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툼  | Fight



(존 시점)

범죄 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택시 안에는 불길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는 나지막히 씩씩거리고 있었고, 셜록은 꼬마아이들이나 할 법한 시무룩한 - 뭔가 잘못했지만 꾸지람을 듣고도 내심 여전히 분개하는 듯한 -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최소한 아무도 (그런 쪽으로) 단정짓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빤히 드러나보이는 것 같았는데도 말이다.

셜록이 그 폭탄선언을 내뱉자마자, 샐리는 미친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놀라워, 놀랍다구.” 그녀는 큰 소리로 깔깔댔다. “싸이코패스님께서 자기 장난감을 뺏길 생각이 없으시다네요!” 그녀가 물러선 건 현명한 행동이었다. 셜록이 마치 현장에 다른 시신이 추가되면 대단히 좋겠다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순 없는거라구, 괴물녀석아.” 그녀는 그를 비난했다. “그저 네 곁에 있다고 해서 그가 네 소유물이 되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는 내게로 돌아섰고, “내가 경고했죠, 존.” 지적했다. “그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지금 저 사람이 당신한테 하는 걸 봐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저 사람을 참아내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마치 동네북이라는 듯 여기는 듯한 그녀의 가정에 반쯤은 안도하고, 한편으로는 분개하면서 우울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셜록에게 화가 난 상태였으니까. 셜록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아보더니, 원하는 게 있을 때나 전자렌지를 다시 날려버렸을 때 하는 그 큰 눈으로 쳐다보는 건지 뭔지를 시작했다; 정말 내가 지금까지도 그 수법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난 그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밖에서 기다릴게.” 그에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나가는 동안 기운내라는 듯 어깨를 토닥이는 격려들을 받으면서 - 모두들 샐리의 생각에 동의하는건 물론이고, 내가 셜록을 참아내면서 사는 완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지만, 진실을 알게 두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셜록이 택시비를 내도록 버려둔 채 플랫으로 바로 들어서며, 항의하는 의미로 내 의자에서 그의 잡동사니들을 치워버리리라 다짐했다. 운나쁘게도, 최근에 내 의자 아래에 실험용 전기 기기같은 것들도 추가되었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확실히 그런 것들과는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았기에, 넌더리내며 주전자로 향했다.

문 앞에서부터 셜록이 바로 내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운을 차릴 때까지 몇 분간은 조리대를 꽉 움켜쥐고 서 있다가 그에게로 돌아섰다. 

“도대체, 왜,” 나는 그의 가슴을 쿡 찔렀다. “무슨 생각으로,” 다시 찔렀다. “그러는 거야?”
이번에는 조금 세게 찔렀던 탓에, 그는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합의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에게로 다가서며 따지듯 물었고, “이…” 우리 사이를 가리키듯 손을 저었다.
“뭐든간에, 비밀로 해두기를?” 그는 그저 날 바라보기만 했다.

그에게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어보이며 외쳤다. “그렇게 눈만 크게 뜨고 있지 마, 셜록 홈즈!”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마치 내 어머니같이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각주:1]

“그러니까,” 나는 말을 이으며 “바로 저 소파에 앉아서,” 지적했다.
“딱 일주일 전에,” 맙소사, 일주일밖에 안 된 거였나?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었나?”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숙였지만, 턱은 내민 채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제 자신감을 되찾고 본격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둘 모두에게 큰 변화기에, 우리 둘 모두 좀더 편해지기 전까지 당분간은 확실하게 비밀로 해둬야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잠시 멈추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가 나를 외면하고 있었기에, 나의 살기어린 시선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때는 자네가, ‘난 괜찮아요, 존. 어느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카펫에 푹 빠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귀를 막기라도 할 기세였다.

“셜록?” 내가 다그치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여전히 불퉁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지, 확실히 8~9살 전후의 감정적인 시기에는 원래 그런 거니까. [각주:2]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그럼 오늘 뭐가 문제였는지 이야기해보는게 어때, 셜록?” 그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오늘이 스코틀랜드 야드 절반 앞에서 날 커밍아웃시키기 딱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야?”

셜록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그는 이미 주머니에 손까지 찔러넣고 있었다.
이쯤 되면 곧 신발 끝으로 카펫을 문질러대기 시작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각주:3]

“셜록!” 나는 거의 소리치다시피 그를 불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삐진 꼬맹이는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당신을 건드렸다구요, 존.” 그는 내 가슴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여자가, 당신 심장 바로 위에 손을 댔단 말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신뢰를 저버린 게, 도노반 경사랑 내 사이를 질투해서 그랬다는 거야?”
나는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정신 나갔어?”

“난 질투했던 게 아닙니다.” 그는 역겹다는 듯한 말투로 부인했다. “난 그저,” 머뭇거리더니, “맘에 들지 않았을 뿐이에요.” 나지막히 덧붙였다. 이제 그는 여전히 샐리의 손자국이라도 남아있다는 듯, 내 가슴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 그 스웨터 벗어버려야 해요.” 그는 불쑥 말했다.

“뭐?” 나는 이 뜬금없는 지시에 어리벙벙해져 되물었다.

“스웨터 벗으라구요!” 그는 내게 다가서며 다시금 말했다. “샐리의 손이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는거니까, 그 스웨터 빨아야겠습니다, 적어도 말이죠.” 그는 이제 내 코앞까지 다가와 손을 뻗고 있었다.

“’적어도’라는게 무슨 뜻이야?” 나는 항의했다; 이건 내가 아끼는 스웨터 중 하나라구! “뭐하는거야?” 따지듯 물었다. “이거 놔!”

그의 손은 내 허리께에서 스웨터 아랫단을 부여잡은 채 끌어올려 벗기려 들고 있었다. [각주:4]

“태워버리는게 좀더 안전하겠죠.” 그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듯 말했다.

그의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그는 정말이지 집요했다. 이건 말도 안돼… 둘다 작심한 채 그는 내 스웨터를 벗겨버리려 하고 나는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하는 탓에, 이젠 거의 레슬링이나 다름없었다. 뭐, 나야 단단히 마음먹은거지만 그는 그냥 어이없게 구는 것 뿐이다.

우리는 온 방을 가로지르며 버둥거리며 싸웠다. 하지만 그가 날 벽으로 밀어붙였을 때, 그는 갑자기 멈춰섰다. 우리의 ‘논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 옷은 거의 풀어헤쳐져, 스웨터와 셔츠 모두 내 갈비뼈 근처까지 구겨져 올라가 있었고, 그의 손은 이제 내 맨 허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양 손을 움직여 내 살갗을 미끄러지듯 감쌌고, 손가락으로는 원을 그리듯 어루만졌다.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일주일 전의 그 환상적인 키스 이후로, 육체적인 관계는 더 깊게 나아가지 않았고, 사실상 그만큼 다시 한 적도 없었다. 우리의 태도는 상당히 바뀌었지만, 우리 둘 모두에게 워낙에 급격한 변화였기에 차근차근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껴안거나, 꼭 붙어있거나, 상당히 가벼운 입맞춤하는 것 정도는 많았지만, 딱 그정도였을 뿐, 지금까지는 그래도 옷은 확실히 입고 있는 채였다.

이제 셜록은 확실히 내 배부터 등 아랫쪽까지를 감싸안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내 얼굴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의 눈은 동공이 크게 확장되어 온통 검은빛이었다. 나는 그를 마주보았다. 아마도 내 눈 역시 다르지 않을테지. 이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그는 그저 - 특별히 민감하거나 별달리 놀라운 게 아닌 - ‘절제된’ 영역이라 여겼던 곳을 건드리기만 했을 뿐이다. 제길, 난 심지어 간지럼도 타지 않는다구! 하지만 그저 그의 손이 내 살갖을 어루만지기만 했는데도, 나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더 거세지는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더’에 수반될지도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준비 비슷한 것조차 되어있지 않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의 시선은 내 입술로 옮겨왔고,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불보듯 뻔했다…

갑자기, 나는 내가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내 주의를 딴데로 돌리려고 이러는 건가? 나는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려 그를 밀쳐냈고, 그는 완전히 멍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좋아, 아마도 의도적인 술수는 아니었던가보군,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옷가지를 바로잡고 벽에서부터 떨어졌다.

“난 화난 상태라구, 셜록.” 나는 할 수 있는 한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고, “오늘 자네가 한 행동은 옳지 않은데다 합리적이지도 않았어.” 돌아섰다. “난 잠시 방에 가있을게;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내 - 거의 쓰지 않는 - 노트북이 소파 팔걸이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살짝 돌아서서 집어들었다. “그리고 노트북 가져간다!” 방문으로 향하며, 나는 명백히 ‘그러니 그만해!’ 하는 투로 덧붙였다. 당당하게 마무리지어보려 했지만,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은 채, 건성으로 노트북을 켰다. 나는 10분동안 내 블로그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대체 내가 뭐라 쓸 수 있단 말인가? 

‘내 플랫메이트에게 강제로 찐하게 키스당했지만; 놀랍게도 잘 되었다’? [각주:5]

‘난 지금 동성 연애중이다, 그와 섹스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해지긴 하지만'? 나는 차라리 픽 웃어버렸다.

결국 나는 노트북을 다시 끄고 그냥 침대에 누워 지난 한 주를 되새겨보았다.

셜록과의 키스는 내 인생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 수 있었다면, 그래도 그렇게 했을까? 오늘 그가 벌인 일을 생각하면 ‘아니’라고 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만약 머릿속에서도 솔직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되뇌이는걸 그만둬야 할 때가 된 걸테다), 이번 한 주는 놀라웠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여자들과 데이트했었지만 동거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이런 ‘가정적인 행복’같은 건 예상 외의 즐거움이었다. 난 내가 셜록과 소파에 같이 앉아있는 것을 - 특히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가 내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어 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순간을 -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어루만져주길 바라는 고양이같았다; 내 손이 멈추기라도 하면, 아마도 틀어둔 채널에서 극적인 장면이 나오고 있을 때겠지만, 그는 원래대로 다시 쓰다듬어줄 때까지 조금씩 들이밀곤 했다; 내 생각엔 그 스스로도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모를 것 같다. 

난 내심 미소지었다.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을 고려하면, 실상 셜록은 놀라우리만치 나와의 스킨십을 좋아했다. 그는 보통 내가 주도하길 바라기라도 하듯, 먼저 시작하지는 않으면서 살짝 자신없고, 조금은 머뭇거리는 듯한 -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했던 그 키스 다음날 아침에 처음 보았던 -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불안한 듯한 미소를 처음 봤던 그때, 그는 나를 바라보며 부엌 주변을 맴돌다가, 분명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그 이후로 - 그날 아침, 네온사인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때부터 - 나는 그걸 그의 '안아도 될까요?' 미소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그와의 포옹은 내 '최고로 좋아하는 5가지 행동' 리스트에 추가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내 목 언저리를 파고들며 꼭 안겨왔다. 그리고는 늘 어디 앉거나, 최소한 걸터앉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보이는 게 좀 이상했지만, 그저 수많은 그의 별난 점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토스트가 식는 것 정도야 별거 아니었다. [각주:6]

시계를 흘긋 보니 여기 이렇게 있은 지도 어느새 1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나는 조금 진정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실제로 우리 사이를 폭로하려던 것도 아닐 뿐더러, 이 모든 게 그에게 생소한다는 걸 감안하면 약간 소유욕을 보이는 것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관계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침대에서 구르듯 내려와,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거실은 매우 따뜻한 듯 했고, 나는 셜록이 또 오븐을 가지고 실험하는게 아니기만을 바라마지않았다; 지난번에는 치우는 데만 한시간이나 걸렸다구. 그는 창가에 서 있었지만, 내가 들어서자 조금 멋적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안녕." 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그는 분명 화가 풀린 거라 생각했는지, 환하게 웃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 정말 덥잖아."

"아, 그냥 사소한 실험입니다." 그는 말했다. 그의 대답은 뭔가 살짝 엇나간 것 같았지만, 딱 집어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당신 말이 맞아요, 따뜻한 것 같군요. 난 자켓 좀 벗어야겠어요." 그러더니 셔츠 윗단추도 두 개나 풀었다 - 그는 진보랏빛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고, 나는 갑작스레 그의 창백한 피부와 어두운 머리색과 그 옷이 그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이전에는 그가 뭘 입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았었다.
이러다 다음엔 코스모폴리탄(Cosmo)이라도 읽게 되는건가!

나는 차가운 맥주 한잔이면 남자다운 회복제로서 적절하겠다고 생각하며, 갑작스레 덥게 느껴지는 스웨터를 벗으며 냉장고로 향했다. 불행하게도 맥주는 없고, 다양한 종류의 신체 부위들에 더해, 우유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그러면서도 나는 하릴없이 의아해졌다. 대체 언제부터 냉장고에 신체 부위들이 있는게 일상적인 광경이 된걸까?)

차를 타는 것만큼은 절대로 셜록이 해선 안될 일이라고 설득해온 후로 계속, 그는 거의 매번 나갔다 올 때마다 우유를 사들고 오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것을 증명하는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우유곽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단에서(그가 먼저 달려드는 유일한 장소다) 끊임없이 내게 입맞추려 드는 걸 생각하면, 나는 정말로 이 남자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Artwork by 0redwolf0

대신 물 한 잔을 따라 들고 거실로 돌아오며 소파 팔걸이에 스웨터를 떨어뜨렸을 때, 나는 셜록의 얼굴을 스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데?” 나는 따져물었다 - 분명 뭔가 저지른 걸거다.

“뭐가요?” 그는 똑같이 되물었다. 왠지 설득력없게, 라는걸 덧붙여야겠군.

나는 문득 정신차렸을 때 뭔가 질척질척한 것들 한가운데 서 있는 상태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셜록의 시선은 소파를 빠르게 훑었고,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그가 보고 있는 걸 봤을때… 내 스웨터!

나는 부엌을 훑어보았다. 오븐은 켜져있지 않았고, 눈에 띄는 새로운 실험같은 것도 없었다. 조금씩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온도 조절계로 시선을 돌렸을 때, 평소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켜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셜록!” 그가 맞춰놓았던 ‘숯불구이’ 대신에 ‘인간’ 수준으로 온도를 낮추러 가면서 소리치고야 말았다.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씨익 미소지으며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솝을 기억해냈어요, 존.” 그는 설명했다. 말을 계속 이어가는 걸 보니, 나는 분명 멍한 표정이었을 거다. “어렸을 때, 이솝 우화책이 있었거든요.” 그는 생각에 잠겨 미소지었다. “누가 남자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가를 두고, 북풍과 태양이 누가 더 강한지를 겨루는 시합이었어요.”

슬슬 이 남자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것 같아졌다.

“북풍이 열심히 바람을 불어댔지만,” 그는 말을 이었다. “남자는 단지 외투를 더 꽉 감싸쥘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스웨터를 뺏어가려 했을 때, 절대 놓지 않겠노라고 단호하게 결심했던 걸 기억해냈다.

“하지만 태양이 비추기 시작하자, 그 남자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외투를 벗을 수밖에 없었구요.”

내가 아무 말도 없자, 셜록은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당신, 또 화난거 아니죠, 그렇죠?” 그는 초조한 듯이 물어왔다.
“그 스웨터 계속 가지고 있어도 돼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거라면…”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스웨터따위 집어치우고,” 그에게 말했다. “이리 와, 이 어이없는 남자야.”

그는 한달음에 방을 가로질러왔고, 빠르게 소파 팔걸이 위로 걸터앉으며 자세를 낮추고는(나는 이와 동시에 그가 문제의 스웨터를 바닥으로 밀어버리는 걸 눈치챘다) 품 안 가득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30분쯤 지난 후, 우리는 서로에게 팝콘을 던져대며 형편없는 게임쇼를 보고 있었다.



  • 원문: The Road Less Traveled (10/19): Fight
  • 역자 주석: 아이구 이 귀여운 화상들…
    한참 투덜투덜 뚱해 있다가도 득의만면한 미소를 짓는 개초딩 셜록이랑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는 듯 애정어린 체념의 표정을 띠는 엄마 세인트 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기분 : ] 
  • 그림: 0redwolf0께서 두근두근, 계단 위에 선 두 남자를 그려주셨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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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엄마존! [본문으로]
  2. 초딩셜록! [본문으로]
  3.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에 손 넣은채 발로는 땅바닥을 툭툭 쳐대는 불만스러운 이 모습… 이 초딩을 어쩌면 좋니;;; [본문으로]
  4. 화… 화이팅? [본문으로]
  5. 화… 화이팅?! [본문으로]
  6. 누군가와 사귀게 되면, 토스트를 먹기 전에 포옹부터 해야 하는거니까…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