되는 거였다. 셜록은 다시 돌아눕다가 거의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뻔 했다.

존은 한쪽 팔을 괴며 몸을 일으켰다. “너 괜찮아?”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로프트만큼이나 의기양양 즐거운 것 같았다.

“이건 말도 안돼요.” 셜록은 으릉, 쏘아붙였다.

“아, 내 방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버린 건 말이 잘 되고?”

“우리 플랫에서는 거기가 유일하게 공기 용적이 들어맞는 방이었다구요.” 셜록은 다시 꿈틀거려 봤지만, 여전히 아래 매트리스 가장자리가 느껴졌다. 어쩌면 비어져나온 신체 용적이 몇 퍼센트인지도 추산해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있어야 할 부분이란 말이다.)

“제발 좀, 셜록.” 존은 한숨섞인 말투로 한마디 했다. “이리로 와봐.” 그는 셜록의 팔을 잡아 모로 돌려눕혔다. 그리고는 존의 위로 셜록이 반쯤 누울 때까지 끌어당긴다. 침대를 혼자 독차지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한쪽 옆으로 팔이 덜렁 나와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셜록은 어깨를 조금 움직여 무게를 분산시키며 베개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침내, 존에게 한쪽 다리를 얹고 한 팔을 걸치고 나서야 적당하게 편해진 걸 느꼈다.

“누구라도 네가 나눠쓰는 데는 젬병이라고 하겠는걸.” 존이 궁시렁거렸지만, 잠결에 하는 투정이었다.

셜록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방에서 깨어날 때, 셜록에게는 무엇 하나 흥미로운 게 없었다. 모든 가구를 구석구석 다 알고 있는 것은 물론, 각 가구들 사이의 거리마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두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한낮이든 한밤중이든, 아니면 안개 자욱한 동틀녘 희미한 빛이 커튼 사이로 비출 때에도 방 안 모든 건 자신의 것이고, 너무 잘 알았다.

단 하나, 그의 옆에 곤히 잠들어 있는 존을 제외한 모든 것이라 하겠다.

셜록이 이 침해 사태를 알아차린 방법은 흥미롭게도 여러 가지였다; 침대 안에 추가적인 온기, 섭씨 36도를 유지하며 시트를 데워주고 있는 다른 몸; 평소같으면 셜록 주위만 눌려 있을 매트리스가 왼쪽 한 구석 움푹 패여 있는 것과, 존의 숨소리. 여느때라면 셜록의 어깨에 꼭 맞게 감겨 있을 이불이 살짝 당겨져 불룩 솟아 있는 것까지. 존의 존재감을 분류해낼 수 있을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그것도, 가장 확실히 식별해낼 수 있는 한 가지는 제외한 거다; 신체적인 접촉 말이다.

그 밤 동안 존은 돌아누웠다.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 대부분의 성인은 평균적으로 7시간의 수면 중 3~5회 정도 돌아누우니까. 존이 왼쪽으로 누웠기에, 셜록은 필요에 의해 그를 뒤에서 웅크려 안았다. 어느 정도는 1인용 침대인데다 같이 쓸 수 있을 매트리스가 이것 뿐이라서도 그랬지만, 실은 존이 셜록의 손목을 꼬옥 감싸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플 만큼 꽉 잡은 것도 아니고 분명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존에게 팔을 걸쳐두고 있게끔 계속 붙들고 놓지 않았던 거다. 존이 조금만 더 꽉 붙잡았더라면, 셜록은 그의 손가락 아래 일정하게 뛰고 있는 스스로의 맥박까지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존을 등 뒤에서 감싸안는 건 이상하리만치 친밀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살갗에 와닿는 존의 손가락, 다리에 맞닿은 존의 허벅지, 존의 등에서 전해지는 온기, 그리고 그가 숨쉴 때마다 셜록의 가슴으로 와닿는 가벼운 압력까지도 느껴졌다. 셜록은 존의 호흡과 그 패턴, 규칙적인 소리의 시간을 재어볼 수도 있었다. 눈을 감고 깊게 들이쉬어, 향기만으로도 존의 샴푸 성분이 뭔지를 추측해낼 수도 있었다.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느끼고 싶었다. 그는… 단순하게, 만진다는 것의 본능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존의 목 뒤에 입술을 대어 누르며, 더 가까이 끌어안고 싶었다.

정말 화나는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웠다. 행동으로도 옮겨보고 싶었다는 사실에 불쾌하리만치 짜증이 치밀었다. 신체적 욕구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차라리 셜록은 배고픈 게 나았다. 무시해버리기 쉬우니까: 들쭉날쭉, 쑤시는 아픔 쯤이야 알아서 없어질 거다. 하루 걸러 한번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한, 그 덕에 더 예민해지고, 집중할 수도 있었다. 그걸 잊어버릴 때야 뭐, 방이 빙글빙글 돌고 갑자기 기절해버리기 전까지는(한창 실험하는 도중일 때도 귀찮지만, 용의자를 상대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알아차리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성욕보다야 엄청나게 덜 거슬렸다. 성욕은 집중하지도 못하게 할 뿐더러, 셜록에게 필요한 날카로움까지도 무디게 만들었다.

셜록은 몇 가지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의 사이트에서 왔던 최근의 이메일이나 어제 신문에서 읽었던 - 아직 레스트라드가 도와달라고 하진 않았지만 곧 찾아오게 될 살인 사건, 발품을 팔아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마이크로프트가 넌지시 던졌던 말이라든가. 이것들 전부 셜록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지만, 그게 바로 성욕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흥미로운 일들을 생각해야 할 순간에, 그 대신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신체의 팽창이나 갈망으로 인간의 몸이나 바라보고 있게 되니 말이다.

셜록은 갈망하는 게 싫었다.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는 게 좋았다. 단순하고 절대적인 게 좋았다. 갈망하는데 가지지 못하는 건, 그에게는 상당량의 주의력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그의 시간을 허비하는 거기도 하고.

셜록이 손을 빼내려 해봤지만, 존은 웅얼거리면서 붙잡았다. “한밤중이야, 셜록.” 불평이라기엔 너무 잠에 취한데다 만족스러운 말투였다. “너도 잠깐 정도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 거 아냐.”

요구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건 존의 규칙에 없었다. 존이 그에게 화를 내는 걸 원치 않아서, 존이 그에게 화를 내는 게 싫어서 결국 셜록이 하게 될 - 그 어리석고 사소한 것들 중 하나일 리 없었다. 셜록은, 존이 그와 함께 소리내어 웃는 게 좋았다. 존이 미소짓는 게 좋았다. 존이 “놀라워,”나 “넌 굉장해”같은 말을 해주는 게 좋았다.[각주:2] 

가만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지독하게도 명백했던 거다. “당신, 제니는 그만 만나야겠어요.”

존은 몸을 조금 움직여 바로 누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셜록의 손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더니, 결국에는 자신의 가슴 - 왼쪽 쇄골 2인치 아래에 셜록의 손을 얹어둔다. “네가 긴 다리의 매력을 이해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우승하는 경주마들에게는 중요한 자질이죠.” 셜록은 말했다. 실제로도 그러니까.[각주:3] 

“그래 그래.” 존은 따뜻하지만 살짝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지.” 

“그 여자 따분해요.” 셜록은 말했다.

존은 입도 열지 않고 ‘으음’, 목울림 소리로만 대꾸했다.

“말도 안돼요. 난 때맞춰서 샤워도 끝내고, 매트도 걸어둬요. 설거지도 하고, 마멀레이드도 마지막 한 입은 당신에게 남겨주구요. 그리고 당신, 내 침대에 있잖아요. 게다가 그 여자는 따분하다니까요.” 셜록은 휴, 한숨을 내쉬었다. 강조하듯 손이라도 휘저어보려 했지만, 존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제니는 그만 만나야 해요.”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길고도 지긋지긋한 침묵이 흘렀다. 길게 숨을 내쉬고 셜록의 손을 잡으면서도 그는 조용했다.

셜록은 자신이 이 상황을 싫어하는 거라 결론지었다. 항상 싫어했던 건지, 아니면 존과 어색하기 때문인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 싫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심장이 그는 목구멍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은 -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느낌에는 정확한 설명이다 - 기분이 싫었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다시는 움직이지 않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벌떡 일어서서 방을 박차고 나가버리고도 싶었다. 점점 커져가는 치욕스러운 기분에서 달아나고만 싶었다. 존을 놓아주고, 그의 침대에서 쫓아버리거나 다시 잠들게 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게 최선일 테다. 존은 다시 잠들 수 있을 테고, 이건 그저 꿈이고 결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 척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셜록도 이 모든 깨달음들을 기억장치에서 지워버릴 방법을 찾겠지. 이런 걸 기억하고, 존의 내음이 어땠는지, 존의 푸른 눈동자는 정확히 어떤 색이었는지,[각주:4] 셜록이 자신의 동료를 진짜로 신경쓰지 않을 때면 짓곤 하는 정말 실망하는 표정같은 - 최고로 무의미한 것들이나 떠올리는 비효율적인 인체의 드라이브에서부터.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디테일이 아니라면 그런 건 불필요하니 - 존 역시 불필요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렇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셜록은 이것들 중 하나라도 지워버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제니에게 전화할거야.” 존은,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되는 듯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서 뭐라고 할 건데요?”

존은 몸을 돌려 일으키더니, 어떻게 했는지 어둠 속에서도 셜록의 뺨을 찾아냈다. 셜록의 살갗 위로 아주 가벼운 키스를 선사하며 그는 대답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아.” 셜록은 둘 사이에 머무르는 숨결의 온기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존은 원칙대로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지도, 다른 누군가와 자지도 않았다. 그 짧은 키스 외에는 다음 날 - 제니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얼굴 맞대고 모든 걸 설명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것도 존의 규칙이었던가보다; 관계를 끝맺을 때는 직접 해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셜록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문자 한 통이면 쉽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그가 존이 돌아오기까지 몇 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텐데.

셜록이 그동안 내내 시간만 헤아리고 있던 건 아니었다. 성욕으로 인한 정신적 퇴행효과에 대한 논문이라도 써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고말고, 셜록은 하루 종일 그의 사이트로 온 그 모든 지루한 이메일들에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몇 달은 전에 왔던 지독하게 지루해빠진 것들까지도. 그렇다고 해서 흥미로운 살인사건이 뚝 떨어져 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 지금 당장은 그렇게 냉철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거나 바라는 게, 셜록이 잘 못 하는 두 가지였을 뿐이다.

하지만 마침내 존은 돌아왔다. 회색 스웨터에 줄무늬 후드티를 받쳐입은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끝났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아.”

“좋아요.” 셜록은 노트북을 닫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알고 보니 존은 키스를 잘했다. 셜록이 그닥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전에도 누군가와 키스해봤고, 자본 적도 있었다. 알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뭐, 디테일까지 기억할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조수 시간이나 건물 3층에서 떨어진 충격이 8층과 비교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는 그 수천가지의 데이터 바이트들 중에서, 키스나 섹스는 분명 제일 유용하지 않은 축에 속했다. 그런 셜록이었지만, 이건 - 존의 손길, 존의 입, 셜록의 가슴을 파고드는 존의 손가락과, “해, 셜록, 해줘.”하며 목을 울리는 낮은 신음소리 - 어느 하나 지워버릴 수 있을 거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절대로.)





셜록은 자신만의 몇 가지 규칙을 고집했다. 첫번째는 공개적인 애정표현은 안된다는 거였다. 허드슨 부인 앞에서도, 그의 형(아니면 형의 CCTV 카메라) 앞에서도 안된다. 야드 사람들 중 그 누구 앞에서도 안된다는 것쯤은 말할 것도 없다. 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셜록이 두번째 규칙을 설명하자, 존은 움찔하며 대꾸했다. “그건 말도 안돼.”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이라구요.”

“난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니.” 존은 이상하게 들릴 만큼 느릿하게 말했다. “그게 합리적이야?”

“당신이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고는 말한 적 없어요. 범죄 현장에서만 안된다는 거지.” 지난번 범죄 현장에 존이 청바지를 입고 왔던 그때를, 품위있게 설명할 방법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셜록이 저항한 흔적을 찾으려 방 안을 휘젓고 다닐 때 존은 시신 옆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리고 셜록은, 존의 부드러운 둔부 곡선을 바라보느라 거의 5초를 소비해야만 했다. “전문가답지 않잖아요.” 셜록은 대답했다. 실제로도 그러니까.[각주:5] 존이 거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셜록이 생각의 흐름을 잃어버린다는 건 정말이지 전문가답지 못한 일이다. 살인사건 주위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마치 건설적인 일이라도 된다는 양 만족스럽게 히죽거리는 레스트라드를 떠올리는 순간 더더욱 싫어졌다.

그건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되는 - 앤더슨 따위나 할 만한 짓이란 말이다.

“나랑 잠자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뭘 입을지에 대해 뭐라 할 권리가 생기는 것 같진 않은데.” 존은 토스트에 마멀레이드를 펴바르고는 나이프를 다시 푹, 찔러넣어 좀더 덜어냈다. 그리고는 모서리를 가로질러 깔끔하게 세모 두 조각으로 잘라내어 한입 베어문다.

“내가 바라면 할 수도 있죠.”

“그래 그래.” 존의 대답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연애란 게 실제 그런 식으로 굴러가진 않는다구.”





존은 거실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셜록은 흘끔, 그를 바라보고는 다시 현미경으로 눈을 돌렸다.

“수건을 몽땅 써버려야만 했어? 하나 정도는 마른 걸 쓸 수 있게 남겨둘 수도 없던거야? 욕실에 있는 수건들 전부 다?” 존은 물었다. 날선 그의 목소리에, 셜록은 보려던 슬라이드를 기억해두고는 몸을 돌려 존을 마주보았다. “벽장에 여분의 수건 있잖아. 네가 써버린 다섯 장 중에 하나 바꿔놓는 데 고작 스무 걸음도 못 가는거야? 어쩌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샤워를 끝냈을 때 마른 수건 한장 있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도 안 들어?”

“그럴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난 그때-”

“하지만 넌 그때 뭐? 훨씬 더 중요한 뭔가 하고 있었다고? 아, 집먼지 진드기의 생활 주기라도 연구하고 있었나?”

“아뇨.” 셜록은 대답했다. 그건 지난 주에 했으니까. 존은 관심도 없나?[각주:6] 

수건 재질이 희석된 가성소다에 장기적으로 노출되었을 때의 효과를 시험해보고 있던 이유를 미처 설명하기도 전에 존은 맹렬하게 손가락을 들이대며 성큼성큼 세 발짝 다가섰고, 온통 분노로 가득찬 173cm의 체구는 리놀륨 바닥에 흥건한 물웅덩이들을 남겼다. “그저 수건 한 장이야, 내 말은 그게 다라구. 수건 한 장만 있어도, 내가 벽장까지 홀딱 벗고 달려가지 않으려고 세탁물 바구니를 온통 뒤엎어서 축축하게 젖은 걸 꺼내 쓰진 않아도 되잖아!”

셜록은 수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당신, 샤워하고 싶어질걸요.”

“나 방금 샤워했어. 난 나 좋자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여기 서 있는게 아니거든.”

“또 샤워해야 할 거에요. 반응 생기기 전에 피부를 씻어둬요.” 

“넌 우리 수건으로-” 존은 감싸고 있던 수건을 내려다보았다.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는, 앙다문 잇사이로 씩씩거렸다. “당연히 그러셨겠지. 젠장맞을, 셜록.” 존은 일단 벽장 쪽으로 갔다가(수건을 꺼내러) 다시 욕실로 터덜터덜 되돌아갔다. 

셜록은 다시 현미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존이 투덜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깨끗한 수건 한 장이야, 내가 바란 건 그게 다라구. 도대체 내가 왜 저 남자랑 사는거지?”





30분이 지나고서야 다시 나타난 존은, 이번에는 옷을 다 차려입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여전히 축축하게 젖은 채, 수건으로 말리던 그대로 들러붙어 있었다. “넌 역시 못 미더워. 솔직히 말해서, 이 집에 있는 모든 수건을 다 쓸 필요는 없었잖아. 그리고 피부에 반응할 만한 뭔가로 수건을 적실 일이 있다면, 정말, 나한테 말이라도 한번 해 주면 좋겠어. 다음엔 경고라도 좀 하라구.”

“다음엔, 깨끗한 수건 한 장은 꼭 남겨두도록 하죠.” 셜록은 대답했다. 존의 수많은 규칙들이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벽장에서 수건 한 장 가지고 오는걸 기억해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다.

존은 그를 째려보면서 배려를 모르는 동거남과 어이없는 인간들에 대해 뭐라뭐라 투덜대기 시작했다. 셜록은 읽고 있던 책에 영수증을 - 장갑 세 켤레에 대한 영수증이었지만 그걸 산 기억은 나지 않았다 - 끼워두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존의 푸념소리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존은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어가며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는 싱크대에서 그릇들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세부 수칙 치고는 완전 새로운 규칙도 아니지, 셜록은 생각했다. 허점이 될 지도 모르지만, 존이 오후 내내 궁시렁거리는 걸 듣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거다. 그는 앞으로 다가서서 존의 입에 가볍게 키스했다.

존은 얼굴을 구기며 물러서더니 한마디 한다. “이런다고 용서해주진 않아. 엄청 배려 없는 행동이었다구. 네가 여기 없었으면 어쩔 건데? 수건 때문에 발진이 난다는 걸 내가 몰랐으면 어떡해?”

“발진을 일으키진 않을 거에요. 살짝 불편한 정도지.” 셜록은 대답했다. 아마도 맞겠지. 어쩌면.[각주:7] 

“다음에는 깨끗한 수건 한 장-”

셜록은, 존에게 다시 키스했다.

“너 정말, 키스하는 걸로 무마하려 들지-” 

셜록은, 존에게 다시 키스했다. 그리고 또 다시.
존이 손을 올려 -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셜록의 허리를 그러쥐며 키스로 답해줄 때까지, 계속.



+)
[일요일 오후 4시], [키스해줘]도 그렇지만, out_there님 글은 다정한 데다 구석구석 웃음이 묻어있어서 좋다.
이 글이 올라왔을 때는 개인적으로 한창 바쁘고 지쳐 있었는데, 보면서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뭐 하나 집어서 구박할 수도 없을 만큼 하나같이 터무니없는-_- 개초딩 셜로기지만
일상 속에서 존을 차근차근 깨닫고 소중히 여기는 느낌이 전해져서, 참 좋다. : ]



  1. ‘he was a complete and utter waste of a lab coat’ - 님, 살살 좀… [본문으로]
  2. ‘John says things like "Amazing," and "You're incredible."’ - 셜록 어린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답니다. [본문으로]
  3. …야 -_-; [본문으로]
  4. ‘the exact colour of John's brown eyes’ - 원문에는 갈색으로 되어 있지만, 마틴을 생각하며 푸른색으로 옮긴다. [본문으로]
  5. …주어가 빠졌잖아;; [본문으로]
  6. …야 -_-;; [본문으로]
  7. …야 -_-;;;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