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보다 존 | Five Times Sherlock Had Coffee… (1/2)





금요일


“사과할게요.”

존은 한숨 한번 내쉬고는 호호 불어 차를 식혔다. “셜록, 그럴 필요 없다니까. 말했다시피 완벽하게 정상적인 거야.”

셜록은 스틱으로 오늘분 머핀을 무자비하게 찔러댔다. “나한텐 안 그래요.”

“그때 네 반응만 봐도 알겠더라. 네가 잠에서 깬 다음에도 오~랫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걸로 볼 때, 우리가 그 이야길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었고.” 

셜록은 그 말에 움찔했다.

“미안. 하지만 진짜 걱정은 하지 마. 아마 내가 이불을 끌어간 게 잘못일 테니까 - 밤새 너 감기 걸리고도 남았을걸.”

“그러니까, 온도를 높여보겠다고 내 몸이 제멋대로 당신에게 가서 꽂히기라도 했단 겁니까? 난 가전제품이 아니라구요!”

존은 차를 내려다보며 흥, 코웃음을 쳤고, 셜록은 킁, 훌쩍거렸다.

“몸은 운반 수단이에요. 중요한 건 두뇌라구요 - 나머지는 그저…” 팔을 휘휘 저어보였다. “…정신을 흩어놓는 것일 뿐이에요.”

“뭐, 네 머릿속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야 우리같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겠지. 가끔은 네 스스로에게도 그런 것 같고.” 존은 얼굴을 찡그렸다. “셜록, 너 이번주 내내 왜 이러는 거야? 서로 한번 터놓고 이야기하고 나면 좀 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난 네가, 형님 구박과 기타등등에 넌더리나서 혼자 사는게 더 간단하겠다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걱정했었단 말야.”

“화난 거에요?” 셜록이 쳐다보자 존은 어깨를 으쓱했다.

“음, 처음에는 너도 그냥 떨쳐버리는 것 같았는데, 최근 몇달 동안에는 점점 민감하게 구는데다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정확히 이야기하지도 않더라구. 뭐가 바뀐건지 이해가 안되더라. 지금도 마찬가지야 - 내가 아무 기대 안한다고 명확히 해두면, 너도 만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랬죠.” 셜록은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뭐?” 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괜찮아, 네가 잠결에 한 거야 아무 의미 없을거야 - 아마도 풀리지 않는 코드나 뭐 그런 꿈을 꾸는 거였을 수도 있고 - 하지만 어제 그 머핀, 그거, 그건 뭐였는데? 이해가 안 가…”

“나도 그렇다구요!”

놀란 듯한 얼굴의 존, 셜록은 고개를 돌렸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가게 안을 쭉 훑어보다가, 우유 판매대 근처에 나란히 서 있는 예의 그 바리스타와 여자를 발견했다. 끼어들 틈도 보이지 않는 모습,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해 보였다… 사람들이 그와 존을 볼 때도 이랬던 걸까?[각주:1] 

마이크로프트나 레스트라드 및 기타등등의 암시와 조언들은 괜히 놀려대려 드는 거라 생각하며 무시해 왔었다. 하지만, 그들을 전혀 모르는 젊은 남자마저 같은 결론을 내리는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인 걸까?

“그 녀석, 네가 죽인 것 같은데.”[각주:2]

셜록은 고개를 홱 쳐들어, 이제는 접시 위에서 산산이 흩어진 부스러기가 되어버린 머핀에게 애도의 시선을 보내는 존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제의 스틱을 툭, 떨궜다.

“당신, 복잡하기 그지없는 연애인지 뭔지 때문에 내가 몇 번이나 분통을 터뜨렸는지 알기나 해요?” 그는 따지듯 물었다. “그것 때문에 약한 부분이 드러나는데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리석고 나약하게 만드는지… 나한테 그런 꼴을 당하라는 건 -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구요!”

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셜록, 너 지금 하려는 말이…?”

“나 아무 말도 안했거든요.”

“한 것 같은데.”

셜록은 한 일자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느낌, 그의 인생 안팎으로 시나브로 스며들어서는 온 몸과 마음을 덩굴마냥 뒤얽어놓고 만 거다.

“네가 느끼는 거, 아마도 그냥 친밀한 우정일지도.” 존이 머뭇거리며 한마디 했다. “너 연애해본 적은 있어?”

“당연히 없죠.” 전에 자신에게 들이대던 사람들을 떠올리자 희미하게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을 느끼며 셜록은 팩, 쏘아붙였다. 하지만 존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뭐… 가슴 속에 분명 불안정한 느낌은 있었지만, 불쾌한 건 전혀 아니었다.

“너, 사건은 언제 해결한거야?” 가끔씩 드러나는 통찰력으로, 존이 불쑥 물어왔다.

셜록은 한숨을 내쉬며 시인하고는, “월요일에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불보듯 뻔했거든요.”

“그럼 이번주 내내 끌고 있었던 게… 뭐? 그냥 나한테 휴일이라도 주려던 거야? 넌 정신 나갈 만큼 지루했을 거잖아!”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존의 얼굴 위로 여러 감정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 진짜로 날 생각해주는거군.”

셜록은 도륵, 눈을 굴리고는 “뭐, 당연히 난 당신 생각하죠.” 대꾸했다. “바봅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저 알 수 없는 것 뿐…” 말을 잠시 멈추고는 존의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지금 무슨 정신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당신 말마따나 정신이 나간걸지도. 하지만 내겐, 당신은 지루하지 않아요, 존.”

“셜록!” 착 가라앉은 존의 목소리. 그리고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넘겨버리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 최선일 겁니다.” 결국 셜록이 한마디 꺼냈다. “집에서라면 모든 게 훨씬 더 간단할 테니, 우리도 평소대로 되돌아갈 수 있을 거구요.”

지금 농담하는거지?”

셜록은 얼굴을 구겼다. “미안해요, 존. 하지만 내가 어떤 형태로든 연애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걸요. 내가 얼마나 같이 살기 어려운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은 알잖습니까. 나한테 바라는 게 더 많아지면 얼마나 더 지독해지겠냐구요?”

“네가 같이 살기 어렵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셜록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니, 정말이야. 물론 네가 가끔 까다롭기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랑은 같이 살고 싶지 않은걸. 너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신이 유달리 관대하다는 건 알겠네요.”

“진짜 아니거든. 난 너한테 관대한 것 뿐이라구. 네가 해주는 그 모든 것들 덕이지.” 갑자기 빙글, 웃어보이는 존. 그 미소는 전에 셜록에게 지어주던 다른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내가 얼마나  관대해졌을지 상상해봐. 내게 기회만 주었더라면…”

!”

존은 씩 웃어보였지만, 이내 정색하고는 “눈앞에다 열쇠를 달랑달랑 보여주기만 하고 홱 가져가버리면 안되는 거야.” 항의한다.

“내가 차같다던 걸로 되돌아가는 겁니까?”

“람보르기니는 그냥 차가 아니라구!” 그는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폈다. “시승이라고 해두자.”

이번에는 셜록이 얼굴을 찡그릴 차례였다. “그 설명은 듣고 싶을 것 같지 않네요.”

존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 나한테 끌려? 그러니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냐고. 나한테?”

“난…” 셜록은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요.” 결국에는 시인하고 말았다. 마침내 스스로의 감정을 깨닫는다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존이 한 손을 들어보이자, 셜록은 하려던 말을 멈추며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셜록식 의미로는 정확히 어떤 게 거기 포함되는 거지?” 존은 조심스레 그를 살펴보며 말했다. “소파에 앉아서 서로 꼭 안고서 이야기한다거나… 아니면 네 침대에 누운 내 모습을 그려보는 건가? 내가 네 정갈한 옷들을 벗기고 아래에는 뭐가 있을지 살펴보는 걸 상상하나? 우리가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있는, 살갗끼리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라도 생각하는 걸까?”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내가 널 안아주길 바래, 셜록?”

셜록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보는 그의 시선, 분명 흥분한 기색들 모두 남김없이 읽어냈을 테다. 어쩔 수 없이 온 얼굴에 드러나고 말았을 것임을 셜록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 사람, 존이 맞는건가? 친절하고, 사려깊고, 배려 넘치는 그의 존이? 그는 움찔하며 고쳐 앉았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 존은 한마디로 마무리하고는 물러나 앉아 팔짱을 꼈다. “알았어. 여기서 떠나면 뭘 할 생각이었어?”

“독일 말인가요?” 혼란스러워진 셜록이었다.

“뭐, 스타벅스 이야기는 아니지. 그래, 독일 말야. 지금부터의 실제 네 계획을 이야기해봐.”

머릿속에서는 예상치도 못하게 존이 밀어넣어버린 이미지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셜록은 침착해지려 애써보았다. 그는 차분하게 한숨 내쉬고는 말을 꺼냈다. “사건을 마무리하고 - 범인을 이야기해주고, 애매한 부분은 갈음하고 - 저녁때쯤 호텔로 되돌아가서, 일찌감치 체크아웃하고 집에 가는거죠.”

“그러니까 방은 내일까지 예약되어 있다는 거네?”

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여기 묵어야 한다고 봐.”

셜록은 반박하려 입을 열어봤지만, 존이 딱 잘라 버리고 말았다.

“하룻밤이야, 셜록. 집으로부터의 ‘타임아웃’인 거지. 실험 말야. 넌 사실들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결정 못하잖아, 그렇지?” 그는 팔을 뻗어 셜록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한 손가락으로 피부 아래 희미하게 비쳐보이는 혈관을 따라 어루만지더니, 이내 셔츠 소매 안쪽으로 밀어넣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셜록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존이 팔을 만지고 있는 것 뿐인데… 그저 일 뿐인데. 이제껏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전해져오는 걸, 셜록은 느낄 수 있었다.

시선을 들었다.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새로운 모습이었다. 셜록이 단 한번도 본 적 없고, 전혀 모르던 모습.

“하룻밤만, 셜록. 내일이면 우린 집에 가는 거고, 네가 원한다면 지워버릴 수도 있어. 우린 늘 그랬던 대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거야 -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무엇 하나 바꾸지 않아도 돼. 하지만 오늘밤은? 난, 네가 뭘 놓치게 될지 보여주고 싶어.”

자신감 넘치는 그의 미소. 하지만 셜록은 그 너머 희망어린 기색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때?”

셜록은 한참 후에야 대답할 수 있었고, 목소리도 여느때같지 않았다. “그러죠.”





토요일


“존, 우리 일어나야 해요.”

“흐음?”

셜록은 자신의 가슴 위에 얹혀 있는 팔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그나마 드러난 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 나가야 한다구요, 존. 좀 움직여봐요.”

존은 기지개를 펴더니, 한 손으로 셜록의 뒷덜미를 감싸며 꿈틀꿈틀 가까이 파고들어서는 한쪽 허벅지를 셜록의 다리 위로 턱 걸친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완전히 꼼짝 못하게 되었다고 느끼며, 셜록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침 포옹이야,” 어깨에 대고 중얼거리는 존이다. “완전 중요하거든.”

“완곡한 표현인가요?” 셜록은 물었지만, 딱히 비난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셜록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모로 돌아누웠고, 존도 바로 자세를 바꾸었다. 셜록의 턱 아래 머리를 파묻고, 한 팔로는 그를 감싸안고, 다리 사이로 한쪽 다리를 밀어넣었지만, 지나치게 가깝진 않게 - 서로 딱 붙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둘은 분명… 음… 붙어 있었다.

“이제 뭘 하죠?” 셜록은 물었다.

“그게 다야.” 존이 대답했다. “맘편히 파고들라구.”

셜록은 존의 등, 따스한 살갗 위로 손을 올렸다. 뭘 해야 하는거지? 살살 토닥여 보자, 셜록의 등에 얹혀진 손이 위아래로 쓰다듬어주었다. 좋은걸. 그대로 따라하니 목 언저리에서 존이 흐응,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셜록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존의 이 새로운 모습들에, 셜록은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의 ‘하룻밤’이란 건 예상치 못한 면에서 놀라웠다. 새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일 거라 예상했던 육체적인 감각 뿐만 아니라, 존의 태도 때문에도 그랬다. 넘치는 자신감과 완전한 확신, 몇 번이고 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세심했으니까. 셜록은 안도감과 함께, 그가 정말, 너무나도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더랬다.

하지만 지금, 존은 그의 품 안에 포근하게 안겨 있다. 온전하게 믿고 있는 연약한 모습의 그에게, 셜록은 지극한 보호본능을 느꼈다. 이불 속에서 한데 얽힌 채로 나란히 누워 있는 - 그들의 이 ‘타임아웃’에, 그리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지금.

“그럼, 결정은 했어?” 드디어 존이 입을 열었다.

셜록은 한 손가락으로 그의 턱을 짚고 들어올렸다. “내가 이런 걸 포기할 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내 지성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거라구요.”

“섹스 말야?”

“당신 말예요.” 그는 존의 목 뒷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등을 따라 쓰다듬어주었다. “당신 전부 다.”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이는 존. 셜록 역시도 그 미소를 따라했을 테다. 문득, 아침에 양치하기 전에 키스를 해도 괜찮은 건지 궁금해졌다.

소리내어 묻지는 않았지만, 존은 몸을 뻗어 그 질문에 답해주었다. 물론 셜록이야 만약을 대비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긴 했지만.

잠시 후, 존이 뒤로 물러나더니 인상을 쓴다. “그래도, 섹스는 좋았던 거지?”

그걸 구분 못할 정도면 당신, 내 생각만큼 경험 많았던 건 아닌 모양이네요.”

“너에 대해서만큼은 추측하고 싶지 않은걸. 네 몸이야 좋아했을 수 있겠지만, 네 머리는 불쾌해할 수도 있으니까.”

“음, 난 완전히 좋았어요.” 셜록은 확실히 답해주고는, 존을 바로 눕히고 위로 올라탔다. “사실, 내 생각엔 우리가…” 그는 아래 남자에게서 긴장하는 기색을 읽어내고, 말을 끊었다. “뭐에요?”

“아무것도 아냐.”

셜록은 데굴, 눈을 굴렸다. “어젯밤엔 당신이 내 두뇌를 잠시 멈추게 했다는 거야 부인할 수 없긴 하지만, 지속적인 영향은 주지 않는다고도 장담할 수 있어요. 나한테 거짓말하려 들어봐야 소용 없을걸요.”

“우리 일어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 생각도 그래요.” 셜록은 동의하며 히죽, 웃었다. “뭐가 문젠지 이야기하고 나서, 바로.”

“아무것도 아냐,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어쩔 줄 모르는 거랄까. 복권 당첨된 거랑 비슷해 -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지.”

“확률이란 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겨지는 세금보다는 차라리 차가 되는 편이 낫겠는걸요.” 셜록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거 아녜요.” 그는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존의 얼굴을 감싸고 찬찬히 표정을 살펴보았다.

“섹스랑 관련된 거군요.” 그는 말하다 말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아! 내가 별로였…”

“그런 생각일랑 하지도 마.” 확신어린 존의 대답. “내 얼굴에서 그런 비슷한 걸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읽어낸 거라면, 당장이라도 너 CT촬영 예약해야겠어.”
 
셜록은 씩 웃었다. “그럼 뭔데요? 우리 정말 나가야 하는데 당신이 시간 잡아먹고 있잖습니까.”
 
“우리가 어딜…?”

“존!”

“알았어, 알았다구.” 존이 끙, 투덜거렸다. “난 그냥… 바보같지만…”

셜록은 그의 귀를 콱, 꼬집었다.

“아야! 난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그게 다라구.” 존은 불쑥 대답했다. “난… 널 다그칠 수밖에 없었어. 널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달랑 하룻밤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천천히 해나갔으면 좋겠어 - 더 만끽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그를 보며, 셜록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바보같다고 말했잖아.”

“그거 좋겠는걸요. 우리 그렇게 해요.”

존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뭘… 이 일, 넌 지워버릴 수 있다는 거야?”

“전혀요.” 셜록은 나무라듯 대꾸했다.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시작해서 천천히 해나가는 건 싫지 않아요. 그게 당신 원하는 거라면 절대 그렇게 해야죠.”

“진짜?”

셜록은 그를 내려다보며, 대체 어떻게 그렇게나 오랫동안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지고 말았다.

“진짜.”

그러고도 30분이 지나서야 그들은 침대에서 간신히 빠져나왔고, 40분이나 더 지나서야 옷을 차려입을 수 있었다. 너무 크지 않은 방이라 서로 닿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키스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곧바로 서로 부둥켜 안고 근처 아무데나 밀어붙이게 되고 마니까. 존은 뉘이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셜록은 세워두는 걸 미칠듯이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 존이 자신을 어딘가로 밀쳐세우는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던 거다.[각주:3] 그렇게 그들은 결국, 또다시 환한 아침을 맞기에 이르렀다.[각주:4] 

“그래서, 우린 어디 가는거야?” 존이 물어왔다. “사건은 다 정리된 거라 생각했는데.”

“아, 그럼요. 스타벅스 갈 거에요.”

“진짜?” 존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군.”

어쩐지 ‘하수처리장’이라 했더라도 같은 반응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셜록이었다. 어쩌면 방금 말에 존을 행복하게 하는 뭔가 있었을지도. 분명 조사해볼 만한 거겠다.

도착하자마자 존이 문고리로 손을 뻗었지만, 셜록은 그 팔을 붙들어 옆으로 끌어당겼다.

“잠깐만요.” 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바리스타가, 늘 관심있던 그 여자 옆에 서서 여느때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이제 가려는지 짐을 챙기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존이 영문을 몰라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모른척하고 안의 남자가 자신을 알아차리기만을 기다렸다. …여자에게서 도통 눈을 뗄 수 없는지 좀 걸리긴 했지만. 셜록이 기다리다 못해 유리를 두드리려던 찰나 남자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알았다는 듯 작게 미소를 보내왔지만, 셜록이 손짓하지 않았더라면 돌아서버렸을 거다. 일단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자, 그는 보란듯 존의 손을 꼭 잡고 치켜들어 보였다.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존에게, 셜록은 잠깐 미소지어 보이고는 다시 바리스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신 차례야.’ 하듯이. 그는 존의 손을 놓아주며, 팔짱을 끼고 기대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젊은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가방을 집어드는 여자를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셜록을 보며 살짝 도리질한다. 셜록은 얼굴을 구겼다.

“저 남자 노려봐줘요, 존.” 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말했다. 존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갑자기 안에 있던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움찔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아하니[각주:5] 말대로 한 게 분명하다. 남자는 몇번 심호흡하더니, 다시 한걸음 나서며 손을 뻗어 조심스레 여자의 팔을 건드렸다. 여자는 테이블 위로 가방을 떨어뜨리고 만다. 남자는 영 갈등되는지 창밖을 다시 한번 흘끔거렸고, 이번에는 여자도 눈치를 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그녀가 막 뒤돌아서려는 찰나, 바리스타가 몸을 기울여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여자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휙 돌렸다. 뭐라 물어보는 게 분명했지만, 남자는 지금 당장은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듯 새빨개진 얼굴로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 말았다. 셜록은 최악의 상황일까 잠시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여자는 꽤나 대담했다. 그녀는 남자의 뺨에 답례의 키스를, 그것도 조금 길게 해주었고, 그녀가 물러설 때까지도 남자의 손은 그대로 들어올려진 채였다. 마침내 남자가 간신히 몇 마디 하자… 여자는 그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셜록은 나머지 직원들끼리 열정적으로 서로 하이파이브를 날려대고 있는 - 파티 분위기인 카운터 쪽을 보고는, 마지막으로 문제의 커플을 - 지금 이 순간에는 딱 맞는 표현이겠다 - 한번 더 바라보았다. 젋은 남자는 이제껏 여자친구의 머리카락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는 고맙다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를 본 셜록은 그대로 돌아섰다.

“어때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존의 시선을 느끼고, 그는 태연히 물었다.

“방금 뭐였어?”

셜록은 어깨를 으쓱하며, “약속을 했었거든요.” 말해주었다. “‘너 하면 나도 할게’라는 말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넌 가끔씩 날 깜짝 놀라게 한단 말야.”

문득, 셜록은 이거야말로 꽤 쓸만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호텔방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어요.” 

“아, 진짜?” 존은 문 쪽으로 고갯짓했다. “들어가보고 싶지 않아? 네 커피는 어쩌고?”

“음, 난 ‘천천히 해나가는’ 프로그램이 언제 시작되는 건지 궁금해지는 참인데요?” 셜록은 반짝거리는 눈빛을 감추지도 않고 물었다. “그거, 런던 전용 프로젝트겠죠?”

존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뛰자구!” 



+)
‘우유보다 커피’에서 제목을 따왔던 이유는, 존은 늘 우유를 부르짖지만 
셜록의 마음 속에서는 우유보다 커피, 커피보다 존! 이기 때문.
세상 모두가 다 아는 명백한 사실을 저 혼자만 모르면서 툴툴거리긴 해도, 
어쨌든 우유 < 커피 <<< …넘사벽… <<< 존, 그거슨 진리. : ]
  • 소개합니다: 소천님께서 [지긋지긋한 일상 탈출법]의 [레드불에 취한 셜록]을 선물해주셨어요~! 



    1. 님 그걸 말이라고 하나요… 물론^100이지 -_- [본문으로]
    2. “I think you killed it.” - 애꿎은 머핀님의 명복을 빕니다. [본문으로]
    3. …님 도대체;;; (전편 각주7에서부터 엿보이는 셜로기의 취향) [본문으로]
    4. …님들 도대체;;;; [본문으로]
    5. 눈빛으로 사람 하나 잡을 기세.avi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