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존을 주시했다. 그 특유의… 분위기다.

(왜 지금, 어째서 오늘인 거지?)

그는, 존과 함께 만들고 일궈온 삶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런 류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게 무척이나 싫었다. 존 왓슨이라는 - 이 선물을, 이만큼이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고마워할 줄 모르는 지독한 사람이기도 했던 탓이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기만 했었다. 존이 가지고 있던 비밀스러운 생각들을 모조리 풀어내고, 자신만의 방법을 적용해서 흥미롭고 놀라움 가득한, 지루함과는 정반대인 이 남자의 모든 걸 밝혀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걸 알아버리고 만 지금은, 뭘 한단 말인가?

셜록은 관계에 서툴렀다. 그에겐 선례라 할 만한 경험도 없었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거다: 새로운 거 하나 없이 이대로 이어나가야만 하는 건가? 아니면 이건 관계가 수명을 다해서 끝내버려야 한다는 신호일까? 육체적인 열정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 그건 여전히 그대로다. 존의 작은 손길에도 아직 떨리고 흥분되니까 - 셜록은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기에, 정신적으로 지루해지고 말거라 예상했었다.

다른 질문도 있다: 커플들은 왜 같이 사는 걸까? 각자의 비밀을 알고, 다른 사람이라면 싫어할 만한 잘못들을 감싸주면서 서로 공유하는 내력 같은 건가? 아니면 타인과 엮어주는 단순한 애착 때문?

셜록은 애착이란 개념이 한낱 단순한 화학적 지식, 즉,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으로도 구분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논리적이자, 실증적인 데이터로 증명해낼 수 있는 답변일 테다.

예전의 셜록이었다면 그 답에 만족했을 거다. 일단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했으니 거기서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향력을 지닌 존과 보낸 시간들 덕에 실증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불가사의를 밝혀내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불가사의… 심원하고, 신비로운. 이런 것들은 본능이나 직관, 무한, 모호하다는 말과 더불어 셜록이 평소 쓰기 싫어하는 단어들이다. 손을 내밀어 붙잡을라치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이런 류의 단어들은 편치 않았다. 셜록의 언어는 차갑고 정확했다: 이성과 수학, 공식, 논리, 데이터, 실험이나 과학적 방법들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을 반드시 비판하고 분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걸, 셜록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을 보라. 그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모든 건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셜록은 문득 궁금해졌다: 존은 이런 의심을 품어본 적이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존은 정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이니, 모진 생각따위 해본 적도 없었을 테다.

셜록은 존이 없던 시절의 삶을 돌이켜보았다. 마치 그 오랜 시간 내내 잠들어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뭐가 빠져 있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는 걸테다. 그때, 존이 나타나 타인을 아낀다는 것의 힘을 보여준 거다. 셜록은 대신할 사람이나 새로운 미스터리를 찾는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고말고. 존이 아니면 누구도 안된다.[각주:3] 

존이 뭘 얼마나 가졌는지, 가지지 못했는지를 모른다 해도 셜록은 그가 없는 삶 따위는 절대 선택할 수 없으리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쪽은 외로움, 고독, 우울함과 마약으로 이어질거다. 예전처럼 돌아가버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전보다 더 나빠지겠지. 존이 가져다주었던 그 모든 긍정적인 영향들은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 거다. 

(당신 없이는 난 한 사람 몫도 안되겠지만, 함께라면 우린 둘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어.)

셜록이 이제껏 보았던 것 중 가장 이상한 수학 공식이었다. 이론적으로 증명해낼 수도 없고 그런 공식따위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그는 머리와 마음 모두로 그게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째서 그게 진실인지를 보여줘. 증명해줘. 내겐 데이터가 필요해!)

셜록은 - 다행히도 그의 관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 존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존의 관자놀이 부근에 회색빛으로 세어진 머리카락이 셜록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다른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거친, 다른 질감이었다.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늘었고, 있던 선은 좀더 깊어졌다. 그의 손등 혈관들은 더 도드라졌다. 콜라겐 생성이 느려지면서 그곳과 다른 쪽들의 피부가 얇아진 거다. 셜록은 존의 신체에 활성산소로 인한 피해가 축적되는 모습을 가장 근본적이고 분자 구조적인 수준으로 상상해보았다. 산화 작용을.

이것들은, 새로운 성장인 셈이다.

순간, 셜록은 충격적이리만치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존은 변화하고 있다. 그는 어제의 존과 다른데다, 내일이면 한층 더 달라질 거다. 이렇게나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니! 셜록은 변화해나가는 존을 지켜보고 싶어한다는 걸 자각했다. 나날이 확연하게 달라보이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눈에 띄기 시작할 이 모든 새로운 증거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분류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수많은 소중한 시간을 다른 영혼과 나눈다는 것… 그거야말로 존이 셜록에게 주는 선물이었던 거다. 세상에 널린 나머지가 아닌 - 단 한 사람을 마음에 들여주고, (가끔 따분하다는 건 인정해야겠지만) 수많은 날과, 달, 해를 구성하는 순간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 아주 예전, 갓 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기쁨을 기억해내자 셜록의 가슴, 그의 심장은 혈액과 감정으로 넘쳐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그들이 공유했던 모든 시간과, 함께 쌓아온 기억들 - 그 시간의 힘이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졌던 거다.

(당신은 날 아껴주고, 날 받아들여주고, 내 빈 곳을 모두 채워줘. 처음에 당신은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지만, 이젠 그 이상이야. 그때도 당신을 사랑했지, 맞아. 하지만 난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는데다, 연애나 관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어. 내 사랑도 순진하고 모자랐던 거야. 당신은 풀 수 있을 수수께끼 따위가 아냐. 그 이상이지, 훨씬, 미스터리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야. 당신은 내 일부분이 되어버렸는걸. 그것도 가장 최고인 부분이지. 그러니 이제, 가장 알 수 없는 수수께끼 하나만이 남아있어: 당신은 왜 날 사랑하지. 왜 나와 함께 있는거지. 난 좋지 않은데, 당신은 완벽하잖아.

그래도 나, 당신 덕분에 나아지고 있어.)
 
또다른 깨달음. 처음의 그것보다 더 가깝고, 실상은 이어져 있는 거기도 하다: 셜록 역시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거다. 자신이, 그리고 존이 어떻게 되어갈지는 솔직히 전혀 몰랐지만, 둘이 함께일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셜록은, 그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존이 곁에 있으면, 그들이 성장하고 변해가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바뀌어갈 불확실한 미래조차 견뎌낼 수 있으니까.

셜록은 그제서야 존이 책을 읽다 말고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방금 막 사건을 해결해낸 것 같은 얼굴이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당연하게도, 셜록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말로 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인데다, 지금 당장 소리내어 말해버리면 신비감이 사라져버릴 테니까. 우선 스스로 정리부터 해야 했다. 게다가, 이런건 침실에서나 할 이야기기도 하고.
대신, 미소지으며 말해주었다:

“1주년 축하해, 존.” [각주:4] 

셜록은 길고 마른 팔을 뻗어 존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존은 그 손을 잡아주며,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입맞추었다. 둘의 시선이 한데 마주쳤을 때, 서로의 눈 속에는 친밀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도.” 존의 약속에,

셜록은 맹세했다. 영원히.



+)
1년전 오늘, 셜록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더랬다. 그들의 만남, 그 이후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일상, 어느 순간 문득 ‘함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참 좋다.
100년 전, 1년 전의 그들도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변해갈 두 사람도 사랑할 것임을 알기에
작은 애정을 담아 옮겨본다. : ]
 
※ [마음으로 채우다 20편]에 대해 소중한  그림을 두장이나 선물받았어요. 
    너무 멋진 그림들이라 본문과 함께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하이지달님, K님 정말 감사합니다. 



  1. ‘Free Radicals’ - 프리라디칼. 짝이 없는 전자가 있는 원자/분자 그룹이라고. 노화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활성산소가 대표적인 예. 본문 내용 때문에 이렇게 옮긴다. http://goo.gl/SafnW [본문으로]
  2. ‘Triangular Theory’ - 스턴버그라는 학자가 사랑의 구성요소를 정의한 이론. 사랑은 친밀감(Intimacy)+열정(Passion)+약속/헌신(Commitment) 3가지로 구성된다고. 자세한 내용은 여기: http://goo.gl/uJliY [본문으로]
  3. ‘it was John or it was nobody.’ - 셜록다운 말. 이런 느낌이 좋다. [본문으로]
  4. “Happy anniversary, John.” - 간단하지만, 옮기기는 참 어려운 말. 이 글을 선택한 의도에 맞춰 의역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PasserbyNo3 :